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95화 (95/517)

00095  나와 프랑과 연이와.  =========================================================================

“사람 많으니까 정신없다. 그치?”

-네에.-

프랑은 엘리베이터 벽에서 상체만 조금 내밀고 있었는데 사람이 다 내리니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내려섰다.

곧 20층에 도착했다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문이 열렸…는 데, 전자 도어락 어떻게 열지?

아, 전화하면 되겠구나.

화연이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타고 올 때 감지했었고 지금 도착할 때까지 30분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똑같은 자세로 운신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인증기를 켜니, 기묘한 울림소리와 함께 홀로그램이 떠올랐는데 문득 든 생각에 전자 도어락 주변을 살펴봤더니,

있다.

초인종이.

“…암만 하드웨어가 좋아지면 뭐해. 소프트웨어가 이 꼬라진데.”

-네?-

프랑은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지만, 이런 걸 알려줄 수는 없잖아!

“아냐, 아무리 좋은 컴퓨터라도 설치된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깡통이라는 생각을 했어.”

-아! 확실히 적합한 소프트웨어는 중요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 성능을 못 내는 반푼이가 되니까요.-

…프랑은 별 생각 없이 내 말 그 자체에 대답해준 거겠지만, 내 귀에는 '넌 반푼이야.' 라는 소리로 들린다.

두고 보자 프랑!

손을 뻗어서 초인종을 누르니 아무런 소리가 안 난다?

“뭐지? 이거 고장 난 건가?”

막 초인종을 연타해도 아무런 소리가 안 나서 그냥 인증기로 전화해야겠다고 생…각 하는데 저 멀리서 화연이가 큰 수건을 상체에 걸치더니 순식간에 달려왔다!

쾅!

“어떤 못 배운 자가 이렇게…!”

“…못 배워서 미안해…. 근데 눌러도 아무 소리도 안 났는걸?!”

억울하다! 진짜 억울해!! 진짜로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단 말야!!

문을 쾅 소리 나게 열고 나온 화연이는 온몸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짜증 난 표정을 짓다가 내가 서 있는걸 보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억울해서 눈물 날 거 같아 화연이를 올려다보는데 화연이는 날 잠시 내려다보면서 침묵하다가 뭔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쉰다.

“…미안. 소리 나게 바꿔놓도록 할게. 들어와.”

그러면서 뒤돌아서 들어가는데, B 클래스 능력자가 타이즈 전부가 젖어버릴 만큼 땀을 흘리다니? 거기다, 화연이의 땀 냄새가 움직임을 타고 흘러오는데 시큼털털한 냄새가 아니라 희미한 자두 향이 난다!

천 한 장으로 가슴을 가린 듯한 검은 색 끈 없는 탱크탑에 같은 색의 스판 타이즈를 입고 맨발로 앞서 가고 있는 화연이는 뒤에서 보니 걸을 때마다 골반과 엉덩이가 움직이는 모습이 무진장 꼴…야했다!

우리 누나가 저 탱크탑을 입으면 그냥 허리로 흘러내려 버릴 텐데, 가슴이든 허리든 골반이든 엉덩이든 그야말로 압도적인 볼륨이구만!

75D? G? 컵이 몇이나 될려나?!

…화연이 뒤를 따라가면서 타이즈를 보니 왠지 검은색이 진해 보였다. 슬쩍 손을 내밀어서 화연이의 엉덩이를 만져보니 아니나다를까 타이즈가 다 젖어있었다.

“힉?!”

킥킥. 살짝만 만져봐도 되지만 일부러 손가락에 힘을 줘서 엉덩이 살까지 집었더니 귀여운 비명을 지르면서 움찔해버렸다.

새삼 말랑말랑한 여자 엉덩이는 반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와. 땀을 굉장히 흘렸네. 몸 움직이는 게 그렇게 힘들어?”

“읏…! 그, 그래. 전에 말해줬지? 시화유선을 수련하고 있었어. 조금 답답해져서 땀을 흘리고 싶어졌거든.”

뭐라 말하려고 했겠지만, 내가 먼저 선수를 쳐버렸더니 얼굴을 붉힌 채 버벅거리다가 다시 한숨을 쉰다.

“역시 레이드 팀의 보스니까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안 쓰는구나. 나도 원래는 오전에 오려고 했는데 누나가 억지로 자게 해서 지금 왔어.”

“들었다. 몸이 안 좋아서 어제 내가 돌아간 직후에 쓰러져서 16시간 동안 잠들었다고.”

