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3 두번째 각성. =========================================================================
집에 들어왔을 때는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엄마는 물론 아빠도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었고 누나는 반은 울고 반은 화내는 얼굴로 소파의 쿠션을 집어 들어 날 마구 때렸었다!
퍽 퍽퍽! 퍽! 퍽퍽!
“이이이이! 이렇게 걱정시킬 거면 차라리 나가서 들어오지 마! 이 바보야!”
펑펑 울면서도 내가 다칠까 봐 쿠션으로 마구 때리는데 나오는 말은 집을 나가라니. 내 누나지만 진짜 모순덩어리라니까!
아까 도망 나올 때 누나의 분노 주머니를 콱 찌르고 나왔었는데 그 뒤로 밤늦게까지 들어오질 않으니까 오히려 걱정해버렸나 보다.
퍽퍽!
나는 손으로 날 후려치는 쿠션을 막으면서 누나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으으. 미안해 누나! 그래도 잠깐 진정하구 내 말 좀 들어봐! 이 시간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단 말야!”
“흐이이잉.”
“누나도 들으면 이해가 갈 거야. 그러니까!”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던 누나는 내 말을 듣고 그제서야 쿠션을 떨어트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거렸다.
내가 나갈 때랑 똑같이 탱크탑에 핫팬츠를 입고 있었는데 저런 옷을 입고 주저앉으니 내 누나지만 참 민망한 꼬라지다! 저거 요가 자세 중에 하나지? 금강좌라던가.
저렇게 앉으니 특정 부분의 굴곡이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으으. 다 큰 여자가 아무리 가족 앞이라지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티슈를 몇 장 뽑아서 누나의 얼굴에 흐른 눈물을 닦아줬다. 닦아줄 땐 가만히 있더니 다 닦으니까 두 손을 뻗어 내 옆구리를 콱 붙잡았다.
순간 움찔했지만, 그냥 잡혀줬다. 피했다간 후환이 두렵기도 하고. 그런 데 있는 힘껏 꼬집을 줄 알았더니 잡아당겨서 날 앉게 하고 두 팔을 뻗어 날 끌어안는다.
“아까 나가서 들어오지 말라고 한 건 거짓말이야. 진짜 나가면 안 돼?”
훌쩍거리는 누나는 두드려 맞은 내가 홧김에 자기가 말한 대로 할까 봐 걱정이 된 모양이다.
킥킥. 누나도 참 울다가 화내다가 걱정하다가 바쁘네. 그 모습을 프랑은 엄마의 옆에 앉아서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응. 안 나갈게. 이제 이유를 말해줄 테니까 소파에 가서 앉자.”
내가 간단히 누나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 일으키자 누나가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다. 힘이 세져서 그러나? 엄마도 그렇고 누나도 내가 능력자라는 걸 자꾸 까먹는 거 아냐?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상력을 돌리지 않았다면 나도 무리였을 테지만, 두 번째 각성을 하면서 나도 많이 바꼈으니까.
아, 외모는 하나도 안 바꼈다. 제길!!
나는 천천히 일자산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심장으로 모두 모였다가 몸 안 구석구석까지 확 퍼져나간 위상력은 내 머리에도 빈틈없이 가득 들어찼는데,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는 감각이 날 중심으로 1km까지 퍼져있는 게 느껴졌다.
“이건… 뭐지? 공간…인가?”
뭐랄까. 이 공간 자체가 나이고 내가 공간인 느낌이다. 근데 이 공간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고…. 탐색 능력이라고 이름 붙이고 감지, 분석, 투시로 나눴던 능력이 전부 다 합쳐지면서 일정 범위 안의 모든 것이 손에 잡힐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 가끔 시선이 내 정수리 위쪽에서 시작되어서 주위 360도 전부를 보는 느낌의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무척이나 신기한 느낌이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시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그래. 그냥 느껴진다.
땅속과 나무와 하늘과 나뭇잎도 느껴지고 산책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 몸짓 입고 있는 옷의 모양과 그 사람의 생명력, 몸 안의 나쁜 부분까지 모두 느껴졌다.
