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97화 (97/517)

00097  화연의 이야기2  =========================================================================

“앞으로 너와 함께 할 차소영과 최수한이다. 인사하렴.”

능력을 각성하면서 강화된 신체에 적응하기 위해 집의 지하에 마련된 수련장에서 수련하고 있던 나에게 어머니는 두 사람을 데려와 소개시켜주셨다.

…귀찮은데.

“표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쳤니?”

서릿발이 선 어머니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두 명에게 시선을 돌리니 긴 머리를 대충 뒤로 묶은 차분한 표정의 차소영과 더벅머리의 최수한을 잠시 살펴보다 고개를 숙였다.

“…유화연입니다. E 클래스 신체 강화입니다.”

“차소영, 속성 D 클래스입니다.”

“난 최수한이야! 나도 E 클래스 신체 강화야!”

차소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묵례를 했고, 최수한은 조금 쉰 목소리로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서하와는 비교도 안 될 헤픈 웃음이다.

최수한은 날보다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차소영은 화랑의 유망주, 최수한은 연합에서 파견한 네 감시 관리자자니까 사이좋게 지내렴.”

최수한은 모르겠지만, 차소영과는 그럭저럭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이걸 꼭 끼고 다니거라.”

며칠 후 차소영과 최수한과 셋이서 수련장에서 각종 전투 기술을 익히고 최수한과 대련을 하던 중 다시 들린 어머니가 크고 무거운 토시같이 생긴 검은 덩어리 한 쌍을 건네주셨다.

양 팔뚝에 찼더니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상태로 주먹을 지르면 무게 때문에 위력이 더 살아날 듯하다.

“잘 때도 씻을 때도 몸에서 떼지 말고 24시간 차고 있도록.”

그리고서 다른 설명을 하지 않은 어머니는 차소영과 최수한의 인사를 받으면서 수련장을 나가셨다.

“그건 뭐야?”

…나중에 알았지만, 최수한도 여자였다. 나보다 6살이 많은 최수한은 D+ 자질의 신체 강화자였는데 외모처럼 성격도 수더분하고 활달한 게 나와는 정반대였다.

반대로 최수한과 나이가 같은 차소영은 인상처럼 과묵하고 신중하고 진지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동료로 삼으면 안심하고 등을 맡길 수 있을 거 같은 사람이었다.

“토시.”

“와. 까만색이라니, 이거 위상 세계 특산품 같은데?”

그러면서 손을 뻗어 팔뚝 전체를 뒤덮는 토시를 만져봤다.

“대련 계속하자.”

“어? 아앗 잠, 잠만!”

말은 필요 없어.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정규 수업시간이 끝나면 바로 하교해서 화랑의 업무를 익히고 오후 8시에 집의 수련장에 도착하면 차소영과 최수한과 함께 수련장에서 밤새도록 수련을 했다.

신체 강화자가 되면서 수면 시간은 2시간까지 줄여도 활동에 지장이 없어져 하루 일과시간이 길어진 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서하가 또 이상한 말투로 "큭큭큭. 자꾸 날 인신공격하면, 내 속의 광룡이 미쳐 날뛸지도 모른다고?" 이러는데 속상해 죽겠어어."]

“그랬어?”

[어제 아빠가 크게 야단쳐서 훌쩍거릴 만큼 혼났는데도 안 고쳐졌다니까! 아휴. 진짜 만화랑 게임 못하게 막아야할까봐.]

“다른 취미를 가지게 교양 서적 같은걸 보여주는 건 어때?”

[…그럴까? 영웅 이야기를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능력자들의 정상적이고 훌륭한 수기들을 골라서 보여주면…. 알았어! 내일부터 해봐야겠어! 고마워 화연아!]

시하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으니 차소영과 최수한이 눈을 껌뻑거리면서 날 보는 게 보였다.

“뭘.”

[오늘도 수련하는 거야? 화랑 일은 힘들지 않아?]

“괜찮아. 아직은 위상 세계에 들어가진 못하니까.”

[조기 진입 허가를 기다린다며? 허가가 나올 거 같아?]

“감시 관리자가 한 명 붙었고, 어머니가 힘을 쓰실 테니 허가는 확실히 나올 거 같아.”

[으응…. 몸조심해. 화연이 니가 다치면 나도 마음이 아플거야.]

“알았어. 늦었는데 너도 그만 자.”

[화연이 너두 힘내. 화이팅!]

“고마워.”

시하의 응원을 들으며 인증기를 종료하니 최수한이 다가와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로는 차소영도 다가왔다.

“와, 네가 그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봐. 너도 사람이었어!”

…이 여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저도 다시 봤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다섯 마디 듣기 힘든 차소영의 말에 놀란 듯한 표정을 보니 조금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소중한 친구라서 그렇습니다.”

“아! 나도 친구가 되면 그런 표정 지어주는 거야?!”

“친구…. 좋군요.”

차소영은 차분한 어른인데 방정맞은 최수한은….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온다.

