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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스-26화 (26/517)

00026  8일째. 은신처.  =========================================================================

프랑은 앉아서 구경해도 될 텐데 굳이 서서는 내가 나무를 긁어내면서 파내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지는 게 내가 나무를 파내는 속도가 믿어지지 않는가보다.

하긴, 지금 내 발밑에 껍질과 톱밥들이 수북이 쌓였다가 떨어지고 또다시 수북이 쌓였다가 떨어지길 1시간 동안 10번이나 반복했으니까.

파내는 것도 꽤 깊이 파내서 안에는 벌써 지름 80cm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혹시 이렇게 파내다가 나무가 똑! 하고 부러지는 건 아닐까 했지만, 나무의 중심부터 해서 깎아냈으니 난데없이 부러지거나 하진 않을 거다. 분석 능력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고.

분석 능력이 없었다면 반대쪽이 구멍이 날까 발톱 창이 부러질까 내가 지금 얼마나 팠을까 끊임없이 확인하며 조심조심하느라 1시간 동안 얼마 파지도 못했겠지. 대충 익숙해졌으니 30분 정도만 지나면 두명이 드러눕고도 여유가 있을 만큼 확장할 수 있겠다.

왜 2명이냐면 옆에 프랑도 누울 수 있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뿔 송곳으로 막 찍어내고 발톱 창으로 파내고 뿔 송곳으로 다시 찍길 반복하는 단순 작업 중에 프랑은 무릎을 세운 채 앉아서 무릎 위에 팔을 고정하고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날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톱밥을 쓸어내기 위해 나올때마다 눈을 마주쳐주며 방긋방긋 웃어주는데 저런 미녀가 응원을 해주니 절로 힘이 난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프랑 같은 미녀를 만나면 난 말을 걸기는커녕 그 자릴 피해줘야 할 정도로 외모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지금에야 위상력의 힘으로 피부도 많이 좋아져서 여드름 자국도 거의 다 사라지고 과체중도 줄어서 키에 알맞은 체격도 됐고 키도 170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키는 160cm를 겨우 넘는데 몸무게는 80kg에 가까웠었으니까. 얼굴도 통통한 게 나쁘게 보면 돼지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프랑은 신체 강화 능력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에 잘 짜여져 군살이라곤 전혀 없는 몸매와 풍만한 가슴에 가느다란 허리, 여성미를 보여주는 골반과 탱탱하고 동그란 엉덩이, 길고 쭉 뻗은 팔과 사슴 같은 다리는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거라고 할 정도였다.

현실에서 모아둔 야한 만화책이나 섹스 비디오에서도 프랑만큼이나 완벽하고 아름다운 몸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프랑의 몸을 끊임없이 훔쳐보고 머릿속으로 프랑을 괴롭히는 상상을 했지. 거기다 성격도 착하고 성실하고 자상하면서도 개구쟁이라는 사기적인 스펙을 갖췄으면서도 나 같은 놈에게도 진심으로 상냥하게 대해줄 정도의 성품까지 갖췄다! 현실에서는 학교 여자애들한테 무시당하거나 외면당하기 일쑤였는데….

거기에 몸가짐과 기품은 평범하게는 생성되지 않는 스탯이다! 좋은 것만 보고 먹고 배우면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야 생길까말까 하는 스텟인데 그걸 봐서는 집안도 좋을게 뻔하다! 풀네임은 안 가르쳐줬지만 아마도 영국의 귀족 집안이거나 재벌 집안의 자제일 가능성이 크겠지.

남자라면 그녀를 본 순간 100명 중 100명이 사랑에 빠지고 여자들마저도 우월한 외모에 굴복하고 성품에 감복해서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 엄친딸 중의 엄친딸이 프랑이었다.

여기서 죽은 건 신의 질투를 샀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르고 있을 프랑은 점점 넓어져 가는 굴 안으로 어느샌가 들어와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쌓여가는 톱밥 사이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톱밥 속에 몸을 숨기고 머리만 빼꼼히 내민다든가 하는 장난을 치고 있는 프랑을 훔쳐보며 열심히 나무 구멍을 넓히는 작업을 계속했다.

쪼그려 앉은 자세와 그다지 좋지 못한 작업 도구 때문에 몸이 뻐끈해졌지만 장난치면서 살짝살짝 보여주는 프랑의 가슴이라던가, 엉덩이라던가 흐뭇한 부분을 보니 힘이 절로 난다!

뿔 송곳의 길이는 20cm. 한번 찍을 때마다 10cm씩 나무를 파고들어서 총 9번을 찍어서 길이 2m가량을 파내고 폭은 1.5m를 파내서 두 명이 나란히 누워도 넉넉하게 파냈다.

