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93화 (93/517)

00093  나와 프랑과 연이와.  =========================================================================

…어?

??

뭐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주변이 캄캄하다.

옆을 보니 프랑이 몸을 빛내면서 잠들어 있는 게 보였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3시다.

“헐.”

아빠 말이 진짜였나 보다. 그럼 바짝 조여진 정신이 풀어진다는 건 어떤 느낌이지?

잠시 프랑을 향해 돌아누워서 빛이 흘러나오는 프랑의 예쁜 알몸을 구경했다. 그러고 보면 프랑의 영혼석에 TP를 채울 방법은 찾았는데, 그 방법이 문제라서 좀 그러네.

내가 TP를 충전할 때마다 미약 먹은 것처럼 발정 나면 곤란한데.

나 말고 프랑이 곤란하다는 거지! 내가 곤란할게 뭐 있어?

마나 시브를 페니스에 집중하면 마치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파랗게 빛나면서 커지고 굵어지고 발딱 선다! 정액도 마나 시브의 영향을 받아서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거 같은데, 크고 굵고 길고 오래가게 변했으니까 고개 숙인 남자가 되진 않는다고!

근데 내 정액에도 TP가 섞여서 조금 파란 빛을 띄고 있었지? …프랑의 목구멍 안에 사정할 때마다 프랑은 감전된 듯이 부들부들 떨었었는데, 그 상태로 프랑의 영체 속을 흘러내리다가 TP가 사라지면 모피에 떨어졌었고.

공격용으로 발사한 TP랑은 또 다른 효과를 가지고 있는 건가?

게다가, 프랑의 영체는 감각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그, 목구멍을 생각해보면 내부 장기도 구현되어있을 거 같은데 그럼 통증도 느끼나? 만약 영체가 절단당하거나 공격받으면 어떻게 되지?

아침에 일어나면 물어봐야겠다.

…슬쩍 프랑의 가느다란 목을 힐끔 보다가, 눈을 돌리고 왼손을 위로 뻗어 마나 시브를 집중해봤다.

마나 시브, 프랑을 만질 수 있게 해주고, 몸 안의 위상력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해줄 수 있는 능력. 영혼석과 위상석에 TP를 충전시킬 수도 있는 능력.

내 몸속에 고요하게 존재하던 위상력이, 소비되지 않으니까 TP가 아니지. 위상력이 왼손에 집중되면서 물빛이 잠시 흐르다가, 점점 응축되기 시작하면서 파란빛을 뿌리기 시작하는데 방안이 물결치는 물빛에 물드니 묘하게 가슴 설레이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물빛? 내 왼손은 분명 파란 빛을 내는데 어째서 벽에는 물빛이 보이는 거지?

흐음. 캄캄한 방 안에 물빛이 가득 차면 조금 호러 영화삘이 날 거 같았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드네.

그 뭐냐, 파란 조명이 공포영화에서 많이 쓰이는 이유가, 파란색을 오래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진정되는 효과가 있다고 하거든? 그런데 빨간색을 보면 심박 수가 오르면서 흥분하게 되는데 그렇게 빨간색이랑 파란색을 번갈아 밝히면서 사람들의 심리를 뒤흔들고, 그다음 귀신이 우왕~! 하면서 놀래키는 패턴이라는 거지.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 홀릴 때 빨간 옷이나 빨간 립스틱, 빨간 속옷을 쓴다고 하더라?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있지.

아무튼 방 안을 물빛으로 가득 채우니까 마치 포근하고 따뜻한 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드는 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꽤 좋았다.

한껏 응축된 마나 시브를 움직여 손끝으로 내보낸다고 생각하니 손가락 끝에서 파란빛의 TP가 점점이 솟아 나와 내 팔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오오? TP가 내 몸 외부를 흐르는 게 느껴져!

아, 마나 시브 때문인가?

꽤 신기한 기분이었는데, 흡수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 팔을 따라 천천히 흐르던 TP가 순식간에 몸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헤에~.

잠깐 눈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봤더니 여전…히는 아니고, 파란빛에 물빛이 섞인 거 같다. 마나 시브를 풀고 그냥 봤더니 파란빛만 보인다. 다시 켜니까 파란빛에 물빛이 확실히 섞여 있는 게 보이네.

눈에 마나 시브를 모으는 거, 이건 마나 비전이라고 불러야겠다.

