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68화 (68/517)

00068  에너지 이터 2.  =========================================================================

“밖에서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차훈 팀장은 이름만큼이나 차분하게 내 말을 받아줬다.

“하하하. 무슨 대화를 나누신 것인지 살짝 궁금하지만, 비밀대화일 테니 궁금증은 묻어두겠습니다!”

“그러게요~. 뭇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한마디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타임리버 보스와의 독대라니. 정서하 씨는 마성의 남자? 호호호호!”

…아줌마가 주책없네 정말.

이혜령 부장도 내 어이없다는 눈을 봤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고 차훈 팀장과 김무흘 원장도 자리에 앉았다.

김무흘 원장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사뭇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방정맞게 다리를 달달 떨고 손바닥을 비비는 게 흥분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고 차훈 팀장도 나름대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길래 우릴 밖으로 보냈던 건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이혜령 부장은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하는 편한 표정인데, 물어봐도 대답 못 들을걸요? 누나가 죽을 때까지 품고 간댔으니까.

“일단, 제 능력은 탐색이라는 걸 알고 계시죠?”

먼저 가볍게 꺼낸 서두에 셋 다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은 에너지 이터를 만나기 전에 능력이 한 번 더 성장했었어요.”

내 말을 들은 세 명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곧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됐다.

그러니까, 그런 변명이 말이 되냐?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위상 세계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성장했냐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그런 표정들을 지을 거 같아서 일부러 숨긴 거라구요. 아무튼, 성장한 능력을 확인한다고 탐색 능력을 켜면서 일자산에서 산책하고 있었는데 에너지 이터를 발견하고 화연이 누나랑 생환자 보호관리부의 최수한 씨한테 연락을 했었던거에요.”

차훈 팀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고 김무흘 원장은 뭔가 질문이 생겼는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 하지만 어째서 에너지 이터가 정서하 씨에게 달려든 거죠? 에너지 이터는 생명체에 들어있는 위상력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존재인데요.”

김무흘 원장의 질문이 정상적인 거겠지.

“제 능력은 또 성장해서 이제 하루종일 탐색할 수 있게 됐어요.”

김무흘 원장은 자신의 대답에 엉뚱한 소리를 하는 날 보고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가 눈을 크게 치켜뜨고 입을 함지막 만 하게 벌리며 경악했다.

“하, 하루종일이라구욧?!”

근데 경악한 소리는 이혜령 부장에게서 흘러나왔다. 차훈 팀장도 멍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게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성장한 것도 오래전의 일이지만 사실이고, 공간 지각 능력이 되면서 위상력 소비는 아예 사라졌고 최대 위상력도 늘어난 데다 하루종일 감지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 각각 다른 일이지만 거짓말은 안 했다?

“네. 그런데 어째서인지 에너지 이터가 저한테 달려들더라고요. 그 속도도 느려서 어찌 붙잡을 수 있었는데, 그때….”

“그 녀석이 정서하 씨의 손가락을 빨았던 거군요! 설마 탐색 능력을 쓰는 도중에 위상력이 체외로 흘러나오는 건가? 그럼 에너지 이터는 체외로 흘러나온 위상력을 감지하고 달려들어서? 그걸 먹고 무생물의 위상력보단 살아있는 생물의 위상력에 입맛이 바뀌고 덩달아 위상력 타입도 변해버린 건가?”

내 말을 끊고 고함치듯이 소리친 김무흘 원장은 이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서 중얼중얼하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차훈 팀장과 이혜령 부장은 그런 김무흘 원장을 잠시 보더니 나에게 시선을 돌리고 물어보았다.

“그럼.” “그럼.”

…두 사람은 동시에 말 꺼낸 상대를 바라보더니 차훈 팀장이 먼저 이야기 하라는 듯이 제스쳐를 취해주자 이혜령 부장도 살짝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럼 정서하 씨는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감지가 가능하다는 건가요?”

“네. 위상력 소비량보다 회복량이 더 많아요.”

그러자 로또 1등에 당첨된 용지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이혜령. …아까도 나보고 대박이라고 했었지? 프랑도 어이가 없어 보인다.

차훈 팀장은 잠시 황홀해 하는 이혜령 부장을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크흠! 하지만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군요. 에너지 이터의 속도는 C 클래스는 되어야 감당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정서하 씨가 어떻게 에너지 이터를 포획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최수한 담당관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에너지 이터를 정서하 씨가 손에 잡고 있었다고 했습니다만.”

