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11화 (111/517)

00111  여러 이야기.  =========================================================================

평소보다 더 뻗친 머리를 애써 손으로 누르는 강소라를 힐끔 봤더니 작은 목소리로 "앞이나 보시지~?" 하면서 투덜거렸다.

슬쩍 웃으면서 프랑을 보니 프랑은 옷을 입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지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애들이 보는 태블릿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출석을 부른 다음 아침 조례를 시작한 담임 선생님은 이것저것 잡다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반 애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할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주 금요일은 국립 중앙 박물관 야외학습이 있으니까 9시까지 현지 집합이야. 1학년 때 가봤을 테니 국립 중앙 박물관이 어디 있는지는 다들 알지?”

야외학습이라…. 별로 좋아하는 이벤트는 아닌데. 예전 같았으면 그 시간에 차라리 집에서 게임을 하고 노는 쪽이 더 좋았을 테니까. 지금은 온갖 시선 집중을 받고 있어서 별로고.

그 뒤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공부 열심히 하고 5월 중순에 있을 테스트에 주의하라는 이야기였다.

담임선생님이 나가고 다시 주변이 소란스러워질 때 인증기를 켜서 매너 모드를 하고 벽을 등졌다. 이러면 딴 애들이 내용을 못 보겠지.

내가 인증기를 키는걸 본 프랑은 교실 위를 날아서 내 뒤에 내려섰고 다른 아이들도 인증기 홀로그램 창을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필요는 엇ㅂ어.]

[그냥 학교 마치고 오도록 해.]

…오타난건가.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을 화연이 모습이 생각난다. 킥킥.

“완전 신기해! 이걸 보면 홀로그램이 상용화 된 거 같은데 왜 시중에 팔지는 않는 거지?”

김창현은 내용이 보고 싶은지 기웃기웃하고 있는데 직접 보지는 못하고 조민호도 눈이 동그래져서 내 왼팔을 살펴보고 있었다.

“비싸니까?”

내 말에 반장이랑 한고은도 다가오더니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보고 주변 아이들도 내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비싸길래? 1억 정도 해?”

몰리는 시선과 아직도 복도 쪽 창문에 달라붙어서 날 구경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인증기를 종료했다.

“10억.”

“““…….”””

순간 조용해진 교실에서 김창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과연…. 상용화 못 될 만 하네.”

점심시간이 되어서 한고은과 반장, 수유리와 김창현 조민호에 강소라까지 합세해서 교내 식당으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저 앞에서 쬐끄만 트윈테일 여자애가 다다다다 달려오는 게 보인다.

“…수리야. 학생회장이 저렇게 복도에서 달려도 돼?”

“안…되지 않을까?”

“조그만 게 고생한다야.”

“아하하하.”

“인기인은 좋겠네~.”

나는 물론이고 주변에 다른 아이들도 전력질주로 달리고 있는 이유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악, 하악! 서, 선배. 님! 부, 부디 식사는 저희 학생….”

“거절한다!”

내 앞에 도착해서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할딱이면서 힘겹게 말을 꺼내는 학생회장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오늘 추천 메뉴는 뭘 까나~?

“아앙! 서, 선배니이임~!”

덥썩!

어헉?! 이, 이 꼬맹이가 어딜 잡는 거야!

몸을 날려 내 허리를 와락 껴안는 이유미한테 속으로 당황했지만, 속마음과는 다르게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니 이유미는 두 다리가 질질 끌리면서 딸려오기 시작했다.

기이한 광경이라고 생각하는지 교실에서 나와 교내 식당으로 이동하려던 다른 반 애들도 흠칫 놀라면서 나랑 학생회장을 바라보는데, 저것들은 창피한지 저 뒤에 떨어져서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속에 입은 조끼 때문에 등 뒤에서 야릇한 느낌은커녕 무거워서 거치적거린다! 이 애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건가?!

잉잉거리면서 내 허리를 잡은 손을 풀지 않고 질질 끌려오는 학생회장이랑 내 모습이 재밌다고 여기는지 저것들이 휴대폰을 꺼내 막 찍고…. 늬들까지 찍는 거냐!!

“사진 찍지 마! 성질 뻗쳐서 증말! 찍지 마!”

