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71화 (71/517)

00071  타임리버  =========================================================================

“무, 무슨 말 하는 겁니까! 서하는 타임리버에 들어오기로 했는데!”

“했지만 아직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구두 계약이면서, 그렇게 자기 것 마냥 말하는 거야? 무엇보다 서하가 화랑에 들어오면 국가 차원에서 풍부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데, 타임리버는 그게 가능해?”

“윽. 또, 또 사람을 중간에 가로채시려고…!

응? 사람을 가로채? 아, 여사님이 화연이 누나가 눈독 들인 능력자를 중간에 자주 가로챘나 보다.

당황해버린 화연이 누나는 인터폰을 힐끔 바라보는 게, 이혜령 부장이 빨리 올라와 주길 바라는 거 같다. 하긴 말빨이 부족한 화연이 누나한테는 정치 경력 70년의 고수인 여사님이 넘사벽으로 보이겠지.

“가, 가능합니다! 서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어요!”

“네 말은 서하군이 스스로 성장한다는 이야기 같은데? 뭐 그게 아니라고 해도 국가 차원의 지원과 일반 레이드 팀의 지원이 같을 수는 없지~.”

그만 말문이 막힌 화연이 누나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면서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떠는 게 보인다.

울 누나도 차마 여사님한테는 뭐라고 말을 못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면서 편하게 부르고 있지만 저건 여사님이 그렇게 부르라고 강요해서 그런 거 아닐까? 누나 성격에 대통령이면 함부로 말 못할 게 뻔하고, 저렇게 공손히 있는 걸 봐서는 내 생각이 맞을 거 같다.

여사님 때문에 놀라고 화나고 조급해하는 화연이 누나와 난감하고 당황해하는 울 누나, 두 명의 여자를 보니 내가 나서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여사님이 놀라는 표정이 보고 싶기도 하고.

“화랑에 오라니…. 잘 이해가 안 가요.”

“화랑은 국가의 일을 대신할 레이드 팀이 필요해서 정부에서 조직한 레이드 팀이란다. 그러니까 이 아줌마의 부하들인 셈이지?”

“아~ 그래서 오라고 하셨구나. 화랑은 우리나라 5위 레이드 팀이죠? 타임리버랑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가요?”

“그게 궁금하니? 사실 1위랑 2위랑 많은 차이는 나지 않고 2위와 3위가 조금 차이 난다지만, 위상력의 총합으로 비교해보면 5위 안의 다섯 레이드 팀 모두가 비슷비슷하다는 거, 알고 있니? 단지 B 클래스와 C 클래스 최상급 능력자의 보유 숫자에 따라 순위가 바뀔 뿐이거든? 하지만 정부의 공식 지원을 받는 화랑은 다른 네 곳보다 여러모로 조건이라던가, 혜택이 더 좋은 편이지!”

화연이 누나는 물론이고 시하 누나도 화랑에 관심을 보이는 척 하는 날 보더니 나한테 배신감을 느끼나 보다. 거 참 성격도 급하지. 관심 한번 보였다고 배신감 느끼는 거야?

“와. 그럼 제가 화랑으로 가면 화랑의 보스가 될 수 있는거에요?”

“그럼! 물론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보스가 되기 위한 기초 교육과 지원을 받으면 5년 안에 화랑의 보스가 될 수 있을 거야.”

“현 보스분은 어떡하고요?”

“그 아이는 내 충실한 심복인 데다, 그 아이라면 화랑의 보스 자리가 아니더라도 활약할 곳은 무궁무진하단다! 하지만 서하 너라면 화랑을 국내 5위가 아닌 세계 5위로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 아이는 화랑을 현상 유지하기도 벅찬 게 보이니 네가 보스로 와준다면 정~말 좋을 거 같은걸?”

“우와. 거기다 우리 누나도 국무총리가 되면서 절 도와줄 수 있는거구요?”

내 말이랑 여사님 말을 듣고 있는 화연이 누나는…. 부르투스한테 찔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표정이 저랬을까.

아니, 어미한테 밀려서 벼랑에서 떨어진 새끼 사자의 표정 같다.

