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2 에너지 이터 =========================================================================
콰아아아아앙!!
으아아앙!!
뭔가 검은 게 휙 하고 내 뒤로 떨어지더니 땅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 쪽으로 무시무시한 돌풍이 밀어닥친다!
휘청거리다 하마터면 자세가 무너져서 여우 새끼를 놓칠 뻔 했….
…야. 너 지금 뭐 하냐?
여우 새끼는 사지를 쭉 뻗은 채 힘들게 머리를 돌려서는 혀를 내밀어 내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핥고 있었다.
어라? 근데 이거….
“서하!!”
“어어. 누나? 앗! 잠깐!!”
누나는 순식간에 달려들어 내 손에 잡힌 여우 새끼의 머리를 발로 찍어누르려 하는 게 아닌가!
황급히 여우 새끼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옆으로 치워서 여우 새끼의 머리가 터져 죽는 건 막았다! 누나는 내 손을 염려했는지 조금 속도를 늦췄는데 정신 집중 상태여서 아슬아슬하게 빼낼 수 있었다!
“서하! 지금 뭐하는…. 아?! 에너지 이터!! 여기 있었구나!!”
“어? 에너지 이터?”
누나는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자세를 잡았다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내 손가락을 빨기 시작한 여우 새끼…. 에너지 이터를 내려다봤다.
“…뭐야. 이놈이 왜 네 손가락을 빨고 있는 거야?”
여우 새끼는 지 머리통이 터질 뻔 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앞발 뒷발로 내 오른손에 매달려서 열심히 내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었다.
아니 그전에 에너지 이터? 혹시 이놈이 어제 누나가 말한 그 조그마한 놈인가?
-서하! 위험할지도 모르니 얼른 던져버려요!-
프랑은 이형종이 내 손가락을 빨고 있다는 게 못내 걱정되는지 울상과 긴장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니, 괜찮은…거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봐.-
안절부절못하는 프랑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해놓고 화연이 누나한테 물었다.
“누나. 얘가 에너지 이터야?”
화연이 누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이놈이 내 오른팔에 메달려 계속 내 손가락을 빨고 있는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도 섞여 있었다.
화연이 누나는 손을 뻗어 놈의 머리통 쪽으로 가져가면서 입을 열었다.
“맞아. 이거 때문에 3일째 야지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
“서하 구우우우우우우운!!”
그 순간 조금 허스키하고 부드러운 커다란 목소리가 산 아랫자락에서 울려퍼졌다.
그 목소리에 화연이 누나는 말 하다 말고 인상이 팍하고 일그러졌는데, 저 아래 쪽 기찻길 쪽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후우우웅 쿠웅!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최수한은 땅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내 옆에 착지했다.
“서하 군! 이제 내가 도착했으니 괜찮…아?”
그제서야 최수한도 화연이 누나를 봤는지 말끝을 흐리면서 화연이 누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 두 사람은 원수지간인가?
화연이 누나는 한쪽 입 끝을 살짝 올리더니 이죽거리면서 이제야 도착한 최수한에게 시비를 걸었다.
“흥. 담당관주제에 이렇게 늑장 출동이라니. 명패 반납하시지?”
“이게 누구셔? 용문산에 노숙하고 있어야 할 년이 여긴 왜 있는 거야? 얼른 돌아가. 쉿쉿.”
발끈!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거 같다. …화연이 누나 1패.
마치 오물을 치우려는 듯한 최수한의 손짓에 화연이 누나는 얼굴이 약간 상기되더니 이를 앙다물었다가 씹어먹듯이 말을 내뱉는다.
“어떻게 목표 위치를 이렇게나 어긋나게 알려줄 수 있지? 무능한 거 아냐? 잡아야 할 목표가 지금 서하 손에 잡혀있는 건 안 보여? 머리카락을 물들이더니 눈도 물들었어? ”
“헹. 난 생환자 보호관리부라서 이형종 탐지 수색부 일은 안 하거든? B 클래스면서 이런 것도 모르다니 대체 얼마나 무식한거야? 그런 것도 모르는 너야말로 뇌가 근육으로 된 거 아냐? ”
으드득.
