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그녀들의 수라장 =========================================================================
“내가 경험해봤다고?”
“에너지 이터를 잡고 나서 성장했다고 했지? 동양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잭팟이라고 한다. 잭팟은 최대, 현재 위상력의 2배까지 오르지만, 보통은 1/3 정도 성장하는 게 보통이다. 클래스가 낮을수록 2배까지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 희귀하진 않지만, 흔하지도 않아. 그리고 클래스가 높아질수록 깨달음을 얻기도 힘들고.”
깨달음…. 나는 그냥 프랑이 지어준 능력명 덕분에 진화한거지, 깨달음을 얻었다고 보긴 힘든데? 화연이는 그걸 깨달음이라고 생각해버린거구나.
그럼 깨달음은 클래스가 높아질수록 더 좋겠네? 1/3만 올라간다고 해도 1,000만일때 얻으면 1,333만이 되잖아! 운이 좋다면 2,000만이 될 수도 있고!
“아 그렇구나, 화연이도 그럼 깨달음을 얻고 크리스탈 이터를 잡은 거야?”
“각각 한 번씩 경험했다. 나와 차소영과 소피아, 네가 아까 감지한 네 명의 능력자와 함께 타임리버 초창기에 우연히 크리스탈 이터를 만났었고 손이 빠른 차소영 덕분에 잡을 수 있었어.”
아하. 그래서 차소영이랑 소피아도 C 클래스 최상급인 건가? 4명의 속성타입 능력자, 그러니까 화연이가 구해줬다는 네 명의 여자들도 덕분에 100만 가까운 수치를 확보한 거 겠지.
“그리고 중국에서 많은 돈을 주고 시화유선을 배우면서 얻은 깨달음으로 지금의 상태가 된 거다.”
“깨달음! 뭘 깨달았는데?”
“위상력의 본질은 똑같다는 거. 덕분에 힘과 민첩 체력 비율이 1:3:2였는데 지금은 1:1:1의 밸런스형이 됐어.”
…위상력의 본질…? 그러고보니 전투 중이 아닐 때는 신체 강화든 속성이든 그냥 한데 뭉쳐있는 이형종의 위상력이 생각났다.
…….
“깨달음은 온전히 깨달은 당사자의 것인 거예요. 힌트가 될 수는 있겠지만 키key는 될 수 없지요!”
…어? 아아. 내 표정을 본 소피아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검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보였다.
“그 힌트도 중요 할 거 같은데요?”
“맞아. 그러니까 서하 너두 화연이한테 들은 이야기는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마. 알았지?”
“어어. 누난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여기서 보고 들은 건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 해!”
그건 무협소설에서도 흔한 이야기니까, 화경지신의 무인의 심득이 담긴 비급을 두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거!
깨달음을 얻은 주제와 결론은 능력자들이라면 다들 탐낼 보물이겠지! 부루퉁한 표정으로 누날 바라보니 방긋 웃으면서 "알면 됐어"라고 말했다.
음, 뭔가 머리랑 가슴이 간질간질했던거 같은데 소피아가 말을 걸어오니까 사라져버렸네.
아무튼 평소의 예쁜 누나로 돌아간 걸 보니 아수라 모드는 끝난 거 같은데…. 아까 일을 생각했더니 다시 오한이 솟는다.
“그나저나 소피아는 감탄했어요? 보스가 그렇게나 적극적으로 다가서다니! 꺄아~! 눈에 보스의 탐스러운 젖가슴이 떠올라요~.”
“흑?!”
“모르는 수컷에게는 북해의 얼음 같은 여자이지만, 내 남자에게는 남국의 태양처럼 뜨거운 여자…라는 거겠죠? 소피아!”
“큭!!”
“령 언니의 말대로예요! 자자, 아는 사람은 첫손에 꼽길 주저하지 않는 한국 제일 미녀의 앙가슴에서 느껴지던 감촉!! 어땠나요?! 말해보는 거 에요. 보스의 달링!”
“저도 궁금하군요!”
갑작스레 주제가 바뀌며 화살이 화연이를 향하자 눈에띄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혜령과 소피아는 주말 아침 드라마를 보는 엄마와 비슷한 눈빛을 하면서 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과장된 표정과 힐끔거리면서 얼굴이 붉어진 화연이를 보는 모습에서 화연이를 놀리기 위해 그런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정말 화연이를 놀리는 걸 좋아하네!