높이는 내 앉은키가 106cm라서 일단 그에 맞춰서 파냈는데 생각해보니 그냥 나뭇가지를 깔고 누우면 등허리가 베길꺼 같아서, 내 허벅지 굵기의 적당한 나뭇가지, 이걸 나뭇가지라고 할 수 있나? 아무튼, 통나무들을 구해와서 세로로 쪼갠 다음 그 굴곡에 맞춰 바닥을 반원 모양으로 열심히 파냈다.

그리고 그 위에 세로로 쪼갠 통나무를 평평한 면이 위로 향하도록 올렸더니 왠지 나무마루 바닥이 생각날 만큼 딱 맞게 만들어져서 내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천장을 마저 깎으면서 천장은 평평하게 깎지 않고 수액이 비스듬하고 벽을 타고 내려가도록 세모꼴로만 파놨고 톱밥도 잔뜩 쌓아 이부자리로 만들어서 끝!

여기까지 만드는 데 3시간이 걸렸다. 그야말로 딱따구리도 울고 갈 속도군!

천장이나 벽에서 새어 나온 수액은 벽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고이게 됐는데… 생각해보니 수액이 계속 흘러내리면 차오를 거 같아서 뿔 송곳으로 입구에 홈을 만들어 바깥으로 통하는 구멍을 파놔서 밖으로 수액이 흐르게 고쳤다.

프랑은 놀라는 것도 지쳤는지 내가 만든 나무기둥 방안에 편히 앉아 날 바라보고 있었는데 작업이 끝나자 한쪽 손으로 바닥을 살짝 두드리는 게 와서 앉으라는 표현 같다.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톱밥투성이인걸 눈치채고는 밖에 흐르는 빗물에 손을 씻고 머리도 털어낸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가서 앉았는데 새삼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자 프랑은 수고했다는 듯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손으로 머릴 쓰다듬어주는 게 아닌가. 나무를 파내고 통나무를 옮기면서 쌓인 피로가 날아가는 기분이다.

“이 정도면 4일은 버틸 수 있을거에요. 비상식량이랑 나뭇잎도 많으니 식사 걱정도 없을테구요.”

끄덕

난 지친 육신에 휴식을 주기 위해 벌렁 드러누웠다. 약간 보슬보슬한 톱밥의 감촉이 거슬리긴 하지만 교복이 마르고 그걸 입으면 신경 안 쓰이겠지. 입구를 세로 90m에 폭 50으로 만들었지만, 방향을 약간 틀어서 수해 쪽도 볼 수 있게 해놨는데 프랑은 그게 마음에 드는지 비스듬히 앉아서 왼팔로 바닥을 짚고 수해 쪽을 한동안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기분도 싱숭생숭하겠지. 내가 이대로 생존에 성공하면 그녀도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원래는 방을 완성한 기념으로 위상석을 가지고 프랑의 성감대를 찾아내려고 했는데…….

관두자. 센티멘탈해진 여자를 건들면 돌아오는 건 후회뿐일 테니까. 물론 누나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

몇 시간을 밖에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오랜만에 탐색 능력을 풀로 발휘해서 정신을 집중했다. 물론 탐색 능력을 돌리면서 주변 경계를 안 한 건 아니지만, 프랑에 대해 집중한다고 감지보다는 망원 능력을 더 많이 돌렸거든.

각성하고 난 후 일어났던 일들을 비롯해 절벽에 올라온 후 오늘까지 있었던 사건 사고들을 떠올려봤다.

어제도 생각했지만, 프랑을 만나기 전에는 새삼 정신이 나갈 만큼 무시무시한 양의 잡생각과 망상이 흘러다녔었군. 게다가 밤에 잠을 못 잤더니 그 증상이 조금씩 심해진 거 같고….

사람은 잠을 자면서 체내 시계를 리셋하고 필요 없는 기억은 뇌에서 삭제하는 등의 날짜 변경작업을 하는데 4일째 밤부터 지금 8일째 점심까지 한숨도 못 잤으니까. 생각하다 보니 4일 전에 일어났던 일이 꼭 어제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슬쩍 눈을 떴더니 언제 왔는지 프랑이 내 옆에 앉아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뜬 직후에 보인 그녀의 눈에는 다행이라는 감정이었는데 내가 눈을 뜨자마자 곧 실망? 하는 눈빛이 됐다. 내가 잠든 줄 알고 안심했는데 그게 아니라 계속 깨어있었다는걸 알게 돼서 하는 실망인가?

그녀의 눈을 보면 새삼 궁금해진다. 그녀는 나에게 왜 저렇게 마음을 써주는걸까. 마치, 날 좋아하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신을 현실로 돌려보내줄 수단이라서?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그 뒤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오리란걸 알고 있을텐데, 좀 더 기다려도 되지 않나? 위상석에 혼이 깃들어버려서 그런가? 위상석을 다른 이형종이 먹어버리면 존재가 사라질까봐?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프랑은 입을 방긋 방긋하면서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지치고 귀찮아진 기분이라 눈을 다시 감았다.

