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8 날 강하게 만들어 줄 장비. =========================================================================
잠시 공간 지각으로 담장 안을 살펴보니 무척이나 넓었다. 아니 넓다는 말도 부족할 거 같아!
정원을 합쳐서 1만 평은 되지 않을까…. 7개 동 아파트 단지 하나가 들어갈 넓이다.
-예쁜 집이네요.-
프랑도 공중으로 조금 높이 떠올라 주변을 살펴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주택도 법으로 못 짓게 되어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네.
열심히 공간 지각으로 정원을 살펴보고 서구식으로 지어진 저택 내부를 보니 8명이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원에는 바위와 돌무더기를 쌓아 강처럼 만든 순환식 연못과 그 속에서 헤엄치는 비단잉어들도 보이고 한쪽에 20m 정도 되는 풀장과 그 옆으로 테니스 코트도 보인다. 더군다나 지하에는 3천 평에 가까운 각종 운동 시설이 완비된 높이 10m의 수련장도 보인다. 저게 화연이가 말한 수련장이겠지?
…. 저러니까 허가받기 힘들었지!
운동 시설도 한쪽에만 가지런히 놓여있어서 무진장 넓은 공간이 비어있었다.
우와…. 이런 집을 지을 정도라니, 여사님은 한국 제일의 사학재단을 운영하시니까 돈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인가보다.
이윽고 정원 한쪽에 난 길을 따라 여러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있는 다층 순환식 기계 주차건물에 들어가더니 리무진이 멈추고 문이 열렸다.
주차 건물을 훑어보니 메르세데스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대형차에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도 있고 BMW 엠블렘이 박힌 차들도 있었는데 죄다 외제 고급 차들뿐이다.
“내리지.”
품에서 떨어져 나가는 포근한 육체에 입맛을 다시면서 뒤를 따라 기계식 주차장을 나왔더니 기이이잉 하는 기계음이 들리면서 우리가 타고 왔던 리무진이 위층으로 올라가더니 빈 곳이 주차 건물 1층으로 내려오는 게 보인다.
집에 이런 설비까지 갖추다니….
차소영은 언제 챙겼는지 커다란 007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내부를 보니 역시나 조끼 형태의 옷 한 벌이 들어있었고 위상력이 가방 안에 가득 차있는 게 보인다.
에구, 저 아까운 위상력들. 근데 신기하게 위상력이 가방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네?
주차건물을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신경을 많이 쓴 거처럼 넓고 보기 좋은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ㄴ자 모양의 3층 주택은 녹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유선형의 모양이라 동글동글한 느낌의 정원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수련장을 만들고…. 유지비랑 세금이 얼마나 많이 나갈까?
화연이와 차소영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니 빅토리아 시대의 메이드복을 조금 개량해 보기 좋게 단정한 모습으로 만든 옷을 입은 20대의 메이드 누나 둘이 우리를 보고 조용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노년의…. 집사야? 우왕, 흰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검은색 베스트, 타이트하고 세련된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서더니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히면서 화연이한테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올백으로 단정하게 넘긴 백발의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정정 그 자체였다.
“오랜만이에요 할아범. 편찮은 곳은 없나요?”
어? 저렇게 부드러운 목소리와 표정의 화연이는 처음 본다! 나한테도 저렇게 대해주지 않는데…. 집사 할아버지는 주름진 얼굴로 부드러운 웃음을 그리며 화연이의 말에 대답했다.
“아가씨와 마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올해 설에도 선물을 보내주셨지 않습니까.”
“할아범이 아프거나 다치면 곤란하니까요.”
“하하하.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못 보던 청년이군요. 혹시 아가씨의 남자친구입니까?”
화연이는 그냥 웃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는데 집사 할아버지도 딱히 대답을 들으려 하진 않았는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차소영에게 마주 묵례를 하고 날 보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택의 관리를 책임진 한주한입니다. 편히 한 집사라고 부르십시오.”
으어, 나한테 왜 이렇게 공손하게 대하시는 거지? 정말 부드럽고 깔끔한 움직임으로 다가와서 나한테 허리를 숙이는데 나도 당황해서 마주 숙이면서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정서하에요.”
“아가씨께서 남자분을 모셔온 것은 처음이신데….”
할아버지는 그러면서 다 알고 있다는 미소를 짓는다. 화연이 누나도 그쯤 되니 보기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면서 끼어들었다.
