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65화 (65/517)

00065  두번째 각성.  =========================================================================

학교가 가까워지니 점점 인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프랑은 전신을 훤히 드러낸 채 이동하는 건 역시나 부끄러웠는지 두 팔로 내 목을 감싸고 상체를 내 등에 밀착시킨 채 딱 붙어있었다.

꽃잎과 항문이 드러나지 않게 두 다리는 꽈배기처럼 꼬은 상태였지만 프랑의 알몸보다 내 등에 살짝 눌리고 있는 유방의 감촉이 더 아찔하다! 옷이 조금만 더 얇았으면 유두의 감촉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마나 시브 만세!

학교에 도착해서 교실로 이동하는데, 나랑 눈이 마주친 애들이 자꾸 흠칫흠칫 거리면서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지나쳐서는 내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는데, 왜 저러는 거지? 놀란 표정이 안 풀리네?

그러고 보니 등굣길에 눈이 마주쳤던 사람들도 깜짝깜짝 놀랬던 거 같다.

외모가 꽤 많이 바뀌긴 했지만, 각종 흉터와 여드름으로 가득 찬 껍질만 한 꺼풀 벗은 모습이라는 걸 알게됐고, 눈물 날거 같지만 누나와 학교의 여자애들 덕분에 내가 못생겼다는 건! 인식했다!

아무튼 내가 잘생겨서 저렇게 놀란 눈으로 보는 건 아니라는 거지.

쳇. 생각했더니 우울해질거같다.

뭐 공간 지각 능력도 적대심 경고 같은 건 없어서 신경을 끄고 4층의 바람 반으로 이동했다.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 학년을 나눈 다음 1반 2반 3반이나 A반 B반 C반 이러는게 아니고 태양 달 별 불 물 바람 대지 빛 얼음 눈의 10반으로 나눴다.

성적도 공부를 잘하는 애들을 한 곳에 몰아넣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을 정확하게 기록한 생활 기록부를 분별해서 각 반에 골고루 배치하는 식이었다.

여러모로 숫자나 알파벳 순서로 반의 성적을 나눈다는 편견들을 제거하려 한 아줌마…. 아니 이사장님? 대통령…. 에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학교니까 그냥 이사장님이라고 해야지. 이사장님은 여러모로 아이들에게 신경 쓰면서 편견과 차별로 학교에서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상황이 없도록 많은 업적을 이루셨다. 하여튼 존경할 만 하다니까.

시끌시끌한 교실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더니 날 확인하고는 한둘씩 입을 다물다가 곧 반 전체가 조용해져 버렸다.

내 존재가 침묵 생성기인가? 근데 죄다 내 눈을 바라보는 거 같은데?

“좋은 아침~.”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네. 좋은 아침.”

내가 자리에 앉는 걸 본 강소라는 어제처럼 책상 위에 늘어진 상태로 날…. 내 눈을 보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한쪽 팔만 살짝 들어 올려 까닥거렸다.

“인생은 어느 정도 나른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그 나른하다는 건 어느 정돈데?”

“…나 정도~?”

“쳇. 재수 없게.”

강소라의 말이 끝나는 순간 조용해진 교실을 가르는 남자애의 목소리. 저놈 저거, 저 새낀 나한테 뭔 억하심정이라도 있나? 난 저 새끼를 3학년 되고 처음 봤는데 왜 자꾸 시비 질이지?

저놈, 이름도 모르겠다. 샤기컷 스타일을 하고…. 짜증 나지만 나보다 좀 잘생긴 거 같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린 채 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에서 엇, 적의?

그제서야 진짜, 정말로, 맛 없는 반찬을 볼 때 나오는 수준의 적대감이 날 향하고 있었다.

이정도 적대감은 공간 지각도 눈치 채지 못하는건가? 저놈 덕분에 알게됐구만!

근데 생긴 대로 논다는 내 철학에 따르면, 저 새낀 외모도 준수하고 쓸데없이 남한테 시비 걸 얼굴은 아닌데?

양아치 날라리들처럼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서 샤기컷을 하는 바람에 일본 애니와 게임의 주인공 같은 삐죽 머리가 아니라 그저 보기 좋게 가지런히 정리한 느낌이거든.

