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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스-28화 (28/517)

00028  9일째, 위기.  =========================================================================

9일째 아침 오전 7시.

물길은 조금씩 줄어들어서 어젯밤 11시에 4m까지 내려갔지만, 그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게 쏟아지는 비의 양 때문인가 보다.

정말 징하게도 쏟아내린다.

그리고 간밤에 잠들지 못하고 프랑을 잔뜩 걱정하게 만든 나는 영혼석이 든 주머니를 양손에 쥐고 밤새 탐색 능력을 돌렸다.

약간 거슬거슬한 느낌 너머로 오돌토돌 솟아있는 돌기가 느껴져서 쓰다듬어봤지만, 프랑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 아무래도 직접 피부 접촉을 해야 자극이 오나 보다.

나는 천 너머로 느껴지는 영혼석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감고 탐색 능력을 번갈아가며 돌렸다.

특히 영혼석 내부에 위상력과 다른 종류의 기운을 감지하며 그 기운에 대해 알기 위해 집중에 집중을 거듭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프랑의 영혼이라고 생각되는 이 기운을 보면 계속 분석을 하게 되는 게, 이래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잘 설명을 못 하겠다. 내가 그다지 신경 안 쓰게 된 예감이란 녀석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프랑은 내 옆에서 엎드린 자세로 팔을 괴고 잠들어있었다

3시간 정도 됐던가. 잠시 잠들어있는 프랑의 얼굴을 내려보고는 조심스레 나뭇잎을 따서 입에 넣어 조용히 씹었다.

17장이 남았다. 프랑이 일어나면 다시 나뭇가지 잘라와야겠네.

흐음.

뭐지? 뭔가 가슴이 작게 울렁울렁거리는게 얌전히 누워있질 못하게 만드는데.

잘하면 내일 비가 그칠 테고 못해도 3일 뒤면 해를 볼 수 있을 테니 그럼 12일째가 된다. 그리고 프랑이 알고 있는 은신처로 가는데 하루. 13일.

집에 돌아갈 수 있다.

동시에 가슴이 쿵덕거리면서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느낌은 설렘에서 오는 두근거림이 아니다!

뭐지?

이유를 알 수 없게 불안함이 밀려온다.

-……?-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니 그 기척에 눈을 뜬 프랑이 졸린 눈으로 날 올려보는 게 보인다.

……솔직하게 말할까?

“왠지, 왠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설렘이나 그런 게 아니라, 뭔가 불안 때문인 거 같은데…….”

내 말에 몸을 일으키며 잠기운을 쫓아낸 프랑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톡톡 치더니 기어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토실토실 달덩이가 두 개. 틈 사이 한 송이 꽃이 피어오른 골짜기가 보인다.

“…….”

나더러 여기서 기다리라고 한 건가? 그리고 자기가 주변을 살펴보고?

이윽고 좌우로 살랑거리던 프랑의 엉덩이가 눈앞에서 사라졌고 잠시 굳어있던 나는 조금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바람 가림막을 치우고 따라 나가니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프랑이 보였다.

안에서 기다리지 왜 나왔냐는듯이 공중에서 둥둥 뜬 채 입에 바람을 넣으며 말 안 듣는 동생을 보는 표정을 짓던 프랑은 얼른 다시 들어가라며 날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더 불안해서 그래요.

“불안할 땐 불안감을 해소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점점 불안감이 커져서 공황장애가 돼요.”

물론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다.

진짜 공황장애, 공황발작은 여러 가지 증상이 동반되면서 갑자기 일어나는 거지 지금처럼 서서히 가슴이 뛰며 불안감이 커지는 건 아니지롱.

그리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착한 프랑은 그런가? 하면서 위험해서 안 되는데……, 하는 표정이었지만 날 물리적으로 막을 수단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 주변을 천천히 떠다니기 시작했다.

“근데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별다른 이상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아요?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거나 하면 하지 말아요.”

