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0 그녀들의 수라장 =========================================================================
어머니는 감정이 없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화랑의 보스를 하지 않고 새 레이드 팀을 만들겠다고?”
“어머니께서도 얌전히 시킨 일만 하는 인형 같은 사람은 필요 없으시겠지요.”
“일을 시키는 데는 인형 같은 사람이 필요할 수 있는 법이란다.”
“레이드 팀의 보스가 인형이라니, 저라면 절대 같이 활동하지 않을 겁니다.”
“보스가 꼭 유능할 필요는 없지 않니. 이인자가 대신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래서 태인혁 같은 사람을 총무부장에 앉히신겁니까?”
“후후후.”
…어머니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나를 보며 갑자기 산뜻한 웃음을 지으셨…다.
“어쩜 이렇게 잘 자라줬는지 모르겠는걸? 초보 엄마라 큰 실수를 연달아 저질렀는데도 이렇게나 잘 자라주다니. 역시 내 핏줄이라 그런지 훌륭하구나.”
…처음 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당황스럽다.
“그렇게 하렴. 딸이 내 품을 벗어나 독립해서 성장하겠다는데 말리는 건 아니다 싶으니까. 단.”
산뜻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표정을 굳히시며 말을 이으셨다.
“1년. 내가 인정할 만큼의 성과를 보여라. 실패하면 화랑의 보스가 되어야 한다. 알겠지?”
“3년으로 하지요.”
“쿡쿡. 화랑에서 차기 간부 후보를 두 명에, 팀장 후보를 넷이나 빼가면서 그러는 거니?”
다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다.
“…2년.”
“콜~! 어디 힘껏 발버둥 쳐보렴. 그 전에도 엄마가 인정할 만 하다 싶으면 그 순간 정부에서 공식 지원을 해줄 테니까.”
“그 말씀. 꼭 지키십시오.”
“보스, 이제 팀 명을 지을 때가 왔습니다. 더는 미룰 수는 없어요.”
“생각해둔 게 있나요예요~.”
시하를 포함해 날 바라보는 4명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잠시 시하를 봤더니 서하도 생각난다. 얼마나 더 귀여워져 있을까.
“…타임리버.”
“시간의 강, 입니까.”
“왠지 느낌이 있는 걸요?”
“…후후후. 좋은걸요예요!”
…내 마음을 눈치챈 듯이 음흉하게 웃는 소피아는…. 말자. 생각하면 지는 거야.
“시간의 강이라니, 시적인 느낌이야.”
놀랍게도 시하마저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은 서하의 이름을 딴 팀 명을 짓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시하가 바로 눈치채버릴 거라 생각해서 그다음으로 소중한 시하의 이름을 따서 지은건데….
그렇게 4명의 속성 능력자도 영입해 B 클래스 신체 강화 1명, D 클래스 속성 능력자 5명, D 클래스 원거리 회복 능력자 1명으로 타임리버 레이드 팀을 만들게 되었다.
이제부텁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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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시하와 이혜령 총무부장의 도움으로 1년 만에 레이드 팀으로서의 기반을 완벽히 잡을 수 있었고 그다음 1년 뒤에는 고위 이형종 레이드에 성공하면서 정부의 공식 지원을 받으며 현재의 레이드 팀이 될 수 있었어.”
“…대단하다. 화연이 진짜 대단해.”
“읏….”
진짜 대단하다. 나였다면 중간에 포기하고 도망쳤을 텐데 화연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큰 거잖아.
프랑도 감탄 어린 기색으로 화연을 다시 봤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레이드 팀 이름을 누나 이름으로 하다니, 얼마나 누날 좋아하는 거야?”
“…너와 시하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분기점이었어. 그만큼 너희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아, 곤란하다. 진짜 곤란해! 막 껴안고 쓰담 쓰담 해주고 싶어지잖아!!
“!!”
어라?! 언제 화연이를 껴안은 거지?!
품에 안은 화연에게서 달콤새콤한 자두 향을 잔뜩 맡으며 가슴에 느껴지는 화연의 커다란 가슴 감촉을 느끼려니 다시 나의 분신이 발동하려 한다…!
얼굴이 빨개진 화연의 뒷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허리를 쓰다듬어주니 파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아아, 이참을 수 없는 소유욕이라니!
발기한 내 분신체는 허리가 떨어져 있는 모양새라 화연에게 들키진 않았지만, 프랑의 눈에는 잘 보이나 보다.
