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74화 (74/517)

00074  화연의 이야기.  =========================================================================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

내가 봐도 예뻤던 시하는 물론이고 시하의 손을 잡고 시하 뒤에 숨어서 날 힐끔거리면 던 서하 너도 무척 귀여웠지.

둘이 어린이집에 처음 온 날은 다른 아이들이 몰려들어서 나는 가까이 갈 수도 없었어. 다가갈 생각도 없었지만.

시하는 예쁜 얼굴과 착한 성격으로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었지. 서하 너는 깜찍한 외모로 어른들과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었고.

나는 그때부터 어두운 성격에 못생긴 얼굴이었기 때문에, 너희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 그냥 구석에서 그림책만 보고 있었지.

기억나? 처음은 시하 네가 말을 걸어줬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은 서하가 먼저 나한테 다가왔었어.

“누나. 머 바?”

“…해님 달님.”

“나두 보여주면 안대?”

혀 짧은 발음으로 우물쭈물하는 모습은 내가 봐도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었어

“…누나한테 가서 보여달라구 해.”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반짝반짝 빛나는것 같은 너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쌀쌀맞게 말했더니 너는 내 말에 울상을 지으면서 시하한테 달려가서 안겨버렸지.

그 모습을 봤을땐 조금 가슴이 아팠지만, 그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기에 나는 곧 신경을 꺼버렸어. 서하 너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틀렸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또 하루가 더 지나도 너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나에게 말을 걸어왔었어.

짜증 내고 책을 집어 던져서 울려도 다음날이면 다시 말을 걸어왔었지.

왜 자꾸 귀찮게 하냐고 물었더니.

“누나 울지마.”

라고 했었어.

기억 안 나?

난 울고 있지도 않았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운 적도 없었어. 그런데 서하 네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흘렀고 가슴이 참지 못할 만큼 아파져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게 울어버렸어.

내가 울기 시작하니까 너도 울먹거리다가 같이 울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의 선생님들과 시하 너도 달려와서 널 달래기 시작했어.

나? 나는 그냥 혼자서 울고 있었지. 그런데 넌 선생님들과 시하를 뿌리치고 나한테 다가와서 날 붙잡고 더 서럽게 울기 시작한 거야.

나도 슬픈데, 가슴이 아픈데 나보다 더 서럽게 우는 널 보니까 그냥 자연히 눈물이 멈추더라. 그래서 울지 말라고, 난 안 운다고 널 달래줬었지.

그 날 이후로 시하 너도 나한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서하는 더 자주 다가왔었어. 너희 둘이 날 가운데 두고 있으니 다른 아이들도 다가오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의 선생님들도 나에게 다시 관심을 주기 시작했었어.

너희가 오기 전에 나는 말 수도 없고 표정도 없고 못생긴 데다 성격도 안 좋았었어. 누군가 다가오면 화내고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노려보았었거든.

자연히 나는 따로 떨어져서 선생님도 아이들도 관심을 주지 않게 되었어. 그런데 너희들이 오면서 내 주위가 바뀐 거야.

처음에는 짜증 났어. 관심도 싫었고 자꾸 달라붙는 아이들도 싫었고 날 챙겨주려는 시하도,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서하도 싫었었어.

너희와 있으면 감정을 드러내게 되니까, 남들 앞에서 감정을 숨기라고 교육받았던 나에게는 너희들의 존재가 어렸던 내 머리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너희와 억지로 지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었어.

착하고 순진하고 나와 함께 다른 아이들을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상냥한 시하는 물론이고 강아지같이 귀여운 모습으로 재롱을 피우는 서하 너와 함께 있으면 내가 나이고, 필요에 의해 태어난 아이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장소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거든.

너희는 처음부터 자신을 숨기거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가왔었고 나도 천천히 너희한테 마음을 열었어.

나는 아버지가 없어.