누나는, 안타깝게도 통하지 않을 건수를 가지고 최수한을 공격하지만 그 말 할 줄 알았다는 듯 바로 이어진 최수한의 말에 이마에 살짝 핏줄이 생기더니 이빨을 으드득 갈기 시작했다.
…화연이 누나 2패.
“게다가 함부로 작전지역 이탈이라니. 그게 랭킹 2위 레이드 팀의 보스가 할 행동이냐? 암만 뇌가 근육으로 되어있어도 그렇지 생각 좀 해! 이 무식한 바보 근육년아!”
…아. 3패. 최수한의 반격에 할 말을 잃었지만, 분노 게이지가 계속 올라가는게 눈에 보이는거 같다! 저대로 두면 화연이 누나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터지겠는데?! B 클래스가 저렇게 노려보는데 27,000짜리 D 클래스 최하위가 무슨 베짱이지?
누나는 씩씩거리면서 최수한을 노려보는데 저대로 놔뒀다간 울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화연이 누나는 화나고 말 문이 막히면 목놓아 울어버리기였…나? 으음? 뭔가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이 들면서 생각이 잘 안난다.
일단 화연이 누나부터 도와주자.
“제가 화연이 누나한테 도와달라고 한 거에요. 먼 데서 최수한 씨보다 더 빨리 도와주러 온 건데 누나한테 그러지 말고 저한테 말해주세요.”
“어엉?! 왜?! 담당관은 난데 저런년한테 도와달라고 한 거야? 서하 군 너무해! 냉정해!”
저년이라니…. 화연이 누나도 아까 그랬지만 최수한도 그러는게, 막말하는 거 별로 보기 안 좋다.
“막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화연이 누나는 저한테 친누나나 다름없는 존재에요.”
“윽. 미, 미안.”
내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지적하니 찔금하면서 나한테만 사과하는 최수한.
하아. 이 사람은 전에도 생각했지만, 진짜 어린애 같네. 근데 화연이 누나는 왜 눈이 동그래지면서 날 보는 거야?
설마, 나만 화연이 누나를 친누나 같다고 생각했던 거야? …아니 물론 어젯밤에 꾼 꿈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꿀만 한 꿈은 아니 긴하다만.
남남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반응이 좀 서운하다. 아까 통화 했을 때도 그렇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게 화연이 누나였어요. 잠시 뒤면 누나네 레이드 팀에도 들어갈 거고요. 그러다 보니 먼저 생각나서 화연이 누나한테 부탁한 거였어요. 그리고 바로 최수한 씨한테 전화도 드렸잖아요? 규정상에 어긋난 점이 있나요?”
“아, 아니.”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니 최수한이 머뭇거리면서 살살 내 표정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래 봤자 보이는 건 무표정 뿐일 텐데.
“그러다 제가 산책 중에 우연히 이 녀석을 발견하고 신고한 건데, 그것도 규정에 어긋난 점이 있나요?”
“어, 없어요….”
“그럼 갓 생환한 감지 타입 미성년 능력자가 혼자 산책 중에 이형종을 만나게 되면 누구 잘못이 되는 건가요?”
“우리… 잘못…?”
내 말에 눈에 띄게 풀이 죽어가는 최수한을 화연이 누나는 쌤통이라는 표정에 날 힐끔거리면서 의외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 일부러 화연이 누나의 반응을 못 본 척하면서 한숨을 쉬고 말했다.
“상황을 보면 이 녀석이 화연이 누나 타겟인가 본데…. 제가 알려드린 정보를 탐지 수색 부에는 알렸나요?”
“아, 아니요.”
찔끔하는 최수한. 딱 걸렸다.
“제가 드린 연락을 받고 제 근처를 탐지하신 거 같은데, 보고도 없이 바로 달려오신 건가요?”
“으으으.”
“탐지…를 최수한 씨가 한것도 아닌거 같은데, 관련 사항을 보고조차 안했다고요?