그러면서 돌아서더니 날 살짝 살펴본다.

“몸은 괜찮아 보이는데 정신적으로 지쳤던 거지?”

“응. 아빠가 내 정신이 한계까지 팽팽히 당겨진 상태랬어.”

“…지금은 어때?”

“모르겠는데? 솔직히 어제랑 지금이랑 느낌은 똑같단말야.”

“흐으음. 일단 소파에서 앉아있어 봐. 조금만 더 하면 연습시간 끝나. 해줄 이야기도 있으니까.”

화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발자국이 막 찍혀있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나? 난 청개구리니까 뒤따라가서 연습에 방해 안 되게 발자국이 안나 있는 곳에 적당히 주저앉아서 구경하려고.

“…후우.”

그런 날 잠시 보다가 또 한숨을 쉬더니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자세를 가다듬은 다음 왼발을 내디디면서 오른쪽 어깨를 비스듬히 내리고 동시에 왼팔을 어깨높이까지 올리더니 오른손은 허리 뒤로, 다시 오른발을 내딛으며….

복잡해!!

그냥 봐서는 살짝살짝 어깨춤을 추면서 부드러운 동작으로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공간 지각으로 보고 있으려니 몸의 어느 한 곳, 내장 한 부분 안 움직이는 곳이 없다!

심지어 질도 구불텅거리고 자궁도 살짝살짝 좌우로 움직인다!

몸 내부의 1,107만의 위상력도 화연이가 움직이는 거에 따라 회전이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면서 강약을 조절하고 있었다.

“…난 못 따라 하겠다.”

아니, 하려면 할 수 있지만 저렇게 움직이려면 온 신경을 몸의 움직임에 집중해 야해서 내 장기인 사고 가속을 못할 거 같아.

근데 화연이도 날 보고 자주 한숨 쉬는데, 울 누나한테 했던 거처럼 한순간 비수를 찌르듯이 콱 찔러서 약점으로 만들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흐흐흐.

내 음흉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연은 전심전력으로 시화유선을 연습했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수련하는 모습이 에로틱하다.

살짝 공간 지각으로 화연이의 옷 너머를 투시해봤는데 당연히 가슴에는 브래지어를 안 하고 있었고 팬티도 끈팬티였다.

어쩐지 엉덩이를 잡을 때 손에 감촉이 탱글탱글하더라.

흐뭇한 표정으로 화연이의 연습을…. 솔직히 말해서 몸매를 감상하고 있으려니 시간이 금방 흘러서 연습이 끝나버렸다.

조금 아쉬운걸.

화연이는 뭔가 휙! 하더니 저 멀리 30m 집무용 책상 위에 놓여있던 마른 수건과 물병을 집고 또 휙! 하더니 내 앞에 나타났다.

…고전 영화에 플래시 맨이라는 무진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미국 영웅물 영화가 있는데 그 모습이 생각날 정도였다.

“오늘은 회복 타입의 능력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게 좋겠지? 네 속성 타입을 확인해보고 싶지만 이곳 장소는 확인하기가 힘들 테니 다음에 한 번에 확인해보자.”

“응.”

“잠시 기다려봐.”

화연이는 인증기로 부르려는지 왼쪽 가슴의 맨살 위에 손을 올리더니 인증기를 켜서 누군가와 통화했다.

그나저나 물리법칙은 어떻게 되는 거야? 발을 굴러서 추진력을 얻은 것도 아니고, 저렇게 빨리 움직이면 공기를 가르면서 광풍이 일거나 해야 할 텐데 멀쩡하잖아?

금방 전화를 끝낸 화연이는 내 앞에 다가와서 땀을 닦으며 날 내려다보는데, 눈빛이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눈빛이다.

프랑도 그렇고 왜 날 저렇게 귀여운 거 보는 눈으로 보냐고?

기회가 되면 흑형의 아메리칸 블랙 스네이크와 맞먹는 내 코리안 빅 스네이크 맛을 보여줘야지. 그럼 저런 표정은 못 지을…려나. 그래도 저럴 거 같다는 예감이 든다….

눈빛이야 어쨌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화연이의 굴곡은 참 바람직하다. 거기다 벌려진 가랑이에 보이는 도끼 자국은, 공간 지각으로 안 봐도 침이 절로 넘어간다. 그리고 시선을 올리면 거대한 유방이라는 이름의 산 두 개가….

“…….”

아, 너무 노골적으로 봤다. 화연이는 얼굴을 붉히더니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회복 능력자를 불렀어. 오면 공간 지각으로 잘 살펴봐.”

