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89화 (89/517)

00089  직무유기에 대한 벌은 받아야지.  =========================================================================

“…아, 네에….”

붉어진 얼굴로 내 어깨에 몸을 기댄 모양인 화연이 누나를 본 한여울과 조미린은 그야말로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고 리처드와 게롤트는 패배한 남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킥킥.

그에 비해 차지철은 냉정한 눈을 번쩍이며 내 눈을 살펴보고 있었다.

잠시 공간 지각으로 차지철의 위상력을 확인해봤지만, TP가 소비된 것도 아니고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 말 그대로 날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근데 최수한은 왜 화연이 누날 노려보는 거지? 아까까진 그냥 풀죽은 표정이더니.

“…이해했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김학준과 열띤 설전을 벌이다가 패배한 개가 된 다섯 명은 잠시 자리를 벗어나서 자기들끼리 모여 숙덕숙덕 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차지철이 말했다.

“김학준 사무차장님의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능력자 연합에서는 정서하 씨의 행동에 대해서는 위법이라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군요.”

“으음.”

김학준 차장의 표정이 굳어지고 이혜령도 꾹 참는 모습이 보인다.

“정서하 씨의 자질과 판단력, 그리고 능력은 그야말로 클래스에 맞지 않는 월등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무런 언급도 없었고, 별다른 보조 장비조차 없이 맨몸으로 2회차에서 생환하실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의구심이 듭니다. 인증기를 여러 번 사용했다는 흔적이 남아있는데, 어째서 위상 세계 재입장에 관한 항목은 알아보지 않았을까.”

“억측입니다!”

이혜령 부장은 차지철이 뭘 말하려 하는지 눈치챈 듯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차지철은 잠시 이혜령 부장을 바라봤을 뿐, 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물론 저희 직원인 강우혁 차장과 최수한 대리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정서하 씨의 뛰어남을 생각한다면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13일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는데도 재진입에 관해 알아보지 않았다는 건 역시 자율 규제의 틀에 따르는 능력자 보호법을 대조해본다면 정서하 씨의 책임이 없다고는 못하겠죠.”

김학준 차장과 이혜령의 눈쌀이 찌푸려지는 걸 보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나 보다. 누나도 한껏 화가 난 표정으로 강우혁과 최수한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바빴다니까? 엄마랑 누나한테 잡혀서 딴짓도 못하고 9일 동안 병원에서 먹고 자고 반복했고, 인증기를 받은 건 금요일이었는데 토요일 일요일은 독순술 배우느라 바빴던데다가 일요일 밤에는 프랑의 이야기를 밤새워 들었었고, 월요일은 겨우 복귀한 학교에서 오만 정신 사나운 일을 다 겪고, 오후에는 에너지 이터에 휩쓸리고 능력이 두 번째 각성하고, 화요일에는 포획한 에너지 이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 듣고 머리 쪼개지도록 고민하다가 여사님 만나서 충격먹고 밥 먹고 살롱에서 누나들이랑 이야기 나누다가 화연이 누나 집에서 충격적인 과거 일 듣고 바로 2회차 위상 세계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이렇게 말로 하면 300글자가 조금 넘는데…. 글로 쓰면 편수로 나눠서 49편은 나올 거 같아!

시답잖은 생각은 그만두고 김학준 차장과 다섯 심의위원이 나누는 설전을 들으면서 계속 생각하던 부분을 찔러봐야겠다.

좀 짜증 나기도 하고.

“저기, 저도 한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말씀하십시오.”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으로 존대하는 모습에 조금 압박감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최고위 이형종의 압박감에 비하면 코웃음 날 정도고, 신비함을 생각한다면 초거대 거북이의 발가락 사이의 때만도 못한 정도.

“결국은 제가 살아왔다는 게 문제가 되는 거죠?”

“…네?”

이히히. 무표정에 균열이 갔다. 남은 4명도 놀란 표정이 되고.

5명의 심의 위원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느낌이 오더라고. 저 사람들은 나에게 빚을 지워서 최소 연합과 협력하는 위치를 만들려고 한다고.

그걸 확신한 건 리처드의 반응을 보고, 방금 차지철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였다.

그렇잖아? 일부러 본부에서 여기까지 나왔는데, 그딴 질문을 던진다는 건 날 처벌할 생각이 없다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날 처벌할 생각이었거나였을텐데, 전자를 생각해보면 차지철의 반응은 처음부터 조심스러웠거든.

