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5화 (25/517)

00025  8일째. 은신처.  =========================================================================

아침 7시가 되었지만 처음 내리기 시작했을 때의 폭우에 비교하면 약간 줄었지만 말 그대로 약간이다. 끊임없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를 보고 있으려니 아무래도 오늘은 이동하긴 그른 거 같다.

처음 비가 내릴 땐 그나마 구름 반 하늘 반이었는데 지금은 먹구름밖에 안 보인다.

교복 마이와 셔츠는 내리는 빗줄기에 두드려 맞아 어느 정도 흙탕물이 빠져나갔는데 가슴 앞섶과 여기저기 묻은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시뻘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빗물이 나뭇잎을 타고 점점 이쪽을 침범해와서 위치를 바꿔 물이 들이치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간밤에 투창기와 1m 길이의 투창을 7개를 만들었는데 작업을 하다보니 중간에 배가 고파져서 비상식량 벨트를 한입 베어 물었었다.

내가 벨트를 뜯어먹는 모습에 프랑이 화들짝 놀라면서 손을 뻗어 내 손에 들린 벨트를 막 휘저었는데 놀란 눈으로 벨트를 씹으며 그런 프랑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 손으로 나무에 달린 나뭇잎을 필사적으로 가르켰다.

“나뭇잎을 먹으라구요?”

끄덕끄덕!!

그녀도 식용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구나. 뭐 이세계 생존학과 이계 생물학이 정식으로 배포되기시작한것도 오래됐으니까.

머리를 붕붕 소리가 날 만큼 끄덕인 그녀는 얼른 입에 든 걸 뱉고 나뭇잎을 뜯어먹길 바라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대로 뒀다간 울어버릴 거 같아 입안에 든 벨트 조각이 튀어나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이 벨트는 위상 세계에 처음 끌려들어 갈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 식용 벨트에요.”

눈가에 눈물을 방울방울 매달고 있던 프랑은 눈이 동그래지며 입을 살짝 벌렸는데 그 덕분에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잽싸게 그쪽으로 손바닥을 내밀었지만 내 손바닥에 닿기 전에 연기가 돼서 프랑의 연기 오라에 흡수되어버리길래 쩝 하고 손을 회수했는데 그 손을 바라보던 프랑은 이내 설명해달라는 듯이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우. 확 뽀뽀해버리고 싶어지는 비주얼이네! 그랬다간 미움받을지도 모르니 하면 안 되겠지만!

“이건 순수 소가죽 벨트에요. 그리고 특수 가공을 통해 손가락 한 마디 분량을 뜯어먹으면 한 끼 식사분의 칼로리를 보충할 수 있는 거에요.”

눈이 커지면서 입도 살짝 벌어지는 게… 60년 전에는 이런 게 없었나 보다.

“어떤 특수가공인지는 모르지만 먹는 데는 별문제가 없어요. 게다가 계속 씹으면 의외로 소고기 육포 맛도 나구요.”

비린내 때문에 처음 입에 넣으면 역하다는 건 알려주지 말자.

열심히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다보니 문득 위상력이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해졌다.

딱히 쓸데도 없지만 그래도 별달리 유흥거리가 없다보니 소일거리 겸 체크해봤는데 397에서 35가 오른 432가 되어있었다.

뭐야 이거? 위상석과 피부접촉을 안 하고 가까이 있으면 1시간에 4 정도 오르지 않았었나? 어제 자정에 프랑을 만난 뒤로 한 번도 위상석을 손에 쥐지 못했지만 31시간이 지났으니 못해도 124는 올라서 521은 되야하는데?

뭔가 이상해져서 위상석을 꺼내 손에 쥔 다음 몸 안으로 들어오는 위상력의 양을 감지해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흘러들어오는 양이 기존의 1/10 이 됬다는걸 알 수 있었…….

1/10?!