…배신감이랑 절망에 빠진 표정이라는 뜻이다. 울 누나도 날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보는 게, 그러니까 그런 표정을 짓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하지만 여사님은 내가 화랑에 관심을 보이니까 이게 웬 떡이니? 하는 표정으로 흥분된 표정을 지으면서 날 열심히 꼬시려고 하고 있었다.

화랑의 보스가 여사님의 심복이라니, 화랑이 국가 소속 단체라지만 실상은 여사님의 직속 부대나 마찬가지인 곳인가 보다.

“울 누나가 뒤에서 도와주면 저도 든든할거 같아요.”

“그렇지? 그럼 화랑으로….”

“근데 국무총리는 아무나 못 하는 거잖아요.”

“응? 아냐 아냐. 지금은 대학생이라 곤란하지만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보좌관 수행을 하면서….”

“보통 국무총리가 되는데 공직 입문 후에 20년 넘게 걸린다고 알고 있는데요? 최소 20년 동안 기다려야 해요?”

“기간을 줄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거기다 특례로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고급 인재 등용으로 하면 십수 년 이내에….”

“에이, 너무 길어요. 글구 화랑의 보스 분도 오랫동안 화랑의 팀원들과 팀워크를 맞추면서 지내오셨을 텐데 저같이 어린 녀석한테 밀려나면 보스 분도 그렇고 팀원들도 좋게 안볼 거 같아요.”

“아니아니~! 그 정도는 이 아줌마가 다 해결해줄 수 있단다? 이 아줌마만 믿으면 돼요!”

흥미가 식는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니까 여사님은 다 잡은 물고기가 도망가버릴까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미녀가 나때문에 당황하는걸 보는것도 꽤 가슴 설레는 일인거 같아. 그러니까 이쯤 해둘까? 더 했다간 여사님이 나쁘게 볼 수 있을테니까.

“여사님이 대단한 분인 건 알고 있지만, 이형종과 싸우는 건 저인걸요? 믿음이 부족한 상태로 위상 세계에 들어가고 싶진 않아요. 다른 방법이라면 화랑 보스의 후임으로 들어가서 몇 년간 화랑의 보스분과 함께 지내면서 팀원 분들과 인맥을 쌓는 건…. 화연이 누나랑 같이 지내는 거랑 별 차이가 없을 거 같구요.”

“아….”

킥킥. 이쯤 되니까 내 생각을 눈치챈 거 같다. 여사님의 '요놈 봐라?' 하는 표정이 조금 재미있다.

나는 여사님한테 상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타임리버에 있을래요.”

그제서야 화연이 누나도, 우리 누나도 내가 화랑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말을 꺼낸 이유를 눈치챘나 보다. 여사님의 괴롭힘에서 내가 벗어나게 해줬다는 걸 이제 눈치채다니.

특히 화연이 누나는 나중에 두고 보자. 배신감에 절망에 실망에 온갖 표정을 다 지었겠다? 흥흥.

여사님이 살짝 기분 나빠하는 건 아닐까 여사님의 눈치를 살피는데 그제야 원래 표정으로 돌아간 화연이 누나는 여사님을 향해 으르렁거리듯이 말을 꺼냈다.

“아무튼, 서하도, 시하도 우리 타임리버에 올 거니까 어머니는 더 이상 눈독 들이지 마세요. 계속 그러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겁니다.”

아니, 누나는 타임리버에 입사한다고 말 안 했잖아? 저거 봐! 누나도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거 안보여?

하지만 여사님은 화연이 누나가 으르렁거리든 말든 전혀 신경을 안 쓰신다!

“어휴. 능력도 재능도 말재간도 머리 회전도 보통이 아닌걸? 정말 내 후계자 삼아 키우고 싶어질 정도야.”

…기분 나빠하시기보다 어째 관심이 더 늘어난 거 같은데….

여사님한테 화연이 누나의 반항은 유흥 거리도 안된다는 듯이 신경을 끄고 내 말도 상관없다는 듯이 날 보며 욕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흑진주 같은 눈동자에 욕심이 일렁이는 게, 날 잡아먹을 거 같아서 쪼끔 무서워!

똑똑똑

[이혜령입니다.]

“아! 어서 들어오세요!”

자신한테 눈길조차 안주는 여사님때문에 좌절하고 있던 화연이 누나는 그제서야 도착한 이혜령 부장의 목소리를 듣고 화색이 돌면서 얼른 들어오라고 했다.