제일 놀랐던 건 프랑의 영체도, 굴곡도 느껴진다는 거다! 휴식을 취하고 상쾌한 상태에서 정신 집중을 해야만 보이던 영혼의 실이 그냥 감지된다!
눈을 뜨고 있을 때도, 감고 있을 때도 변함없는 같은 정보가 들어온다!
“능력이, 진화했어!”
진화? 아냐, 이건 진화가 아니라…. 맞아. 한 번 더 각성한 느낌이다. 각성하면서 탐색 능력이 완벽해지면서 대폭 바뀌고, 위상력 컨트롤이라 불렀던 마나 시브가 변하면서 위상력도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내가 탐색 능력을 얻고, 굴 안에서 생각했었지. 눈을 떴을 때와 감을 때가 똑같이 감지되면, 진화할 거라는 예감!
이건 진화가 아니라 한 번 더 각성한 수준이잖아! 마나 시브가 진화하면서 탐색 능력까지 각성시켜버리다니!
위상력이 흐르는 모습도, 심장을 중심으로 5갈래의 뫼비우스의 띠 모양이 아니라, 그냥 물 컵에 물을 가득 따라놓은 모양처럼 몸속에 위상력이 가득 차서는 미동도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프랑은 내가 무릎에 손을 얹고 엉거주춤하게 상체를 숙이고 있었더니 방금 전의 에너지 이터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는지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픈 표정을 짓고 눈물을 막 쏟으려고 했다.
얼른 달래줘야겠네!
“프랑. 나 한 번 더 각성한 거 같아!”
-흑. 아픈 게 아니라, 각성을 한 건가요?-
내 말을 들은 프랑은 그제서야 표정이 살짝 풀어지지만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아아. 정말 저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데 닦아주지도 못하고.
손을 뻗어서 프랑의 뺨을 흐르는 눈물을 닦아보려 했지만 역시나 프랑의 영체를 통과해버린다.
어? 손에서 뭔가 느낌이…. 물에 손을 넣고 휘젓는 느낌? 비슷한 느낌이 난다. 뭐지?
일단 프랑의 머리에 손이 들어가 있는 형태라서 잽싸게 빼고 말을 이었다.
“응! 아프거나 그런 건 전혀 없다니까? 에너지 이터 그 녀석이 내 위상력을 빨아먹은 게 아니라 내가 일부러 조금씩 흘려줬다고 그랬잖아. 인증기도 전혀 이상 없다고 했고. 그러니까 울지마. 응?”
-네에. 훌쩍. 죄송, 흑. 해요.-
나는 방금 전의 감촉을 생각하면서 살짝 물의 표면을 스친다는 느낌으로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프랑의 뺨에 흐르고 있는 눈물을 살짝 쓸어봤다.
-아?-
된다! 영체인 프랑이 흘린 눈물이 살짝이 지만 닦였어!
프랑도 뭔가 감각을 느꼈는지 내가 손가락으로 살짝 닦아준 뺨을 감싸며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이게, 어떻게?-
여전히 조금씩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슬픔과 괴로운 표정은 놀람에 덮여 희석되고 있는 거 같다.
“말했지? 각성하고 능력이 진화한 거 같다고.”
나는 주변에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인증기도 꺼져있는 걸 본 다음 말했다.
“방금 프랑을 만졌을 때는 예전과는 다르게, 그러니까 마치 물속에 손을 넣은듯한 감각이 느껴졌었어. 그래서 신경을 집중해보니까.”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프랑에게 살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질 수 있게 됐네?”
다시 손을 뻗어 물기가 남은 뺨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쓸자 수면을 살짝 쓰다듬는 느낌이 든다. 다시 손을 뻗어 두 손으로 프랑의 뺨을 감싸자 프랑은 감격 어린 표정으로 살짝 눈을 감고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내 손바닥의 감촉을 음미했다.
“프랑은 어떤 느낌이야?”
-그러니까 따뜻한 체온이, 부드러운 손바닥에서 제 뺨을 감싸는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요…!-
살짝 손을 올려서 내 손등을 덮은 프랑은 또 눈물을 살짝 흘릴 듯한 표정이 됐다.