그러니까 내 약점을 잡고, 빚을 지워놓으려는 생각 같다는 거지.

아니면? 아니면 마는 거지 별거 있나? 내 잘못도 아니잖아?!

거기다 이 정도로 알카트라즈에 갇힐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진짜 알카트라즈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든지 위상 세계로 들어가 버릴 거야. 가서 내 자질 만큼 성장하기 전엔 안 나와. 그리고 나오게 되면 능력자 연합이건 뭐건 다 박살 내버릴 거다.

가족이랑 화연이 누나가 조금 걱정되지만 화연이 누나라면 내 가족들을 잘 지켜줄 거다!

그러니까 내가 깽판을 놔주지!

아 몰라! 짜증 나! 내 잘못도 아닌데 왜 그 일을 가지고 날 이용해먹으려 드냐고!! 열 받는다고!!

역시나 나랑 한 달 가까이 함께 지낸 프랑은 내 표정을 보더니 뭘 하려는지 눈치채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안색을 굳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방글방글 웃으면서 5명의 심의위원을 보며 말했다.

“심의위원님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까, 제가 안 죽은 게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잖아요?”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그게 아니라면 위상력 운용 기술조차 배우지 못한 생환 1개월 차 미성년 능력자가 어떻게 복귀할 수 있었는지는 생각 안 하셨다는 거에요?”

내 말에 그제야 7명 모두 놀란 눈이 된다.

“귀환이라면, 귀환 포인트를 찾기만 하면 어떻게든 됩니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근처에만 있어도 자연히….”

“그러니까 제가 겪은 일은 상관없고, 제가 한 행동만 문제로 삼겠다는 말로만 보였는데 아니에요?”

“…….”

차지철의 말을 끊으면서 들어갔더니 조금 낭패한 기색으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진짜였냐?

“후후. 절 너무 과대평가해주시는 거 같아서 기분은 좋지만, 어처구니가 없네요. 귀환하고 13일 동안 아무런 언질도 못 받은 것도 화나고, 오소은 소장 역시 나한테 해줘야 할 설명조차 안 해주고 넘어간 것도 화나고, 남들이 제 정보를 마구 뒤져보고 퍼트리는 것도 화나고, 언급 받지도 못해서 본의 아니게 위상 세계로 또 빨려 들어간 것도 화나고, 중위 이형종을 만나고 중하위 이형종 7마리에 하위 이형종 수백 마리를 만나서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2주차를 빠져나왔더니 "진입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멋대로 들어가 버린 니 잘못이다?"”

사정을 다 알고 있는 화연이 누나는 물론이고 나랑 프랑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도 수백의 이형종 이야기에 가슴이 철렁한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나도 말하다 보니 점점 열불이 뻗친다.

“…정서하 씨, 조금 흥분하신….”

한여울이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길래 다시 말을 끊고 들어간다.

“이래놓고 능력자를 위하는 능력자 연합이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거예요?”

내 말에 입을 콱 다물어버리는 한여울.

“그래서 제가 받아야 할 페널티는 뭔가요? 알카트라즈에라도 갇히나요?”

“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말씀해보세요. 전 고작 혼자인데 거대한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한테 개기기야 하겠어요?”

계속 웃고 있는 내 얼굴에서 상당히 압박감을 느끼는 듯 입을 다물고 있는데, 순간 짜증이 확 나서 두 눈에 마나 시브를 최대한 집중하면서 입을 열었다.

“위법을 저지른 저에 대한 처벌이 뭐냐고 묻고 있잖아요?”

눈에 마나 시브가 한껏 집중되니 물빛으로 빛나다 못해 파란 불이 흩날리듯 눈에서 TP가 흘러내린다.

그 모습에 내 앞에 앉은 5명의 심사위원과 강우혁, 최수한은 마치 이무기 앞에 섰던 내 모습처럼 얼어붙어서 눈 한 번 깜짝 못하고 있었다.

“최수한 씨.”

“네, 네?!”

내게 이름이 불린 최수한은 화들짝 놀라면서 내 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말씀해주세요. 까먹고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아니면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아, 그.”

“시간은 많았잖아요. 안되면 바로 옆이 연합 병원인데 쉬는 시간에 잠깐 와서 알려주고 가는 것도 못할 정도로 바빴어요?”

“아.”

“하지만 저번 월요일에 전화했을 땐 곧장 달려오셨었죠? 그걸 보면 그렇게 바빴건 아닌 거 같은데?”

