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2 집으로. =========================================================================
달칵.
“어서 오세요.”
그녀가 말했던 방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거대한 크기의 CT 촬영기 같은 게 보인다. 이게 위상력 감별기인가?
한쪽 벽에는 거대한 서버 같은 기계들이 한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감별기에서 연결된 선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감별기 한쪽에는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는데 명찰에는 보조원이라고만 써져있었다.
창문이 없는 걸 보면 위상력 측정이나 감별 때 외부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는 건가?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서 측정기가 처음 나왔을 때 위상력 측정을 거부하면서 보이콧 운동이 일어날 뻔 했다던데, 전파 흡수 물질로 만든 공간에서 측정한다고 했으니까 이곳도 그걸 염두에 두고 만든 곳인가보다.
“그럼 부적은 벗어서 옆에 올려두시고 위상력 감별기 베드 위에 누워주세요.”
오소은 소장은 위상력 감별기 옆에 붙어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는데 거기서 감별기를 조작하나 보다. 근데 개발된 지 70년이 넘어가는 기기가 이렇게 크다니. 당시에는 얼마나 컸던 거야?
“우와 이게 위상력 감별기군요. 되게 크네요.”
내 말에 오소은 소장은 별 반응 없이 컴퓨터만 조작하고 있어서 좀 뻘쭘했다. 프랑이라면 웃어주던가 웃어주던가 또 웃어주면서 반응을 보여줬을 텐데….
시키는 대로 목걸이를 벗었더니 옆에 있던 남자 보조원이 받으려 했다!!
감히 누굴 만지려고?!
잽싸게 손을 물리면서 보조원 남자를 살짝 노려봤는데 보조원은 그 모습에 조금 당황하더니 머리를 한번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
그의 입장에서는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프랑의 영혼석을 다른 사람이, 그것도 남자가 만진다고 생각하니 급 분노가 차오르는 느낌이다! 절대 몸에서 벗어두지 말아야지. 가능하면 새로 넣어둘 케이스나 그런 것도 알아봐야겠다.
베드 옆에 있는 판 위에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올려두고 누워있었는데 보조원이 오소은 소장의 맞은편에서 기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스으으응. 위이이이이잉.
곧이어 베드가 움직이면서 동그란 원 안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이거, 구조도 CT 촬영이랑 똑같잖아?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세 번을 CT 촬…아니 위상력 감별기에 전신을 스캔했다. 무지 큰 주제에 소리는 거의 안 난다. 그저 베드가 움직이며 중앙의 원통으로 이동할 때 약간의 모터음만 들리고.
김은하라는 여자가 말했던 능력의 타입은 아마도 체내의 위상력이 회전하는 모양을 말하나 싶어서 스캔하기 전에 전신 골고루 위상력을 돌리던 걸 멈추고 처음처럼 머리와 팔 두 개 다리 두 개에 뫼비우스의 띠를 다시 만들고 심장이랑 연결해뒀다.
그런데 뭔가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갔는데 위상력이 에너지에 반응해서 활발히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분석 능력을 돌려봤는데 감별기나 서버는 뭐 보더라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지만 내 몸을 투과하는 이상한 에너지는 감지할 수 있었는데 일종의 위상력 변형으로 보였다. 정확한 건 모르겠군.
거대한 기기의 한쪽에는 위상력이 응집된 돌 같은 게 보이는데, 저게 연료인가 보군.
그나저나 쬐이면 위상력이 활발히 반응하다니. 딱히 에너지 때문에 내 위상력이 이상해지는 점은 없는데 감별기로 확인하려고 일부러 자극하는 건가? 무슨 원리지?
뭐지 하면서 그 반응을 지켜보는데 3번째 스캔이 끝날 무렵 오소은 소장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치이잉.
이상한 쇳소리가 나면서 베드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감탄하는듯한 오소은 소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단하시네요. 정서하 씨. 감지 타입이신데 위상력의 상태가 상급의 최상급 수준이에요. 조금만 더 모인다면 최상급으로 올라가시겠어요.”