“흑. 나, 나는 그냥 하위 이형종인줄 알구….ㅇ
“이형종 출몰 매뉴얼에 하위 이형종이면 혼자 출동하라고되어있나요.ㅇ
“윽!ㅇ
“어찌된 상황인지 수색 부에 알렸다면, 연합 빌딩의 능력자들은 유능할테니 용문산의 옆에서 나타난 같은 등급의 이형종이라는 항목에 힌트를 받아서 용문산에 주둔 중인 능력자분들께 연락이 갔거나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다른 능력자분들이 같이 왔을 거 같은데…. 아닌가요?”
“마, 맞아요오오.”
“대충 상황도 짐작하고 있으시고, 탐지로 이형종을 파악했지만 보고조차 안하고, 이형종 등장시 메뉴얼도 무시하고, 독단으로 현장 판단에, 보조 담당관 혼자 출동이라니.”
“으으으.”
“…강우혁 씨한테 연락도 안 하고 바로 오셨죠?”
“흑.”
연속된 갈굼에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듯이 눈에 습기가 차면서 울먹울먹하는 게 참….
최수한은 여전히 똑같은 검은색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얼굴선이 조금 굵어서 남성미가 보이는데 저런 시커먼 옷에 머리 스타일 때문에 더 남자같이 보인다.
그러니까 저런 울먹이는 모습이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게다가 화연이 누나한테 년이니 근육 뇌라느니 이상한 소리도 했고.
슬쩍 최수한의 전신을 스캔해봤는데 화연이 누나의 몸이 표범 같다면 최수한의 몸은 치타 같았다. 유방은 안타까운 우리 누나보다 작은 게, 진짜 안타깝다! 각성하면 몸이 최상의 상태로 재구성된다는 신체 강화자가 맞나 싶을 만큼 절벽이었다!
유두도 남자만큼이나 작은데 아기가 생긴다면 모유 수유가 가능할까?
몸매는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한데 근육은 화연이 누나의 2배 정도다. 화연이 누나도 평범하게 보면 근육이 거의 안 보이는 일자 복근의 탄탄한 몸이지만, 알고 보면 지방이 근육의 각진 부분을 덮어줘서 그야말로 신체 강화자로서, 여자로서도 완벽한 몸매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최수한은 말 그대로 체지방이 10% 미만인 거 같다. 배의 식스팩이나 옆구리에 드러나는 근육이나 팔과 허벅지는 물론 골반과 엉덩이도 단단해 보이는 게, 만져보면 단단한 근육이 만져질 거 같다.
여러모로 남자 같은 최수한이지만 그나마 사타구니에 있는 여성기가 최수한이 여자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키 181cm에 몸무게가 62kg인 최수한이지만 그녀의 음부는 키와 어울리지 않게 작고 귀여운 모양이었다. 대음순은 적당히 통통하게 살집이 올라있고 소음순도 좌우가 똑같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와 굉장히 귀여웠다.
그런데 왜, 아래쪽에 있는 아기방으로 가는 구멍에서, 애액을 흘리고 있는 거지?
왜? 어째서?? 그러고 보니 최수한의 얼굴이 울먹울먹하면서도 뺨이 살짝 붉어져 있다.
…그냥 울먹인다고 눈에 습기가 차서 조금 반짝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묘한 열기를 품고 있네….
뭐야. 마조히스트였어? 혹시 모르니 확인 사살을 해보자.
울먹울먹하고 있는 최수한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최수한 씨는 정말 쓸모가 없네요.”
“흐윽.”
최수한은 내 말에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훌쩍이는데, 진짜다. 내 말을 들은 순간 보지에서 갑자기 애액이 왈칵 솟아 나왔어!
근데 그냥 보면 잘못을 지적당하면서 갈굼 당해 울먹이는 모습일 뿐이다. 나도 투시와 감지가 아니었다면 절대 몰랐을 거다. 거기다 처녀라니…. 처녀 빗치만큼이나 희귀하다는 처녀 마조 암컷인가?!
