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6 복귀. =========================================================================
인증기를 검색하다 보니 능력자들은 대부분이 인증기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능력자들끼리만 대화한다고 했다.
실제로 수천 개의 레이드 팀이 인증기에 등록되어있었고 수만 개의 그룹이 있었으며 수백만 명이 인증기의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이었다. 이 숫자면 거의 존재하는 대부분의 능력자인 거 같은데?
그러니까 능력자들의 대화는 전부 인증기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는 거고,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능력자에 관한 정보들은 대부분 관심 종자들의 거짓말이거나, 특이한 성격의 능력자가 기분 삼아 찔끔찔끔 퍼트리는 내용인 거 같다.
“서하야~!”
한참 인증기로 검색 중인데 현관문 앞에서 누나가 날 불렀다.
누나는 평범한 속옷에 검은색 롱 원피스를 입고 가슴 바로 아래에는 얇고 귀여운 끈 같은 걸로 조이며 특정 부분을 강조한 옷차림이었다. 그 위에 흰색 카디건 한 장 걸친 모습인데, 안 춥나? 어깨에 작은 여성용 어깨 가방을 맨 누나는 하얀 샌들을 신고 있었다.
난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말했다.
“어디 가? 오후 5시라서 좀 있으면 어두워질 텐데.”
“응 잠시 화연이 보구 7시 안에 올 거야. 그러니까 나가지 말구 집에서 쉬어. 알았지?”
“어? 나도 잠깐 집 앞에 서점 갔다 올 건데.”
아까 병원에서 화연이 누나랑 통화하다가 약속 잡은 건가? 내 말에 무릎을 굽히고 하얀색 샌들을 신던 누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날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침을 꼴깍 삼킨 나는 변명하듯이 이어서 말했다.
“…딴 데 안 새고 서점만 갔다 올 거야. 진짜로.”
“나가기 전에 나한테 전화하구 들어와서 전화해. 딴 데로 샜다간 죽는다.”
누나의 표정 없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위협에 또다시 슬쩍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이자 누나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다가 뒤를 돌아보니 …프랑이 뒷짐을 지고 허리를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보였다.
“…난 어린애가 아닌데 누나도 그렇고 엄마도 너무 과보호하려고 해서 큰일이란 말야.”
괜히 뻘쭘해져서 뒷머리를 손으로 긁으며 중얼거렸다.
프랑은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누나 말 잘 듣는 동생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계속 웃었는데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네.
독순술, 구화법이라고도 한다고 하는 이 능력은 어째서인지 관련된 책을 구할 수 없었다.
나가기 전에 누나한테 전화하고 택시를 불러서 타고 인근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갔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여서 점원분한테 독순술을 가르쳐주는 책은 없냐고 물어봤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독순술보다는 수화 쪽을 가르쳐주는 게 좋네 마네 이상한 소리만 하길래 그냥 서점을 나와버렸다.
만약 손까지 다쳐서 수화를 못 하는 사람은 어쩌라고 수화 이야기만 하는 거야?
“…인터넷에는 있겠지. 집에 가서 한번 찾아보자. 안되면 도립 도서관이라도 찾아가고!”
눈에 띄게 실망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프랑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살포시 끄덕이며 내 등에 매달렸다. 어쩐지 등에서 프랑의 온기가 느껴지는거 같다.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방에서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검색해봐도 역시 독순술에 관한 서적은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
프랑은 내 옆에서 무릎으로 서서 책상에 두 손을 올리고 그 위에 턱을 올린 채 모니터를 보고 있었는데, 내가 이리저리 검색해봐도 독순술에 관련된 책을 찾지 못하자 영체의 색이 약간 어두워질 정도로 실망해버렸다.
“수화를 배워야겠네. 독순술을 못 배우면 그거라도 익혀야지.”
잔뜩 실망해버린 프랑은 내가 포기하지 않고 수화를 익히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자 눈이 동그래져서 날 올려다봤다.
“설마 내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도리도리도리!
