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3 타임리버 =========================================================================
“아무튼, E 클래스가 되었으니까 위상석으로 늘리려면 상위급 이형종의 위상석이 필요한데. 제일 싼거라도 250억, 실제 유통 이익까지 생각하면 400억이 넘어. 가장 비싼 건 3천억, 유통 이익 포함하면 5천억 정도야. 하지만 올라가는 위상력을 생각해본다면 할만하지 않겠냐고 하겠는데…. 위상력이 299,999인 위상석에서 체내에 흡수할 수 있는 위상력은 한시도 쉬지 않고 피부접촉을 했을 때 170,000, 손에서 떼고 있다면 60,000밖에 얻지 못해.”
“으음.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TP의 개념은 단지 위상력의 포인트를 구분하는 데만 쓰이는 건가? 저번에 탐지 기술을 봤을 때 소비 TP가 1%라는 걸 봤는데, 정확한 개념이 궁금하다.
“뭐가 궁금하지?”
“TP라는거, 정확히 어떤 개념이야? 저번에 인증기를 통해서 커뮤니티를 살펴보다가 특정 스킬의 TP 소비량 같은걸 봤거든? 근데 위상석에 있는 위상력도 TP라 하는지 궁금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TP는 능력과 기술을 사용했을 소비되는 양을 뜻해. 위상력은 신체 내부의 위상력의 총량을 늘려주는 거고.”
“아아. 그러니까 게임에서 MP 같은 거네? TP는 기술과 능력을 쓰기 위한 거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위상력은 레벨업을 하기 위한 경험치 같은 건가? 그럼 위상석 내부에 있는 건 TP가 아니라 위상력이네?”
“맞아.
“그럼 5천억을 써서 얻는 위상력이 170,000…. 그것도 내가 D 클래스가 되는 순간 나머지는 몸에 담지도 못하겠네.”
“그것도 맞아. 그다음은 고위급 이형종의 위상석을 가져와야 하는데 가장 비싼 건 2조 5천억. 유통 이익을 생각하면 5조 가까이 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이거야, 흡수하는 데도 걸리는 시간. 보통 위상석은 시간당 총 위상력 양의 0.0002%만 외부로 분출해. 그러니까 위상석 하나를 전부 흡수하는 데는 보통 2080일가량이 걸려.”
“컥, 5년이 넘어?!”
“화연아 잠깐만.”
엉? 시하 누나는 뭔가 생각이 있는지 나와 화연이 누나의 대화를 막아서면서 누날 향해 물었다.
“계약금은 언제 들어오는 거야?”
“50억이라면 내일 바로 입금될 거야.”
“5,000억은 7개월 뒤에?”
“7개월 뒤 재계약이 된 뒤에 입금될 거야.”
“위상석은 한 번에 하나밖에 흡수 못 해?”
“몸에 지니고 있다면 몇 개라도 상관없어.”
“그럼 위상석을 그냥 여러 개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안 돼? 시간당 최소 0.5에서 최대 5까지 다양하지만 100개를 기준으로 1개당 2.5의 평균치를 낸다고 생각했을 때 85시간만 몸에 지니고 있으면 D 클래스가 될 수 있잖아. 서하를 D 클래스로 먼저 올리는 게 좋지 않을까?”
“…!”
시하 누나의 말에 화연이 누나는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 됐다!
나도 D 클래스로 올라가서 위상력이 증가하면 마나 시브를 좀 더 몸 전체에 진하게 퍼트릴 수 있을 테니까 프랑과 육체적인 접촉도 가능해질 테니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잖아.
“하지만 돈이 없잖아.”
“돈은 내가 낼게. 알았어. 지금 서하의 위상력이 3,700이랬으니까 총합 21,300의 상위 위상석을 최대한 많이 구하면 되겠네.”
우어. 위상력 21300의 위상석이면 213억! 유통 이익 80%를 생각하면 378억?!
“화연이 누나 돈 많구나! 갑자기 누나가 좋아질 거 같아!”
“킥. 나중에 되면 나 같은 거보다 훨씬 더 많이 벌 텐데 뭘 그래?”
