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4 집으로. =========================================================================
4월 10일.
능력자 병원에서 최고급 시설을 만끽하며 일주일을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반복했더니 그제서야 살이 오르면서 사람다운 모습이 됐다!
“후후후. 이게 내 얼굴이란 말이지.”
침대에 앉아 누나가 가져온 손거울에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본다.
번개에 지져져 곱슬곱슬해졌던 머리도 죽어라 위상력을 돌렸더니 점점 원대로 돌아오다가 어제 완전히 직모로 돌아왔다.
여드름의 흉터 때문에 달의 표면 같던 내 얼굴은 그야말로 달빛처럼 환하게 빛나는 게 백옥처럼 깨끗한 피부 같아!
눈썹도 짙고 날카롭게 뻗어있고 그 아래 눈도 또렷한 데다 코도 높고 입술도 남자답게 짙고 선명하잖아?
위상 세계에서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 이틀 동안 신체검사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키가 171cm가 됐고 몸무게도 73kg까지 늘어났다. 인체 비율도 8등신이 되면서 팔다리도 조금 더 길어져서 체형만 보면 아주 완벽한 상태다.
기왕이면 키가 좀 더 컸으면 좋겠지만…. 신체 강화자로 각성한 것도 아닌데 키가 10cm 가까이 커진 거에 만족했다.
손거울에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보고 있으니 전공 서적을 보고 있던 누나는 내게 시선을 돌려 잠시 바라보다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혀를 찬다!
“…왜?”
“누가 보면 흉봐. 그만하고 이리 내놔.”
그러면서 내 손에서 손거울을 뺏어가는 누나.
아항~
“누나, 질투하는 거야? 킥킥, 하긴 내가 좀 피부가 좋아졌어야지. 맨날 얼굴에 진흙 바르고 오이 붙이고 무진장 신경 썼는데 한순간에 역전돼버리니까 부럽지?”
실실 웃으며 왼손으로 내 뺨을 쓸어내리며 누나를 바라보자 바로 짜증 난다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트린 누나는 눈빛이 사나운 게 곧 주먹이나 발이 날라올 거 같다!
“자, 잠깐! 폭력반…”
쿵!
끄엑!
채, 책 모서리로 내려치다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침대에 얼굴을 박고 축 늘어져 있으니 한심하다는 누나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애가 위상 세계에서 돌아오더니 더 이상해진 거 같아. 정말 머리 멀쩡한 거 맞니?”
“뭐! 내가 어때서! 더 이상해졌다니, 꼭 그전에도 이상했다는 말처럼 들리잖아?!”
발딱 일어나 앉으면서 누나한테 항의하자 누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려버렸다.
“…말을 말자.”
위로는 흰색 면티에 청색 데님 셔츠를 걸치고 아래로는 청색 쫄바지를 입은 채 흑단 같은 긴 머리를 머리 위로 틀어오려 당고머리로 올려묶은 이 여자의 이름은 정시하. 내 누나다.
올해 20살로 누구나가 최고로 손을 꼽길 주저하지 않는 의한 대학교의 경영학과 2학년이다.
아빠의 좋은 머리와 큰 키, 엄마의 좋은 머리와 예쁜 얼굴과 여성적인 몸매 등등 좋은 점이란 좋은 점은 모두 물려받은 듯한 176cm의 우월한 키와 45kg의 조각 같은 아름다운 외모는 사람들로부터 늘 능력자라고 오해하게 만들었던 누나는 타고날 때부터 팔방미인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그야말로 흑단 같다는 표현이 적절하고, 엄마를 닮아 부드럽고 지적인 얼굴선은 눈썹 끝에서 미간을 향해 이어지다 미간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며 부드럽고 완벽한 곡선을 자랑하는 콧등을 지나 작고 앙증맞은 입술과 별빛이 박힌 눈이 이런가 싶을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완벽한 얼굴이었다.
몸매도 아빠가 하는 병원에 직원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헬스 트레이닝장에서 매일매일 두 시간씩 운동하는 덕분에 조금 안타까울 만큼 빈약한 가슴과 약간 모자라는 골반만 제외하면 프랑과도 맞막을 정도의 완벽한 몸매와 황금 비율을 가지고 있다.
