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7일째, 유령 아가씨. =========================================================================
잠시 육안으로 눈앞의 여자 유령을 살펴보다가 탐색 능력을 돌려 다시 눈앞에 보이는 여자 유령을 감지해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 느껴질 뿐 유령의 구성성분 따위는 알 수 없었다.
양손은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서 늘어트리고 편안해 보이지만 왠지 기품있어 보이는 자세로 서 있었는데 약간 슬픈 듯이 미간을 아주 살짝! 찌푸리고 눈썹 끝을 늘어트린 채 입가로 처연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유령 아가씨는 나이를 봤을 때 나보다 한참 위의 누나로 보였다.
왜 여기서 나타난거지? 아니, 위상 세계에서 유령을 봤단 기록은 못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봤지만 뜬금없이 내 앞에 나타난 유령아가씨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두번째 단추부터 잘못끼워지고 있는 이 세계를 생각해보면 뭐.... 그러려니 해야하나?
근데 왜 벗고 있냐고.
안보는 척 슬쩍 전신을 스캔해봤더니 키는 나랑 비슷한 165 정도로 보이고 가슴은 80D는 되어 보일 만큼 큰데 늘어지거나 짝짝이 가슴이 아니라 그야말로 달 덩어리 같은 모양에 자그마한 유두와 유륜이 어울리는 예쁜 가슴이었다.
허리는 우리 누나만큼이나 가늘다. 저 허리에 어떻게 내장이 다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큰 가슴 아래 약간 드러나 있는 갈비뼈를 지나 약간 통통한 허리 아래 예쁜 선을 그리며 동그랗게 발달된 골반은 완벽한 S라인을 보여주는데 일부러 골반을 작게 보이려는 듯이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그 뒤에 오른쪽 다리를 살짝 뒤로 겹친 자세였지만. 이쁘고 예쁜 게 가린다고 가려지나?
아랫배 쪽에 손을 가지런히 모았는데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과 티 없이 깨끗한 손을 보니 고생하면서 자란 사람의 손 같지는 않다.
그 아래 위치한 여자의 계곡을 보니 털이 약간 나 있는 치골 아래 갈라진 보지를 두고 양쪽으로 길고 곧게 뻗어있는 다리는 어째…. 본 듯한 기분이 드는 아름다운 여체였다.
반투명하면서도 회색빛의 영체라서 질감까지는 느껴지지않지만 무지무지 야하고 예쁜 예술품을 보는 느낌이다. 덕분에 무서움도, 긴장이나 공포도 날아가버리고 침착해질 수 있었는데 시선을 올려 유령 아가씨의 얼굴을 봤…더니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간 게 조금 화난 거 처럼 보인다.
읔, 너무 노골적으로 살펴봤나.
다른 의미로 식은땀이 흐를 거 같아서 눈을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의미로 살짝 고개를 숙였더니 유령 아가씨의 표정이 원래의 살짝 슬퍼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음. 근데 지금 표정보단 아까의 조금 화난 표정이 더 예뻤다. 근데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계속 말도 없고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데…. 일단 말을 걸어봐야겠다.
“저…. 무슨 일이세요?”
-…….-
내가 말을 걸었더니 미간이 살짝 올라가고 눈꼬리가 내려가는 게 조금만 더 하면 울어버릴 거 같다!! 눈에 눈물도 그렁그렁한 게 내가 뭔가 말을 잘못했나?!
유령이니까 울면 귀곡성이 될 텐데, 으으으 그건 좀 참아주세요.
당황하고 의아해서 유령 아가씨의 눈을 바라봤더니 나랑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 배 쪽으로 시선이 향하는 게, 아까 피부 접촉을 시킨다고 셔츠 속으로 넣어놨던 위상석이 있는 위치를 보는 듯? 한데.
그래서 셔츠 앞섶을 열고 위상 석을 꺼내서 보여줬더니 기도하듯이 양손을 포개 잡고 나에게 간청하는듯한 표정으로 살짝 반걸음 다가왔다.
