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6 12일째, 섬. =========================================================================
어젯밤에는 아무래도 탐색 능력을 완전히 오프시켜서 자는 건 불안했기에 어떻게든 반 각성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는 건가 조절을 해보려 했지만, 다섯 번째 탐색 능력을 켰다 끄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들었었다.
그전까진 약간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기에 조금 컨트롤 연습을 하고 잘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탐색 능력을 끄고 켤 때 뇌에 상당한 피로감을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 제한이 많구만, 내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무조건 잠을 자야 할 이유를 아침에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분석 능력의 효율.
잠을 자기 전까지는 보통 상태에서는 최고 40%의 분석율을 보였는데 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 정신이 개운하게 깨어있는 지금은 70%까지 올라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을 집중했을 때의 효율이 100%가 되는 게 아니라 일반 상태의 분석률에 +60%가 된다는 거다!!
그러니 지금 분석을 정신 집중해서 쓰게 되면 130%까지 분석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당장 프랑의 영체를 분석 해보려 했지만…. 실패.
제길…. 프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프랑의 존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데….
아무튼 영체를 분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대신 영혼석에 조금이나마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영혼의 실이라고 부르기로 한 얇은 이 실은 분석 능력을 130%가 되니까 눈에 보였는데, 처음에는 내 가슴팍에서 시작된 옅은 청회색의 실 같은 게 프랑의 등 부분과 연결되어있는 걸 보고 착시인가 싶어 눈을 비볐다가 다시 봐도 있길래 프랑과 나의 인연의 실인가 싶었었다.
…말 안 했길 천만다행이지. 했다면 이불 킥 한 달 코스였을거다. 아무튼 그 실은 프랑의 영혼석에서 흘러나와 영체 프랑과 연결된 거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프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의 등을 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 옆으로 청회색 실이 흔들리고 있었는데도 못 보는 걸 보면 이건 나만 보이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도 등에 실이 연결된 걸 보려고 요리조리 움직이는 프랑을 보며 그 실을 살짝 손으로 잡아봤더니.
그 순간 프랑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떠오르는 것 같은 환상이 보였다.
그녀가 바로 날 바라보길래 실에서 손을 뗐더니 느낌표가 두 개로 늘어나며 나에게 다가와서는 어떻게 한 거냐는 표정을 지었는데 사실대로 말해줬더니 신기한지 영혼석이 있는 주머니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프랑은 잠시 나한테 손짓을 하더니 하늘 높이 높이 올라가 버리기 시작했다.
잠시 프랑이 무슨 일을 하려는 건가 조금 걱정이 돼서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계속 늘어나는 영혼의 실도 번갈아가며 보고 있는데 잠시 후 갑자기 영혼의 실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기겁해서 프랑을 불렀더니 영혼 석에서 고운 회색 입자들이 퍼져나오며 프랑의 모습을 갖춰갔다.
멍하게 그 현상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윽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습을 다 드러낸 프랑에게 화를 내며 호되게 혼을 냈다.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그렇게 멀리 간 거야?! 뭔가 잘못되면 어쩌려구!”
나한테 혼이 난 프랑은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당황해서 손짓 발짓에 몸짓까지 섞어가면서 내게 전달하려 한 말은,
1. 영혼석은 어디에 있든 그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2. 1.과 마찬가지로 어디에 있든 영혼석 안으로 이동할 수 있다.
3. 멀어질 수 있는 거리는 최대 2km 정도인 듯 하며 그 이상 멀어지려 하면 영혼석 안으로 돌아오게 된다.
4. 자신의 능력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였다.
놀라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시 위상력으로 진정시키며 화낸 걸 사과했더니 그제야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해맑은 웃음을 보여줬다.
프랑의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몇 가지 행동에 대한 반응을 알게 된 건 그래도 다행이었다. 특히 1번과 3번을 알게 돼서 내 걱정을 많이 덜어주었다. 혹시라도 일이 생겨 과도하게 멀어졌다가 다시 만날 수 없게 될까 봐 무진장 걱정했었으니까.
하지만 2번은 아직 불확실하잖아.