“아 그 부분은 제가 설명 드리죠. 에너지 이터의 속도는 먹은 위상력의 양에 비례합니다. 많이 먹고 몸 안에 위상력을 많이 보관할 수록 번개같이 움직이죠. 그와 반대로 위상력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속도가 줄어들고, 3일간의 포위망에서 위상력을 확보하지 못한 에너지 이터는 정서하 씨를 만났을 때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의 상태였었습니다.”

“…그랬습니까?”

그의 입장에서는 그 차이가 잘 이해가 가지 않나 보다. 하지만 김무흘 원장의 말이 틀린 게, 위상력 컨트롤을 전력으로 돌리면서 정신집중까지 해서 정신 가속(가칭)까지 한 상태였단말야.

다른 평범한 감지 타입 능력자라면 못잡았을껄?

“잡을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어요. 보기 쉽게 에너지 이터가 일직선으로 달려온 것도 있었고요.”

그러면서 오른팔의 소매를 걷어 살짝 흉터가 남은 팔을 보여주었다.

“잡으려다 조금 할퀴어지기도 했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능력자 협회의 연구원들과 함께 진행한다면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국방연구원의 독자 연구는 반려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저게 차훈 팀장의 목적인가보다. 에너지 이터의 공동 연구.

후우. 다행히 화연이 누나와 말을 맞춘 첫 번째 대응으로 끝난 거 같아서 다행이다. 두 번째 상황까지 들어갔다면 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서 화연이 누나한테 위상석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을 텐데.

차훈 팀장의 말에 김무흘 원장은 조금 불편한 표정이 되었지만, 곧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확실히 능력자 연합의 이형종 연구소는 뛰어납니다. 그들이 손을 걷어붙여 연구에 참여한다면 연구에 더욱 진척이 되겠지요.”

내 능력에 한참을 황홀해 하던 이혜령 부장은 그제서야 진정하며 날 보고 말했다.

“보스께서는 정서하 씨의 판단에 모두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차훈 팀장님의 요청을 받아들이신다면 실무는 저에게 맡겨주세요.”

“…어째서입니까?”

이혜령 부장이 실무로써 나선다는 말에 차훈 팀장이 왜 당신이 나서려 하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야 임시이긴 하지만 정서하씨는 타임리버의 멤버이시니 그렇죠. 저희 타임리버는 정서하 씨의 가족분 요청으로 객원으로서 초청하기로 했어요. 그가 성인이 되면 정식으로 타임리버의 멤버가 되는 거지요.”

차훈 팀장은 방글방글 웃는 이혜령 부장을 보며 슬쩍 눈썹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쉰다.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는데, 차훈 팀장이 그녀의 개입을 꺼릴 만큼 이혜령 총무부장은 꽤나 실무에 강한가 보다.

뭐, 그러니까 화연이 누나가 자기 오른팔이라고 이야기했겠지.

김무흘 원장은 계속 날 힐끔거리면서 뭔가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에너지 이터와 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나 보다.

이야기가 끝난 거 같아서 소파에서 일어났더니 이혜령 부장과 차훈 팀장, 김무흘 원장도 같이 일어서면서 차례대로 나에게 악수를 청해오길래 한 명씩 손을 잡아주었다.

“그럼 차훈 팀장님은 이혜령 총무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저는 실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그러자 손을 잡고 악수하는 와중에도 살짝 눈썹이 찌푸려지는 게, 진짜 싫은가보다.

“…잘 부탁합니다.”

현재 내 능력에 관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프랑이 유일하다. 공간 지각 능력으로 진화한 탐색 능력과 마나 시브도, 위상 세계에서 본 불가사의한 일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아니 프랑도 내가 다른 여자들 알몸을 투시하고 다닌다는 건 모르고 있다.

…말해 줄 용기가 안 난다!

그다음은 가족들인데, 엄마와 아빠, 누나도 내 능력이 공간 지각 능력으로 진화했다는 것만 알고 그 정확한 기능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하지만 프랑에 대한 것도 알려주면서 결과적으로는 내 능력에 관해서는 프랑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화연이 누나. 누나는 내가 마나 시브와 450m의 감지 능력만 지니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팀에 들어가고 누나와 좀 더 가까워지면, 공간 지각 능력에 대해서도 가족에게 설명해준 걸 알려줄 생각이다.