“할아범? 우리는 수련장에 들어갈 테니 식사 준비가 다 되면 불러주세요.”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집사 할아버지는 두 메이드 누나를 데리고 저택 한쪽으로 가버렸고 화연이는 앞장서서 지하로 내려가는 중앙 계단으로 이동했다.
“저 집사 할아버지가 누나한테 아빠 같은 사람이야?”
“아, 응. 아버지나 다름없어. 어머니가 안 계실 때 유일하게 날 보듬어주신 분이니까.”
“그런가~. 나도 기억해둬야겠다. 혹시 아픈데 있, 으면 울 아빠도 봐줄 수 있으니까 언제라도 말해. 어흠.”
뒤에 차소영이 있었지! 큰일 날뻔했네. 사람이 너무 조용해서 깜빡하고 능력을 말할 뻔했다! 황급히 말을 돌렸는데 차소영은 그냥 무표정 그대로라서…. 들켰는지 의심하는지 알 수가 없네.
“그래. 그땐 잘 부탁해.”
화연이는 내가 뭘 말하려 한 건지 눈치챘는지 화사하게 웃으면서 내 손을 잡고 1층의 ㄴ자 모양의 저택에서 꺾어진 부분에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슬쩍 표정을 살펴보니 살며시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꽤 기뻐 보인다.
화연이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저택 내부를 둘러보니 집안도 원목의 진갈색과 대리석의 유백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포근하고 조금은 차가운 느낌이 풍겨서 우리나라가 아니라 외국의 집안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특히 바닥도 대리석 타일이라 겨울에는 좀 마음이 추울 거 같은 곳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에 붙어있었는데 대놓고 만들어놓은 걸 보면 딱히 도둑대비 같은 건 안 하는 건가?
조금 긴 계단을 걸어 내려가니 약간 불투명한 강화 유리가 앞을 막고 있었고, 그 너머로 수련장의 실루엣이 보였다.
옆에는 지문으로 열고 닫히는 문이 있었는데 화연이가 네모난 검은색 액정에 손을 갖다 대니 액정에서 녹색 빛이 한번 깜빡이고는 푸시식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넓다! 진짜 넓어!”
수련장 안으로 들어가서 주변을 살펴보니 어지간한 고등학교 전체 넓이만 한 데다, 수련장에 달린 문 안쪽에는 30명은 동시에 쓸 수 있는 샤워실도 있고 수면실도 달려있었다.
신기한 거는 반대편의 벽 안에는 각종 보존식과 모포 등이 산처럼 쌓여있다는 거다.
새하얀 공간은 직사각형인 모양이었는데 천장은 아치형으로 각종 구조물이 천장을 받치는 모양새였고 지름 5m의 새하얀 사각형 기둥 6개가 두 줄로 30m씩 간격마다 세워져 있는 모습이 마치 고대 그리스의 신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혹시 유사시를 대비한 피난소나 벙커 같은 역할도 하는 건가?
“서하. 이리 와.”
공간 지각으로 본 거랑 육안으로 보는 것과의 차이점을 느끼고 있으려니 날 부르는 화연이에게 다가갔다.
화연이는 차소영에게 가방을 건네받아 바닥에 내려놓고 비밀번호를 맞춰서 열었다. 그리고, 열린 가방에서 한여름 밤 연못에서 춤추는 반딧불들처럼 공기 중으로 퍼져나오는 물빛 위상력이 눈에 보인다.
죽은 이형종에게서 물결처럼 퍼져나오는 거랑은 또 다르게 아름다웠다.
가방 안에는 그야말로 빛을 흡수하는듯한 새카만 색의 민소매 목칼라 조끼가 얌전하게 놓여있었는데, 그 조끼에서 물빛이 퍼져나오고 있었다.
“이게 그거야?”
“그래. 상의를 벗어봐.”
화연이는 조끼를 들어서 보여주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조끼는 양복 안에 겹쳐있는 조끼 같은 게 아니라 목깃까지 있는 민소매 조끼였는데, 안감에는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보다 조금 작은 위상석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희미한 물색의 위상석의 갯수를 세보니 80개인데 각각 300 ~ 500 TP 정도 남은 위상석들이었다.
TP 총량을 헤아려보니 36,000 TP 정도인 거 같다. 360억짜리 옷인가? 아니, 상위급 위상석이니까 프리미엄이랄까, 아무튼 좀 더 비쌀 거 같다.