“어? 오오. 고마워! 결혼하면 양처가 되겠는걸!”

“뭣! …으으.”

아이 다루는 모습은 못 봤으니 현모는 모르겠고 충분히 양처는 될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얼굴을 붉히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입술이 씰룩거리는 게 다 보여.

애써 웃음을 지운 화연이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어제는 잘했어. 마지막은 네가 직접 주도한 덕분에 마무리까지 어머니의 힘을 빌려 쓰지 않아도 됐으니까.”

엥, 조금 더 놀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근데 여사님의 힘을 빌렸다는 건 무슨 말이야?”

“내가 금요일 밤에, 어머니를 통해 능력자 연합 본부에 항의를 보내고, 이미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라 말을 했던 거 기억나?”

“응. IWO에 제소까지 할 생각이랬잖아.”

“그래. 나도 그 전에, 네가 위상 세계로 이동한 그 날 밤, 나와 이혜령이 나름대로 상황을 예상하고 관련된 대략적인 진행 예상도를 그려봤었어. 니가 언제 귀환할지 모르지만, 귀환하기 전에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능력자 연합을 상대하겠다고 준비를 했었지.”

“울 누나는? 누나가 도와줬으면 도움이 됐을 텐데?”

“시하는 네가 위상 세계로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되고 패닉에 빠졌었어.”

끄응…. 역시 그랬나.

“그렇게 한창 준비 중이었는데 수요일 오후에 어머님이 흘리듯이 넘겨준 정보를 받아서, 그걸 나와 이혜령 총무부장이 총무부 인원들과 함께 다시 한 번 계획과 시나리오를 짜뒀지. 그리고 네가 잠든 뒤에 그걸 어머니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생각으로 전화했었는데, 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토요일을 기대하라는 말씀만 하셨었어.”

“설마…? 여사님은 다른 방식으로 준비를 끝내놓은 거였어?”

고개를 끄덕인 화연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내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던 거야. 어머니의 반응을 본 뒤, 한밤중에 이 혜령에게 전화해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알려주고 대비책을 마련한다고 했었는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어쩐지 어머니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고, 본격적인 협상은 다른 곳에서 진행될 거라는 걸 깨달아버렸어. 그건 다음날 빌딩 앞에서 사무차장님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고.”

아, 그래서 잠도 못 자고 이야기를 나눈 바람에 아침에 그렇게 정신이 멍했던 거구나…. 게다가 차 안에서 한 말도 그렇고, 연합 건물을 나와서도 묘하게 경계하는 듯한 말을 꺼냈더니 그런 이유에서였어.

아무튼, 화연이의 찡그린 눈썹을 보며 역시 여사님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화연이한테 토요일을 기대하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면 보통 수단을 강구하진 않았을 테니까. 은근슬쩍 화연이를 도와주면서 다른 방향으로 해결방안을 마련했다는 거잖아.

“나는 그날 우리 앞에 앉았던 사람들만 상대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네 말대로 그 장소에 모인 사람들만으로 해결할 상황이 아니었던 거야. 능력자 연합의 300만 멤버 전원이 능력자. 그 능력자들을 지탱하는 일반 직원들까지 생각해보면 어지간한 소국만큼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거대한 규모의 집단이야. 어제처럼 그렇게 간단히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걸로 해결될 리 없지….”

“…해결될 거라 생각했어.”

살짝 입술을 삐죽거리니 화연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너도 말했었지? 사무차장님과 내가 아니었다면 네 말을 귓등으로 넘겼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게 아니었어. 오히려 네가 나선 덕분에 일이 잘풀린거였지. 그리고 나도 그때 별말 없이 없었던건,”

내가 나선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됬다는건가?

내 기분을 중요하게 생각 할 만큼 날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어쩐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상한 느낌이다.

화연이의 말을 마저 들었다.

“네 증언을 비롯해 너의 행동으로 발생할 상황을 제외한 나머지 실무. 즉 법을 두고 싸우는 쪽은 나도 그렇지만, 이혜령 부장이나 시하의 장기가 아니니까. 기왕 싸울 거면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쪽을 내세우는 게 좋을 테니 괜히 나서서 어머니가 짜둔 계획을 방해하기보단 가만히 지켜보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려서 그렇게 있었던 거야.”

“그걸 이혜령 부장도 눈치로 알고 가만히 있었던 거고?”