조금 더 쓰다듬고 가슴으로 화연의 풍만한 유방의 감촉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이상 못 참을 거 같아 화연이에게서 떨어졌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이 울 누나한테 막 인사하고 그러는 거구나. 나는 사람들이 누나한테 인사하고 울 누나를 대하는 게 되게… 뭐랄까, 정중해 보였거든?”
“그건 당연해. 시하가 도와준 기간은 1년뿐이지만 타임리버의 실제 시스템의 절반 이상은 시하가 만들어냈으니까. 현재 팀장 이상급의 간부들은 대부분 시하의 손에 걸러진 사람들이고 입사한 일반 사원의 대부분도 시하의 능력을 잘 알고 있어. 거기다 두 부대장과 이혜령 부장도 아끼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
“거기에 화연이도 있고?”
“…응.”
약간 붉어진 얼굴로 설명하는 화연이를 보니까 화연이는 정말 우리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생각이 든다.
어제 무서운 아수라 모드의 누나한테 막 가슴이 주물러지고 바들바들 떨었으면서도 저런 모습이라니. 저렇게나 좋아하게 만든 누나가 대단한 건지 화연이가 착한 건지….
“그런데 고위 이형종은 어떻게 잡은 거야? 타임리버는 화연이만 B 클래스잖아. 인증기에서 고위 이형종을 잡기 위해서는 5명의 B 클래스 능력자와 100명의 C 클래스 능력자가 필요하댔는데?”
타임리버에는 E 클래스가 없다지만, 113명 중 B 클래스는 화연이 혼자. 등급 안 따지고 C 클래스는 50명가량에 나머지는 전부 D 클래스 최상급인 거 같은데?
“가장 멍청하고 가장 낮은 급수를 가진 고위 이형종이 한 마리 있다. 가장 먼저 때린 한 사람만 보는 피스터머라 부르는 마운틴 고릴라 이형종인데, 지금의 타임리버처럼 한 명의 강한 신체 강화 능력자가 있다면 잡을 수 있는 조건을 지닌 이형종이야. 그 녀석을 잡고 어머니의 인정을 받았었지.”
혼자 고위 이형종을 탱킹하다니, 새삼 화연이가 대단하게 보인다.
“그 레이드를 위해 감지 타입 능력자를 포함한 타임리버 능력자 전원이 127명 전원이 동원되었지. 물론 만에 하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 적지 않은 자금을 소비해서 의뢰 형식으로 화랑의 전투 부대와 함께 들어갔었다. 하지만 전투는 타임리버만으로 치뤘고 결국 한 명의 사상자 없이 피스터머를 잡을 수 있었지.”
“대단해….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텐데, 화연이가 말한 대로라면 혼자 고위 이형종을 탱킹했다는 말이잖아? 화연이 진짜 대단해!!”
“우읏…. 나,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2명의 C 클래스 신체 강화 팀장도 지원했었고 뒤에도 백 수십 명의 멤버들이…!”
화연이는 내 감탄에 무릎 위에 올린 손을 꼼질 거리면서 부끄러워했지만, 그건 자랑해도 될 거 같은데? 손을 뻗어 화연이의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형종의 단계에 나뉘는 강함 같은 건 모르지만, 고위 이형종은 그야말로 이형종 중의 이형종이잖아? 그걸 혼자 탱킹에 성공하고, 한 명도 안 다치고 잡았다는 건 진짜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
“…고, 고맙다.”
내 손에 자기 손이 잡힌 화연이는 내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결국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무튼 소피아는 봤으니까 다른 부대장이라는 차소영을 보고 싶다.
“소피아 씨랑 다른 부대장이신 차소영 씨를 나도 보고 싶어. 화연의 누나 같은 사람이라니, 궁금해!”
“그, 그래. 그전에 식사를 하고, 회복 타입 능력부터 연습하자.”
화연이의 말을 들으니 그제서야 저녁때가 다됐다는 걸 알았다. 화연은 빨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등을 돌려 인증기를 켠다.
…저렇게 쭉 빠진 8등신 미녀의 뒤태는 아무렇게나 입어도 눈이 부시구나. 새삼 옷걸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버렸다.
후후후. 나야 뭐. 옷걸이가 아니라 아무렇게나 뻗어 나온 나뭇가지지 뭐.
화연이가 통화하는 사이에 소피아의 위상력 패턴을 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해봤다. 내 손가락에서 물방울처럼 떨어트릴 수 있는 점액성 높은 TP가 회복 능력의 상위인 건 확실한 거 같으니, 일반 회복 능력도 사용할 수 있게 해봐야지.