프랑은 새삼 감동했다는 표정을…지었는데, 전에도 나한테 감동받았을 때가 있었나? 잠시 위상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지만 그냥 막 프랑을 괴롭히고 놀린 거 밖에 생각이 안 난다.
그러면서 다시 수화 책을 살펴 보…려고 했는데 문득 립 리딩이라는 영어단어가 생각났다.
맞아, 한국에 책이 없다고 해서 다른 나라에도 독순술 책이 없으란 법은 없잖아. 난 다시 검색창에 빠르게 검색해보니 과연! 책이 있다! 게다가 한 두 권이 아니야!
거기다 이미지 검색에는 독순술에 대한 방법과 입 모양을 읽는 법까지 나와 있었다! 이미지에 보이는 책은 전부 다 기억해두고 그 책을 해외 대형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역시 팔고 있다!
“찾았어!”
프랑도 그걸 봤는지 발딱 일어나서는 만세 하듯이 두 팔을 높게 뻗었고 나도 이제 프랑과 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뻐서 그 길로 몇가지 서적을 해외 구매대행업체에 의뢰했다. 덕분에 내 한 달 용돈이 홀라당 사라져버렸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아!
그리고 이미지를 찾아서 독순술 방법에 대한 정보를 보니 주요 골자는 하나였다.
입 모양을 보고 외워라.
“…외우라면 외워야지. 프랑도 도와줘!”
이제 곧 프랑이랑 대화할 수 있겠지? 믿는다 암기력! 기억력!
누나 방에 들어가서 얼굴 크기만 한 손거울을 하나 가져와서 프랑과 마주앉아 얼굴에 대고 알파벳 A부터 시작하는 단어를 하나하나 발음하고 입 모양을 외우고 프랑의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도 보고 하면서 한참을 외우고 있는데 집 앞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더니 두 명이 내렸다.
누구지 하면서 먼저 걸어오는 사람을 스캔해봤더니 누나였다.
근데 현관문이 벌컥 열리고 누나가 달리듯이 들어왔다!
“야!! 정서하!!”
어, 왜 저렇게 화난…. 아차! 전화 안 했다!
“어, 어!”
후다닥 방을 뛰쳐나가니 누나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현관문에서 씩씩거리면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어? 위상력? 현관문 밖에 누가 한 명 서 있었는데, 무시무시한 위상력이 느껴진다!
히익?! 이, 이거. 기준이 바뀐 위상력으로 체크해보니 1,000만이 넘어!! 그, 그럼 B 클래스?
난데없이 막판 보스급의 능력자를 보니 놀라서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너! 누나가 전화하라고 했어, 안 했어?!”
“해, 했지. 근데 들어와서 깜빡했네. 에헤헤.”
“에헤헤 가 아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전화도 안 되고!”
발칵 화를 내면서 눈가에 살짝 습기가 맺힌 채 씩씩거리는 누나를 보니 곧 주먹이나 발이 날아올 거 같다…!! 말을, 말을 돌려야 해!
맞아! 문밖의 사람!! 슬쩍 외형만 스캔해봤는데, 헉 소리 나게 예쁜 여자가 서 있었다. 프랑이 태양처럼 밝고 환한 얼굴이라면 저 여자는 반대로 조금 냉정하고 차분한 인상이 달 같은 얼굴이었다!
같이 온 걸 봐서는 누나랑 아는 사이일 거야!
“진짜 미안! 찾던 책이 없어서 실망하는 바람에 깜빡했어! …근데 문 뒤에 누구야? 한 명 더 있는 거 같은데.”
나는 두 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붙이고 머리를 푹 숙이고 사과하면서 슬쩍 말을 돌릴 속셈으로 물어봤는데, 그러자 누나는 두고 보자는 표정으로 날 한번 찌릿! 하고 노려보더니 반쯤 닫힌 현관문을 열었다.