누나는 엉성한 거짓말이라면 차훈 팀장과 김무흘 원장이 금방 눈치 챌 거라며 차라리 능력이 성장했다고 속이며 체외로 위상력이 흐른다는 식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거짓말에 가까운 말 돌리기지만, 일단 나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게 아니니까 누나의 말에 동의했다. 누나는 내가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거 같지만.

결과를 보면 차훈 팀장도, 김무흘 원장도 납득한 거 같았다. 모든 전말을 알고 있는 나로써는 저런 핑계가 조금 부족해 보였는데, 아무래도 내가 감지 능력을 제한 없이 쓸 수 있게 됐다는 게 그들로서는 다른 모든 의문점을 덮어버릴 만큼 놀라운 능력인가보다.

“정말 기분 좋네요.”

“뭐가요?”

“정서하씨가 우리 레이드 팀의 멤버가 된다는 거요!”

세 명과 대화를 끝내고 교장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니 수업이 마친다는 종이 울렸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이혜령 부장에게 붙잡혀서 타임리버 레이드 팀의 빌딩으로 향하는 중이고.

내 팔을 잡아서 끌고 가길래 놀래서 물었더니 계약을 위해서란다. 화연이 누나도 교실에서 연락했을 때 대화가 끝나면 이혜령 씨를 따라오라고 했었지?

이혜령 부장은 지적인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관능적이게 생긴 새빨간 페라리를 타고 있었는데 은근히 그녀의 몸매와 매치되는 차라서 어쩐지 그녀의 위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그녀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공간 지각은 저절로 그녀의 알몸을 투시해버렸는데, 이성보다는 내 욕망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능력인 거 같다!

진짜 곤란해! 빨리 조절법을 익혀야겠어! 거기다 프랑의 시선이 좀…. 뾰로통한 표정이 보이는 게, 혹시 내가 예쁜 여자들 알몸을 투시하는걸 눈치챈 건 아닐까?

방금도 시선을 마주쳤는데 뭔가 내게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을 알게 모르게 살짝 짓는 걸 봤거든….

“저도 화연이 누나가 보스로 있는 팀에 들어가게 될줄은 몰랐어요.”

“보스가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아시나요?”

어? 화연이 누나가 애를 태워? 왜?

“누나가 애를 태우는 얼굴이라니…. 상상이 안 가는데요?”

내 말을 들은 이혜령 부장은 화연이 누나의 사늘한 표정이 생각나는지 킥하면서 웃었다.

“겉보기에는 냉정하고 차분한 쿨 뷰티지만 속은 장난을 약간 좋아하고 조금 푼수 기질에 자신의 두 손안에 들어온 사람은 무척이나 신경 쓰고 잘 챙겨주는, 말 그대로 보스 같은 사람이에요.”

그건 그래. 저번 금요일에 처음 만나서 화요일 오늘까지 차갑고 냉정한 모습에 싸늘한 농담을 던지는 모습이나 최수한에게 말빨에 밀려서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을 봤으니까.

이혜령 부장은 진심으로 화연이 누나를 따르는지 누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는 사뭇 온화하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러네요. 근데 왜 애를 태운 거죠?”

“당연히 정서하 씨가 다른 팀으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거죠. 원래대로라면 3일 전에 계약서를 가지고 정서하 씨의 댁으로 찾아갔어야 했는데 에너지 이터 때문에 오늘까지 미뤄졌으니까요. 용문산에서 캠핑 트레일러에서 대기하는 동안 그 사이에 혹시나 서하 씨에게 다른 팀의 사람들이 찾아가진 않을까, 시하 씨에게 30분 간격으로 전화하다가 혼나기까지 한 걸요?

그랬었나? 누나랑 엄마랑 아빠는 의식적으로 탐색이 가려는 걸 차단하고 있어서 몰랐는걸. 근데 누나랑 좀 안면이 많은가? 양이라는 호칭을 붙이네.

“몇 번 전화했었는데 저한테는 별다른 표현이 없었는데요?”

“어머, 정말 사적으로 전화하는 사이신가 봐요? 남자와는 사적인 이야기 한마디 안 하는 분이신데.”

여러 가지 의미로 나쁜 누나네. 그 얼굴에 남자한테 싸늘한 대응이라니, 좌절하다 못해 한강에 뛰어들려고 하는 남자들이 눈에 보이는 거 같다.