차소영도 말은 없지만 가운데 끼어서 얌전히 잔을 들어 음료수를 마시는데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이 기분이 좋아 보였고 울 누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당황해서 얼굴을 빨갛게 붉히는 화연이를 소피아와 이혜령이 짓궂게 괴롭히고, 나랑 차소영은 그 모습을 웃으면서 구경하고 있으니 누나는 타임리버 빌딩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전화해서 식사를 주문했다.
배달도 해주는 건가?
레스토랑이면 코스 요리라고 생각하는데, 주문은 중화풍을 하는거 같다.
이혜령과 소피아의 합체 공격에 화연이는 그냥 빨개진 얼굴로 허둥거리면서 반박을 하지만, 말빨 죽이는 이혜령과 소피아의 쏟아지는 언어의 폭포에는 감당을 못하고 결국 휘말려 침묵해버렸다.
레스토랑 직원이 음식을 가져와 테이블에 세팅해줄 때까지, 아니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화연이 누나를 괴롭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우리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혜령과 소피아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뭔가를 잔뜩 충전한 듯 반들반들해진 피부로 활짝 웃으면서 되돌아갔다.
“…화연을 잘 부탁합니다.”
차소영은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에 날 보더니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는데 나도 황급히 따라 인사했더니 이런 내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으면서 문을 닫고 나갔다.
“읏, 언니까지….”
하도 짓궂은 질문을 받아서인지 귀까지 붉어진 화연은 차소영을 문밖까지 마중하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울 누나한테 걸어갔다.
“화연이는 언니들한테 어디까지 비밀로 할 거야?”
뒤따라가며 물었더니 멈칫하다가 날 돌아보는데 눈빛이 조금 진중해 보였다.
“…언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최소 네가 C 클래스 최상급. B 클래스에 들어갈 때까지는 숨길 생각이다. 지금 너의 성장 폭과 능력의 강력함을 봤을 때 그 정도가 된다면 설령 A 클래스가 오더라도 널 얕잡아볼 수 없을 테니까 그때가 되면 숨길 이유가 없어질 거다.”
“그런가. 소중한 언니들한테 비밀을 만들게 해서 미안.”
“아니다. 언니들이라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옆으로 다가오길 기다리던 화연은 내 팔에 팔짱을! 끼더니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는데 그걸 뒤에서 바라보던 프랑도 화연의 반대쪽에서 내 팔의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을 은근슬쩍 바라보던 화연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가 금방 원래대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상위급 변종 아종이 셋씩이나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사람이 이형종으로 변이해버리고, 최고위 이형종도 나타나다니….”
화연의 말을 들은 프랑도 살짝 고개를 내밀어 화연을 바라보는데 화연이는 이어서 말했다.
“아무래도 네 위상 세계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엉?”
“보고된 사례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에반스 씨는 이형종이 된 후로 5명의 시험자를 더 봤다고 하셨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프랑.
“그 부분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야. 보통 한 사람은 하나의 위상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게 정설로 굳어졌어. 물론 호스트와 함께 위상 세계로 입장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문 형식이지 공유 형식은 아니야.”
“어, 그거 말인데. 호스트랑 어떻게 같이 들어가는 거야? 따로 방법이 있어?”
“그냥 서로 신체적인 접촉을 한 상태에서 호스트가 될 사람이 입장하면 된다.”
“뭔가 간단하네. 혹시 다른 사람이 입장하는 와중에 누가 난입해서 중복으로 입장을 시도해버리면 어떻게 해?”
“가장 먼저 입장을 시도한 사람의 위상 세계로 간다.”
누가 벌써 실험해본 건가? 입장중에 뭔가 꼬여서 아공간으로 떨어져버린다! 던가 그런 일은 없는거 같아 다행이다.
“아무튼! 당시 최고 최강의 레이드 팀인 아크엔젤을 박살 낸 이형종이 이무기다. 그리고 그런 이무기가 네가 호스트로 있는 위상 세계에도 있지.”
“으음.”
“알았지? 그 지역의 어디에서 이무기가 난입할지 몰라. 이무기는 선공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깨졌다. 그러니 위험하니까 가지 마라.”
화연이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까 애가 탄다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다가 내 어깨를 잡고 다시 말했다.
“부탁이야. 필요하다면 다른 호스트의 세계를 안내해줄게. 네 위상 세계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모르겠어.”
“서하!”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화연이 말대로 안 가는 게 정답인데, 어쩐지 계속 가야겠다는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단말야.”
그러면서 초거대 거북이를 만난 이야기를 말해줬다.
“…!”