그 말에 내 옆에 서 있던 보조원도 놀랍다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상급? 최상급? 강우혁의 체내 위상력의 형태를 보면 회오리치는 모양이 선명하고 컸었고 최수한은 그보다 작고 희미했었지. 아마도 능력에도 단계가 있나 보다.
그리고 문이 벌컥 열리면서 남자 한 명이 들어왔는데, 마치 연구에 찌든 70대 할아버지 같다. 구겨진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면바지. 흰머리가 덥수룩한 머리와 듬성듬성 나 있는 까칠까칠한 짧은 수염. 구부정한 허리와 목. 제대로 씻지도 않는지 셔츠의 칼라는 누렇게 찌든 때가 묻어있었다.
“뭐야. 감지 타입이 A+라고?”
A+는 또 뭐야?
난 감별기의 작동이 멈추자 재빨리 주머니 목걸이를 목에 걸고 들어온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의사 가운도 안 입고 이름표도 없어서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네. 털털거리듯이 말하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자 그 남자도 날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나와 그 남자가 눈싸움하는 모습을 오소은 소장은 한숨을 쉬면서 말렸다.
“우 박사님,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씀 드려야 하나요?”
“아아, 오 소장. 말이 안 되서 구경왔네. 고작 고딩주제에 감지 타입이면서 진화한 노 헤드 맨티스를 잡고, 그 앞발을 칼로 만들어서 들고 다녀? 신체 강화 타입도 아니면서 말이되냐 그게? 그 정도는 청궁의 보스놈도 못했어!”
청궁? 청궁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레이드 팀 이름인데?
“말이 안될 건 뭡니까.”
근데 고작 고딩이라니? 틱틱쏘며 감정 상하게 말을 꺼내는 할아버지가 왠지 기분 나빠져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깔고 말을 꺼내버렸다.
그러자 내 곁에 있던 보조원은 몸을 떨면서 뒤로 물러나고 오소은 소장과 우 박사라고 불린 남자도 안색이 변하는 게 보였는데, 왜 저러지?
“허, 저거 봐라. 위협 기술도 혼자 익힌거야? 크하하하하하!!”
…어? 위협 기술이라니, 기분이 나빠져서 나도 모르게 위상력을 돌렸나본데, 목소리에 위상력이라도 담긴건가? 그래서 내 목소리에 겁을 먹은거고?
난 갑자기 크게 웃는 우 박사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오소은 소장과 보조원 남자를 살펴봤다.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벌벌 떠는 모습이 꼭….
“…위협 기술이요?”
거인 프랑의 포효에 뿔 강아지가 피 거품을 질질 흘리며 뒹구는 모습이 떠오른다.
“뭐야. 모르고 있었냐? 네 녀석 목소리에 위상력이 섞여서 저 애들이 겁에 질린 거다. 암튼 엄한 애들 괴롭히지 말고 얼른 따라와.”
할아버지는 금새 안색을 원래대로 돌리더니 클클 거리면서 감별실을 나가버렸다. 근데 아직도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는 오소은 소장과 보조원을 보면, 정신력이 강한가보다.
심하게 놀랬는지 말도 못 꺼내고 가슴을 쓰다듬는 있는 오소은 소장을 보니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괴롭혔다니, 나도 모르게 그런 건데….
“죄송해요. 위상 세계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는 보조원과 오소은 소장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니 그들은 곧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누가 기분나쁘게 말한다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공격하다니, 아무리 두통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있다지만 진짜 조심해야겠다.
“조금 놀랬지만 신경쓰실 것 없어요. 하지만 주의하시는게 좋겠군요. 바깥에서도 이런식으로 위협 기술을 사용하게 되면 범죄가 되니까요. 이제 감별 검사는 끝났으니 감별실의 맞은 편에 있는 측정실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진짜 조심해야겠다! 나도 모르게 위상력을 썼다가 알카트라즈 가는 수가 있겠어!
