소설리스트

클로저스-117화 (117/517)

00117  국립 중앙 박물관이 살아있…나?  =========================================================================

금요일 아침, 엄마와 아빠는 병원으로 벌써 출근하고 누나도 예쁘게 꾸민 다음 나가려 하길래 손을 잡고 물…으려다 말았다.

국립 중앙 박물관은 여의도 근처에 있는데, 날 바래다주면 강의 시간에 늦겠지?

“할 말 있어?”

“아냐~. 공부 열심히 해.”

“무슨 일인데 그래? 괜찮으니까 말해봐.”

누난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재촉했다. 진짜 별거 아닌데.

“별거 아닌데……. 오늘 야외수업 있는데 데려다 달라고 하려 했던 거뿐이야.

“아, 야외수업 어디서 하는데?”

“국립 중앙 박물관.”

“벌써 그런 시기인가…. 2년에 한 번씩이니까 너도 두 번째겠네?”

“응. 별로 가고 싶진 않은데…. 수업이라니까.”

“으이구, 어제 일찍 말하지! 시간 맞춰서 나가려는데 말하는 게 어딨어.”

그러게 말야. 어젯밤에는 프랑이랑 함께 어른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느라 깜빡해버렸어.

누나는 그냥 평범하게 하늘색 원피스에 아래에는 검은색 쫄쫄이바지만 입었는데도 이런 옷맵시라니, 나 같은 싸구려 옷걸이와는 차원이 다른 초고급 옷걸이인 누나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되더니 역시 안 되겠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간이 안 되겠어. 미안.”

“아냐. 미리 말 안 한 내 잘못이니까 택시 타고 가면 돼. 누나도 얼른 가봐.”

“응. 다음엔 꼭 먼저 말해?”

“알았으니까 어여 가봐.”

“쿡쿡.”

내 장난기 섞인 말에 킥킥거리며 웃은 누나도 집을 나갔다. 그럼…. 나도 슬슬 출발할까? 여기서 택시 타고 가면 1시간 정도 걸릴 테니까.

8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교복 마이를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도로가 막혀서 늦는 건 아닐까 했는데 다행히 9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야외 수업을 1학년부터 3학년 전부가 동시에 한다. 하지만 전교생 900명이 한곳에 모일 수는 없어 반씩 나눠 450명이 A조로 국립 중앙 박물관을, B 조는 서울과 구리시가 반반씩 나누고 있는 아차산을 등산하는 전통이 있었다.

A 조인 우리는 작년에 아차산을 올랐으니까, 올해는 박물관이군. 작년에 선생님한테 산은 왜 타느냐고 물어봤었는데 산행으로 체력을 기르란다.

…기분은 건강해지고 체력이 붙을지 모르겠는데 운동 안 한 일반인이 죽어라 산 타봤자 무릎만 나간다고 하던데….

정말 최악이었다. 애들은 많은데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고 혼자 하는 산행은 그야말로 끔찍했었지. 그땐 몸도 별로 좋지 않아서 진짜 중간에 집에 가고 싶어져 눈물이 날 뻔했었다….

그래도 지금 같으면 등산도 나쁘진 않을 거 같네.

“어디부터 갈까~?”

“역시 목적대로 지하의 위상 관부터 둘러보지 않을래? 이번에 새 견본이 추가됐대.”

“귀찮아~. 1학년 때 다 본 건데 왜 또 오냔 말야.”

“아하하. 그래도 1, 2학년들은 못 봤으니까, 창현이 너두 1학년 때만 봤으니까 거의 다 잊어먹지 않았어?”

“서하야~ 우리 도서관에 가보지 않을래?”

내 옆에 모여서 같이 있어 주는 애들이 있고 나도 체력이 좋아졌으니까.

택시에서 내려서 박물관 입구로 조금 더 들어가니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애들이 우글우글 몰려있었다.

“서하야~! 여기야, 여기~!”

쏟아지는 시선을 받으면서 우리 반은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는데 연못이 조성된 근처에 한고은이 날 부르며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저 연못이 거울처럼 생겼다고 거울 못이라던가?

“정서하~? 지각할 뻔했단다. 조금 일찍 다니렴!”

“네. 죄송해요.”