멀어졌을 때 갑자기 사라진 영혼의 실을 봤을 때 아마도 본체는 영혼석의 안에 존재하며 지금 보이는 영체는 말 그대로 허상이나 환영 같은 게 아닐까.
그걸 알려줬더니 프랑도 뭔가 느낌이 오는지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 가능한 위험한 상황에는 몸을 피하겠다는 것을 프랑에게 약속으로 받아냈다.
뇌를 흐르는 위상력의 컨트롤이 완벽해지면 눈을 떴을 때의 감지범위와 마찬가지로 분석 능력도 점점 더 효율이 높아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럼 프랑의 영체도 감지가 되지 않을까?
처음 각성을 하고 분석 능력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 시킨 뒤부터 분석률에 대한 기준을 세웠으니까, 평상시의 40%는 각성한 그 순간부터 정신적으로는 무진장 피로에 절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뭐 당연한가. 밧줄 없는 50m 번지점프에 3번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신체 능력에 맞지 않는 나무 타기를 여러 번 한데다. 거인 프랑의 피부를 가르고 몸 안으로 들어가는, 굉장히 진귀한 경험도 스트레스에 꽤 영향을 많이 줬겠지.
그리고 프랑이 하늘로 2km를 날아올랐을 때 정말 자그마한 섬 하나를 발견했다고 알려줬다.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했지만 지금 나아가는 방향에서 북쪽으로 70도를 꺾어 계속 나아가면 나올 거라고 했다. 나무도 섬에 두어 그루 자라있고 주변으로도 나무가 여러 높이로 물 밖으로 나와 있는 게 언덕으로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방향을 바꿔 섬을 향해 헤엄쳤다.
프랑은 내 왼쪽 앞에서 앞서 날아가고 있었는데 몸은 뒤로 뒤집은 채 내 뒤쪽을 경계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내 탐색 능력의 취약점을 그녀도 이제 알았으니 내가 감지하기 힘든 부분을 책임져주는 거지. 적어도 전면은 내가 직접 보고 있으니 경계가 되니까.
한때 넓지도 않은 탐색 범위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우쭐해 하며 그녀를 평가절하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1시간 20분 정도를 헤엄치다 보니 수면 밖으로 솟아 나와 있는 나무의 높이가 슬슬 10m를 넘어가는 것들이 종종 나오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높아 봤자 3m 정도인 게 대부분이었다. 어제 쉬었던 나무가 비정상적으로 큰 거였지.
이제 본격적으로 언덕이 시작되나 보다.
내가 있는 곳과 하늘을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던 프랑은 어느 순간 잘 내려오지 않더니 정신을 집중해서 영혼의 실을 봤더니 섬이 있는 방향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 상태로 잠시 있으니까 황급히 내려와 나에게 멈추라며 신호를 마구마구 보냈다.
“무슨 일이야?”
프랑은 당황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방긋 방긋거리는데, 뭔가 단어를 말하는 거 같지만 모르겠다!
한동안 방긋 방긋거리는데 단어가 길어서 알아듣지 못하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몸을 버둥거리더니 다시 단어가 대폭 줄은 몬스터를 반복해서 말했다. 이것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굉장히 걱정스러워하는 프랑을 보니 잠시 놀려주고 싶어졌지만 알려온 내용은 심각한 사항이라서 관두었다.
“괴물? 거대 두더지 같은 대형 동물이야?”
그녀는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괴물이 아니면 이형종인가?.
“그럼 이형종이라는 거야? 섬에 이형종이 있어?”
그제야 얼굴이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일단 정보가 부족해. 섬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고 몇 마리나 모여있는지도 모르니까. 일단 그 부분을 알아봐야겠다.
“몇 마리 정도 있는지 알 수 있어? 여기서는 나무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는데.”
그러자 프랑은 여기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 난 뒤 프랑은 섬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새삼 두고 온 발톱 창이나 만들어두고 한 번도 못쓴 투창기가 생각나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고 온 건 어쩔 수 없지.