22년 전 국무회의 때 현 대통령이 미혼에 자식이 없는 것은 국민의 대표로서 흠이 잡힐 부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나 봐.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대한민국이 가족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신이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라는 게 신조였으니까.

하지만 여성의 몸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고 미혼인 채 계속 있는 것은 국민에게 미혼 생활을 강조하는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받아들였는데 그때 어머니의 결단은 이거였어.

결혼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가지고 싶다.

체외수정.

시험관 아기.

어머니는 정자 은행에서 2년간의 분류와 검열 끝에 가장 우수하다고 알려진 얼굴도 외모도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정자를 뽑아 체외수정하고 자궁에 삽입해서 임신하셨지.

그게 나야.

사랑도 애정도 없이 생겨난 아기에게 애정을 줄 수 없는 건 당연했을 거야. 나는 태어나서 1년간 어머니의 모유를 수유 받고 2살 때부터는 어머니가 초청한 수많은 육아와 육성 전문가를 통해 교육받기 시작했어.

내 기억은 5살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집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갖은 지식을 주입받고 어머니의 이름에 흠이 가는 행동을 자제 받으면서 자란 게 기억이 나.

나의 존재는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졌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크고 있는지, 외모는 어떠한지는 비밀에 부쳐졌었어.

가끔 주위 사람들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꾸며서 어머니와 외출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집과 어린이집을 왕복하며 남는 시간에는 무수한 교육을 받았지.

6살 때 처음 어린이집을 갔을 때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어. 아니,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느꼈었지만, 실제 나이보다 5살은 더 성숙했던 나는, 다른 아이들이 아닌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버렸어.

저 아이들은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사는 걸까. 부모들은 어째서 저렇게 방임하는 거지.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살아가려는 걸까. 나는 어째서 아버지가 없는 거지. 어머니는 어째서 직접 날 키우시지 않고 사용인을 고용한 걸까.

하지만 내 앞가림을 하기도 벅찼던 나는 외부와의 연결을 억지로 차단했어.

어른들이 주입하는 지식을 받아들이기도 벅찬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 고작 1시간뿐인,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공부를 하고 지식을 받아들이고 책을 읽고 예절을 교육받는 걸 반복했어.

그렇게 어머니와 만나는 1시간은 지난 일주일간 배운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지.

나는 점점 지쳐갔어. 나는 왜 태어난 건가. 어떤 존재인 건가. 저 아이들의 곁에는 양 부모님이 있는데 나는 왜 어머니뿐인가. 어머니는 왜 나를 자주 만나러 오시지 않지. 날 사랑하는 게 아닌 건가.

한밤중에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라.”

였었어.

울지마, 난 괜찮으니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괜찮았고, 지금은 너희가 있어서 괜찮아.

그해에 주변을 보는 시야가 늘어나자 어머니가 대통령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 그리고 집 안의 사용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내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렸지.

어머니가 대통령이라는 사실보다, 사랑 없이 태어난 존재가 나라는 걸 알게 된 나는, 막다른 길에 몰린 것처럼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어.

마치 사방이 커다란 시멘트로 만들어진 벽이 날 압박하듯 다가오는 기분이었어.

숨도 쉬기 힘든 생활이 이어졌어.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연락이 갔는지 어머니는 2일에 한 번씩 날 보러 오셨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지. 어머니의 관심은 그저 가식일 뿐, 나는 필요 때문에 태어난 존재라는 생각만 가득이었어.

그러는 와중에 나타난 너희 둘은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희망이었어.

너희와 지냈던 6개월의 시간은 나에게는 생명줄이었어. 말하자면 뇌사 환자의 인공호흡기와 마찬가지였던 거야.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학교에 입학할 때가 다가오자 나는 무서워졌어. 너희와 헤어지면, 다시 옛날 같은 생활로 돌아가면 버틸 자신이 없었어.

그걸 눈치챈 듯이 시하는 내가 입학할 초등학교를 물어보더니 나와 같은 초등학교로 입학했었지.