“저, 근데 A+라는건 뭐에요?”
“위상력의 총량으로 클래스를 나누는건 알고 있으신가요.”
“네. 대강은….”
“클래스 분류와는 다르게 성장의 가능성을 두고 등급을 나누는데 상급인 A 그리고 최상급이라 +가 붙어서 A+인거에요.”
“…그러니까 A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구요?”
“맞아요. B+, C+, D+는 말 그대로 B 클래스, C 클래스 D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성을 뜻하고 +가 붙을 경우 해당 클래스를 뛰어 넘을 확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거죠.”
오소은 소장은 품 안에서 분홍색 작고 귀여운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윽. 미녀가 저렇게 힘든 표정을 짓는 게 나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콕콕 찔리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단련한다면 언젠가 A 클래스가 될 수 있을거에요. 어쩌면 S 클래스가 될 지도.....”
그제서야 두 사람이 놀라고 멋대로 들어왔다 나가버린 할아버지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내가, A클래스가 될 수 있다고? 어쩌면 S클래스도?
흐흐흐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갈 거 같아!
그래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겁에 질린 두 사람 앞에…. 아니, 오소은 소장은 이제 좀 괜찮아진거 같다. 보조원은 아직 질려있지만.
아무튼 미안하다는 뜻으로 오소은 소장과 보조원에게 머리를 숙이고 문을 나왔더니 할아버지가 맞은편의 측정실 문 앞에 있는 게 보였다.
“얼른 안 오고 뭐해!”
저 할아버지도 성격 되게 급하네.
감별 실에서 프랑의 영혼석을 들키지 않고 나오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저 할아버지를 보니까 또 다른 의미의 한숨이 나온다.
딸칵.
아무튼 할아버지가 나에게 소리치고 바로 들어가버린 방에 따라 들어갔더니 위상력 감별기가 있는 방과 똑같은 크기에 한쪽 벽에 서버 같아 보이는 기기가 가득 들어차 있는 것도 똑같았다.
하지만 위상력 감별기 방은 감별기와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서버를 제외하면 다른 기기나 소품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여기는 다른 세 면이 책으로 가득 차있는 거랑 방 중앙에 커다란 카펫이 깔려있었고 그 위에 거대한 직사각형의 원목 탁자가 올라가 있었다.
원목 탁자에는 모니터 한 대와 이것저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가 가득 올라와 있었고 거기서 나온 선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대의 서버와 연결되어있었다. 그중에 양손으로 쥘 수 있는 손잡이가 연결 된 기계가 있는데 혹시 저게 측정기가 아닐까?
원목 탁자 중앙에는 고풍스러운 의자에 할아버지가 앉아있었고 그 뒤에는 명찰에 민나영 연구원이라고 적혀있는 단발머리의 여성과 김은하 연구원이 함께 서 있었다.
“자자.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앞에 앉아봐.”
쩝. 뭔가 첫인상이 나빴지만, 완전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그냥 늙어서 성격이 급하고 어린애 같아진 거 뿐인가?
할아버지는 기대 된다는 표정을 숨기지못하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그의 맞은편에 앉으니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바로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자. 네 능력이 어떤 것인지 말해봐. 감지 능력이라고? 복합이냐? 아니면 단독 강화형? 분석? 투시? 노 헤드 맨티스는 어찌 잡은게야? 어느 지역에서 생존한거냐? 거대 이형종을 만났다고?”
“…….”
이게 말이야 방귀야? 이런건 왜 물어보는거지?
게다가 능력이 뭔지 말하라니. 감지라는걸 알고 있으니 위상력을 측정하면 검사는 끝나는 거 아냐? 그런데 측정도 안 하고 내 능력에 대해서 밝히라고?
…아까부터 말을 막 하는데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라도 이런 건 싫다.
난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잠시 봤다가 그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여자 연구원을 보았는데 평범하게 단발 머리에 커리어 우먼같은 분위기인 민나영이라는 여자도 스캔해볼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가슴도 작아 보이고 골반도 없어 보이고, 뭣보다 머리도 지끈거리고 피곤해.