내 말에 프랑은 화사하게 웃으며 머리를 살짝 끄덕이는데, 저건 걱정해줘서 기뻐하는 거지 하지 말란다고 안 하겠다는 표정이 아니다.

약간 골치가 아픈 걸 느끼며 망원능력으로 사방을 둘러봤지만, 딱히 별다른 이상은 안 보인다.

육안으로 절벽 아래를 바라봤더니 굉장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와 조금만 더 지나면 완벽한 호수로 변하겠네.”

절벽 아래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는데 수위가 11m까지 올라왔다. 조금만 더 차오르면 절벽 근처의 나무들은 대부분이 물에 잠길 거 같았다.

그 모습은 저~멀리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현상이야?

학교 다니면서 배우고 여러 가지 매체와 책으로 익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다. 분지도 아닌데 물이 점점 차오르는 현상이라니. 거기다 좌우가 좁은 협곡 형태도 아닌데.

물속을 들여다보니 폭포가 떨어져 내리는 곳만 여기저기 조그만 소용돌이가 나면서 물이 퍼져나가고 있을 뿐 유속은 물이 밀려나며 움직이는 수준이지 거의 고여있는 거 같다. 저 멀리 지면이 높은 곳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수위는 더이상 안 올라가겠네.

절벽 아래를 살펴보는 와중에도 조금씩 심장이 뛰고 있지만 생각할 거리가 생기니 약간은 진정이 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프랑을 돌아봤……더니 갑자기 골반이 눈에 들어와서 조금 놀랐다.

올려보니 공중에 떠서 내가 보고 있는 방향을 같이 바라보고 있는 프랑이 보인다.

“…….”

문득, 프랑의 영체를 만져보면 감촉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슨 용기에서인지 손을 들어 프랑의 엉덩이 쪽에 손을 갖다 댔더니 아무런 저항 없이 쑥 하고 프랑의 영체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러자 프랑은 시선을 내려 자기 아랫배 속에 들어와 있는 내 손을 한 번 보더니 날 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팔 자 형태로 올리고는 곤란하다는 듯이 이런, 못 말릴 개구쟁이 같으니. 하는 표정을 짓는다.

멋쩍은 기분에 손을 되돌려 머리를 긁적이니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몸을 내려 내 옆에 서는 프랑.

그리고 온몸의 솜털이 미친 듯이 곤두서며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뭐……야, 이건.

목이, 숨이 막힌다.

무언가, 무시, 무시한게, 날 주시하고 있는, 느낌이…!!

뻣뻣하게 굳은 날 보며 프랑도 뭔가 느낀건지 당황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제…길!

어질어질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탐색 능력을 돌려보려 하지만, 안개가 낀 것 처럼 희뿌연 느낌만 든다…!

그리고, 보였다.

저 멀리, 천천히 기어오는 거대한 이무기를.

이무기 이형종. 길이 약 350m 몸통 굵기 24m, 관자놀이 부근에 뒤로 사슴뿔 한 쌍이 나 있다.

두상과 몸체는 뱀의 그것, 입을 기준으로 위쪽 비늘은 검푸른 색. 아래쪽 비늘은 상아색. 아래턱에 3m가량 되는 하얀 털이 목덜미까지 수북히 나 있음. 피부는 뱀의 그것과도 같은 비늘.

벼락을 다루고 몸뚱이는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최고위 이형종 중 하나로써 적대적인 존재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없이 가차없는 죽음을 내리지만 적대적이지 않은 존재는 해를 끼치지 않고 살려 보내주는 관용을 지녔기에 용도 아닌 이무기지만 영물 취급을 받는다.

지금까지 발견된 이무기 이형종의 수는 넷.

이형 생물학에 등록되어있는 이무기의 등급은…….

최상위 이형종.

가슴이 미친 듯이 울렁인다.

이무기는 새파란 눈동자로 날 직시하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공격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반응도 안 보여준다던 이무기가,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뭘 했다고!!