마나 비전을 키고 왼손 끝에서 계속 TP를 흘려보내니 왼팔을 따라 흘러내린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몸으로 흡수하면서 놀고 있으려니 프랑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눈부시지 않은 환한 금빛이 프랑의 전신에서 퍼져 나오더니 빛이 사그라지면서 프랑이 눈을 뜨고 날 바라본다.

-서하, 일어났나요?-

“응. 나 12시간 동안 잠들었던 거야? 누나가 날 토닥거려줄 때부터?”

-지금이…. 새벽 3시네요. 맞아요. 누나분이 서하의 가슴을 토닥거려주기 시작하고 눈을 감으셨는데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 드셨었어요. 누나분도 많이 놀라셨구요.-

“그랬나? 나도 신기해. 전혀 피곤하지 않았었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12시간이 지나있었다니까?”

-그만큼 정신적으로 피곤한 상태였다는 이야기지요? 2일간 잘 주무시지도 않고 신경을 많이 쓰셨잖아요. 그리고 돌아온 뒤에도 4시간 정도만 잠들었다가 그 못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셨으니까요.-

그것보다 프랑의 유사 성행위에 심력을 많이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이것도 프랑한텐 말 못하겠다. 킥킥.

아무튼, 날 괴롭힌 사람은 프랑한테 전부 못된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겠구나. …나중에 화난다고 사람들한테 막 벼락 쏘고 그러진 않겠지?

“프랑은 언제부터 잤던 거야?”

-가족분들이 잠들고 나서 저도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왼손을 들고 뭐하시는 건가요?-

우웃. 프랑은 살짝 몸을 움직여 내 팔에 머리를 올리고 팔베개를 하면서 물어본다. 그러고 보니 화연이의 행동에 휩쓸리고 당황하고 놀라서 그 뒤로 프랑이랑 이야기를 못 했네.

“손끝에서 TP를 내보내면 TP가 내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어쩐지 재미있어서, 지금 방 안이 물빛으로 가득 찼는데 프랑은 어떻게 보여?”

내 말을 들은 프랑은 살짝 고개를 들어 내 왼손을 보다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왼손에서 빛나는 파란 색은 보이지만, 방 안은 어두운걸요?-

으음? 손에서 빛은 보이는데 방안에 가득 찬 물빛이 안보인다구?

“TP가 흘러내리고 있는데 그것도 안 보여?”

-네? 으음….-

프랑은 살짝 눈을 찌푸리며 내 왼손을 바라보는데 덕분에 안보인 다는 건 알겠다.

“마나 시브로 집중한 파란빛이랑 비슷해서 그런가? 이건 보여?”

오른손을 들어 올려서 살짝 TP만 뽑아봤다.

-아! 보여요.-

“색 농도가 완전히 똑같아서 그런가?”

-그런가 봐요.-

역시 물빛은 나만 볼 수 있나 보다. 그리고 TP랑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빛나는 파란 색은 다들 볼 수 있고.

-서하의 마나 시브는 정말 대단하네요. 위상력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구.-

“그렇지? 아무튼, 아까 생각한 건데 말야. 프랑은 내가 만지면 감각을 느낄 수 있잖아?”

-네에.-

“그럼 통각도 있어? 만약, 공격받아서 어딘가 영체가 잘린다던가하면….”

걱정스러워하는 내 표정에 프랑도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시험해볼까요?-

“시험? 어떻게?”

-서하가 손에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제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보는 거에요.-

“오, 그런 방법이 있구나.”

나는 마나 시브가 집중되어있는 손을 뻗어 살며시 프랑의 백금발 머리카락 한 올을 잡아서, 뽑았다.

“?!”

뽑힘과 동시에 백금발 머리카락은 빛으로 변하더니 프랑의 몸에 흡수되었다.

-음~.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재빨리 프랑의 안색을 살펴봤는데, 내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거짓말하는 기색은 없었다.

“…다행이다. 감촉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내 마나 시브 때문인가?”

-다른 사람들도 못 만지고, 서하도 이전에는 만질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렇겠네요.-

내 팔에 다시 머리를 기대고 내 옆에 조금 더 붙은 프랑은 손을 들어 내 가슴을 살살 쓰다듬었다.

-다시 주무세요. 아직 밤이니까 좀 더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응. 그전에 프랑이랑 마저 이야기를 나눠야지. 화연이의 행동에 휘말리면서 프랑과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잖아.