끼이익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혜령 부장은 반색하고 있는 화연이 누나를 보더니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가 3개의 서류철을 가져와 하나는 여사님 앞에, 다른 하나는 화연이 누나 앞에 놓고 남은 건 내 앞에 놔두었다.

“혜령이도 오랜만이네? 결혼 생활은 재미나?”

남자 친구가 아니라 결혼했나 보다.

“네. 각하께서 친히 보내주신 거대한 화환 덕분에 주변인들의 저에 대한 평가도 오르게 됐습니다.”

이혜령 부장은 서류를 돌린 뒤에 화연이 누나의 오른쪽에 서서 가지런하게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는데 차분하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여사님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화연이 저것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라도 날 찾아와. 너 같은 인재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쾅!

“큭! 그만하지쇼! 에흠! 그만하시죠! 계속 이러면 저도 안 참을 겁니다!”

탁자를 두 손으로 내려치며 벌떡 일어난 화연이 누나는 이혜령 부장에게까지 손을 뻗치려는 여사님의 모습에 진짜 화났는지 혀가 꼬일 정도로 화를 낸다. 그러면서 혀가 꼬인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빨개지는데 여사님은 그런 누나 모습이 한심스러운지 혀를 쯧쯧차면서 누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인재 욕심이 너무 지나칩니다!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다면 품에 끌어들이지 않습니까! 한국의 뛰어난 인재는 어머니 근처에 다 모여있다고 신문의 칼럼에서도 비평하고 있다는걸 모르는 겁니까!?”

“어머? 국정을 이끌어가는데 인재는 많을수록 좋은 걸 모르니? 너도 시하가 다른 놈팡이들이 채가는 걸 막고 서하도 네 팀에 끌어들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면서 엄마한테 그런 말하는 거 아니다?”

“제가 눈독 들였던 인재를 중간에 가로채 가는 분이 그런 말 하깁니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를 내는 모습에서 위협을 느꼈겠지만, 공간 지각으로 화연이 누나를 살펴보니 이상하게도 왠지 엄마한테 투정부리는 딸을 보는 느낌이다.

여사님의 위상력은 176만, 화연이 누나 자신에 비하면 1/6밖에 안되는 작은 수치니까 무력을 행사하면 여사님의 발언이든 뭐든 얼마든지 막을 수 있을 텐데 그냥 화만 내는 것도 이상하고 또 화내는 모습에서도 위협이나 살의 같은 건 느낄 수가 없었다.

결국, 저렇게 투닥거려도 서로 좋아한다는 거겠지? 화연이 누나의 팀도 정부와 협조 중이고 정부도 화랑이 있는데도 타임리버에 지원을 해주니까.

“어휴. 조금만 더했다간 엄마를 때리겠네. 알았어, 알았어~.”

“끄응….”

울 누나나 이혜령 부장은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모습이 익숙한지 살짝 웃으면서 구경하고 있는 게 내 생각이 맞다는 증거겠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 미녀가 티격태격하는걸 보는 건 정말 눈이 즐겁구나.

“그나저나 여사님이라니~. 너무 딱딱하게 부르는 거 같아 아줌마는 마음이 불편하구나. 편하게 아줌마라고 불러도 된단다?”

엉? 아, 아줌마라니…. 내가 여사님의 추종자들한테 맞아 죽을 소리를 저렇게 태평하게 하시는 건가.

그러고 보니 누나도 아주머니라고 부르고 있었지?

“아니면 누나라고 불러도 돼?”

“~~.”

화연이 누나는 진심으로 피곤해졌는지 팔걸이에 팔꿈치를 기대고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뭐, 어려울건 없지. 외모나 행동이나 전부 세련된 큰 누나 같은 느낌이니까.

살짝 웃으면서 친근감 있게 입을 열었다.

“영은이 누나?”

순간 5명의 아가씨 전부가 날 바라본다!

“푸훗. 아하하하하하! 호호호호! 정말로 마음에, 쿡쿡. 드는걸?! 호호호호호!”

여사님은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하셨는데 그 옆으로 화연이 누나가 날 노려보는 게 보였다. 아니, 왜 노려보는 건데? 불러달래서 불러준 거 뿐이구만!