금요일 밤에 봤던 복장 그대로인 검은색 가죽 재킷과 가죽 바지를 입은 화연이 누나는 어째 날 보며 질렸다는 표정이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서하 너도 시하 동생이 맞구나.”
윽! 방금 내가 잔소리할 때 누나랑 똑같았나? 그러고 보니 프랑도 내 잔소리를 처음 봤는지 살짝 질린 표정을 짓고 있다가 내가 바라보자 두 손으로 잽싸게 얼굴을 가렸다.
…다 봤어 프랑.
“으흠. 아무튼, 이 녀석은 어떻게 하죠?”
최수한은 입을 삐죽이며 소매로 눈가를 쓱쓱 닦더니…. 에이 진짜 가지가지 하네. 저러니까 내가 잘못한 거 같잖아! 아니 근데 오히려 좋아하고 있는 거 아냐?! 팬티까지 축축해진 게 조금 있으면 바짓가랑이 사이가 젖어버릴 거 같은데?! 아무튼, 소매로 눈가를 닦더니 날 보며 물었다.
“그, 근데 녀석은 왜 서하 군의 손가락을 빨고 있는 거야?”
목소리가 살짝 일렁거리는 게 저거, 슬퍼서 저러는 거 아니다. 살짝 가버리면서 목소리가 떨리는 거다.
이런…. 변태 같은 여자를 봤나!
“이 녀석이 지금 제 위상력을 조금씩 핥아먹는 거 같아요.”
“뭐?!” “뭐어?!” -서하?!-
세 명 반응이 똑같아서 신기하네.
“제 손가락 끝에서 조금씩 위상력을 흘리고 있었더니 그걸 핥아먹는 거 같아요. 제 몸 안의 위상력을 빼앗아 먹는 게 아니고요.”
“…그게 가능한 거야?”
화연이 누나는 신중한 표정으로 에너지 이터를 내려다보는데, 이놈도 징하다. 그 소란에도 꿈쩍도 안 하고 내가 흘려주는 위상력을 빨아먹고 있네.
아까 바닥에 찍어누를 때 느낀 건데, 이놈은 배가 고파서 힘이 없었던 거 같았다. 그러다가 내 가슴팍에 있는 프랑의 영혼석을 보고 눈이 돌아갔던 거고 그 직후에 내가 전신으로 위상력을 돌리니 그 모습에 놀란 거겠지.
그 뒤에 내 손가락을 할짝거리길래 위상 세계의 섬에서 봤던 빛 덩어리의 위상력 흡수 현상이랑 능력자 연합 빌딩의 측정실에서 본 위상력 방출 현상을 응용해서 위상력 컨트롤을 통해 손가락으로 조금씩 위상력을 흘리고 있었던 거고.
그래서 이놈이 정신줄 놓고 내 손가락을 빨고 있는 거다.
“지금 이 녀석이 정신줄 놓고 내 손가락을 핥고 있는 걸 보면 맞는 거 같아.”
“그래. 일단은 이형종이니 그렇게 계속 네 손가락을 빨게 놔두는 건 아니야.”
그러면서 화연이 누나는 번개같이 손을 뻗어 에너지 이터의 목덜미를 잡고 당겼다.
키잉?! 끼이이잉! 끼잉!
녀석은 갑자기 나한테 떨어지자 온몸을 비틀면서 발버둥 치고 자신의 목덜미를 잡은 누나의 손을 발톱으로 할퀴…는 데, 누나의 하얀 피부에는 흠집도 안 난다.
위상력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과연 신체 강화 B 클래스.
나도 슬쩍 손을 뻗어서 누나의 피부를 만져보니 별로 사람의 피부랑 다른 것도 없이 매끈매끈하고 부드럽다. 약간의 지방 밑으로 탄탄한 근육이 만져지는 게, 투시랑 감지로 본 거랑 똑같네. 그런데도 저런 발톱에 생채기 하나 안 나다니.
“?!” “!?ㅇ
“와. 이 녀석이 막 할퀴는데 누나 피부는 멀쩡하네? 난 상처 났는데.”
