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8화 (48/517)

00048  복귀.  =========================================================================

우리 집은 방이 5개에 거실과 주방 및 식당으로 나뉘어있었고 발코니 세 개와 화장실 2개, 창고가 하나 있는 58평형 아파트였다.

현관문 맞은편에 누나 방과 내방이 있었고 현관 옆에는 샤워부스가 있는 화장실이 있는 형태다. 원래 똑같은 크기의 방인데 누나 방에는 움푹 들어간 옷장이 하나 있어서 방이 조금 더 넓다고 누나가 차지해버렸다. 누나와 내 방 사이의 벽은 미닫이문 두 개로 가로막혀 있었는데 여름에는 미닫이문을 활짝 열고 에어컨을 틀어놓고 지냈었다.

현관에서 조금 들어오면 거실이 있고 그 옆에 주방이 있었다. 주방 뒤편과 거실 쪽에 발코니가 있었고 안쪽 가장 큰방이 엄마와 아빠 방이었다.

큰방에는 내 방보다 조금 더 작은 방 하나와 내방과 똑같은 크기의 방이 붙어 있었는데 작은방은 아빠의 서재로. 조금 더 큰 방은 우리 집의 드레스룸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큰방은 드레스 룸과도 연결되어있었고 또 화장실도 하나 붙어있었는데 여기 화장실은 욕조도 있어서 엄마랑 누나가 종종 목욕할 때 사용했다.

드레스 룸은 내 방 크기만 했는데 우리 가족들의 옷을 보관하는 장소였는데 드레스룸에도 발코니가 하나 붙어있고 그 옆으로 작은 창고가 하나 있었다. 발코니는 세탁실로 사용하고 옆 창고는 옷과 관련된 소비품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주방 쪽에도 발코니가 있어서 조금 개조해서 창고로 쓰고 있었고 거실에 붙은 발코니는 나랑 누나 방과 서재, 엄마와 아빠 방까지 연결되어 덕분에 아침마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 엄마의 화장 거울을 들고나와서 거실에 앉아 프랑과 함께 독순술을 익혔다.

감지 능력 덕분에 내 입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보니 익히는데 꽤 많은 도움이 됐다.

프랑의 입모양도 참고로 하면서 외우고 있었는데 프랑은… 발음과 입 모양이 굉장히 세련되고 정확해서 웃으면서 프랑은 공주님 같다고 해줬더니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했었지.

원래 오늘 계약서를 쓰기로 했던 화연이 누나는 누나의 엄마. 그러니까 대통령님이 불러서 예정을 미루게 됐다고 아침 일찍 연락이 왔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시간이 나는 대로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날 바람 맞힐 정도의 건수라니, 살짝 심통이 나는걸?

말도 안 되는 자뻑질을 하면서 혼자서 키득거리고 있었는데 누나가 봤다면 겸손해지라며 교정의 일격이 날라왔겠지만 들키지 않았다. 후후.

한참 독순술을 익히다보니 조금씩 프랑과 이것저것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어서 프랑에게 궁금한 점은 조금 더 묵혀놓기로 했다.

나는 부족한 단어로 독순술로 대화를 하다보면 잘못된 뜻의 전달이 생길까봐 단어를 다 외우고 완벽하게 대화할 수 있기 전까지는 가능한 지금처럼 있자고 프랑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이 더 좋을 거 같다고 전해왔다.

아무리 우월한 암기력과 기억력이 있다지만, 숫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거 같다.

지금 외운 단어만 4만 단어정도인데, 10만 영어단어 사전을 구해서 보면 시간이 훨씬 늘어날 거 같다. 1 단어 외우는데 10초를 쓴다쳐도, 10만 단어를 외우는데는 1분도 안쉬고 10일을 계속 외워야 하는 시간이니까. 조금 조급증이 생길거 같다.

