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0화 (40/517)

00040  집으로.  =========================================================================

끼이이이이이이이잉!!

웅성웅성웅성

크오. 귀를 찢는듯한 이명 소리가 그치자 많은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온다.

아직 빛 때문에 눈이 아파서 뜨지는 못하지만, 탐색 능력을 돌려보니 위상력이라곤 전혀 없는 서른 명의 사람과 많은 위상력이 쌓여있는 두 명과 함께 익숙한 교실이 감지로 보인다.

돌아왔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19명이 여자라는 걸 눈치챘고 그와 동시에 막 투시를 하려는데…!

“괜찮은가? 정서하군”

내 바로 앞에 서 있는 위상력이 무진장 많은 중년 남자가가 입을 열었다!

여자애들 투시할랬는데 나도 모르게 말 건 사람한테 신경이 쏠리면서 남자를 스캔 해버렸어!

으아앙 내눈!

근데 스캔 하는 순간 위상력이 5만이 넘어갈 것 같은 양에 위축되는 기분이다. 뭣보다 몸 안에 위상력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보여서 조금 압도되는 것도 같고.

다른 쪽을 대충 감지해보니 7천 정도 되는 거 같다. 그 사람도 괜히 몸속을 투시하면 속이 뒤집힐까 봐 옷 위로 대충 겉만 훑어봤다.

그런데 5만이라니. 무진장 높잖아!

아마도 생존자들을 마중 나오는 능력자 연합 소속의 능력자인듯하다. 2인 1조라는 말을 들었는데 위상력이 낮은 쪽은 신입인가? 신입도 몸속의 위상력이 어느 정도 소용돌이치는데 5만짜리보단 덜한 걸 보니 같은 계열 능력자인가보다.

“선배. 뭔가 정신적인 문제가….”

…내가 대답을 안 하고 가만히 주변만 파악하고 있자 위상력이 적은 쪽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싸가지없는 말을 내뱉었다. 정신에 문제라니! 목소리도 촐랑거리는 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중성적인 목소리 주제에!

“입 다물게. 정서하군 들리나? 들린다면 뭐라도 좋으니 반응을 해보게”

둘 다 정장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 중 사자 갈기 같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뒤로 모아 한데 묶고 노란색으로 염색한 데다 귀에 피어싱을 단 싸가지없게 잘생겨 보이는 놈이 내 정신 상태가 의심간다고 한 쪽이었다.

트리머로 수염을 정리하고 있는듯한 스포츠로 머리를 짧고 단정하게 깎은 중년의 남자가 제지하고는 정중한 말투로 계속 날 불렀다. 이 사람이 상급자인가보다.

이 반응을 보면 내 탐색 능력이 적어도 두 명에게는 들키지 않은것 같다.

눈을 떠서 프랑을 보진 못했지만 내 가슴에 있는 영혼석의 존재와 중앙의 기운을 봐서는 제대로 함께 돌아온거 같다.

무엇보다 주변 남자 새끼들의 반응이 신기한걸 보는 눈빛으로 나만 보는 걸 보면 프랑의 모습이 저 발정 난 수컷 놈들한테도 보이지 않는 거 같다. 프랑의 마치 조각 같은 아름다운 나체를 보면 저것들이 저리 얌전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

“…네, 괜찮아요.”

아무튼, 프랑이 주변 인간들에게 안 보인다는 것도, 능력자 둘에게도 안 보인다는 것도 신체 반응을 보니 확실한 듯하다.

그나저나 사람도 많고 감지해야 할 오브젝트도 많다 보니 정신이 막 분산 되는 기분이다.

어림잡아 4층 높이의 학교 건물이 내 감지 범위에 전부 들어오니까. 대충 1,000명이 넘어가는데 감지할 수 있는 오브젝트는 십수만 가지가 넘어가는 거 같다. 그러니 평범한 감지로는 고작해야 내 반과 좌우 위아래 한 반씩 총 5반 정도밖에 안 될 거 같군.

살짝 두통이 느껴져서 약간 얼굴을 찌푸렸더니 중년 남자는 즉각적으로 말을 꺼낸다.

“다행이군, 혹시 몸이 안 좋다면 바로 연합병원으로 이동할 텐데, 몸은 괜찮나?”

