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0 학교. =========================================================================
표정째로 굳어버린 반장을 잠시 보다가, 뭐 할 말도 없어서 창가 뒷줄에 있던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돌아왔을 때 발톱 검이랑 옷하고 신발에서 떨어진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는데 말끔해진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
다들 숨을 죽이고 날 보는 게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내가 잘생겨서 본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고 조금 무서워하고, 신기해하는 뭐 그런 눈빛들인 거 같다.
…점점 내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지는 거 같다.
숨을 죽인 채 날 힐끔힐끔 바라보는 반 애들을 프랑은 교실 뒤에서 가슴이랑 음부를 손으로 가린 채 둘러보고 있었다.
부끄러우면 영혼석 안에서 보면 될 텐데.
으으음…. 뭔가 이런 분위기를 바란 건 아닌데. 우와우와 거리면서 위상 세계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바뀐 외모에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그런 걸 바랬는데…. 조금 우울해진다.
탁탁탁
마비가 풀렸는지 반장이 나한테 달려오는 게 보여서 그쪽으로 눈을 돌렸더니 반장은 멈추지 않고 내 책상 앞에 가서 서더니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려친다!
탕!
“괭장, 굉장해! 서하는 이제 진짜 능력자가 된 거야?!”
“어? 어. 좀 많이 바꼈지?”
반장의 반응에 경직됐던 반 분위기가 조금씩 풀리면서 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많이라니, 완전히 바꼈잖아! 키도 되게 커지구!”
얼굴은?!
“생환 축하~. 그래서 무슨 능력 얻었어~? 신체 강화…는 아닌 거 같고. 속성~? 회복~?”
신체 강화는 왜 빼는데?! 게다가 감지 타입은 말도 안 꺼내?!
내 옆 책상에 엎드려서 양팔을 앞으로 뻗고 있는 강소라는 고개만 돌려날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렇게나 삐친 머리를 적당히 모아서 머리 뒤로 묶은 나른한 표정에 나른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있어서 이름을 외웠는데 예쁜애긴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니었지.
“감지 타입이야.”
내 말에 주변이 점점 시끌시끌해지고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에이 뭐야.”
“겨우 감지야? 불쌍하네.”
“저번에도 말했지만, 위상 세계는 할만한 거 아냐?”
귓가로 들리는 소리에, …뭔가 피가 식는 기분이다. 할만하네 어쩌네 한 저 새끼, 내가 처음 돌아왔을 때도 개소리했던 그놈이지?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주변이 조금 조용해지는데 나른한 표정의 강소라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직접 가본 적도 없는 것들이 말은 막 하지~? 돌아왔을 때 모습에 숨도 못 쉬고 굳어있던 것들이~.”
“…….”
강소라의 말에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교실.
얘가 날 실드쳐준건가?
확실히 막 돌아왔을 때는 온몸에 핏자국에 오른손은 노 헤드 맨티스의 앞발을 쥐고 왼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뿔 송곳을 쥐고 있었으니까.
마음에 안 드는 소릴 지껄이는 놈한테, 뭐 나는 좀 힘들긴 했는데, 너라면 위상 세계가 쉬울지도 모르겠네. 그러니까…. 라고 빈정거리려 했는데, 왠지 구차하고 기분도 나빠져서 강소라한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생각해보니 이죽거리는 모습을 보여봤자 프랑한테 점수만 깎일게 뻔했다!
기사라서 그런 식의 조롱은 안 좋아할게 뻔하니까. 앞으로 조심해야지.
그러면서 내 옆의 창가에 몸을 기대어 서 있는 프랑을 올려다보니 그녀는 걱정스럽고 화난 표정으로 나와 교실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 감지라고 실망하지 마! 아는 오빠한테 들었는데 감지 능력자가 위상 세계에서는 필수라고 들었어. 그러니까….”
“괜찮아. 감지 능력 덕분에 살아온 건 사실이고, 내 능력이 하찮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
“으, 응.”