-네?-

“화연이 누나도 프랑을 인정했어. 날 떠나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 프랑도 생각을 바꾸고 얌전히 내 여자가 되는 거야.”

-읏!-

“프랑이 잠깐 보여줬던 불안한 표정에서, 프랑의 마음을 눈치챘어. 프랑 혼자 내 마음을 차지하다가 혹시나 내가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싶었던 거지?”

-아으으…. 서하는 정말 독심술을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

프랑은 내 이야기에 얼굴을 빨갛게 붉히더니 내 옆구리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프랑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프랑만 좋아하려고 했는데 화연이까지 낚아채 버렸으니까…. 하지만 이제 다른 여자들한테는 마음을 안줄 거야. 프랑이랑 화연이만 보고 살거라구!”

난 몸에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프랑의 허리를 힘껏 당겨 품에 껴안았다.

-서, 서하….-

“또 다른 핑계를 대고 날 거부할 거야?”

-…아, 아니요.-

“얌전히 내 여자가 될 거지?”

-되, 될게요….-

프랑은, 울음이 섞인 목소리와 붉어진 얼굴로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사랑해 프랑.”

-흑. 저도 사랑해요 서하.-

결국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프랑을 품에 꼭 보듬어 안으며 프랑의 정수리에 코를 묻었다. 가슴에서 뭉개지는 프랑의 가슴의 감촉에 마음이 설렌다.

이제 됐어. 더이상 나와는 인연이 없는 외부인처럼 굴지는 않겠지.

일이 좋게 끝나서 다행이다.

“프랑한테서는 사과 향기가 나. 키스 할 때도 사과의 달콤한 맛이 났었는데 신기해.”

-후으으. 사과 향기라니…. 전 영체인걸요?-

“근데 진짜 사과 향기가 나. 그러고 보면 아까 화연이는 자두 향이랑 자두 맛이 났는데.”

-혹시 그것도 마나 시브의 효과가 아닐까요?-

“어? 음, 그럴 수도 있겠네?”

나는 왼손을 들어 프랑의 눈가를 흐르는 눈물을 살짝 닦아주었다.

“이제 울지 말고 나만 믿고 따라오면….”

-아!?-

엉? 프랑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주변을 휙휙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만 떠서 내 품이랑 방 안을 돌아보더니 놀랍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보, 보여요! 방 안을 희미하게 밝히는 물빛이!-

“어? 어떻게?”

-아! 서하는 왼손으로 손에서 TP를 내보내고 있었지요? 그 손으로 제 눈을 쓰다듬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어라?!

“화, 확실히 손에 TP가 흐른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는데.”

다시 왼손 끝에 위상력을 집중해서 TP를 내보내기 시작하더니 프랑이 작게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빛이….-

으응? 그냥 보는 파란 빛이랑 내가 보는 파란빛이 조금 다른가? 하여튼 이쯤 되면 내 마나 시브 능력은 대체 뭔가 싶어진다.

“…….”

나는 잠시 왼손에 솟아오른 TP를 내 눈에 발라봤다.

꿈뻑꿈뻑.

“내 눈에 발라봤는데 아무 변화도 없네?”

-그건 서하의 능력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그냥 체내의 TP를 뽑아서 눈에 발랐더니 특별한 효과가 나타났는데 그게 능력이라고? 내 위상력의 색이나 속성은 다른 능력자들이랑 다를 게 없는 거 같은데?”

-에너지 이터 건을 생각해봐도 그건 서하의 능력인거 같아요! 마나 시브가 되기 전부터 효과는 있었겠지만, 미처 눈치를 못챘던 거죠!-

특성이 변화한 에너지 이터 말인가? 으음.... 잔뜩 흥분하는 프랑의 두 눈에 손을 뻗어 눈꺼풀 위로 위상력을 조금 발라봤다.

-꺄아…?-

그랬더니 프랑은 눈을 부릅뜨더니 날 황홀한 눈으로 정신없이 바라본다.

-아, 아아…. 서하는 천사님인가요…?-

켁! 콩깍지 병이 악화됐다?!

프랑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떨리는 눈으로 내 모습을 바라보길래 나도 얼떨떨한 눈으로 프랑을 올려다보고 있으니까 스르륵 내 위에 몸을 포갰다!