내가 눈을 못 뜨고 인상을 써서 물어보는 건가?

“흥분 때문에 가슴이 좀 뛰지만 그 외에는 멀쩡한데요.”

내 말에 다시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아, 내 꼴이 좀…. 보기 그렇긴 하지.

“눈을 못 뜨는 거 같은데, 정말 괜찮냐?”

옆에 서 있던 노랑머리 양아치가 뜻밖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보인다. 나쁜 놈은 아닌가?

“조금 눈이 부셔서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들려는데 주변에서 히익, 헉! 꺄아 하는 비명이 나면서 황급한 중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서하군. 지금 손에 무기를 들고 있네만.”

“아. 오기 직전에 이형종 하나랑 싸우느라, 죄송해요.”

내 대답에 주변에서 “싸웠대!” “쟤가? 말도 안 돼!” “이형종이라는 거 별거 아닌 거 아냐?” 라는 말들이 들리는데 어떤 새끼냐, 별거 아니라고 한 놈이!!

그러면서 다시 손을 내렸는데 옆에 서 있던 노랑머리가 조심스럽게 말해준다.

“일단 눈도 잘 안 떠 지고 위험할거 같으니 우리한테 무기를 잠시 맡겨. 바로 돌려줄 테니까.”

혹시나 내가 경계할까 봐 조심조심 이야기하길래 나는 발톱 검을 아래로 향하면서 앞으로 내밀었더니 노랑머리가 조심스럽게 받아갔다. 뒤이어 뿔 송곳도 건네줬다.

주변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데, 내가 미쳐서 날뛸 줄이라도 안 건가? 이형종이 별거 아니라고 한 놈한테는 내가 친히 날뛰어줄 의향이 있다만.

두 손바닥을 옷에 쓱쓱 닦고 살짝 눈을 문지르면서 능력자 두 명의 외모를 살짝 살펴봤다.

노랑머리는…. 제길 더럽게 잘생겼잖아! 중년 남도 나이스 미들이라고 할 만큼 세월의 풍파가 얼굴에 새겨져 있는데 그 모습이 야성미가 넘친다! 게다가 육체도 꽉 이라는 소리가 들릴 만큼 잘 짜여있었는데 틀림없이 신체 강화 자다!

그나저나 천 수백 명이 움직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탐색 능력의 감지 오브젝트를 좀 줄여야겠다. 의식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머리가 터지겠어.

겨우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두 능력자 뒤에 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프랑의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잘 따라왔구나.

딴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그녀와 잠시 눈을 맞춘 나는 교실을 둘러봤다. 약간 익숙한 동급생들의 얼굴과 함께 이계 생물학 선생….

저 돼지 새끼!!

순간 긴 주둥이 마른 늑대한테 쫓기던게 생각나서 울컥해버렸지만 금방 속으로 삼켰다.

내 주변을 돌아보니 노란색에 검색이 사선으로 빗겨져 있고 빨간 동그라미 앞에 빨간 글씨로 접근금지라고 적힌 띠가 나와 내 책상을 중심으로 2m로 쳐져 있었다.

띠 밖에서 눈앞에 서 있는 두 남자를 바라봤다.

중년 남자는 내 눈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살짝 웃었는데 여자애들이 순간 꺆꺆거리는게 아닌가.

나는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았다.

“우와 이거 진화한 노 헤드 맨티스의 앞발이잖아? 게다가 이 뿔은…. 뭐지?”

헤에, 바로 알아보네? 근데 역시 뿔 강아지의 존재는 모르나 보다. 주변에서는 노 헤드 맨티스라는 말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거, 긴 주둥이 마른 늑대 새끼의 뿔이에요.”

“뭐?”

노랑머리는 내 말에 놀랐다는 표정인 걸 보니 뿔 강아지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나 보다. 중년 남자도 놀랬는지 노랑머리가 들고 있는 뿔 송곳을 한번 보고는 다시 표정을 진지하게 고치며 나에게 말 걸었다.

“무척이나 피곤하겠지만, 자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네.”

내 가족들?!

