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7 복귀. =========================================================================
타임리버는 국내 랭킹 2위의 유명 레이드 팀이다. 배경으로는 정부가 있어서 랭킹 1위도 어찌 못하는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라는 걸 클래스 구분표를 볼 때 지나가면서 봤었다.).
만약 인원을 더 확장했다면 국내 랭킹 1위는 타임리버의 차지라고 다들 말하던데, 소수 정예를 추구하는 보스의 방침 때문에 확장을 안 하고 랭킹 2위에 머물고 있다고 봤었다. 근데 그 보스가 화연이 누나였을줄은 진짜 몰랐다.
그런데 타임리버?
난 조금 궁금한 표정으로 화연이 누나를 보며 물었다.
“그전에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화연이 누나는 그럼 그렇지 하면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는데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마치 내가 화연이 누나의 클래스와 타임리버 레이드 팀에 감탄해서 그에 관해 물어볼 거라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아니거든.
“타임리버. 시하 누나 이름을 따서 지은 거지?”
움찔!
“…….”
내 말에 크게 움찔하는 화연이 누나. 그 모습을 눈치 못 챌 우리 누나도 아니고, 역시나 봤는지 점점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화연이 누나는 움찔거린 걸 못 봤다면 바뀐 점을 못 찾을 정도로 평온하고 감정 없는 표정으로 자세 하나 안 바뀌고 가만히 있었다.
우리 누나 이름이 때 시 時에 물 하 河를 써서 시하거든. 누나는 호화 유람선 배 위에서 임신했다고 저렇게 지었고 난 여름에 아프리카 가족 여행지에 놀러 갔을 때 임신했다고 서쪽 서 西에 여름 하 夏고.
“…쟤가 말한 이야기, 진짜야?”
“…응.”
“아 정말~! 어쩐지 갈 때마다 아저씨들이랑 직원 분들이 날 보면서 정중하게 인사하시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시하.”
“왜!”
“예쁜 이름이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푹 쉬는 누나의 모습을 보니 정신적인 타격이 꽤 큰가 보다. 타임리버 레이드 팀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팀 명의 유래가 누나의 이름이라니. 왠지 웃음이 나온다.
세상에, 누나 이름을 팀 명으로 할 정도라니. 누날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아니 그보다, 그걸 눈치 못 챈 누나도 대단하다. 평소에는 귀신같은 눈치를 자랑하더니.
화연이 누나는 왜 밝혔느냐고 힐난하듯이 내게 눈꼬리를 치켜떴지만 이내 그 모습을 봤는지 누나가 화연이 누나를 자신에게 돌려 앉히더니 혼내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유쾌한 기분이 든다. 일반인에게 혼나는 B 클래스 능력자라니.
무표정한 얼굴로 누나한테 혼나는 화연이 누나를 구경하고 있다 보니 익숙한 느낌의 오브젝트가 내 감지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뭔가 싶어서 아파트 입구 쪽을 봤는데 엄마랑 아빠가 양손에 음식재료를 잔뜩 들고 오시는 게 보인다. 익숙한 느낌이라니, 신기한데?
난 일부러 엄마랑 아빠 쪽을 향해 눈을 돌리면서 누나에게 말했다.
“엄마랑 아빠다.”
그러자 그제서야 잔소리를 멈춘 누나는 날 한번 보다니 다시 화연이 누나를 보며 부루퉁한 표정으로 일어서며 말을 꺼냈다.
“담에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꼭 말해. 알았지?”
신기하게도 무표정한 얼굴로 질린 표정을 지은 화연이 누나는 이내 누나가 눈치 못 채게 날 노려봤는데 내가 슬쩍 웃어버리자 한동안 내 얼굴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늦었으니까 화연이 너두 저녁 먹구 가.”
누나는 주방으로 가서 밥을 안치려는지 계량컵을 꺼내서 쌀을 받으면서 화연이 누나한테 말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아빠와 엄마가 나오는 게 보여서 잽싸게 현관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었더니 저절로 열린 문에 놀란 듯이 눈이 동그래져 있는 엄마가 보였다.