내 목소리가 조금 서늘했는지 날 위로하려던 반장은 눈에 띄게 머뭇거리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에이. 모르겠다. 머릿속도 복잡하고 탐색 능력으로 들어오는 학교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 싫다.
…애들이 날 보고 환호하지 않아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신경을 끄고 들어오는 정보를 걸러내면서 차단하고 있으려니 담임인 최미란 선생님이 안 들어오고 옆 반의 김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으음…. 엄마는 아직 교장 선생님이랑 담임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으으. 탐색 좀 줄여야지. 머리아파올려구 하네.
“자자, 오늘은 내가 조례를 맡아주마. 오, 네가 귀환자 정서하구나. 거기서 살아오다니 대단한걸? 축하한다!”
이미 소문이 다 퍼진 건가? 학생들 사이에서 땀내 선생으로 불리는 체육 선생님인 김 선생님은 날 향해 세 번 박수를 쳐주길래 나도 살짝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해주었다.
체육 선생님은 별거 없는 조례를 금방 끝내고 밖으로 나가셨다.
“저기저기~.”
체육 선생님이 밖으로 나가자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강소라는 손을 턱에 괴며 날 보고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알려줄래~?”
“뭔데?”
“학교에서 배운 거, 도움이 됐어~?”
반 애들이 나한테 귀를 기울이는 게 감지로 보인다. 별거 없어 보이고 감지 타입이라 불쌍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건가.
…에이, 이제 나도 능력자인데 대범하게 굴어야지! 속 좁아 보여!
“그럭저럭? 불피우는 거랑 몇몇 이형종 들은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였어. 생존 방법도 도움이 됐고.”
“헤에~. 시간 낭비는 아니었구나~. 대답해줘서 고마워~.”
어휴, 듣기만 해도 나른해지는 목소리다. 전부라곤 안 했으니, 난 거짓말은 안 했다?
“뭘. 그러니까 비상식용 벨트는 서른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꼭 하고 다녀.”
그래도 날 실드쳐줬으니 그 마음이 고마워서 진심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 가지를 충고해주었다.
몇 명은 날 보며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이지만, 조금 삐진 나는 표정을 굳힌 채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말을 걸기가 어려웠는지 내 눈치만 볼 뿐 다가오는 애들은 없었다. 사실 개학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바로 위상 세계로 빨려 들어가서 아는 애들도 별로 없고 친한 애들은 더욱 없었다.
-서하. 괜찮나요?-
프랑은 내가 기분이 안 좋아졌다는걸 눈치챘는지 내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아 턱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말했다.
-괜찮아. 반응들이 조금 생각이랑 달랐지만, 신경 안 써.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난 생환한 능력자니까.-
-맞아요. 다른 사람의 평판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길을 나아가면 되는 거에요!-
프랑은 활짝 웃으며 그런 자세가 좋은 거라고 날 격려해줬다.
-화이팅이에요!-
발딱 일어서며 양 주먹을 꼭 쥐며 응원하는 프랑의 모습에 삐졌던 기분이 풀린다. 역시 프랑은 내 행복 보충제인 게 틀림없어!
나는 그녀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주고 책상 서랍에서 교육용 12인치 태블릿을 꺼내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4교시가 끝나고 12시 30분이 되자 절반의 아이들은 우르르 교내 식당으로 향하고 남은 아이들은 도시락을 꺼내서 친구끼리 모여 책상을 붙여 도시락을 먹을 준비를 했다.
새삼 나는 친구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놈이 있긴 했는데, 내가 누나의 주입식 스파르타 공부로 의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다른 두 놈은 다른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멀어졌지.
그 뒤로 2년은 은따 당했으니까 친한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 노벨 같은 데서 보면 나 같은 은따한테 다가오는 미소년 미소녀들이 꼭 한둘씩 있던데, 현실에는 그런 거 없더라.
그나마 학교 애들이 다들 순둥이에 자존감이 겁나 강한 애들만 모여서 그런지 왕따 같은 일은 없었지만, 은근히 따돌리는 일은 종종 있었다.