나? 안경 안 낀 여드름 돼지였지 뭐. 팔 짧고 다리 짧고 몸 뚱뚱하고. 물론 지금은 나도 8등신 170cm의 키와 76kg의 다부진 근육을 가진 훈남이고! 우헤헤헤!
…더 이상 설명하면 내 입만 아프니까 패스.
저런 잘난 누나지만 어렸을 땐 그냥 못난이 뚱땡이로만 불렀었지……. 누나가 진짜 예쁘다는 건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알게 됐었다.
아무튼, 저런 잘난 누나가 있다 보니 사춘기 때 누나가 싫어져서 살짝 삐뚤어지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말없이 집을 나와서 멀리 떨어진 피시방에서 하룻밤 외박하고 다음 날 아침에 들어갔더니 집안 분위기가 싸늘해져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바가지에 한밤중에 날 찾으러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었고 엄마도 아는 사람(검사, 형사, 경찰 등등)에게 막 전화 걸면서 아들이 사라졌다고 전화하는 중이었던데다 누나는 펑펑 울면서 아빠한테 전화해서 날 찾았냐고 닦달하는 중에 집에 들어갔었거든?
5초 만에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눈치챈 나는 아, 이제 죽는구나 싶었는데 그 순간 누나가 나한테 달려들어서 끌어안고 목놓아 울어버리더라.
어디 갔었냐고, 걱정했다고 막 울면서 화를 내는데 엄마도 눈물이 글썽글썽하면서 내가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전화 걸었던 사람들한테 다시 연락해서(검사, 형사, 경찰 등등)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연락하기 시작했었지.
날 끌어안은 채 눈물을 멈추지 않는 누나를 보니 맨날 틱틱거리고 화나면 걷어차고 그러지만 내가 없어지면 이렇게나 걱정해주는구나, 못생기고 못난 동생인데 좋아해 주는구나 깨달으니까 콧잔등이 시큰해지더라.
그리고 돌아온 아빠한테 뒈지게 맞고 석 달 용돈삭감, 석 달 외출 금지당한 건 다른 이야기.
아무튼, 겉과 속이 다른 츤데레 누나라는걸 사춘기 때 깨달은 뒤로는 웬만하면 누나의 샌드백이 되어주는데 이번에도 괜히 부끄러우니까 저러는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사실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잘 때는 탐색 능력을 끄고 일어나면 켜는 생활이라 누나가 공격해오는 궤적 같은 게 다 보이지만 일부러 맞아줬다. 사실 이제 맞아줘도 억 소리 나게 아픈 건 아니…. 음, 방금 책 모서리 공격은 좀 아팠다.
모서리에 찍힌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전공서적을 펴고 공부하려는 누나한테 말했다.
“누나, 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해?”
“왜? 아직 다 회복 안된 거 같은데 좀 더 쉬어.”
누나는 내 뺨을 붙잡고 얼굴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살짝 뺨을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빈둥거렸더니 진짜 지겨운데? 사람이 워낙 들락거리고 누나도 계속 말 걸어서 위상력 컨트롤 연습도 잘 못 했단 말야!
그전에는 병원 입원 이튿날 검사가 끝났을 때 할머니랑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까지 오셔서 날 살펴보셨었고 그 외에는 대부분 아빠랑 엄마의 지인이라는 수많은 사람이 엄마랑 아빠한테 축하한다고 찾아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각성한 건 난데 왜 엄마 아빠한테 축하하는 거지…?
그 이후에는 내가 쉬는 데 방해된다고 생각하셨는지 엄마랑 아빠는 바로 병원으로 돌아가셨고 아는 사람들은 엄마 아빠를 쫓아 다들 병원으로 찾아갔다고 하더라.
내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할머니도 안심하셨고 외할아버지도 대견하다면서 머릴 쓰다듬어주셨었다.
외할머니는 할머니의 사연을 들으시며 계속 눈물을 흘리시더니 나중에는 두 분이 무척이나 사이가 좋아지셨는데 얼핏 들으니 언니 동생 하면서 말을 터놓으신 거 같아 기쁘다.
젊었을 적 되게 예쁘셨을 거 같은 할머니는 얼굴에 고통스러운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셨는데 아빠가 엄마랑 결혼하고 장성하시니 할아버지와 삼촌, 고모가 묻힌 시골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외롭게 지내고 계셨었거든. 그래서 외할머니가 할머니랑 가깝게 지내 시려하는 게 좋았다.