휴우. 저렇게 노려봐도 좀 지나면 화가 풀릴 테니까, 일단 맞지는 않겠네. 난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쉬고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의 위상력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분석해봤다.
몸 안의 위상력이강우혁이나 최수한처럼 회오리처럼 크게 소용돌이치는 걸 보면 신체 강화 능력자였다. 근데 위상력이 1,107만이나 되니 회오리가 아니라 허리케인 같다!
1,000만이 넘는 위상력이라니. 누나가 어떻게 B 클래스랑 같이 있는 거지?
“들어와. 하여튼 쟤 때문에 진짜 못 살겠어, 정말.”
“그래도 서하가 없어지면 넌 정말 못살걸?”
어라? 누나보다 살짝 낮고 서늘한 이 목소리는 기억에 있는데…. 거기다 누나가 저렇게 편히 대화하는 상대?
혹시 화연이 누나?
누나가 문을 열자 아까 감지와 분석으로 봤던 얼굴보다 더 차갑고, 아름답고, 자체 발광하는 거 같은 얼굴이 보인다. 목소리를 빼면 화연이 누난 줄 모르겠어! 아니, 솔직히 목소리도 거의 6년 만에 듣는 거라 긴가민가한데….
“어….”
누나는 내 놀란 표정을 보더니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가 자신이 생각했던 그 표정이 아니었는지 표정이 펴진다. 내가 화연이 누나를 보고 얼굴이랑 몸매에 홀라당 넘어가서 헤벌레 한 줄 알았나?
솔직히 할 뻔 했다.
말해두지만 나도 노출 프랑 덕분에 조금은 미녀 저항력이 생겼다고!
“안녕. 오랜만이야.”
누나가 문을 열어준 틈으로 탐색으로 확인한 여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면서 나한테 편하게 인사한다.
“어, 오랜만.”
“흐음? 내가 누군지 알고 오랜만이라고 하는 거지?”
내 말에 눈빛을 싹 바꾸며 사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화연이 누나. 키가 무진장 커졌는데? 굽 달린 구두를 신고 있긴 하지만 키가 189cm나 된다! 굽 빼도 180이나 돼!
“화연이 누나 아냐? 울 누나 절친.”
내 말에 누나도, 화연이 누나도 살짝 놀랍다는 표정을 짓더니 서로 마주 본다.
“서하 눈치가 저렇게 좋았나?”
“설마…. 네 얼굴이나 몸매는 눈치로 알 수 있는 단계가 아니란 말야.”
“나랑 너랑 만난다고 말했었지? 그걸 알고 찍은 거 아닐까?”
“하긴 쟤는 옛날부터 다른 사람 눈치를 잘 봤으니까. 추측했을지도?”
눈치를 보게 만든 원흉이 저렇게 말하니까 어쩐지 화가 난다!
화연이 누나는 검은색 무광택 가죽재질의 재킷과 바지를 입고 가죽 재킷 안에는 흰색 셔츠만 입고 있었다.
허허, 꽃으로 치면 백합과 흑장미가 나란히 서 있는 느낌이다. 눈이 진짜 호강하는데.
둘이서 계속 수군거리길래 일단 엄청 놀라고 또 많이 놀란 감정은 밀어 넣고 말을 꺼냈다. 저리 두면 내 초등학교 흑역사까지 프랑한테 까발려지겠어!
“그러니까 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거기까지!! 목소리!! 목소리가 거의 안변했잖아!! 암만 그래도 6년 전이랑 지금이랑 거의 안 바꼈다구!!”
난 팔을 붕붕 저으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잽싸게 다가가서 누나랑 화연이 누나의 팔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말을 더 못 꺼내게 막아야 해!
언제 나왔는지 프랑은 내 방문에 붙어서 누나랑 화연이 누나가 하는 이야기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고 있었다!
두 누나는 나한테 이끌려 거실로 들어오며 피식거리며 웃었다. 울 누나랑 화연이 누나가 같이 웃으니까 집안이 환해지는 느낌이야!
“일단 거기 서 있지 말고 들어와!”