주변에 나무들이 많으니 조금 힘들겠지만, 뿔 송곳으로 투창기를 새로 만들어서 멀리서 저격해서 섬에 있는 이형종을 죽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프랑이 돌아올 때까지 주변 나무를 살펴보며 만들 투창기의 모습을 디자인하고 있었는데 내 가슴팍에서 회색 빛무리가 퍼져 나오더니 프랑의 모습이 머리부터 천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만들어질 때와 보지 근처가 만들어질 때 눈길이 절로 그 부분으로 갔지만, 다행히 프랑이 눈뜨기 전에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몸이 다 만들어진 프랑은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붕붕 저으면서 딴 곳으로 가자고 섬이 없는 방향으로 막 손짓하며 날 끌어가려 했는데 대체 뭘 봤길래 저렇게 급한 거지?
“잠깐만 진정해, 혹시 하위 이형종 이상 되는 존재가 있어?”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지만, 표정을 보니 없다기보다는 모르겠다는 거 같다. 그리고 왼손으로 손가락 둘을 펴고 오른손으로는 손가락 넷을 펴서 보여주었다.
허, 24마리? 그만한 숫자가 어떻게 모여있는 거지? 동종의 이형종인가?
“거리는 어느 정도 남았어?”
도망은 안치고 계속 질문을 하자 점점 얼굴이 울상이 되는 게 보이는데 안심시키지 않으면 이대로 울어버릴 기세다.
“상황이 이래서 24마리나 되는 것들이 한곳에 모여있다지만 섬에 있다는 건 물속에서 이동하기 힘들다는 뜻 아닐까? 그러니까 이 근처에 큰 나무도 많으니까 모습을 숨기고 투창기를 새로 만들어서 저격해 볼 생각이야. ”
내 말에 표정이 눈에 띄게 안정되는 게 보인다. 지금까지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제작 능력을 그녀에게 종종 보여줬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거기에 한마디를 더 붙였다.
“내 탐색 능력은 궤도 보정까지 되니까 투창기만 만들면 2km 밖에서도 명중시킬 수 있어. 무엇보다 위험하면 전신에 위상력을 돌려서 수영으로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프랑. 설마, 내가 닥돌이라도 할 줄 안 건가?
크크크크, 오랜만에 놀려볼까?
“우와. 설마 했는데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이형종들한테 닥치고 돌격할 줄 안 거야?”
내 말에 흠칫하더니 고개를 붕붕 젓는다. 프랑은 내가 신체 능력이 올랐다고 뿔 송곳 하나 달랑 들고 24마리가 존재하는 곳을 향해 돌진하진 않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만든 투창기로 하위 이형종을 잡는 모습을 봤다면 저런 반응까지는 나오지 않았겠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했던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었는데, 프랑은 그것도 몰라주고….”
삐졌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통나무 조각에 뺨을 기대며 투덜투덜 거리자 그제야 프랑은 내가 보는 방향으로 몸을 옮기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좋아, 기회다!
“뽀뽀한 번 해주면 용서해줄게.”
스윽 표정을 바꾸고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자 그제야 또 놀림받았다는걸 깨닫고는 조금 황당해 했지만 이내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내 뺨에 살짝 키스를 해줬다.
엥? 난 입술에 말한 건데.
혹시 키스랑 뽀뽀랑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는 건가? 뭐 이것도 좋지만, 다음부터는 키스라고 해야지!
“아직 정보가 부족해. 24마리가 어떤 놈들이 모여있는지, 섬의 상황은 어떤지, 섬의 넓이도 확인해야 해. 섬에 모여있다면 수중 활동이 가능한 녀석들은 없을 테고. 어떤 녀석들이 몇 종류 모여있는지는 봤어?”
그러면서 내가 아는 최하위 이형종의 이름을 말했더니 그중에 긴 주둥이 마른 늑대, 큰 들쥐, 두 꼬리 여우, 노 헤드 맨티스 4종류와 내가 말하지 않은 2종류 합해 6종류였으며 그중 큰 들쥐가 가장 많은 8마리, 긴 주둥이 마른 늑대 4마리, 두 꼬리 여우 3마리 머리 없는 사마귀 2마리 마지막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종류가 각각 4마리 3마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두 마리의 생김새를 몸으로 표현해주는데 다리를 살짝 굽히고 엉덩이를 뒤로 쭉 뺀 다음 상체도 약간 굽혔다.