잠시 조끼를 만져보니 두께는 3cm 정도인데,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속옷보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질긴 게, 착용감도 좋을 거 같다.
교복 마이를 벗고 넥타이도 푼 다음 셔츠를 벗었더니, 화연이 슬쩍 움직여서 차소영의 시선을 몸으로 가로막는 게 보였다. 차소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화연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킥킥. 내 맨몸을 보여주기 싫다는 건가?
프랑도 옆에 서서는 이제 눈을 가리는 척하지도 않고 내 벗은 상체를 침을 꼴깍 삼키면서 유심히 바라본다.
옷을 다 벗고 은근한 눈빛으로 내 벗은 상체를 훑어보는 화연이한테 조끼를 건네 받…으려고 했더니 조끼를 쥔 손을 살짝 물리면서 말했다.
“돌아서라.”
…그냥 입혀준다고 하면 되지 츤츤거리기는. 얼굴이 붉어진 게 다 보인단말야.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화연이 말대로 뒤돌아서니 조심스러운 손길로 조끼를 입혀주면서, 내 팔뚝이며 어깨랑 슬쩍슬쩍 옆구리도 만지는 게 느껴진다.
왠지 추행당하는 기분인데? 내 피부를 더듬는 화연이의 손길이 야릇하다.
차소영은 팔짱을 끼고 가늘게 뜬 눈으로 그런 화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화연이는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는 거 같다.
아무튼, 화연이가 입혀주는 조끼를 걸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더니 맨살에 위상석이 닿는 느낌이 조금 묘하다. 거기다 신축성도 뛰어난지 움직이는데 전혀 걸리는 게 없고, 위상석 80개의 무게가 조금 나가지만, 마나 모드를 켜면 전혀 상관없어지겠지?
“이거 좋다.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도 않고, 무게가 조금 있지만 이 정도는 별문제 안될 테고. 위에 셔츠 입고 교복 입어도 표시가 안나겠어.”
이리저리 만져보고 당겨보면서 신축성에 감탄했다 거기다 이대로 입고 나가도 괜찮을 만큼 매끄럽고 각을 잡은 다음 날렵하게 밑단을 마무리해놔서 일상생활용 옷으로 입어도 충분하겠는데?
“포스피드 치타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땀 흡수와 배출도 뛰어나다. 씻을 때는 그냥 물에 헹궈도 충분해.”
“포스피드 치타? 이형종이야?”
“상위 이형종이다.”
흐억?! 상위 이형종?!
“포스피드 치타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 방어 구는 근거리에서 저격용 라이플에 맞아도 관통하지 못해. 도검류에는 흠집도 나지 않고.”
으어어…. 절삭력과 충격력을 막는 구조는 다른 걸로 아는데, 둘 다 막아진다고? 역시 이형종 가죽인가….
펑!
하는데 화연이가 내 등을 조금 세게 후려쳤다!
“억?!”
“어때?”
충격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서너 걸음 움직였다가 화연이를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어떠냐니?
“위상석이 피부를 누르거나 하진 않아?”
“어? 그러고 보니까, 맞았는데 그냥 충격만 있고 위상석이 찌르는 느낌 같은 게 없네?”
“포스피드 치타의 가죽은 충격을 받으면 순간 굳어지는 순간경화기능이 있으니까, 위상석이 뭉개져서 부서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물론 눌리면서 네 피부를 압박하는 일도 없고.”
아하. 그거 때문에 일부러 시험해본 거구나.
“난 또 어제 엉덩이를 후려친 복수라도 한 건가 했네. 이거, 무진장 비싸겠다. 위상석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가격 아냐?”
내 말에 화연이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자기 뒤에 서 있는 차소영을 돌아보려다가 애써 몸을 굳히며 나에게 말했다.
이미 차소영은 슬쩍 미소를 짓고 있거든?
“조금 비싸지만, 옷 한 벌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내 몫으로 분배된 걸 가져다 만든 거라 재료비는 들지 않았어. 위상석도 자투리들만 모은 거라 프리미엄도 거의 없이 국제 시장 환율 그대로 사들였으니까 가공비에 위상석까지 다 해서 1,000억 정도야.”
천 억짜리 조끼라니, 손이 후덜덜 떨린다.
-아아. 이걸 입으면, 심장과 내부 장기를 보호할 수 있으니 즉사할 위험성은 굉장히 낮아지겠어요!-
나는 프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끼를 내려다봤다.