“어휴. 너 정말.”
화연이 누나랑 시하누나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었다며 피식 웃어버렸다. 나도 반쯤 농담이라서 같이 웃어줬고.
“시하가 좋은 걸 생각해줬어. 이 방법은 E 클래스 능력자까지만 가능할 방법이야. D 클래스부터는 고위 이형종의 위상석으로 해야 할 텐데, 지금도 계속 공급이 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대형 발전소의 에너지원으로 쓰다보니 구하기도 힘들어. 고위 이형종을 사냥하는 레이드 팀도 얼마 없고. 또 구한다고 해도 무시무시한 가격때문에 사기도 힘들겠지.”
잠시 말을 멈추고 시하 누나를 바라본 화연이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ㅁ상대적으로 여러곳에 쓰이는 상위 위상석은 조금 시간이 걸리기야 하겠지만, 모으기는 쉬울꺼야.
시하 누나는 화연이 누나의 설명을 듣더니 고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100개나 되는 위상석을 피부에 접촉시키려면 위상석을 끼워서 만든 옷을 입고 있어야 하려나? 되게 불편하겠다.”
아무튼, 누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프랑의 영혼석은 막 얻었을 때 3,850,000이 넘었으니까 위상력이 시간당 77이 올랐던 거구나.
“아, 근데 자질이 A+라면 확실히 A 클래스까지 오르는 거 맞아?”
“B 클래스까지는 확실해. 하지만 A 클래스는 단순히 위상력이 모인다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단계가 아니야.”
“어 그래?”
“세계 랭킹 20위 이상인 자들은 대부분 위상력이 3,999만이라고 봐야 해.”
“헉…. 그런가. 화연이 누난 자질이 몇인데?”
“난 B+야.”
“누나도 A 클래스가 될 확률이 있는 거네?”
“세상에 B+ 자질이 1만 명은 넘을걸?”
“헉, 그정도야? 그럼 A+자질은 몇 명 정도나 있는데?”
“10명.”
“...많은건지 적은건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10,010명의 A 클래스가 될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 실제로 A 클래스가 된 사람은 전 세계에 6명뿐인 거구나?”
“가장 많았을 때는 12명이었어. 지금은 많이 줄었지. 6명의 A 클래스도 A+ 인 자질은 단 한 명 뿐이고 5명 전부가 B+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 ”
“실제로 S 클래스가 된 사람은 역사상 1명뿐인건가, A 클래스랑 B 클래스랑 차이가 많이나?”
“자질과 클래스는 다 공개하지만, A 클래스의 전투 방식은 극비로 다루고 있어. 나도 알아보려고 찾아본 적이 있지만 다 실패했었어. 하지만 B 클래스와 C 클래스를 차이를 비교 대조해보고, 거기에 뭔가 특수한 능력이 생기는 건 아닐까 추측해보는 게 전부야.”
“으음. 누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A+ 자질이라고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닌 거 같아….”
“그렇긴 해. 자질보다 능력을 더 중요하게 보는 이들도 많으니까. 무엇보다 A+자질을 가졌지만, B 클래스에서 평생을 머무는 사람도 봤어.”
“더더욱 호들갑 떨 일이 아닌 거 같아!!”
“아무튼. 이야기는 다 정리가 된 거네?”
시하 누나는 나와 화연이 누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대화가 마무리되어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응. 위상석은 최대한 빨리 구해다 줄게. 내가 직접 전해줄 테니까 인증기로 연락이 오면 바로 받아줘.”
“알았어. 아 그리고, 마나 시브로 따로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제일 싼 걸로 하나만 구해줘.”
“구해줄게.”
화연이 누나는 마나 시브로 뭘 할까 궁금해하는 거 같았지만, 나중에 알려주겠지 싶었는지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화연아, 어제 했던 이야기 말인데.”
“아. 그래. 서하는 내일도 타임리버 빌딩으로 와. 속성 타입과 회복 타입 능력자가 능력을 쓰는걸 보여줄 테니까.”
“알았어. 내일 학교 마치고 바로 올게.”
“그래.”
“화연아 고마워.”