잽싸게 둘 다 밀어서 소파에 앉히고 주방으로 달려가서 음료수 잔 세 개랑 냉장고 안에 차갑게 해놓은 매실 음료를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자 마셔!”
울 누나는 내 빠릿빠릿한 움직임에 계속 킥킥거리면서 웃고 있었고(뭐가 웃기는데!) 화연이 누나는 오른쪽 다리를 살짝 들어 꼬으면서 탁자 위에 내가 따라주는 매실 음료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화난 거 아니지? 근데, 누나의 몸 안에 있는 위상력이 살짝 가속하면서 눈이 내 몸을 훑는 게, 뭔가 능력을 쓴 건가?
음료수를 따른 컵을 화연이 누나 앞으로 옮겨주니 누나는 컵을 집어서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나도 은근슬쩍 화연이 누나랑 눈을 마주쳤다가 위상력을 돌리면서 빠르게 온몸을 훑듯이 고개를 내리고 누나한테 줄 음료를 컵에 다시 따라서 누나 앞에 옮겨주었다.
근데 6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되게 푸짐하고 순한 눈이었는데…. B 클래스가 되면서 눈빛이 저렇게 변한 건가? 전체적인 분위기도 차갑고 냉정한 느낌이 크다.
울 누나와 비슷한 길이에 기다란 머리카락은 울 누나가 흑단 같았다면 화연이 누나는 비단 같았다. 솔직히 아름다움은 프랑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프랑보다 약간 눈이 작지만 그렇다고 안 어울리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동양 미인도에 나오는 그림 같은 얼굴이다.
목 부근에서 한번 묶고 앞으로 흘려내린 머리카락은 말할 것도 없고 새까만 눈동자는 별빛이 박혀있다고 착각할 만큼 반짝거리며 눈썹과 어마어마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미간 사이에서 칼같이 떨어지며 오똑 솟아오른 콧날과 앙증맞은 콧구멍은 그랜드 마스터 조각가가 깎아도 저렇게는 못 깎을 만큼 완벽한 선을 자랑하고 입은 밥을 먹을 수는 있을까 싶을 만큼 작다.
화연이 누나 옆에 앉은 울 누나도 화연이 누나랑 비교해보니 서로 다른 분위기와 아름다움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거 같다!
가슴은 프랑과 비슷할 만큼 크다! 75 D컵인가? 근데 브래지어 위에 쫄티? 스포츠 브라? 하나를 위에 더 입었는데 상체를 전체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라서 옷 너머로 보는 가슴은 작아 보인다. 그리고 누나와 맞먹는 잘록한 허리와 프랑만큼이나 잘 발달한 골반과 표범같이 탄탄하고 쭉 뻗은 다리는 그야말로 예술품이다.
남자의 본능을 따라 다리를 타고 올라와 사타구니를 살펴보니 털이 하나도 없는 민둥산이 보인다! 이, 이게 바로 그 빽보지라는 건가?!
털이 하나도 없는 조갯살은 희고 통통한 게 꽃잎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지인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 아래로 핑크색의 앙증맞은 항문도 보이고 푸딩같이 탄력이 넘쳐보이는 엉덩이골을 타고 허리로 올라가니 척추를 따라 일자로 파여진 홈과 함께 보기 좋게 잘 발달한 등 근육은 전체적으로 표범 같은 느낌이 흐른다!
화연이 누나도 처녀구나. 저렇게 예쁜데… 남자친구도 없나?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 누나의 냉정한 표정을 탐색으로 주시했다.
방금 전에 화연이 누나가 위상력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내 능력에 대해 뭔가 눈치 챈 것이 있는가 싶어 탐색과 투시로 얼굴과 몸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는데, 화연이 누나는 내가 자신의 보지와 항문까지 살펴보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진장 예쁜 몸매에 가슴이 콩닥 콩닥거리는데 곧 작고 예쁜 입술이 벌어지며 약간 서늘한 듣기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많이 컸는걸? 이제 꼬맹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겠어.”
