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54화 (54/517)

00054  프랑의 이야기.  =========================================================================

…후후후.

서하는 역시 상냥하세요.

마음도 강하시고, 판단력도 뛰어나시고….

저는 그러지 못했답니다. 서하는 제 잘못이 아니라 해주었지만, 그건 제 잘못이었어요.

저로 인해 절벽에서 추락해 죽은 남자의 모습은, 저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곳의 우기는 6개월 간격으로 이루어졌는데, 우기가 여러 번 지날 동안 마음속의 상처는 아물지 못했습니다. 수시로 이성을 놓고 육체가 이형종을 죽이는 모습을 꿈을 꾸듯이 뒤에서 바라보기를 수백일.

반 정도는 정신을 놓고 이형종을 찾아다니며 죽이길 반복하다 보니, 저 멀리, 절벽 위 숲의 깊은 곳에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형종의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익숙한 이형종의 감각에 끌리듯이 숲 속 깊이, 깊이…. 들어간 곳에는. 실버 나이트 울프가 있었습니다.

마치 이곳은 나의 영역이라는 듯. 주변은 죽은자의 기운으로 가득했고 숲은 실버 나이트 울프의 기운에 비명을 지르듯 뒤틀린 모습으로 자라있었지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듯, 한참을 상대의 상태를 살펴보며 전투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실버 나이트 울프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이형종이 된 저와 비슷한 크기까지 자라있었습니다. 놈에게 느껴지는 크고, 강대한 기운은 쉬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였지요.

이성으로 육체를 움직여 놈과는 3일 밤낮으로 싸웠습니다.

놈도 신체 강화 타입이었는지, 별다른 기술은 쓰지 않고 난타전으로 들어가 놈의 뼈를 부수고, 제 살이 베이고, 놈의 근육을 짓이기고, 제 몸이 꿰뚤리길 여러 번.

틈을 잡아 저의 곤봉이 놈의 머리를 부술 듯 내려쳐 지는 순간 놈은 저의 이성이 날아갈 정도의 피어가 담긴 포효를 내질렀습니다.

마비된 듯 굳어버린 저에게, 놈은 달려들어 저의 목을 물었습니다.

목을 뚫고 들어오는 놈의 이빨과, 턱 힘에 목이 졸리는 느낌과 쥐어짜 이듯 느껴지는 통증에 굳었던 몸이 풀리자마자 전신의 힘을 양손에 집중해 놈의 주둥이를 잡아 천천히 벌리고, 있는 힘껏 내동댕이치며 놈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양다리는 놈의 배를 조이고, 양팔은 놈의 두꺼운 목을 필사적으로 조였습니다.

목이 졸려 다시금 포효를 지르지 못한 놈은 온몸을 뒤틀고 뒹굴며 저를 떼어놓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저는 조였던 손과 다리를 풀지 않고 그 자세로 수십 분을 버텼더니, 놈의 움직임이 천천히 줄어들었습니다.

잠시 후, 폭발하듯 무엇인가가 실버 나이트 울프의 몸에서 퍼져나오며 상처 입은 제 몸을 감싸고 몸 안으로 스며들고, 스며들지 못한 무엇인가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네. 그것이 위상력이라는건 나중에 서하를 만난 뒤에 알게 되었지요.

제가 이형종이 된 이유는 두 마리의 변종과 한 마리의 아종에게 입은 상처, 그리고 상처를 통해 무언가가 감염되었고 적절히 치료하지 못해 일어났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세 마리의 원수 중 한 마리를 죽인 것이지요.

실버 나이트 울프의 위상력이 대기로 퍼져나가면서 대지에 드러누워 그 느낌을 전신으로 느끼고 있으려니 심장 속에 무언가가 모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위상석이었습니다.

세 마리의 원수 중 한 마리를 죽였다는 생각에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가 약간이지만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맹세했습니다.

남은 두 마리 역시 찾아서 죽여버리겠다고.

그 넓은 숲에 있는 이형종의 많은 수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우기 덕분이었습니다.

6개월마다 한 번씩 오는 우기는, 시기를 맞춰 최하급 및 하급 이형종들이 절벽 위로 몰려오게 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저는 본능에 육체를 맡긴 채 감각에 느껴지는 이형종 모두를 때려죽였지요.

네? 우기가 오기 전 이형종은 4마리를 제외하고 만나지 못했다는 말인가요?