억울하다는 내 표정에 우리 누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이혜령 부장은 그냥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하. 아하…. 이렇게 웃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아이참. 누나라는 말을 들어본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그래. 그럼 귀여운 서하는 누나랑 사귀어보지 않을래?”

“넹!?”

-?!-

여사님은 정말 설렜다는 표정으로 화사하게 웃으시면서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하시는데 덩달아 나도 얼굴이 붉어진다.

“어머니!!” “아, 아주머니!” “각하!!”

“왜에? 나도 겉으로는 아직 20대니까 아직은 서하랑 어울리지 않니?”

“으윽…! 서하! 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어, 어?! 난 그냥 여사님이 불러달라길래 불러준 거 뿐인데?!”

“…!”

“아, 아이참. 아주머니도 그만 놀리세요. 서하가 진짜인 줄 알겠어요!”

아…. 순간이지만 놀랐어. 현직 대통령한테서 사귀자는 말을 듣다니. 나뿐만 아니라 다들 놀라고 경악해서 패닉에 빠진 거 같다. 프랑도 깜짝 놀라서 여사님을 멍하니 바라볼 정도였으니까.

이혜령 부장도 뭐라 말하고 싶은 표정이 한가득한데, 자신이 말을 꺼낼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보다. 대신 소매를 살짝 올려서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근데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다니, 이혜령 부장은 꽤 취미가 남성틱한 거 아냐? 자동차도 페라리더니. 저런 취향을 보니까 남편이 누군지 살짝 궁금해지는걸?

이혜령 부장도 꽤나 기가 세보여서 밤일도 여성 상위. 기승위로 할거 같고.

“크흠! 죄송하지만 시간이 5시가 넘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혜령 부장의 말에 여사님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셨는데 그 표정을 보니 나도 살짝 가슴이 콩닥거린다.

나이는 어쨌든 겉만 봐서는 20대 후반 정도니까…. 근데 저 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리광을 피워도, 조금 짓궂은 장난을 치고 못된 손장난을 해도 엄마같은 포용력으로 웃으면서 다 받아줄 거 같단 말야.

물론 나한테는 프랑이 있으니까 당연히 거절하겠지만!

화연이 누나는 진짜로 지친 표정으로 서류철에서 서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놨고 나도 누나가 보는 거랑 똑같은 종이를 꺼내 봤다.

계약서라고 쓰고 그 아래에 지켜야 할 사항이랑 팀이 나한테 해줄 혜택과 내가 받아야 할 연봉과 계약금 등이 써져있었다.

뒷면은 타임리버를 뜻하는 푸르게 흐르는 강을 간소화한 이미지 마크가 찍혀있었다.

“그전에, 우리 귀여운 서하한테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사님도 똑같은 종이를 꺼내놓으시고 다시 날 보시면서 말을 걸어 오셨다. 화연이 누나는 피곤한 모습으로 또 무슨 소릴 하려고 저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

“아까 시하가 도착했다고 했을 때, 눈동자에 코로나가 생긴 것처럼 푸른 빛이 일렁였는데 그게 네 능력인 거니?”

그제서야 화연이 누나도 아차 하면서 날 바라보는데 울 누나도 눈이 반짝 하더니 날 바라본다. 이혜령 부장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으음.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나타나는 색은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이는 건가? 오늘 학교에서 나랑 눈이 마주친 애들이 깜짝 놀랬던 이유가 이거였군.

마나 시브에 관해서 여사님한테도 알려줘야 할까? 잠깐 여사님이 나한테 해가 되는 행동을 할 확률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서하의 탐색 능력이 성장하면서 그게 겉으로 표시 나게 바뀐 겁니다.”

엉? 내가 잠시 생각하는 중에 화연이 누나가 먼저 입을 열어서 여사님께 설명했다. 저건 아까 교장실에서 차훈 팀장과 김무흘 원장한테 말해준 이야긴데….

화연이 누나와 시선을 마주쳤더니 눈을 한번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누나는 여사님을 같은 편이라고는 생각 안하나보다. 라이벌? 경쟁 상대? 그런게 아닐까.