“아뇨,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울 누나를 통해서 전화했었던 거에요.”

“그랬나요. 음~ 아마 부끄러워서 그랬을 거에요. 보스는 자기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정서하 씨는 시하 양의 친동생인 데다, 듣자하니 어렸을 때도 함께 한 소꿉친구였다면서요? 그러니까 감정을 보이는 것을 더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르지요.”

“하긴 그러네요. 하지만 누나랑 다시 만난 지 이제 5일째인데 웬지 누나의 성격을 다 본 거 같아요. 당황하는 모습이나 화난 모습 심통 난 모습 혼나면서 기죽은 표정이랑 어이없어하는 표정도요.”

“어머. 눈썰미가 좋으신데요?”

“누구 덕분에 눈썰미가 좀 좋아졌죠. 생각해보니 6년 전이랑 비교해보면 화연이 누나는 별로 안 바뀐 거 같네요. 내성적이라 표정이 별로 없던 여자아이였지만 자극을 주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격 같은 거요.”

“와아~ 어린 보스라니. 저도 보고 싶은데요?”

“킥킥. 봤다간 아무리 총무부장님이라도 큰일 날지도 몰라…요. 으음.”

아, 또 머리 아프다. 화연이 누나랑 관련된 생각을 하다 보면 자꾸 뭔가 기억이 날랑말랑하면서 두통이 생긴단말야.

내가 잠시 얼굴을 찌푸리고 이마를 감싸 쥐니 이혜령 부장이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왜 그러시나요? 어디 몸이 안 좋은 곳이라도?”

“아뇨. 별거 아니에요. 뭔가 생각이 날듯말듯해서. 아무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어떤 게 궁금하시죠?”

“능력자의 자질이 공개됐다는 점이나, 제 자질이 윗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점이요.”

이혜령 부장의 육체의 굴곡을 닮은 페라리는 천호대교를 넘어 여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신호에 걸려서 멈춘 차창 너머로 이쪽을 바라보는 행인이나 다른 차와 지나가는 버스 안의 승객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매끈한 페라리를 보며 눈길을 줬는데 운전석에는 매력적인 커리어 우먼이 타고 있다는데 놀라고 그 옆에는 웬 고딩이 앉아있다는데 또 놀라고 있는 거 같네.

이혜령 부장은 그냥 봐서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생각보다 어려보이는게, 2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거기다 지적이게 생겼고 무테안경을 쓰고 여성용 정장에 스커트를 입은 채 빨간 페라리를 몰고 있었는데 절로 눈이 갈 만큼 매력적으로 보였으니까.

남자친구인지 남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복 받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 개정되기 전의 법률은 능력자 개인의 자질과 대표 능력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는 방침이었어요. 하지만 그 점을 악용한 일본의 한 관리 때문에 수많은 특수 능력자들의 신원정보가 일본에 흘러들어 가는 일이 발생했지요.”

“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에요. 그거 때문에 일본은 국채를 무진장 지게 되고 자국의 능력자들까지 타국에 팔리듯이 보내게 됐잖아요. 그 직후에 화연이 누나 엄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우리나라랑 일본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구요.”

“맞, 푸흑. 맞아요.”

…내가 대통령님을 그냥 화연이네 엄마로 불러버리니까, 그게 웃음보를 찔렀는지 황급히 머릴 반대쪽으로 돌리면서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웃는 모습도 꽤 귀엽네. 프랑보단 못하지만.

의자 뒷좌석에서 나와 이혜령 부장의 대화를 열심히 듣고 있는 프랑을 돌아봤더니 프랑도 날 보고는 생긋 웃어준다.

“그 이후에는, 차라리 이럴 거면 신상정보를 모두 공개하자는 의견이 나온 거에요. 물론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공개된 정보로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자들을 어떻게 막느냐는 이유로 IWO가 날뛰었지만, 제랄 패커드, 유일한 S 클래스였던 남자가 한마디 하는 걸로 입을 다물어 버렸지요.”

제랄 패커드라는 남자가 S클래스였어? 나중에 검색해봐야겠다.

“뭐라고 했었는데요?”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에서 보호하겠다.”

“헐… 그 많은 능력자를 다 보호한다고요?”

“다는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자신의 정보를 밝힌 사람에 한해서 최대한의 경비를 해주는 거죠.”