엥? 꼬맹이라니, 무슨 말이지? 어쨌든 내가 자신의 알몸을 소중한 부분까지 낱낱이 살펴본 걸 눈치채고 화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럼 아까 그 위상력의 움직임은 뭐였지?
난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뱉고 거실 바닥을 다 가리고 있는 푹신한 양털 카펫에 주저앉았다. 누나들이 앉아있는 소파에는 차마 못 앉겠어.
…거시기가 불끈해졌거든.
“그치? 위상 세계에서 돌아온 뒤에 키도 커지구 어쩐지 듬직해졌어.”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누나를 화연이 누나는 이런…응? 무슨 표정이지? 한심? 한숨? 황당? 아무튼, 몇 가지 감정이 섞인 눈빛으로 울 누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날 보고 입을 열었다.
“일단 소파에 앉아. 마침 너한테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
어, 할 말이라니. 누나가 능력자라는 거? 난 화연이 누나 말대로 눈치 못 채게 팔로 탁자를 짚는 척 상체를 굽히고 넘어지듯이 1인용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는데 그 사이로 프랑이 슬그머니 거실로 다가와서 화연이 누나의 앞에서 슬금슬금 움직이는 게 보인다.
화연이 누나도 역시 프랑이 안 보이는 거군.
위상력이 1,000만을 넘는 능력자도 프랑의 존재를 눈치 못 채는걸 보면, 알아챌 확율이 있는 사람은 다른 타입의 능력자, 혹은 특수한 기술을 가진 능력자만 남게 된다.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화연이 누나가 내게 할 말이란 게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그래서, 내 몸을 본 느낌은 어때?”
푸우웁! 푸, 꿀걱!
난데없는 화연이 누나의 말에 우리 누나는 마시던 매실 음료를 좌탁에 뿜어버렸고 나 역시 직설적인 표현에 뿜을 뻔했다가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꿀꺽 삼켜버렸다!
드, 들킨 건가?
긴장감에 미친 듯이 뛰는 심장으로 위상력을 보내 안정시키며 눈을 감고 화연이 누나의 표정을 필사의 각오로 읽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한 건지!
암만 절친의 동생이라지만 탐색 능력으로 소중한 부분을 샅샅이 봤다는 걸 들키면…. 주, 죽을지도.
아냐, 화난다고 정말 죽이려 들지는 않겠지만, B 클래스 능력자라니. 반항할 엄두도 안 나!
“너, 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황급히 티슈를 뽑아서 입 주변을 닦고 좌탁에 뿜어버린 액체도 닦으면서 누나가 잔뜩 붉어진 표정으로 화연이 누나를 보며 외쳤다! 맞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눈이 내 몸을 훑길래. 감지 능력으로 살펴본 거 아니었어?”
응? 내 능력을 알아…? 누나가 이야기해 준건가?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왼팔은 가슴 밑으로 넣어서 오른팔을 받치고 우아한 자세로 컵을 살짝 기울이며 매실 음료를 마시는 화연이 누나는 화났다기보단…. 그냥, 별일 아닌 듯? 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몸에서 1cm 정도의 위상력으로 이루어진 막이 피부를 덮고 있었다.
저건 능력인가? 혹시 투시나 분석 같은걸 막아주는 거? 그럼 화연이 누나가 저렇게 평온해 보이는 것도 저 기술을 믿어서 그런 건가? 내 감지 능력은 그냥 옷 위쪽을 본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눈을 살짝 뜨고 화연이 누나를 보니 그 옆에 왠지 골이 난 거 같은 표정의 프랑이 나와 화연이 누나를 살포시 흘겨보는 게 보인다. 아마 내가 화연이 누나의 몸을 스캔했다는 걸 알고 살짝 질투하나 보다.