덕분에 손에 살짝 가려져 있던 아랫배와 그 아래 갈라진 틈이 드러나고 들어 올린 팔에 눌린 가슴 모양이 되게 야해 보이, 이크, 또 눈썹이 조금씩 올라간다. 그래서 난 위상석을 쥔 손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물어봤다.
“이걸 달라구요?”
도리도리
“그럼요?”
-…….-
잠시 나와 위상 석을 번갈아 보던 그녀는 살짝 입을 열어 입 모양으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 오, 에, 이, 히, 오, 에, 음, 이?
이오에이히오에음이?
시선을 올려 그녀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봤지만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이 섞여 무슨 색인지 짐작이 안간다.
뭐, 유령이니까 육성이 나올리는 없겠지. 근데 난 독순 술 같은 건 안 배워서 저렇게 입을 방긋 방긋거려도 모르는데.
그래서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쭈그려 앉으면 볼품없어 보이니까….) 뿔 송곳으로 그녀가 발음한 단어를 하나씩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녀의 표정도 밝아지면서 내 앞에 무릎을 예쁘게 모아 발끝으로 살짝 앉고 양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서 상체를 약간 숙이는 모습이 되었는데 그 예쁜 모습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중력의 영향에 살짝 늘어지는 가슴 모양은 넘어가자. 근데 유령도 중력에 영향을 받나?
그런데 바닥에 그녀가 보여준 입 모양을 한글로 적었더니 그녀는 한쪽 눈썹을 살포시 찡그리다가 날 바라보며 입 모양 하나를 보여주고 막더니 똑같은 모양을 계속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와 얼굴 표정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기품 넘치는 게 살아있을 때 엄청난 미녀였을 거 같다.
그런데 내가 입 모양은 안보고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니까 살짝 뾰로통한 표정이 되는 게 아닌가! 마치 자신의 입 모양을 봐달라는 듯한 표정이 귀여워!
심쿵사 할 거 같다!!
내가 가슴을 움켜쥐고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니까 시선 끄트머리에 그녀가 오른손을 바닥을 살포시 짚고 왼손은 살짝 주먹을 쥐고 가슴 사이에 대면서 고개를 모로 뉘어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는데.
이 유령 아가씨가 날 지금 죽이려는 건가?! 내가 이래뵈도 여자 면역력이 0%에 수렴한다고!! 알몸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내 심장이 못 버텨!!
불규칙적인 심장은 외면하고 계속 그녀의 자태를 감상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진짜 울거나 화내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거 같아서 열심히 그녀의 반응을 보며 글자를 쓰고 지우면서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적어 나갔다.
TO HOME
……집으로?
크윽, 내가 왜 영어를 열심히 안 배웠을까!! 알고 있는 단어나 할 줄 아는 말은 거 없는데!
영어를 잘했으면 바닥에 알파벳을 전부 적고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예쁜(유령) 여자랑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다니!! 안타까움에 눈물이 다 난다.
내가 영어를 잘 못 한다는 사실을 유령 아가씨도 알게 됐지만 괜찮다는 듯이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울먹이는 날 위로하려는 듯이 살포시 웃는데 진짜 심장에 나쁜 유령 아가씨다. 거기다, 내 눈물의 의미를 나랑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지만… 정정해줄 필요는 없겠지?