한 손은 펴서 엉덩이에 대고 손가락을 바깥쪽으로 쫙 펴고 다른 한 손은 머리 위로 올려서 폈는데 하는 짓이 귀엽고 깜찍하고 야해서 입을 헤 벌리고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는데 프랑도 내가 자신의 몸매만 보고 있다는걸 알아챘는지 그녀의 눈썹 끝이 조금씩 올라가는 게…. 흠흠, 뭐지 닭? 닭 이형종도 있나?
“닭?”
그러자 손뼉을 치면서 방긋방긋 웃는데 정답이었나 보다. 잠시 최하위 이형종에 닭이 있었는지 머릿속의 기억을 뒤져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래 봤자 닭이겠지.
“그리구?”
그다음 공중에서 쪼그려 앉고 양 무릎을 가슴에 붙이더니 두 손을 골반에 붙이고 파닥이면서 발로만 종종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순간만큼 프랑의 모습을 감지와 탐색으로 머릿속에 저장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저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던가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영구 저장해야 하는데!”
앗, 생각이 또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내 안타까움이 한가득 담긴 외침에 프랑은 화들짝 놀라면서 정말 무슨 생각하냐는 듯이 불만이 한가득 섞인 표정으로 두 손으로 몸을 가리고 다리도 꼬으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앗, 아하하. 미안, 미안해! 육지 펭귄인 건 알았으니까!”
그녀의 모습을 보니까 생각났지만, 남은 한 종류는 육지 펭귄인가 보다. 일반 펭귄들과 다르게 따뜻한 지역에서 짧은 황토색 털을 가진 펭귄.
난 열심히 삐진 프랑을 달래면서 탐지능력으로 창으로 만들만한 나뭇가지가 많은 나무를 찾으며 섬이 있다는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사실 안전을 생각한다면 프랑의 말대로 섬을 피해 도망가는 게 나을지 모른다. 이제 현실 귀환까지 남은 시간은 3일. 프랑도 옆에 있으니 함께 장난치고 이야기하고 놀다 보면 3일은 금방 지나가겠지. 식수도, 식량도 문제가 없다.
다만 문제는 내 마음가짐이다.
4일째 되는 날 발톱 창을 만들면서 거인 프랑의 시체와 거대 두더지의 사체를 보며 했던 생각이 있다.
더 이상 도망만 다닐 수는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서는 힘이, 능력이 필요하다. 도망 다니는 건 쉽다. 탐색 능력과 프랑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망 다닐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래서는 언제까지나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힘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아빠도 엄마랑 결혼하기 위해서 외할아버지랑 무진장 싸웠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싸워야 한다.
근데 왠지 옆에서 따라오는 프랑의 표정이 나무 방에서 나에게 절을 할 때와 같은 표정이다.
“왜?”
그래서 물었지만 어느샌가 기품있는 표정으로 살짝 웃어줄 뿐 별다른 표현은 없다.
흠. 딱히 나쁘거나 이상한 건 아니니까 우선 24마리의 최하위 이형종에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최소한 내 탐색 범위의 절반이 섬 안에 들어갈 정도는 가까이 가야겠지. 망원 능력이 450m까지 가능하니 섬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할 거 같다.
6종류의 이형종이 있다고 했으니 만약 섬이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오른다.
먹을 게 없으니 주변에서 가장 약한 것 들부터 잡아먹혔겠지. 얼마나 많은 숫자가 섬에 모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싸우고 잡아먹고 남은 24마리는 최하위 이형종 중에서는 무척이나 강 할 거 같았다.
말 그대로 고독이군. 항아리에 온갖 독충을 집어넣고 한 마리만 살아남을 때까지 항아리를 밀봉해서 만든다는 최악의 독충.
수면이 차오르기 전부터 얼마나 많은 숫자가 모여있었을까. 그 숫자가 많았을수록 지금 남은 놈들은 원래보다 훨씬 강해져 있겠지.