프랑의 표정에 긴장이 풀리면서 살짝 웃음이 날, 윽. 얼굴에 웃음기가 드러났는지 화연이 누나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아무튼, 틀림없어. 내 탐색 능력은 존재조차 모르는 게 분명해. 나는 진실 속에 거짓을 숨기면서 화연이 누나한테 입을 열었다.
“6년 전에 봤던 그 누나가 맞는지 의심스러워서 그랬어. 기분 나빴으면 미안.”
화연이 누나랑 우리 누나랑 나는 꽤 오랜시간 알고 지냈다. 대충 12년쯤 된거같다.
내가 6살때 같은 보육원에서 만난 우리 셋은 누나의 주도에 화연이 누나랑 나랑 셋이서 늘 같이 붙어 다녔었다. 그렇게 8년동안 사이좋게 지내다가 내가 14살이 되던 해에 어느 순간 만나는게 뜸해졌었다.
그러니까 6년전의 화연이 누나는 키는 130cm정도에 몸무게가 60kg이 넘어가는… 좋게 말하면 통통했고 나쁘게 말하면 나보다 더 돼지였었다. 성격도 되게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는데 어느 순간 누나와 화연이 누나는 날 두고 둘이서만 놀기 시작했었지.
나도 초등학교 6학년으로 올라갈때라 여자애들이랑 같이 노는게 창피해서 화연이 누나와 멀어지는 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그 뒤로는 누나를 통해 가끔 잘 지낸다는 소식만 듣는 정도였는데, 언제 능력자가 된거야?
내 말에 화연이 누나는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날 보는데 그런 나와 화연이 누나를 울 누나는 불안한 눈으로 번갈아 보고있었다.
약간 묘한 기류가 흐르는걸 눈치챘나보다.
화연이 누나는 나도 늦게 눈치 챌 정도로 은밀하게 내 몸이랑 체내의 위상력을 가늠해보고 있었거든. 눈치챈 건 화연이 누나가 컵을 살짝 들어 마실 때 였다. 그래서 나도 화연이 누나가 괜히 의심할법한 행동을 했던 거고.
아니라면 내가 미쳤다고 B 클래스 급의 능력자의 알몸을 눈치채라는 듯이 살펴봤겠어. 시선을 딴 곳으로 향하면서 얼마든지 더듬어 볼 수 있는데.
그러니까 이제 내 턴이지?
“그래서 누나는 언제 능력자가 된 거야? 몸 안에 위상력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걸 보면 하루 이틀은 아닌 거 같은데. 혹시 6년 전에 나랑 안 만나기 시작했던 그때부터야?”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이거저거 줏어다 붙이고 대충 말로 만들어 입 밖으로 꺼낸다. 솔직하게 시인하기보다는 은근슬쩍 인정하면서 딴 화제로 돌리기.
그러자 슬쩍 눈을 치켜뜨고 날 주시하는 화연이 누나.
…무섭다! 위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저 사늘한 눈이 감정 없이 보는 게 무서워!
겨우 진정시킨 심장이 또 콩닥 콩닥거리기 시작하고 목이 말라와서 손에 쥐고 있는 컵을 들어서 남은 음료를 쭉 들이켰다.
“역시 위상력을 볼 수 있는거구나. 맞아. 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 낼게. 앗 잠깐만. 화내거나 혼내려는 거 아니니까, 그러지 마. 잠깐만 기다려보래도. 자, 잡지 말고, 잠깐.”
울 누나는 화연의 누나 반응이 이상한지 두 팔을 뻗어 화연이 누나를 껴안으면서 나보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는 듯이 눈짓을 하는데, 왠지 방으로 가면 안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이놈의 예감!
화연이 누나는…. 울 누나한테 약한지 살짝 힘만 써도 누나의 팔 같은 건 쉽게 풀어낼 텐데 꼼짝달싹 못 하면서 혹시 움직였다간 누나가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화연이 누나도 울 누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백합 말고 순수한 친구로써!
근데 두 미녀가 서로 끌어안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눈이 정화되다 못해 산화될 것처럼 눈이 부셔…! 음탕한 나의 눈에는 너무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순수한 친구의 우정이다!