주위를 돌아보면서 으르렁거리니 그제서야 황급히 휴대폰을 치우면서 도망가버린다. 꽁지에 불 붙은 닭처럼 도망가는 애들을 보고 있으려니 진짜….

“좀 놔라!”

억지로 손을 풀려다간 여기저기 만져버리고, 손을 주물럭거린다고 성희롱죄로 학생부에 끌려갈까 봐 손도 못 대겠다! 남자의 인권은 대체 어디까지 떨어진 거야!?

“저희 학생부에서 식사를 준비했어요! 그러니까 부디 와주시면 손을 놓을게요!”

“아 그래. 그럼 끝까지 같이 가자.”

“이이잉~!”

하는 수 없이 마나 모드를 켜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하니 학생회장은 점점 더 징징 짜기 시작했다!

“자꾸 징징거리면 들어서 던져버린다!”

그러자 바로 뚝 그치는 학생회장.

에이. 귀여운 여자애가 온몸으로 달라붙어 오는 상황이라면, 우리 학교 남자애 중에 싫어할 애들은 없겠지만, 나한텐 프랑이랑 화연이라는 100점 만점에 120점짜리 예비 신부들이 있잖아.

프랑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랑 이유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저것도 성희롱으로 봐야 하냐?”

“누가 누구한테?”

“으, 으음. 학생회장이 서하를? 아니면 학생회장을 서하가?”

“반장! 내가 성희롱 당하는 거잖아!”

성희롱의 주체를 뒤집어버려는 반장의 폭언에 뒤돌아보면서 버럭 소리치니까 반장은 "아하하~!" 하고 웃으면서 한고은의 뒤로 숨어버렸다.

내 말과 뒤쪽에 애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학생회장도 흠칫 하는 게 느껴진다. 그래. 성희롱이니까 제발 좀 놔라.

하지만 학생회장은 얼굴을 붉히면서 뒤쪽을 바라보며 엉뚱한 소릴 내뱉는다!

“이, 이건 성희롱이 아니에요! 보다 공격적인 헤드 헌팅의 일환이라구요!”

“그게 말이 되냐?!”

“…….”

이유미의 말에 어처구니없어 얼굴을 찡그렸더니 애들은 나랑 이유미를 보며 크게 웃어버렸다.

학생회장은 계단을 내려갈 때 팔을 놓길래 포기했나 싶었는데 3층 하늘 다리로 이동했더니 다시 허리에 태클을 걸었다.

“크억?!”

이, 이 꼬맹이가 한 번 밖에 못 써본 남자의 생명을?!

“하아….”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이유미를 허리에 달고 교내 식당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시선이 일제히 나한테 꽂힌다. 아니 내 허리에 메달려있는 트윈테일 소녀한테 꽂힌다!

하지만 무시하고 추천메뉴 식권을 뽑았더니 이유미는 결국 "히잉." 하면서 두 손을 놓고 나한테서 떨어져 버렸다. 휴우.

“몇 번을 말하지만, 학생부에 이름만 올려놓을 생각도 없고, 공부에 학교가 끝나면 타임리버에도 가야 해서 시간이 없어. 내 생각은 절대 안 변해.”

“저, 절대 안 변하는 건가요…?”

울상도 아니고 눈썹을 역팔자 모양으로 만들면서 억지로 불쌍한 표정을 만드는데, 그런 가짜 표정에 속아 넘어갈 성 싶냐?

“불쌍한 척 해봤자 소용없어. 안돼. 가입 안 해. 돌아가.”

“윽.”

학생회장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힘없이 교내 식당을 벗어났는데 어째서인지 내일도 달라붙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유리가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자리에 앉으며 안쓰럽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불쌍해….”

“달라붙으면 다 될 줄 아는 게 멍청한 거지!”

어쩐지 한고은은 학생회장이 마음에 안 드는지 신경질적으로 점심 추천메뉴인 안심 웰던 스테이크를 마구마구 조각내더니 팍팍 찍어 먹었다.

그 살기등등한 모습에 침을 꼴깍 삼킨 조민호는 한고은에게 물었다.

“고, 고은이는 학생회장을 싫어하는 거야?”

“싫어하지 않아! 하지만 저런 행동은 싫어!”