“그러니 능력자 검사장으로 가서 몸에 이상은 없나 검사와 능력자 등록을 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가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접근금지라고 적힌 띠를 끊고 나오자 중년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교실의 뒷문을 열고 나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가니 노랑머리는 계속 신기한 듯 뿔 송곳을 만지작거리며 내 뒤에 섰다. 내가 움직이니 교실 안의 30명의 눈도 날 따라오는 게 감지 능력으로 보였다. 그래, 마음껏 봐라! 난 이제 능력자니까!

복도를 걸어 학교의 중앙현관 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려니 각 반의 창문마다 학생들이 빼곡히 달라붙어 날 구경하는 게 보인다.

“우와~ 피투성이!” “이야, 엄청난데? 저 녹색 칼이랑 뿔이 쟤 무기인가?” “무서워~” “그런가 봐. 쩐다.” “무진장 말랐어. 엄청 고생했나 봐.”

등등의 소리가 귀에 막 들어온다.

크크크크. 그래. 날 찬양해라! 푸하하하하!

겉으로는 전혀 표시 내지 않고 묵묵히 중년 남자의 뒤를 따라가고 있으려니 뒤에서 노랑머리가 말을 걸어왔다.

“난 최수한이야. 그나저나 너 진짜 대단한데? 첫 경험에서 하위 이형종을 잡다니.”

첫 경험이라니…. 그게 뭐야. 그런 표현을 쓸 만큼 황홀하진 않았는데?

“운이 좋았어요. 이형종들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어서 어부지리로 얻은 거거든요.”

사실대로 전부 말해 줄 필요는 없어서 앞뒤 확 자르고 말을 해줬는데 노랑머리, 뭐 나쁜 놈 같지 않으니 이름으로 불러주지. 최수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네 말처럼 쉬운 거였으면 첫 경험에서 생존율이 이 정도까지 떨어지진 않았을 거야.”

최수한을 힐끔 바라보니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데 질투가 날 정도로 잘생겼다! 동시에 여자애들의 시선이 내게서 저 인간에게 향하면서 꺅꺆거리는 비명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역시 그냥 노랑머리라고 불러야겠다!

날 구경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학교 고용인들의 시선을 느끼며 중앙 현관 앞에 세워져 있는 검은색 중형 세단에 올라탔고 노랑머리 최수한은 트렁크를 열고서 발톱 검은 이상한 천 같은 걸로 둘둘 감아 내려놓고 뿔 송곳도 그 옆에 내려놓고는 차에 올라탔다.

프랑도 영체의 대부분을 시트 뒤로 숨기고는 두 팔과 어깨 위로만 모습을 드러낸 채 목에 팔을 감았다. 능력자 둘이 볼까 봐 부끄러운가 보다.

올라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동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기대감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나도 이제 능력자 데뷔인가!

신기하게도 차의 뒷 자석은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의자가 비치되어있었는데 푹신푹신한 느낌이 정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꽉 메인다!

“옷이 엉망인데.”

“괜찮아. 어차피 너처럼 생환한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존재하는 차니까. 본부로 돌아가면 깨끗하게 청소하는 사람이 있어.”

중년 남과 노랑머리 최수한은 내 맞은편에 앉았는데 노랑머리 최수한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해줬다.

“내 이름은 강우혁이네. 자네의 임시 능력자 담당관이 될걸세.”

중년 남, 강우혁은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얇은 책자를 하나 건네줬는데 그걸 받아서 펼쳐보니 이런저런 능력자로서의 간단한 의무와 권리와 보상, 그리고 현실에서 지켜야 할 제약 등이 쓰여 있었다.

“임시 능력자 담당관이요?”

“자네는 아직 미성년자이지 않은가. 그러니 성인이 되기 전까지 담당관 한 명이 따라붙게 되지. 자세한 건 나중에 총괄 지부에서 안내해줄걸세.”

미성년자 능력자는 방치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차에 시동이 걸리며 출발하는 소리가 나는데, 운전기사가 따로 있는 건가? 아무튼 책자를 내려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1. 능력자는 능력자로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2. 민간인을 공격하지 마라. 하면 잡혀서 알카트라즈로 간다.

3. 위상 세계로 갈 때에는 능력자 연합에 신고해라. 안 하면 범죄로 분류된다.

3-1. 신고하더라도 불이익은 없다. 조사와 관리차 시행하는 사항이다.