오른쪽 팔목에 약간 생채기가 나 있는 걸 누나한테 보여줬…는데, 두 사람은 왜 저렇게 흠칫한 표정이야?
근데 내 손이 에너지 이터 가까이로 가니까 누나의 피부를 할퀴는 건 관두고 머리를 쭉 내밀면서 다시 내 손을 핥으려 했다.
“으으음! 서하 군? 인증기로 위상력 측정 한번 해봐. 몸에 이상이 생기면 간단하게 체크 할 수 있으니까. 에너지 이터가 그렇게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지부로 가서 정밀 검사를 해야 해.”
화연이 누나와 프랑도 고개를 끄덕이는 게, 어쩐지 거부하면 안될 거 같다.
헤에. 수치 측정에 그런 기능도 있었나?
최수한의 말대로 수치 측정을 해봤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수치 창의 끄트머리가 녹색으로 반짝거린다.
화연이 누나는 녹색으로 반짝거리는 홀로그램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녹색은 정상, 노란색은 이상, 빨간색은 위험이니까 알아두도록 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려는데 누나는 손안에서 자꾸 버둥거리는 에너지 이 터가 귀찮은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귀찮게.”
딱!
그리고 손가락을 에너지 이터의 머리에 퉁겼더니 에너지 이터는 전원이 꺼진 인형처럼 픽 하고 늘어져 버렸다!
“죽인 거야?!”
“아니.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된 에너지 이터는 희귀해. 이놈이 에너지를 많이 빨아먹고 배가 부르면 움직임임이 빨라져서, 그때는 C 클래스 최상급 이상의 신체 강화자가 아니면 못쫒아. 그러니 매번 잡으면 걸래 짝이 되니까 연구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온전하게 포획했으니 연구시설로 보내든가 할 거야.”
헉. C 클래스 최상급이면 대체 얼마나 빠르다는 거지? 최수한이 2만 7천 정도의 D 클래스 최하급이니까….
까딱 잘못했으면 프랑의 영혼석을 빼앗길 뻔 했다.
“서하 군은 에너지 이터가 신경 쓰여?”
화연이 누나는 끼어드는 최수한이 짜증 나는지 얼굴을 찌푸렸지만 별말은 안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누나는 말빨이 별로인가 보다. 말싸움이 나면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갔…. 어라? 방금 또 머릿속이 조금 지끈거린 거 같은데…. 뭐지? 뭔가 잊어먹은 과거가 생각날 듯한데.
“에너지 이터는 국가 지정 유해 이형종 1급에 속하기 때문에 외모에 속아 넘어가면 안된다구? 애완동물로 키우다가 걸리면 특급으로 법적 제재를 받게 되니까 기억해둬!”
헉, 특급 범죄. 잘 가라 에너지 이터야!
쪼끔 귀여운 모습에 혹하긴 했지만 알카트라즈에 가긴 싫어!
근데 최수한은 묘한 열기가 가득 찬 눈빛을 내게 보내면서 계속 보지 구멍을 벌름거리고 애액을 흘리는 게, 내가 또 매도해주길 바라는 건가?
진짜 변태네….
화연이 누나는 계속 끼어드는 최수한이 정말 마음에 안 드는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넌 그만 본부에 연락하지그래?”
“니가 말 안 해도 할거거든? 이 바보 뇌야!”
빠직
아. 화났다.
퍽!
“깩!”
푸스석! 데굴데굴!
…화연이 누나는 더이상 못 참겠는지 최수한의 옆구리에 발을 시원하게 질러 넣어버렸다.
나무들의 틈 사이로 날라가버린 최수한은…. 땅에 떨어져서 비탈길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저 멀리 산 아래까지 굴러갔다가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주먹을 쥐고 막 흔들지만, 욕설은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아까 내가 했단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
최수한은 이내 투덜거리면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 녀석은 내가 데리고 갈게. 포획은 서하 네가 했으니까 네 앞으로 보상금과 포획 성공에 대한 성과급도 나갈 거야. 기억해둬.”