화연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혀가 내둘러진다. 천재들은 늘상 두 세수 앞을 내다보고 일을 진행한다던데, 그게 진짜였던 거다. 그중에 여사님이 가장 위에 서 있는 셈이고. 그에 비하면 나는 말 그대로 오늘만 사는 인생이구나….

“나도 오늘 전달받아 알게 된 일이지만, 중계기를 통해 심의관에서 나눈 영상을 전송받아 다 보고 있었다고 했어. 너도 봤을지 모르겠지만, 심의관에 우리가 앉았던 소파 옆에 장치 하나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거였겠지. 그러니 네가 한 말과 김학준 사무차장님과 차지철 중앙심의위원의 대화에서 나오는 정보를 가지고 청와대에서 세계 능력자 연합 본부에서 나온 실무진과 전문가들이 국제법을 두고 다투고 있었던 거야.”

카메라라니, 전혀 몰랐다. 그 순간에는 방 안의 사람들에게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어서 김학준 사무차장님의 행동을 통해서 어머니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아보고 개입해보려고도 했지만, 그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건 없었기 때문에 개입할 수도 없었지. 그러다가 네가 돌발 행동을 하면서 마무리 일격을 날린 거야.”

으음. 꼭지가 돌아서 받아버린 걸 약간 후회했는데, 오히려 잘한 셈이 거였군. 그보다, 당사자를 다른 곳에 두고 중요한 일은 지들끼리 이야기 나눠버리다니.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다.

“아, 그럼, 중간에 다섯명이서 숙덕거리던 건 지들끼리 협의한 게 아니라….”

“그래. 청와대에 있던 능력자 연합 본부의 실무진과 대응 방안을 논의한 거였어.”

그러니까 리처드 그 인간도 결국 얼굴 마담이었다는 건가? 하긴, 그러니 화연이한테 그딴 눈빛이나 질문을 날렸겠지.

얌전히 자두 향을 맡으면서 화연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결론은 내가 모르는 쪽에서 또 다른 싸움이 여사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차지철 중앙심의위원도 나처럼 꼭두각시였어?”

내 말에 화연이는 조금 안쓰럽다는 표정을 하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너는 꼭두각시가 아니고, 그 역시 진짜야.”

“...진짜치고는 되게 허술한 거 같았는데?”

“그건 네가 압박감을 줘서 심신이 흔들려서 그랬을 거야. 너의 눈에서 흐르던 파란 빛은…. 뭐랄까, 굉장히 위압적이었으니까. 옆에 있던 나도 영향을 받을 정도였는데, 맞은편에서 정통으로 눈빛을 받은 5명은 굉장히 심적 부담감이 컸을 거로 예상해.”

“그, 그거 괜찮은 거야? 무의식적으로 짜증 나서 눈에 마나 시브를 집중한 건데, 공격 같은 걸로 판단 내리면 또 불려가는 거 아냐?”

“적의나 정신계통 공격이 아니라 말 그대로 위압감을 느낀 것뿐이야. 청와대 쪽에서도 그 부분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고 했고. 다만 네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 시켰겠지.”

“끄응….”

어쩐지 시무룩해진 듯한 화연이는 눈을 감고 잠시 한숨을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번 에너지 이터 사건으로 너를 주시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 능력은 나와 너의 상상 이상으로 능력자 연합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걸 이번 일로 알게 됐어. 너도 감지 부분이 이외에는 남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해. 알았지?”

“알았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오늘 청와대에서의 나머지 협의가 끝나고 관련 사항을 어머니에게 전달받았어. 전달받은 사항을 가지고 내일 한정문 주임이 총무부 법률관리팀과 청와대 이능력부처 사람들과 함께 한국 총괄지부에 가서 나머지 협의를 끌어낼 거야.”

대체 무슨 협의를 끌어낸다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화연이도 열심히 애썼지만 결국 여사님에게는 못 당했다는 말인가…. 순간 100년 묵은 구미호가 생각났지만, 얼른 털어버리고 화연이를 바라봤는데 여전히 시무룩한 화연이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머리도 복잡하고 해서 인상을 쓰고 있으려니 화연이 손을 뻗어 내 이마에 잡힌 주름을 살살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예상이지만 네가 B 클래스까지 성장했을 때의 경제효과로 수천억 TP를 예상한다고 했어.”

…뭣이? 수천억 TP는 곱하기 100만 원이니까, 내 가치가 경 단위를 넘어간다고…?

아, 이상한 느낌이 이거였구나, 날 중요하게 여기는게 아니라 내 능력이 비싼 값어치를 지녔으니까 내 감정을 상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한거야.