멍한 표정이 된 화연이는 순간 때려주고 싶다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봤다!
“어, 아. 으음! 아무튼, 약속은 못해!”
“큭…!”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왜 이제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짓는 화연이를 피해 도망치듯 소파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엄마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세 명을 마중하지도 못했던 누나는 아직도 통화 중이었다.
“그러니까 안돼! 안돼안돼안돼!”
뭐가 안돼? 그때 도착한 화연이는 불퉁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는데 계속 날 노려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지 말자.
“엄만 진짜!”
살짝 귀를 기울이다가 화연이를 봤더니 그새 얼굴이 또 새빨개져있었다.
[그러니까 엄마도 아빠도 얼른 손주를 보고 싶다잖니! 딸도 서하를 닮은 귀여운 아기를 보고 싶지 않은 거니?!]
“그야 당연히 보고 싶지! 하지만 아직 어리다니까!”
[어리긴 뭐가 어리니! 엄마는 16살 때 널 가졌는데!]
“그건 아빠가 나쁜 거지!! …아, 애들 왔어. 하여튼 안 되니까!”
[여보세요? 딸? 시하야!]
뚝 하고 끊기는 전화.
…엄마는 내가 빨리 화연이랑 합방하는걸 원하나 보다.
저 대화를 들었으니까 화연이도 얼굴이 붉어진거겠지? 은근한 표정으로 화연이를 올려다봤더니 내 표정을 본 화연이는 부끄러워서인지 눈을 감고 내 시선을 피하고 프랑도 부럽다는 표정을 숨기질 못하고 있었다.
크으. 7개월만 기다리면 되긴 한데 다 익은 자두가 눈앞에 있구만 먹지 말고 7개월 뒤까지 기다리라니! 자두 술이라도 만들라는 건가…!
손으로 내 시선을 애써 가리려하는 화연이를 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으려니 누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길래 잽싸게 표정을 고쳤다.
근데 누나가 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 어떻게 알아 챈 거지?
“하여튼 어린 게 발랑까져가지구.”
칫.
궁시렁거리면서 소파의 등받이에 기댔더니 누나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가 손으로 미간을 문질러 펴면서 말을 이었다.
“…두 사람 다 괜찮은 거야?”
“어? 뭐가?”
“너 말구! 화연이랑 에반스 씨 말이지!”
내 천연덕스런 말에 발칵 화를 내는 누나한테 나도 놀래버렸다! 두 사람 다 겨우 진정했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내 좌우에 앉아있던 프랑과 화연이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더니, 화연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서하의 이야기를 듣고 오늘 일을 봤을 때 에반스 씨라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저도 화연 씨라면 불만 없어요.-
“…어휴 정말.”
흥. 딱 걸렸다.
답답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화연이랑 프랑을 번갈아 보던 누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걸로 누나의 개입을 제한할 수 있겠지?
누나는 다시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감싸 쥐는데, 얼마나 골치가 아프면 자기가 한숨 쉬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한 걸까?
“누나.”
“왜!”
“방금 한숨 쉬었지?”
내 말을 듣고 흠칫하는 누나.
“딱 걸렸어. 화연이랑 프랑도 봤지?”
-네, 봤어요.-
“확실히 두 눈으로 봤다.”
“…!!”
누나는 우릴 보고 안색이 창백해졌는데 입을 뻐끔 뻐끔거리는 게 말이 나오지 않나 보다.
좋아, 내 턴이다!
“내 요구 조건은 하나야. 앞으로 나랑 프랑이랑 연이 사이에서, 연인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에 제지하지 말 것!”
“윽! 아아아아….”
내 말을 들은 누나는 좌절하는 모습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키키키. 응원하던 야구 팀이 9회말 만루에서 역전 홈런을 때린 기분이 이런걸까? 근데 프랑과 화연이도 내 말에 얼굴에 불이 난 거처럼 새빨개졌다.
흐흐흐.
물론 프랑이나 화연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프랑은 내가 건강해지면 모든 걸 다 받아준다고 했고! 화연이는 내가 19살까지는 직접적인 성행위는 받아주지 않을 거 같지만, 아래에서 열을 주면 팔팔 끓어오르는게, 자극을 많이 주면…. 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누나도 날 위해서 저렇게 막으려는 든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냥 프랑이랑 연이랑 이런저런 꽁기꽁기한 짓을 못하니까 안타까울 뿐이지, 누나가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일단 야한 생각은 접어두고 소파에 앉아서 잠시 얼굴에 불이 난 화연이나 좌절 중인 누나를 보니 정말 나랑은 다르게 태어날 때부터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아까 화연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만약 누나가 내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역사에도 기록될 위인이 되지 않을까? 화연이도 나랑은 비교도 안 되게 잘 활용할 거 같다.