분석 기본 능력이 40%까지 내려간 걸 알 수 있었는데 그냥 빨리 엄마랑 아빠랑 누나를 만나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난 일부러 할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며 주변에 가득한 책과 기계들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할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며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능력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박사인지 서적이 죄다 그쪽 방면으로만 가득 차있네. 그러고보니 아까 박사라고 불렸었지?
“뭐하는….”
“책이 진짜 많네요.”
“뭐?”
“저희 아빠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학식과 인품이 깊어져서 신중하고 진중한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 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런 거 같지 않아서요.”
“그게 뭔소리야?”
“아빠가 거짓말할 리는 없는데.”
그제서야 내가 화가 났다는 걸 눈치챘는지 끙 하는 똥 마려운 소리를 내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화난 게냐? 그러니까 그게, 놀래서 그랬던 게야. 보통 평범한 녀석도 아니고 감지 능력을 얻은 주제… 얻었으면서 하위 이형종을 잡고 앞발을 뽑아 무기로 만들어? 하위 이형종을 잡으려면 위상력도 G클래스라야 하는데, 첫 시험에 각성하면서 위상력이 최상급에 감지 타입이라고? 내가 이쪽에서 일한 지 수십 년째지만 너 같은 녀석은 첨본다!”
덜컹 쿠당탕.
주제라고 하려 했겠다?! 근데 내가 G 클래스급이라니, 보지도 않고 알 수 있나?
할아버지는 말하다가도 기가 차는지 벌떡 일어서며 날보고 외쳤는데 그 바람에 의자가 뒤로 튕겨 넘어져 버렸다. 민나영 연구원은 한숨을 쉬며 의자를 바로 세워 할아버지를 다시 앉혔는데 할아버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날 보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어떤 감지 능력이길래 하위 이형종을 잡은게야?”
결국 그게 궁금한거였구만.
나는 내 능력 전부를 말할 생각도 없고 내가 위상 세계에서 본 것들 모두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측정기를 담당하는 박사라니 전부 다 감추진 못하겠지. 어느 정도 진실도 섞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거 같다.
“그냥 감지 능력이에요. 거리는 한번 성장하면서 450m까지 위상력을 지닌 존재를 감지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한번 성장했다는데 눈을 크게 떴다가 450m라는 말에 또다시 커졌는데 마지막에 위상력을 지닌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는 말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3단 변신이냐? 근데 뒤에 서 있던 두 여자도 눈을 흡 뜬 게 되게 놀란 거 같다?
… 내 능력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간 놀라 자빠졌겠네.
“ㄱ, 그…. 4, 450m 라, 라고? 위상력도 감지할 수 있고?”
…정정하겠다. 사실대로 말했었다간 지부가 발칵 뒤집혔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늙은 사람은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해봤기에 무진장 놀라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거든. 그런데 저리 놀라는 모습을 보니 역시 능력을 좀 숨기길 잘한 거 같다.
내 다른 능력은 다 빼고 달랑 망원 능력의 최소한의 기능만으로도 R 클래스 감지 타입 중에서 최고인가 보다. 기감이나 분석의 범위도 처음에 10m니까…. 아!!
이런! 거리를 좀 줄일껄! 아 멍청한 내 머리 같으니! 능력 종류를 축소하는 데만 신경 쓰고 정작 거리 같은 건 전혀 생각 못 했다!
“…….”
할아버지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게 450m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범위인가보다. 근데 조금 긴 감지에 이형종을 감지할 수 있는 게 저렇게 심각해질 정도로 대단한 건가?
아! 위상력을 지닌 존재라고 했구나! 으악 지뢰를 두 개나 밟았다! 이형종만 아니라 능력자도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 되잖아!
생존학이나 생물학에도 위상력을 감지 할 수 있다는 능력은 없었는데, 말 실수 한 거 같다!