음…. 아마도 제가 죽을 당시 피어가 섞인 포효에 다들 겁먹고 도망가버린 게 아닐까요? 때문에, 홍수를 피하지 못하고 많은 수가 물에 휩쓸려 죽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우기가 다가올 때쯤이면 저는 절벽 근처에서 지냈었으니까요. 저에게 느껴지던 기운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네, 계속할게요.

실버 나이트 울프를 죽이고 심장에 위상석이 생긴 저는 이전보다 더 강해지고, 커지고, 빨라졌습니다. 종종 저와 비슷한 크기까지 자란 이형종을 만났는데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위상석이 있는 이형종과 없는 이형종은 차이가 크게 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본능이 육체를 움직이던 때였는데, 이성이 미처 나오기도 전에…. 만난 사람,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잠들듯이 쓰러지며 눈을 감고는,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옷차림을 봤을 때는 평범한 서양 여성이었이었는데 저와 마주쳤다고 심장마비로 죽다니….

저로 인해 죽은 두 명은, 제 이성에 많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성이 전면에 나와 있을 때에는 이형종을 찾으러 다니지도 않고, 멍하니 나무에 기대어 앉아만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에 대한 반작용인지 본능이 육체를 지배할 때면 더욱 흉포하게 날뛰었습니다.

우기가 스무 번 정도 지났을 때에는, 절반쯤 미쳐있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어떻게…. 미쳐있었냐구요?

그…그것이, 그러니까…. 이성이 몸을 움직일 때는 탈력감과 허무감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졌었구…. 네?! 그 그게, 수렁으로 잠기는 듯한 기분 때문에, 종종 수음도 했었…어요.

수음…. 으으, 그러니까, 자위하는 순간에는 탈력감도, 허무감도 사라지고 그 순간만은 쾌락에 이성을 맡길 수 있었으니까요….

…이성이 있을 때면 수…자위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단순한 쾌락에 이성을 맡길수록 본능이 육체를 움직이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또다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데, 흑인 여성이던 그녀는 절 보자마자 미쳐버렸습니다.

눈이 풀리고 입가에 침을 흘리더니, 헤에헤에거리면서 이리저리 휘청거리다, 제자리에 주저앉아 대소변을 흘리며 키키키 거리면서 웃기만 했지요.

…그런 그녀를 두고, 저도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미쳐버렸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행복할 거라는 생각으로요….

평기사 동기 중에 친하게 지내던 착한 언니가 있었는데, 생환에 성공한 언니는 이지가 사라지고 광기만 남은 채 미쳐있던 상태였었거든요….

언니는 가문 소속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몇 년 후 결국 치료 불가 판정을 받고, 극도의 폭력성만 남아있던 언니는 억지로 재워진 뒤에 조용히 안락사를 받았…습니다.

…괜찮아요.

아니에요, 이야기하게 해주세요. 서하도 궁금하잖아요? 저도, 저도 모든 걸 이야기하고 싶어졌어요.

제가 자리를 피한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감각에 느껴지던 여성의 희미한 느낌은 곧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뒤로 저는 이성이 있을 때면 자위에만 몰두했고, 본능이 나왔을 땐 이형종을 찾아다니며 미친 듯이 학살을 반복했습니다.

네 번 째 사람은. 흑인 남성이었는데 그때에는 이미 하루의 대부분을 본능이 육체를 움직이던 때였었습니다만, 본능도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도 죽게 될 거라는걸 알았는지 멀리서 지켜만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힘겹게 10일을 생존하면서 한 마리의 긴 주둥이 마른 늑대도 잡으며 버텼고, 11일째 바람 속성의 능력자가 되면서 남은 4일간을 버틴 후 생환했습니다.

눈앞에서 하얀 빛무리에 둘러싸여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니… 육체에 이성이 돌아오면서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형종들을 죽이고 다니면 이곳 위상 세계에 온 사람들은 살아 돌아갈 확률이 높아진다고, 그러니….

…….

그랬지만, 다섯 번째 만난 사람은 우연히 저를 발견한 순간 이성을 잃고 도망가다 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결국, 사람을 만나면 접근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고, 저는 그저 이형종만 잡으러 다니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나무에 숨어있던 서하를 만날 때까지 유지하고 있었지요.

네? 아, 나이트 크로울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사람 사이에 찾아서 때려죽여 버렸어요.