“으으….”

내 말에 주변이 조용해진다. 교실에서만 아니라 여기까지 침묵을 생성할 줄은 몰랐는데. 그 와중에도 최수한은 또 애액을 주르륵 흘리면서 팬티를 적시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진짜….

“김학준 사무차장님?”

“으, 음? 왜 그러나.”

“저분들은 어째 질문에 하나도 대답을 안 해주시네요. 이런 경우에 제가 받는 처벌이 어떤건지 혹시 사무차장님은 아시나 싶어서요.”

“…위상 세계 무신고 진입은 상당한 중범죄로 분류된다네. 그렇다고 알카트라즈 수용소에 보낼 정도의 일은 아니네만, 아마도 몇 년의 헌터 활동 금지 처분이 아닐까 하네.”

“몇 년이면 대충 얼마 정도일까요?”

“짧으면 5년, 길면 20년일걸세.”

얼굴이 확 굳어진다.

다른 데서 봤지만, 능력자들의 세금은 상당히 센편이다. 능력자 일을 하지 않으면 세금 때문에 금방 파산할 정도로. 버는 게 많으면 내는 거랑 쓰는 것도 많아야 한다든가.

그럼 나이 먹고 일 못 하게 되면 어쩌냐고 하는데 그땐 정식 신고를 통해서 능력자 전투 폐업신고를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화연이 누나같은 사람이 아닌 평범한 내가 저런 처벌을 받으면 좆☆망이라는 뜻이라고.

파산하든가, 폐업 신고를 하고 두 번 다시 위상 세계로 들어가지 말던가!

하아아. 좆같지만 어쩔 수 없지. 누나한테 TP가 바닥난 고위 이형종 위상 석을 되는대로 수집해달라고 할까?

지금도 E 클래스의 위상력이 모여있긴 하지만 D 클래스나 C 클래스로 가면 뭔가 또 변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위상 세계에 진입 못 하니 위상력 상한을 올리려면 다른 수단을 마련해봐야지. 그리고 다른 수단이래봤자 위상 석을 통한 흡수뿐이지만, 난 비어있는 위상석에 TP를 채워서 위상력으로 흡수할 수 있으니까.

고위 이형종의 위상 석을 싸게 구해서 다시 충전시켜 사용하면 되잖아?

물론 그러는 데는 화연이 누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프랑도 화가 나서 울그락 불그락하는걸 보면 내 말을 듣고 비밀을 화연이와 공유해 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화연이 누나는 내가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하는지 조금 염려스럽다는 표정으로 내 손등을 살짝 잡으면서 어루만져주었다.

눈을 감고 내 손에서 느껴지는 화연이 누나의 따뜻한 손의 감촉에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나 모드를 돌렸다.

눈에서 최대한 집중된 마나 시브를 내리고 평범하게 모은 다음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그제서야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이마에 땀이 한 방울 씩 흐르는 걸 보니 뭔가…. 눈에 집중한 마나 시브에 다른 효과가 있는 거 같다.

위상력 20만의 능력자들마저 움직임을 봉쇄하는 압박감을 주는 건가?

“으음. 그렇게까지 긴 활동 금지 처분은 내려지지 않을 겁니다. 정서하 씨는 에너지 이터를 멀쩡하게 포획하고 연구 제공까지 선뜻 해주신 전적이 있으시니까요.”

그제서야 몸이 움직이는지 차지철은 한숨을 쉬면서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법이라는 건 꼭 지켜져야 하는 하나의 율법입니다…. 그러한 만큼 겉으로 생색내기가 되더라도 일정 기간의 활동 금지 처분을 내려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겁니다. 정서하 씨의 억울함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서하 씨가 성인이 되어서 본격적인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생기지 않는, 7개월 이내의 처분이 될 겁니다.”

오? 그럼 처분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건가?

내 분노에 침묵하던 김학준 차장도 이혜령도 안색이 한껏 밝아지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럴 거면 왜 아까는 위협처럼…. 아, 내가 생각한 게 맞았나 보다. 빚을 지워서 능력자 연합에 몸이 묶이게 할려고.

그러다가 내 반발이 심상치 않으니까 우회하는 건가?

“그럼 강우혁 아… 차장님이랑 최수한 씨도 처벌을 받는 거죠?”

아, 아저씨라고 부를뻔했다아아…. 위험했어.