난 그냥 잔머리 잘 굴리고 눈치 빠른 고딩일뿐이지만 누나나 화연이나 이미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다 못해 자체발광 중이잖아. 특히 울 누나는 능력자도 아니면서 여사님이랑 화연이가 서로 침 흘릴 만큼이나 자기 능력을 증명했고.
프랑도 현실에 있을 때는 자신의 능력괴 외모로 평기사로써 나름 중요한 위치까지 올랐다가 이형종이 되면서 한 지역의 패자까지 됐던 전적이 있잖아?
그에 비하면 나는…. 위상 세계에 처음 떨어지고 겁에 질려서 반쯤 폭주하고, 능력을 얻고 나서는 여자들 알몸이나 훔쳐보고 그랬지….
거기다 거인 프랑의 시체에 한 짓을 생각하면 내 본성은 어떤 건지 조금 무서워지기도 한다.
…초거대 거북이도 나도 모르는 내 본성을 눈치채고 그런 말을 남긴 게 아닐까? 이형종들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속 좁고 쪼잔한 내 성격에 나도 모르는 내 본성을 눈치 챘다거나!
프랑은 부끄러웠는지 두 눈을 꼭 감고 내 팔에 달라붙어 있었고 화연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은근히 내 팔을 잡더니 손에 힘을 준다.
누나는 자신의 행동에 좌절을 넘어 자괴감까지 느끼는 중인 거 같고.
“…슬쩍, 화연이랑 프랑을 괴롭히면서 조르면 할 거 안 할 거 다 해줄 거 같지만….”
흠칫거리는 세 아가씨들.
“그러진 않을꺼야. 둘 다 싫어할 행동은 하기 싫으니까. 누나도 날 걱정해서 신경 써주는 거잖아? 잘 알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줘.”
“서하….”
“서하야….”
-서하…!-
감동한 거 같은 누나랑 두 연인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그래. 내가 못나도, 내 여자들이 잘나면 날 잘 이끌어 줄 테니까. 세계 최고라는 내 능력도 잘 써줄 수 있을 거야.
누나랑 화연이는 소파에서 마주 보고 앉아 뭔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국민연금이라던가 산재보험 고용보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회사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나 보다.
뭐, 누나가 타임리버 초기 1년 동안 큰 힘을 보탰다고 했었잖아. 2년간 바뀌어봤자 얼마나 바꼈겠어? 시스템은 한번 완성되면 어지간해서는 잘 안 바뀌는 법이니까, 금방 실제 업무에 들어간 거겠지.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이야기는 싫어서 화연이가 시화유선을 연습하던 곳에 프랑과 마주 앉아 회복 능력을 조금 더 가다듬고 있었다.
나이테 한 줄을 울릴 때마다 치유량이 어느 정돈지는 모르겠지만 한 줄에 10%씩 줄어들면, 줄을 10번 울리면 TP가 동난다는 이야기잖아.
소피아가 자기 정강이를 치유할 때처럼 소량만 쓸 수 있게 컨트롤 해야지. 그러면서도 소피아처럼 원거리로 쏘아내는 방법도 찾으면 좋을거고.
으음…. 손끝에 0.1 TP를 모아서 울리….
팅~!
쿵!
“으힉?!”
나, 난 나이테를 울리려고 했는데!! 멋대로 팅겨져서 마나 탄이 발사돼버렸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나 탄이 적중된 벽이 크레이터처럼 균열이 가면서 움푹 들어간 게 보인다!
“무슨 일이야?!”
“서하야!”
폭음과 진동이 울리자 건물 내부의 사방에서 시뻘건 경고등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연이 번개같이 나에게 달려들어 내 허리를 끌어안고 뒤로 물러선다!
뒤이어 달려온 누나도 날 끌어안으면서 움푹 패인 벽을 바라보는데, 지금 켜진 거, 경고등 아냐? 빌딩 내부 사람들이 대피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아! 시, 실수야! 회복 능력 연습하다가 실수로 마나 탄을 날려버린 거야! 지금 빌딩 안에 사람들이 막 대피하고 있는데, 마,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내 공격에 패인 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누나랑 화연이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내 말에 정신을 차리고 화연이가 이혜령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저걸 네가 한 거야?”