-하아아….-

눈을 감고 상기된 얼굴로 내 가슴에 뺨을 살짝살짝 비비는 프랑은 정말 황홀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침을 꼴깍 삼키면서 불안기대감이 솟아오른다.

지금은 다들 자고 있으니까 몰래라면…!

두 손을 뻗어 풍만한 프랑의 엉덩이를 움켜잡아본다. 손이 엉덩이를 파고드는 감촉이 끝내준다!

-안돼요!-

찰싹!

“엑?!”

프랑은 자기 엉덩이를 잡은 내 손을 찰싹 때리더니 아들을, 아니 동생을 혼내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서하는 지금 피곤한 상태니까, 더 피곤해지는 행동은 금물이에요!-

칫…. 성적으로 흥분한 게 아니라 감정이 고조된 거였나…!

불만스럽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거리니 프랑은 상기된 얼굴로 풀썩 웃으면서 버드 키스를 해줬다.

-모, 몸이 건강해지면…. 서하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드릴 테니까 그때까지 참으셔야 해요. 알았지요?-

“무, 뭐든지?”

-네에.-

꼴깍!

“그럼 사랑도 하게 해줄 거야?”

-읏….-

프랑은 그야말로 부끄러워 죽을 거 같다는 표정으로 내 가슴에 다시 얼굴을 묻으며 입을 열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프랑의 입술 감촉이 참…. 좋네. 흐흐흐흐.

-네에….-

감당 안 되게 부풀어 오르는 육봉의 느낌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 육봉이 잠옷 너머로 프랑의 아랫배를 쿡쿡 찌르는 것도 느껴지니까, 참기가 힘들다!

“으으. 참기 힘들어 프라앙.”

프랑의 말을 들었더니 오히려 더 욕정이 피어오르는 거 같다. 그러니까 프랑을 품에 안고 어리광을 부리면서 몸을 더듬으면 프랑도 못이긴 척 허락을 해줄지 몰라!

방긋.

화아아악

살짝 허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주물렀더니 빛을 뿌리면서 영혼석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프랑.

“…프랑?!”

어어어어?!

“아냐! 안 할게! 더듬지도 않고 안주 무를 테니까 나와줘!”

화아악!

멍하니 공중에서 금빛이 모여 생겨나는 프랑의 영체를 보고 있으려니 이윽고 전신이 드러난 프랑이 약간 발그래해진 얼굴로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이렇게 나체로 다니니 서하가 제…. 보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건강해질 때 까지 특정 부위의 과도한 접촉은 금지에요!-

“그런!”

억울해서 프랑도 내 몸에 가슴을 비비고 어루만지지 않냐고 하…면, 스킨십도 줄여버릴 거 같다. 말하지 말자.

-만약 제 영혼석을 직접 만져서 절 억지로 발, 흥분하게 만들어버리면 하루 동안 영혼석 안에서 안 나올 거에요!-

큭. 간파당했다?!

-그걸 반복하면 시간도 2일 4일 8일. 쭉쭉 늘어나요~?-

크윽….

“프랑 너무해.”

진심으로 너무하다는 표정을 지으니까 공중에 떠서 날 내려다보던 프랑도 쓰게 웃으면서 내 팔을 베개 삼아 누우며 말했다.

-그러니까 건강해지면 그때…. 서하는 착하니까 약속해줄 수 있죠?-

끙.

“그 건강의 기준은 뭔데?”

그러자 멈칫하는 프랑. 그 모습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당황한 듯 내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생각 안 해뒀구나.”

-윽! 아버님이 건강하다고 판단 내리시는 걸로 할게요!-

“좋아. 그 정도면 나도 인정하겠어. 그나저나 아버님이라니, 아빠가 들으면 며느리가 늘었다고 좋아하겠네.”

-꺅?!-

그제서야 자기가 한 말을 깨달았는지 내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고 파닥파닥 거리기 시작했다.

좀 아쉽지만, 프랑이 저렇게나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참아야겠다. 그래도 아빠가 날 건강하다고 판정을 내려주면 바로 프랑이랑 으흐흐 할 수 있으니까 얼른 건강해지게 노력해야지!

화연이랑도 하고 싶은데, 어쩐지 화연이랑 울 누나 반응을 보니까, 적어도 19살이 될 때까진 안될 거 같다….

생각하다 보니 조금 심술이 나서 잠시간 프랑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서 울상을 짓고 약하게 저항하는 프랑을 괴롭히다가 잠을 청했다.