-이런 감각은 정말…. 정말 오랜만이에요.-
몸에, 얼굴에 느껴지는 내 손의 감각에 그녀는 감격스러워 했다.
위상 세계로 빨려 들어간 이후로 사람과 체온을 나눈 적은커녕 만난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그 뒤에는 정령이 되어버린 프랑에게 체온이란 건 단순하게 표현할 감각이 아닌 거겠지.
프랑의 영체는 뭘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진다고 프랑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건 아닌 거 같으니, 앞으로도 종종 스킨쉽을 해줘야겠다.
그리고 마저 각성한 능력도 설명해줘야지.
이제 대화에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 날 위해 헌신하려 하는 프랑에게 나 나름대로 답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내 능력에 대해 공유하는 거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만, 각각 따로 놀던 감지, 분석, 투시가 통째로 합쳐지면서 감지범위가 반경 1km까지 늘어났어. 위상력도 모양이 완전히 변해서, 잔잔한 수면같이 위상력이 내 몸 전체에 퍼져서 빈틈없이 꽉 차있는 모습으로 변했고.”
크고 예쁜 눈이 한껏 커지는 걸 보니까 엄청 놀랐나 보다.
-1km…라구요?-
“응. 망원 능력의 거리보다 2.2배 넘게 올랐지!”
-대…단하세요!-
이전에는 감지 분석 투시를 쓰려면 하나씩 하나씩 쓰겠다는 생각을 해야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그냥 생각과 행동이 일체화된 느낌이다.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게 꼭…. 지각 능력이 생긴 거 같아. 그래 지각, 공간 지각 능력이라고 이름 붙여야겠다.”
원래 공간 지각 능력이라는 건 위상력이 나타나기 전에도 존재하는 능력이다. 글이나 단순한 평면 이미지만으로 현실감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린다거나 외부에 느껴지는 감각을 통해서 대상은 3D 화 해서 시간의 흐름을 이미지화하는 능력이랬다.
주로 디자인 분야에서 많이 유용한 능력이랬나?
따지고 보면 공간 지각 능력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이름이지만 그냥 자동적으로 이 이름이 생각나 버렸다. 이거 아니면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망원 능력이 사라지고 예감이 합쳐졌다.
예감 덕분인지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서 겨우 진정하고 날 보며 대단하다는 듯이 초롱초롱 빛내는 프랑에게 테스트 삼아 프랑에게 날 향해 벼락을 날려보라고 했는데, 벼락이 날 지나쳐가는 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날 향해 날라오는 벼락은 그 순간 인식을 할 수 있었다.
쫘작!
“커걱!”
-아악!! 서하!!-
물론 못 피하고 벼락에 살짝 구워졌다. 인식하는 거랑 피하는 거랑은 전혀 다른 거더라고.
날 향해 적대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면 그게 어떤 종류든 바로 캐치 되는 거 같다. 예감이 합쳐진 거 같다고 했는데 이 적의 반응이 예감의 영향을 받은 부분인 거 같다.
적의에 반응하는 360도 최첨단 레이더 시스템이 되었다고 할까. 예전에는 그냥 민간인의 수제 레이더라면 지금은 정규군 최첨단 최신식 시스템이 된 거지!
몇 가지 시험을 더 해보고 싶은데 내 억지에 벼락을 몇 번 쏘다가 마지막에는 날 맞추기까지 한 프랑이 대성통곡을 하면서 나한테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아서 더 이상의 실험은 무리였다.
피부랑 몸 내부에 마나 시브를 퍼트리고 있어서 별로 아프진 않았다고 설명해줘도 끅끅거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게 어지간히 싫었나보다….
슬슬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산에서 내려와 시가지로 나가면서 탐색 범위를 확인해봤는데 날 중심으로 반경 1km까지 감지가 된다. 대충 비교하자면 광화문에서 서울 시청까지의 거리다.
그 범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훤히 보인다. 놀라운 건 범위의 확장과 변형이 내 마음대로라는 거다. 마음먹으면 날 중심으로 1m까지 줄어들었고 1.5km까지 늘어났다.
대신 줄이면 공간 지각이 극도로 응축되면서 민감해지고 늘리면 늘릴수록 느낄 수 있는 감각이 굉장히 옅어졌다.