그 와중에서도 조신하게 서 있는 자세하며 기품 있게 살짝살짝 움직이는 게 별로 불편해 보이지 않아 보였다. 아마도 오랫동안 양갓집 규수로서 행동하며 그 몸가짐이 몸에 배어 있는 거겠지
한동안 아는 단어만 바닥에 막 적어 내면서 그녀에게 단어를 선택하라고 하자 환하게 웃으면서 몇 가지 단어를 선택하고 그걸 보고 바닥에 적고, 그런 식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프랑. 영국인이라고 했다. 숫자를 1부터 9까지 적어놨더니 145를 순서대로 찍고 자신을 가리키는 게 145년에 여기 위상 세계에 들어왔다는 뜻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216년이라고 해줬더니 한동안 슬퍼하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가 만났던 여자 거인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번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었는데 무진장 놀랬었다. 사람이 이형종으로 변하다니? 그게 말이 되나? 거기다 둘째날에 폭포수 옆의 나무에 내가 숨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했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다. 내 표정을 본 유령 아가씨는 덧붙이는 말로는 인간은 공격하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면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이 위상 세계에 들어왔었나? 또 이해 안되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아무튼, 그래서 몇 명이 들어왔었냐고 물어봤더니 5를 찍었고 다들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더니 DIE 라고 적혀진 단어를 찍고는 슬프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절벽 아래에 다른 이형종이 없었던 이유는 그녀 자신의 복수로 모두 잡아 죽여버렸다고 했다. 거기다 절벽 아래 숲의 넓이는 거인일 때의 걸음으로 10일을 쉬지 않고 걸어야 벗어날 수 있는 넓이라고 했다.
그럼, 너무 긴장을 풀지 않고 지내면 안전한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지. 다 죽였다고 해도 위상력을 흡수해 이형종으로 변이하는 동물들을 생각해보면 완전히 없다고 볼 순 없을거 같다. 무엇보다 그녀가 어느정도의 주기로 이형종을 쓸어버렸는지도 단어 선정이 어려워서 대답을 못들었고.
내 영어 실력이 달리는 게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그녀가 이형종이 된 연유를 묻고 싶었는데 알고 있는 영어 단어가 부족해 그녀의 난감한 표정만 볼 수 있었다. 거기다 대화라고 했지만 몇 가지 단어를 통해 내용을 유추해 본 것뿐이라 정확성도 그리 안높고.
아무튼 그 이상의 자세한 대화는 하지 못했고 그녀가 원하는 것만 간신히 알아냈는데.
그녀는 유령으로써 현실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위상 석에 들어간 채로 나와 함께 현실로 돌아가는 방법뿐.
외모만 봐서는 영국의 한 귀족 가문의 금지옥엽으로 자랐을 거 같은 아가씨가 이런 위상 세계에 떨어져서 온갖 고생을 다 하다 결국 현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형종으로 변해버리다니.
대화 중에 문득 그녀의 시체에 한 짓이 떠올라 사실대로 고백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어주었다.
60년이 넘는 시간을 이형종으로 살다 결국 거대 두더지한테 살해당하고 나한테 시체마저 훼손당했는데 저렇게나 상냥한 표정으로 다 이해한다는 듯이 웃어주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자애로운 마음씨다.
솔직히 이야기 도중에 내 망상이 도져버려서 그녀를 정신이 나갔지만 착하고 예쁜 여자를 연기 중인 악령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녀의 눈은 지나칠 만큼 맑고 깨끗했다. 저런 눈으로 사악한 악령이 되었다면 그거에 속아 넘어가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해버릴 만큼.
사실 그녀를 대상으로 19금 동영상을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그녀의 부탁을 수락하게 되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됐다. 한창 대화 중에 나의 폭발적인 변태망상력은 탐색 능력을 조종해 여자 거인에 관련된 모든 영상을 저 아가씨로 이미지 변환시켜버렸거든!!
땡큐, 탐색 능력!! 땡큐!!
“흠흠.”
민망함에 잠시 귀가 뜨거워져서 만지작거리다가 그녀의 앞으로 위상석을 내밀었다.
내 모습에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두 손을 모아쥐고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유령 아가씨. 그녀는 천천히 위상석으로 다가오는데 그 뒤로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그녀의 등에서 후광이 퍼져나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오히려 벌거벗은 그 모습이 어찌나 성스러워 보이는지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위상석을 쥐고 있는 내 손을 양손으로 포개더니 사르르 회색 빛을 흘리며 위상석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살아서 돌아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는걸.”