“…하야.”

으음.

“서하야….”

으응…?

“서하야 일어나!”

“어…. 누나?”

“일어났어? 아침 먹구 조금 더 자.”

눈을 뜨니 눈앞에 누나의 안쓰러운 표정이 보였다. 날 억지로 깨운 게 미안했는지 내 이마를 쓸어주고 있었는데 프랑도 언제 일어났는지 옆에 앉아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프랑이 쓰다듬어주는 느낌이랑 누나가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 뭔가 따뜻하고 촉촉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꿈을 꿨는데, 혹시 프랑이 안자고 계속 쓰다듬어 준건가?

“응.”

웬지 머리가 멍하다. 이불을 옆으로 걷고 침대에 앉으니 조금 정신이 없어서 가만히 눈만 감고 있었다.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잔뜩 걱정이 서린 누나 목소리가 들리고, 공간 지각으로 프랑도 염려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여서 일부러 평온한 척 입을 열었다.

“대체 내가 얼마나 잔 건지…. 정신을 못 차리겠어.”

근데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제 오후 3시 조금 넘어서 잠들었어. 그 뒤로 쭉 16시간 정도 잔 거야.”

“응. 세수하고 나갈게.”

“아침은 간단하게 먹구 조금 더 자. 알았지?”

아침 먹고 씻고 타임리버 빌딩에 가봐야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누나가 걱정하다 못해 화를 낼 거 같은데.

눈을 뜨고 누날 보면 들통날 거 같으니 그냥 간단하게 대답해주자.

“…응.”

근데 살짝 눈을 흘겨보는 게 공간 지각으로 보인다?! 뭐야, 눈치챈 거야?!

“화연이한테 갈 생각이야? 전화해서 점심 먹고 갈 거라고 연락할 거니까 오전에 나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컥! 어, 어떻게 알았어?!”

깜짝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누날 보니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야말로 닿을 듯 말듯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인다.

“니가 하는 짓이 뻔하지! 아무튼, 오전에 나갈 생각 하지 마. 알았어?”

윽. 거봐 화났잖아.

“알았어….”

그냥 프랑을 껴안고 침대에 뒹굴면서 인증기나 살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메일이 몇 개 왔었지?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거실로 나갔더니 아빠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앞에 좌탁에는 책이 몇 권 올려져 있는데 신문을 다 보고 나면 책을 또 볼 생각인가? 아무리 일이라지만 저렇게 책만 보면 무진장 지칠 거 같은데.

거실에 서서 아빠가 들고 있는 신문의 1면을 살펴보는데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던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아들. 일어났니?”

“응.”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는 내가 나온 모습을 보고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다.

-서하가 잠들구 얼마 안 돼서 어머님이 서하를 보러 오셨었어요.-

잉? 그랬나? 적의가 없으면 공간 지각도 경고 안 해주는 건가? 의외로 허술한데.

“이렇게 오래 잘 줄은 몰랐어.”

“무의식에 그만큼 피로가 쌓인 거다.”

“하지만 생환하고 9일 동안 병원에서 놀고먹기만 했는데?”

아빠는 무표정한 얼굴로 신문을 넘기며 말했다.

“무작정 오래 쉬는 것도 정신에 피로를 준다. 가장 좋은 건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한 식습관을 들이면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거지.”

어제 프랑이 내건 조건이 생각나서 아빠한테 물어봤다.

“그럼 난 안 건강한 거야?”

아빠는 내 질문에 날 한번 보더니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안 건강하다.”

큭!

슬쩍 프랑을 바라보니 팔짱을 끼고 가슴을 강조하면서 '그것보세요!' 하는 프랑이 보였다. 그걸 보라니…. 프랑 가슴밖에 안 보이는데?

아침 준비가 오래 걸린다 했더니 전복죽을 만드느라 그랬나 보다.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한 죽이랑 야채 샐러드를 먹고 6성 호텔 VVIP 요리보다 엄마 요리가 더 맛있다고 칭찬해줬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즐거워했다. 평소랑 다른 메뉴가 나오면 늘상 칭찬해주는데도 엄마는 칭찬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거 같아.

징.

엄마랑 누나가 상을 치우는 걸 도와주고(더 좋아하셨다!) 방에 들어와서 인증기를 켰더니 메일이 3개가 온 게 보였다.