내가 입학했을 땐 너무나 잘난 누나가 날 너무 감싸고 돌아서 친구를 사귈 수 없었고 누나가 졸업하고 내가 2학년으로 올라갔을 땐 이미 은따 분위기가 고정되버렸었다. 날 보는 애들마다 “쟤가 정시하 선배 동생? 근데 누나랑 너무 차이 나네.” 이런 느낌이었지.
거기다 대부분 의한 재단은 초등학교 때 입학해서 에스컬레이터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진학해버리는 게 보통이라 학생의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인연으로 연결되어있어서 나처럼 중도 입학한 사람들은 붕 떠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쟤가 이번에 능력자 됐다며?”
“감지 능력이래!”
“와, 감지 능력은 돈 많이 번다던데 부럽다앙!”
교내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그새 학교에 소문이 쫙 퍼졌는지 여기저기서 날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지막은 여자애였는데 돈을 좋아하는 건가?
돈 좋지.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감지 능력으로 잘도 살아왔네.”
“운이 좋았겠지. 100명이 살아오면 그중에 감지 타입은 5명도 채 안 되니까.”
뭐야. 그렇게나 확률이 낮았어? 하긴, 중간에 위상력 컨트롤을 우연히 익히지 않았다면 헤엄치다 죽었겠군.
그 상황을 떠올렸더니 등에 소름이 돋는다. 제길.
“감지 능력자니까 돈 많이 벌겠지?”
“어지간히 허접이 아니면 어떻게든 확보 하려는 게 R 클래스 감지 타입이니까. 성인식하고나면 우리나라 레이드 팀에서 막 손 벌리지 않을까?”
“하…. 난 미래에 뭘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누구는 자기부상열차 레일에 올라탔구만.”
주로 여자들은 날 보며 부럽다던가 돈 많이 벌겠다던가 앞으로 살기 편하겠다던가 그런 이야기 위주였는데, 남자 놈들은 대부분 날 보며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솔직히 시기하거나 질투라기보단 날 보고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큭큭. 능력자가 돼서 앞날이 탄탄대로인 날 보고 부러워하는 남자 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슬금슬금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해보면 위상 세계가 쉽네 어쩌네 지껄이던 이름도 모르는 그 자식도 내가 부러워서 그랬을 거야.
교내 식당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한 층에 200명씩 동시에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졌는데 최신식 시설에 위생에도 매우 신경 쓰고 요리사만 해도 10명이 넘고 요리 보조원까지 치면 30명이 넘어간다. 물론 청소원도 6명이 따로 있다.
메뉴는 매달 바뀌고 최소 같은 메뉴가 등장하는 건 6개월 뒤라고 할 정도로 레퍼토리가 굉장히 다양하다. 기본 선택 메뉴들은 4,000원이지만 퀄리티가 5성 호텔 수준이라 다들 불만 없이 식권을 끊어서 사용할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추천 메뉴는 가격이 2,500원밖에 안 한다.
…밖에서 2,500원 내고 밥 먹으려면 라면 하나 사 먹을 수밖에 없지. 그런데도 음식의 질은 기본 선택 메뉴들에 비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 점심 뭐 먹지 고민하던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의 메뉴!
매달 1만 장의 식권을 발권하고 학교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1시 30분 이후부터 외부인들도 들어와서 식사할 수 있게 해놨는데 기본 메뉴의 가격은 6,000원. 추천 메뉴의 가격은 4,500원으로 이거 때문에 주변 사무실의 식사 시간이 오후 1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교내 식당을 운영한다고 누나가 말해줬다.
우리누나? 남들 1년 하는 학생회장직을 2년 연속하신 학생회장님이었거든. 본인한테 직접 들은 내용이다. 참고로 교내 식당 시스템의 발상 자가 이사장님이다. 그러니까 화연이 누나네 아줌마.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 중에 한 분이신데 이렇게 부르니 격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네.
그러니까 깨끗하고 깔끔하고 맛의 3박자를 맞춘 교내 식당의 식권 30장은 주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한 달간의 행복의 티켓인 셈이라고 누나가 말하더라.