아침을 먹고 난 토요일 오전, 거실에서 프랑과 함께 독순술을 익히고 있었는데 큰 방에서 느닷없이 아빠와 엄마가 뜨거운 사랑의 시간을 보내려 하길래 깜짝 놀라서 탐색 능력을 꺼버렸다.

어휴, 심장이 벌렁거리네.

내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프랑도 놀라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내가 얼굴을 붉히면서 방안으로 들어와 버리자 그제야 아빠랑 엄마가 있는 방향을 한번 보고는 날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일어난 내 정신에 충격을 주는 사건 때문에 독순술 암기에 집중을 못 해서 그냥 인증기를 이용해서 위상 세계에서 생겼던 궁금증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몇 가지 검색을 통해 전부는 아니지만 궁금했던 점 몇 가지를 해소할 수 있었다.

왜 몇 가지냐고? 클래스 제한에 걸려서 접근할 수 없는 정보가 많았거든! 뭐냐 이게!

…최초의 위상 세계에서 상위 이형종을 봤었다는 글은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다들 거짓말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댓글들이 가득 달린 걸 봐서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나 보다.

그래서 이형종 중에 거북이 종류를 찾아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봤던 초거대 거북이는 없었다. 몇몇 항목은 접근 제한이 걸려있었고.

아무튼, 내가 알고 싶어하는 거북이에 관한 정보가 안 보여서 혹시 키워드가 잘못됐을까 싶어 여러 번 바꾸면서 조사해봤지만 알아낸 건 활엽수림 지역에서 등장하는 이형종의 등급과 종류, 그리고 돈이 될만한 채집품들이었다.

나는 몰랐었는데 숨는데 특화된 능력자들은 이형종과 싸우지 않고 자주 위상 세계를 들락거리면서 부호들의 취미 수집품을 조달해주거나 기업에서 요구하는 약의 재료나 뭐, 특정 물품을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위상 세계의 광물이나 식물 같은걸 채집해서 돈을 벌기도 한다고 했다.

개중에는 위상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희귀한 풀이나 꽃, 열매 등을 구한다는 내용도 올라왔는데 대부분의 질병을 완벽하게 회복시켜주는 세계수의 열매라던가 꾸준히 복용하면 젊고 오래 산다는 장생 초라던가 나도 봤던 라폴리스 꽃이라던가 그런 걸 구한다는 의뢰였지.

그것들은 가격도 헉 소리 나게 비싸서 장생 초는 그램당 1억을 호가하고 세계수의 열매는 여분의 목숨이라고 불리우며 부르는 게 값이었다. 열매라서 보존 기간도 길고 보존도 쉬워서 하나만 있으면 병에 대한 죽음은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라폴리스 꽃은 송이당 5천만 원이었는데 발견 하기도 힘들고 군락이 있는게 아니라 한 송이씩 따로 꽃을 피우기에 찾기도 힘들다고 했다.

“…엄청 비싸네.”

잠시 능력자 연합 빌딩의 엘리베이터에 달려있던 화분이 떠올랐다. 생김새를 눈으로 확인해뒀으니 내 탐색 능력으로 찾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프랑처럼 인간이 이형종화 한 경우는 아예 검색 결과가 아무것도 없었다. 검색하기 전 미리 그녀한테 이야기를 했었는데 프랑이 침울해지길래 괜찮냐고 물어봤었었지.

프랑은 내 옆에서 한참을 검색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있었는데 검색 결과가 아무것도 없는 걸 보고 그제서야 조금 밝은 얼굴로 돌아왔었다.

독순술을 빨리 익혀서 그녀가 어떻게 이형종이 됐는지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다음 찾아본 건 위상력의 감지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였다. 한데 나처럼 정확하게 보는 순간 알아채는 그런 게 아니라 검사실의 위상력 감별기를 공항의 검색대처럼 작고 간단하게 만들어서 위상력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체크하는 게 전부라고 했다.