아무튼, 할머니는 내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어주시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한테 인사하신 다음 그저께 시골로 내려가셨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나한테 몸 건강하게 지내라고 말씀하시며 어제 돌아가셨다.
오늘은 내가 어딜 갈라치면 누나가 졸졸 따라오는 바람에 혼자 있을 시간도 못 가졌고!
그러니까 프랑을 못 본 지 9일이나 지났다고! 프랑이 보고 싶단 말이야!!
내가 왜 집에 있는 영어 교과서랑 영어 단어장을 누나한테 전부 가져다 달래서 분석 능력으로 달달 외웠는데?!
그 와중에 내 무시무시한 암기력에 깜짝 놀란 누나가 이것저것 시험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아무튼!! 프랑과 대화를 나누겠다는 일념으로 죽어라 외웠는데 프랑을 불러내질 못하니까 점점 금단 증상이 오는 거 같아!!
어쨌든 이제 독순 술만 익히면 프랑이랑 대화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거란 말야! 아니! 평범한 종이에 알파벳만 적어놔도 되는데!
묻고 싶고 놀리고 싶고 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한데 못하니까 미칠 거 같아!!
독순술 책을 구해다 달라고 하면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게 뻔하니 누나나 엄마한테도 구해달라고도 못하고 내가 직접 사러 가야 할 텐데.
아악!! 답답하니까 막 생각도 엉키는 거 같아!
“…누나.”
“안돼.”
“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한테 보호자 서명해서 퇴원하자고 하려는 거잖아?”
으으….
난 환자복 안에 프랑의 영혼석이 든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3일 전에는 내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 걸 누나가 보고서는 안에 뭐가 들었냐고, 보여달라고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3가지 조건을 걸고 다 지키겠다고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보여줬었다.
누나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 간의 가장 중요한 그것이라며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으로 학교에서 유명하다.
정말정말정말 약속이라는 말은 2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지만 한번 약속이라는 말을 하면 그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이 누나거든. 나도 그 약속 덕분에 여러 번 도움받기도 했고.
아무튼 첫 번째로 절대 만져보게 해달라고 하지 않기, 두 번째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 세 번째로 나한테 뺏지 않기. 이 세 가지를 지키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안보여준댔더니 얼굴이 부루퉁해졌다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보여줬는데, 약속을 요구 안 했다면 아마 세 번째와 첫 번째는 보자마자 말을 꺼냈을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누나는 처음 보고 신기한 건 무조건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고 만져보고 마음에 들면 가지고 싶어서 끙끙거리거든.
“이건 내 목숨을 구해준 소중한 거야. 위상력 측정 담당 박사님도 몸에 떼놓지 않고 오랜 기간 지내면 아티펙트가 되면서 날 지켜줄 수 있게 될 귀중한 물건이랬어.”
라는 말을 해주는 걸로 번쩍이는 누나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었지. 내게 귀중하고 소중한 거라는데 누나도 별수 없었을 거다.
하긴, 정말 오랜만에 손에서 꺼내본 프랑의 영혼석은 더욱 아름다워진 보석 같았다.
틈틈히 탐색 능력을 돌리면서 영혼석의 모양은 계속 확인했기에 벼락 샤워를 한 뒤로 점점 모양이 변해서 물방울 모양의 보석 같아진 건 알고 있었다.
프랑이 전기 능력을 얻은 뒤로는 물빛은 더욱 진해지고 영혼석 중앙의 회색빛은 가끔 하얀 뇌전 비스무리한게 번쩍이는 게 척 보는 순간 위상 석이라는 생각은 못 하지만 대신 무척이나 희귀하고 아름다운 결정처럼 보이게 됐거든.
정말 이제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보물이 돼버린 거지.
손을 약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전류를 느끼며 만지작거리고 있다 보니 영혼석 안의 회색 기운이 일렁거리는 게 보였는데, 프랑이 느끼고 있다는걸 단박에 간파하고 흐흐흐 웃으면서 프랑이 한껏 오르가슴을 느끼게 차분하고 골고루 영혼석을 만지작거려줬었다.
내 애정을 온몸, 아니 온 영혼으로 한껏 느꼈겠지?
내가 현실로 생환한 지 이제 9일째. 사라진 날까지 다 합하면 24일, 곧 한 달이 다 돼간다. 3학년이 돼서 새 학기가 시작하고 며칠 안돼서 사라졌기 때문에 살짝 공부가 걱정되긴 하지만… 안되면 누나한테 공부 가르쳐달라고 하면 되니까.