나 역시 엄마의 손맛과는 또 다른 맛으로 행복을 느꼈다. 밥 먹는 중에도 여기저기서 날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나도 이제 존잘남…. 아니, 존잘남이 됐으니까! 존나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존나 잘난 남자!
프랑은 애들이 우글거리는 교내 식당까진 차마 따라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밥 다 먹고 나오니 다시 옆에 따라붙었었다.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평소에 쉬던 구석 자리로 이동하려고 했…다가 그냥 운동부원들의 훈련 장면이 내려다보이는 휴식공간으로 가서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전문 교육을 배운 정원사가 직접 가꿔서 경치 좋고 분위기 좋고 아름답고 깔끔한 장소라서 학생 커플들이 도시락을 싸와서 같이 먹고 일광욕도 하는 곳 이었는데, 예전의 음침한 나는 접근도 못 하던 곳이었지.
물론 혼자 있는 애들도 있는데 그런 애들은 대부분 외모 되고 외부 신경 안 쓰는 아웃사이더들이니까. 나처럼 주변 신경 많이 쓰는 인간은 올 곳이 못 됐었다.
하지만 이제 능력자가 되었으니까!
봐라!
“들었어? 쟤가 4년 만에 나온 생존자래.”
“응. 감지 타입 능력자라고 들었어.”
“난 위상 세계로 빨려 들어가면 15일 동안 못 버틸 거 같아. 무서워.”
“괜찮아. 네가 위상 세계로 가면 나도 따라가서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
“…정말?”
“그럼!”
“영진이 너무 좋아♡”
…좋기는 개뿔이. 따라가긴 뭘 따라가? 따라 갈 수 있었으면 위상 세계 사망자 수가 지금의 1/3 이하로 떨어졌을거다!!
아무튼, 4년 만에 나온 생존자. 이 말이 오늘 등교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내가 4년 만에 첫 생존자라…. 확률로는 0.23%인가? 매년 12명의 사람이 끌려들어 갔을 텐데 4년 동안 48명 중에 나 혼자 살아나오다니. 새삼 미성년자 생환율이 얼마나 낮은지 실감이 된다.
학교에 소문이 다 퍼져서 수군거릴 만 하네.
그나저나 보통 일본 애니나 만화, 게임에서는 이렇게 튀는 존재가 나타나면 주변에도 톡톡 튀는 미녀라던가 미소년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던데, 나한테도 모이려나?
문득 미녀 하니까 프랑이랑 화연이 누나가 생각났다.
크으…. 어젯밤 꿈을 생각했더니 또 피가 몰릴려고 하네. 아무튼, 몽정을 할 정도로 욕구 불만이 쌓였다는 뜻으로 봐도 되려나?
-교제 중인 아이들이 많네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네?!-
-아냐. 왠지 이 말을 꼭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랬어.-
내 앞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내 시선까지 신경 써주던 프랑은 키득키득 꺄르르 하하 호호 하는 애들을 살짝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흠…. 그러고 보면 프랑은 살아있을 적에 누구랑 사귀지는 않은 건가? 막 청혼이랑 러브레터가 쏟아져 들어오는 걸 다 거부했으니까…. 좋아한 사람도 없었으려나?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궁금해져서,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프랑은 위상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네!-
컥.
좋, 좋아했던 사람이라. 하긴 프랑은 27살이나 되니까 그런 사람이 이이 이, 있을 법도 하, 하지.
진정해라, 나. 프랑이 지금 좋아하는 사람은 나니까! 그 사람은 지금쯤 죽어서 땅속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을 거라고!
-정기사단의 단장이신 플로랑스 에퀴레님과 평기사단의 단장님이신 아랑 드모레님, 부단장이신 에벨 녹퀴온님은 그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한 인격자분들이셨어요!-
네?