머릿속으로는 도망가야 한다고 미친 듯이 경고성이 울리지만, 어디로 도망가? 사람이라는 종족이 상대할 수 없다고 알려진 최고위 이형종 중 가장 강한 존재인데?

그 커다란 몸뚱이 아래에 부서져 나가는 나무들이 보였는데 그제서야 나무가 부서지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빌어먹을 폭포 소리!! 폭포 소리와 빗소리 때문에 이무기가 다가오는 소리가 안 들렸어!

아니 그보다 씨발!! 어떻게 생겨 처먹은 곳이길래 최고위 이형종까지 있는거야!!!!

억울한 마음을 넘어선 분노가 공포를 억누르며 치솟아 오른다.

당시 세계 최강의 레이드 팀이라고 알려진 미국의 아크엔젤이 A급 능력자 셋과 B급을 포함해 총인원 500명으로 레이드를 시도했는데 마치 거대한 종이 울려퍼지는듯한 소리의, 단 한 번의 벼락으로 A급 능력자 셋을 포함해 400명이 재가되어 사라졌다고 기록되어있었다.

단 한 번의 전투 결과로 이무기는 최상위 이형종에 등극 되고 절대 엄금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렸다고 티비에서 봤다.

왜 나만 이런 꼴이 되어야 하나 억울함이 들었는데, 문득 중학생 때 학교에서 틀어준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위상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지금까지 위상 세계에서 죽은 인구수가 20억 명이라던가.

현실에서 많은 이유로 매년 죽는 사람이 연간 6천만 명인데 위상 세계가 나타나고 매년 평균 2천만 명이 죽어 나간다고 한다. 연간 8천만 명이나 죽으면서도 지구의 인구가 60억 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보고 많이 놀랐었지.

흐흐흐흐흐.

그래, 그중에 나처럼 좆같은 경우를 당해 죽은 사람도 분명 있겠지.

그럼 20억명중에 내 이름도 올라가게 되는건가?

이빨이 딱딱거리면서 부딪치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는 분노가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왜, 왜 나만. 다들 처음 위상 세계에 들어오면 중급은커녕 하급 이형종도 보기 힘들다고 하던데!

왜 나만!!!

이리저리 부러지고 휘어진 나무들의 틈 사이로 거대한 이무기의 모습이 보이지만, 망원으로도 감지가 되지 않는 걸 보니 300m 거리 밖인듯하다. 원근감마저 무시하는 그 모습에 허탈해진다.

남은 거리가 나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겠지.

어째서인지 날 계속 주시하고 있는 저 새파란 눈동자를 보니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도 굳어서 생각이 띄엄띄엄 끊어진다.

이성의 명령을 듣지 않는 몸뚱이는 뻣뻣하게 굳어 이무기의 퍼런 눈깔만 노려보고 있는데, 눈앞에 프랑의 얼굴이 나타난다.

프랑이 몸을 떠올려 나와 이무기 사이를 가로막으며 날 향해 처연한 미소를 떠올렸다.

저 미소는, 처음 프랑을 만났을 때 보던 미소였는데? 두 손을 기도하듯 꼭 쥔 손을 보니 점점 정신이 또렷해지는거 같다.

프랑의 모습에 이무기의 모습이 가려지자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커헉! 쿨럭 후욱! 후욱, 후욱.

문득 숨을 제대로 쉬고 있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숨을 크게 들이 쉬다었다. 차갑고 물비린내가 물씬 나는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프, 프랑?”

프랑은 내 얼굴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듯 잠시 바라보다가, 내 목에 걸린 그녀의 영혼석을 가르켰다.

어?

그리고 방향을 돌려 이무기를 가르킨다.

하…하하….

“무…슨 뜻이에요?”

눈치는 챘지만, 다시 물어본다. 하지만 프랑은 대답 대신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보다 활짝 웃었다.