끄아앙!! 1분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어!
어휴…. 몇 가지 단점을 알려줘야 하나? 어쩐지 관심받기는 싫은데. 그래도 내 입으로 단점을 말해주면 의심할 거 같으니 그냥 가만히 있을까?
아니다. 어느 정돈지 비교 물음 정도는 해봐야겠다. 궁금하기도 하고 은근슬쩍 내 능력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 주기를 유도하면서 단점도 스리슬쩍 흘리는 방향으로 해봐야겠어.
“450m가 긴 건가요?”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힐끔 바라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한다.
“존나 긴 거지. 지금 등록된 B 클래스 최고의 분석 능력자의 최대 시야 거리가 1.2km니까.”
켁. B 클래스면 되게 높은거 아닌가? 근데 그거밖에 안돼?
“갓 생환한 능력자라고 해서 계속 성장하리란 법은 없지만, 네놈 같은 경우에는 이미 한번 성장했다고 했지? 첫 번째 위상 세계에서 바로 능력이 성장하다니… 보통 첫 번째 위상 세계에서 능력이 성장한 놈들은 대부분 꾸준히 성장하는 법인데. 대체 얼마나 성장한다는 건지. 처음 감지 범위는 몇이었느냐.”
웬지 힘이 빠진 목소리다. 하지만 궁금한 건 있는지 또 물어본다. 슬슬 단점을 밝힐 시기가 올거 같다.
“300m요….”
그러자 세 명이 각자 경악하고 한숨 쉬고 멍청하게 바라본다. …또야?
“허…. 허허. 성장률이 50%? 5번 성장하면 300, 450, 675, 1012.5, 1518.75, 2278.125라고? 2km가 네놈 감지 범위에 들어간다? 게다가 그 범위 안의 존재들도 파악될 거고 거기에 이형종도 감지하고 능력자도 감지하고?”
…어떻게 저렇게 단언하는거지? 근데 저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내 탐지능력이 장난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꾸준히 능력이 성장하면 내 탐색 범위가 수키로미터 안에 있는 존재를 다 감지하게 되는 거 아냐? 놀래서 더이상 물어볼 생각이 안드는거 같은데 그전에 한가지 정정해주자.
“그, 저도 분석 능력처럼 시야 안에 있는 것만 볼수있는데요.”
“응? 시야 분석과 같은 타입이라고? 흐음. 그런 거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군. 그럼 그렇지! 기감 타입의 범위가 450m일리가 없지! 기감 타입의 성능에 범위는 시야 분석 타입이고 위상력도 감지 된다라, 복합 능력이구먼. 그래도 뛰어나군. 뭐 다른 점은 없느냐?”
이 노인네가 계속 물어보네. 안 그래도 이걸 계속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고 있구만.
내 표정을 읽었는지(사실 읽으라고 좀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긴 했다.) 할아버지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놈이 감지 능력을 얻었다는 사실은 이미 한국 지부에 보고가 다 올라갔다, 이놈아. 귀중한 R 클래스 능력자에 또 귀중한 탐색형 능력자인데 허투루 놀릴 리가 있겠느냐.”
탐색이라는 말이 튀어나와서 순간 움찔할뻔했지만, 초인적인 반응으로 티를 안낼 수 있었다! 그래도 뒤에 민나영이라는 여자는 갸웃 하는 게, 들킬 뻔 한 거 같지만!
“네 능력을 정확히 알아둬야 널 보호할 사람을 파견하거나 뛰어난 레이드 팀이나 그룹에 네놈을 등록시킬 것 아니냐. 그러니 얼른 장점 단점 다 불어! 어서!”
아 진짜. 무슨 말이야. 날 레이드 팀이나 그룹에 등록시킨다니? 왜? 경호원을 파견할 만큼 R 클래스 능력자가 그렇게 귀중한 거야?
나와 할아버지가 입씨름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김은하가 한숨을 쉬며 나한테 말을 했다.