살아있는 이형종 들과 동물들을 흡수했는지 덩치가 20m를 넘어가고 있었지요. 주변에 죽은자의 기운을 뿌리고, 시독을 마구마구 뱉어내고 했지만…. 기본형태가 큰 들쥐였는 데다 움직임도 느렸구…. 나이트 크로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사기死氣에 닿으면 피부가 문드러지고 기포가 생기면서 썩어가려 했기에 조금 곤란했지만, 그냥 나무 곤봉으로 천천히 다져서 죽였지요.

나이트 크로울이 죽으면 위상력이 퍼져 나올 테고, 그럼 다친 육체도 회복될 거라 생각했기에 그냥 달려들어서 죽였습니다.

나무 곤봉이 벼락을 맞아 수축하고 단단해진 곤봉이어서 그런지 유독 잘 통한 느낌이었어요.

다섯 번째 사람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블 고스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만난 이블 고스트는 사기가 줄어들자 영체를 유지하기 힘들었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절반 이상 줄어있었습니다.

이블 고스트를 발견한 순간 제 본능은 우선 달려들었습니다만, 그 순간 이블 고스트는 땅속에 있던 두더지의 몸에 들어가버렸습니다.

이블 고스트가 두더지에게 빙의되는 순간 몸집이 2m까지 눈 깜빡할 사이에 자라나더니,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땅속으로 구멍을 파서 저에게서 도망쳐버렸습니다.

네, 제가 서하에게 안내해 주려 했던 은신처가 그곳이었어요.

굴은 깊고 넓은 데다 어째서인지 이형종들이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 곳이었거든요! 그래서 안전할 거라 생각…. 네?

이블 고스트의 흔적 때문에…. 다가오지 않은 게 아니었냐구요?

…….

으…으읏.

죄송해요! 저, 저는 그, 이형종이 가까이하지 않길래, 안전할 줄 알구….

흑.

역시 서하는 상냥해요.

이블 고스트가 빙의된 두더지. 저는 녀석을 몰그라 라고 불렀습니다.

몰그라는 오랜 시간을 저에게서 도망만 다니며 몸집을 점차 불려 나갔는데, 어째서인지 몰그라는 저의 감각에도 걸리지 않았기에 놓치면 찾아다니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었지요.

맞붙어 싸운 적도 많았습니다. 족히 수백 회는 될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싸우다 보니 몰그라는 이형종이 아닌 동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변종 이블 고스트가 빙의한 두더지는 이형종이 아님에도 이형종만큼이나 자라나고 있었고 놈의 앞발에 달린 발톱과 이빨은 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심장에 위상석이 생겨난 후로 특정 부위에 힘을 주면 굉장히 단단해졌습니다. 덕분에 다른 이형종들의 어지간한 공격은 피부에 상처도 내지 못했지만, 몰그라의 앞발톱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셀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이형종이 되던 순간 몸에 새겨져 있던 상처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놈과 싸우며 다시금 몸에 상처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새로 나타나는 사람도 없이 우기가 10번이 지나는 동안 몰그라는 끝끝내 살아남아 덩치가 저와 비슷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때 제 키는 작은 나무보다 조금 더 커졌을 정도였으니까…. 네? 11m 37cm…였나요?

탐색 능력으로 기준이 생기면서 정확하게 측정이 되었다구요?

네에….

아니에요! 지금은 인간 때와 똑같은 모습이니까요! 큰 덩치에 컴플렉스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게다가 그때는 외눈 거인 이형종이었으니까!

읏…. 그렇게 웃지 말아주세요…!

…그 후에는 몰그라와 끊임없이 싸움을 이어갔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는 육체를 본능만이 지배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저 몰그라와 제육체간의 싸움을 지켜만 봐왔었습니다.

…사람이 더는 죽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고, 남은 원수인 몰그라만 죽인다면 다 끝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정확히 무엇이 끝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나약한 저의 정신은 더는 이형종으로 사는 삶은,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정신이 죽는다면, 육체도 죽는 게 순리겠지요.

우기가 다가올 때가 되었었습니다.

더는 시간이 지나면 몰그라는 더욱 커져버릴 테고, 그렇게 되면 저의 육체도 감당할 수 없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본능도 인식했는지 잠시간 몸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우기가 오기 전, 놈과 결판이 날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본능이 쉬던 도중, 희미하지만 강렬한 감각이, 이해가 가지 않는 감각이 본능의 뇌를 자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감각이 저의 영혼을 울리는 듯한 기분마저 들어 오랜 시간 물러나 있던 이성이 앞으로 나설뻔했지요.