“어. 응. 누난 바로 가려고?”
“저 노란 수다쟁이가 한국 총괄 지부에 연락하게 되면 나한테도 소집 해제됐다고 연락이 올 거야. 팀원들도 돌려보내야 하니 다시 가봐야지.”
그러면서 누나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왜 보는 거지?
“왜?”
“…아냐. 너한테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 일 끝나면 바로 계약하러 갈게.”
“아. 누나 잠깐만.”
마침 만난 김에 위상력 운용 기술에 대해서 다시 물어봐야지.
“왜.”
으음. 원래대로 표정이 돌아가면서 사늘한 눈이 됐다. 아까처럼 표정이 있는 게 더 귀엽던데.
“누난 조금 눈썹에 힘을 빼는 게 훨씬 귀여울 거야.”
“…….”
…뭔가 날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는 거 같은데. 무서워서 심장이 떨릴 거 같아!
누나는 잠시 손가락으로 자기 눈썹을 만지작거리다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할 말이 그거였어?”
“아니. 위상력 운용 기술에 대해서 대략적인 개요만이라도 알고 싶어서.”
“…위상력 운용 기술은 별거 아냐. 원래의 위상력을 조금 더 특징에 맞게 가속하는 거뿐이야.”
…엥?
“신체 강화자라면 조금 더 몸이 튼튼해지고 힘이 세지고 빨라지고, 재생과 면역계열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그쪽도 강화돼. 속성 능력자는 사용하는 속성의 위력이 강해지거나 범위가 넓어지거나 하고 감지 타입들은 더욱 시야의 확장이나 기감 범위의 증가가 있어. 초능력자들은 염동력의 위력이 강해지는 타입이 있거나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지.”
“그러니까, 위상력 운용 기술이라고 하지만 그냥 자기 위상력을 가속 시킨다는 거야?”
“맞아.”
“그럼 위상력을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든가, 다른 타입의 움직임을 흉내 낸다든가 그런 건 안돼?”
“그랬다간 위상력이 비틀려서 크게 다치니까 배우더라도 절대 시도하지 마. 알겠어?”
화연이 누나는 내가 허튼짓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나에게 협박하듯 주의를 준다.
“응. 알았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누, 누가 걱정해준다는 거야?!”
어라?! 츤데레의 정석?!
“그, 그럼 나중에 봐!”
콰앙!
누나는 그 말을 남기고 발을 힘껏 구르더니 마치 날아가듯 동쪽으로 점프하면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사라지기 전에 귓불이 조금 빨개졌던 거 같은데, 착각이었나? 순식간에 감지범위 밖으로 나가버려서 보질 못했네.
설마 화연이 누나가 날 좋아…할 리가 없나. 어렸을 때 처음 만났을 때도 날 본체만체하고 그 뒤로도 대화는 나누지만 무뚝뚝했었고.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 100명 중 100명이 다 돌아볼 만큼 무진장 예쁘니까 콧대도 굉장히 높아져 있겠지?
그러니까 그냥 절친의 동생인 데다 소꿉친구니까 표현이나마 걱정해 주는 거겠지.
폭풍 같은 한 사람이랑 변태 같은 한 사람이 사라지니 그제서야 주위가 조용해지면서 프랑을 볼 수 있었는데,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쥔 채 날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누나랑 최수한이랑 이야기하느라 너무 방치해뒀어.
“미안. 근데 난 진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하지만….-
프랑은 언데드 타입의 이형종들한테 감염되서 이형종이 됐다가 지금처럼 반 정령 형태가 됐지. 그러니까 이형종과의 접촉이 트라우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주변을 탐색 능력으로 돌아본 다음 말했다.
-에너지 이터가 내 에너지를 빨아 먹은 게 아니야. 위상력 측정실에서 본 측정기의 구동 방식이랑 섬에서 빛 덩어리에서 본 위상력 흡수 방식을 응용해서 체외로 위상력을 조금씩 흘렸던 거야. 그러니까 내 의지로 그 녀석을 이용해 실험해본 거지.-
프랑은 내 말에 놀란 듯이 살짝 다가와 내 뺨을 어루만졌다.