나와 시하가 7살이 되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돼서 어린이집에서 헤어지게 되자 넌 펑펑 울면서 가지 말라고 나와 시하를 붙잡는데 그런 너희 모습에서 가슴이 뭉클해졌었어.

너희 둘에게 내가 얼마나 구원을 받았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모자랄 거야.

잉잉거리면서 우는 너를 달래주는데, 그때 강아지 같은 두 눈에 눈물을 한껏 머금고 나한테 한 말이 그거였어.

“그럼 누나랑 결혼하꺼야.”

후후. 기억 안 나지?

“난 못생겨서 안 돼. 다른 사람을 찾아.”

“시러! 화여니 누나랑 결혼하꺼야!!”

“서하 넌 엄마랑 결혼한댔잖아~.”

“엄만 아빠꺼라구 아빠가 그래써! 엄마랑 결혼 못한대써!”

“가족끼리는 결혼 못 해. 시하랑도 결혼 못 해.”

내 말을 들은 너는 엄마한테 밉다는 말을 들은 아이 같은 표정이었지.

“왜에?”

“법이니까.”

“법이 모야?”

“안 지키면 혼나.”

“혼나도 대!”

“…그럼 나랑 시하랑 서하네 엄마 중에 누구랑 결혼할 건데?”

“다!”

“…결혼은 한 사람이랑만 하는 거야.”

“우웅. 그럼 화여니 누나랑 할 거야.”

“내가…. 그렇게 좋아?”

“누난 아프니까 내가 호~ 해주 꺼야!”

“…그, 그래서 나랑 결혼하려는 거야?”

네 대답에 난 목이 멨었어. 이 아이는 어떻게 내 기분을 이렇게 잘 아는 걸까.

“누나가 좋으니까!”

“서하 넌 나두 좋아한댔잖아!”

“시아 누나도 조쿠 화여니 누나도 조아!”

“치~. 다 좋아한대.”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해줬어. 그것도 나에게 빛이 되어준 서하 너였으니까 나에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지.

“좋아. 크면 결혼해줄게.”

“진짜?! 와아~!”

그 후로 우리가 초등학교 5학년, 네가 3학년이 될 때까진 셋이서 늘 같이 놀았었어. 그날이 오기 전까진.

“누나랑 결혼 안 할래.”

“…왜? 나 좋아한댔잖아.”

“몰라! 그냥 누나랑 결혼 안할꺼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너는 조금 이상했지만, 당시의 나는 네 말의 충격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었어.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거야.

정신이 아득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후들거리고 손이 덜덜 떨리는 느낌. 땅바닥이 나한테 달려들 거 같은 느낌.

학교가 끝나고 네가 할 말이 있다고 해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잘 안 오는 건물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후에 도착한 네가 한 말은 그만큼 충격이었지.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직접 위상 세계에서 살아남는 특별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러운 훈련이어서 많이 힘들었었어. 만약 서하 너랑 만나서 치유받는 시간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만큼.

서하 네가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한 뒤부터는 얼굴과 몸에 신경을 많이 썼었어. 하지만 내 외모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백합이 피어나는 것처럼 예쁘게 변해가는 시하 옆에 있으면 내 외모는 정말 자괴감이 들 만큼 싫었어.

그런데, 서하 니가 얼마 전부터 날 조금씩 피하는 기분이 들어서, 관리해도 나아지지 않는 못생긴 내 외모 때문일까 싶어 최대한 피부를 관리하고 중점적으로 운동하면서 살을 빼려 했지만….

저주받은 몸이라 부은듯한 얼굴과 옆으로 퍼진 몸매는 교정되지 않았어.

12살이지만 나이에 맞지 않는 비대한 몸과 지방 밑에 존재하는 근육, 얼굴은 언제나 부어있어서 돼지라고 놀림받았지. 거기다 무표정이 익숙해져버려서 감정 표현이 희미한 내 얼굴도….

나는 충격으로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무표정 덕분에 내색하지 않을 수 있었어.