헉?!

눈을 감자마자 동쪽 80m 밖에서 무언가가 땅을 뒤엎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높이가… 12m?!

눈을 뜨고 망원 능력을 켜며 동쪽으로 머릴 확 돌렸더니 그사이에 눈이 동그래지면서 상체를 뒤로 당기는 프랑이 보였지만! 동쪽을 보니 시야에, 뭐야!? 해일?!

순간 해일의 높이와 나무 방의 위치를 생각해보고는 나무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났다.

나는 팔을 팔자 방향으로 쫙 뻗어 나무 벽에 대고 다리도 팔자로 벌려서 사지를 벽에 대고 몸을 지지한 상태로 버티면서 내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하고 손을 어찌하지도 못한채 살짝 들고 있는 프랑에게 외쳤다!

“프랑! 저한테 붙어요!”

프랑은 중력에 영향을 받으니 팅겨 나갈지도 몰라! 내 외침을 듣자마자 프랑은 몸을 날려 내 위에 올라타듯 덮쳤…는 데 역시나 내 몸을 통과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12m 높이의 해일이 나와 프랑이 숨어있던 나무 밑둥을 치고 지나갔다! 무시무시한 속도다! 그와 동시에 나무가 파르르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

콰르르 쿵 르르르 쿵 르르 쿠쿵르르르 쿵 쿠웅 쿵

물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도중에도 뭔가 커다란 게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다시 눈을 감고 탐색 범위를 넓혔더니 육지 해일을 따라 내 몸통만 한 바위 수십 개가 굴러오며 주변의 나무에 몸통박치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커다란 바위가 나무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큰 건 그야말로 집채만 한 사이즈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무에 부딪힌 바위는 그대로 나무를 부러트리며 지나갔고 땅에 몸통이 부러지며 쓰러진 나무는 해일에 밀려 내려가다 다른 나무에 걸리면서 멈췄는데 그 모습이 80m 내의 몇 곳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감지 범위에 들어오는 모든 절벽이 초대형 나이아가라 폭포로 변해 무시무시하게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

푸르르 떨리다가 물살에 조금씩 흔들거리는 나무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으려니 식은땀이 흐르고 오한이 들기 시작한다.

이틀, 아니 하루만 늦게 올라왔어도 나는 저 육지 해일에 휩쓸려 죽어버렸을 거다.

올라오지 않고 그대로 절벽 아래 숲의 개구멍 속 굴에 숨어있었더라면 지금 이 순간 쏟아져 내려오면서 굴속으로 들이닥친 해일에 익사해 죽었을 테고, 어제 절벽을 올라왔다면 프랑을 만났을지는 둘째치고 돌아다니다가 쏟아지는 비에 투덜거리다 육지 해일에 휩쓸려 다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이리저리 치어 죽었겠지. 아니면 해일과 함께 굴러오던 바위에 찍혀 터져 죽었던가.

거기다 프랑을 만나 여기까지 안내받지 못했다면 상대적으로 작은 나무 위에서 공포에 미친 듯이 떨고 있었을 내 모습이 떠오른다.

“후우.”

천천히 나무의 흔들림이 멈추며 미친 듯이 흘러가는 유속에도 꼿꼿히 몸을 세우고 있는 나무가 새삼 고마워졌다. 이렇게 몸통에 구멍을 낸 게 미안해질 정도로.

수압에 약간 흔들거리길래 분석을 해보니 전혀 문제가 없다. 대지도 단단하고 뿌리도 깊고 굳다. 기울거나 뿌리째 뽑혀나가는 일은 없을 거 같다.

있다고 해도 해결방법 따윈 없지만.

아, 통나무 하나 잘라서 그거에 몸을 싣는 수뿐인가?

내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프랑이 살짝 머리를 들어서 날 돌아봤는데 아마 누가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소형 트윈헤드 오우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무지 가까운 거리에서 프랑의 당황에 떨고 있는 큰 눈과 그린듯한 작고 귀여운 눈썹을 보니 이제 괜찮다고 안심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근데, 해일 때문에 놀라서 당황한 게 아닌 거 같은데? 마치 날 보며 당황한 걸로 보인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나무도 튼튼해서 수압에 밀려 넘어지거나 뽑힐 염려도 없어요.”

자리에 앉으며 말을 하자 프랑도 겹쳤던 내 몸에서 일어나 내 앞에 정자세로 앉아 주먹을 쥐고 무릎 위에 올린 자세는, 뭐랄까. 일본인들이 자주 취하는 정좌 같다.