4. 현실에 이형종이 나타나면 최대한 연합과 군관에 협력해야 한다

5. 현실에서 군관에 협력하여 이형종을 퇴치하면 국가에서 포상금이 내려온다.

6. 특수상황에서 국가기관에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

7. 사회에서 모든 소비와 생산활동에 20%의 면세가 적용된다.

8. 운송기관. 버스나 지하철 비행기 등의 사용은 전액 면제.

내 등에 매달려 책자를 함께 보던 프랑이 호오~ 하는 표정을 짓는 게 보인다. 더불어 내게 기울어서 그런지 가슴이 내 팔을 파고든 모습이 묘한 느낌이다.

나는 내 앞의 두 남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까 봐 몇 가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렇게 하게.”

“두 분은 제가 돌아오기 전부터 대기하고 있으셨던 건가요?”

본론부터 들어갔다간 의심 받을 거 같으니 적당한 질문을 던져봐야겠다.

“자네의 물방울이 점점 합쳐지고 있다는 연락이 와서 3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있었네.”

3시간? 긴건지 짧은건지 모르겠다. 3시간 전이었으면 한참 밤중에 위상력 컨트롤 중이었는데.

“제가 돌아오는 모습은 어땠나요?”

“다른 여타 생환자들과 똑같았지. 물방울이 천천히 합쳐지고 커지다가 약간의 빛과 굴절 현상이 일어나면서 그 속에서 자네가 나왔고.”

역시 프랑은 보이지 않는가보다. 그럼 프랑의 영혼석이 문제가 된다.

척 봐도 평범한 위상 석이 아니니까. 주먹보다 조금 작은 물빛 위상석 중앙에 은은한 회색을 띠는 모양이라니. 국가나 과학자들한테 뺏기는 건 아닐까?

“생환자들이 가지고 온 물품은 어떻게 되나요?”

“모두 자네 것일세. 국가나 IWO에서 뺏어갈 염려는 하지 말게.”

내 마음을 짐작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하게 말하는 강우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뺏기거나 뺏으려 시도한다면 언제라도 능력자 연합에 연락하게. 연합의 존재 의미는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나아가 능력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니까.”

두 사람은 확실히 성실해 보이지만 성실한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는 보장은 없지. 일단 최대한 숨길 수 있다면 숨길까. 그런데 어떻게 숨기지?

“두 분도 능력자시죠?”

“어 맞아. 나도 선배도 신체 강화 자지.”

계속 두 명의 신체 내부의 위상력을 감지하는데, 움직임이 나랑은 사뭇 다르다. 위상력을 컨트롤 안 하면 뫼비우스의 띠가 심장을 중심으로 각각 두 팔과 두 다리와 머리를 회전하는데, 두 사람은 심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위상력이 전신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이 회오리 같았는데, 능력에 따라 위상력의 움직임이 다른 걸까?

노랑머리가 으쓱하면서 대답하는데 자신이 신체 강화라는 게 무척이나 마음에 드나 보다.

“그런데 넌 무슨 능력을 얻었어?”

“전 감지 능력을 얻었어요.”

사실대로 말할까 하다가 그냥 내가 갖춘 능력의 한 기능만 말해줬다. 그나저나 검사는 어떻게 하는 거지? 숨긴 거 다 뽀록나는거 아닌가?

“오! 감지 타입의 R 클래스! 역시~ 감지 능력이 있으면 살아남기 쉬운 편이지!”

…순간 내 표정이 굳는 게 느껴졌다. 맞은편에서 내가 표정이 굳는 걸 봤는지 노랑머리가 당황해하는 게 보인다.

“어…. 어, 내가 말실수라도 했으려나?”

에헤헤…. 하면서 멋쩍은 듯이 웃는데 난 그냥 얼굴을 돌리면서 창밖을 보는 척 프랑을 바라본다. 프랑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다가 저 노랑머리를 노려보는데, 그 얼굴이 마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거 같다.

그러자 점점 당황하면서 나와 강우혁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그걸 본 강우혁은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하는 눈길을 보내다가 강우혁도 진중한 표정을 짓더니 노랑 머리에게 한소리 하기 시작했다.

“현실에 존재하는 감지 능력자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낮은 등급의 이형종이라면 장비와 능력을 통해 전투가 가능하지만.”