“내가 꼬맹이라고 불러서 그런 거야?”

“…그건 아냐.”

“…그게 아니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고쳐볼게. 살도 빼려고 계속 운동도 하고 있고, 얼굴은…. 성형을 해서라도 고칠게. 그러니까….”

“어?! 아냐! 그런 게 아냐!”

우습게도 내 외모 때문이 아니라는 네 말을 듣자 속에서 화가 끓어올랐어.

그럼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지? 나는, 나는 서하가 정말 좋은데! 네 웃음과 밝은 성격 때문에 얼마나 많이 치유받고 힘을 낼 수 있었는데!!

서하는 나에게 전부나 다름없는데!! 그런데…. 서하는 내가 싫어?

“난 서하 니가 좋단 말이야! 나랑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데! 얼마나 행복했었는데! 널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못생겨서! 뚱뚱해서 싫은 거잖아!!”

내 화난 모습이 너한테는 무척이나 충격이었나 봐. 너는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분노와 설움이 북받쳐 올라 널 세게 밀쳐버렸어.

“악!!”

털썩.

…그 순간 실수했다고 생각했어.

나이 차이 때문에 내가 키도 더 컸고 계획표에 따른 규칙적이고 막대한 훈련 양은 이미 같은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답지 않은 근력을 가지게 했는데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하고 널 힘껏 밀쳐버렸으니까.

넘어질 때 작게 들린 둔탁한 소리를 들었을 때, 넘어져서 움직이지 않는 네 모습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한테 거절당했다는 충격과 폭력을 썼다는 죄책감에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워졌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 네 모습이 더 무서웠었어.

내게 밀쳐져 넘어진 너는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 떨리는 손가락을 코 밑으로 대봤는데 다행히 숨도 쉬고 있었고, 손목을 잡아 맥박을 재봐도 이상은 없었어.

하지만…. 네 머리 뒤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과 네가 넘어졌던 자리에 있던 돌멩이. 돌멩이에 묻은 피를 보니 눈앞이 캄캄해졌었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구급차가 와서 널 데려가고 있었고 시하도 예쁜 얼굴이 눈물로 범벅되어있었어.

떨리는 손으로 오른손을 내려다보니 시하의 휴대전화에 연결되어있는 내 휴대전화가 보였고, 왼손에 서하 너의 피가 묻어있는걸 봤을 땐 그냥 기절하고 싶어졌었지.

시하는 그 와중에도 날 보며 걱정해줬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어.

그 날은 학교에서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안 나. 그리고 죄책감과 슬픔과 괴로움 때문에 잠들지도 못하고 날이 밝아버렸지.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었는데, 결석한 시하의 빈자리를 보고, 쉬는 시간에 찾아간 서하의 반에서 비어있는 서하의 자리를 보고 할 말을 잊어버렸어.

휴대전화로 시하한테서 전화가 왔지만….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어.

하교 후에 받는 훈련도 이틀째 소화하지 못해서 어머니에게 크게 꾸지람을 듣고 벌을 받았지만, 혹시 서하 네가 잘못됐으면 어떻게 할지, 그쪽이 더 무서워서 체벌에서 오는 고통은 느끼지도 못했었어.

그날 밤은 전날 밤보다 더 힘들고 무섭고 괴로웠었지. 눈을 감으면 서하가 죽은 듯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이고 눈을 뜨면 어둠 속에 내 왼손이 피에 물들어 빨갛게 보였어.

그렇게 두 번째 밤도 잠들지 못하고 3일째가 됐을 때, 병원에 입원한 널 찾아가는데 내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몰라.

서하네 반의 선생님께 서하가 입원했다는 병원을 듣기 위해 갔었는데, 병원에 입원할 만큼 크게 다쳤는데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어머니마저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는 걸 그때 깨달았었지.

결국, 수업 도중 뛰쳐나와서 네가 입원해있던 병원 앞에 도착했는데, 막상 병원 입구에서 서 있을 뿐 들어가지를 못했었어.