내가 다니는 학교도 누나가 다니는 의한 대학교와 같은 의한 재단 소속의 의한 고등학교다.
전에도 생각했었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전국 최고레벨이라 우리나라의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인재들은 모두 모여드는 굉장한 학교라고.
덕분에 평균 외모도 월등히 뛰어난 곳인데, 나도 이제 얼굴이 확 바껴서 잘생겨졌고 기억력이랑 암기력도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늘어났으니 성적은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다.
영어를 외우면서 알게 됐는데 탐색 능력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암기력이랑 기억력만 무진장 늘어났다는 걸 확인 했거든!
무엇보다 난 이제 이형 능력자니까! 평생직장이 생긴 거나 다름없다고!
후후후. 날 부러워할 남자애들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볼 여자애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음흉하게 웃기 시작하자 누나는 저거 또 저러네 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짓는 게 감지에 걸렸다.
그 모습을 잽싸게 쳐다보니 움찔했다가 슬쩍 눈을 피하는 누나. 딱 걸렸어.
예전 사춘기 때 나를 보고 자꾸 한숨 쉬길래 내가 그렇게 못나서 부끄러운 동생이냐고 대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황해서인지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면서 그런 거 아니라고 변명하는데 그 틈을 타서 약속을 강요했었다. 날보고 한숨 쉬다가 나한테 걸리면 내 부탁 하나씩 들어달라고.
…뭘 숨기랴. 프랑의 양심을 찌르면서 약속하는 척 강요하기 ver 1이다. 프랑은 2.
평소에는 누나도 감이 좋아서 아슬아슬하게 안 걸리거나 피해버려서 의심만 가득하고 물증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내 감지 때문에 딱 걸린 거지.
“누~나~?”
“으, 응? 아 참! 나 화연이한테 전할 말이 이이 이, 있었는데 깜빡했네~?!”
…되게 어색한 표정으로 연기하며 후다닥 병실 밖으로 도망가버리는 누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감지 능력으로 살펴보려 하는걸 억지로 막고 잽싸게 병실 문을 닫고 프랑을 불렀다!
뭐 누나가 하기 싫어하는걸 억지로 시킬 생각도 없고, 그냥 누나한테 영국식 회화책이나 좀 사달라고 하려 했거든. 자리 비운 사이에 프랑을 불러낼 생각으로!
뭐 솔직히 집에 가서 프랑을 불러내는 게 심적으로는 그쪽이 가장 좋을 거 같은데, 요 며칠간 탐색 능력이랑 망원 능력으로 능력자 협회 건물을 막 눈으로 부셔버릴듯이 탐색하고 감지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단말야?
게다가 감별기나 측정기가 뜻밖에 단순한 걸 보면 영체를 감지하는 방법 같은 건 없는듯해서 프랑을 불러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던 참이었다. 생각해보면 양아치 이무기도 영체인 프랑에게는 시선을 안 주고 나한테만 꽂고 있었지?
“프랑? 프랑! 나와봐!”
주머니에서 프랑의 영혼석을 손에 쥐고 속삭이듯이 말하자 이내 은은한 회색빛이 퍼지면서 프랑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실 사람들이 있을 때 못 부른 이유가 이거다. 지금 이런 회색빛이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 보일까?. 하지만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상태에서는 위상력이 5만을 넘는 능력자들한테도 안 보였던걸 생각하면 전기를 발생시킨다거나 하는 것만 아니면 들키지 않을 거 같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으니…. 다른 확인할 수단을 찾아봐야지.
아, 잠도 영혼석 안에서 자라고 해야겠다. 자다 깰 때 환하게 빛나는 것도 피해야 할 거 같으니까.
완벽하게 모습이 드러난 프랑의 나신은…. 9일 전에 당한 눈알 테러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이내 눈을 반짝하고 뜬 프랑은 자상한 웃음을 머금고 내가 앉은 침대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내 등에 가슴을 기대고 내려앉았다.
“보고 싶었어. 프랑.”
내 오른쪽 어깨에 턱을 기댄 프랑의 작은 머리가 살짝 움직이며 눈을 나와 맞췄다. 그리고 방긋 웃어주었는데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빠가 엄마한테 열렬히 사랑 고백을 할 때도 지금 나랑 같은 기분이었을까?