“뭘 이정도 가지고 그래. 시하 네가 서하를 소개시켜준걸 생각하면 너한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걸?”
“어휴.”
“할 때 나 꼭 불러줘. 화연이 누나 절하는 모습을 사진이랑 동영상으로 찍어놓게.”
“뭐?”
“푸훗. 킥킥킥. 알았어. 화연이가 절할 준비 되면 불러줄게!”
“어?! 지, 진짜 찍게…?”
콘레드 호텔을 나와보니 시간이 8시가 넘어서 사방이 컴컴했다. 6시쯤에 도착해서 여사님이랑 밥 먹는데 1시간 쓰고 누나들이랑 이야기하는데 1시간을 썼으니까.
“헉. 엄마 걱정하겠다.”
“아까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했었어.”
“아 진짜? 다행이다.”
난 여사님한테 휘둘려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누난 엄마한테 전화할 정도로 정신을 차리고 있었구나.
“시하 차도 빌딩에 있으니까 일단 같이 가자.”
화연이 누나는 앞장서서 호텔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올라탔고 나와 누나도 그 뒤를 따라 탔다.
“어서오십쇼. 어디로 모실까요?”
“타임리버 빌딩까지 부탁합니다.”
화연이 누나는 우리가 택시에 올라타서 문을 닫는 걸 보고 목적지를 말해줬다.
근데 택시 내부가 막 생환했을 때 탔던 생환자 보호관리부의 자동차랑 내부가 똑같네. 손님 석은 2명이 서로 마주 보고 앉을 수 있게 되어있는 거.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호텔 앞이라 그런지 대기하고 있는 택시도 고급이다.
“어쩐지 10년 전일이 생각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10년 전? 셋이서 같이 놀 때 이야긴가? 큭. 또 머리가 지끈거리네.
“으음. 또 머리 아프다.”
“응? 어디 아파?”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울 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더니 내 이마에 손을 짚어 열이 있나 확인한다.
“아냐. 화연이 누나랑 같이 있다 보면 옛날에 까먹은 일이 생각날 거 같아서 그래. 근데 그럴 때마다 머리가 조금 아프면서 잘 기억이 안 나.”
아. 화연이 누나는 또 움찔했다.
“화연이 누난 아까부터 계속 움찔거리는데, 나한테 뭐 숨기는 게 있어?”
“어어어어어?! 아, 아니! 없다!”
…여기 나보다 더 거짓말 못 하는 사람이 있다. 울 누나도 뭔가 생각났는지 나랑 화연이 누나를 번갈아 보다가 슬쩍 고갤 돌렸다.
“얼굴까지 붉어진 걸 보니 확실한데 뭐가 없어! 뭘 숨기는 거야?”
“…….”
화연이 누나도 시하 누나를 슬쩍 보더니 따라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누나도 뭔가 알고 있지?”
물어봐도 아무 대답도 없고 고개도 돌리지 않는 모습에 심통이 나서 손가락을 세워 누나의 옆구리를 쿡 찔러버렸다.
“캭?!”
과도하게 움찍하는 모습에 그대로 누나의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꺄아하하! 그만! 그만해!”
“불어! 어서 불란말야!”
손으로 막으려 드는 누나의 두 손목을 오른손으로 붙잡아 위로 올리면서 옆구리를 계속 간지럽히니 누나는 온몸을 비틀면서 다리를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아하하하앙! 안돼애! 그만! 제발 그만 해!”
“말하면 그만한다니까?”
“화연아! 도와줘!”
화연이 누나는 눈물을 찔끔거릴 만큼 웃으면서 괴로워하던 누나를… 왜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보는 건데? 화연이 누나는 울 누나의 말에 슬쩍 일어나서 몸속의 위상력을 가속했다!
저거! 위상력 운용 기술을 쓴 거야?!
“이리와.”
“어!?”
화연이 누나는 두 손으로 내 팔을 하나씩 붙잡더니 끌어당겨 날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두 팔로 내 몸 팔째로 감싸 안고 두 다리로는 내 다리까지 고정했는데…!
켁! 못 움직이겠어!! 강철 철근에 꽁꽁 묶인 기분이야!