근데 슬금슬금 퍼져나오는 물빛 위상력이 조금 아깝다. 대충 위상석 한 개에 1시간당 0.5씩 위상력이 흘러나오고 그중에서 0.3만 몸으로 흡수되는 거 같은데, 아깝잖아. 36,000 중에 21,600 정도만 흡수한다니….
뭐 나중에 시간 봐서 TP로 충전시켜버리면 상관없으려나?
상위급 위상력은 299,999가 최대치일 텐데 3배라면 899,997까지 충전 될 거다. 이걸 80개 전부 다 하면 9천억, 프리미엄까지 포함해서 판다면 1조 5천억? 거기에 80개면 …120조?
…….
상상도 가지 않는 금액인데…. 현실이라서 대충 4~5시간마다 위상력이 가득 차니까 5번 충전할 수 있다고 치면 하루에 19,000 TP. 47일마다 1개씩 다 충전할 수 있는 건가?
으음.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데, 어디 보자… 하루에 위상력이 576씩 오르고 37일이면 D 클래스에 오르겠네. 위상력이 25,000이 되면 하루에 12만5천. 5일이면 하나 가득 채우겠네.
좋았어!
…아. 90만까지는 못 채우겠다. 3배까지 가득 채웠다간 내 능력이 들통날 거야. 그러니까 아쉽지만 20만 언저리까지만 채워서 팔아야지. 그래도 1개당 3천500억 정도니까 80개면 28조나 된다!
파는 건…. 프랑이랑 상의해보고 화연이한테 알려줘야지. 다 채워서 화연이한테 주면 꽤 좋아할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위상력이 다 빠진 위상석은 어떻게 되지?
“근데 위상력이 다 빠진 위상석은 어떻게 돼?”
“그냥 다 빠진 그대로다. 능력자 연합과 여러 연구소에서 다시 충전할 방법을 찾아봤지만 찾지 못해서 폐기하는 중이지.”
…폐기하는 고위 위상석을 몰래 챙겨서 내가 충전하면 안될려나? 프랑을 바라보니 프랑도 조금 고민하는 표정이 된다.
화연이는 내가 갑자기 시선을 돌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니까, 내 시선이 향하는 곳에 프랑이 있다는 걸 눈치챘나 보다.
“그리고, 이거.”
화연이는 주머니에서 달걀 모양의 주먹만 한 고풍스러운 세공이 된 펜던트 알과 목줄을 꺼냈다.
“어?”
“여기에 네 부적을 넣고 다녀.”
아. 전에 만든다고 했던 게 이건가보다.
“이건 이렇게, 하면 윗부분이 열리니까 여기에 그걸 집어넣고 이렇게, 닫으면 돼.”
펜던트 알은 우유색 달걀의 뾰족한 부분이 위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정방향으로, 중심 부분에 가로로 금색 실이 둘러져있고 방사형으로 4줄의 금색 실이 세로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달걀의 윗부분 동그란 홈 두 개와 아래쪽 홈 두 개, 4개를 동시에 엄지와 검지로 꾹 누르니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로로 새겨진 금실이 반으로 나뉘면서 입을 벌리듯이 쪼개졌다.
“오오. 멋지다!”
“그리고 펜던트 줄도 위상 세계의 위상력을 머금은 금속들을 합친 합금으로 만든 거라 과격한 움직임에도 어지간해서는 안끊어질꺼야. 하지만 목이 졸리거나 하는 때를 대비해서, 일정 이상 힘에는 끊어지니까 유의해.”
“응! 진짜 고마워!!”
정말 이것저것 챙겨주는 화연이의 마음이 기뻐서 콱 끌어안아 줬더니 순간 몸을 경직시키면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마침 차소영도 화연이의 몸에 가려져 영혼석이 보이지 않으니 바로 주머니에서 영혼석을 꺼내 담으려고 하는데 프랑이 내 행동을 저지했다.
-서하?-
-어?-
-그, 주머니도 함께 넣어주시면 안 되나요?-
-엥? 왜? 주머니도 꾀죄죄해졌잖아. 새 펜던트 알인데 깨끗하게 넣어두는 게 좋지 않아?-
-…그 주머니는 서하가 직접 만들어 준 영혼석의 첫 번째 집인걸요….-
프랑은 그러면서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돌리고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엉터리 손놀림으로 호주머니를 뜯어서 엉성하게 만들어 준건데 이걸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건가. 프랑의 마음도 새삼 내 마음에 닿아 가슴이 설렌다.