난 문을 활짝 열고 엄마의 양손에 들린 음식재료 봉투를 뺏어 들었다.
“엄마, 아빠. 수고하셨어요.”
“응. 우리 아들 착하기도 하지.”
내가 짐을 들어주는 게 기꺼웠는지 환하게 웃으며 내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엄마. 아빠는 안 들어줘도 되겠지.
내가 짐을 부엌으로 옮기니 화연이 누나도 와서 엄마와 아빠한테 인사하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주머니.”
“어머나~ 화연이 아니니? 예쁘게 잘 자랐구나.”
“그래, 어서 와라.”
“오랜만인데 당연히 저녁 먹고 갈 거지?”
“네.”
엄마는 화연이 누나의 손을 잡고 뺨을 만지며 탄성을 지르고 아빠는 엄마와 화연이 누나를 지나치면서 간단하게 인사를 받아주고는 주방으로 들어와서 조리대 위에 음식재료 봉투를 올려놨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오냐.”
역시나 누나의 인사는 자상하게 받아주는 아빠였다…. 내 인사는 그냥 고개 한번 까딱였으면서!
그러면서 아빠는 이것저것 튀김이며 붕어빵과 풀빵 등이 든 작은 종이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다 먹어라.”
그리고 드레스 룸으로 엄마를 데리고 들어가셨는데 7일 전에 흘린 눈물은 마치 환상이었다는 듯이 그 이후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좀 더 부드러워졌다는걸.
난 가슴을 간질이는 기분에 실실 웃으면서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잔잔한 미소로 날 바라보는 프랑에게 눈을 마주쳐주고 누나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도와줄까?”
한참 쌀을 씻던 누나는 됐으니까 아빠가 준 간식이나 먼저 먹고 있으라며 날 주방에서 내쫓았다. 사실 말만 꺼낸 거였다. 누난 내가 주방에 들어오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거실에 가 있으라고 말할 줄 알았거든!
엄마와 누나의 실력에 화연이 누나의 도움에 힘입어 커다란 상의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을 다들 상에 둘러앉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난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자상한 표정을 짓고 이쪽을 바라보던 프랑에게 왠지 쓸쓸함이 느껴지는 거 같아서 은근슬쩍 어깨를 주무르는 척하면서 프랑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내 신호를 캐치한 프랑은 슬쩍 날아와서 등 뒤에서 두 팔로 내 몸을 안고 얼굴을 내 오른쪽 어깨에 올렸는데 그제서야 쓸쓸해 하는 분위기가 사라진 거 같았다.
육체도 없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 내가 프랑을 챙겨줘야지. 그나저나 프랑의 존재를 가족들한테 알려줘야 하나? 잠시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누나의 반응을 봤을 땐 알려줘도 상관없을듯한데…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엄마랑 아빠도 화연이 누나와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누나는 내 양쪽에 앉아 쉬지 않고 고기반찬이며 채소와 부침개 찜 등을 내 밥그릇 위에 먹기 좋게 찢어서 올려줬고 나는 반찬이 올라오는 족족 입속으로 쑤셔 넣으며 차려진 저녁상의 절반을 먹어치우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양으로는 7인분에 가까웠으니까…. 나중에는 화연이 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볼 정도였으니 내가 얼마나 먹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지.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에 엄마와 누나는 기쁜 표정으로 상을 치웠고 너무 많이 먹어서 움직일 수도 없어진 나는 두 다리를 쭉 뻗고 거실 카펫 위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바빴다.
아빠는 습관적으로 거실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1인용 소파에 앉으셔서 독서를 시작하셨는데 그 모습을 열심히 위상력을 돌리면서 보고 있으니 엄마와 누나들은 설거지를 끝내고 대추차를 끓여왔다.
긴 소파에 엄마와 누나들이 앉으니 아빠는 차를 살짝 마시며 입을 열어 말했다.
“그래, 이야기는 잘 들었다. 아들이 네 팀에 들어오길 바란다고?”