나는 그녀, 프랑이 스며든 위상 석을 꼭 쥐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야기를 나눌땐 시간 가는줄 몰랐는데 5시간이나 흘렀다니. 누나가 조금만 말을 오래해도 귀찮아서 도망가던 나였는데 유령 아가씨랑 5시간이나 이런저런 손짓 발짓과 눈과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는게 믿어지지않는다.
프랑이 스며든 위상석은 크기가 약간 더 줄어들어 지름이 10cm에서 7cm가 되어 좀 더 내 손에 쏙 들어오게 되었고 색도 약간 전체적으로 물빛인데 위상석의 중앙이 회색빛을 띠기 시작했다.
으음, 일단 주머니에 집어넣고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팽개쳤던 들쥐 고기를 집어 들어서 물에 씻고 가죽을 벗겨낸 다음 마른 나뭇가지를 구해와 불을 피우는데 어느새 나왔는지 옆에서 프랑이 내가 불을 피우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밤에만 나올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방긋 웃어주었다. …저 웃음은 무슨 의미야?
아무튼, 내가 불을 피우는 모습을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서 무릎을 감싸 안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프랑씨? 그 자세에서는 당신의 소중한 부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구요?
두 눈에 확 들어오는 그녀의 자그마하고 예쁜 꽃잎같이 생긴 보지가 눈 안에 들어와서 불을 피우는 걸 방해받았다.
그렇게 내가 힐끔거리면서 보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나뭇조각에서 연기가 막막 피어오르는걸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불이 확! 하고 피어오르자 눈이 동그래지며 손뼉 치더니 날 바라보았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때에는 나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어서 그전에 몰래 그녀의 꽃잎을 훔쳐보고 있었다는 걸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방해라면 얼마든지 환영하지!
탐색 능력을 계속 돌린 덕분에 불 피우는 걸 망치진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불길을 키워서 모닥불로 만들고 천천히 들쥐 고기를 굽는데 그녀는 두 손바닥으로 양 볼을 감싸 쥐고 계속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모닥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약간 풀린 평온한 표정으로 멍하니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는 모습에 어쩐지 가슴 한쪽이 아릿해져 왔다.
여기서 현실 세계로 탈출에 성공한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녀는 유령이 맞는 걸까? 유령은 내 탐색 능력이 감지를 못하는 건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들쥐 고기를 태워 먹을뻔한 사고가 있었지만 큰 문제로는 번지지 않고 들쥐 고기를 맛있게 구울 수 있었다.
그렇게 다 구운 들쥐 고기를 먹으려고 하는데 그녀는 그런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보고 있자니 어딘가가 불끈해지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시선을 돌리며 그녀의 뒤를 따라가길 1분.
다람쥐 부부가 살던 나무와 똑같은 나무 아래로 날 데려온 그녀는 빨간색을 띠고 있는 잡초 모양의 풀을 뜯어 입으로 넣는 시늉을 했다.
뭐지? 풀의 성분을 분석해봤더니 적은 수지만 절벽 아래에도 존재하는 풀이라고 감지 능력이 알려왔다. 이제 와서 성분을 분석해봤더니 일반 잡초와는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무슨 풀이길래 먹어보라는 거지?
난 다 뽑으면 한 줌도 안될 것 같은 빨간 풀을 조심스레 캐서 끝을 조금 씹어먹어 봤더니 매운맛과 함께 감칠맛이 느껴졌다!
이런 풀이 있었다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허리를 내밀며 뒷짐을 지고 서 있던 그녀가 방긋 웃으면서 머릴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 모습에 나도 웃으면서 말하자 그녀도 환하게 웃으면서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5시간동안 한국어로 떠들었는데 그녀는 내 말을 전부 알아 듣은 거 같단 말이야? 나중에 시간 날 때 물어봐야겠다.
뭔가 다른 방법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으니까.