…씨발. 프랑의 영혼석을 노리고 왔다고?

그러고선 목에 건 주머니를 풀어서 이무기에게 던지는 시늉을 하는 프랑.

그런 모습을 내가 말없이 보고 있으니 프랑은 울고 있는 눈으로 상냥하게 웃는데, 그 모습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것 같다...!

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눈을 감자 나의 긴장과 공포와 분노에 감응해 탐색능력이 최대한 넓어지며 범위 안의 모든것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이 흘러들어오는 정보에 머리가 아파왔지만 그딴 것보다 머릿속에 지난 2일간 함께 지낸 프랑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모습에 집중한다.

처연하게 웃던 프랑 환하게 웃던 프랑 삐진 프랑 화난 프랑 즐거워하는 프랑 놀란 프랑 우는 프랑 춤추는 프랑 색기 넘치는 프랑…….

눈을 뜨고 아래를 바라본다. 빠르게 흘러가는 물과 함께 등 뒤의 폭포에서 울리는 커다란 물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이무기를 노려본다.

아니, 사실 노려보면 적대하는 걸로 보일까 봐 최대한 평온한 모습을 가장하고 바라봤다. 하지만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은 기분이다.

프랑을 내게서 뺏어가려고?

천천히 기듯이 기어오는 이무기. 그 신체능력을 생각한다면, 무지막지하게 쌓여있을 저 양아치 이무기의 위상력을 생각한다면, 저 속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미 내 앞에 도착해 날 잡아먹던가 나에게서 프랑의 영혼석을 뺏어가던가 둘 중에 하나의 행동을 취했어야 할 시간인데 느긋하게 기어오는 모습에서 하나의 가설이 떠오른다.

어쩌면 느긋하게 기어오고 있다는 건 내 생각뿐일지도 몰라.

옆에서는 프랑이 눈물을 흘리며 얼른 영혼석을 넣어둔 주머니를 던지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아 정말. 프랑, 그렇게 안 봤는데 기억력 나쁘네요. 무엇보다, 프랑의 영혼석을 저 이무기한테 준다고 해서 얌전히 돌아가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난 프랑의 모습을 무시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쥔 채 입을 열었다.

“프랑.”

-…….-

“제가 했던 말 기억해요?”

-…?-

갑작스런 내 질문에 멍한 표정을 짓는 프랑.

“제가,  프랑 옆에 있을거라고 했잖아요. 현실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했잖아요.”

-…….-

아, 두 번째는 말로는 안 했던가?

내 말에 눈물을 펑펑 흘리는 프랑. 그 옆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이무기가 보인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분노가 끓어 넘친다.

심장이 벌컥거리면서 뛰고 숨이 가빠진다. 긴장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 휘몰아친다.

사실 만난지 고작 2일째인데다, 프랑은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포기하고 도망을 가는게 정상일거다.

하지만 버릴 수 없다.

손쉽게 읽힐 만큼 단순한 표정. 순진한 눈동자. 의심할 줄 모르는 착한 모습.

난 프랑한테 반해버렸단 말이다!

“그러니까, 안 버려. 포기 못 해.”

프랑 없이는 현실로 돌아간 다음의 일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단언하듯이 말을 꺼냈다!

“프랑, 넌 내꺼야. 저런 뱀한테 줄 수는 없어!”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날 보는 프랑의 눈에는 눈물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뛰어내렸다.

============================ 작품 후기 ============================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유령과의 의사 소통은... 무리겠죠?

옛날 우리나라 이야기에서의 처녀 귀신님들은 억울한 죽음을 사또에게 일러바치는 것도 가능했는데 프랑은 유령 0년 차라 어리버리해서 그런가 봅니다.

주인공도 눈치 귀신은 아니지만, 눈치 50단 정도는 될 것 같기도 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눈에 반한다는 이야기와 눈빛만 마주쳐도 마음이 통한다는 걸 좋아합니다.

…. 뭐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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