“서하 군은 자신의 능력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몰라서 그런 반응을 보여줄 수 있는 거야. 세상에는 레이드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불리는 3요소가 있는데. 뭔지 아니?”
“탱커 힐러 딜러?”
“그건 게임이고. 뭐 크게 다르진 않지만 탱커와 힐러는 맞아. 전위에 설 신체 강화자와 상처를 회복시켜줄 힐러는 필수지.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감지 능력자야. 서하 군 같은.”
나 같은?
“약점을 파악해줄 분석 능력자, 이형종을 찾아줄 감지 능력자.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감지 능력자가 윗줄이지. 사냥이 완료된 이형종은 약점 같은 건 다 파악되니까. 그러니 괴물의 위치를 파악해주고 범위 안의 모습도 알 수 있는 데다 범위도 450m? 더 성장 소지가 다분한 능력자? 세계에서도 통용될 능력인걸? 국내 최상위 레이드 팀들이 이 사실을 알면 러브콜을 무진장 보낼 정도야, 어려서 참가가 불가능한 게 아쉬워서 땅을 칠 만큼 말이야.”
어…. 그런가? 망원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네놈의 그 표정을 보니 대충 알겠다. 네놈은 평야 관련 지역에서 시험을 치룬게지?”
으잉? 어떻게 알았지? 내 표정이 또 읽혔는지 이번에는 민나영이 팔짱을 끼더니 입을 열었다. 팔짱을 끼더라도 프랑 같은 위엄은 없구나.
“대부분 지역은 사람의 시야가 막히는 곳이 많아요. 특히 도심지나 던전, 동굴 같은 위상 세계는 감지 능력자 없이 들어가는 건 자살하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일 정도죠. 고위급 위상 세계는 도시형이나 던전, 동굴형들이 많아서 감지 능력자의 숫자가 곧 레이드 팀의 저력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예요.”
“네놈을 보니 대충 상황과 능력은 짐작이 간다만 알려주는 걸 싫어하는걸 보니 대충 말해보마. 감지 거리는 450m, 벽도 투과되고 대충 시야 안의 모습과 지형을 감지할 수 있겠지? 이형종과 능력자도 감지가 되고. 다만 소비 위상력이 좀 클 거 같은데. 어떠냐.”
…우어어. 별 말도 안했는데 내 망원 능력의 기본적인 사항은 다 맞췄다. 게다가 탐색 능력에 비해 위상력 소비도 큰거까지 맞췄어!
“켈켈. 정답인가 보구먼.”
내 표정 숨기는 게 형편없는건지 저 할아버지 통찰력이 뛰어난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내 능력을 감췄었다간 대번에 들통 났겠는데. 그래도 탐지 능력에 관해서는 몰라서 다행이다.
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심통 난 것처럼 퉁명스레 말했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뭘 물어봐요? 그리구 땅속이나 물속은 투과율이 80%까지 떨어져요.”
“그러냐? 그 정도 페널티쯤은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런 거마저도 없다면 어디서 괴물새끼가 튀어나왔나 했겠지.”
괴물새끼?!
그쯤 되서야 할아버지, 우 박사는 종이로 된 보고서에 열심히 뭔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길래 뭔가 싶어서 살펴볼랬더니 두 명의 연구원이 내게 다가와 양손에 꼭 줄넘기 손잡이 같은 걸 선이 아래로 내려가도록 쥐여줬다.
가까이 붙으니 여자의 살냄새가 풍기는게, 눈으로 보는거랑은 다르게 가슴이 콩닥거린다! 웬지 여자 살냄새는 달콤한거같아.
엄지 손잡이 끝에 달린 동그란 구슬에 올리게 하고 김은하는 500원 동전 크기만 한 동그란 씰을 여러 개 가져와 내 가슴팍에 손을 넣어 여기저기 붙이고 그 끝에 붙어있는 선을 가정용 컴퓨터 본체처럼 생긴 기계에 연결했다.