-정말.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거죠?-
-정말. 정말로 어무렇지도 않아.-
살짝 웃음을 띠고 프랑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절대 괜찮다고 하자 그제서야 방긋 웃으면서 내 뺨에 키스해준다.
으흐흐. 프랑의 키스는 언제 받아도 좋단말야.
순간 어젯밤의 아랫입 키스가 생각나 버려서 조금 얼굴이 붉어지는 거 같다. 빨리 이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우거나 치워버려야 하는데….
더 생각나서 거시기가 거시기해지기 전에 생각을 돌려야겠다!!
“그럼 이제 말해줘. 누나랑 최수한 사이가 왜 나쁜 거야?”
-아. 음. …서하는 현명하니까, 괜찮겠죠.-
으잉? 내가 현명해? 으으음. 새삼 프랑의 콩깍지 화가 심해지는 거 같은데.
-최수한 씨와 유화연씨는 라이벌일 가능성이 높아요.-
“라이벌이라구? 화연이 누나가 B 클래스 신체 강화자라고 말 안 했던가? 최수한은 이제 D 클래스라구.”
-말씀 안 하셨어요. 그렇다면 더 맞을 확률이 높겠네요. 아마도 그 두 분의 능력자로서의 시작은 비슷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때는 사이가 지금처럼 나쁘진 않았겠죠.-
“그런데 화연이 누나는 갑자기 크게 성장해서 B 클래스가 됐고 최수한은 D 클래스라서 자격지심을 가진 최수한은 누나를 싫어하고, 누나는 자신의 성장을 기뻐해 주지 못하고 싫어하게 돼버린 최수한이 같이 싫어졌다?”
-바로 맞추시네요! 그거에요!-
프랑은 참 잘했어요~ 하는 듯이 손뼉을 치면서 활짝 웃어준다. 다행히 아까의 심각했던 기분은 많이 풀렸나 보다.
“우움…. 그렇게 간단한 사이일까? 혹시 뭔가 물리적인 타격이 오간 게 원인이 돼서 사이가 나빠졌을 수도 있잖아.”
-거기서 화연 씨의 반응이 대답이 될 수 있어요. 첫째가 최수한 씨를 부른다고 했을 때 보여준 반응. 그리고 자신이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게끔 시간을 조절하게 만든 부분.-
“허?”
그게 왜? 내가 이해 못 한 표정을 짓자 프랑은 상냥하게 웃으면서 조목조목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만약 유화연씨가 정말로 최수한 씨를 싫어했다면 애초에 모든 상황을 다 정리한 다음 부르라고 했을 거에요.-
“끝난 다음 깔아뭉개기 위해서?”
-그렇죠. 하지만 유화연 씨는 그러지 않으셨죠. 자신이 먼저 도착하고 그다음 최수한 씨가 도착하도록 조절한 상황은 그분이 최수한 씨와 매우 적대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 되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상황 수행능력이라던가 그런 걸 보여줘서 최수한이 인정하게끔 하려고 그랬다?”
-네! 그러니까 최수한 씨도 보다 고위 능력자에게 강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걸 거예요.-
“음. 프랑의 말을 듣다 보니 그럴법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프랑은 어떻게 그걸 바로 눈치챈 거야? 같은 여자의 감?”
-푸훗.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평기사 시절에 유화연 씨와 최수한 씨와 비슷한 두 명의 동기가 있어서 금방 눈치챌 수 있었던 거에요.-
“아 그렇구나. 이해했어.”
어쨌든 감정싸움이란 거네. 나이도 많은 처녀들이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고위 능력자라고 해도 그냥 사람인가 보다.
“그나저나 아까 화연이 누나가 말하는 거 들었지?”
화연이 누나와 최수한의 감정싸움이 어디서 나온건지 이해했으니까 위상력 컨트롤에 관해서 화제를 돌려야겠다.