나는 슬슬 숨쉬기 편해져서 양반다리를 하고 뜨거운 대추차를 마시고 프랑은 대추차가 신기한지 내 어깨너머로 대추차를 보고 있는데 화연이 누나가 아빠의 말을 받았다.
“네. 서하의 능력은 200년의 짧은 역사를 봐도 유례가 없을 만큼 강한 능력이에요.”
그렇게나 표현해주다니, 조금 쑥스러운 걸!
“지금은 한국 총 지부장의 발언 때문에 모두들 구경 하는 중이에요. 며칠 전 능력자 인증기를 통해 미성년자 능력자에게는 어떤 위상 세계와 관련된 접근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공지가 갑자기 올라왔었죠. 이건 서하를 두고 한 이야기에요. 서하가 성인이 되고 정식으로 위상 세계에 출입할 권한이 생기는 순간 사라질 보호 조치지요. 그 뒤에는 다들 서하를 자신의 팀과 그룹에 영입하기 위해 갖은 수를 동원할 테고 그건 해외 유명 팀들도 예외가 아닐 거라 생각해요.”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화연이 누나는 미리 생각해왔다는 듯이 막힘없이 말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날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아빠를 보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탐색 능력자가 될 자질을 지닌 존재가 어른의 사정에 휘말리다 쓰러지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도 서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으세요.”
화연이 누나의 말에 나랑 프랑 빼고 다 놀란다. 왜 놀라는 거지?
내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모두를 바라보자 누나가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군지는 알지?”
“어. 지금 17번째 연임 중이신 유영은 대통령이시잖아. 어, 성이 화연이 누나랑 똑같네?”
유영은 대통령은 여자의 몸으로 대한민국에서 14번째 대통령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면서 70년째 대통령직을 연임 수행하고 있는 여걸 중의 여걸이었다.
대통령이지만 능력자이기도 한 현 대통령은 나이는 105살이나 되지만 C클래스 상급의 신체 강화 능력 덕분에 30대 초중반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하위 능력으로 재생강화 질병저항강화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덕분에 매년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깨끗한 한국을 만드는데 갖은 노력을 하고 계신 분으로 현재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매년 1위를 하고 있었다.
거기다 의한 재단 이사장이기도 하다.
현재 정부 각 부처에 있는 인재들 대부분이 의한 재단 출신인 데다 국회의원들 태반도 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던가?
덕분에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상 가장 강성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신문 칼럼에서 봤다.
“맞아. 화연이 어머님이 대통령이셔.”
그제서야 난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연이 누나를 봤다. 이제 보니 금수저였구나.
내 눈빛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잠깐 눈썹을 꿈틀거린 화연이 누나는 날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널 지켜줄게. 네가 타임리버 레이드 팀에 들어오는 순간 개인적인 경호에서부터 국가 차원의 지원도 들어올 거야. 물론 타임리버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국가 차원의 지원은 적용될 거고.”
국가 차원의 지원이란 게 어떤 건지 짐작도 안 간다. 그래도 우리 가족들을 경호해준다는 건가? ...나만 보호해준다는건지 좀 애매하네. 난 화연이 누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한국 총 지부장이 나 건들지 말랬다며? 근데 이렇게 막 권유해도 되는 거야?”
“돼.”
“…….”
뭔 단호박이라도 먹은 건가, 설명도 없이 돼! 한마디라니. 그러자 누나가 옆에서 부연설명을 해준다.
“이건 가족인 내 요청으로 레이드 팀 타임리버에 요청하는 거야. 그걸 화연이가 받아주는 형태구. 혹시 몰라서 강우혁 씨한테 전화로 물어봤었는데 한국 지부장분과 통화를 하더니 금방 허가가 나왔다구 했어.”
헐…. 언제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아서 전화한거지? 그리고, 반나절도 안돼서 허가가 나왔다고?
아!! 오전에 퇴원할 때 누나가 할 말이 있는듯한 표정은 이거 때문이었구나! 그래서 이야기 중에 누나가 자꾸 날 힐끔거리면서 본 거였어.