날 보고 살짝 야단친 담임 선생님은 교사용 패드에 인원 체크를 하더니 박수를 치며 반 아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자~! 주목! 선생님을 봐! 거기 잡담 그만!”

들떠서 재잘거리는 애들을 지적한 선생님은 아이들이 모두 바라보자 입을 열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너희는 1학년 때 봐서 별로 재미가 없겠지만~! 2년이나 지났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 그냥 다시 기억을 되새긴다고 생각하고 지하의 위상 관을 둘러보는 게 목적이니까 오전에 전시관을 먼저 둘러볼 것! 그리고 점심때 이곳에서 인원 체크 한 번 더 할 거니까 도망가거나 하면 안 돼요~!”

“조금 늦었네?”

“1시간 전에 출발했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

“나두 1시간 전에 출발했는데 차가 조금 막히는 바람에 방금 도착했어.”

내 말을 들은 수유리도 날 보며 배시시 웃었다.

“너희가 위상 세계에 들어갈 확률이 제로는 아니니까 꾀부리고 요령 피우지 말고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도록 해! 알았지~?!”

“““네에~!”””

“그럼 12시에 이곳에 모이구 다들 해산~!”

그리고 애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5일째라 그런지 월요일 첫날처럼 과도한 관심과 시선은 받지 않았다.

과도한이다, 과도한.

아무튼, 몇몇 여자애들이 함께 다니지 않겠냐고 물어왔는데 한고은의 선에서 모두 차단되어버렸다.

편하네, 한고은 배리어.

“이야~, 한고은 배리어 효과가 장난 아닌데?”

“뭐야?”

어, 내가 했던 생각을 김창현이 그대로 말해서 나도 놀랬다. 물론 김창현의 말을 들은 한고은은 쌍심지를 켜고 김창현을 쪼아대기 시작했지.

순간 내가 말해도 저런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실천은 하지 말아야지.

“난 어디라도 상관없어.”

어딜 가야 할지 강소라를 비롯한 애들이 의논하길래, 나는 어디라도 상관없다고 말해줬다. 1학년 때는 누나한테 잡혀서 3층부터 지하 1층까지 7시간 동안 싹 살펴봤거든…….

그런데, 뭔가가…. 신경 쓰이는 느낌이 박물관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

-서하? 무슨 일인가요?-

오늘은 노란색 스트라이프 무늬의 어깨끈 원피스를 입은 프랑은 내 옆에 서더니 나와 함께 박물관 쪽을 한번 돌아봤다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나랑 가장 오래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점점 내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가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냐. 뭔가…. 박물관에서 걸리는 느낌이 들어서 보고 있었지. 근데 지각으로 살펴봐도 별다른 건 없네.-

그때 한고은이 나서서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아아~! 그럼 3층부터 차례대로 내려오면서 지하 1층에 들렀다가, 점심 먹고 자유 행동하는 걸로 하자. 어때?!”

싫다고 하면 때릴 분위기인걸?

“싫은, 컥!”

역시나 김창현이 나섰다가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한고은의 손바닥에 등을 맞아버렸다.

“싫으면 너 혼자 놀아!”

“아흐흐, 따가워 죽겠네! 말로 하지 왜 때려!”

“넌 맞아야 정신 차릴 거 같아서 그랬다! 왜?!”

그러면서 둘은 또다시 아웅다웅 거리는 데 한숨 쉬는 반장이나 강소라가 안 보이나 보다. 내가 나서줘야겠군.

“부부싸움은 나중에 하고, 그럼 3층부터 둘러보자.”

““누가 부부싸움이야?!””

부부싸움 맞네 뭐.

중앙 박물관은 말이 1층과 2층 3층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지만, 1층과 1.5층 2층으로 나눈 건물이다. 그리고 위상 세계가 등장해서 지하 1층을 추가해 위상 관을 만들었고.

끝에서 끝까지 대강 구경하면서 돌면 넉넉잡고 2시간이면 다 둘러볼 정도니까. 아마 오전에 지하 1층을 대충 둘러본 애들은 옆쪽 공원에 가서 놀겠지?

아이들과 함께 흰색을 테마 컬러로 잡고 깔끔한 대리석 타일로 마감한 박물관 내부 3층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조각 공예품이랑 사진하고 그림 같은 것들을 둘러봤다.