근데 김은하는 씰을 붙이면서 요사스런 손길로 내 가슴팍을 더듬더니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어머, 생긴 건 완전 해골인데 가슴이 탄탄한걸?”
찰싹!
“아야!”
…처녀 주제에 변태 같은 소릴 하네. 민나영은 그런 김은하를 보며 한숨을 쉬고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지는데 이제 측정하는 건가?
씰을 붙이고 나서 내 가슴을 더듬다가 은근슬쩍 영혼석 주머니를 만지려고 하길래 손을 탁 쳐냈는데 김은하는 그거 때문에 심통이 난 거 같다.
나도 함부로 프랑의 영혼 석을 만지려 해서 조금 화가 나고…. 생각 같았으면 처녀 변태라고 한마디 해줬겠지만 그냥 말아야지.
아니다. 그냥 넘기는건 싫으니까 슬쩍 말을 돌려서 심술 좀 부려야겠다.
“누나 처녀죠?”
“?” “?!” “!!”
“손놀림이 되게 어색하던데.”
“““!!!!”””
세사람은 측정을 준비하다가 멍한 표정이 돼버렸는데 특히 김은하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 찍었는데 진짜였나 봐요? 킥킥”
처녀막을 봤는데 찍었을리가! 다시보니 조금 연한 분홍색에 전복같이 생긴 음부의 질 구멍에 얇은 피막이 살짝 덮인게 귀여워보이긴 한다.
“읏~!”
“관둬. 네가 먼저 시작한 거야.”
얼굴이 빨개지면서 막 발작하려는 듯이 한마디 하려던 김은하는 민나영의 제지에 뭐라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민나영은 다시 하던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게 요즘 애들은 이형종 무서운 줄 모른다는데 건드리긴 왜 건드려.
난 흥, 해주고는 내 손에 쥐여있는 측정도구를 살펴보았다.
“크헤헤헤헤헼헼! 한 방 먹었구먼 그래! 케헼헼헼!”
저 방정맞은 웃음소리하고는, 정말 체통 못 지키는 할아버지구만! 얇은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로 뭔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는지 한참 두드리면서 침을 튀기며 킬킬거리고 웃는데 보는 내가 한숨이 나올 정도다.
…근데 김은하는 눈물을 글썽거릴 만큼 분했나 보다. 내게서 뒤돌아서서 이것저것 준비하던 김은하는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혀있었는데 씩씩거리는 걸 보니 화가 나서 그러는 거 같다.
여자한테 한을 사면 밤길이 위험해진다고 하던데.
“킬킬. 아무튼, 위상력 운용도 할 줄 알고 뛰어난 감지 능력까지 갖추고. 간만에 한국에서 쓸만한 신인이 나타났구먼.”
아깐 살면서 처음 보는 것처럼 놀랄 땐 언제고, 이제는 쓸만하다고 말을 바꾸네. 그래도 악의 같은 건 느껴지지 않으니 나도 별다른 소린 안 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우 박사에게 말을 걸었다.
“위상력 운용이요?”
위상력 운용이라면 연합에서 G 클래스 이상의 능력자들한테 가르쳐준다는 그거?
“…뭐냐. 아까 감별 실에서 피어를 터트렸던 건 우연이었냐?”
빨리 알아들어서 좋네요. 그러니까 얼른 설명해봐 봐요!
“나참, 종잡을 수 없는 꼬맹일세. 위상력 운용도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진화한 노 헤드 맨티스를 잡은게야?”
“진화 노 헤드 맨티스를 잡았다구요?”
김은하는 화도 잊을 만큼 놀랬는지 크게 뜬 눈으로 날 봤다가 우 박사를 돌아봤다. 민나영도 굉장히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아니, 눈치가 좋은 거 아니었어? 위상력 운용에 대해서는 왜 설명을 안 해주지!?
어쨌든 저 오해는 정정 안 해주면 나중에 귀찮아질 거 같으니 말해줘야겠다.