“호오. 그렇구나. 그래서 시하가 도착한걸 눈치챈 거였어. 이야기와는 다르게 일반 감지도 뛰어난 걸? 거기다 하루종일 탐색이 가능하다니…. 정말 탐이나.”

다시금 눈동자에 욕심이 일어나는 여사님과 차마 눈을 마주치질 못하겠다.

여사님과 눈을 피하면서 서류 계약서를 보고 있으니 울 누나도 날 도와주려는지 옆에서 계약서에 주의해야 할 점을 손가락으로 짚어주며 설명해준다.

“일단 성인이 될 때까지 객원 멤버로 계약을 맺을 거야. 지급되는 계약금은 50억. 연봉은 1억이고 네가 성인이 되는 1월 1일이 계약 만료지만 재계약 의사가 있을 경우 자동 계약 갱신이 되면서 타임리버의 정식 팀원이 되는 형식이야.”

“그것은 정서하 씨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말 그대로 계약금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정서하 씨의 능력의 가치는 내부 회의를 통해 현재 C 클래스 최상급에 버금간다고 있다고 판단. 내년 1월 재계약 시 계약금은 5,000억으로 늘어나며 연봉도 120억으로 갱신됩니다. 또한, 팀의 활동에 참여할 경우 그 활동에서 총수입의 15%를 가져가게 됩니다. 이것은 근로소득세를 제외한 금액입니다.”

누나의 설명에 이혜령 부장이 이어받아 추가 설명을 해준다.

5,000억? 50억에서 100배로 뛰는거야? 게다가 연봉이 120억이면 한달에 10억 씩 준다는거?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금액이다. 저런 큰 돈을 막 퍼줘도 재정이 괜찮은거야?

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본 이혜령 부장은 생각을 읽었는지 고개를 살랑살랑 저으면서 말했다.

“금액이 많아보이시죠? 하지만 이정도는 보스께서 팀을 이끌고 위상 세계에 한번 원정다녀오시면 벌어들이는 수입이에요.”

“한번에 5,000억을 넘게 벌어요?”

“그정도 돼. 고급 감지 능력자가 없어서 개척하지 못한 지역을 생각한다면 너한테 주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

워…. 한달에 12억이라니. 거기다 원정에 참여하면 총 수입의 15%를 받는댔으니까 5천억에 15퍼센트면 525억? 켁!

“연봉은 12번으로 나눠서 주는 거 맞지? 근데 계약금이랑 근로소득세는 뭐야?”

“계약금은 말 그대로 계약의 대가로 지급하는 돈이다. 근로소득세는 네가 일하면서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거고. 그러니까 넌 연봉이 2억이 넘어가니까 매년 연봉에서 38%를 세금으로 내야 해. 하지만,”

“38%?! 45억 넘게 내야 하는 거야?!”

화영이 누나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세금 폭탄에 깜짝 놀랐다!

“평범한 근로자라면 그래야 하는 거고, 능력자가 위상 세계에서 벌어들인 돈은 12%가 추가된 50%를 내야 해.”

“50%?!”

“하지만 너는 R 클래스의 감지타입능력자라 국가에서 20%의 면세를 적용하고 또 위상 세계에 대한 세법도 면제되서 18%만 내면 돼. 거기다 연봉은 현실에서 팀에 소속되어 나오는 월급이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세법이 있지.”

“…숫자가 많아지니까 머리아파오는거 같아.”

진짜 아프진 않지만, 숫자 단위가 늘어나니까 신경 쓰기 귀찮아진다!

“호호호호. 그래서 능력자들은 대부분 개인 회계사를 고용하거나 대형 회계 사무소에 세무 회계 위탁을 한단다.”

여사님은 얼굴을 찡그린 내가 귀엽다는 듯이 빙글거리며 웃으셨다.

그럼 나도 회계사 한 명 고용해야 하나?

“회계사는 고용하지 마. 누나가 해줄게.”

“정말? 누나는 회계도 할 줄 알아?”

“배우면 돼. 네가 위험한 일 해서 번 돈인데 다른 사람이 함부로 못 만지게 해야지.”

누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계약서에 이상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며 말했다.

“우와아. 누나한테 갑자기 후광이 비치는 거 같아!”

“푸훗.”