본능은, 폭포 인근의 나무 위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채취가, 인간의 것으로 판단한 듯 그저 무심하게 지나쳐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에 다가갔습니다.

네, 나무에 숨은 사람은 서하였어요.

제 모습을 보고도, 고작 수 미터 앞까지 다가갔는데도 이성을 잃지 않고 숨을 참으며 저의 움직임을 뚫어지듯 보고 있었지요.

처음이었어요. 이형종으로 변이해버린 저를 보고도 이성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관찰한 사람은, 서하가 처음이었어요.

이성은 당장에라도 다가가 말을 걸고 싶었지만, 본능은 그것을 무시한 채 몸의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 폭포수 바닥에 쌓인 진흙을 퍼 올려 몸에 발랐지요.

네? 아,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진흙을 몸에 바르고 있으면 피로가 회복되고 상처에 효과가 있었답니다.

네. 절벽 위의 강바닥은 효과가 없었고, 폭포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또한 효과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해요.

후후. 서하가 진흙을 몸에 바르고 다닌 게 정답이었던 거에요.

이성의 움직임을 본능도 느꼈는지 잠시 서하가 숨어있던 나무를 바라봤지만, 마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강을 뛰어넘었지요.

그 직후 몰그라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어째서인지 놈은 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듯했습니다. 그 결과, 본능은 말 그대로 본능적으로 기습하게 되었고….

아? 정확하세요! 어떻게 아셨나요?

에…. 분석 능력으로 몰그라의 몸을 분석해서 추측하셨단 건가요….

역시 대단하세요…!

네. 본능은 몰그라가 주변에 있다는 낌새를 파악하고 소리 없이 도약해 키 큰 나무의 위쪽에 몸을 올렸었습니다.

숨도 죽이고 기척도 죽이며 몰그라가 어디로 다가올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몰그라는 나무 위에 있는 저를 눈치채지 못하고 아래쪽을 지나가려 하고 있었지요.

눈이 있었다면 들통 났을 상황이었지만, 눈이 퇴화한 채 자라버린 몰그라는 저를 보지 못했고, 바람도 몰그라의 뒤에서 불어오며 진흙 냄새를 가려주었고, 미동조차 않은 육체는 몰그라의 수염마저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시작은 뛰어내리며 허리를 노렸지만, 뛰어내리는 순간 몰그라의 수염은 공기의 떨림을 감지하고 재빠르게 전진하며 피하려 했었습니다.

그 싸움의 결과, 저는 왼쪽 손목이 잘리는 부상과 복부에 세 곳의 관통상과 허벅지에도 자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몰그라도 왼쪽 뒷발은 뭉개졌고 머리와 허리에 일격을 허용해 뼈에 금이 간 상태에 오른쪽 앞발의 발톱도 절반을 부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상황만 봐서는 육체의 재생이 가능한 제가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전투였습니다.

몰그라는 재생력이 뛰어나지만 위상력이 없었기에 자연 재생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위상력을 쓸 수 있는 제가 회복력이 뛰어난 편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는 상처에서의 출혈이 심해 더이상의 전투는 무리였고, 몰그라는 싸우고 싶은 기색이 만반이었지만, 이대로 싸움이 이어진다면 서로가 어떤 상황이 될지 장담을 못 했기에 서서히 물러나는 것으로 전투를 끝냈습니다.

그 후 저의 본능은 잘리면서 어디론가 날라간 왼손을 찾고 있었습니다. 잘려나간 손을 이어 붙인다면 재생은 금방 될 테니까요. 몰그라를 죽인다 하더라도 위상력의 폭발은 기대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육체의 손실을 줄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우연히 몰그라와 재회하며 다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상정 외의 순간이었지만 본능은 흉성을 터트리며 나무 곤봉을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

서하? 왜 그러시나요?

별일 아니라구요? 하지만 표정이….

네, 계속하겠습니다.

기운, 그러니까 위상력이 담긴 흉성에 주변 나무들이 부러지고 터져나갔지만 몰그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세 발로 마주 달려들었습니다.

몰그라와는 수없이 많은 싸움을 통해 저는 몰그라를, 몰그라는 저에 대한 싸움 방식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포효에 대비하지 않았을까요.

첫 격돌에서 남은 왼팔을 내어주며 몰그라의 멀쩡한 왼발을 가져가려 했지만 몰그라 역시 부러진 발톱이 있는 오른발로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한쪽 발을 완전히 쓰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무를 부러트리고 넘어트리며 격렬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나무에 몸이 걸려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는 순간 몰그라는 멀쩡한 발톱으로 제 심장을 노리며 왼쪽 앞발을 질러왔습니다.