쪼그려 앉아서 내 책상 옆에 몸을 숨기고 있던 프랑도 저 소릴 들었는지 눈썹을 치켜뜨며 발딱 일어나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냥 신경 끄자. 일반인 상대로 능력자가 으르렁거리는 것도 우스워. 애초에 눈도 그쪽으로 돌리지 않고 공간 지각으로 살피고 있으니까 저 새낀 내가 자길 무시한다고 생각할 거다.

실제로도 눈에서 점점 분노가 흘러나오고 있고. 킥킥.

나는 일어서있는 프랑의 손목을 반 애들이 눈치 못 채게 살짝 잡고 아래로 당기자 프랑은 살짝 입을 삐쭉이 더니 순순히 내 책상 옆의 창가에 기대어 앉는다.

편히 앉지 또 정좌하네. 바닥도 먼지가 좀 있을 텐데, 아니 정령이니까 크게 상관없나?

강소라는 잠시 내 표정을 살펴보더니 내가 별 반응이 없자 프흥 하는 이상한 콧소리를 내더니 자세를 바로 하며 교육용 태블릿을 꺼내 수업준비를 한다.

아, 나도 수업 따라가려면 오늘은 태블릿 가져가서 공부 좀 해야겠네. 시험이 5월에 한 번, 여름방학 전에 한번, 10월에 한 번, 학년 진급 전에 한 번씩 보니까.

힉. 다음 달에 시험이잖아!

공부가 아니라 그냥 교과서 다 외워야겠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다들 조용한 게 내 눈치를 살피는 거 같다. 몇몇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교실 밖으로 나가고 하는데, 그냥 내가 나가주는 게 속편 할 거 같네.

우리 학교 애들은 다들 자긍심이라고 해야 할까, 자존감이 높아서 대중에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조금 무감각한 면들이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는데, 수십 년 전 유행이던 샤기컷을 한 그 새끼만 봐도 그렇지.

그만큼 타인을 배려하고 취미를 존중해주는 애어른들이 많아서 학교 분위기는 굉장히 밝다. 그 새끼만 빼고.

은따는 있을지언정 왕따는 없다! 은따도 그냥 말을 안 걸고 있는 듯 없는 듯 대할 뿐이지, 필요하다면 말도 걸고 이야기도 받아주고 그러니까, 내가 전에 다니던 중학교의 은따나 왕따에 비하면 그냥 존중해주는 모습의 다른 표현이라고 불러야지.

그러니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냐면.

“미성년자 능력자인데 별다른 건 안 보여.”

“그치?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우리 또래인 거 같아.”

“응. 그만 가자, 동아리실에 물건 가지러 가야 해.”

“무슨 물건?”

“1975년에 발매된 원곡 테이프인데, 퀸의 보헤….”

저렇게, 4층 바람 반에 능력자가 있대! -> 구경하러 가자! -> 특별한 건 없네? -> 돌아가자. 패턴이 쉬는 시간마다 밖에 나와서 창가에 기대 있으려니 계속 이어졌거든.

교실에 있으면 그놈이 자꾸 힐끔거리면서 노려보니까 기분이 나쁘기도 해서 나와 있었는데 저렇게 날 보고 가는 애들을 보는 쪽이 차라리 낫다. 어제와는 다르게 날 보고 부럽다느니 질투 난다는 말을 하는 애들도 없었고.

내 눈에도 귀여운 여자애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어서, 순간 공간 지각이 여자애들 알몸을 투시하려 했지만 필사적으로 막았다!

이제 능력자가 아닌 사람은 투시 안할꺼야…. 왜! 뭐! 니들도 이런 능력 있으면 막 훔쳐보고 엿보고 유명한 여자 아이돌들 쫒아다닐거면서!

암튼 학교가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애들을 보면 잘 이해가 안 간다. 우리 학교가 확실히 밝고 좋은 곳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울 누나도 학생회장을 2년씩이나 하면서 학교가 즐겁다고 했는데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었던 걸까?

-서하는 한국적인 표현으로 아웃사이더 기질이 큰 거 같아요.-

교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학교 옥상 정원의 구석에서 운동부의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같은 곳을 내려다보던 프랑이 내게 한 말이다.

순간 좌절할 뻔했지만, 프랑이 나한테 나쁜 소릴 할 리 없잖아?!

“음. 좋은 뜻의 아웃사이더지?”

-네에. 해외에서는 아웃사이더가 좋은 뜻으로 통용되는 곳은 그다지 없는데 한국은 자기만의 생각이나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을 뜻하니까요.-

나는 아침부터 계속 마나 시브를 활성 중인 눈으로 옆에 서 있는 프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좋은 걸까? 아니. 나는 내가 프랑이 말하는 아웃사이더인지도 모르겠어.”