내 말에 움찔하는 최수한과 고개를 끄덕이는 강우혁.

“중요한 인물. 한 사람의 삶이 끝나버렸을지도 모르는 중대한 실수입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차지철의 말에 나는 최수한을 다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개인적으로 최수한 씨는 아주아주 빡세게 굴려줬으면 좋겠어요. 저 어리버리한 덤벙이 기질이 사라질 만큼 무지무지 빡세게!”

조금 갈굼당하고 매도당했다고 애액을 질질 싸는 저 체질이 고쳐질 만큼!! 내 차가운 눈빛을 받고 또 질질 싸는 걸 보면, 잘 고쳐지진 않을 거 같지만.

“…염두에 두겠습니다.”

최수한은 울상이 되어버렸다.

아랫입만 빼고.

“후우…. 정서하 군은 정말 대단하군. 우리 도움이 필요 없었던 건 아닌가 싶네.”

정식 절차는 월요일에 한정문 주임과 이능력부처의 사람들이 다시 나와서 능력자 연합의 실무진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점심을 먹고 헤어져야 했을 텐데, 내 반응과 눈에서 봤던 심상찮은 불빛 때문에 뭔가 급해졌는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그대로 헤어졌다.

그 순간에는 꼭지가 돌아서 확 받아버렸는데, 조금 더 참을 걸 그랬나 약간 후회가 든다.

능력자 연합 빌딩을 나온 김학준 차장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말했다. 꽤나 심신이 지치는 경험이었나 보다.

“뭘요. 사무차장님과 보스가 옆에 앉아있으시고 앞서 압박하지 않으셨더라면 제 말 같은 건 귓등으로 흘려넘겼을 거에요.”

노익장이라는 거, 무시 못 할 거 같아.

“아닐세, 도중에 자네가 눈에 시퍼런 불길을 뿜어낼 때는 마치 각하의 불호령을 앞에 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네. 역시 각하께서 주의 깊게 여겨볼 만한 인재로구먼.”

김학준 차장은 다시금 헐헐 웃으면서 나랑 화연이 누나를 번갈아 보는데,

“조만간 국수를 먹을 수 있겠지? 되도록이면 빨리 불러주게나.”

화악!

국수를 먹을 수 있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근데 화연이 누나는 또 얼굴이 빨개진다. 뭔가 누나가 부끄러워할 이야기였나?

그 모습이 무진장 매혹적이라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절로 화연이 누나한테 향한다!

“그럼 다음에 보세나.”

김학준 차장은 인자한 할아버지 웃음을 지으시면서 고급 세단에 올라타고 사라졌고 수행원들도 밴에 올라타서 뒤를 따라갔다.

“후후. 저희가 연계를 할 틈도 없이 정서하 씨가 해결해버렸네요.”

응? 아아.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화연이 누나는 날 따뜻한 눈빛으로 보면서 말했다.

“서하의 진면목을 능력자 연합은 물론 김학준 사무차장님마저 봤으니 틀림없이 어머니에게 보고가 올라갈 겁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돌아가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이혜령 반짝이는 눈빛으로 꾸벅 인사하고 한정문 주임과 최진식도 날 새삼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머릴 숙이고 하얀색 리무진을 타고 사라졌…는 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자. 아주머니랑 아저씨랑 시하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어?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1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나 누나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응. 택시 타고 가야겠네.”

“택시는 왜?”

“어? 차 없잖아?”

“저기에 내 차가 있다.”

화연이 누나는 한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는데, 거긴 무광 처리한 검은색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가 있었다…!

저거 무진장 오래된 차인데? 200년도 전에 나온 차잖아? 근데 누가 언제 저기다 대놓은 거야? 아까 도착했을 땐 없었는데?

“우와 위상식 모터 헤드네?”

나는 아벤의 뒤쪽 엔진룸에 비쳐 보이는 위상력 발전시스템을 보고 감탄을 흘렸다.

“응. 자연환경 문제도 있어서 겉만 놔두고 속은 다 바꿨어.”

…그럼 람보르기니가 아니잖아.

삐빅

정말 누나 차였는지 왼쪽 윗 가슴을 살짝 누르니까 람보르기니 아벤의 전조등이 깜빡이더니 날개가 슈우웅 하고 올라간다. 인증기를 차랑 연동한 건가?

…근데 왜 왼쪽 가슴 위에다 인증기를 삽입한 거지? 왠지 저 예쁜 가슴을 인증기한테 뺏긴 기분이 들어서 좀 이상한 기분이 들잖아.