“고작 450m의 감지 범위 하나로 그렇게 생각한다니....”

“청와대의 전문가들은 네 예전 능력이 B 클래스까지 성장했을 무렵에는 2km가 넘을 범위를 가질 거라고 예측했거든. 전문가들이 다른 감지 능력자들의 성장을 종합해보고 연구해서 내린 결론이니 믿을 수 밖에없었을거야.”

“그거 잘못된 건데….”

우 박사님도 내 능력이 몇 번 성장하면 2km가 될 거라고 했으는데, 그 전문가란 사람들도 대단한가 보다.

“맞아. 단순 감지 타입에서 공간 지각으로 변해버렸으니까 뒷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그 절반인 1km만 되어도 이른바 노다지라고 불리는 지역을 돌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 그건 능력자 연합도 마찬가지겠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응….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관심이 집중된다는 거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화연이는 내 눈을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걸 지금 말해주는 건, 지금까지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너에게 알려주는 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좋을 것 같아서야.”

그럼 난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와 관련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다.

“다행인 점은, 능력자 연합에서 네 능력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거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머니 덕분에 국가 차원에서 널 보호할 거란 부분이야. 두 거대한 집단이 널 주시하고 있으니 다른 잡스러운 것들이 너에게 접근하지 않을 거란 이야기지.”

“…나쁜 점은 뭔데?”

“네 능력이 능력자 연합 고위층에 다 퍼졌다는 거, 어머니가 널 품에 안으려고 더욱 노골적으로 변할 거라는 거. 특히 이번 일을 가지고 너한테 호의를 살 생각일 거야, 어머니는.”

후자를 말할 때 화연이 눈에서 불똥이 튀는 걸 보니 여사님을 가장 큰 적으로 여기나 보다.

“그럼 7개월 활동 정지 처분도 바뀌는 거야?”

“아니, 그건 확실해. 남은 협의라는 건…. 네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겠지만, 네가 능력자 연합과 얼마나 연결점을 가질지, 너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점유율을 얼마나 가져갈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꺼야.”

진짜 기분 나쁘다! 날 무슨 땅이나 건물로 생각하는 거야? 점유라니! 게다가 내 능력을 가치로 환산하는게 물건 취급하는거 같잖아!

“지원은 필요 없어!”

“그러지 마.”

화연이는 부드러운 미소로 내 뺨을 쓸어주고 머릴 쓸어넘기면서 다독인다. 문제는 그런다고 내 화가 사그러든다는거지!

“이번 일로 나도 깨달았어. 내가 갖춘 능력만으로는 널 완벽하게 지켜줄 수 없다는 걸. 그러니까 국가와 연합의 지원을 받아야 해.”

“으으….”

“여기까지 하자. 네가 확실히 알아둬야 할 건 하나뿐이야. 네 마나 시브 능력. 눈에서 빛난다는 걸 제외한 다른 부분을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는 거. 그러면 나머지는 어머니와 우리가 해결해줄 테니까. 그 틈에 너는 최대한 성장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크면 돼. 그리고….”

…그리고?

“어머니의 유혹에 지지 않는 거.”

…….

마지막 이야기에서 확 깬다…. 하지만 또 그런 모습이 귀엽다. 그만큼 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테니까.

조금 시무룩해져 있는 화연이의 기분도 전환시켜줄 겸 표정을 밝게 바꾸며 말했다.

“킥킥. 화연아.”

“으?! 응?”

갑자기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줬더니 화연이의 좁고 구불구불한 질이 촉촉히 젖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즉각적인 반응이라니, 화연이도 프랑 못지않게 음란할지도 모르겠다.

“날 못 믿는 거야?”

“!!”

“너무해. 난 여사님한테 갈 생각은 전혀 없는데.”

아아, 품에 안겨보고 싶다고 하면 허락해줄 거 같은데. 옆에 있으니까 흘린 땀 때문에 체취가 진하게 풍기는데, 달콤하고 새콤한 자두 향기가 가득 맡아진다.

시무룩한 감정이 사라지고 당황하기 시작한 거 같으니 나도 사욕을 챙겨볼까?!

“한번 안아봐도 돼?”

자기 생각이 들통났다고 생각하는지 깜짝 놀란 화연이는 당황해서는 발딱 일어나서 멈칫멈칫거리는데 귀여워서 진짜 못 참겠다!

“뭣?! 안돼!”

“딴짓 안 하고 진짜 안아만 볼게! 진짜!”

“으…. 아, 안 된다.”