날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잇는 강우혁.

“정서하군처럼 위상 세계에서 첫 능력을 감지로 얻을 경우에는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 계속된다.”

“어….”

“R 클래스의 능력자들이 부족한 이유를 생각해보도록.”

“읔. 미안!”

강우혁의 말을 들은 노랑머리 최수한은 벌린 다리의 무릎 위에 양손을 올리더니 고개를 푹 숙이면서 사과를 해왔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사과하면서 반성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없지. 다만 저 인간은 그냥 생각이 모자랄 거 같다. 게다가 촐랑거릴 거 같고.

“내 생각이 짧았어. 난 능력자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경험이 적거든. 그래서 지부에서 활동 중인 R 클래스 능력자들만 보고 그만….”

근데 감지 타입? R 클래스는 알겠는데, 대분류를 타입으로 분류하나? 신체 강화 타입, 속성 타입, 회복 타입, 감지 타입?

나는 계속 삐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프랑한테) 속 좁아 보일 거 같아서 한숨을 쉬며 노랑머리 최수한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괜찮아요. 단지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을 좀 겪어서 쉽다는 말에 화났을 뿐이에요.”

“으윽…. 진짜 미안!”

아예 머리를 숙이고 두 손까지 마주치며 사과하는 노랑머리 최수한은 외면하고 강우혁에게 물었다.

“다른 생환자분들중에서는 자연재해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이 있나요?”

최수한은 자신을 무시하고 강우혁에게 질문하는 내 모습에 울상을 지었다가 그도 내 질문의 내용이 궁금해졌는지 강우혁을 돌아보았다.

저거 봐라. 금방 까먹지. 뭐, 그의 입장에서 나는 별 볼 일 없는 R 클래스 능력자니까. 별로 깊게 생각 안 할 수도 있고.

“좀 있는 편이지. 밀림 지역에서 수해를 만나 겨우 생존해온 물 속성 능력자나 설산 지역에서 그치지 않는 눈보라를 만나 바람에 냉기속성을 가지고 귀환한 능력자도 있고.”

“그럼 거대 두더지 같은 무진장 큰놈들을 처음 위상 세계에서 만난 사람도 있나요?”

그 말에 날 주시하며 잠시 말이 없는 두 명.

“중위 이형종 이상을 만난 건가?”

으음. 가장 궁금하고 억울한 부분이라서 물어본건데 뭔가 반응이 이상하다.

“몇 등급인지는 모르겠어요. 진짜 엄청 큰 두더지를 만났는데 진짜 우연이 겹쳐서 살아남았거든요.”

“거대 두더지? 최하위 이형종은 아니지?”

강우혁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노랑머리 최수한이 궁금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최하위 이형종중에는 두더지도 있긴 하다. 큰 들쥐 수준의 두더지.

“…그런 거면 제가 일부러 "거대"라는 수식어도 안 붙였죠.”

그러자 윽!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물었다

“어느 정도로 컸는데?”

“앞발톱이 한 발에 1개씩 10개가 나 있었는데 그 길이만 3m가 넘었었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어버리는 최수한. 내 말을 들은 강우혁도 놀랐는지 눈을 뜨고 날 바라봤다.

“그 정도면 몸체가 최소 5m는 넘었겠군. 상위 이형종인가.”

“어, 하지만 상위까지 진화한 두더지라니. 그런 건 보고된 사례가!”

“사례가 없지. 하지만 위상 세계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다.”

그 말에 합죽이가 돼버렸는지 주둥이를 꽉 다물어버리는 최수한.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지만, 계속 물어보면 의심을 살 거 같아서 일부러 질문을 더 하지 않았다.

나도 이제 능력자니까 위상 세계 관련 정보에 접근이 가능할 테니 거기서 직접 찾아봐야지. 근데 접근은 어떻게 하는 거지?

처음 간 위상 세계에서 고위 이형종을 만난다거나 사람이 이형종으로 변한 거나 이무기나 초거대 거북이에 대해서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질문들은 생각없이 막 던져댈게 아닌거 같으니까.

아, 하나만 더 물어봐야지. 저 멀리 창밖으로 홀로 우뚝 선 고층 빌딩,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 한국 총괄지부 건물을 바라보며 강우혁에게 물었다.