- 세 분 모두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셨지만 인품과 인격 모두 고매한 분들이셔서 가문의 능력자들도 세 분 만큼은 모두가 좋아하고 존경했지요! 가주님과 원로분들마저도 세 분께 존칭을 붙이며 대접해드렸을 만큼 훌륭한 분들이세요!-
-…프랑이 그렇게나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이라니. 나도 궁금해질 정도야.-
프랑은 정말로 그 세 명을 존경하고 좋아했는지 두 눈을 반짝이며 온갖 자세를 다 취하면서 세 명의 무용담과 이야기들을 흥분해서 막 쏟아내는데 남은 점심시간 30분을 모두 써서 들어줬다.
딩동댕동
-아. 수업 예비종이야. 교실로 돌아가야겠다.-
-그래서 녹퀴온님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가주님께…. 네? 앗! 시간이 벌써…. 서하의 휴식 시간을 뺏은 건 아닌가요?-
그럴 리가요! 프랑이 자세를 취할 때마다 흔들거리는 가슴이랑 은밀하게 보이는 그 부분 덕분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라고는 죽어도 말 못하지.
-응. 난 특히 플로랑스라는 분이 맘에 들어. 자신의 힘으로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모두 부수는 사람이라니.-
-네! 플로랑스님은 정말 멋졌었지요….-
다시 플로랑스라는 사람을 떠올리는지 눈빛이 몽롱해지면서 마치 소녀틱한 표정으로 변해가는 프랑.
저렇게나 좋아하고 존경하는데, 나도 그 정도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줘야지.
프랑이 존경하고 좋아한다는 세 명 모두 여자라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진짜로.
“저거야?”
“어.”
“능력자로는 안 보이는데?”
“능력자 맞대. 물방울이 사라지면서 나타났으니까. 거기다 노 헤드 맨티스 앞발로 만든 칼이랑 이형종의 뿔로 만든 송곳도 들고 있었고 교복에 피 묻은 흔적이 엄청났다더라.”
쉬는 시간에 복도를 걷다 보니 남자 두 놈이 내 쪽을 향해 수군거리는 게 내 귀에 들어왔다.
저거 내 이야기 맞지? 훗 어리석은 우민들 같으니, 능력자인 날 찬양해라! 우하하하!
그와 동시에 난 위상력을 귀에 집중해서 두 명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다른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왔지만, 정신을 집중하니 두 명이 나누는 대화가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우와~ 진짜? 위상 세계 별거 아닌가 본 데?”
잉?
“왜? 위상 세계는 위험하다고 다들 말하잖아. 돌아왔을 때 옷도 보면…….”
“너 몰랐냐? 저거 기분 나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히죽히죽 웃던 싸이코잖아.”
“그래?”
“거기다 체력측정 때도 보면 겁나 허접해서 100m 달리는 데 18초나 걸렸다던데? 키도 160에 몸무게도 80이 넘어가는 돼지였대.”
켁!!!
“헐. 진짜? 대박이다.”
“킥킥. 저런 허접탱이가 위상 세계에서 살아 돌아올 정도라면 우린 그냥 날아다닐 거 같지 않냐?”
“그러게 킥킥. 야 근데 저거 갑자기 왜 서 있는 거냐?”
“어? 그러게…. 설마 우리 이야기 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
“…헉 시발. 빨리 가자.”
“어어.”
부들부들
두 놈이 날 흘끔거리며 저 멀리 황급히 걸어가 버리는 게 느껴진다. 설마… 설마 했지만 멀리서 애들이 날 보며 소곤거리던 건 내가 능력자가 돼서 부러워서 그러는게 아니라, 저런 식으로 날 흉보는 거였나?!
내가 위상 세계에서 얼마나 죽을 똥을 쌌는데!!
설마 하면서 주변에 수군거리는 이야기에 집중했더니 수많은 대화가 귀에 들어오는데 그중에 날 보며 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위상 세계를 쉽게 보거나 깔보는 이야기들뿐이었다!
특히 여자애들은 조금 마른 내 외모를 보더니 무섭다느니 흉측하다느니…. 억! 뒤, 뒷골이!