망원 능력처럼 전방으로 90도 각도로 범위를 바꿀 수도 있었고 구체 형태의 범위가 아니라 원기둥 형태로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딱히 거리를 줄이거나 늘려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내가 관심을 보이거나 할 때가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 건물이, 사람이, 생물이 있다는 생각만 들 뿐 다른 정보 같은 건 안 들어왔다. 예전 탐색 능력이라면 갑자기 쏟아지는 정보에 머리가 터졌을거다.
하지만, 여자 알몸이라는 키워드가 나도 모르게 입력되자, 어어. 프랑 때문이야! 프랑! 프랑의 알몸이 손에 잡히듯 감지되니까!
… 아무튼, 머릿속에 여자 알몸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순간 범위 안의 모든 여성의 알몸이 눈앞에 좌르륵 펼쳐졌다.
…이거 그야말로 사상 최강의 변태 능력이구만!! 거기다 프랑이랑 화연이 누나의 몸에 눈이 적응되니까 다른 여자들 알몸을 보는 게 괴로워! 고역이다!
크윽. 구우글에서 여자라고 검색해서 이미지를 보면 죄다 미녀들만 나오잖아. 그게 포샵질을 했든 안 했든 간에!
근데 밖을 나와보면, 어때?
지금 내 기분이 딱 그거다.
물론 키워드를 예쁜, 여자, 알몸 하면 일곱 명이 보이긴 한다. 그런데 티비에서 많이 본 여자들 같…. 어얶! 가수랑 연예인들이잖아?!
…. 근데 그렇게까지 봐서 뭐해. 지금도 프랑이랑 화연이 누나 알몸이 뇌리에 박혀서 몸에 사리가 생길 지경인데, 여기서 더 보라고?
…….
슬쩍 더 보긴 했는데, 프랑이랑 화연이 누나의 알몸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그다지 감흥이 없다…….
내 남성성이 심각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무튼,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사소한 키워드에도 반응해서 정보가 슝슝 들어와서 그걸 정리하려니 무척이나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말 그대로 주변 환경에는 신경 끄고 날 위협하고 나에게 보내는 적의만 캐치할 수 있게 될 테니 결과적으로 좋아진 거지?
사실 탐색 능력을 돌리다 보면 원하지 않는 정보도 막 쏟아져 들어와서 머리가 아팠던 적이 종종, 아니 매번 있었거든.
이렇게 갑작스러운 각성은 프랑이 이름 지어준 위상력 컨트롤, 마나 시브에서 시작되었다니. 프랑은 진짜 나만의 보물인 거 같아.
위상력 컨트롤이 마나 시브로 바뀌면서 위상력이 1857에서 3733으로 2배 넘게 늘어나서 E 클래스가 되었고, 위상력의 모양이나 움직임이 몸을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을 때는 그저 물? 처럼 조용히 있었다.
신체능력도 위상력을 소모비 하지 않고 신체 강화 타입처럼 움직이던 수준까지 상승한 거 같은데, 여기서 신체 강화 타입처럼 회전시키면 예전보다 더 육체 능력이 상승하는 거 같다!
저번 주말에 들었던 105kg 역기는 위상력을 이용하지 않아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화연이 누나랑 비교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하다. 아까 하늘을 날듯이 점프해와서 내 뒤로 떨어졌을 때에는 정말 104m의 탐색 범위에 들어왔다는 걸 인식하자마자 내 뒤에 착지했었다. B 클래스는 얼마나 강한 걸까?
내 몸 안의 위상력은 예전에는 존재한다는 것만 감지로 느끼고 수치만 체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공간 지각 능력 덕분인지 위상력이 물빛으로 보이고 온몸 구석구석 퍼져 잔잔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고 보면 섬에서 마지막에 싸웠던 두 꼬리 여우가, 시체 더미 뒤에 숨어있을 때 물빛 윤곽선이 육안으로 보였었지? 그 물빛이 위상력이었나보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9시가 다 돼간다. 능력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이렇게나 흐른 줄도 몰랐네.
예전 탐색 능력이었다면 알기 싫어도 제깍제깍 시간이 표시됐을 텐데 지금은 생각하기 전까진 반응도 안 하는군.