“능력자나 이형종의 위상력 등급은 다른가요? 위상 세계에서 겪어보니 이세계 생존학이나 이형 생물학과는 너무 다른 점이 많았었거든요.”

“학교에서 배우는 책에서는 최하위 하위 중위 상위 고위 최고위의 6단계로 나누고 있지. 하지만 능력자들에게 공개된 정보에는 능력자의 클래스 단계만큼 세부별로 나누고 있어. 그리고 중위 이형종을 넘어서는 등급부터는 해당 등급의 이형 능력자가 적어도 다섯은 있어야 상대할 수 있지.”

내가 만났던 이무기나 거대 두더지, 초거대 거북이가 생각난다.

“자네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틀리지는 않네. 하지만 모든 걸 다 알려준다고도 하지 않지. 그저 최대한 생존율을 올리기 위한 내용만 모아놓은 가이드북에 지나지 않아. 지나치게 맹신하는 건 좋지 않네.”

“…그런 중요한 걸 왜 알려주지 않는 거죠? 교과서를 보다 보면 이게 전부인 양 써놨는데요.”

말도 안 되는 대답에 갑자기 화가 나서 강우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노랑머리에게서 흘러나왔다.

“실상을 전부 알려봤자 관련 지식으로 나쁜 짓에만 이용하는 놈들이 많으니까 일부러 정보를 제한하는 거야. 정말로, 진짜로 알고 싶다면 직접 지부든 본부든 찾아올 거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고 있거든.”

“위상력에 관련된 내용도요?”

생존학이나 생물학에서는 그냥 위상력이란게 있다는 식의 서술 뿐. 기초적인 수치에 관한 지식같은것은 전혀라고 할 만큼 설명해주지 않았다.

단지 위상 세계에는 위상력이 가득 차 있고, 오래 있으면 능력과 기술을 얻을 수 있고, 15일이 지나면 귀환할 수 있다는 게 주요 골자니까.

“그래. 그러니까 최대한 정보를 모아서 가족 중에 형제나 남매가 있다면 충분히 알려주길 바래.”

“알려주는 건 상관 안 하나요?”

“알아야 할 사람이 알게 되는 거지 뭐.”

저런 무책임한 대답이….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노랑머리 최수한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차가 멈췄다.

“도착했군. 내리지.”

달칵

먼저 문을 열고 내리는 강우혁을 바라보고 있으니 반대쪽 문을 열고 최수한이 내리며 말했다.

“아무튼 생환한 걸 환영해. 능력자 정서하.”

…프랑을 돌아보니 그녀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찡그린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도 날 마주 보다가 쓰게 웃길래 재빨리 그녀에게 가슴의 영혼석으로 손짓을 했다.

다른 사람들한테 보일지도 모르고 능력자 연합 빌딩인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프랑은 내 손짓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영혼석 안으로 들어왔는데 순간 회색 빛무리가 퍼져나가길래 흠칫했다!

설마 밖에 두 사람한테 보인 건 아니겠지? 자동차 안은 운전석이랑은 가로막혀있어서 안보일 테고.

밖에 두 사람의 반응을 보니 천천히 빌딩 입구로 걸어가고 있었지 퍼져나온 회색 빛무리는 못 본 거 같다.

“휴우….”

덜컥.

나도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을 따라 빌딩으로 향했다.

솔직히 수십 년 만에 돌아왔는데 바깥 구경을 못 시켜주고 영혼석에 들어오라고 해서 조금 미안했지만…. 프랑의 안전을 위해서니까.

누군가 영혼석을 뺏어가려 하면 지금의 나는 그걸 막을 힘이 없잖아.

누가 물어보면 나는 영혼석을 그냥 전기를 띄는 예쁜 돌멩이라고, 내 수호 부적이라고 우기며 손에 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동차에서 내리며 영혼석에서 위상력이 흘러나오지 않는가? 분석능력을 영혼석에 집중했더니 예상대로 위상력이 밖으로 방출되지도 않으니 위상 석이 아니라고 우길 수는 있지만 위상력 감별기나 위상력 측정기 앞에서는 어쩔지 모르겠다. 우기기가 통했으면 좋겠….

“서하야!!” “아들!!”

순간 15일간 너무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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