잠시 어떤 식으로 공명시키는 걸까 생각해봤는데, 마나 모드를 발동해 소용돌이치는 나무테 모양을 만들고, 나무테를 팅기듯이 울려봤다.
디이이이이잉~
나무테 위상력은 대략 3cm 간격으로 일정하게 벌어져서 5줄이 줄줄이 쌓인 모양이었는데 5개를 동시에 울렸더니 전체 TP의 50%가 소비되며 내 주변으로 파란빛이 물결치듯 퍼져나갔다!
-아흥…!-
“음?!”
프랑은 야릇한 신음을 흘리면서 펄쩍 날아올라 공중에서 몸을 배배꼬고 있었…고, 왜 저래? 화연도 뭔갈 느꼈는지 두 눈을 부릅뜨며 날 돌아봤다. 근데 화연도 얼굴이 살짝 붉어졌는데?
[무슨 일입니까 보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녁 식사를 안 하셨다면 두 부대장과 함께 시하도 데리고 올라오세요. 같이 식사라도 하죠.”
[알겠습니다. 준비해서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이혜령의 목소리인가? 다 함께라니, 날 정식으로 소개하려나 보다.
“서하! 방금 그건 뭐지?!”
화연이는 인증기를 종료하더니 뒤돌아 내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어? 뭔지 보였어?”
“그래! 파란빛이 물결치듯 뿜어져 나오지 않았나! 봐라! 저 벽에까지 다다른 파란 빛을!”
어서 설명하라는 표정으로 저 멀리 반대편 벽에 도달해있는 파란빛의 물결을 가리켰는데,
아니, 그건 알지. 공간 지각으로 퍼져나가는 게 보이니까. 이건 사물을 뚫고 지나가진 못하네.
근데 저건 다른 사람도 보이나 보네. 역시 프랑 말대로 파란빛은 다른 사람한테 보이고 물빛은 안 보이나 보다.
“아까 소피아 씨의 회복 능력 사용순간을 보고 따라 응용해본 거야.”
“뭣…. 그, 그렇게 간단하게…?”
“간단한 건 아닌데? 그전에 속성 타입을 연습할 때 해본 경험이 있어서 익숙해진 거니까. 이번엔 운 좋게 바로 찾아낸 거야. 그전에는 거의 하루 종일 연습했어야했구.”
-흐으응…. 아후. 아으….-
…프랑은 계속 몸을 비비 꼬다가 겨우 진정했는지 한숨을 쉬면서 공중에서 축 늘어져 버렸다. 그러면서 반쯤 풀린 눈으로 내 쪽을 바라보는 게, 내가 하는 말이 어지간히 궁금한가 보다.
“근데 이거, TP 소비가 장난이 아니다. 단 한 번에 내 전체 TP의 절반이나 사라졌어. 울리는 개수를 줄이면 여러 번 쓸 수 있으려나?”
“이, 이런 광역 회복은 C 클래스라 하더라도 1번 이상 쓰기 힘들다. 말 그대로 위급 시의 필살기 같은 용도란 말이다….”
어, 그랬어? 화연이는 놀라고 황당한 마음인지 목소리까지 살짝 떨렸다. 근데 얼굴은 왜 붉어진 거야?
“프랑. 한 번 더 쓸 거니까 마음을 잡아. 어째 프랑은 내가 쓰는 TP에 닿을 때마다 흥분하는 거 같아.”
“아…? 아, 에반스 씨도 있는 건가….”
-으읏, 네에.-
화연이의 표정이 조금 묘해지는 게 보였고 프랑도 조금 울상을 지으면서 온몸을 웅크리고 곧 닥쳐올 파란빛의 물결에 대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번엔 2줄만 울려봤다.
디잉~
아까보단 덜 하지만 그래도 옅은 파란색이 물결처럼 날 중심으로 360도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 아까 5줄을 울렸을 때보다 도달 범위는 1/3 정도 되는 거 같다.
한 줄씩 늘릴 때마다 거리가 일정 범위 늘어나고 소비량은… 1줄에 전체 TP의 10%씩 쓰는 건가? 70%나 써버렸다.
음. 1 줄당 1단계로 나눠야겠네. 5줄이니까 최대 5단계, 1줄에 10% TP 소비.
-아으응….아우우.-
그런데 프랑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하아하아거리면서 애써 쾌감을 참아내고 있었다.
하아. 프랑을 어쩌지. 영혼석에 TP를 흡수시키면 발정 나버리고 힐링 웨이브…. 힐링 웨이브라고 하자. 힐링 웨이브에 닿으니까 또 잔뜩 흥분해버리는 거 같은데. 내 TP에 성적인 영향이 있는 건가?