그러니까 날 위해서 타임리버의 보스인 화연이 누나를 데려와서 소개해준 거구나.
“나는 찬성이다.”
“엄마도 화연이랑 같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뭐, 나도 아는 사람이 보스인 레이드 팀이 아무래도 마음이 편할 거 같긴 하다.
가족들의 의견을 들은 나도 화연이 누나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누나.”
화연이 누나는 매우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정식 계약은 내일 하기로 하고 인사부장과 대동해서 계약서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화연이 누나가 돌아가자 아빠는 책에 눈을 돌리셨고 엄마와 누나는 티비를 켜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으음 어쩌지. 내 능력이랑 프랑에 대해서 완전히 알려주는 게 좋을까.
…….
한참을 생각해보고 프랑에 대해서는 알려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능력에 대해서는 그대로 숨기기로 했다. 안그래도 뭔가 높은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데, 괜히 내 능력이 전부 알려졌다가 그 때문에 가족의 신변에 위험이 생긴다면…. 참지 못할 거 같다.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극도로 집중해서 집 내부에 이상한 기계가 존재하진 않는지 샅샅이 살펴봤다. 그리고 눈을 뜨니 프랑이 내가 탐색 능력을 쓰는 걸 알아챘는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게 보였다.
“잠깐만 기다려.”
“응?”
“뭐라구 했니?”
내가 프랑에게 말한 걸 누나와 엄마는 자신들한테 말한 줄 알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냐 잠깐만.”
그다음 눈을 뜨고 망원 능력으로 360도 전체를 훑어보며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나 이상한 사람이 없나 살펴봤다. 그 와중에 수많은 오브젝트에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지만 살펴본 결과 감지와 분석 투시에 걸리는 부분이 없다는 걸 확신했다.
갑자기 머리를 여기저기 돌리면서 살펴보는 내 모습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가족들은 조용히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좋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의 커튼을 치고 전등을 모두 켜서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지만, 엄마랑 아빠랑 누나한테까진 숨기고 싶지 않아서 이제 알려줄려고 해.”
그리고 양털 카펫 위에 앉아서 가족들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15일 동안 미칠 뻔 한 적이 몇 번 있었어.”
내 말에 급격하게 숨을 들이키는 엄마와 누나.
“며칠간 밤낮으로 폭우가 쏟아져서 땅에 물이 차오르고, 수면이 10m 높이까지 솟아오르면서 거대한 평원이 말 그대로 호수가 되어버렸었어. 사방을 돌아봐도 물과 수면 밖으로 살짝 솟아 나와 있는 나무 끄트머리 밖에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폭우는 그치지 않고 쏟아졌었어. 그리고 뒤에서는 이형종이 날 노리고 쫓아오고 있었던 상황이라 이틀 동안 쉬지 않고 통나무 조각 하나에 기대서 끝이 안 보이는,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호수를 헤엄칠 때는 정말 미칠 거 같았거든”
말하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고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은 내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는데, 내가 가족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알릴 생각인걸 안거 같았다.
엄마와 누나는 내가 설명한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아빠도 안색을 굳히며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날 살려준 게 지금 내 능력이랑, 또 하나가 더 있었어.”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슴의 주머니를 풀어서 프랑의 영혼석을 가족들 앞에 보여준다. 프랑은 조용히 내 손에 올려진 영혼석과 내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프랑이라고 해. 7일째 밤에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어. 중간에 사고가 생겨서 잠시 떨어져 있었지만, 위상 세계에서 내가 제정신으로, 미치지 않고 생환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야.”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옆에 앉은 프랑을 바라본다. 프랑도 날 마주 바라본다.
“밝고, 착하고 상냥하고 성실한 프랑이 옆에 있어 줘서 내가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야.”
누나는 내 말을 듣고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들어 식은 대추차를 한 모금 마셨다.
“병원에서 말한 유령…이야기. 그거야?”
“응.”
누나는 그제서야 내가 왜 갑자기 유령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유령이라는 누나의 말에 엄마는 살짝 겁을 먹은듯했지만 애써 용기를 내서 나에게 물었다.