무서워서. 널 다치게 만든 내가 이렇게 병문안을 가도 되는 건지,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날 들여보내 주지 않고 욕설을 하면서 쫓아내면 어떡하지. 서하가, 시하도 날 싫어하게 됐으면 난 이제 죽어야 하나.

…점점 무서워져서 병원 입구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게 느껴졌었어.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언제 나오셨는지 아저씨가 내 머릴 쓰다듬어주시고 계셨지.

“아들 녀석을 보러온 거냐.”

“흑. 서하는 괜찮나요…?”

“직접 보거라.”

아저씨는 자상하게 웃어주시고 내 손을 잡아 네가 입원한 병실로 데려다주셨는데 아저씨가 지나갈 때마다 환자들이 아저씨한테 인사하는 걸 보고서야 이 병원이 서하네 아저씨 병원이라는 걸 알았었어.

아저씨가 날 데려간 곳은 5층 제일 안쪽의 고급 병동이었는데 가까이 갈수록 너희 목소리가 귀에 들려와서 다시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괜찮다니깐! 완전 멀쩡하다구!”

“머리가 돌에 찍혀서 5바늘이나 꿰맸잖아! 안 괜찮고 안 멀쩡하니까 얌전히 있어!”

“왜에! 지겹단 말야!”

“아이참! 엄마! 엄마아!! 와서 얘 좀 잡아봐! 자꾸 나갈려구 해~!”

“흠. 아저씨가 보기에는 멀쩡해 보인다만.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내가 울먹이는 걸 봤는지 아저씨는 빙긋 웃으셨는데 그 모습에 가슴이 아플 정도로 먹먹해졌었어. 그리고 너희가 정말 부러워졌어.

내가 바라던 꿈같은 가족이 너희 가족들이었으니까.

“그렇게 뛰지 말구 제발…! 어? 화연아!”

“앗. 화연이 누나다.”

그리고 그저께 일은 생각도 안 난다는 듯이 날 보며 환하게 웃는 서하 네 모습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었어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검사를 해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단다.”

“뒤통수에 상처가 생겼지만, 사내자식이라면 그 정도 상처 한둘쯤은 있어도 상관없다.”

무덤덤하게 말하는 아저씨의 말에 아주머니는 속상하단 표정으로 흘겨봤지만, 나는 숨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시하가 한자리에 모여있을 때 어떻게 된 일인지 전부 이야기를 했었어.

“흠.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였군.”

“하아…. 우리 아들은 그럴 아이가 아닌데….”

“얼마 전에는 엄마도 창피하다구 해서 울리더니 이번엔 화연이도 울린 거야?”

…나는 욕 먹구 쫓겨날 생각으로 말한 건데 반응이 전혀 달라서 조금, 아니 많이 놀랐었어. 특히나 아주머니는 서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어서, 맞을 각오까지 했는데….

“아들이 그렇게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아들 미워하지 말고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주렴.”

“하지만 저 때문에 서하가 다친 거에요. 제가 밀어서 머리에 큰 상처가 났는데….”

“그건 걔가 잘못한 거야! 다짜고짜 그런 심한 말을 하다니…. 이틀 동안 많이 힘들었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아냐! 다친 건 서하란말야! 사과해야 하는 건 나야!”

“하지만 화연이 너는 마음이 다쳤잖니?”

아…주머니의 말씀을 들으니까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어. 그냥 울고 싶어졌었어. 그렇게 울기 시작하는 나를 아주머니는 따스하게 안아주셨고 난 더 크게 울어버렸었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품이었었어….

그 뒤는 기억나?

그래. 기억나는구나. 네 말대로야. 그 뒤에 너에게 물어봤더니 넘어져서 머릴 다쳤는데, 왜 거기서 넘어졌는지 까먹었다고 했지. 그리고 내가 조금 삐지거나 토라졌을 때의 모습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고.