…아직도 약간 침울해져 있는 프랑이 조금 걱정돼서 그녀에게 영혼석에 위상력을 충전할 방법을 찾은 거 같다고 알려주니 눈이 동그래지면서 그제서야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위상석을 구해서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프랑은 기쁜지 밝은 표정이었다. 표정이 다시 밝아져서 다행이다.

그래서 위상석이 얼마인지 검색을 해봤는데 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고위 이형종의 위상석은 최하가 3천억.

…심장이 벌렁거린다. 내가 들었던 고위 이형종의 위상석이 하나에 수십억 한다고 들었던 이야기는 또 거짓말이었나 보다…했는데 이형종의 위상석에 들어있는 위상력에 따라 다르지만 위상력 점수당 보통 100만 원. 즉 1 TP에 100만 원이라고 했다. TP가 뭔가 찾아봤더니 Topological Point의 줄임말이었다.

즉 수십억짜리 위상석은 고위급이 아니라 중위 이형종의 위상석일 거란 이야기지. 중위급들은 500 에서 1,999의 위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위상석은 중하위급 이형종들부터 몸 안에 만드는지 지금까지 하위급과 최하위급 이형종이 위상석을 줬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위상석은 해당 등급의 이형종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위상력 만큼만 생성된다고 하고.

아직 가설 단계지만 중위급 이형종이 위상력을 1,999까지 채우면 그때부터 위상석이 생겨나서 위상석에 위상력이 쌓인다고 했다. 그리고 위상석도 1,999까지 차는 순간 중상위급 이형종으로 진화하게 되고 위상력은 중상위급 최하위인 200이 되는 거라고 하는데 상당한 신빙성이 있어서 이형종 진화의 기준이 될 거란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타입의 분류와 위상력의 수치 분화가 능력자와 비슷하다는 말이 있어서 이형종들도 성장 가능한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확인 할 방법이 없을거 같았다. 물론 관련 내용도 안보였다.

아무튼, 레이드 팀의 구성을 보니 10명에서부터 50명까지 다양하고 어떤 등급의 이형종을 잡느냐에 따라 능력자의 클래스와 숫자가 달라졌었다.

중상위급을 잡기 위해서는 D 클래스 최상급 이상 10명이 모여야 했고 상위급은 C클래스 최상급 이상이 40명. 고위급은 B 클래스 5명 이상에 C클래스 100명으로 사냥을 한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타임리버 레이드 팀은 고위급은 사냥을 못 한다는 말이지. 만약 화연이 누나가 A 클래스가 된다면 고위급도 잡을 수 있겠지만.

현재 전 세계에는 A 클래스 능력자가 총 여섯 명이 있는데 그중 2명이 국가 소속이고 4명이 능력자 연합 소속이었다. 어떤 타입인지는 어디에도 안나와있었다.

게임을 보면 최고렙이 혼자 깽판 피우고 그러는데 위상 세계에서는 오만가지 변수가 많아서 A 클래스 능력자라고 해도 혼자 B급한테 덤비다간 까딱 잘못하면 죽어나자빠진다고 하더라.

그리고 레이드 팀이라고해서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가서 이형종을 때려잡는 줄 알았는데 그런건 아니고 10명에서 15명 정도로 팀을 짜서 위상 세계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레이드 "팀" 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인증기로 정보를 알아보다보니 문득 화연이 누나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타임리버…. 어디 보자. 오, 여기 있네.”

프랑도 화연이 누나한테 궁금증이 있었는지 살짝 머리를 가까이하며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타임리버 레이드 팀이 세계 랭킹 21위?! 거기다, 세계 개인 랭킹도 218위나 된다…! 한국에서는 3위다!

화연이 누나, 엄청 강하구나.

타입은 역시나 신체 강화 쪽이고 하위 능력으로는 대통령님이랑 같은 재생 강화에 면역 강화를 가지고 있다고 나와 있네. 그런데 어제 화연이 누나를 보면 그거 말고도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은데…. 따로 배운 건가?