“우와! 화연이 누나 뭐 하는 거야!”
꼼짝 못 하고 누나의 무릎 위에 앉아서 누나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있으려니 등에서 느껴지는 누나의 풍만한 가슴 감촉과 엉덩이로 느껴지는 누나의 부드러운 허벅지 느낌에 얼굴이 붉어진다!
당황해서 프랑의 얼굴을 바라봤더니 싱글거리면서 웃고만 있었다!
“괜히 시하 괴롭히지 말고 얌전히 있어.”
이리저리 꼼지락…거렸더니 등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더 야릇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으악! 마나 시브까지 돌렸는데도 꼼짝도 안 해!
“뭐야. 누나들이 나한테 뭐 숨기고 있으니까 그렇지! 옛날 기억인 거 같은데 왜 기억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픈 건데?”
화연이 누나는 내 말을 듣더니 내 등에 얼굴을 묻으면서 침묵했고 울 누나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핸드백에서 분홍색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어휴. 애가 힘이 세지니까 막지도 못하겠어.”
“무시하지 마! 화연이 누나 얼굴 빨개진 거다 보여.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내가 불퉁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자 화연이 누나랑 몸이 밀착되어있으니까 온몸으로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화연아, 말해도 돼?”
“안돼! 하지 마!”
“아이참.”
“그렇게 나오시겠다? 누나, 집에 가면 두고 봐. 말할 때까지 잠 못 잘 줄 알아.”
“윽!” “큭!”
내 보복 선언에 두 누나는 난감하고 당황한 표정이 돼버렸다. 그러니까 그냥 불어!
“…화연아. 오늘 너희 집에서 자고 가도 돼?”
“응. 그렇게 해.”
“오호. 그런다고 내가 까먹을 줄 알아? 누난 평생 집에 안 들어올 거야?”
“으으.”
누나는 당황한 표정이 돼서 어쩔 줄을 모르고 화연이 누나는 내 등에 얼굴을 묻은 채 한숨을 내쉬는지 얼굴이 닿은 부분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진다!
“쟤가 저렇게 고집 피우면 오래 가는데….”
“큭.”
오. 화연이 누나가 말할 생각이 드는지 고개를 드는 게 보인다! 근데 얼굴이 빨개져있다!
“다 서하 너 때문이다!”
“엥?”
그러면서 턱으로 내 어깨를 꾹꾹 누르는데, 장난 아니게 아파! 애교 같은 꾹꾹이가 아니잖아!
“아파!”
“애초에 원인 제공을 네가 한 거였다! 네가 잘못해서 기억을…!”
“어어?”
내가 잘못해서 기억을 잃은 거라고? 왜? 뭐 때문에? 기억을 잃어버려서 떠올리려 하면 머리가 아픈 거였어?
프랑도 화연이 누나의 말에 눈이 동그래지는 게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손님들.”
곧 택시는 타임리버 빌딩 앞에 멈춰 섰고 화연이 누나도 손과 다리를 풀어주길래 먼저 택시에서 내렸다.
홀가분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교차하는 기분이라니. 이걸 두고 멜랑꼴리라고 하는 건가?
프랑은 내 앞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날 보고 빙글빙글 웃는 게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나랑 화연이 누나 사이가 좋아져서 그러는 건가?
아직도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길 원하는 거 같아 조금 씁쓸하다.
“내가 무슨 짓을 했었는데? 어렸을 때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10살 전후인 거 같은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계산하고 택시에서 내린 누나들을 돌아보며 물었더니 화연이 누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 날 외면하고 시하 누나는 날 보더니 한숨을 쉬려다가 다시 삼켰다.
“아깝다.”
흠칫하는 누나.
“아잇! 감지 능력 얻고 나더니 애가 감만 좋아져서는! 화연아. 어쩔꺼야? 쟤가 저렇게 고집부리면 난 정말 못 버틴단 말야.”
“으으으. …일단 따라와.”
화연이 누나는 못 살겠다는 듯이 붉어진 표정을 한 손으로 가리며 빌딩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누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퇴근했는지 30명 이하만 남아있는 타임리버 빌딩의 어두워진 모습을 올려다봤다. 앞으로 자주 들르게 될 빌딩이라 그런지 수많은 유리창이 달빛을 반사하는 모습이 눈이 부셨다.