어떡한담? 이건 좀 고민해봐야겠다.
…그, 그런데 화연이도 얼굴이 좀 붉어져 있는 게 보인다! 설마, 화연이도 영향을 받은 건가?
“…이건 중요한 건데, 솔직하게 대답해줘.”
“…….”
헉, 넋이 반쯤 나가 있네!
“화연!”
철썩!
크게 소리치며 일부러 화연의 쫄깃한 엉덩이를 후려쳤다! 크으! 이 찰진 손맛!
“아흑?! 무, 뭐냐!”
화들짝 놀라면서 두 손을 뒤로 돌려 나한테 맞은 엉덩이를 쓰다듬는 화연이는 당황한 모습으로 나한테서 물러서며 외쳤다.
“내가 한 말 못 들었지?”
“아?!”
“중요한 건데 솔직하게 대답해달라고. 방금 파란 빛. 힐링 웨이브라고 이름 붙인 저 물결에 맞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무, 그!”
진짜 당황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할 말을 찾는 화연이를 보니, 할 말이 아니라 변명을 찾는 거 같다.
“제대로 말 안 해주면 나중에 다른 여자들 잔뜩 모인 레이드때도 마구 쓰다가 큰일 나버릴 수 있으니까. 확실히 이야기해줘!”
“아…! 그, 그렇군. 네 힐링, 웨이브? 그걸 맞으니…. 마치 너에게 애무를 당한 느낌이다. 내 몸속의 위상력이 네 힐링 웨이브에 반응하면서, 겉잡을 수 없는 황홀감을 느꼈다.”
다시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말하는 걸 보니 진짜 부끄럽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솔직하게 대답해준 거 같다.
으음.
아, 이건 화연이랑 프랑도 들어아할 거 같으니 말로 해야겠다.
“아무래도 내 TP에는 사람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요소가 있나 본 데…?”
“…뭐냐 그건….”
“방금 화연이 말해준 대로라면 체내의 위상력이 반응해서 황홀감을 느낀단 이야기잖아. 옆에 프랑도 지금 온몸을 베베꼬면서 공중에 떠있단말야.”
-아으! 서, 서하아. 그건 말하면 안 돼요!-
“…에반스씨가 바로 옆에 있다고?”
음…. 잠시 손가락 끝에 TP를 조금 뽑아서 방울로 만들었다. 이걸 눈에 바르면 확실히 프랑이 보일 거 같은데, 살아있는 육체에 바르면 뭔가 나쁜 효과가 있는 건 아니겠지?
힐링 웨이브를 보면서 이건 인체에 악영향이 없다는 걸 확실히 느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이 든단말야.
“?! 그, 그건 뭐냐.”
내 검지 끝에 조금 솟아 나와 있는 파랗게 빛나는 TP 덩어리를 본 화연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놀랬다.
“아, 이거 에….”
…너지 이터가 좋아하던 거라고 하면 거부반응을 일으킬 거 같다. 다르게 말하자.
“소피아가 보여준 회복의 상위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거야. 내 TP가 모인 건데, 이걸 눈에 바르면 위상력의 실체도 볼 수 있는듯해.”
“…넌 대체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 거지?”
“그러게. 어디 보자, 공간 지각에 마나시브로 신체 강화, 속성, 이제 회복도 되고, 별거 없네.”
“뭐가 별것 아니라는 거지….”
화연은 힘없이 내 옆에 앉았는데 내 말에 어지간히 충격을 먹은거 같다. 화연이 자기도 20살에 B 클래스에 위상력을 1,107만이나 모은 주제에.
음? 그러고 보니 B 클래스가 위상력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론상으로는 최고위 이형종을 잡아야 하잖아? 근데 잡을 수 있는 최고위 이형종이 없는데?
으음. 슬쩍 프랑을 올려보니 화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흥분은 다 가라앉은 건가.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 화연에게 프랑부터 소개해야겠다.
“에이, 아무튼 프랑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이리 와봐.”
“읏.”
엄지에 파랗게 빛나는 TP를 묻히고 화연의 눈에 손을 가져가니 움찔하더니 눈동자를 떨기 시작했다.
…왜 이래? 눈을 감아야 바르지.
“눈 안 감아?”
“으, 응? 눈에 발라야 한다고 안 했나?”
“어?! 진짜 안구에 다이렉트로 바르는 건 아냐! 눈꺼풀 위에 발라도 돼!”
헉,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래?!
아, 그럼 눈에다 TP를 떨어트려도 되려나? 화연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눈을 감았다.