조민호나 여자애들은 감탄하면서 이런저런 설명도 읽고 그러지만, 나랑 김창현은 뒤에서 멀뚱거리면서 그런 여자애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야, 서하. 재밌냐?”

“별로…. 괜히 3층부터 돌아보자고 한 거 같다. 여자애들 구경하는 게 더 재밌는데?”

꺅꺅거리면서 수유리가 돌로 만든 불상 옆에서 표정이랑 손을 똑같이 만드니 한고은이랑 강소라는 죽어라 깔깔거리면서 사진 찍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박물관은 정숙이 매너 아니었던가?

“그렇지? 2년 전이랑 지금이랑 그다지 바뀐 게 없는 거 같은데, 뭐가 재밌다고 저렇게 열심히 보는 건지 원.”

“뭐, 평소에 못 느끼는 분위기긴 하지. 여자애들은 분위기를 많이 탄다고 하잖아.”

나랑 김창현이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프랑은 갑자기 빙글빙글 웃으며 날 보기 시작했다.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흐아아암~ 지루하다.”

깍지를 끼고 머리 뒤에 끼운 김창현은 입도 가리지 않고 늘어지게 하품을 했는데 그 모습을 한고은이 찌릿하고 노려보니 움찔해버렸다.

피식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석가모니? 부처의 모습을 조각한 석상들을 둘러보다가 연갈색 나무껍질 무늬의 바닥에 벽을 시커멓게 만들고 하얀 점을 물방울무늬로 가득 박아놓은 벽은, 전시물의 시선 집중을 위해 해놓은 장식인 거 같다.

…하지만 지하에 있는 위상 관에서 뭔가가 자꾸 내 신경을 자극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공간 지각이 거슬린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신경에 거슬리는 느낌에 눈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공간 지각으로 샅샅이 살펴보지만 박제된 이형종들이나 위상 세계에서 채집되는 광물, 식물 표본들과 몇몇 부서진 장비 조각들과 멀쩡한 장비들이 있었고, 위상관 중앙에……. 좀 기이한 무늬의 직사각형의 상자 외에는 별다른 것도 없고 딱히 느껴지는 게 없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살짝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심장을 느끼면서 딴 곳으로 이동하려는 애들을 손짓해서 세웠다.

“어? 왜?”

“나가자.”

수유리는 갑자기 나가자고 하는 내가 이해가 안 가는지 애들을 돌아보는데 강소라는 내 표정을 보더니 말없이 밖으로 걸어나갔고 김창현도 얼굴이 굳어지면서 걸어 나갔다.

“…서하말대로 일단 나가자.”

그 뒤를 나도 따라 나가니 나머지 애들도 뒤따라오는데 내 옆에 선 김창현이 날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한 거라도 나왔냐?”

내 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한고은 애들 말고도 옆에서 우리 대화에 신경 쓰던 다른 애들도 입을 다물고 날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니, 하지만 …뭔가 내 신경을 건드리는 느낌이야. 좀 불쾌한 기분이 들어.”

평소였다면 그냥 신경껐겠지만, 공간 지각이 이상하다고 알려주는데 무시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점점 심장이 크게 울렁거린다. 가슴이 싸늘해지는 감각이 불쾌하다.

애들에게는 자세히 말해주진 않았지만 내 말을 허투루 듣진 않는지 안색이 굳어지며 조금씩 걸음을 빨리해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내 이야기를 들은 다른 반, 다른 학년 애들도 덩달아 우리 뒤를 쫓아 나오는 게 보인다.

“어, 어떡해? 선생님께 전화해서 애들 피하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수유리는 반장다운 생각을 하고 말을 꺼냈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하지?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어요. 애들 다 물리세요?

“…감지로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니 애들도 다시 날 바라본다.

“하지만 뭔가 자꾸 신경을 건드려. 일단은 나가서 선생님들한테….”

순간.... 이무기를 만나기 전과 비슷한…. 더러운 기분이 들면서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한다. 피부에 소름이 돋고 기분이 굉장히 나빠지면서 이마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내 인상이 일그러지고 식은땀을 흐르는 걸 본 애들도 안색이 파리해지기 시작한다!