어떻게 된 거지? 왜 10%까지 떨어진 거야? 위상석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

난 위상석을 만지작거리며 위상석으로 분석을 돌려봤다. 그랬더니 뭔가.... 어, 프랑 때문인가?

프랑의 혼이 위상석에 묶이면서 위상석에서 흘러나오는 위상력이 줄어든 건가?

난 위상석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1. 이 위상석이 존재하는 한 프랑의 혼은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

2. 위상석은 끊임없이 위상력을 뿜어내며 시간이 갈수록 위상력이 줄어들고 크기도 작아진다.

3. 프랑의 혼이 위상석에 들어오자마자 배출되는 위상력의 양이 줄어들었다.

결론. 프랑과 지낼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났다!

결과를 내고 눈을 감은 채 끊임없이 위상석을 만지작거리며 분석을 해본 결과 내가 위상석을 직접 접촉 중이든 사이에 뭔가로 막혀있든 위상석은 끊임없이 시간당 1의 위상력을 내뿜었다.

그 위상력은 주위에 내가 있으면 전부 다 흡수해버리니 예전처럼 20의 위상력이 퍼져나오면 그중 직접 피부에 접촉 중일 때 만 흡수하는 양이 8밖에 안 됐었고 만약 피부와 떨어져 있다면 흡수율은 굉장히 떨어져 4까지 내려갔었다.

한데 이제 조건이 바껴서 위상석의 위상력 배출량은 1이 됐고 흡수량은 피부에 접촉했든 떨어져 있든 거리만 가까우면 전부 흡수 할 수 있게 됐으니 효율면에서는 오히려 좋아진 셈이다!

눈을 뜨고 프랑을 돌아보며…. 프랑?

내 옆에 같이 나무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던 프랑을 돌아봤는데.

왠지… 프랑의 모습이 살짝 밝아진 거 같은데? 이전에는 어두운 회색과 그냥 회색, 밝은 회색이었다면 지금은 회색과 밝은 회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에 몸을 비비 꼬며 양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운 채 꼼질꼼질 거리면서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린 게…….

무진장 야해 보여!! 왠지 성적으로 기분이 엄청나게 고조된 거 같은데?!

“프랑?”

놀란 내 목소리에 프랑도 깜짝 놀라더니 날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면서 허둥거리다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놀라서 팔을 막 휘젓고 다리에 힘을 줘서 안 넘어가려 했지만 몸이 너무 기울었어! 기겁해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팔을 잡으려고 했지만 내 손은 그대로 그녀의 팔을 뚫고 몸을 지나쳐버렸고 놀라고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날 보며 그녀는 결국 뒤로 완전히 넘어가며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프랑!!”

뒤로 떨어진 프랑을 향해 나도 뛰어 내려가…려 했는데, 그녀의 모습이 안 보인다! 아무리 떨어진다 해도 떨어지는 모습이라도 보이는 게 정상인데?! 쏟아지는 빗방울만 시야에 들어와서 아래쪽을 살펴보고 있는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약간 투명하고 길고 가녀린 손이 내 얼굴 옆에서 튀어나와서는 살랑살랑 흔드는 게 아닌가.

그쪽을 돌아보니 프랑이 민망하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나뭇가지 위에 서서 상체와 무릎을 약간 굽히고 날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아….”

맞아, 프랑은 유령이었지.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고 위상석 옆으로 순간이동도 되고 무엇보다 죽었으니 떨어져도 안 다치잖아.

난 눈을 감고 차갑게 식은 손을 들어 올려 열이 오른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내 말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눈꼬리가 한껏 내려가는데 마치 혼나는 강아지 같은 표정이라 더는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게다가 순간적이지만 그녀가 유령이라는 사실을 깜빡한 것도 나였고.

하지만 프랑은 내 행동에 적이 감동받은 눈치였다!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하는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기분이다.

그녀는 방긋방긋 웃으며 자세를 고쳐앉은 내게 다가와 바짝 붙어 앉았다. 그리고는 계속 눈웃음지으며 다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뭐 그녀가 기분 좋아 보이니 나도 좋네.