내 화난 모습에 놀라고 그 상태로 떠밀려 넘어지면서 머리에 받은 충격에 일부분의 기억 상실증이 온 거야.

너한테도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주고 싶었지만…. 부끄럽고 미안해서 말을 해주지 못했었어.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한다면서 아저씨와 아주머니, 시하도 비밀로 해줬었고.

그 후에는 너도 알다시피 너랑 점점 연락이 뜸해지다가, 내가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완전히 연락이 끊어졌었지.

시하는 의한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대한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시하와 만나는 시간마저도 줄어들었지만 시하와는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계속 문자를 주고받고 전화 통화도 하고 시간 날 때마다 만났기 때문에 사이는 전혀 멀어지지 않았어.

물론 너랑은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었지. 하지만 나는 시하를 통해서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종종 듣고 있었어.

그리고 네가 6학년이 되던 해에 나는 위상 세계로 빨려 들어갔었지.

위상 세계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었어. 어머니의 스파르타식 교육과 훈련 덕분에 힘든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었고, 빠르게 신체 강화 능력자로 각성하면서 그 뒤 15일까지 위상 세계에서 견디는 건 간단했으니까.

…표정이 왜 그래?

억울하다고?

…?

아무튼, 병원에서 헤어진 뒤에 어떻게든 살을 빼고 부기가 빠지지 않는 얼굴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서 평소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있었어. 네가 성인이 되면 예뻐진 모습으로 네 앞에 나타나고 싶었거든. 그리고….

으음. 아니야. 못들은 걸로 해줘.

고등학교도 나는 대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시하는 의한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대학교는 같은 의한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시 만날 수 있었지.

너에 관한 이야기는 시하 덕분에 자세히 알고 있었어.

나랑 연락이 끊어진 뒤에 만화책에 게임과 소설책에 빠지더니 중학교 들어갈 때쯤에는 사춘기가 와서는 이상한 행동이랑 말투를 하면서 아주머니랑 시하를 곤란하게 만들고, 그때부터 통통하고 귀엽게 변했다는 것과 중학교 3학년 때 정신을 차리고 시하가 다니는 의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한 거.

그리고 통통하고 작던 꼬맹이가 얼마 전에 위상 세계에 빨려 들어갔다가 무사히 생환한거까지.

네가 위상 세계에 빨려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멍하게 지냈었지만…. 너라면 무사히 빠져나올 거라고 믿었었어.

그리고 힘없이 지내는 시하를 억지로 데리고 다니면서 내가 배웠던 위상 세계 생존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지. 네가 위상 세계로 빨려 들어간 직후의 시하는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위태했었거든.

이제 궁금한 게 없어졌지?

============================ 작품 후기 ============================

주말에는 투베 5위권 안이었고 어제는 투베 1위 자리에 쭉 있었더니 추천 / 선작 + 조회에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지셔서 행복하네요!

사실 저도 이 글이 처음 시작이다 보니 처녀작 + 호기심에 이것저것 막 써내려가는 중이거든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 즐거웠는데 주제 넘치게 투베 1위 하면서 많은 분이 읽고 가셨어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1편 2편에 가혹한 비평들이 쏟아져서 슬프지만, 신경 안 쓸래요.

수정하고 삽입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왕창 고쳐버리면 내용도 바뀌고 지금까지 재밌게 보신 분들한테 실례 일 거 같아서…….

이 이상 고쳐버리면 주인공 성격도 바뀌고 내용도 바뀌고…. 좀 곤란해질 거 같아요.

7편은 도입부에 외전 형식으로 한 편 추가해버리려고 합니다. [수정완료] 태그가 붙으면 한 번씩 봐주세요~ :)

세에레님, 헬가문님, 불도둑님, 다슬기님, 이스카나님, 고가거래초원님

환사제님, 마하로고님, 어1떤오덕님, 쌍츄님!

후원 쿠폰 감사드립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ps. 매의 눈으로 오타에 문법이 이상한 곳을 지적해주시는 분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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