설마 진짜 최고위 이형종이라도 나타나려는 거야? 여긴 현실인데?

“아…. 씨발. 야! 달려!!”

내 말이 끝나자 애들이 일제히 현관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하고 나도 뒤따르며 공간 지각을 최대한 발휘하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봤다.

아까부터 불안한 안색으로 우리 뒤를 따라 나오던 애들도 내가 외치고 달리는 걸 보고 두말없이 내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는데 다른 반 아이들도 우릴 보더니 뭔가에 홀린 거처럼 뒤따라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우리 학교 아이들이 모여서 밖으로 달려나가니 딴 데서 우리 모습을 본 1학년과 2학년들도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다가, 같이 달려 나온다.

“허억! 후우! 훅! 야, 서하. 이제 괜찮은 거냐?!”

아침에 모였던 장소까지 달려 나왔더니 우리 뒤로 우리 학교 대부분의 애들이 따라 달려 나온 게 보인다.

공간 지각으로 숫자를 헤아려보니 419명인데, 박물관 건물 안에는 우리 학교 학생은 6명 정도만 남아있었다. 25명은 어디 있는 거지?

박물관 직원과 다른 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달려나간 우리를 보고 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머지 25명은 옆쪽 공원 여기저기에서 놀고 있는 게 보였다.

후우. 백 수십 명이 내 주변을 감싸는 형태로 여기저기 서 있었는데, 다들 날 보면서 내가 뭐라고 해주길 바라는 모습이 보였다.

“…위상 세계에서 무진장 크고 무시무시한 이형종을 본 적이 있어. 그 이형종을 보기 전에도 아까 느낀 더러운 기분이 들었었거든.”

“후아, 후아. 그, 그래도 다행이야. 우리가 달려 나오는 걸 보고 다른 반 애들이랑 후배들도 다 같이 뛰어온 거 같아.”

그런데 아이들에게 휩쓸려서 같이 나온 건지 학생 주임 선생님이 날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들도 이곳저곳에 계시는 게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이냐…. 넌 정서하?”

40대 중반에 꼬장꼬장해 보이는 학생 주임 선생님은 날 보더니 잠깐 놀랐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달려 나온 거냐? 저 아이들은 왜 너희를 따라 나온 거고?”

여기저기 퍼져서 이쪽을 바라보는 애들을 보며 나도 입을 열었다.

“제 능력이, 뭔가 굉장히 기분 나쁜 걸 감지했어요. 그래서 일단 피하려고 밖으로 달려 나온 건데, 다른 애들도 저희를 쫓아 달려 나온 거에요.”

내 말을 들은 학생 주임 선생님은 복잡한 심정으로 휴대폰을 꺼내고 내 쪽으로 귀를 기울이던 애들도 어딘가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

그우우우우웅….

“?!”

그 순간 땅의 울림? 아니, 뭔가의 신음 같은 게 박물관에서 울려 퍼지며 땅이 작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주위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며 아수라장이 되고 선생님들은 비명을 지르는 애들을 다독이면서 서둘러 도로 쪽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서, 서하야아?! 우, 우리도 도망가야 해. 어, 얼르은!”

“맞아! 너도 아직 미성년자잖아! 빨리 가자니깐!”

한고은과 수유리는 내 팔을 잡아당기는데,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 이형종의 위상력이 안 느껴지는 거지?

아까의 땅 울림과 신음 소리는 뭐였고?

다른 사람들은 이형종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지 황급히 박물관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는데 나만 뭔가에 홀린 듯 다리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내 모습에 프랑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와 박물관을 번갈아 보면서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고 강소라를 비롯한 다섯 아이들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일단 얘들부터 보내야겠다.

“너희 먼저 피해.”

“넌 어쩌구?!”

“난 인증기로 능력자 협회에 신고해야지. 선생님들이 지금 전화하는 거 같긴 한데, 내가 인증기로 신고하면 더 빨리 움직일지도 모르잖아.”

박물관 안에 남아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은 괴음이 퍼져나오는 순간 모두가 쓰러져버렸었다. 미처 빠져나오지 않은 애들 여섯도 화장실과 휴게실 곳곳에 쓰러져있는 게 보이고.

“그래. 서하 조심해라!”