“남자 입장에서 저렇게 귀여운 여자애가 달라붙어 주면 기분은 좋지만 말야, 하기 싫은 걸 억지 부탁을 위해서라면 좀 거시기하지? 게다가 저렇게 달라붙어 봤자 서하는 절대 가입안 할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

수유리는 얌전하게 조금씩 스테이크를 잘라 먹다가 김창현의 말에 눈을 살짝 뜨면서 물었다.

“서하도 나랑 비슷한 성격 일 거 같거든? 난 귀찮아서 절대 학생회에 못 들어갈 거 같은데, 넌 어때?”

절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사실 가장 큰 이유가 그거거든. 의외로 김창현이 날카롭게 내 마음을 꿰뚫어본 거 같다.

“퍼센트로 나누라면 내 개인적인 사정과 귀찮음이 각각 절반씩 차지할 거야.”

그러자 김창현은 "거봐, 내 말이 맞지?" 하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내 손보다 조금 더 큰 스테이크를 순식간에 흡입해버리고 천천히 점심을 먹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요즘 아이돌은 누가 예쁘니, 에쉬반의 선아라가 새로운 화보를 찍었다던가 다른 나라에 중위 이형종이 나타나서 난리가 났다던가 이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중위 이형종에 난리가 났다고? 문득 2회차 초반에 잡았던 좀비 펭귄이 생각난다.

그건 중위 중에서도 최하급이었고 좀비라 그런지 움직임도 굼떠서 쉬웠던 건가? 그래도 팔 휘두르기를 생각해보면 한 대 맞았다간 큰일 났을 거 같다.

으음. 나라가 크면 클수록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별 평균 능력자 수, 이건 가장 많은 곳과 가장 적은 곳의 차이가 어마어마해서 별로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정식 국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나라들만 모아서 평균을 내보면 나라당 14만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근데 땅이 넓으면 능력자 한 명 당 지킬 곳이 늘어나게 되니까 일반 현대식 무기로 잡기 힘들어지는 중위급부터는 혼란이, 난리가 날 수도 있겠지. 그나마 강대국은 군사력으로 능력자가 도착할 때까지 저지할 수 있겠지만, 일본 같은 경우는 아직도 이형종이 나타날 때마다 난리라던데.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혼자 바람 쐬러 옥상으로 올라가려는데 교내 식당과 학교를 이어주는 3층 하늘 다리에 학생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피해갈까 생각해봤는데, 김창현의 말대로라면 계속 쫒아다닐테니 적당히 타이르거나 윽박질러서 더이상 못 오게 해야 할 거 같다.

귀여운 모습도 한 두 번이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데 여러 번 귀찮게 다가오면 짜증 날 테니까.

하늘 다리로 들어가니 역시나 학생회장이 나한테 달려들려고 하길래 손을 내밀어 회장의 머리를 잡고 달라붙지 못하게 막았다.

“으이?”

“그만 쫒아다녀. 100일이건 1,000일이건 네가 쫓아와도 학생회에 가입 안 할 거야. 안 한다고 했는데도 자꾸 귀찮게 하면 교내 건의사항으로 항의해버린다.”

“그….”

“그래도 안 되면 교장실에 찾아가서 교장 선생님께 건의할 거야.”

“윽….”

풀 죽은 학생회장은 그 날은 더는 접근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납득하지 못한 모습을 봐서는 또 다가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같이 놀자며 부르는 아이들한테 왼쪽 손목을 들어 보이며 일이 있다고 하고 택시를 타고 바로 타임리버 빌딩으로 향했다.

으음. 휴대폰도 들고 다녀야겠네. 오늘도 늦을 거 같아서 엄마한테 전화할려고 했더니 남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인증기를 켜지도 못하겠다.

타임리버 빌딩에 도착해서…. 생각해보니 어제 또 출입증을 안 받았다는걸 깨달았다.

“난 진짜 붕어 대가린가…. 출입증을 또 안 받았어.”

한숨을 푹 내쉬니 프랑은 쓰게 웃으면서 내 인증기를 가르켰다.

-화연 씨에게 전화해서 비서분들께 전해달라구 하세요.-

“응. 그러면 되겠네.”

빌딩 앞에서 인증기를 켜 화연이한테 전화를 했더니 금방 전화를 받았다.

[어디지?]

평범한 여성용 회색 수트를 입은 화연이는 집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밖에서 전화하는 날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내 모습을 힐끔 보지만 매너 모드 덕분에 내가 누구와 전화 중인지는 안보일 거다. 내 뒤에는 타임리버 빌딩의 조형물이 있고.