누나들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에서 내렸더니 눈앞에 커다랗고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출입구가 보였다.
안에 뭐가 있길래 전자 지문 도어락까지 걸어놓은 거야?
화연이 누나가 전자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서 뒤따라 들어가 보니 탁 트인 내부가 보였다.
한 층을 받치는 기둥들을 제외하면 한 층이 통째로 방 하나가 되어있었는데 350평에 가까운 방이라니, 그러고 보니 이혜령 부장은 20층이 화연이 누나의 수련 실이랬지?
이렇게 넓으면 난방이 힘든 건 아닐까 했는데 훈훈한 게 온도가 26도가 넘어가는 거 같다.
“여기서 화연이 누나 혼자 사는 거야?”
“응.”
공간 지각으로 20층을 살펴보니 출입구에서 오른쪽 벽에는 가까운 데부터 창고, 청소도구함, 드레스 룸, 목욕탕, 샤워실, 화장실이 순서대로 있었고 창가에는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이 커다란 카펫 위에서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창가에 다가가 밖을 바라보니 여의도 공원이랑 샛강 생태공원이 보이고 그 너머로 영등포와 광명 시내까지 보여서 이런 곳에서 살면 기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누나는 드레스룸으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건가? 누나도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인가 보다.
옷을 벗고 속옷 차림이 되는 두 미녀를 잠시 보다가 방을 둘러봤다.
주문 수제작한 거 같은 20평짜리 최고급 모직 카펫 위에 10명은 누워도 될 것 같은 무진장 큰 침대와 접대용 소파와 탁자 세트, 집무용 원목 책상에 고급스러운 회장 의자가 있었고 한쪽에는 옷걸이와 대형 냉장고가 서 있었다.
벽 쪽에 붙은 거실장 위에는 자그마한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와 화분들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는 100인치 평면 티비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카펫 위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는 각종 운동기구가 띄엄띄엄 놓여있었고 그 외에는 휑한 모습이었는데, 공간 지각 능력이 바닥에 살짝 새겨진 수많은 발자국을 감지해냈다. 크기를 보니까 화연이 누나의 발자국인데, 여기서 수련도 하는 건가?
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더니 공간 지각 능력이 누나의 발자국만 표시해주기 시작했는데, 일정한 간격과 비슷한 보폭을 보니까 뭔가 특별한 움직임을 연습했나 보다.
“화연이 누나 발자국이 보이는데, 이거 보법을 연습한 거겠지?”
-제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서하의 눈에는 보이는 건가요?-
프랑은 날 따라 다니면서 바닥을 내려다보지만, 프랑에게는 그냥 평평한 바닥으로 보이나 보다.
“응. 공간 지각이 발자국의 흔적을 감지해서 보여주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비슷한 보폭이 계속 연결되어있어.”
-그런 거라면 한국과 중국의 무예를 익히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희도 가문에 내려오는 무기술과 격투술을 따로 익히니까요.-
“…….”
슬쩍 누나의 발자국을 따라서 발걸음을 옮겨봤는데, 몸이 이리저리 휘청거리다가 다리가 꼬여서 넘어질 뻔했다!
“우왓! 이거 제대로 된 걸음걸이 맞는 거야? 도저히 따라 못 움직이겠는데?”
-쿡쿡. 무예에서의 움직임은 단순히 발자국만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하체와 상체를 전부 움직이는 흐름이 있다고 들었어요. 고급 무예일수록 어렵고 난해해서 평범한 사람은 따라 하지도 못한다고 기사단장님이 들려주셨지요.-
“으음. 막 무협지 보면 그냥 발자국만 보고서 보법 신법 같은걸 막 베껴내고 그러던데, 순 구라인거 같아. 공간 지각도 그냥 발자국만 보여주지 움직임 같은 건 계산 안 해주는걸?”