그러고 보면 생존학에서는 딱히 능력과 기술의 분류는 안 가르쳐줬는데, 잠시 검색을 해봤더니 능력은 각성하면서 얻은 걸 능력이라고 부르고 직접 능력을 성장시켜서 파생된 것들도 능력으로 구분한다고 했다.

기술은 타인에게 위상력의 활용 방법을 익혀서 따로 발동시키는 걸 기술이라고 한다고?

…위상 세계에 있을 때 분별없이 능력과 기술을 혼동했는데….

그냥 전부 다 능력으로 통일하면 안 되나? 전부 위상력을 쓰는 거 같은데. 실제로 어제 화연이 누나가 피부에서 1cm를 위상력으로 덮을 때도 체내의 위상력이 약간 줄어들었었으니까.

달칵

옆 방에서 누나가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 먹고 지난 일주일 동안 나 때문에 못했던 공부를 하는 거 같았는데 끝난건가?

아무튼 연합에서 G 클래스 이상의 능력자에게 가르쳐준다던 위상력 컨트롤을 검색해봤다. 과연 내가 익힌 방법이랑 얼마나 다를지 기대됐…는 데.

한참을 찾아봐도 관련 정보가 없다. 관련 검색으로 보이는 것들은 컨트롤 습득비 더럽게 비싸다던가 공용 기술을 배우고 싶은데 자격이 안돼서 못 배운다든가 연합 일해라 라는 글만 보였다.

컨트롤도 기술로 분류해서 익히는데 돈 무진장 드나 보다. 하지만 연합에서 교육받고 나서 다른 사람들한테 가르쳐주면서 돈을 벌 수도 있지 않나?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뭔가가 있나 보다.

“나중에 화연이 누나한테 물어봐야겠네.”

나는 인증기 검색 모드를 종료하고 다시 거울을 집어 들어서 영어 단어를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면서 움직이는 입 모양을 외우기 시작했다. 프랑도 날 따라 앞에서 날 보며 입을 방긋방긋 거리고 그 모습이랑 거울에 비친 내 입 모양을 보면서 한참을 외우다 보니 슬금슬금 주방 쪽에서 음식 냄새가 풍겨온다. 엄마랑 누나가 점심 만들고 있는 건가?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나는 꺼놨던 탐색 능력을 활성화하고 부엌을 봤더니 엄마와 누나는 평소의 세 배나 되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와…. 엄마랑 누나랑 또 음식 무진장 만들고 있네.”

아빠는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부르기 전까진 안 나올 생각이신가 보다. 난 음식 냄새에 이끌려 거실로 나가려는데 프랑은 바닥에 놓여있는 영어단어장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어? 그러고보면 프랑은 날 통해서 한글을 익히고 난 프랑을 통해서 영어를 배우는건가?

“프랑. 한글은 어디까지 익혔어? 생각해보니까 서로 한글이랑 영어 독순술을 익히고 있는거네?”

내 말을 들은 프랑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방긋 방긋거리는데 뭐라고 하는지 보인다! 알아들을 수 있어!

-위상 세계에서 서하가 말을 할 때 입 모양이랑 뜻도 외우고 있었어요. 병원에서 단어를 외울 때도 영혼석 안에서 같이 본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 프랑이 내 이름을 불러주다니….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근데 한글로 말한다. 이러면 내가 영어 단어 외운게 헛일이 되...진 않네. 영어는 배워두면 세계 어디에서나 쓸 수 있으니까.

“프랑 엄청 똑똑한가 보다. 나도 능력 얻으면서 기억력이랑 암기력이 좋아졌는데 나보다 머리가 더 좋은 거 같아.”

으음. 유령상태인 프랑인데 학습도 가능하고 중력에도 영향받고 그러는 걸 보면 진짜…. 정령 같은 존재로 변한 거 아냐? 그렇다면 이제 전기의 정령이 된 건가?

-어려운 단어는 잘 모르지만요.-

그러면서 살짝 웃는데, 크윽! 참기 힘들어! 껴안고 쓰다듬고 부비부비하고 싶어!!