온전히 피할 수 없어 일부의 관통상은 감수하며 곤봉을 휘둘러 왼쪽 발을 노렸습니다만….

앞발이 비틀리며 올려치던 곤봉은 빗나가 발톱 하나를 부술 수 있었고 놈의 발톱 두 개는 저의 아랫배에 박혀 들어오며 관통해 나갔습니다.

자궁과 질을 관통하는 발톱과 고통에 본능은 다시 흉성을 터트리며 뛰어올라 아랫배에 박힌 발톱을 뺌과 동시에 몰그라의 머리를 향해 곤봉을 내려치며 견제를 넣었지만, 놈은 억지로 달려들며 왼발을 사선으로 그어 올리려 했지요.

놔두었다간 아랫배에서 허리까지 3등분으로 나뉘어 죽을 기세였기에 몰그라의 팔 방향을 바꾸기 위해 곤봉을 놈의 머리로 후려쳐 오른쪽으로 날렸습니다.

네, 오른쪽 허리가 반으로 잘린 상처는 그때 생겼지요.

잘린 허리에서는 토막 난 내장이 흘러나왔습니다만 신경 쓰지 않고 달려들어 쓰러진 몰그라의 척추를 노려 곤봉을 휘둘렀지만 남은 뒷발 하나로 크게 점프해 도망가려 하기에 곤봉의 방향을 틀어 놈의 복부를 후려칠 수 있었습니다.

놈은 피를 토하며 제 키보다 높은 나무 너머로 떨어져 내렸고 본능 역시 점프해서 뒤쫓으며 다시 한 번 흉성을 터트렸습니다.

저는 허리가 반으로 잘려지고, 왼팔이 사라져 힘을 오른팔로 집중하기 힘겨운 상황이었고 몰그라는 복부에 허용한 일격이 치명적이었는지 몸을 세우지 못하고 입에서 피를 토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뛰어내리며 곤봉을 휘둘러 위협이 되는 남은 왼발을 부수려 했지만 놈도 필사적이었는지 왼발과 함께 고깃덩어리로 변한 오른팔을 휘둘러 저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상처를 입혔습니다.

운이 없었지요. 왼팔의 발톱은 피했지만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오른팔의 발톱은 피하지 못해 얼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상처를 입으며 눈이 터졌고,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곤봉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몰그라의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그 뒤는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본능은 감각적으로 몰그라와 싸우기 시작하며 여러 번 타격을 주어 점점 궁지로 몰아갔고, 저 역시 수차례 공격을 허용해 몸의 여러 군데 베인 상처며 왼쪽 유방이 잘려 나가는 고통을 인지했습니다.

둔기에 느껴진 충격과 방향으로 보건대, 놈은 오른쪽 뒷발과 척추에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네? 아…. 몰그라의 사지가 멀쩡한 곳이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아, 아니에요! 아, 악독하다니! 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 저의 본능이….

네?…제 본능이 악독….

…….

화 안 났습니다.

…그 뒤로 두 번의 포효를 더 질러냈지만, 몰그라와의 싸움에서 막대한 기력을 소비했는지 본래의 위력은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내장에 충격을 받은 몰그라에게는 그것마저 고통스러운지 캑캑거리는 비명을 토해내는 것이 귀에 들려왔습니다.

놈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에 본능은 앞뒤 재지 않고 점프해 몰그라의 울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뛰어내리며 곤봉을 내질렀습니다.

곤봉 끝에서 전해져오는 무엇인가 단단한 것이 부서져 나가는 느낌과 저의 심장을 뚫고 지나가는 놈의 발톱 감촉이 극통과 함께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이상한, 감각과 점차 본능이 사라지고 이성이 육체를 잠식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는데, 몸 안을 관통하고 있던 놈의 발톱이 따라 움직이며, 폐와 심장이, 위가 잘려나가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느낌이 몸 안에 퍼지며 무엇인가 푹신한 것이 저의 얼굴과 가슴에 닿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몰그라의 털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미동조차 않는 놈의 육체에서, 놈은 먼저 죽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실 그때에는, 나무에 숨어 있던 서하가 떠올랐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이윽고 무엇인가가 정신을, 혼을 관통하는 감각에 전신의 피부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런 감각은 이내 희미해지고, 정신이, 혼이 늘어나듯이 정수리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생각이 끊어졌습니다.

============================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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