“응. 저번 2회차 때 익힌 거야.”
“하아….”
잠시 후에 경고등이 꺼지고 날 내려놓은 화연은 멍한 표정으로 내가 만들어놓은 흔적으로 다가갔다.
그 뒤를 누나도 따라가더니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이형종 대책으로 특수설계 제작된 벽인데…. 이렇게 간단히 부서진 거야?”
특수설계? 그건 튼튼하다는 말이지? 화연이는 움푹 파이고 균열이 간 벽을 만져보다 날 돌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TP는 얼마 정도 쓴 거야? 100? 200?”
저 위력을 일반 능력자가 내려면 100TP를 써야하는건가보다. 아무튼 목소리가 잔뜩 흔들리는 게 0.1 TP라고 했다간 기절초풍할지도 모르겠다.
“0.1”
기절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 그냥 말해볼까!
“…뭐?”
“0.1 TP 쓴 거라고.”
“……”
눈을 감고 가만히 있더니 다시 눈을 뜬 채 내가 만들어놓은 흔적을 열심히 살펴본다. 고위 신체 강화 능력자라 그런지 기절까지는 안가네.
“단순 위력이 이 정도라면, 거의 D 클래스 중급이 100TP를 쓴 수준인데, 이게 0.1 TP…?”
말로 들은 거랑 눈으로 확인한 거랑 차이가 큰가?
D 클래스면 25,000 이상의 위상력이지? E 클래스인 내가 0.1을 쏜 게 이 정도라면 D 클래스에 올라가면 점점 더 세지는 걸까.
…위력 자체가 이 이상 강화될 거 같진 않은데? 지금이 위력 면에서는 최대치라는 느낌이거든. 단지 쓸 수 있는 TP가 많아지니 쏟아부은 TP의 양 만큼 위력이 증대되거나 범위가 넓어지거나 그럴거 같네.
음. 화연이는 생각을 포기한 건 아닌가 본 데 억지로 신경 줄을 잡고 있는 거 같다. 좀 더 충격을 줘봐야지.
“사정거리는 내 감지 범위야. 산같이 질량이 무지막지한 게 아니면 웬만한 벽 같은 건 다 뚫고 목표물을 맞출 수 있어. 그저께…라고 해야 하나, 막 귀환해서 차 타고 집에 갈 때 한번 말해줬었지?”
“…….”
비교 대상이라고는 중하위급 바람 너구리랑 하위급 곤충들 밖에 못봐서 내 마나 탄이 얼마나 센지 잘 몰랐는데 화연이의 반응을 보니 장난이 아닌건 확실해졌다.
어, 부서진 벽을 모두 살펴보던 화연이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냥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버리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런 화연이를 누나는 놀란 표정으로 내려다보다가 옆에 앉아 어깨를 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하의 능력은 좀 상식을 무시하긴 하지요….-
“바, 발사 속도는…?”
희미하게 들리는 화연이의 목소리는, 뭐랄까 만나서 처음 듣는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잠시 가슴 산에서 연습해본걸 떠올려봤다.
“지금은 10 TP는 한번 쏠 때 3초 정도 걸리는 거 같아. TP를 좀 더 응축시키면 그만큼 시간이 더 늘어나긴 하지만, 10 TP 이하로 줄여도 시간이 줄지는 않아.”
“우후후. 아하하하.”
응?!
“공간 지각에, 신체 강화도 같이 쓰고 이젠 회복도 가능한 거지?”
“어, 응.”
여전히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하는데, 묘하게 무, 무섭다.
울 누나는 그냥 날 보더니 고개를 돌리면서 한숨을 쉬고 화연이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는데 프랑도 슬금슬금 화연에게 다가가 살짝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 보…더니 동질감 가득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러는 거야?”
“그냥, 내 도움 같은 건 필요 없겠다 싶어서….”
응? 그럴리가. 내가 혼자 암만 강해도 B 클래스 화연이가 공격해오면 도망가기 바쁠 텐데.
…아, 화연이 입장에서 본 내 능력은 그 정도가 가능하다는 건가.
……나도 좌절할 거 같다. 내 소프트웨어적인 문제점에 눈물 날 거 같아…!
============================ 작품 후기 ============================
열심히 쓰다가 연참을 위해 수정하면서 99화부터 101화까지 방금 다시 쭉 살펴봤는데 어쩐지 글이 매끄럽지 못한게 마음에 안드네요... ㅠㅠ
가시기 전에 추천 한번 꾹 눌러주시고 가시면 쌩큐~!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