-…응 알았어.-
잠시 굳었던 몸이 풀리는지 빨개진 얼굴로 살짝 한숨을 내쉬다가 내가 입을 뻥긋거리는걸 화연이는 유심히 내 입을 바라보는데, 아무래도 독순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 같지?
목 주머니를 풀어서 입구를 벌린 다음 480짜리 중하위급 위상석 두 개를 빼서 화연이한테 건네줬다.
“자, 이거.”
“응? 뭐…지? 위상석?”
“저번 2회차 때 중하위급 이형종을 잡고 얻은 거야. 둘 다 합하면 900 TP는 넘으니까, 필요한 곳에 써.”
화연이는 내가 건네준 위상석을 두 손으로 받아들더니 놀란 눈으로 나와 위상석을 번갈아 본다.
목 끈은 힘을 줘서 끊어어버리고 주머니만 따로 풀어낸 다음 주머니에 영혼석을 넣은 채 펜던트 알에 집어넣었다.
딸칵.
“와. 크기가 딱 맞는걸?”
차소영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살짝 움직이지만, 일부러 안 보여주는 거라 생각하는지 억지로 어깨너머로 보려고 하진 않았다.
소피아라면 개방정을 떨면서 보려고 바동거렸겠지.
조금 차가운 펜던트 줄을 목에 걸어보니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리고 프랑 말대로 주머니 통째로 펜던트 알에 넣었더니 완충재 효과까지 나면서 살짝 흔들어봐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고마워!”
다시 한 번 내가 준 위상석을 소중하게 쥐고 있는 화연을 덮치듯이 달려들어 와락 껴안았다.
“흡?!”
기습적으로 끌어안아 버리니 억눌린 신음을 내면서 눈이 화등잔처럼 커진다.
화연의 얼굴을 두 손으로 뺨을 감싸고 입술을 지긋이 바라보니 얼굴을 붉히면서 살짝 내 입술에 키스를 해줬다.
조금 진한 키스를 나누고 싶었지만, 차소영이 있으니 참아야지.
나는 교복을 다시 입고 자리에 앉고 화연이와 차소영은 식사 전에 몸을 한번 풀자는 차소영의 요청으로 서로 대련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차소영이 몸을 푸는 사이 화연이는 근처에 주저앉아있는 날 힐끔거리면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푼 차소영과 마주했는데, 주로 차소영이 공격하고 화연은 가만히 서서 막거나 흘리고 피하면서 차소영에게 체술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와, 차소영도 대단하네. 속성 능력자면서 되게 빠르게 움직이는 데다 몸놀림이 굉장히 가볍고 날렵하다.
유술도 익힌 거 같은데 내가 마나 모드 켜서 달려들어도 못 이길 거 같아…….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주먹과 발을 주고받는데 차소영이 주먹을 내지른 순간 화연이는 잔상을 남기며 차소영의 품으로 들어가 복부에 손바닥으로 끊어치기를 넣었다!
“흐윽!”
펑하는 소리와 함께 차소영도 숨막히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 굴러버렸다.
어제의 내가 생각난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바로 뒤로 굴러 일어나더니 태권도의 겨루기 준비자세를 취하면서 신중하게 화연이한테 접근한다.
으음. 화연이처럼 흘리고 받아치기를 잘하는 사람한테는 저렇게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좋은가?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차소영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상체를 숙이고 화연이의 하체로 접근하는데 마치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이다.
어느새 가속을 켜고 화연이와 차소영의 겨루기를 보고 있었는데, 이 상태로도 따라가기 벅찰 만큼 두 사람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화연이는 나에게 했던 것 처럼 두 손으로 차소영의 어깨를 잡아가며 누르려 하는데 차소영은 갑자기 몸을 180도 회전시키더니 화연의 팔을 잡고서 관절기로 암바를 걸려고 하지만, 화연은 관절이 없는 듯이 팔을 빙글 돌리더니 금세 빠져나와 버린다.
저거 방금 팔이 반대로 꺽이는거 같았는데? 순식간에 휘릭하고 빠져나와 버리네.
그러다가 다시 붙어서 서로 팔을 잡고 흘리기를 반복하다가 화연이 팔을 털어 흘리는 순간 차소영이 뱀처럼 화연의 하체를 몸으로 휘감으며 넘어트리더니 다시 보스턴 크랩을 걸어 화연의 두 다리를 잡아 올렸다.
“꿀꺽.”