“그럼 화연이가 날 안아줘.”

“으으…. 그래! 땀이….”

“상관엄써!”

이대로는 계속 머뭇거릴 거 같아 잽싸게 달려들어서 커다란 화연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위상 세계에서 기술 만들고 날뛸 때 화연이는 뒤에서 날 위해 저렇게 애쓰고 있었다니! 참을 수 없잖아!

내가 달려드는 순간 움찔하면서 공격 자세를 취하려고 하는 게 보였는데 이것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써먹어야지.

“우와…. 무지 푹신하고 부드럽고 촉촉해.”

“아, 아으으.”

얼굴을 가슴에 묻고 고개를 움직이니까 얼굴과 가슴 사이로 얇은 탱크탑 천 하나만 남아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감촉이 내 머리 옆으로 느껴졌다!

두 손이 닿은 촉촉한 피부는 그야말로 매끄럽고 말랑말랑!

화연이는 점점 아랫도리가 간질간질해지는지 허벅지를 오므리면서 살짝살짝 비비는데 공간지각으로 보니 골짜기에서 조금씩 애액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으으, 거시기에 급격하게 피가 몰려서 또 발기되네.

흠칫!

“그, 그만해라!”

아, 발기한 성기가 화연이의 아랫배에 닿아서 그런지 내 어깨를 잡고 확 밀쳐낸다.

“너, 넌 아직 미성년자다!”

어어?! 이 흐름은! 안돼 막아야…?!

내가 뭔가 말하려 하니까 화연이 먼저 손을 뻗어 내 입을 막아버렸다!

“으븝!”

으으극!! 소, 손을 못 떼겠어! 꼼짝도 안 해!

“그러니 그, 사랑은 네가 성인이 되고 차근차근…! 그래, 결혼한 뒤에 하는 거다!”

아, 앙대! 온갖 음란한 말로 먼저 희롱해서 혼을 빼놨어야 했는데…!

크흑. 아아 진짜 한순간의 판단 미스가…!

“시하와도 약속했다.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주기로. 그러니까….”

화연이는 내 허망한 얼굴을 봤는지 그제서야 슬쩍 손을 떼면서 입을 연다.

“그때까지 참도록 해. 대신 네가 성인이 되면, 으흠!”

얼굴을 잔뜩 붉히면서 목을 가다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 그때 내 처녀를 너에게 줄 테니까!”

…헉.

처, 처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까,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다.

“…응.”

나도 얼굴이 빨개지고 화연이도 귀까지 빨개지다 못해 몸까지 붉어지고 프랑도 얼굴이 단풍색으로 물들었다.

“…안 부끄러워?”

“큭! 부, 부끄러워 죽겠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마라!”

으훗. 흐힛. 히히히.

아 이거 참! 입술이 막…. 멋대로 꿈틀거려서 곤란해! 화연이는 그냥 나한테서 돌아서서 정말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고 손바닥으로 얼굴에 바람을 부쳤다.

…2회차 위상 세계의 결과는 나에게 약간의 능력 성장을 남기고, 언젠가 생길지 모르는 이득은 국가와 연합이 나눠 가지는 걸로 결론이 나버린 거 같다.

부끄러워하는 화연이를 올려다보며 속으로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 작품 후기 ============================

킹슬라임님이 써주신 평가는 잘 봤습니다 @_@

이렇게나 세심하게 평가해주시니 어쩐지 기쁘네요. 후기에 기본적인 셀프 네타는 안 하려고 했지만, 살짝이나마 해볼까 합니다.

저도 조아라에 가입하기 전에는 가족의 계정을 잠시 빌려서 400화 이상 연재한 작품들을 읽어봤었는데 그러면서 든 생각은 어째서 다들 대척점을 지거나 대항하는 존재를 두고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걸까 하는 거였습니다.

물론 안 나오진 않지만....

더 이상 말하면 전개 방식마저 눈치챌 분이 나오실 거 같으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연재 중단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은 없고 지금도 기본적인 플롯을 따라 쓰고 있으며 최소 20화 이상의 비축분을 쌓아두고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시는 분들의 코멘트에 수정도 해가면서 하루에 2편씩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진행이 마음에 안 들어서 선작을 삭제하는 분들도 나올거라 생각하지만 처음 쓰는 글인 만큼 확실히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들 눈쌀 찌푸리시는 15화의 그 장면은....ㅎㅎ;; 제가 정신병자라서 그런 씬을 넣은 게 아니에요. ㅠㅠ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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