겨우겨우 진정한 프랑과 함께 그제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 덕분에 각성하면서 탐색 능력이 진화한 거야.”
나는 일자산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기승전결 형식으로 가족들 앞에서 이야기해주었다.
위상력 컨트롤이 프랑이 지어준 이름으로 인해 두 번째 각성을 하면서 마나 시브가 되었고 탐색 능력마저 진화해 공간 지각 능력으로 변하면서 범위가 1km까지 변했다는 것도 이야기해주었다.
“으으으. 그렇게 위험하면 도망쳤어야지…!”
근데 누나는 내가 두 번째 각성했다는 것보다 하위 이형종을 만난 게 더 걱정이었나 보다.
“그러니까 별로 안 위험했다니까 그러네.”
처음 만났을 땐 깜놀해서 허둥거리긴 했지만!
엄마도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엄마랑 누나한테 확실히 말을 해둬야겠다. 안 그러면 언제까지나 꼬맹이에 어린 아들로만 보일 거다.
“…엄마랑 누나는 계속 까먹는 거 같은데, 나는 능력자야. 내 능력이 쓸모없고 쓸데 없는 거면 모르겠지만 화연이 누나가 날 영입하고 싶어 할 만큼 인정한 능력이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능력이 있는데 엄마랑 누나 품에 안겨서 평범하게 살지 않을 거야.”
내 말에 누나랑 엄마는 놀랍고 서운하다는 표정이 되었는데, 아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고 아빠는 날 이해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연이 누나와 함께 레이드를 다니고 위상 세계 탐색과 토벌을 하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경우도 많아지겠지. 죽을지도 몰라.”
프랑은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며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엄마와 누나는….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꺼내자 사색이 되면서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확실히 말해둘게. 난 헌터가 될 거고,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죽지 않도록 계속 수련을 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꺼야. 엄마랑 누나가 날 걱정해주는 건 잘 알아. 하지만 언제까지나 엄마와 누나의 품 안에서는 살 수 없어. 그러니까, 날 조금만 더 믿어줘,”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누나도 걱정되고 감정이 격해져서는 얼굴이 상기되고 있었다.
“난 남자니까!”
“저 녀석 말이 맞소. 저 녀석도 남자인 이상 제 갈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있을 테고, 그게 지금이라 생각하시오. 언제까지나 품에 안고 살면 되레 아들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 될 거요.”
아빠도 때가 왔다는 듯이 내 말에 지지를 해줬다.
“그래 도오…. 아들은 아직 어리잖아요. 20살도 안됐어요!”
결국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엄마의 눈물에 아빠는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을 이었다.
“18살이면 이제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잖소. 예전 같으면 나도 걱정이었을 테지만. 위상 세계에서 많은 걸 보고 겪어서 머리도 커졌으니 이제 제 앞가림은 할 수 있을 거요. 저놈도 능력자라 이제 제 누나가 때리는 것도 쉽게 막거나 피할 수 있을 텐데도 일부러 맞아주는 걸 보시오.”
에엥?! 아빤 그 말을 왜 지금 하는 거야?! 누나가 그런 거야? 하면서 놀란 눈으로 보잖아!
아빠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이제야 자신만의 길을 찾은 거 같구나. 그 길이 비록 험하다 하더라도 너의 능력이라면 고난은 있을지언정 좌절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 그리고 잊지말거라. 네 뒤에는 가족들이 널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아빠는 차분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에서 날 응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응.”
“아직 쬐끄만게 벌써부터 독립할 생각이나 하구.”
아빠의 말에 가슴이 아리는지 누나도 눈시울이 붉어져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데 말은 저렇게 해도 날 걱정하고 있다는 게 다 보였다.
“아직 독립은 안 할 건데? 글구 난 감지 타입이니까 레이드나 토벌에 가면 다들 날 지켜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흥. 걱정 안 하거든?”
누나는 티슈를 뽑아 팽! 하고 코를 풀면서 투덜거렸다.
“정말. 위상 세계 들어가기 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동생이었는데. 갔다 오더니 점점 뻔뻔해지고 능글맞아지는 거 같아.”