…내장이 싸해질 정도로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날 보며 부러워하고 말 걸어보고 싶다며 꺅꺅거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고작 반나절 만에 이야기가 확 바뀌다니!!
“이건 뭔가 이상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튀어온 나는 누나를 향해 감정을 담아 소리쳤다.
배꼽이 드러나는 분홍색 스포츠 브라와 같은 색의 짧은 핫팬츠만 입은 채 넓은 거실의 카펫 위에서 엎드려서 책을 읽던 누나는 날 보며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또 저렇게만 입고 뒹굴고 있네! 일부러 탐색을 돌리지 않아도 적나라하게 보이는 몸의 굴곡 때문에 잠깐 눈을 돌렸지만 바로 원위치하면서 재빨리 거실의 커튼을 쳤다.
망원 능력으로 건너편 아파트를 훑어보자 몇몇 사내새끼들이 망원경이나 쌍안경을 들고 이쪽을 엿보는 게 보인다! 이런 개새끼들. 남의 누나한테 무슨 음흉한 시선을 보내는 거야!! 콱 그냥!
“뭐가 이상하다는 거니?”
“나도 이제 능력자인데 학교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없단 말야!”
순간 벙찐표정을 짓는 누나.
“오늘 학교에서 애들이 하는 이야길 들었는데 순 날 깔보는 이야기밖에 없었다고! 이상하잖아! 난 이제 여드름 뚱땡이도 아니고 얼굴도 잘생겨진 데다 능력자까지 됐는데 이 정도면 인기 있어야 하는 게 정상아냐?”
그러자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내 동생이라는 녀석이 저리 안타까운 녀석이었다니 하는 표정이…. 뭔가 느낌이 싸하다.
“동생아.”
양반다리로 자리에 앉으며 상냥한 표정을 짓고서 날 부르는 누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난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어?”
“네 능력은 뭐니?”
“이형종 탐색 능력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그걸 학교 아이들은 알고 있니?”
“아니.”
내 능력을 왜 알려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능력의 8할은 감춰야지. 가만히 있어도 전신을 스캔하며 알몸을 투시하는 능력이라니. 사실대로 발표했다간 아마도 여자들이 날 변태라고 매장하려는 쪽으로 난리가 날 거다.
“그게 문제인 거야. 넌 분명히 능력자인데, 능력자같이 안 보이는 거.”
“으으.”
내가 능력자처럼 안 보인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누나 양반!
“네 외모는 예전과 비하면 확실히 잘생겨졌지만….”
“졌지만?”
“흔한 얼굴이잖니?”
켁!! 내가 못생겼어?!
“그러니까 네 존재를 어필해서 주변의 인기를 얻으려면 일단 네가 능력자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고 깔볼 수 없게 너만의 기술을 보여줘야 하는데. 보여줄 수 있니?”
“아니…….”
“그런 거란다. 그냥 흔한 얼굴에 능력은 탐색뿐이라 눈에도 안 띄고. 인기가 없는 건 당연하네?”
안타깝다는 표정으로(가식인 게 느껴졌다!) 어깨를 으쓱하는데, 놀리려는 건지 과장된 표정과 행동이 날 화나게 만든다!
이 망할 아줌마가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근데 부정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날 거 같다!
“에이씨!!”
“꺅! 야! 정서하!!”
순간 나는 들고 있던 가죽가방에 분노를 담아 냅다 누나한테 던져버리고는 잽싸게 현관으로 튀어나갔다.
“너어! 들어오면 죽을 줄 알아!”
아프지도 않으면서!! 교육용 태블릿은 학교에 두고 와서 빈 가죽가방이구만!!
“몰라! 이 절벽 뚱땡아!!”
뒤이어 무시무시한 괴성이 터져 나오면서 살짝 뒷일이 걱정됐지만, 탐색 능력이 있으니까 이제 반항다운 반항조차 못 하던 내가 아냐! 누나 따윈 겁 안 난다고!
…근데 조금 떨린다.
나중에 엄마 퇴근하고 집에 오면 들어가야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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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21:49
오타와 문맥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