근데 아깐 왜 그런 표정을 지은 거지? 꼭……. 오르가슴을 느끼는 표정이었는데.

“근데 아까 왜 그런 표정을 지은 거에요?”

움찔

움찔했다?! 방금 움찔했어!

설마?! 그거 맞지?! 근데 뭐 때문에 느낀 거야?

슬금슬금 고개가 돌아가고 하늘하늘거리던 다리도 딱 멈추고 허벅지를 오므린 게, 무슨 특별한 상황이 있었나?

잠시 머릿속으로 기억을 돌려 차근차근 살펴보다 보니 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게 이거구나 싶었다.

위상석.

내가 한참 생각하는 와중에 손은 쉬지 않고 위상석을 만지작거렸는데, 이거 때문인가? 프랑의 혼이 위상석에 매여있고 아까 분석을 했을 때도 위상석의 중심부에 뭔가 이질적인 기운이 있었으니까!

나는 확신범이 되기 위해 다시 손가락을 놀려 위상석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프랑?”

움찔! 흠칫! 흠칫!

손가락을 열심히 놀리며 프랑을 바라보고 있으니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어깨가 움찔거리고 허리가 흠칫흠칫 거리는 걸 보니 위상석을 만지면 프랑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게 확실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이렇게 쌓인 욕망을 엉뚱하게 풀어헤칠 수단이 생기다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누가누가 더 병신인가 자랑하는 개인 SNS를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단연 압권은 자신의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SNS였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취향 중에서는 여성을 성적으로 괴롭히고 안달 나게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정신적인 흥분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것에 맛 들이게 되면 정상적인 섹스로는 성적인 흥분을 만족시킬 수 없어 점점 변태의 길로 빠져든다고 했다.

하지만 프랑은 육체가 없잖아? 그러니 이렇게 로라도 괴롭혀보고 싶어! 저 예쁜 얼굴이 오르가슴으로 무너지는 게 보고 싶어!

그러니 지금 들킬 수는 없다. 마음을 굳히고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

들켰다가는 대놓고 그녀의 영혼의 성감대를 주물럭거릴 수 없게 되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모르는 척 넘기는 거다!

“흐음? 그나저나 날씨가 안 좋네요. 비에 위상력도 진짜 조금이지만 섞여 있는 거 같은데, 계속 맞으면 좋으려나? 프랑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면서 위상석을 만지작거리는 건 잠시 중지.

내 말에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그때 프랑의 얼굴은 뭔가 안타깝고 애가 타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안심하는 표정이 섞여 있었다.

후, 떡밥을 물었군.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리고 수해를 바라보는 척하면서 태연한 모습으로 다시 프랑의 성감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비가 멈출 생각을 안 하네요. 이 상태로는 프랑이 말한 은신처에 못 갈 거 같은데.”

밀려오는 자극을 억지로 참으려는 듯이 한껏 허벅지를 오므리고 허리가 휘며 상체가 비틀리지만, 필사적으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버티는 프랑.

강약을 조절하며 약간 오돌토돌 나 있는 위상석의 돌기를 엄지로 살짝 쓸듯이 스쳐나갔더니 프랑의 다리가 갑자기 쭉! 하고 펴지는데 나도 깜짝 놀랄뻔했다! 거기다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는 게 절정에 달한 듯 보이는데?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랫입술을 살짝 깨무는 모습이 굉장히 고혹적이라 만약 그녀에게 육체가 있었으면 당장 덮쳐버렸을 정도로 심장이 떨리는 자태였다!

안돼. 이러다 프랑이 날 보면 들킨다!

난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자리를 바꿔 등을 나무에 기대고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았다. 내가 움직이는 소리에 프랑은 흠칫하더니 빠르게 자세를 다듬고 눈에 묘한 열기를 담은 채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시 내가 자세를 잡는 모습을 아무 표정 없이 바라보던 프랑은 시선을 내려 내 양손으로 쥐고 있는 위상석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는데, 조금 의심을 하기 시작한 거 같았다.