“지금… 옆에 있는 거니?”
엄마는 조심스럽게 내가 잠시 바라봤던 곳을 보는듯했지만 아무것도 안 보이는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응. 내 바로 옆에 앉아있어.”
아버지는 내 말에 잠시 눈을 감더니 눈을 뜨고 날 바라보며 말했다.
“넌, 어렸을 때부터 뜬금없는 소리로 네 엄마와 누나를 자주 놀라게 했지. 아버지는 걱정된다.”
“응. 나도 이런 이야기를 그냥 꺼내면 아빠가 내 정신 상태를 의심하거나 정신병원에 보내버리진 않을까 생각했었어.”
그러면서 킥킥거리면서 웃자 엄마는 아빠를 노려보았고 아빠는 헛기침을 하면서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이거, 사실 고위 이형종의 위상석이야.”
내 말을 들은 아빠와 엄마와 누나는 잠시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듯이 머뭇거렸다.
“그래. 확실히 색은 위상석이 맞는 거 같은데, 모양이나 크기가 봤던 위상석과 조금 다르구나.”
“응. 달라진 이유가 프랑의 영혼이 여기에 들어가서 그래. 잘 보면 영혼석의 중앙에 회색의 빛이 보이지?”
그러자 입을 다시 다물어버리는 아빠. 그래서 프랑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기로 했다.
“프랑. 전기, 보여줄 수 있어?”
프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다가 천정을 살짝 보고는 몸을 살짝 웅크렸다. 그리고 천천히 몸 안에 전기를 생성시키기 시작했다.
“헛.” “어머!” “꺄…?!”
역시, 전기가 생성된 그녀의 영체는 일반인들도 볼 수 있나 보다.
“내 눈에는 완벽하게 여자아이인 모습이 평상시에도 보여.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거 같아서 조금 걱정했는데…. 전기를 몸 안에 만들면 보이나 보네.”
내 말에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을 했다.
“그냥 얼핏 사람이 공중에 웅크리고 있는 거 같아…”
음, 내 감지에서도 대충 팔 두 개, 발 두 개, 몸이랑 머리가 붙어있는 전기로만 보인다.
“응. 프랑 이제 됐어.”
프랑이 전기를 생성하는 와중에 위상석에서 빠져나가는 양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방금 30초 넘게 전기를 발산하고 지금까지 분석으로 기억한 전기량을 계산해보니 위상석의 위상력이 385만이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쓴 양이 17만이 조금 넘는 양이고.
역시 거인 프랑은 고위 이형종이었던 거다. 그것도 최고위로 올라가기 직전의.
“난 이 위상석을 프랑의 영혼석이라고 불러. 그리고 방금처럼 전기를 쓰거나. 존재하는 데에는 조금씩 위상석 안에 있는 위상력을 사용해.”
프랑은 몸 안에 전기를 머금은 채 살짝살짝 움직였는데 엄마와 아빠와 누나에게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가족들도 알아챘는지 굳은 얼굴이 풀어지는 게 보인다.
특히 엄마는 무척이나 고마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프랑이 있는 곳으로 정중히 상체를 숙여 인사한다.
“프랑…이라고 하나요? 우리 아들을 곁에서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러자 프랑은 당황했는지 아니라는 듯이 양손을 열심히 저어댔는데 다들 그 모습이 보이는지 살짝 웃어주기까지 한다.
프랑은 그런 가족들의 모습에 울먹이며 눈을 가리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봐주고 말을 걸어주는 게 못 견디게 가슴이 메이는 거 같았다.
“프랑은 영국인이래. 145년부터 위상 세계에서 쭉 있었는데,”
알아서 좋을 것 없는 내용은 일단 숨기자.
“우연히 나랑 만나서 현실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어. 그러니까, 나도 그녀한테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가 그녀의 집이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고 싶어.”
그리고 누나를 보며 말한다.