그런데 왜 존댓말을 하는 거지? 처음 만난 날 프랑은 자기 나이가 더 많다며 누나라고 했었는데? 음, 그러니까 존댓말이 편해서 존댓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게 습관이 돼서 존댓말을 쓰는 건가?

난 프랑이 날 편하게 대해줬으면 했지만, 곧 이렇게 존댓말을 듣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응. 나도 프랑이 말하는 게 이해돼! 독순술 굉장한데?”

프랑도 내 말에 활짝 웃으면서 스르륵 날아와서 두 팔로 내 목을 안고 등에 업혀왔다. 이 자세가 왠지 프랑과 나의 기본자세가 될 거 같아.

“오후에도 계속하자!”

-네!-

거실로 나왔더니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누나는 여러 종류의 튀김을 만들고 있었고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불고기를 만들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만들어진 음식이 가득이었는데 전부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뿐이었다!

너무 많아!

“우왕. 이거 다 먹으면 나도 헬스장에서 운동해야겠다.”

칼로리를 소비하지 않으면 또 돼지가 될 거야!

“와. 스스로 운동할 생각까지 다하고 기특하네? 그럼 점심먹구 2시에 같이 운동하러 갈까?”

“그럼 엄마도 같이해야겠다. 엄마도 요즘 운동을 안 해서 살이 쪘지 뭐니?”

엥, 나는 그냥 이렇게 먹으면서 운동 안 하면 금방 돼지가 될 거 같기도 하고 이형종 사냥을 대비해서 운동할까 생각한 건데…. 누나는 원래 운동 하고 있었는데 엄마까지 같이 하려 할 줄은 몰랐다.

“엄마가 어디가 살쪘다구 그래?”

“어디긴? 배도 나오는 거 같구…. 얘는! 엄마도 나이 때문인지 살도 찌고 피부에 탄력도 없어지는 거 같으니까 그러지!”

“그 말, 다른 엄마들이 들으면 막 화낼 꺼야.”

그건 그래. 지금만 봐도 엄마랑 누나랑 같이 서 있으면 다들 자매로 보지 모녀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딸은 엄마랑 같이 운동하는 게 싫어?”

“싫다는 게 아니구, 날씬하구 뱃살도 없으면서 살쪘다고 그러니까 그러지!”

엄마랑 누나는 음식을 만들면서 계속 뚱뚱하네 날씬하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프랑은 음식을 만드는 게 신기한 건지 엄마와 누나의 사이에서 둥둥 떠다니며 음식 만드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앗! 야! 손 씻고 집어먹어!”

몰래 새우튀김 하나를 집어 먹으려는데 갑자기 누나가 날 향해 소리치길래 움찔해버렸다. 집어먹지 말라는 게 아니고 씻고 먹으라는 거였어?

오후에도 프랑하고 독순술을 익히려고 했는데 운동하면서 해야겠다. 감지 능력이 있으니 딱히 거울이 없어도 입 모양은 알 수 있으니까.

손을 씻고 나와서 음식을 상으로 나르는 누나와 엄마를 도와 상을 차리는 걸 도와주고 다들 둘러앉아 어제저녁만큼이나 푸짐하게 차려진 점심을 죽기 살기로 집어먹었다. 저녁에는 치킨이랑 피자 사 먹자고 할까?

“나 월요일부터 학교 가면 돼?”

점심을 깨끗하게 다 먹고 빈 그릇들을 식기 세척기에 넣고 있는 엄마를 보며 물었다.

“벌써 학교 가도 괜찮겠니?”

“벌써는 무슨. 10일이나 지났잖아. 위상 세계에 있었던 시간까지 다하면 25일이나 될 텐데 출석 일수 생각하면 이제 학교 나가야 하는 거 아냐?”

“그럼 월요일에 엄마랑 같이 가.”