“그냥 이형종 들이랑 떼거리로 붙어서 싸우길래 어부지리 취한 거뿐이에요. 가까이도 못 가고 멀리서 투창기로 투창을 날렸던 거 뿐이고.”
“잡긴 잡았다는 거 아니냐. 겁쟁이들이나 자질 없는 것들은 그런 기회도 못 잡고 뒈져나갈 뿐이야.”
우 박사는 굉장히 신랄한 말을 내뱉으면서 얼굴이 보이지 않게 모니터로 나에게서 얼굴을 가렸는데, 숨어봤자 다 보이거든요?
하지만 우 박사의 찡그린 표정에서 슬픔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뭔가 사연이 있나? 성격이 괴팍하기만 하면 김은하나 민나영이 저렇게 우 박사를 보며 안쓰럽다거나 걱정하는 표정을 보여주진 않을 테니, 역시 좋은 사람인가 보다.
그런 우 박사를, 우 박사님의 말에 잠시 주변이 침묵에 잠겼는데 그런 침묵이 견디기 힘든지 김은하는 관심을 나에게 돌렸다.
“그래서, 그 부적 주머니에 뭐가 들었길래 여자의 손을 사정 안 보고 있는 힘껏 쳐내는 거야?”
에이. 그냥 넘어가지 뭘 또 물어보냐. 말 없어서 얌전히 측정만 하고 나갈랬더니.
“그냥 죽을뻔했을 때 절 살려준 돌이에요. 그래서 갖고 있으면 안심돼서 들고 있는 거 뿐인데 누가 만지면 효과가 떨어질 거 같아서 그래요.”
“헬헬, 수호물이나 토템처럼 여기나 보구먼. 네놈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는 물건을 오래 몸에 지니고 다니다 보면 네 능력이 스며들어 정말 아티팩트가 될지도 모르니 소중히 간직하거라.”
내 능력이 스며들어? 그럼 프랑이 탐색 능력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야? 오오. 좋을지도!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가슴의 주머니를 잡고 있으니 김은하는 그런 거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표정이 됐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찡그리는 게 내가 한 성희롱 발언이 잊히지 않나 보네.
하는 수 없지. 괜히 앙금을 쌓아 둘 필요는 없으니 내가 먼저 사과해야겠다.
그나저나 아티펙트라니?
“아티펙트는 뭐에요?”
대답은 민나영이 해줬는데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오래 품에 지니고 있으면 자신의 위상력이 스며들어 아이템화 한다는걸 말해줬다.
“일본에서는 오래 사용한 도구에 혼이 깃든다고 하죠.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그런가? 내 위상력이 스며드는건가. 나중에 한번 알아봐야겠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집안에 일이 있어 자정이 넘어서야 한 편을 더 올릴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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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립니다.
2월 4일 00:15 문단 수정 -> 내용 보충
“…그러니까 A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구요?”
오소은 소장은 품 안에서 분홍색 작고 귀여운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쳐내면서 말했다.
윽. 미녀가 저렇게 힘든 표정을 짓는 게 나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콕콕 찔리는 기분이다.
“맞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단련한다면 언젠가 A 클래스가 될 수 있을거에요.”
그제서야 두 사람이 놀라고 멋대로 들어왔다 나가버린 할아버지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내가, A클래스가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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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A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구요?”
“맞아요. B+, C+, D+는 말 그대로 B 클래스, C 클래스 D 클래스까지 성장 가능성을 뜻하고 +가 붙을 경우 해당 클래스를 뛰어 넘을 확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거죠.”
오소은 소장은 품 안에서 분홍색 작고 귀여운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윽. 미녀가 저렇게 힘든 표정을 짓는 게 나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콕콕 찔리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단련한다면 언젠가 A 클래스가 될 수 있을거에요. 어쩌면 S 클래스가 될 지도.....”
그제서야 두 사람이 놀라고 멋대로 들어왔다 나가버린 할아버지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내가, A클래스가 될 수 있다고? 어쩌면 S클래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