-후후. 서하는 어째서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나와서 돌아다니나요?-

“교실에 있는 게 불편해서.”

그녀는 즉답하는 내 모습에 예상했다는 듯이 자상하게 웃으며 내 뺨을 쓰다듬어준다.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프랑의 손바닥이 기분 좋다.

-서하는 착해요.-

“그럴 리가. 착했다면 지금처럼 프랑의 몸을 훔쳐보고 그러진 않았을 거야.”

킥킥거리면서하는 말에 프랑은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검지로 내 콧등을 약하게 누르며 말했다.

-가진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이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기보다는 자신이 불편해지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이 없어요. 서하.-

“으음.”

프랑의 이야기가 신경이 쓰여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리자 그녀는 천천히 내 앞으로 이동하더니 두 손을 뻗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서하는 자신이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에요. 서하가 하고 싶어서하는 일 때문에 다른 선한 사람이 아파하고 괴로워할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저는 서하가 원하는 것이라면, 가는 곳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곧이어 들려온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이었는데 그다음 들려온 말은 날 흥분하게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건 뭐든지 들어준다니. 으히히?

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일이 없다고? 하다못해 평범하게 한정 수량의 맛 빵만 봐도 매진한 걸 보고 좌절하는 애들이 나오는데?

“교내 매점에서 인기 No.1인 야채 쇠고기 크로켓 하나만 사 먹어도 매진 직후에 온 애들이 좌절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내가 하나 사 먹으면 한명이 더 좌절한다는 말이잖아.”

-에?! 아, 아니 그런건 피해가 아니잖아요!-

“우와~ 프랑 잔인해. 피가 튀고 살이 튀고 정신적으로 무진장 괴로워하는 거만 피해인 거야?!”

-에엑! 그런 뜻이 아니라~!-

킥킥.

내 말에 허둥거리면서 당황하는 프랑을 보니 또다시 웃음이 나온다. 그제서야 또 놀림 받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토라진 표정을 짓는 프랑의 뺨을 마나 시브를 집중해서 살짝 쓰다듬어줬다.

“난…. 모르겠어. 그 초대형, 초거대 거북이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이유도 모르겠고 프랑이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는지도 이해가 안 돼.”

-제가 장담을 하는 이유는….-

“…이유는?”

-저의 사람 보는 눈이 좋기 때문이에요!-

“엥?”

얼빠진 내 표정이 웃기는지 프랑은 까르르 웃으면서 천천히 하늘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서하를 처음 보는 순간 느꼈는걸요. 그리고 위상 세계에서 함께 하면서 확신했어요.-

…….

-그러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서하의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가 주세요. 서하가 가는 길은 저도 끝까지 따라갈 테니까요.-

프랑의 말을 듣다 보니 심각하게 고민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똑똑하고 현명하니 내가 잘못된 길로 가려 하면 틀림없이 날 막아줄 테니까.

“뭐. 좋아! 프랑이 그렇게까지 말하면 내 마음대로 한번 살아보겠어! 프랑도 끝까지 나랑 함께 해줄꺼지?”

-네!-

“좋아. 그럼 첫 번째 목표로 모든 타입의 능력을 얻어볼까? 기간은 여름방학을 시작할 때까지!”

-화이팅이에요!-

개인의 힘으로 얼마나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프랑이 저렇게까지 말해주잖아? 그러니까 가볼 때까지 가보는 거야!

5교시가 끝나고 휴식 종이 치면서 동시에 손목의 인증기에서 연락이 왔다는 신호가 왔다.

강소라도 수업이 끝나고 옆에서 뭔가 물어오려고 했는데, 별생각 없이 인증기를 켜서 홀로그램을 띄웠더니 강소라가 흠칫하면서 놀라고 교과재를 정리하던 선생님과 주번을 비롯해 반 아이들 전원이 일제히 날 돌아봤다.

나와 함께 시선을 받은 프랑은 꺄악 하고 작게 비명을 지르며 벽 속에 숨어 들어가버렸다. 애들한테 보이지도 않겠지만 부끄러움은 그런 거랑 상관없나 보다. 킥킥

반 애들이 보든가 말든가 걸려온 전화를 연결했더니 화연이 누나의 모습이 홀로그램 창으로 떠올랐다.