“병원 일도 바쁠 텐데 올 필요 있어? 그냥 아침에 조금 일찍 가서 교무실에 들르면 될 거 같은데.”

엄마가 워낙 젊고 예쁘다 보니까 학교에 한번 오면 새끼들이 난리 난단 말이야.

“안돼. 큰일도 겪었는데 엄마도 같이 가서 담임 선생님한테 그동안 쉬었던 것도 말씀드리고 해야 하지 않겠니?”

엄마는 서른여섯이면서 겉만 봐서는 20대 후반으로 보여서 아까도 말했지만, 누나랑 같이 있으면 자매로 보일 만큼 초 동안이다. 거기다 요즘에는 드물 정도로 10대 중반에 누나까지 낳아서 실제로도 나이도 별로 차이 안나고.

“혹시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창피한 거니?”

“아냐! 절대 아냐! 난 엄마가 피곤할까 봐!”

히익 지뢰밭이 다가온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부모 면담 때 학교에 온 엄마를 보고 친엄마 맞냐고 놀리던 놈들이 있었었다. 지금이라면 오히려 부럽냐고 하면서 맞짱떴을 테지만 그때는 나도 까닭 없이 애들이 놀리길래 창피해 했거든.

실제로 같은 날 왔던 다른 애들 부모님들을 보면 대부분 40대고 간혹 30대 후반이 있었지 울 엄마처럼 20대 후반이었던 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집에 와서는 뭐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엄마가 학교 와서 창피하다고 했는데 내 말을 들은 엄마는 펑펑 울어버렸었다.

그다음은 아빠한테 무진장 혼났었지. 왜 그랬냐고 물어보길래 사실대로 말해줬더니 젊고 예쁜 엄마는 자랑인 거지 창피해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세뇌 비슷하게 교육받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놀렸던 애들한테 너희 엄마는 늙고 못생겼다고 했다가 싸움까지 났었고.

“이렇게 젊고 예쁜 엄만데 뭐가 창피해?! 오히려 애들 보면 나 부러워서 죽으려고 할 텐데! 진짜 그런 게 아니라 난 엄마가 걱정돼서 그런 거라니까?! 병원에 있을 때도 낮엔 일하고 밤에는 나 간호해준다고 잠도 못 잤었잖아! 그다음에는 맛난 음식도 일부러 만들어서 병원까지 싸왔었고!”

살짝 울먹이려던 엄마는 내 필사적인 아부에 그제서야 방긋거리면서 그럼 월요일 아침에 같이 학교에 가자고 말하고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슬쩍 감지로 거실을 봤더니 아빠는 날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후유….

옆에서 설거지를 도와주면서 그 모습을 지켜본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프랑은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쿡쿡 웃으면서 내 등에 매달려 있었다.

차를 마시고 프랑과 함께 독순술을 익히다가 2시에 엄마랑 누나랑 함께 아빠 병원으로 향했다.

“휴대폰은 필요 없니?”

자동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휴대폰 대리점을 보시더니 엄마는 휴대폰을 사주려고 하셨는데 필요 없다고 했다.

“인증기가 휴대폰 역할도 할 수 있어.”

뭣보다 위상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옷과 신발을 제외하고는 전부 바닥에 떨어졌었으니까. 어제 책상 위에 보니까 내 폰이랑 지갑하고 다 있던데 뭐.

내가 쓰던 스마트폰은 작아서 프랑이 조작하기 힘들거 같으니까 태블릿으로 하나 사달라고 할까?

그러고 보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누나가 위상 세계로 빨려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거에 대비해서 생존 방법 같은 것도 가르쳐줘야겠네. 강우혁도 그러라고 했었으니까.

엄마는 이제 36살이 됐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테고.

헬스 트레이닝장에 도착해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왔더니 헬스장에 사람들이 무진장 많다. 환자를 비롯해서 직원도 몇명 보이고 남자 간호사도 몇명 보인다. 뭐야, 왜 남자 뿐이야?

하지만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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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5일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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