얼마나 강해졌는지 모르겠지만, 하위 이형종으로 진화만 하지 않았다면 솔직히 위협은 없을 거 같다.
내 앞에서 엉덩이를 보이면서 날아가는 프랑이 보인다.
프랑은 전투를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표정이 약간 굳어있지만 내 시선을 받고서 할 말 있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는 듯이 살짝 웃어주었고 프랑도 잠깐 눈웃음 짓더니 이윽고 하늘로 쑥 올라간다.
다시 확인하러 가는 건가?
공격 전에 최대한 많은 창을 만들어둬야 해. 못해도 48발은 만들어둬야겠지. 그러려면 크고 가지가 무성한 나무가 필요해.
나는 최대한 물장구 치는 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심조심 발을 저으며 수면 위로 나와 있는 나무들 틈 사이로 나아가다 보니 뭔가 여기저기가 심하게 뜯어먹혀 죽어있는 동물의 사체가 수면에 떠 있는 게 망원 능력으로 보였다.
크기는 거의 긴 주둥이 마른 늑대와 비슷한데? 머리통이 뜯어져서 사라진 데다 내장도 대부분이 없어지고 뒷다리도 한 짝이 없다. 그런데 물에 젖어 볼품없이 물결에 흔들리는 두 개로 나누어진 꼬리를 보면, 두 꼬리 여우인가.
그 외에도 물속에 잠겨있는 큰 들쥐 사체라거나 짜부라진 곤충이라거나, 보고 있으면 좀 인상 찌푸려지게 죽어있는 이형종의 시체가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물에서도 시큼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게, 분석해보니 마시면 안 될 거 같다.
최대한 목 아래로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하면서 여기저기 보이는 시체를 확인하는데 프랑이 다시 내려와 내 곁에 섰다. 나는 새로운 사항이 있는가 싶어 그녀에게 물었는데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양팔을 좌우로 한껏 벌렸다가 풀고 손가락으로 100을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 공중에서 뭔가… 부정형 사각형을 그리는 게, 섬의 크기를 말해주는 건가? 그럼 좌우 팔길이를 100번 더한 만큼 좁다는 건가? 아니면 한 면이 100번 정도의 길이?
프랑의 팔은 좀 길어서 140cm 정도 돼 보이는데 100번 정도면 140m 정도인가? 둘레가 520m라면 초등학교 운동장 넓이 정도 되겠군.
그래서 생각했던 걸 말해줬더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내가 생각했던 크기가 맞나 보다.
나는 조심조심하며 40분을 이동했더니 물 아래 바닥이 점점 높아지면서 수위가 낮아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섬이 망원 능력 안으로 들어올 듯하다.
그렇게 조금 더 조심해서 움직였더니 저 앞에 나무 두 그루 사이로 생각보다 커 보이는 섬이 보인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대강의 거리를 구해보니 약 3km 정도 남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450m까지 다가가면 들통 나지 않을까? 잠시 머릿속으로 실제 거리와 저 섬에 몰려있을 이형종의 숫자들을 계산해보다가, 아무래도 시야에 넣으면 분석 능력으로 분석하기 편할 거 같아 주변에서 가장 높고 섬을 살펴볼 수 있을 나무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섬에서 1km 떨어진 곳까지 가서야 적당한 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주변 나무들보다 10m 이상은 높은 게 저 위로 올라가면 섬이 보인다고 프랑이 알려줬다.
“프랑. 이형 종들한테 천천히 다가가서 뭔가 다른 움직임이 생겼나 봐줄래?”
일단 나무에 오르기 전에 혹시 저기 있는 이형종 중에 내 위치가 포착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프랑에게 정찰을 부탁했다.
“천천히 다가가면서 저 이형종들이 널 발견 하는지도 체크해줘. 부탁해.”
프랑은 알겠다는 듯이 결연한 표정으로 양손을 꾹 쥐고 수면 위에서 스르르 움직이며 천천히 섬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사이 나는 수분 나무에 창으로 쓸 만큼 곧게 자란 나뭇가지들을 탐색으로 찾았다.
곧고 직선으로 자란 나뭇가지들은 많이 보였지만 한 그루에 48개나 만들 수는 없을 거 같다.