뭐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간다. 못난이 뚱돼지라고 놀림받던 화연이 누나를 울 누나가 지켜주며 인품으로 감복시켰고 그런 인품에 반한 화연이 누나는 능력자가 돼서 우월해진 뒤로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로 여기는 거겠지. 울 누나도 질투나 그런 걸 할 리도 없으니까 쭉 절친으로 지낸 걸 테고.
“누나, 괜찮으니까 그러지 말아봐. 무슨 문제?”
내가 손을 뻗어 누나의 어깨를 잡아 살짝 당기니까 순순히 손을 풀고 떨어지는 누나였는데 그래도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저 표정은 낮에 강우혁이랑 대화하던 날 보는 표정인데, 아무래도 또 걱정시켰나 보네.
근데 시작은 화연이 누나가 먼저였단 말야. 그런다고 B 클래스랑 맞상대한 나도 문제지만. 그래도 누나의 절친인데 절친의 동생을 죽이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도 조금 했다.
“…잊었어.”
“엥?” “어?”
손바닥으로 약간 상기된 얼굴을 향해 바람을 부치는 화연이 누나는, 아무래도 울 누나가 갑자기 껴안으니까 좀 당황했나 보다. 울 누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화연이 누나를 바라보고 나도 어이가 없어져서 화연이 누나를 바라보는데 나와 누나의 표정을 잠깐 보다가 다시 입을 연다.
“농담. 내가 찾아온 이유를 한번 맞춰봐.”
…거참, 분위기 죽이는 저 썰렁한 농담은 변한 게 없네.
누나를 생각해보면 낮에 화연이 누나랑 통화하고, 날 찾아온 생환자 보호관리부에서 찾아온 두 명을 봤고, 그 뒤에 나한테서 오 소장과 우 박사님이랑 나눈 대화를 들었지. 그다음에 집에 와서는 화연이 누나를 만나러 갔고.
“누나도 그룹… 레이드 팀을 하나 가지고 있는 거야?”
내 말에 호오. 하는 표정을 짓는 화연이 누나. 근데 워낙 움직임이 적어서 감지 능력 없이는 눈치도 못 채겠다.
“계속해봐.”
“계속이고 뭐고…. 나보고 누나의 팀에 들어오라는 거 아냐? 울 누나 반응을 보면 그런 거 같은데. 거기다 몸 안의 위상력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걸 봐서는 단순한 능력자도 아닌 거 같고, 누나가 일부러 만나서 이야기할 정도면 날 감당할 크기의 레이드 팀이나 그룹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손에 든 음료수 잔을 내려놓으며 마저 말했다.
"우 박사님이 말해준 거지만, 내 능력이 꽤나 희귀하고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했거든. 누나들의 행동, 무척이나 많은 위상력을 지닌 고위 클래스의 능력자, 지금 이 상황. 결과는 하나뿐이지.”
화연이 누나는 좌탁 위에 컵을 내려놓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시하의 동생인가. 맞았어. 네 능력이 탐나기도 하고, 시하가 어지간해서 하지 않는 부탁을 해서기도 해.”
…누나도 참. 내가 그렇게 걱정이 됐던 건가.
“서하야. 네 능력을 화연이한테 말해버렸어. 미안해.”
“아냐. 날 위해서였잖아? 괜찮아.”
화연이누나는 가슴 밑으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 레이드 팀은 B 클래스 중급인 날 보스로 C클래스 최상급 부대장 2명과 C클래스 중급 팀장 10명, C클래스 최하급에서 D 클래스 최상급 사이로 이루어진 10개 팀 100명의 113명의 능력자, 사무원과 임무 보조원과 전투 보조원을 다 합치면 1,000명이 넘는 레이드 팀이야.”
천명?!
“팀 명은 타임리버. 정서하. 타임리버의 보스로써 네게 정식으로 요청하겠어. 나의 팀에 들어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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