[계약금 및 에너지 이 터 포획 보상금 관련]

[타임리버 레이드 팀 조직표 및 안내사항]

[정령 같은건 못봄]

“앗! fallsexmachine한테 보냈던 문자의 답장이구나!”

프랑도 관심이 오는지 내 등에 찰싹 달라붙어서 홀로그램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도 재빨리 터치해서 내용을 확인했다.

[정령 같은 건 못봄]

[멀리서는 활을 쓰고 붙으니 검을 썼었음.]

…정령을 못 본 건가? 못 쓰는 건지 안 쓰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네. 좀 성의 없어 보이는 글이지만 나도 문자를 성의 없이 보냈으니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

“우움. 역시 따로 알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네에.-

프랑은, 딱히 실망하거나 하지도 않는 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새 마음 정리를 한 건가?

잠시 정령을 키워드로 검색해봤지만, 악령이나 귀신 요괴 같은 쓸데없는 것들만 튀어나와서 다 종료하고 다시 계약금이랑 에너지 이 터 포획 보상금 메일을 터치했다.

메일은 이혜령 부장한테서 온 거였는데 목요일 오전에 50억이랑 에너지 이 터 포획 보상금 11억이 입금 됐다는 내용이었다.

와우. 화연이는 7억을 예상한다고 했는데 4억이나 많은 11억이 들어온거야?

그나저나 솔직히 계약금은 어떤 목적으로 주는 건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딴 데 가지 말라는 뜻으로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물론 옮길 생각도 없지만, 만약 타임리버를 나가게 되면 계약금을 다 돌려줘야 하는 건가?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프랑에게 물어봤지만, 기사 출신 프랑도 모르는 부분이었다.

잠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계약금이라는 건 무언가 계약을 맺으면서 선지급으로 10%를 먼저 지급하는 걸 계약금이라고 하고 거래가 진행되면 나머지 90%를 주는 걸로…. 으응? 이건 내 경우랑 다른 거 같은데.

아, 운동선수랑 비슷한 건가? 잠시 운동선수의 계약금을 살펴보니 계약금은 단 한 번 받는 거고 연봉은 매년 받는 거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내 가치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척도인 건가 보다.”

-아~, 나이트 포텐셜과 비슷한 의미였네요!-

“어?”

-영국의 기사들은 특정 가문에 소속되어있는 가신들이 많지만, 일정량의 대가를 받고 레이드에 참여해주는 자유 기사들도 많답니다. 그 자유 기사들에게는 포텐셜이 붙어있는데, 이 포텐셜이 높을수록 보다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어요.-

호오. 그런 게 있었구나.

아무튼, 18살에 61억을 번 건가!

흐흐흐흐.

음흉하게 웃고 있으려니 프랑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근데 막상 돈이 많아졌지만, 하고싶은 게 별로 없네. 운전 면허가 없으니 차도 못 사고, 게임보단 내 능력을 연습하는게 더 재미있고, 만화는 내 인생이 이제 만화 같아졌잖아. 로맨스 소설같은것도 프랑이랑 화연이가 있고 야동이나 야망가도 프랑의 몸이....

꿀꺽.

암튼 목 뒤로 느껴지는 프랑의 가슴 감촉을 느끼고 있으려니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쓸데는 없지만 가지고 있으면 좋은거지! 나도 이제 부자야! 그리고 1월 1일이 되면 5천억이 더 들어온다는 거지?

글의 아래에는 ps가 달려있었는데 월급은 매달 25일마다 입금되고 나는 5월 25일에 4월 15일~30일간의 월급이 나오고 6월 25일 날 정상적인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근데 그 아래에는 계약금과 포획 보상금에서 세금으로 12억 조금 넘게 나간다고….

-세금이 많이 나가네요.-

…납득이 안가서 이혜령에게 문자를 날렸다.

띠롱

[국가에서 계약금이랑 보상금에서도 세금을 떼가는 거에요?]

[냉무]

전송!

그리고 타임리버 조직표를 터치해서 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남녀 관계는 현실의 밋밋함을 표현하기보단... 그냥 판타지풍으로 제 번뇌를 때려박는 중입니다.

그리고 세로우피셔님을 비롯해서 다른 분들의 댓글을 보니 조금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네요. 등장 인물들의 미래는 대부분 정해놓고 진행중인데....

주인공 누나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3화 후반부에 씬을 추가하고, 원래 있던 설명충글은 설정란으로 이동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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