몇 달 후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에서 위상 세계 조기 진입 허가증이 내 앞으로 발부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화랑에서의 능력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 후 조기 진입 허가증에 대해 알아봤었는데, 전 세계에서 작지 않은 권한을 지닌 가문이나 집안의 직계 존속이 능력자로 각성하면 일정 조건을 갖추었을 때,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라도 위상 세계 진입 허가가 난다는 것이었다.

“자. 이제부터는 대통령님의 자녀분이신 유화연 양도 함께 할 거다. 화연 양.”

화랑의 보스, 털털한 목소리의 박지웅 보스의 말에 단상 위로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백 명이 날 보고 있었다.

“유화연입니다. E 클래스 신체 강화자입니다.”

“굉장해. 이제 14살인데 E 클래스야?” “역시 대통령님의 자녀분이야. 첫 각성 때 E 클래스라니.” “크면 각하처럼 아름다워질 거 같아.”

단상 아래에서 수근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살짝 목례를 한 다음 뒤로 물러났다.

잠시 침묵이 감돌다 수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자 박지웅 보스가 앞으로 나섰다.

“무지 간단한 자기소개였네. 킥킥. 화연아 봐바. 사람들 당황한 거!”

최수한은 낄낄거리면서 팔꿈치로 내 팔을 건들였다. 차소영은 되돌아오던 나와 눈을 한번 마주쳤을 뿐. 담담히 서 있었다.

평범한…. 아저씨처럼 생긴 박지웅 보스가 입을 열었지만, 그의 입에서도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어. 그만. 조용! …유화연 양은 앞으로 우리 화랑에서….”

박지웅 보스는 뭔가 이야기를 시작했고 왼쪽에서는 최수한도 뭐라고 말을 거는 거 같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어제밤 시하가 해준 이야기만 맴돌고 있었다.

울먹이던 목소리로 전화를 한 시하는 서하가 병에 걸렸다는 말을 전해줬다.

[어떡해…. 서하의 열이 안 내려.]

[아빠가 신종 바이러스에 걸린 거 같대.]

[약을 구하기 위해서 엄마가 미국으로 출국하셨어….]

[열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려…. 어떡해….]

“무슨 생각해? 다 끝났으니까 돌아가자.”

최수한이 내 옷깃을 잡아당겨서 상념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들 빠져나가고 나와 차소영 최수한만 남아있었다.

“…가죠.”

얼마 후 서하가 완쾌됐다는 소식을 시하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 수련도,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아 어머니에게 또다시 크게 혼이 났다.

“…그렇게 정신머리를 놓고 다녀서야 화랑의 보스가 될 수 있겠느냐!”

어머니의 말씀을 듣다 보니 가슴 속에 불같은 게 솟아오르는 거 같다. 보스? 보스라니, 무슨 보스 말인가. 날 화랑의 보스로 세울 생각이신 건가?

“죄송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화랑의 보스? 어머니의 수족이 되라고?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사항인 거 같다.

평일에는 위상 세계에 관한 것과 화랑의 업무를 익히고 휴일 전날 밤에는 위상 세계에 진입하는 팀을 따라 들어가 35시간을 보내며 이형종을 죽이고 위상력을 흡수하고 소재 등을 채집해 아침에 복귀, 바로 등교하는 삶이 반복됐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박지웅 보스를 따라 상위 이형종 레이드에 따라나섰고 간혹 생기는 휴일에는 시하를 만나 식사도 하고 서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쌓인 정신적인 피로를 풀었다.

그러다 보니 화랑 내부에서도, 학교에서도 나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한 인간들이 늘어났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나도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예전의 돼지 모습이 전혀 남지 않고, 시하의 옆에 서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예뻐진 외모가 색이 바래지 않도록 남들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관리를 하면서 외모에 자신감이 생겼지만, 내 마음속에는 한 남자만 있었기 때문에 치근덕거리는 인간들은 귀찮고 짜증만 났다.

밤새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아침에 등교했더니, 중앙 현관 입구에서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다.

“닥치고 꺼지세요.”

좋아하고 있었다며 편지를 주었지만 보지도 않고 고백하는 인간 앞에서 편지를 찢어버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주위에서는 콧대 높다, 도도하다는 이야기만 귀에 들려왔지 내 태도에 대해 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본인은 능력자, 모친도 능력자에 대통령. 나에게 욕을 할 간 큰 인간은 없는 거겠지.

…서하에게 편지를 받으면 기쁠 텐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16살까지 하루 2시간을 자며 다람쥐 챗바퀴 같은 생활을 반복하니 위상 세계에 관한 지식도 쌓이고 화랑에서의 업무도 익혀 레이드 팀의 운영에 관한 전반 지식까지 알게 되었다.

이쯤 되니 어머니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도 알 수 있었다.

자질이 B+, B 클래스까지 성장할 자질을 지니고 있으니 화랑의 보스로 앉혀 뜻대로 조종할 생각이셨겠지.