울 누나는 내 아부에 살짝 웃었는데 지는 노을빛 때문에 실제로 누나의 뒤로 눈 부신 빛이 쏟아지니 정말 후광같아 보여! 근데 화연이 누나는 울 누나가 세무 회계를 봐 준다는 말에 살짝 얼굴을 찌푸린다.

“세무 회계는 생각보다 아주 번거롭고 단순 노동이 심해. 서하 너는 시하가 매년 연말 때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영수증 끊고 세무작업하느라 밤새고 하면 좋겠어?”

“어? 아, 아니.”

“세무 회계라는 거, 생각보다 짜증 나는 일이야.”

화연이 누나의 눈썹이 구겨진 채 펴지지 않는 걸 보면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건가? 안좋다기보단 그냥 짜증나는거 같은데.

“타임리버 첫해의 세무 회계는 이혜령 총무부장과 단둘이서 했는데…. 최악이었어.”

“어, 얼마나 최악이었는데?”

“…듣고 싶어?”

…누나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뛰어다닐 생각 하니까, 그냥 돈 좀 써서 회계사 한 명 고용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여사님 말씀대로 대형 회계 사무소에 위탁하거나.

“…그냥 나도 돈 주고 맡기는 게 나을 거 같아. 연말마다 누나가 뛰어다니는 생각하니까 별로야.”

내 말에 울 누나는 살짝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나는 누나가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곳에 내 이름을 적고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었다.

찍은 계약서를 시하 누나한테 보여줬는데 보호자란에 누나도 자신의 지장을 찍고 화연이 누나한테 주니 화연이 누나도 그 아래쪽에 지장을 찍어서 2장의 계약서에 나와 울 누나, 화연이 누나의 지장이 사이좋게 나란히 찍혔다.

“후.”

여사님을 잠시 바라본 화연이 누나는 계약서 내려다보며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이혜령 부장은 두 장의 계약서를 보며 감격 어린 표정을 짓는 게 보인다.

“드디어, 우리 타임리버에도 강력한 탐색 능력자가…!”

응? 이혜령 부장이 중얼거리는 소릴 들었는데, 타임리버에는 감지 타입 인재가 부족한 건가?

“화연이 누나. 타임리버 약점이 감지 타입이야?”

공간 지각으로 빌딩 내부를 보니 확실히 뫼비우스 띠 모양의 이형 능력자는 317명 중에 2명 뿐이었다.

내 질문이 아픈 곳을 찔렀는지 한숨을 쉰 화연이 누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응. 113명의 정규 멤버중에 감지 타입은 14명에 불과해. 원래 각 팀마다 2명씩은 있어야 하는데 20명이 되질 못 해서 매달 여섯 개 팀이 위상 세계로 들어가면서 14명이 거의 쉬지 못하고 로테이션 돌면서 참여 중이야.”

우와. 가혹한 근로조건이네. 근데 113명이 정규 멤버고 지금 6개 팀이 위상 세계에 들어가 있다면 한 팀에 11명인가? 아까 감지한 317명에 77명을 더하면 타임 리버의 인원은 못해도 394명이라는 말인데?

“서하 너는 성인이 되면 나랑 같이 중상위 이상의 레이드와 토벌전에 참여하게 될꺼야. 상위 이형종과의 전투가 메인이 되지만 내가 포함된 A 팀은 전력 면에서 최강이니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 메인 디텍터는 서하 네가 되고, 네가 휴식을 취할 동안에 서브 디텍터로 활동해줄 기감 능력자 한 명을 더 데려서 12명이 들어갈 거야.”

화연이 누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역시 공간 지각에 대한 건 알려주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한 조별 분류는 곧 인증기의 메일을 통해 보내드리겠어요. 그럼 저는 정서하 씨의 가입 서류와 에너지 이터에 관한 업무를 처리해 야해서 이만 사무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계약이 끝나니 이혜령 부장은 뿌듯한 얼굴로 서류를 챙겨 들었다. 여사님이랑 화연이 누나한테 차례대로 꾸벅 인사한 다음 울 누나랑 나한테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엉덩이가 씰룩거리는데, 기분 상태가 걸음걸이에도 드러나네. 그러고 보니 여사님한테는 서류를 왜 준 거야? 그냥 구경하라고?