눈과 표정을 숨길 줄 모르는 그녀는 내가 자신을 농락했다는 걸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위상석을 만지면 자신의 몸에 자극이 온다는 걸 내게 들켰을까 봐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어쩜 저리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착한 성격일까. 그런 프랑을 가학심에 못 이겨 괴롭히다니, 조금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가학심을 충족시켜서라도 성적 흥분을 가라앉혀야지 안 그랬다간 프랑 앞에서 뭔가 큰 실수를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거든!

아무튼 누나 덕분에 익힌 캐치마인드(가칭)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눈과 표정에서 감정을 읽고 성격과 대화의 반응을 파악해서 눈으로 하는 말을 눈으로 캐치하는 캐치마인드(가칭!)!

이 캐치마인드(가칭!!)는 누나가 마법에 걸린 날 눈으로 전하는 말을 제대로 캐치 못 하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기에 자연히 몸으로 익히게 됐는데, 누나에 비하면 프랑 정도는 너무 읽기 쉬운 대상이다.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

8년 동안 시달리며 내 눈물을 뽑은 것은 이때를 위한 거였구나.

누나, 땡큐!

“아 이거요?”

내 반응에 흠칫 놀라며 떨리는 눈빛으로 나와 위상석을 바라보는 프랑. 그녀의 성격이라면 내가 자신의 감정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위상석을 피부 접촉하고 있으면 위상석에서 흘러나오는 위상력을 몸으로 흡수하기 더 쉬워지거든요.”

아직도 조금씩 떨리는 눈동자를 보면 이정도 설명으로는 저 긴장을 풀어줄 수 없다는 건가? 그럼 좀 더 덧붙여줘야지. 저렇게 계속 긴장하면 나도 위상석을 더 주무르기 힘들어지니까!

“그래서 위상석을 얻고 나서는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손에 쥐고 위상력을 받아들였는데 어제 프랑을 만난 뒤로는 한 번도 흡수를 못 해서요.”

그러면서 위상석을 살짝 들어 올렸는데 그제서야 그녀의 동공의 떨림이 멎어가는 게 보였다.

후후, 내 말을 믿은 거 같다. 사실 내가 말한 건 전부 사실이니까. 만약 프랑이 거짓을 꿰뚫어보는 진실 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틀리거나 잘못된 점은 찾지 못할 것이다! 후하하하하!

“여긴 비가 한번 오면 많이 오는 편인가요?”

그러면서 말을 걸어 생각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것은 기본!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엥? 한번에 많이 온다면.... 우기가 있는 건가? 뭐 날씨를 보면 여름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여긴 절벽 위니까 물난리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그런데 프랑은 살짝 눈을 찌푸리며 계속 생각을 하는 게,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왜 저러는 거지? 그 우기가 언제 시작하는 건지 계산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데 저렇게 생각에 잠길 정도면 간단히 생각하고 넘길게 아닌가보다.

하지만 40끼 분량의 비상식량에 나뭇잎도 한가득인데다 내리는 비까지 생각하면 식수 걱정도 없고, 절벽이 40m 옆에 있는 게 조금 꺼림칙하지만, 잠시 망원능력으로 지반을 훑어봤는데 지금 올라와 있는 나무들만큼이나 큰 나무가 주변에서 땅속에 마구마구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다른 나무들의 뿌리도 잘 뻗어있는 모습이 절벽이 무너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았다.

생각이 끝난 프랑은 날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지반 침식이나 홍수, 식량 같은 문제 때문도 아니고, 그런데도 날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혹시 이런 빗속을 돌아다니는 이형종이라도 있는 건가?

아! 어쩌면 절벽이 무너질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지반을 볼 방법이 없을 테니까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

내 말에 잠깐 눈빛이 밝아지더니 머리를 끄덕 끄덕거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프랑.