꼴깍.

“…….”

누나는 내 음흉한 눈빛을 봤는지 얼굴이 또 붉어지면서 한 손으로 가슴을 슬쩍 가리더니 내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집에 돌아왔을 땐 12시 20분이 막 지나고 있었는데 역시나 다들 점심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서 하야!”

나랑 화연이 누나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니 엄마랑 누나가 기다렸다는 표정으로 달려오더니 날 잡아서 거실로 끌고 갔다.

“어어. 괜찮아 별일 없이 잘 끝났어.”

날 억지로 양털 카펫에 앉힌 두 마님은 어서 자세히 말해보라는 듯이 내 팔을 한쪽씩 잡고 손을 꼭 쥐는데 그 모습을 보니 살짝 장난기가 든다!

뒤따라온 화연이 누나는 양털 카펫 위에 앉혀진 날 보더니 소파에 가서 앉았고 프랑도 화연이 누나의 옆에 내려앉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잘됐다 싶었다.

“처벌 같은 건 안 받고 잘 끝난 거니?”

“응. 연이랑 정부에서 나온 사람이 잘 말해줘서 해결됐어.”

쿨럭! 콜록콜록!

내 말에 사레가 들렸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기 시작하는 화연이 누나.

“…….”

“…어? 연이가 누구야?”

엄마는 멍한 표정으로 나랑 화연이 누나를 번갈아 보기 시작하고 울 누나는 연이가 누군지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었다가 금방 누군지 눈치채고 화연이 누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연이?”””

아빠까지 가세해서 멍한 표정으로 나랑 화연이 누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심의기관에서 나온 결과보다 이쪽이 더 쇼크가 큰가 보네.

난 으흐흐 웃으면서 말해줬다.

“연이가 나 좋아한다고 고백해서 내 여자 하기로 했어.”

콜록콜록!

결국 화연이 누나는 얼굴이 핑크색으로 물들이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하지만 끝판왕이 있잖아. 안될 거야 아마.

“연아~?”

“화연아?!”

두 마님은 잽싸게 화연이 누나의 좌우에 달라붙어서 누나의 손을 얼굴에서 억지로 잡아떼는데 화연이 누나도 힘으로 버틸 수 있겠지만, 일부러 손에서 힘을 빼버렸는지 금방 새빨갛게 익어버린 얼굴을 가족들 앞에서 드러내 버렸다.

자포자기인지 두 눈을 감고 체념한 얼굴이 안쓰럽다….

“…….”

“자자. 엄마한테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보렴?!”

“응응. 시누이한테 말해봐 응?”

하지만 엄마랑 누나는 가차 없지! 우와아. 엄마랑 누나의 눈에서 마치 레이저가 나오는 거 같다.

“후.”

아빠도 날 보며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살짝 웃는 게 며느릿감이 생겨서 기쁜가 보다.

그럼, 엄마랑 누나한테 시달릴 화연이 누나한테 명복을 빌어주고 난 옷 갈아입으러 들어가야겠다. 프랑이랑 할 이야기도 있고.

“그럼 나 옷 갈아입고 올게.”

-프랑도 잠깐 따라와 줘-

“아아…!”

앗. 화연이 누나가 저렇게 애절한 표정으로 나 좀 구해달라고 하는데…. 미안! 엄마랑 누나가 같이 달려들면 나도 감당못해!

나는 화연이 누나의 좌절하는 얼굴을 뒤로하고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와 버렸다!

들어와서 잽싸게 교복을 벗고 갈색 면바지랑 회색 긴 팔 티를 입었더니 프랑이 문을 통과해서 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프랑은 그새 바뀐 내 옷차림을 보더니 살짝 실망했다가 잽싸게 표정을 바꾸고 헤헤거리면서 웃는데 프랑도 은근히 변태라니까….

나는 마나 시브를 팔에 집중해서 프랑의 손을 잡고 침대로 데려가 앉았다. 프랑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내 모습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순순히 침대에 걸쳐 앉았다.

============================ 작품 후기 ============================

주인공 입장에서 그 순간의 상황을 보고 2차적으로 뒤에서 일어난 일을 간략히 전해받는다는 식으로 진행하려했는데 좋지못하다는 비평이 많았네요 ㅠㅠ

다음부터는 확실하게 사이다 병뚜껑을 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 선작 /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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