“지금 빌딩 앞인데, 출입증을 못 받아서 못 들어가고 있어.”

[아, 그렇군. 미안하다. 비서를 통해서 바로 내려보내 줄 테니 잠시 기다려.]

“응.”

직후 화연이는 바로 전화를 끊었고 나도 인증기를 끄면서 프랑에게 말했다.

“다행히 표정이 어둡진 않은 거 같아. 사망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네, 돌아가신 분은 안타깝지만요….-

프랑의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해서 머리만 긁적였다. 난 모르는 사람의 생사보다는 화연이의 기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번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었지?

으음…. 예전이었다면 속으로나마 동정이라던가 애도를 표시했을 거 같은데, 이게 능력자가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가?

인간성이 조금 메마른 걸지도….

프랑이랑 화연이 앞에서 말을 꺼내봐야겠다.

잠시 기다리니 비서 누나가 종종걸음으로 빌딩을 나오면서 여기저기 시선을 돌리는 게 보였다. 나도 발걸음을 옮겨 그쪽으로 다가갔더니 비서 누나 역시 날 발견하고는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 이 비서 누나는 아닌 척하면서 내 몸을 살펴본 누나네.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 있던 명함 사이즈의 황금색 카드 한 장을 나한테 건내줬는데, 받아서 보니 내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고급스런 가죽으로 된 끈이 달린 카드는 뒷면에는 바코드가 찍혀있고 그 밑에 내 이름 세 글자가 찍혀있었다.

“보스께서 기다리십니다. 20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 말을 남기고서 비서 누나는 바로 돌아서 빌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목에 출입증을 걸고서 빌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입증까지 받으니 이제서야 타임리버의 멤버가 된 기분이네.

나는 바로 능력자용 엘리베이터에 타서 20층까지 쭉 올라갔다. 그사이 화연이는 드레스 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오늘은 은색 실크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색 버튼 타이트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다리는 스타킹은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새하얗고 매끄러운 종아리가 보여서 역시 아름답다는 생각만 든다.

화연이의 예쁜 모습을 감상하면서 벨을 눌렀더니 찌르르륵 하는 소리가 여기에서도 들렸다. 일요일에 고친다고 하더니 그새 바꿨나 보다.

화연이는 출입문 앞에서 옷차림을 잠시 내려다보고 맵시를 정돈하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날 보고 뭔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칭찬해주길 바라는 건가? 어쩐지 웃음이 날 만큼 귀여운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는 감정을 억지로 참으면서 시선을 돌려 말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아? …으음. 아니, 별건 아니다. 저번 주에 있었던 에너지 이터 관련 업무 처리 사항도 알려줘야 하고 어제 있었던 능력자 협회 간의 협의도 알려줘야 하고….”

그리고 소파로 걸어가니 내 반응에 화연이는 눈에 띄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힘없니 내 뒤를 따라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네.

프랑은 이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앞으로 날아와서 내 표정을 보고 눈을 마주쳤다가 -아아, 서하는 정말 장난꾸러기에요.- 라고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그렇지?

“그건 별거 아닌 게 아니잖아?”

“아? 그, 그래…. 벼, 별거 아닌 게 아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반응도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그제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는지 얼굴을 조금 붉히면서 발걸음을 조금 빠르게 해서 내 옆으로 다가오려고 하길래 나도 조금 걷는 속도를 빨리했다.

“…!”

그러자 화연이는 엄마한테 먹을 걸 뺏긴 아기의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자기 옷차림을 내려다보며 속삭이듯이 중얼거렸는데 공간 지각으로 화연이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어서 독순술로 읽을 수 있었다.

-코, 코디를 잘못한 건가…. 서하의 취향이 아닌 거 같군.-

크윽. 귀여워서 못겼디겠어!

하지만 빨개진 화연이의 얼굴을 보려면 참아야 해!

“그래서? 에너지 이터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거야?”

소파에 도착했지만, 일부러 앉지 않고 화연의 반대편, 그러니까 창밖이랑 내가 반쯤 부셔놓은 한쪽 벽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자, 화낼 타이밍이야! 화연이가 화내야 이벤트가 완성된다고!