“얼른 여기서 퇴원하고 독순술 책을 사서 익히고 싶은데, 퇴원할 수가 없네.”
한숨을 쉬며 내뱉은 말에 프랑은 기분 좋은 듯이 진한 미소를 머금고 병실 안을 유영하듯 천천히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영어 단어도 수만 가지나 외웠어! 누나 대학교의 도서관에는 10만 단어짜리 영어 사전도 있다고 하는데 그거까지 완벽하게 외우고 독순 술도 익히면 프랑의 입 모양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지겠지?”
끄덕끄덕!
…어? 잠깐, 여긴 현실인데 프랑이 한글을……. 알아들었다?
“어? 프랑. 지금 한국어로 말했는데 알아들은 거야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궁금해서 다시 한 번 말을 걸어봤더니 프랑은 방긋 웃으면서 침대 여기저기와 사물함 위쪽에 쌓여있는 영어책과 단어장들을 가르켰다.
“내가 영어 단어를 외울 때 프랑도 같이 외웠다구?”
끄덕끄덕!
내가 놀라서 프랑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자신도 그동안 놀았다는 건 아니라는 듯이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스르륵 다가와 내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춰줬다. 능력자 연합 빌딩이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전기를 이용해 따뜻한 감촉을 전해주진 못했지만, 이 키스도 맘에 든다.
으음. 혹시 프랑은 굉장한 천재가 아닐까? 그 짧은 시간에 한글을 다 익혔단말야? 아니. 그보다 책을 어떻게 본거지?
그러고 보면 영혼석 안에 있을 때는 외부가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고 있었네.
프랑은 침대 위에 얌전히 앉은 자세로 날 바라보고 있었는데 막상 물어봐도 대답을 들을 방법이 없구나. 노트에다 알파벳이라도 적어야겠다.
“9일 동안 영혼석 안에서 답답하지 않았어?”
프랑은 전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주변이 보이긴 한다고 했지만,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그러니 직접 저렇게 돌아다니는 것보단 못할 게 틀림없겠지.
…어, 그러고 보면. 프랑은 전기를 사용할 수 있지. 그 수준을 사람의 몸에 흐르는 정전기 수준까지 낮출 수 있고.
“태블릿이나 휴대폰!”
문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억지로 소리를 죽이며 환한 표정으로 프랑을 바라봤다!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폰이나 태블릿이 있으면, 아니 전기를 보다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으면 프랑의 활동 범위도 대화 방법도 확 넓어질 텐데!”
내 말을 들은 프랑은 그제서야 그 방법을 깨달았는지 감격 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미안. 내가 바보라서 생각해내는 게 늦었어.”
프랑은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젖은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병원 입구에 강우혁과 최수한이 도착해서 병원 정문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강우혁과 최수한이 왔어.”
병원 로비로 들어와 곧장 내가 있는 방향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둘을 보며 프랑에게 말했다.
“미안.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는 다시 영어 단어장을 펼쳐놓은 다음 단어장을 보는 척하고 있었다. 프랑은 일부러인지 내게서 떨어져 벽에 딱 붙어있었다.
그래. 저렇게 있으면 강우혁과 최수한이 들어오는 순간 시선으로 알 수 있겠지. 프랑도 그런 생각이었는지 내 얼굴을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어줬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반응을 보여줘야 남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거지! 오소은 소장처럼 무뚝뚝하고 사람 말 무시하면 평생 처녀로 사는 거야!
그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다가 내가 있는 3층으로 올라와서는 누나와 만나는 게 보인다. 9일 전에 만난 걸 기억하는지 세 사람은 서로 인사를 하더니 바로 몸을 돌려 내가 있는 병실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금방 도착한 세 사람, 아니 누나는 병실 문이 닫혀있는 걸 보고 잠시 당황한 눈치다. 그러다가 문을 두드리며 말을 한다
“서하야? 손님 오셨어.”
“어? 들어와!”
내 말이 끝나자 바로 문이 열리며 강우혁과 최수한이 들어오더니 뒤따라 누나가 들어오면서 병실 문을 닫았다.
나는 두 사람의 눈을 조용히 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도 날 주시하는… 아니 최수한 저 노랑머리는 병실을 한번 훑어보고 나를 바라보았다.