김창현은 날 굳은 눈빛으로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안 갈려는 반장과 수유리의 팔을 잡아당겨 도로 쪽으로 달려갔다. 조민호도 김창현 뒤를 따라 나갔는데, 강소라 넌 안가냐?

“서하, 몸조심해~. 넌 아직 미성년 능력자잖아~?”

이 상황에서도 약간 긴장감이 섞인 나른한 목소리로 날 격려…한 거 맞지? 격려하고는 몸을 돌려 달려나갔다.

지잉.

빠르게 인증기를 켜서 긴급 통화 버튼을 눌러 능력자 연합 한국 지부에 연결을 시도했다.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 한국 총괄지부 상담원 윤효령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타임리버 소속 미성년 능력자 정서하에요. 지금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기묘한 굉음에 땅 울림이 일어나서 신고하려고 전화했어요.”

[…능력자 인증기 확인했습니다. 대외특무부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후우. 저 멀리서 수화기를 들고 있는 선생님들의 표정을 보니까 능력자 연합에 신고하려는데 통화 연결이 잘 안 되나 보다.

[능력자 연합 특무대의 김지훈 팀장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정서하 씨.]

저번 토요일에 화연이와 통화한 남자가 홀로그램 창에 떠올랐다. 날 보며 눈을 빛내는 모습을 보니 저쪽도 날 기억하고 있나 보다.

“지금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기이한 소음과 함께 땅 울림이 발생해서 신고차 연락드렸어요.”

[…신고 감사합니다. 박물관의 사건은 접수되어 현재 강동구에서 특무대가 출동했으며 인근 순찰 중이던 연합 직원들도 현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빠른데? 선생님 중에 누군가 먼저 신고한 건가?

[혹시 감지 능력으로 파악하신 것이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어떤 행동에도 미성년 능력자 보호법으로 정서하 씨의 신변에 불이익이 가는 것은 없을 것이며 현재 통화도 정식으로 기록되고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어쩐지 날 대하는 게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나한테 불이익이 안 온다고 하는데, 적당히 알려진 능력으로 알만한 부분만 골라내서 알려주기로 했다.

“10분 전쯤에 학교 야외 수업으로 중앙 박물관 3층에서 전시물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박물관에서 빠져나왔고요. 그 와중에 같은 학교 아이들이 절 보더니 같이 빠져나왔고, 방금 기이한 울음소리에 땅이 한번 크게 진동했었어요.”

[혹시 감지 능력에 뭔가 잡힌다거나 한 것은 없습니까?]

“아무것도 없…어?!”

계속 박물관 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졌던 사람들이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어슬렁거리면서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의 머리로 빨간색 실선 같은 게 지하의…. 저건, 보석상자인가? 아까 봤던 직사각형의 상자와 연결된 게 보인다. 마치 옷을 보관하면 어울릴 듯한 상자다.

저 빨간색은 내가 전에 봤던 레이저 사이트같이 궤도를 표현해주는 불투명한 빨간 선이 아니라, 마치 피를 보는듯한 불길한 빨간 색이었는데 흐늘거리듯이 출렁거리며 상자와 연결되어있었다.

그 선이 연결된 사람 중에는 우리 학교 애들도 포함되었는데, 눈동자가 돌아가서 흰자위만 드러난 채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몸을 좌우로 꺼덕이는게 정상으로는 안 보인다.

[정서하 씨? 무슨 일입니까?!]

“아, 자, 잘은 모르겠는데 쓰러진 사람들이 일어난…거 같아요. 비틀거리면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거 같은데, 위상력을 가진 이형종 같은 것들은 안보여요.”

[…설명 감사합니다. 현재 정서하 씨가 서 있는 장소는 위험한 것으로 판단되니 즉시 뒤로 물러나주십시오.]

“네.”

김지훈 팀장과 통화를 종료하고 뒤를 바라보니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소방차를 비롯해 119 응급차량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능력자 연합을 상징하는 수많은 성운이 모여서 이루는 창세의 기둥이 새겨진 연합의 트레일러가 속속히 도착한다. 그리고 트레일러들에서 내린 최하 5천에서 최대 25만 위상력의 능력자들이 거울 못이라 불리는 연못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정액정령이라니 orz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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