절벽이 아니야? 하늘이면 비?

“비 말인가요?”

끄덕끄덕!

“이 정도면…… 홍수가 날까 봐 조금 걱정되긴 한데. 여긴 나무도 두껍고 큰 데다 높아서 물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은데요?”

그러면서 아래를 내려보니 이미 물길이 생겨서 절벽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혹시나 해서 망원 능력으로 땅 위를 스치듯 돌아보니 조금이지만 확실히 절벽 아래쪽으로 경사가 나 있었다.

이러면 오히려 물이 고여서 물바다가 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데. 아아! 절벽 아래 강에 퇴적물이 많이 쌓인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구나.

내 말을 들은 프랑은 다시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날 가르켰다가 몸을 떠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내가 비 때문에 몸이 젖어 감기에 걸리거나 몸 상태가 악화되는걸 걱정했나 보다.

심술궂게 놀리고 그녀의 알몸을 음흉하게 보는 것도 모자라 위상석을 가지고 그녀의 몸에다 장난까지 치는데도 그녀는 날 걱정해주고 있었다.

세 번째는 몰라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녀도 알고 있을 텐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는 검지로 뺨을 긁으며 주변을 훑어봤다.

어쩐지 부끄러워서 그녀의 눈을 못 보겠어.

“흠 그럼 나무를 파내서 그 안에 들어갈까요? 나무 지름이 밑둥은 8m가 넘고 지금 있는 위치도 5m 정도 되니 속을 파내서 들어가면 될 거 같은데.”

그러자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고개를 막막 끄덕거리다가 문득 멈추는 게, 나무를 파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나에게는 겁나 단단한 뿔 송곳과 무진장 날카로운 발톱 창이 있지!

“이런 비가 오랫동안 내리나 봐요?”

내 말에 프랑은 표정을 살짝 굳히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가락을 접어 2와 4를 순서대로 보여줬다.

“자정부터 내렸는데, 혹시 2시간에 4시간?”

도리도리!

하긴, 오래 내린다는게 고작 몇시간 단위일리가 없지.

“…24시간?”

도리도리도리!

헐, 평범한 비라도 24시간동안 내리면 곳곳에 침수가 일어나는데 이런 양으로 24시간이 넘게 내린다고?

“설마 2일에서 4일이라구요?”

끄덕끄덕!

“우와. 절벽 올라오길 천만다행이었네.”

최장 4일까지 비가 온다는 말에 놀라서 중얼거렸는데 그제서야 프랑도 굳은 안색을 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빨리 나무 방을 만들어야겠다. 바람을 가릴 수단도 조금 생각해둬야겠어.

프랑말대로 이 상태로 축축하고 습기에 가득찬 비바람을 맞고 있으면 몸상태가 무진장 나빠지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끝장일테니까.

발톱 창을 들어 파야 할 곳의 나무 조직을 분석하고 발톱 창의 내구도도 분석해봤다.

조심스레 긁어내듯이 파면 발톱 창의 끝 부분이 부러진다거나 하진 않는다는 결과가 나와서 딱따구리가 된 기분으로 먼저 뿔 송곳을 꺼내서 들어갈 부분을 막 찍어대기 시작했다.

일단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칠지도 모르니 입구는 나뭇가지에서 30cm 높이부터 파기 시작해서 최대 높이 90cm에 폭 50cm를 뿔 송곳으로 긁어서 파내야 할 곳을 표시했다. 입구는 좀 길게 만들고, 나무 중심부터 확장시켜나가는게 좋겠지?

“입구는 좁게 만들고 안을 파고 들어가면서 점점 넓게 만들면 될 거 같아요. 바닥은 적당하게 긴 나뭇가지 구해서 다듬은 다음에 바닥에 깔면 습기나 수액 때문에 찐득거리지도 않을 테고.”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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