노랑머리의 시선이 프랑을 향하는 순간 일부러인지 프랑은 주먹을 쭉! 하고 내밀었는데 최수한의 눈동자는 약간의 흔들림도 없이 프랑을 지나쳐 내게로 향했다.
역시, 프랑의 모습은 안 보이나 보네.
“많이 건강해진 거 같군, 축하하네.”
“이야~ 살이 오르니까 굉장한 미남이 됐는걸? 축하축하~.”
여전히 진중한 어투의 강우혁과 가벼운 말투의 노랑머리다. 근데 저런 얼굴을 가진 놈한테 저런 말을 들으니까 놀림받는 기분이야!
둘은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게 기본 근무복인가 보다.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의 능력이 협회 한국 총괄지부장에게 보고가 되었다네.”
우 박사님이 말했던 대로 보고서가 올라갔나 보다.
“어? 별로 안 놀라네? 지부장님한테 보고가 올라간다는 건 네 능력이 지부장님께서 관심을 가질 만큼 놀랍다는 거야. 기뻐해도 돼.”
으으 저 노랑머리 진짜 촐싹거리며 방정맞게…. 귀찮아질 법한 소식을 가져온 거 같은데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라고? 난 표정을 굳히며 최수한을 보고 말했다.
“위상 세계에서 보고 겪은 게 많아서 그런 일에 기뻐할 여력이 없네요. 그래서요?”
내 사늘한 반응이 의외였는지 최수한은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강우혁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했다. 웃어?
“그렇네. 사실 지부장에게 보고서가 올라간다는 건 위에서 자네의 능력을 주시한다는 이야기니 귀찮아질 거리가 늘어날 수 있는 셈이지.”
“켁! 선배?!”
“아무튼, 자네에 대한 클래스 인증서와 정식으로 능력자 증명서가 발급되었네. 물론 정식으로 발급되긴 했지만 자네는 아직 18살로 성인이 되지 않았으니 일체의 이형종 사냥행위는 금지일세.”
그러면서 나에게 두 장의 둘둘 말린 A4용지만 한 크기의 종이 두루마리를 건네주는 강우혁. 최수한은 뭔가 불만스러운지 주둥이를 삐죽 내밀고는 아까부터 왼손에 들고 있던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고급스러운 상자를 내게 건네주었다.
“이건 인증기야. 상자 안에 설명서도 들어있으니까 읽어보고 사용하도록 해.”
강우혁은 내가 상자와 두루마리를 받아든 모습을 보고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F 클래스 감지 타입 이형 능력자 정서하. 위상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나에게 얼떨떨한 기분을 안겨준 강우혁은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며 연락처가 적힌 명함 한 장을 건네줬고 최수한도 명함을 꺼내 한 장 주고는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특수 능력자들은 R 클래스라고만 부르는 줄 알았는데 타입으로 분류하고 클래스는 위상력으로 분류하나 보다.
…지부장이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능력자 협회는 최대한의 실무능력을 우선으로 하는 능력 제일주의 체제라고 들었다. 무려 한 국가의 지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허술하고 허투른 사람일 리 없겠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지부장은 대통령이나 총리와 비슷한 발언권을 지니고 해당 국가 능력자들의 지지도 많이 받기에 거물급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그 사람이 관심을 보인다면 그와 비슷한 급의 사람들도 관심을 보일 거란 말이잖아.
“아….”
내가 투덜투덜 거리 모습이 어색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머뭇거리고 있는 누나가 보였다. 최수한한테 싸늘하게 말한 게 누나의 귀여운 동생이랑 매치가 안 됐으려나. 저 분위기를 바꾸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겠지?
“누나아?”
“으, 응?”
내가 실실 웃으면서 슬금슬금 움직여 침대에 내려온 다음 병실 입구를 가로막자 누나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볼 일은 다 끝났어?”
“아?”
“내 부탁, 들어줄 거지?”
“읔…!”
그제서야 깜빡했다는 표정으로 당황하는 누나는 아까 나한테 느낀 어색한 느낌은 이미 씻은 듯이 없어진 모양이다.
“자자, 어려운 거 아니야? 아빠한테 살짝 전화 한 통만 하면 된다고? 킥킥킥.”