“무슨 일이야?”

누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뒤로 보이는 교실의 풍경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수업 중일 텐데 미안. 지금 정부 소속 국연원 원장 한 분과 한국 총괄 지부 대외운영팀의 팀장과 우리 팀의 총무부장이 널 찾아가고 있어. 네가 어제 포획한 에너지 이터에 관한 일이야.]

교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으왕?! 국연원? 국방 연구원 원장 말하는 거 아냐?” “한국 총괄 지부라면 능력자 연합 맞지?”

“에너지 이터? 어제 방송에 나온 그 이형종을 쟤가 생포했어?”

“저거 능력자 인증기잖아? 멋지다~.” “인증기는 홀로그램으로 보인다더니 진짜야!”

“타임리버 보스다! 겁나 예뻐!”

“우오오! 진짜 대통령님이랑 닮았어!” “서로 말 놓잖아? 무슨 사이지?” “바~보야. 쟤 누나랑 타임리버 보스랑 절친인것도 몰라?” “정말?!”

“꺅. 타임리버의 보스인 유화연님이야!” “우와…. 에너지 이터는 하위 이형종이잖아. 감지 타입인데 그걸 혼자 잡은 거야?”

“살아있는걸 잡은 건가?” “왜 쟤한테 일부러 연락한 거지?”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인증기를 통해 화연이 누나한테까지 들리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서하. 매너 모드로 전환해라.]

어? 그런 것도 있나?

잠시 통화 창을 살펴보니 마이크 모양이 보인다. 이건가? 오. 눌렀더니 홀로그램 뒤나 옆에서 내용이 안 보이나 보다. 남자 놈들 표정이 썩어가고 여자애들도 아쉬워한다.

매너 모드로 전환했더니 주변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누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서하. 넌 잘못한 거 없다. 확답을 내려줄 수 있고 내가 보증도 서줄 거야. 그러니 능력자 연합과 정부 부처의 인간이 뭐라고 하든, 널 압박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우리 팀의 부장을 믿어줘.]

“그 총무부장이라는 분은 누나가 믿는 사람이야?”

[내 오른팔과 같은 사람이야.]

누나의 굳건한 표정을 보니 믿어도 될 거 같다. 그나저나 에너지 이터 때문이라고? 도심에 숨어들면 확실히 위협적인 놈인 건 알겠는데 그게 정부 관계자랑 능력자 연합 관계자가 일부러 날 찾아올 일씩이나 되는 건가?

“응 알았어. 믿을게. 그 사람들은 언제 출발했는데?”

[20분쯤 됐으니까 곧 도착할 시간이다. 나는 정부 관사에서 담판 중이라 못 가. 그러니까….]

“알았어. 그 부장이라는 분을 누나처럼 생각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무! 거, 걱정한 거 아니다. 바보야!]

크. 이 츤데레의 정석적인 반응이라니! 츤데레는 라이트 노벨에서나 존재할 줄 알았는데! 표정에서 츤츤거리고 생각이 데레데레하다니. 독특한 매력에 빠져버릴 거 같다!

앗, 나한텐 프랑이 있는데 빠지면 안 되지.

[그자들과 대화가 끝나면 부장을 따라와 줘. 그때 보자]

“응. 좀있다 봐.”

어쨌든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는 만나봐야 알 거 같다.

-에너지 이터 때문이라니. 분명 화연 씨는 연구소에 보내질 거라고 이야기를 하셨죠?-

내가 화연이 누나와 대화하는 걸 책상 옆에서 쪼그려 앉아 지켜본 프랑은 통화가 종료되자 날 올려다보며 물어보았다.

…공간 지각 능력은 내 주 관심사를 가장 먼저 지각하는지 쪼그려 앉은 프랑을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보는데, 작은 국화꽃 같은 항문에 자세 때문에 살짝 벌어진 조개가 여과 없이 느껴졌다.

근데, 공간 지각으로 보는 프랑의 알몸은 회색이구나.

공간 지각이 되면서 거의 실제와 비슷한 색감으로 확인할 수 있어지긴 했는데, 마나 시브를 눈에 집중시켜서 보는 거랑은 조금 다른가 보다.

안돼! 생각을 멈춰야겠어! 곤란해! 이런 데서 텐트 쳤다간 일어날 수 없잖아! 29명이 날 주시하고 있는데!