나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화연이한테 큰 상처를 줄 행동을 할 리가 없잖아.
나는 엄지를 화연의 눈꺼풀 위에 살살 문질렀다. 엄지에서 느껴지는 피부와 화연의 홍채가 닿는 느낌이 두근거린다.
무방비한 아가씨의 알몸을 만지는 기분이 이런 걸까?
양쪽 눈꺼풀에 4TP 정도를 발라주고 손을 뗐다.
“이제 눈을 떠봐.”
“으음…. 헛?!”
화연은 자신의 눈 바로 앞에 있는 내 얼굴을 보더니 순간 흠칫했다.
화연이 눈을 뜬 순간 눈동자를 확인했는데 그냥 평범한 검은색이네? TP를 바르면 막 물빛이나 파란빛을 뿜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잠시 머리를 돌려 주변을 살펴 프랑을 찾는데, 프랑은 우리 반대쪽 소파 뒤에 숨어서 어깨 위만 내밀고 긴장된 표정으로 화연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화연이도 프랑이 있는 쪽을 보더니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진다!
“…쁘잖아.”
-…….-
“어? 잘 안 들렸어. 뭐라구 했어?”
살짝 우물거리듯 움직이는 입술 덕분에 독순술로도 읽지 못했다. 그런데 프랑은 표정이 어색해지는 게, 본 거 같은데? 무슨 말을 한 거지?
“아,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플랑드르 에반스 씨. 유화연입니다.”
화연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프랑에게 오른손을 뻗었는데, 프랑은 조금 우물쭈물하더니 슬쩍 몸을 일으켜서 화연에게 다가가 화연의 손을 마주 잡아갔지만, 휙 하고 통과해버리니 화연이는 화들짝 놀라버렸다.
“!! 왜, 왜 벗고 있으신 겁니까!?”
-아으으. 서하아….-
아, 놀란 게 손이 통과했다는 게 아니라 그쪽이었어?! 프랑은 울상을 짓더니 소파 안으로 쏙 숨어 들어가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나와 화연을 번갈아 본다.
“이, 이런 변…태 같은!!”
-히잉. 변태 아니에요! 옷을 입을 방법을 찾아봤지만 알 수 없었다구요!-
“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뭣! 옷을 입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아, 안돼!
-서하! 제 말을 전해주세요!-
윽! 화연이는 위상 세계에 관해서 아는 게 많으니까, 영체인 프랑이 옷을 입는 방법도 알고 있지 않을까? 이걸, 말해줘서 옷을 입어버리면…. 으으으!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피튀기는 사투를 벌인다!!
컥! 악마 자식! 그렇게 허약해서 어디다 쓰겠냐! 으아아!
피투성이 상처로 승리한 천사는 희게 웃더니 널브러진 악마 위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프랑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런 모습이었어. 프랑도 저렇게 있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니야.”
“그, 그럼 서하 너는 쭉 에반스 씨의 나체를…?”
-아우우.-
프랑은 정말 부끄럽다는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다가, 소파에서 튀어나와 내 등 뒤에 메달려버렸다.
“!!!! 다, 당장 떨어지세요! 서하에게 무슨 짓을!!”
-에?! 이, 이건 어쩔수 없는거에요! 저, 저도 부끄럽다구요!-
“큭! 서하! 에반스 씨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보다 당장 서하의 등에서 떨어지십시오! 몸으로 서하를 유혹하려 하다니!”
-에엑?! 그, 그런 게 아니에요! 몸으로 유혹하다니! 무슨 상상을 하시는 건가요?! 화연 씨는 음란해요!-
“그렇게 입을 뻐끔거려도 알 수 없습니다! 그보다 당장 서하에게서 떨…. !!!”
화연은 그야말로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진 채 내 손을 잡고 잡아당겼는데 내 등에 매달린 프랑도 함께 쑤욱 당겨지는 걸 보고 놀람을 넘어 경악해버렸다.
“서, 서하를 만질, 접촉할 수 있는 겁니까?! 그, 그런 음란한 가슴을 서하의 등에 문지르다니!”
-누, 누가 음란하다는 거에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스킨십이 음란하다니!-
“에반스 씨는 정녕 음탕하군요!!”
-읏!! 그러는 화연 씨는 이성을 잃고 서하를 강제로….! 아, 아무튼 당장 사과하세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서하의 등에서 떨어지란 말입니다!”
-그렇게 손을 휘저어봤자 저한테는 닿지 않아요! 그보다 사과하세요!-
“이익!”
-이익!-
…이게 말로만 듣던 수라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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