-후후후.-
내가 투덜거리는 모습을 프랑은 공중에 떠서 내려다보며 웃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슬쩍 한 손에 마나 시브를 집중시켜서 프랑의 뺨을 쓰다듬어 주니 프랑도 손을 들어 파랗게 빛나는 내 손등을 마주 잡아주며 방긋 웃어준다.
“서하야~!”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었으면서 언제 목욕탕으로 들어간 거야? 울 누나는 알몸으로 문을 살짝 열어서 얼굴만 내민 채 날 향해 소리쳤다.
“여기 옆방에 샤워실 있으니까 일단 거기서 씻어! 누나들은 목욕하구 나갈 거니까!”
“알았어!”
그리고 문을 닫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욕탕에 몸을 담그는데 먼저 들어가 있던 화연이 누나는 사지를 뻗고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보이는 알몸에 코피 날 거 같다.
여자들은 목욕하는데 오래 걸리니까 조금 더 몸을 움직여볼까?
교복 마이를 벗어서 던져놓고 천천히 누나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보는데, 프랑의 말대로 하체와 상체를 지정된 자세로 움직여야 하는지 그냥 새겨진 발자국에 발만 움직여서는 몸이 이리 휘청거리고 저리 휘청거려서 도무지 끝까지 걸을 수가 없었다.
“에잇!”
천천히 안되면 빠르게 해봐야지!
다다닷 쿵!
“컥!”
그래서 빠르게 달리면서 발자국을 맞춰봤는데 17걸음째에 발목이 꺾이면서 화려하게 빙글빙글 돌아서 나자빠져 버렸다.
-푸흡!-
“…비웃었겠다?!”
-아앗! 아, 아니에요! 안 웃었어요!-
“거짓말! 내 뒤에서 푸훗하고 웃는 거 다 봤어! 지금도 얼굴이 씰룩거리고 있잖아!”
-엑?! 어, 어떻게 보신 거에요?!-
“공간 지각이 되면서 프랑의 모습도 감지에 잡히게 됐으니까!”
-앗! 너무해요! 그런걸 숨기시고!-
“헤헹. 오늘 아침에도 부끄러워서 침대에 데굴데굴 구르는 것까지 다봤지롱.”
-꺅!-
나는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앉으면서 능글맞게 말했더니 프랑은 귀여운 비명까지 지르며 당황해했다.
그녀는 정말 부끄러웠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다가 황급히 나한테 날아와서 등에 달라붙어 버렸는데 마나 시브를 눈으로 돌리면서 고개를 프랑 쪽으로 돌렸더니 얼굴이 빨개져서는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숨는 게 보였다.
“내 시야 밖에 있어도 프랑이 입을 움직이는 거랑 가슴이 흔들거리는 거랑 다 보이지롱.”
-아으으으으. 서하는 변태에요!-
프랑은 울상이 되면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지만, 그런 자그맣고 귀여운 손으로 여신 클래스의 가슴을 가릴 수 있을 성 싶냐.
“응. 나 변태 맞아. 근데 프랑도 나 샤워하고 씻을 때 막 눈 가리는 척 하고 다 보잖아. 어머나~ 프랑도 변태였네?-
-아앗!-
킥킥거리면서 프랑을 놀렸더니 결국 프랑은 울상이 되면서 주먹을 쥐고 내 등을 톡톡 건드렸다.
한참을 프랑이랑 노닥거리고 있으니 순식간에 씻고 나온 누나들이 날 보고는 뭐 하는 거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씻으랬더니 바닥에 앉아서 뭐 하고 있어?”
“어, 바닥에 화연이 누나 발자국이 보여서 잠깐 따라 해봤어.”
“??”
“…그게 보여?”
울 누나는 내 말에 바닥을 훑어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화연이 누나는 눈이 약간 커지더니 슬쩍 내 다리를 바라보았다.
“중국 대림사에서 많은 돈을 주고 배운 시화유선時花流僊 이라는 운신법이야. 여성 신체 강화자용으로 만들어진 거라 네가 익히기에는 무리가 있어.”
“아~. 어쩐지 계속 넘어지기만 하더라.”
손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누나들을 올려다보니 목욕 가운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둘러서 감고 있었다.