절벽 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때 투창을 만들었었는데 그때 적어도 1m는 되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 게다가 날아갈 때 자세를 잡아 줄 깃털 같은 것도 없어서 너무 길거나 짧으면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굵으면 무게 때문에 못 날아가고 얇으면 날아가다 휘거나 명중했을 때 부러지면서 관통력이 떨어지고…. 하여튼 문제가 많을 거 같았다.
어쨌든 최하위 이형종들은 크기가 비교적 작은 편이라 적당한 창을 만들면 일단 몸의 어디에라도 맞추기만 한다면 치명적인 게 다행이다.
잠시 생각했지만, 곰방대 형태인 투창기보다는 역시 처음 만들었던 직사각형의 나무 조각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무 뒤에 숨어 프랑이 돌아오길 기다리는데 갑자기 나무를 통과하면서 프랑의 얼굴이 불쑥 하고 나왔다.
“왔구나. 어땠어?”
내심 내가 놀라기를 바랬던 건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날 보더니 프랑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섬의 상황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안됐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서 영혼의 실을 보고 프랑이 돌아오고 있었다는 걸 갈 고 있었거든. 킥킥.
만약 그걸 몰랐다면 나도 놀랬을 거야.
그녀의 말에 의하면 큰 들쥐 두 마리와 긴 주둥이 늑대 한 마리, 닭 이형종 한 마리와 두 꼬리 여우 한 마리가 죽었단다. 그 시체들을 큰 들쥐와 긴 주둥이 마른 늑대를 제외한 나머지 녀석들이 토막 쳐서 먹고 있었다고. 특히 사마귀 두 마리가 큰 들쥐 한 마리를 차지하고 먹었다나.
“흐음.”
시간을 확인해보니 마침 점심때가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프랑의 모습은 이형종에게도 안 보이나 보다. 적어도 최하위 이형종에게는.
그녀는 두 꼬리 여우나 닭의 바로 옆까지 가서 몸통에 손을 넣고 휘휘 저었는데도 눈치를 못 챘다고 한다. 만약 그 상태에서 전류를 흘렸다면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을 거 같지만, 말은 꺼내지 않았다. 말했다간 당장에 자기가 다 죽이겠다고 나설 게 분명하니까.
천천히 나무를 타고 올라서 꼭대기에 도착했더니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한쪽을 바라봤더니 부정형의 땅이 보이는데 대충 가로세로 120m에 90m 정도 되어 보이는 평지 형태의 섬이었다.
섬 주위는 그야말로 피투성이였는데 그사이 식사시간이 끝났는지 이형종들은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20~30m의 나무들도 세 그루가 서 있었고 이형종들은 서로 같은 종끼리 모여서 섬의 가장자리에서 다른 이형종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세모꼴의 대가리가 없는 사마귀 두 마리는 섬의 중앙에서 나무 두 그루를 차지한 채 나무 아래에서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다른 이형종들보다 유독 커다란 게 거의 내 키와 비슷한 거 같다.
육지 펭귄과 두 꼬리 여우는 그냥 평범한 최하위 이형종이다. 처음 위상 세계에 도착한 능력도 기술도 없는 예비 능력자에게는 위협적일지 몰라도 지금의 나라면 탐색 능력의 보조와 위상력 컨트롤로 향상된 신체 능력으로 두 마리 정도는 동시에 덤벼도 능력 빨러 별 무리 없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몸치라서 확신을 못 하겠다. 스펙만이라면 충분할 거 같은데….
난 허리춤의 뿔 송곳을 꽉 움켜쥐고 저놈들에 대한 정보를 기억에서 찾아보았다.
주의점은 육지 펭귄은 선키가 1m에 폭은 80cm인데 살이 많고 무겁지만, 행동은 긴 주둥이 마른 늑대와 비슷할 정도로 빠르다.
가죽은 10cm 정도의 짧은 갈색 털에 전신이 뒤덮여있고 달릴 때는 뒤뚱거리는 게 아니라 다다다다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달려드는 데다 날개도 일반적인 펭귄들보다 커서 약간이라면 파닥거려 순간적으로 빠른 저공비행도 가능하다!