그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듯 나 역시 2년 만에 E 클래스에서 C 클래스가 되었고, C 클래스가 되는 순간 어머니는 토시를 회수해가셨다.

얼마 전에 알아챈 사실이지만, 내가 끼고 있던 토시는 안쪽에 고위급 위상석이 2개씩 4개가 박혀있었다. 그것으로 내 성장을 촉진시키려 하신거였다.

…….

현재 화랑의 보스인 박지웅은 C 클래스 감지 타입 능력자, 분석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능력 자체는 레이드 팀을 이 끌만 한 자질이건만 성격은 한 집단을 통솔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니 날 키워 화랑의 보스에 앉힐 생각이셨을 거다.

그러나 나의 인간관계는 비틀리다 못해 뒤틀리고 있었다.

위상력도 빠르게 쌓이면서 클래스도 높아져 D 클래스를 넘어 C 클래스가 되던 날 최수한과 크게 충돌했다.

“그러니까 넌 너무 무뚝뚝해! 주변을 좀 더 살펴보라고! 오늘도 너 때문에 사람들이 다친 게 안보였어?!”

“위상 세계에서 다치는 건 일상다반사다. 죽지 않았으면 그만이지.”

“그게 아니야! 너한테는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단 이야기라고! 함께 싸우는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팀원.”

“틀려! 동료잖아! 위험할 때 등을 맡기고 함께 싸울 수 있는 동료!”

“동료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해.”

“뭐?! 큭! 그럼 나도 동료가 아닌 거야?”

“동료라면 차소영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다. 넌 집중력, 상황 판단력, 의지력, 활동력, 모든 부분에서 기준 미달이야.”

“…!!”

최수한은 나와 만난 직후 D 클래스로 올라섰지만, 그 이후 성장이 멈춘 듯 D 클래스의 초반에만 머물며 위상력의 증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자질의 한계에 부닥친 거겠지.

그에 비해 차소영은 느리지만, 점점 성장해 C 클래스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그러니 나와 차소영을 질투한 걸 테지

“…아냐.”

“뭐?”

“이건 아냐. 넌….”

“…….”

“그거 알아? 넌 정말 재수 없는 년이야. 언젠가 네 태도 때문에, 너도 피눈물 흘릴 날이 올 거야!”

“…….”

눈물을 글썽거린 최수한은 휙 돌아서더니 수련장 밖으로 빠져나갔고, 그 후 되돌아오지 않았다.

…….

차소영도 이런 내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연합에서 파견된 감시 관리자가 없어져서 다른 관리자가 올 거라 생각했지만 오지 않았다.

며칠 전, 관리자를 대신할 버디를 소개시켜준다고, 그녀와 함께 하는 것으로 위상 세계 입장 허가가 날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찾아온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소피아 에델베르그입니다에요~.”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약간 미묘한 억양의 금발 서양 여성이었다.

…날 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는 소피아 에델베르그는, 최수한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화제성이 높은 분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잘 부탁합니다.”

“어라~? 차가운 반응이네요~!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에요?”

…나에게 폭언을 던지고 간 최수한의 일을 아직 잊지 못한 게 감정으로 표출된 걸까.

“아닙니다. 에델베르그 양.”

“어마. 그렇게 거리를 두는 호칭은 싫어요. 친근하게 소, 피, 아라고 불러주시지 않으실래요?”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한데 하얀 피부에 파란 눈동자는 어쩐지 장난기가 느껴진다.

“…소개해 드리죠. 이쪽은 화랑의 딜러이신 차소영. 속성 D 클래스 능력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소피아 에델베르그.”

거북한 느낌에 말을 돌리고 차소영을 소개시켜주니 입술을 내밀고 불퉁한 표정을 지어 보인 에델베르그는 곧 차소영에게 살짝 눈웃음을 하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저는 D 클래스 롱 레인지 힐러 소피아에요~.”

…힐러였나. 귀중한 원거리 회복 능력자를 버디로 소개 시켜주다니. 연합은 무슨 속셈이지.

버디는, 영국에서 시작된 능력자 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적절한 친구 사이를 맺어 오랜 시간 교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소피아 에델베르그도 B 클래스의 자질을 지니고 있겠지.

그사이 약간의 대화를 차소영과 나눈 에델베르그는 몸을 돌려날 바라본다.

“저는 C 클래스 신체 강화자입니다.”

“네에~ 잘, 부탁 해 요에요!”

읏. 이, 이 여자는 무슨 짓을!

“이건 우리나라의 애정이 어린 인사에요?”

작은 입술을 내밀며 내 얼굴에 다가오길래 손으로 내 입을 가렸다. 이 여자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건가?!

“아이~ 인사를 거절하는 건 노 매너에요!”

“큭. 키, 키스하는 인사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나라요!”

“…훗.”

읏. 차소영은 뭐가 웃긴지 날 끌어안은 에델베르그를 바라보더니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및 성원해주시는 여러분 덕분에 추천작가가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해드릴거라곤 연참뿐이라, 저녁 8시 넘어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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