“들어간 지 30분도 안 됐는데 벌써 다 씻은 거야? 씻는다길래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목욕 가운 너머로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게 보였다. 옷이나 좀 빨리 입지. 특히나 화연이 누나는 가슴을 압박하고 가려주던 브래지어랑 팬티가 없으니 풍만한 가슴이랑 굴곡진 음부가 그대로 느껴져서 조금 곤란하다!
시하 누나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더니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간단하게 씻었으니까. 아무튼, 너도 가서 얼른 씻어.”
“씻어도 갈아입을 속옷이 없는데?”
“따라와. 속옷 하나 줄게.”
화연이 누나는 내 말을 듣더니 따라오라고 하면서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설마 했지만, 뒤따라가면서 슬쩍 화연이 누나한테 중얼거렸다.
“설마 여성용 속옷을 주는 건 아니겠지…?”
“훗. 입고 싶어?”
“아니!”
“입고 싶으면 언제라도 말해.”
화연이 누나는 날 보더니 피식 웃고는 빙글거리며 웃었는데, 저건 날 놀리려고 하는 건가? 그럼 나도 받아쳐 줘야지.
“…누나가 입던 거 주게?”
“뭣! 이 바보가 무슨 생각을!”
뭣이!
“바보라니! 누나가 언제라도 말하랬잖아! 누난 남자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누나 방에 남자 속옷이 있다는 게 이상하니까 그랬지!”
시하누나도 뒤를 따라오면서 화연이 누나를 보고 놀라워하는 게 보인다.
“화연이 너 남자 친구 생겼어? 방에 데려오는?”
“나, 남자친구 아니야! 남자 속옷도 아니야!”
“켁! 그럼 진짜 누나 속옷 줄 거야? 싫어!”
난 여자 속옷을 입은 여자가 좋은 거지 내가 여자 속옷을 입고 싶진 않단 말야!
“이익! 그냥 남녀 공용 운동용 속옷이야!”
화연이 누나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머리카락을 감고 있던 젖은 수건을 풀더니 수건으로 날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윙! 철퍽! 씨이잉! 철썩!
“으앙! 아, 아프다고! 수건이 젖어서 몸에 달라붙는 게 진짜 아파!”
신체 강화자면서 힘으로 휘두르다니!! 수건이 휘둘러질 때마다 파공성이 장난이 아니잖아!
울 누나는 진짜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화연이 누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드레스 룸으로 달려 들어가더니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속옷을 가져 나와서 던져줬다.
“스패츠 타입이지만 속옷으로 입어도 괜찮아. 내가 가진 거 중에 사이즈도 제일 큰 거니까 네 허리에도 맞을 거야.”
흠. 이게 누나가 입던 거랑 똑같은 타입이라는 거지? 아직 입고 있는 건 한 번도 못 봤지만….
방금 수건으로 얻어맞았더니 조금 심술이 나서 음흉하게 웃으면서 내 손에 들린 속옷이랑 누나의 아랫배 쪽을 번갈아가면서 봐줬더니 잠시 멍하니 서 있던 화연이 누나는 얼굴을 확 붉히더니 발을 뻗어 내 엉덩이를 걷어차 버렸다!
퍽!
“컥!”
“뭐, 뭘 보는 거야!!”
순간적으로 목욕 가운 사이로 튀어나온 새하얀 다리가 눈에 들어왔지만, 엉덩이를 시작해서 허리로 올라오는 충격에 숨이 막힌다!
“서하 너 빨리 들어가서 씻어!”
내가 하던 짓을 본 울 누나도 얼굴이 붉어진 채 내 어깨를 잡고 샤워실 안으로 날 밀어 넣어버렸다!
[어휴. 저것도 이제 다 컸다고 밝히는 것 좀 봐.]
[…후우.]
걷어차인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누나들의 한숨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장난이 조금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칫. 장난이었는데 발로 걷어차 버릴 줄 몰랐어.”
나랑 같이 샤워실로 들어온 프랑은 그냥 입만 삐죽거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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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사제님 마하로고님 어1떤오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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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투베 1위라는데 저도 놀라고 있어요 ㅠㅠ
제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