“그러니까 능력자 본인보다는 주변 가족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거잖아요? 그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어마무시하게 숫자가 늘어날 텐데 그게 가능했어요?”

“처음에는 얼씨구나 하면서 능력자뿐만 아니라 능력자의 가족을 납치하는 일이 몇 번 벌어졌었어요. 하지만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능력자 협회에서는 납치된 인질을 10분도 안 돼서 모두 구출하고, 납치범들의 배경에 서 있던 거대 기업들에게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의 이름으로 보복을 시작했어요.”

“우어…. 납치됐는데 어떻게 10분 만에 구출했어요?”

“예지 능력자.”

“아….”

“능력자 본부에는 예지, 예감 능력자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구역이 있어요. 그곳에서 하는 주 업무는 바로 능력자 가족들에 대한 안전 확보 개념의 예언과 예지거든요.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납치 시도가 더 있었지만 모두 사전 차단되고 그 뒤에 모든 능력자의 뜻을 대변하듯이 범죄자를 비롯한 배후를 찾아내서 철저하게 응징했지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의 명단을 발표하고 모든 거래를 차단해 망하게 하고 관련자는 모두 잡아다가 알카트라즈에 집어넣고. 그러다 보니 차라리 능력자를 건드리면 건드렸지 능력자의 가족들을 손대는 것은 빠른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게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거에요.”

“대단하네요.”

“그렇죠. 한번 박힌 인식이라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으니까요. 선례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는 예시랄까요? 능력자 연합에서 발표된 범죄기업과는 능력자들은 절대 거래하지 않아요. 그 범죄 기업이 이름을 바꾼다고 해도 연합에서는 끝까지 추적해서 범죄 기업으로 등록시켜버리지요. 그 덕분에 대부분의 능력자는 능력자 인증과 동시에 개인 정보를 등록하기 시작한 거에요.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개인 정보 등록은 필수가 된 셈이구요.”

“그래서 제 자질과 능력이 다 알려진 거네요.”

“네. 그러니까 정서하 씨는 가족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아하하…. 이런 이야기는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일반인들은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모르더라도 능력자가 되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되니 그런 게 아닐까요?”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런데 제가 가족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앗. 으음…. 그게, 보스가 직접 말해준 거에요.”

누나가? …날 다시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날 그렇게 잘 아는거지?

“아무튼 가족분들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정서하 씨가 성인이 되고 나면 정상에 존재한다는 많은 레이드 팀들이 일제히 정서하 씨에게 접촉해올 거에요. 본인이 더 귀찮아질 거라는걸 생각해두시고 마음을 다잡으시는 게 좋을걸요?

“켁. 가족들한테 악영향이 가는 것보단 제가 귀찮아지는 게 더 나아요.”

“후후. 저희 보스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정서하 씨는 가족의 안전을 가장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런 이야기까지 했어?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는데 어느새 햇빛에 반사되면서 파랗게 빛나는 한강 너머로 63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이혜령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놓인다.

방금 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생각이지만. 왜, 음모가 판치는 소설들을 보면 뛰어난 주인공을 협박하기 위해서 주인공의 가족을 납치하거나 해서 협박하고 나중에 가서는 참혹하게 살해하는 이야기들이 많잖아.

그거 때문인지 내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가장 먼저 생각난 게 그런 쪽이었다.

거기다 엄마도 누나도 굉장한 미녀에 포함되니까, 납치되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잖아. 그렇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이혜령 부장과 대화하다 보니 그 부분이 이미 해결되어있다는 걸 알게 되서 이제야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정서하 씨는 알고 계셨나요? 저희 보스가 정서하 씨의 가족 경호에 신경 쓰고 있었다는 걸요.”

“어? 진짜요?”

…내 고민은 괜한 거였나? B 클래스 레이드 팀 보스가 경호에 신경 쓸 정도라면 어쭙잖은 납치나 협박 시도는 사전 차단될 정도일 테니까….

“그럼요~ 정확한 건 조금 있다가 도착할 빌딩에서 보스에게 직접 물어봐 주세요.”

그러면서 싱긋하고 웃는 이혜령 부장의 얼굴에서 뭔가 음모가 느껴지는 거 같다! 뭔가 꾸미는 거 같은데 뭘 꾸미는 거지?

============================ 작품 후기 ============================

추천이 이만큼 올라가니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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