“프랑의 모습은 뚜렷하게 보이지만, 소리를 낼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대화는 간단한 거 밖에 못했었거든. 그래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회화를 배우고 했던 거야. 낮에 서점에 간 이유는 독순술을 배우고 싶어서 책이 있는지 찾아보러 간 거였었어.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그녀의 집이 어딘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제서야 아까 일이 생각났는지 누나는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책이 없어서 그냥 왔구?”
“응.”
“잠깐 기다리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엄마는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서재로 들어가시더니 책 몇 권을 가지고 나오셨는데…. 저거! 내가 인터넷에서 주문한 독순술 책이잖아!
“병원을 확장할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다 우연히 산 건데….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네?”
“고마워, 엄마!”
좀 더 빨리 익힐 수 있겠다! 책을 잠시 바라보던 프랑은 감격한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상체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모습에 엄마도 기뻐했고 누나도 프랑에게 머릴 숙이며 날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을 걸었다.
아버지도 따스한 눈으로 프랑을 바라보다가 어흠! 하시더니 독순술 책을 바로바로 외우고 있는 날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밝힌 이유가 프랑 씨를 집으로 돌려보내서…. 그, 성불 시키려는 거냐? 그러기 위해서 도움을 받고 싶은 거고?”
“성불은 프랑이 하고 싶을 때 하게 할 거야. 집을 보내주는 건 내 힘으로 할 거고. 그냥 엄마랑 아빠랑 누나한테 프랑이 있다는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거기다 몇 가지 인식 확인도 해볼 거고.
“나한테는 프랑도 엄마랑 아빠랑 누나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니까.”
내 말에 엄마와 누나는 기쁜 표정을 지었고 아빠는 크흠!하면서 민망함을 헛기침으로 무마하려 했다.
“그러니까, 영혼석에 대해서도 다들 숨겨주고 프랑에 대해서도 비밀로 해줘.”
누나는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이 영혼석을 바라봤고 아빠와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강조했으니 다른 생각은 안 하실 거다. 예를 들면 프랑의 영혼석을 팔자거나 뭐 그런 거.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 전기가 모두 공중으로 사라져버린 프랑을 영혼석으로 들어오고 나가게 했는데 역시 들어올 때와 나갈 때 회색 빛무리가 모였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본 가족들도 탄성을 지르는 게 그 모습도 보이나 보다. 그럼 역시 잠잘 때도 반짝거리는 게 보이겠군.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을 프랑에게도 알려줬고, 엄마와 아빠, 누나도 프랑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 존재를 받아들이게 됐다.
독순술 책을 외우는 건 금방 끝났다. 책들도 기본적인 개념에 관해 설명하고 사진과 삽화를 통해 내용의 이해를 돕는 책이었으니까. 삽화를 보면서 알파벳 A에서 Z까지의 입 모양을 단박에 외우고 그 외의 발음들도 외웠다.
생각보다 큰 도움은 안 되지만 작은 도움은 될 거 같다. 단어를 하나하나 발음하면서 입 모양을 외워야 하니까 하루 이틀로는 안 되겠지만.
그리고 방으로 돌아왔더니, 감격한 프랑의 찐한 키스를 받을 수 있었다는 건 비밀.
============================ 작품 후기 ============================
qncjsla
주인공은 아직 어리고, 18살 남자라면 이성의 몸과 외모 관해 무척이나 관심이 높은 시기죠.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자주 먹으면 질리는 게 당연한 순서가 아닐까요 ^^;
저속한 음부의 표현도 주인공의 성격을 살리는 걸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도에 관한 부분은……. 저도 신경 쓰고 있지만 빠른 진행이 되질 않네요. ㅠㅠ 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찻잔속풍경
현재 맞춤법, 띄어쓰기와 내용 검토를 하지 않은 비축분이 30화가량 쌓여있습니다.
하지만 수정하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거의 손대지 않는 편입니다.
대화에서 등장인물 개개인의 성격을 표현하고, 주인공의 독백과 상상으로 내용을 보충하면서 진행하다 보니 대화에서 나오는 말은 개인의 특징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
힘내라는 응원의 의미로 추천 한번 눌러주시면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타와 문맥의 지적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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