원래 누나 말대로 병원에서 며칠 더 있으려고 했는데 진지한 표정의 강우혁을 봤더니 좀 더 일찍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 박사님이나 김은하나 민나영의 말대로면 정부든 능력자 협회든 사람을 보내오던가 할텐데 9일동안 얼굴을 내비친 사람이라곤 방금 왔다간 강우혁과 최수한 두 명 뿐이니까.
아무리 나라도 이상하다는건 생각 할 수 있다.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지만.
혹시 위에서 뭔가 손을 쓴건가? 한국지부장이 나한테 관심을 보인대잖아?
하지만 누나는.... 내가 좀 더 안쉬는게 불만인가보다.
“으으… 그냥 조금만 더 쉬면 안 돼? 너 잘 보면 아직 살짝 말라 보인단 말이야.”
“에이, 그러다가 또 80, 90kg까지 찌울려고? 누나나 엄마한테만 귀여워 보였었지 딴 놈들한테는 돼지니 뭐니 잔뜩 놀림받았단 말야!”
“뭐야?! 누가 그래! 당장 누나 앞에 데리고 와! 혼내줄 테니까!”
“아니 누가고 뭐고 다들 그런다니까?!”
프랑은 나랑 누나가 툭탁거리는 게 재미있다는 듯이, 부럽다는 듯이 침대 위에서 모로 누워 구경하는 중이었는데 어깨에서 겨드랑이를 지나 허리에서 쑥 내려갔다가 골반에서 급격하게 솟아오르는 선이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프랑을 힐끔거리는 모습이 누나에게는 침대를 힐끔거리는 걸로 보였는지 날 설득하려 다시 애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직 날도 쌀쌀하구 추우니까 따뜻한 침내에서 나오면 괴롭다니까? 며칠만 더 쉬구 충분히 체력을 회복한 담에 퇴원하자, 응? 누나가 이렇게 부탁할게.~.”
“아 정말!”
계속 환자 취급하는 누나한테 왈칵 달려들자 누나는 앗?!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두 손으로 날 막으려 들고 프랑도 눈이 동그래져서 상체를 살짝 일으키는 게 보였다.
내 어깨나 팔을 잡으려고 뻗는 누나의 손을 분석해서 쉽게 밀어서 치우고 잽싸게 허리를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꺅?!”
“봐! 이 힘이 아픈 사람의 힘처럼 보여?!”
“무, 뭐하는거야아아! 내려줘!”
“말해보라구! 이게 아픈 사람처럼 보이냔말야!”
내가 누나의 허리를 잡고 위아래로 살짝살짝 흔들자 누나는 기겁하면서 두 다리를 바동거리고 내 손을 자기 허리에서 떼기 위해 용을 썼다. 위상력을 한창 돌리는 중인데 그 정도에 꼼짝하면 생환도 못 했지!
누나는 아무리 용을 쓰고 발을 버둥거려도 내가 꿈쩍도 않고 그렇다고 발을 세게 흔들었다간 내 가슴을 걷어찰까 봐 그러지도 못하자 울상을 짓더니 이내 항복해버렸다.
“그, 으으으으!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내려줘!”
후, 진작 이럴 걸 그랬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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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일부 수정.
---------------------->수정전
“…그러니까 A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구요?”
오소은 소장은 품 안에서 분홍색 작고 귀여운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쳐내면서 말했다.
윽. 미녀가 저렇게 힘든 표정을 짓는 게 나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콕콕 찔리는 기분이다.
“맞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단련한다면 언젠가 A 클래스가 될 수 있을거에요.”
그제서야 두 사람이 놀라고 멋대로 들어왔다 나가버린 할아버지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내가, A클래스가 될 수 있다고?
---------------------->수정 후
“…그러니까 A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구요?”
“맞아요. B+, C+, D+는 말 그대로 B 클래스, C 클래스 D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성을 뜻하고 +가 붙을 경우 해당 클래스를 뛰어 넘을 확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거죠.”
오소은 소장은 품 안에서 분홍색 작고 귀여운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윽. 미녀가 저렇게 힘든 표정을 짓는 게 나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콕콕 찔리는 기분이다.
“맞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단련한다면 언젠가 A 클래스가 될 수 있을거에요. 어쩌면 S 클래스가 될 지도.....”
그제서야 두 사람이 놀라고 멋대로 들어왔다 나가버린 할아버지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내가, A클래스가 될 수 있다고? 어쩌면 S클래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