…아니 그건 아니지. 그건 누나한테 맞을까 봐 눈치 보면서 기었던 거고.
그렇게 말을 꺼냈다간 누나가 쌍심지를 키고 날 걷어찰 거 같으니 그냥 가만히 있자.
“아들 저녁 안 먹었지? 엄마가 밥 차려줄게?”
“응.”
“아. 나도.”
엄마도 진정이 되었는지 눈물을 멈추고 날 바라봤는데, 대견하달지, 언제나 어린애인 줄 알았다가 나도 다 컸다는 사실이 느껴지는지 감회어린 표정이었다.
그리고 누나랑 같이 저녁을 만들러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뒤에 아빠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연합에서 가르쳐주는 위상력 운용 기술이 아니고, 네가 위상 세계에서 직접 체득한 컨트롤 방식이라고?”
“응. 그거 덕분에 위험한 순간도 몇 번 넘겼어.”
“아빠도 의술 공부를 하면서 위상력 운용 기술에 대해 좀 알고 있다만. 네가 말한 건 궤를 벗어난 능력인듯하구나.”
“그치? 화연이 누나한테 듣고 나서 알게 된 거지만 마나 시브도 내 능력이었어.”
“…그건 믿을만한 자가 아니라면 남들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 최소, 네 몸을 네가 지킬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진 가능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당신도 그렇고 시하 너도 오늘 들은 이야기는 가슴 속에 묻는 게 좋겠소.”
“네. 알았어요.”
“아빠. 마나 시브가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에요?”
누나는 주방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눈이 동그래지면서 아빨 바라봤다.
“너도 경역학을 배우니 알 게다. 규모의 차이라고 할까, 개인 사업자와 대기업 오너를 비교하면 적절할 듯하구나.”
그게 말이 되는 비유인가? 나는 긴가민가하는데 프랑도 그렇고 누나나 엄마도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만 못 알아들은 거 같다!
“다른 자들은 고작 자신의 능력 타입을 약간 강화하는 데 그치지만 마나 시브는, 아들 말대로라면 다른 타입의 능력도 쓸 수 있게 해주겠지. 게다가 마나 시브를 얻는 순간 탐색 능력이 공간 지각 능력으로 진화했다는 걸 보면 두 능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 같다.”
어라. 그런가? 음. 아빠 말을 들어보니 그런 거 같다. 확실히 다른 타입의 능력자의 위상력 패턴을 보고 베끼려고 벼르고 있으니까.
위상력 컨트롤을 얻고 가장 먼저 깨달은 게 위상력을 빠르게 회전시키면 회전시킬수록 신체 능력이 높아진다는 거였으니, 나중에 본 강우혁 담당관이나 최수한, 화연이 누나를 보면서 패턴을 다시금 확인했었지.
그러니까 위상력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신체 강화 자가 될 수도, 속성 능력자가 될 수도, 회복 능력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됐든 좋으니 공간 지각과 마나 시브에 대해 연구하고 연구해라. 너만의 능력 조합을 찾아내서 단련하는 게 중요할 거다.”
“응.”
지금은 공간 지각 능력이나 마나 시브 자체는 굉장히 완벽한 거 같지만…. 저번에 탐색 능력에 대해 모자란 점을 눈치 챈 거처럼 이번에도 사용하다 보면 뭔가 단점이 보여서 보완해야 할지도 모르지.
“화연이한테 레이드 팀 견학시켜 달라고 연락해놓을 테니까, 그때 볼 수 있으면 보구 분석해봐. 알았지?”
“응. 고마워.”
역시 가족들 앞에서 다 밝히는 게 정답이었다. 물론 능력으로 알몸을 투시할 수 있다는 건 숨겼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아빠가 지적해줬고 누나도 나름대로 나한테 도움을 주려는지 화연이 누나의 레이드 팀에 견학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정식 계약하고 팀 활동에 따라가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앞으로 8개월이나 남았는데 미리 속성과 회복 타입의 위상력 패턴을 분석해서 내 능력으로 만들어놓으면 더 좋은 거지?
역시 누나는 나보다 생각이 깊고 더 멀리 내다보는 거 같다. 괜히 누나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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