부리가 바위도 부신다는 거랑 날개…. 팔? 에 얻어맞으면 망치에 맞은듯한 충격이 든다고 한다.
두 꼬리 여우는 현실에 흔한 붉은 여우와 똑같이 생겼지만, 꼬리가 두 개인 점이 다르다. 이미호二尾狐라고도 부르는데 굉장히 민첩하다.
주공격은 꼬리를 늘려 찌르기지만 길이는 최대 1m까지밖에 안 늘어난다. 몸길이가 1m에 원래 꼬리 길이가 70cm인 걸 보면 30cm까지밖에 늘어나지 않지. 발톱은 별로 신경 안 써도 되지만 이빨이 굉장히 날카롭다. 일반인이 물렸다간 물리는 순간 토막 난다. 속도는 최하위 이형종 중에 최상위라고 했다.
큰 들쥐나 긴 주둥이 마른 늑대는 이미 만나서 싸우기까지 했고 문제는 닭인데 닭은 어디 있지?
닭이 안 보여서 한참을 찾았는데 겨우 섬의 북서쪽 나무 위에 나뭇잎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걸 찾아냈다.
저게 닭이라고? 내가 아는 닭이랑은 좀 다른데…. 형태는 같지만, 온몸이 새카만데 흰색 점이 곳곳에 박혀있고 닭벼슬과 부리와 닭발은 아예 완전한 흰색이다. 눈은 깃털에 가려서 아예 안 보이네. 높이가 9m는 되어 보이는 높이까지 올라간 걸 보면 날아다닐 수 있는 건가?
원래 현실의 평범한 닭들도 날개를 퍼덕거려 수 미터를 날아다닐 수 있고 어떤 마을에서는 방목시키다 보니 나무 위까지 날아오르는 닭들도 있다고 하다만. 저건 좀 주의해야겠다. 근데 크기가 굉장히 작아서 일반 닭의 2배 정도밖에 안 된다. 발톱이랑 부리만 주의하면 되려나?
마지막으로 가장 위험한 머리 없는 사마귀, 노 헤드 맨티스는 머리를 빼면 외형은 현실의 사마귀와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몸통과 배를 잇는 부분에 주둥이가 있고 뇌가 없어 다른 이형종처럼 생각이란 걸 못한다.
대신 본능이 무척 뛰어나고 주변의 기척과 움직임을 귀신같이 알아채기 때문에 최하위 이형종 중 최상위에 속하지만 뛰어난 감각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하위 이형종으로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도 하위 이형종과 싸우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기도 하고.
뇌가 없어서 그런지 접근하는 모든 생명체는 전부 공격한다. 아마도 섬이 피투성이가 된 건 저것들의 노력이 컸겠지!
이형종들은 긴 주둥이 마른 늑대나 큰 들쥐때를 생각해봤을 때 날 발견 못했을 테고, 문제는 저 노 헤드 맨티스인데 미동조차 없어서 저게 날 인식했는지 안 했는지가 궁금하다. 물론 1km나 떨어져 있으니 감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저 덩치가 신경 쓰인다.
내 키만큼이나 크다니, 보통 이형종들은 크기로 단계를 구분한다고 하는데 위상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몸체가 비대하게 커지기 때문이라던가?
양아치 이무기만 봐도 겁나 길고 컸으니까 맞는 말이겠지. 최하위 이형종은 높이든 길이든 1m를 거의 못 넘긴다고 하는데 그 이상이라면 한 단계 진화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키가 170cm가 넘어가는 저 두 마리는 하위 이형종이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봐야지.
내가 한참을 노 헤드 맨티스를 노려보고 있으려니 프랑은 날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이제라도 말려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았다.
프랑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말했다간 당장 몸을 피하자고 할 거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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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이 매의 눈으로 맞추셨군요. 지금은 프롤로그입니다. 본편은 현실부터(...)
원래 위상 세계로 들어오기 전 3편으로 프롤로그를 만들어놨는데 제가 봐도 재미없어서 그냥 다 삭제해버렸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