나는 인증기를 종료하고 손으로 턱을 괸 채 창문으로 얼굴을 돌렸다. 프랑과 대화하는 모습은 반 애들이 본다면 계속 입을 벙긋거리는 걸로만 보일테니까.

-응. 그렇게나 멀쩡하게 생포된 놈은 거의 없다고 했었으니까. 연구소에 보냈다면 나한테 연락을 할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 말야.-

내 얼굴이 향하는 곳으로 조금 움직인 프랑은 날 내려다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에너지 이터에 관해 서하가 필요하다는 일이 생겼다는 거네요. 혹시….-

-응? 프랑은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어?-

프랑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조금 기분이 안 좋은 듯 얼굴이 흐려졌다.

-…제 과민반응일지도 모르지만. 서하가 에너지 이터에게 먹인 위상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말한 프랑은 눈을 감고 기도하듯 두 손을 쥐고 입에 살짝 붙이는 모습이, 자기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흠….

확실히 부주의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눈빛이 마음에 걸린다고 이형종을 죽이지 않고 손으로 잡아버린 거나, 위상력을 먹으려 든다고 위상력을 조금씩 먹인 행위는 어제 프랑이 말한 대로 안전에 대해 너무 무감각했다는 거지.

평소에는 오만 잡다한 생각을 하는 데 정작 중요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는 즉흥적으로 행동해버렸던 거 같다. 그러니까 프랑도 울먹거리면서 날 혼낸 걸 테고.

-생각해보면 나는 중요한 순간에 언제나 생각을 짧게 하고 즉흥적으로 움직였구나.-

-…그것은 현장에 서는 기사들에게도 언제나 문제가 되던 부분이었지요.-

-그랬어?-

프랑은 쓴웃음을 짓더니 쪼그려 앉으면서 내 책상에 얼굴을 살짝 올려놓고 나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생각을 짧게 하고 순간의 판단, 감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져요. 그렇지만 생각을 길게 한다고 언제나 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도 아니지요. 동기들은 물론 선배와 후배들도 판단 착오로….-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는 프랑. 하지만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아버렸다.

-…죽었구나.-

-…네….-

표정이 흐려졌던 건 그래서였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버렸네.

-…우와~. 앞으로 프랑이 없으면 큰일 나겠는걸?-

-네?-

프랑의 입장에서는 영문 모를 소리였는지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또 프랑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동동 떠다닌다!

진짜 신기한데?

슬쩍 손을 내밀어 프랑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물음표에 손을 휙휙 저어봤는데 역시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다. 마나 시브를 눈으로 돌려봤지만 보이는 것도 없고.

-??-

자신의 머리 위로 손을 뻗어 휘젓는 동작에 이건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는 프랑.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런 걸 말 했다간 내 정신 상태를 걱정할 테니 말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조금 바보라서 말야. 프랑이 걱정해준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은 해보겠지만, 금방 까먹고 똑같은 짓을 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프랑이 옆에서 날 지켜줘야 해. 지켜줄 거지?-

내 말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심히 할게요. 맡겨만 주세요!-

딩동댕동~

[3학년 바람 반의 정서하 학생. 3학년 바람 반의 정서하 학생. 위 학생은 교장실로 지금 즉시 와주세요.]

화연이 누나가 말한 사람들이 도착한건가?

곧이어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서 6교시 수업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어서 가봐라.”

선생님은 날 아는지 눈이 마주치니까 얼른 가보라며 손을 저어 보이길래 고개를 살짝 숙이고 교실을 나왔다.

============================ 작품 후기 ============================

며칠 사이에 조회 추천 선작이 갑자기 오르고 있어서 조금 무섭네요….

처음 이야기를 쓸 때만 해도 추천이나 선작이 이만큼 오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_@

초반 1화부터 39화까지는……. 날 잡아서 좀 더 보기 편하고 알기 쉽도록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반에는 갑자기 확! 하고 육체가 변이되는 수준의 변화는 자제하고 조금씩 육체랑 정신 쪽이 변화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위해 몇 가지 정보를 곁들이면서 써놨더니 처음 보러 와주신 분들이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자주 보여주시네요. ㅠㅠ

사실 1화 이전에 -3화 -2화 -1화 0화 해서 4편을 더 추가하고 싶은데 수정도 안 되고 삽입도 안 되고 끄응….

100화 되기전에 4편을 위로 끌어올리고 삽입해버릴까요?

모자란 이야기를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쓸게요!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분들도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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