“…! 그, 에너지 이터의 형질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하급 이형종이지만 위상력을 탐하는 성질도 사라졌고, 인간에게 적대적인 반응도 완전히 사라져 지금은 연구소의 애완동물이 된 상황이다.”

어? 에너지 이터 형질이 완전히 바꼈다고?

“그거, 내가 먹인 TP 때문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거 같다. 네 TP는 어떤 능력인지 알 수도 없고 연구도 못 하는 상황이니까. …으음. 현재는 연구소에서 이런저런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지내고 있다고…. 해.

“이형종이라면 인간이나 능력자한테 적대적이어야 할 텐데 애완동물이라니. 상상이 안 가는걸”

“해부…해서 확인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살려둬서 꾸준히 분석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에너지 이터도 이형종화 되기 전에는 사람의 손에서 키워지던 녀석이었을 테니까.”

으음. 처음의 시무룩한 모습은 거의 사라졌는데 조금씩 화난다는 표정만 짓고 화를 내진 않네. 목소리도 조금씩 띄엄띄엄 떨리고.

“그런가. 다시 한 번 보고 싶은걸.”

“그래도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에너지 이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니까.”

“응. 그럼 어제 협의에 관한 이야기는 뭐야?”

“…돌아봐 줘.”

“어?”

“왜 날 봐주지 않는 거지? 옷이 이상하다면 갈아입고 올 테니 날 보면서 이야기해줘….”

화연이는 여전히 돌아서 있는 내 모습에 조금 울먹일 거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데, 이런 반응은 생각 못 했다.

예의없이 뭐하는거냐고 발칵 화를 냈다면 나도 마주 화내면서 너무 예뻐서 못보겠다고 하려고 했거든. 그럼 그 말을 들은 화연이는 얼굴이 폭발할것처럼 새빨게졌겠지? 그 모습을 난 능글맞게 웃으면서 구경한다는 작전이었는데.

좋아. 작전 변경이다.

“싫어.”

“뭐? 왜, 왜지? 내 모습이 보기 싫을 만큼 마음에 안 드는 건가?”

화연이는 내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정말 크게 실망해버렸다. 표정마저 울상이 됐는데 저 모습도 귀엽다!

“…보고 있으려니 눈아프단말야!”

“뭐? 무슨….”

“화연이가 너무 눈부시게 예뻐서 마주 못 보겠다고!”

“…큭!”

그제야 자기 모습이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는지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면서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왜 그렇게 이쁘게 차려입어서는 마주 볼 수도 없게 만들고 진짜 투덜투덜.”

“으읏!”

노골적으로 장난끼를 가득 채워서 말하는데도 화연이는 눈치를 못 챘는지 내 말에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좋아하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몸짓으로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푸훗.-

“무, 무슨 말을, …!”

그러면서 실실 웃으면서 화연이를 돌아봤더니 그제서야 장난이라는걸 눈치챘는지 다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화를 낸다.

“아아 정말! 서하는 장난기가 더 심해졌다!”

“아하하. 그럴 땐 나한테 안기면서 말해야지. 에이, 화연이는 아직 연애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윽!”

“코디를 잘못한 건가…. 서하의 취향이 아닌 거 같군, 이라니. 화연이는 너무 귀엽?!”

“므극! 그만해라!”

화연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혼자 중얼거린 걸 말했더니 번개같이 다가오더니 내 입을 막더니 창피해 죽겠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으면서 억눌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빙글거리면서 화연이의 손을 잡고 내렸더니 여전히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모습에 그냥 허리를 끌어안아 버렸다.

“진짜 예뻐. 검은색에 은색과 흰색이라니. 화연이 아니면 소화하지 못할 색 조합일 거야.”

신발 때문에 나보다 10cm는 더 큰 화연이의 허리를 끌어당겨 아랫배를 밀착하면서 올려다보니 화연이는 빨개진 얼굴로 날 흘겨보다가 내 입술을 살짝 훔쳤다.

“서하 너도 시하처럼 심술궂다.”

“남매는 닮는다잖아.”

그리고 내가 화연이의 입술을 훔쳐버렸다. 아주 진하게.

============================ 작품 후기 ============================

넵, 저는 씬 고자입니다.

3일째 투베 1위라니, 드릴건 연참 한번뿐이네요 ㅠ.ㅠ

오늘밤 자정 넘어 한 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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