뒤로 잡아 올려진 다리 사이로 도끼 자국이 보인다 싶더니 클로버 리프로 들어가려는지 화연이의 다리를 꼬으려하는데 화연은 엎드린 채 두 팔 힘으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물구나무를 서는 것과 동시에 다리를 풍차처럼 돌려버리니까 손이 풀리며 다리를 놓쳐버린 차소영은 화연의 늘씬한 두 다리에 걷어차여 나가떨어져 버렸다.
바로 일어서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화연에게 옆차기를 먹이려 하지만 화연역시 예상했다는 듯이 넘어질 듯 몸을 기울이면서 오른쪽 팔뚝으로 슬쩍 다리를 흘리며 차소영의 디딤발을 후려 차버렸다!
차소영 역시 넘어지면서 두 손을 바닥에 짚고 옆을 구르며 다리를 휘둘러 접근하려는 화연을 견제했다.
“대단해. 온갖 무술이 다 나오는 거 같아.”
내 옆에 앉아 같이 구경하던 프랑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몸을 들썩이는데, 기사 시절의 훈련이 생각나는지 꽤나 흥분한 모습이다.
차소영은 거칠어진 숨결을 다스리며 다시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갑자기 화연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태권도의 굴러차기로 흉흉하게 차소영의 머리와 가슴을 노리며 채찍처럼 다리를 휘두르는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진짜 섬뜩하다.
차소영 역시 태권도의 자세로 올려 막고 숙여서 피하더니 어깨로 화연이의 명치를 들이 받…았는데, 일부러 받아준 건가? 저걸 맞다니?
역시 맞는 순간 차소영의 뒷목을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더니 뒤로 넘어지며 발로는 차소영의 골반을 밀어 올리며 메쳐버렸다!
미친!
쾅! 소리를 내면서 나가떨어진 차소영을 동시에 화연이 덮치듯 상체를 몸으로 누르더니 왼팔로 차소영의 목을 감고, 오른팔은 차소영의 왼팔 꺾어 머리 뒤로 돌려 봉인하고 그대로 목을 꺾으며 조르기 시작한다!
저건, 프로레슬링 기술이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진짜 작살내버릴듯이 목을 조이는데 공간 감지는 두 여성의 도끼 자국이나 도드라지는 몸 근육을 주시한다.
거기다 출렁거리는 가슴과 불끈거리는 허벅지에 화연이의 상기된 얼굴과 차소영의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보여주며 에로티시즘을 느끼게 만들었다.
“끄…윽!”
차소영은 숨도 막히고 나가떨어지는 고통에 머리가 어지러운지 두 다리를 버둥거리고 어떻게든 멀쩡한 오른팔을 화연의 목이나 등을 치거나 얼굴을 밀어 떼어내려 하지만, 화연은 다리로 바닥을 밀며 차소영의 몸을 세로로 눕히고 체중을 실어 깔아뭉개니 곧 차소영은 얼굴이 파래지면서 오른팔을 힘겹게 움직이지만…. 결국 부르르 떨면서 축 늘어졌다.
기절한 건가?
“후. 점점 기술이 좋아지는데.”
“차소영 부대장은 괜찮은 거야?”
화연은 별달리 땀도 안 흘리고 멀쩡하게 일어섰는데 차소영은 바닥에 축 늘어진 채 파리한 얼굴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땀도 줄줄 흘려서 사타구니랑 가슴과 겨드랑이가 땀에 젖어있기도 하고….
사타구니는…. 실례한 건가?
“아아.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야. 경동맥을 눌러 기절시킨 거니까.”
“그거 위험하잖아?!”
아빠가 의사라서 잘 안단말야! 뇌에 피가 안가면 뇌 손상도 올 수 있댔는데?!
“위험할 만큼 공격할 이유가 없잖아?”
“…아. 그렇지 참.”
“그보다 버프를 부탁해.”
버프? 눈에 TP를 발라달란 거지? 화연이는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얼굴을 가까이했다.
============================ 작품 후기 ============================
우르강님을 비롯해 전투 파트를 원하시는 분들과 철의노래님을 비롯해 일상 파트를 좋아하시는 분, 그리고 둘 다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물론 조용히 이야기를 봐 주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재미있게 보시는 분들께는 기쁘고 지루한 마음이 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
앞으로도 이런 일상 파트만 나오는건 아닙니다. 분류로 따지면 반반 정도 되려나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추천이 늘어나면 더 기쁠텐데(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