“계약금이나 연봉과 성과급 비율이 나쁜 건 아니지만 저 아이의 성장 가능성을 보면 좋은 편도 아닌걸.”

여사님의 이야기에 누나는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이제 갓 생환한 0년 차 능력자에게 이 정도 조건이면 어디와 비교해도 모자람은 없을 거예요.”

“글쎄, 그건 우두머리인 네 생각일 뿐이고. 서하군의 능력 범위는 이미 같은 분석 계통의 국내 최고라는 박지웅과 비슷한 수준이잖니? 위상력 운용 기술을 배운다면 또 얼마나 능력이 좋아질지 모르는데 계약금으로 고작 5,000억에 연봉 120억은 좀 작은 거 같은걸?”

“…….”

여사님 말이 정말인지 화연이 누나는 인상만 쓴 채 아무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5,000억이 고작인가….

으음. 풀타임 450m 전방 감지가 그 정도나 뛰어난 건가 싶다.

방금 여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화랑의 보스도 분석 타입 능력자인가본데, 분석은 그냥 시야가 닿는 전부가 감지 범위라고 하지 않았나? 난 그렇게 알고있었는데?

“분석 능력인데 감지 거리가 450m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그건 아니야. 시야각때문에 생기는 문제인거지. 분석 능력자는 안정된 지반에서 주변을 살펴봐야하는데 평범하게 땅에 서서 봐서는 450m 정도가 구분이 가능해. 좀 더 높은곳에 올라가면 범위가 더 늘어나긴 하는데 비행형 이형종을 생각하면 무조건 고도를 높인 사다리탑 같은것도 해결 방법은 안되니까.”

그런가? 하긴, 능력자가 되면서 신체 능력이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뛰어나게 변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조금 더 뛰어난거니까. 무슨 눈에 망원경같은걸 달지 않는 이상에는…. 망원경?

“망원경 같은것도 쓸 수 없어?”

“위상력이 포함된 크리스탈 같은걸 구하면 되긴 해. 하지만 그런 장비는 수천억이 넘어가서 쉽게 구해서 쓸만한 건 못돼.”

무슨 망원경이 수천억이나 하냐…. 누나 말대로라면 일반 망원경같은건 소용없나보네.

진짜 내 능력이 사기긴 하구나.

그러니까 여사님은 내 능력의 일부분만 알고 있는데도 5천억에 120억이 적다고 생각한다는 말인데 만약 마나 시브나 공간 지각으로 능력이 진화한 걸 알면….

자연스럽게 여사님이 여왕님의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목줄을 채워서 납치해버리는 상상이 그려졌다!

마나 시브를 알고 있는 화연이 누나도 그 때문인지 말을 못하는 건가 보다.

슬쩍 울 누나랑 프랑을 바라봤더니 아무 말 말라는 듯 진지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본인이 만족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서하랑 시하 두 사람은 이 아줌마 말을 기억해주렴. 정부는 언제나 능력이 있는 사람을 환영한단다.”

미련 가득한 여사님을 보니 웃음이 날거 같다.

“자. 계약도 끝났으니 함께 저녁이나 할까?”

“아니요. 서하와 시하는 저와….”

“레드콘 호텔에 예약을 해뒀으니까 지금 가면 시간이 맞겠네?”

“그러니까…!”

“넌 17살에 집을 나가서는 네가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없잖니? 이 어미가 일부러 찾아오거나 연락 안 하면 전화 한 통 안 하면서…. 이제 엄마랑은 밥도 먹기 싫어?”

그러면서 여사님은 슬프다는 눈빛으로 화연이 누나를 바라보는데 누나는 결국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여사님은 그런 화연이 누나의 모습에 활짝 웃으시면서 나와 울 누나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자! 화연이도 동의했으니까 가볼까?”

아무래도 여사님은 딸을 괴롭히는 게 재미있으신가 보다.

============================ 작품 후기 ============================

메인 투베 4위까지 올라간 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 오늘 사이에 늘어난 조회와 추천이 연재 직후부터 그저께까지 합친 것 보다 많네요...

기념으로 연참 한번 더 @_@

세에레님, 헬가문님, 불도둑님 후원 쿠폰 감사드려요!

2월 15일 11:18

오타 수정 ㅠㅠ 한달에 12억 -> 1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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