프랑은 방금 전 화연이 누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는지 진지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위상력 컨트롤이랑 연합의 위상력 운용 기술은 하늘과 땅 차이인 거 같아.”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프랑에게 말했다.
“누나 말대로라면 연합의 위상력 운용 기술은 단지 위상력 타입 그 자체로의 가속 하나 뿐인 거 같아. 그에 비하면 내 위상력 컨트롤은 특정 부위에 위상력이 뭉쳐있게 할 수 있고, 원하는 부분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타입들의 위상력 움직임을 모방할 수도 있잖아.”
프랑은 공중에 떠서 내 앞으로 스르륵 날아가 내 얼굴을 보면서 뒤로 날고 있었는데 덕분에 프랑의 몸매가 고스란히 눈에 들어와서 굉장히 보기 흐뭇하다.
어째 날이 갈수록 프랑의 영체가 받는 중력의 영향이 세밀해지는 게, 요즘은 하늘만 날아다녀도 프랑의 유방이 출렁거리고 엉덩이가 흔들거리는 데다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면 몸의 근육이 살짝 요동치듯 움직이는 게 그렇게 관능적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야한 꿈을 꾸는 것도 프랑의 탓이 크다!
“화연이 누나의 말을 듣고 확신했어. 이것도 내 능력이라고.”
프랑은 내 탐색 능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지만 위상력 컨트롤은, 단지 양아치 이무기의 벼락 세례를 받으면서 얻은 기술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두 능력은 정말 굉장해요! 탐색 능력에 위상력 컨트롤이라니. 두 가지가 합쳐져서 고위 클래스가 된다면 서하는 지금보다 훨씬, 아주아주 많이 강해질 수 있을 거예요!-
“응. 그러니까 그 중요한 위상력 컨트롤에 프랑이 이름을 지어줄래?”
-제, 제가요?-
“이미지 각인을 위한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야. 사실 위상력 컨트롤을 처음 익혔을 때 바로 이름을 짓고 이미지 각인 작업을 했어야했는데, 어째서인지 아직까지 이름을 붙이지 않았거든. 근데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프랑이 이름을 지어주길 기다린 거 같아.”
라는 건 거짓말이고 방금 능력이란 걸 확신했기에 이제 이미지 작업을 하려는 거다.
이런 식으로 점점 프랑에게 점수를 따는 거지! 큭큭.
-…….-
프랑은 감당 안 되게 부끄럽다는 듯이 몸을 살짝 비비꼬으더니 몸을 날려 내 등에 메달리면서 입을 열었다.
-마나 시브mana sheave. 마나 시브는 어떤가요?-
잠시간의 생각도 없이 바로 단어를 말하는 걸 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단어인가?
“오. 영국에서는 위상력을 마나라고 부르기도 하지? 뜻도 있고 발음도 좋은데? 내 탐색 능력을, 날 이끌어 줄 마나 시브인가.”
이거라는 느낌이 딱 오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든다!
“마나 시브. 앞으로 나한테 무진장 중요한 능력이 될 거 같은 예감이 들어!”
내 말에 프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리저리 막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얼굴이 하얗게 빛나는 걸 보니 어지간히 부끄러운가 보네. 킥킥.
마나 시브.
이름 덕분에 굉장히 강렬하게 이미지 각인이 되는 느낌이다.
순간 전신의 위상력이 내 심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읏?!”
고통은 없지만,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오른손을 심장 부근에 갖다 댔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위상력은 단 1도 남김없이 내 심장으로 모여들었는데, 그때부터는 탐색 능력을 쓰려 해도 머리 쪽에 위상력이 없는지 발동이 되질 않는다!
프랑은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갑자기 움츠리는 내 모습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내게 다가와서는 내 안색을 살폈다.
스으으으으으
눈을 감는다.
귓가로 위상력이 움직이는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심장에 극도로 밀집된 위상력은 내 전신을 위상력으로 채우듯이 확 퍼져나가서는, 접시에 담긴 물처럼 고요하게 뇌를 비롯한 전신을 가득 채웠다.
아.
그와 함께, 느껴졌다.
공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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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21:55
문단 기호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