그런데 눈빛이 맑고 강하게 빛나면서 날 보고 있는데 그 눈을 봐도 감정이 읽히지 않는다. 거기다 뭔가 강한 결심이 느껴진다.

마치 경건하고, 으음…. 한가지 감정이 더 있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네.

“프랑?”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눈으로 날 똑바로 바라봐주는 게 기쁘긴 한데, 쪼끔 압박이 느껴진다.

살짝 눈을 감았다가 뜨더나 양손을 펴서 모아 바닥에 대고 상체를 굽힌 다음 손위에 이마를 닿게 하는 모습이, 나한테 절을 했다! 무슨 뜻이지?

난 당황해서 머뭇거리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곧 머리를 든 프랑에게 당혹스러워하면서 물었다.

“프, 프랑? 갑자기 뭐에요?”

이윽고 상체를 세운 프랑은 내가 처음 보는 자연스럽고 우아한 웃음을 지으며 날 흔들림 없는 눈으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프랑의 행동은……. 일단 이해가 안 가니 제쳐두고 움직이면서 흘린 땀과 그 위를 흐른 식은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뺏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바람도 살살 불어오는 게 춥다!

셔츠와 교복 마이는 진작에 회수해서 투창기용 창에 걸어 한쪽 벽에 세워뒀지만, 아직 마르지 않아서 입으면 안 되고. 다행히 발톱 창도, 창 집도 나무 방에 들여놔서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뿔 송곳은 내 허리춤에 차고 있었고.

난 그쪽을 바라보면서 양손으로 피부를 마찰시키다가 옷 옆에 세워둔 발톱 창을 들고 방 밖을 나섰다.

그러자 프랑은 나가면 위험하다며 자기 몸으로 입구를 막아버렸는데, 내가 아무래도 떨어져서 거대한 하나의 폭포로 변해버린 땅에 휩쓸릴까 봐 그러는 거겠지.

근데 왠지 움직임이 적극적이고 몸을 완전히 드러내는 데에 거부감이 없어진 모습이 좀 당황스럽다.

“이렇게 있다간 계속 바람에 체온을 빼앗길 거 같아서요. 근처에 있는 나뭇잎이 많이 달린 나뭇가지로 막아야겠어요.”

내 말에 표정이 마치…. 또 처음 보는 표정인데. 감정을 못 느끼겠다. 갑자기 난이도가 누나만큼이나 올라간 거 같은데! 마치 입으로는 응하면서 눈으로는 아니! 라고 하는 누나를 보는 거 같다!

근데 시무룩해지면서 몸을 옆으로 비키는데, 어어……. 진짜 뭐지? 왜 실망하는 거야?

끄응…….

아 몰라. 일단 간이 바람막이부터 만들자.

프랑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발이 미끄러져서 떨어질까 봐 극도로 주의하며 탐색 능력을 풀로 돌려서 내 상체만 한 잎사귀가 붙어있는 모양이 파초선 같은 나뭇가지 하나와 그보다 작은 부채모양의 나뭇가지 다섯 개, 그리고 식사용으로 뜯어먹을 나뭇잎이 많이 달린 가지 하나를 잘라 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래를 잠깐 내려다봤는데 흙탕물이 거세게 휘몰아치며 흘러가는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진짜 떨어졌다간 뼈도 못 추릴 거 같군. 근데 이 물은 다 어디서 오는 거야?

나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잘라온 임시 바람막이들에 맺힌 빗물을 툭툭 털어서 턴 다음 차곡차곡 붙이고 끼우고 꼬아서 70cm 높이의 바람 가림막을 만들어서 입구에 세웠다.

그랬더니 빛도 함께 막으면서 상당히 나무 방 안이 어두워졌지만 약간씩 발광하고 있는! 프랑 덕분에 완전히 어두워지진 않았다.

신기하게 자체발광하고 있는 프랑 양은……. 아직도 입구 옆에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정좌를 한 채 날 보며 앉아있었다.

이 분위기는 마치, 착하고 성실하고 자상하고 개구쟁이 같은 성격 중에서 성실함이 전면으로 나온 상태 같은데?

그래서 난 갑자기 바뀐 프랑의 분위기를 바꿔볼 겸 말을 걸었다.

“와아. 바람막이 설치하면서 좀 어두워질 거 같았는데 프랑 조명 덕분에 은은한 게 딱 잠이 잘 올 거 같은 분위기네요!”

방긋

…약간 심통 난 표정을 지을 거라 예상했는데.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와서 당혹스럽다. 우아한 미소를 살포시 머금은 채 날 바라보는 프랑을 보니 어중간한 심술궂은 놀림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으음. 저 경건한 모습과 자애로운 표정을 무너뜨리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마지막 방법뿐인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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