빨간 풀의 도움으로 프라이드 치킨과 비슷한 맛을 내는 들쥐 고기를 맛있게 먹고 난 후에 뒷정리를 하고 나니 그녀가 날 바라보며 양손을 마주 대고 오른쪽 뺨에 대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저건 잠 안 자느냐는 제스쳐겠지? 지난밤에 밤새도록 이야기했다는걸 마음 쓰고 있었던 건가? 마침 아까 생각했던 걸 물어 볼 기회군.
“잠 안자냐구요?”
끄덕끄덕
“음 그전에,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예요?”
다시 물어보자 그녀는 곱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엥, 진짜였어? 어떻게?
“프랑은 영국인인데 한국어를 배웠던거에요?”
내가 그녀의 이름을 막 부르자 약간 부끄러워하는 거 같더니 하늘을 향해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쪽을 바라봤는데 아무것도……. 응?
“여기가 위상 세계라서 대화가 가능한 거에요?”
그러자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다시 한 번 저었는데, 뭐지? 한 번의 긍정과 한 번의 부정?
“위상 세계라서 대화할 수 있지만 언어가 아니라 의미로 의사소통이 되는 거에요?”
그러자 정답이라는 듯이 방긋 웃으며 살짝살짝 박수를 쳤다.
어휴, 뉘 집 딸래미인지 아주 귀여워 죽겠네!
그나저나 위상 세계에서 언어의 장벽 없이 대화할 수 있다니. 그것도 생존학에 안 나와있었는데?
어쩐지 점점 생존학 책에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형종으로 변한 인간이라거나 위상 세계에서 첫 생존을 시험받는 중이었는데 고위 이형종이 나타난 거나. 한 사람당 한곳의 위상 세계에 간다고 했는데 이곳은 여러 사람이 왔다 간 곳이라고 했고.
물론 거기서 이형종은 프랑이 변이한 거였고, 위상 세계도 한 사람이 한곳이라고 했지 똑같은 곳을 한 사람씩 들락거리지 못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틀린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험에 실패해서 죽은 사람이 나온 위상 세계는 다른 사람이 와서 성공할 때까지 계속 사람들을 빨아들이는걸지도 모르고.
아무튼 물어본 질문에는 대답을 해주는 게 예의.
“위상 세계에서 처음 깨달은 능력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괜찮아요. 앞으로 8일 뒤면 15일이 되니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어요.”
아마도.
난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자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양손으로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휙 하고 통과돼버리는 자신의 손을 보고 놀랐다가 머리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따라오라는 듯이 자신을 가르키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어딜 가려는거지? 잠시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으니 앞으로 걸어가던 그녀가 상체만 약간 뒤돌아보며 얼른 오라는 것처럼 손을 흔드는데 흔들리는 손보다 흔들리는 가슴과 엉덩이가 더 눈에 들어온다.
속으로 음흉한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잠시만요. 무기부터 좀 챙기구요.”
앞서 가려던 그녀에게 말을 걸고 처음 숨어있었던 나무에 놔두고 온 나무 창이 생각났다. 창 끝부분이 좀 뭉개졌을거 같은데, 발톱 창이 있으니 조금 다듬으면 되겠지.
나무 창을 가지러 이동하니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내 옆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다는 게 못내 좋은 듯 계속 방긋방긋 웃는 그녀를 보자 예쁘다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운 감정이 함께 들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위상 세계에 인간으로서 들어왔다가 이형종으로 변해버리고 이형종으로서 삶이 끝나다니. 성불하게 된다면 천국으로 가서 살아있을 때 받았을 고통을 천국에서 치유받길 간절히 바랐다.
문득 여자 방금 느낀 안타까움의 감정이 여자 거인을 생각할 때마다 들었던 감정과 똑같다는 걸 알아챈 나는 “예감의 능력덕분인 건가.”하고 중얼거렸다.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그녀가 앞으로 살짝 상체를 숙이며 날 올려다봤지만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채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쪽으로 2km 정도 가면 나와요.”
안 그러면 계속 프랑의 엉덩이 골이며 뒤에서도 슬쩍슬쩍 보이는 저 풍만한 유방같이 온 몸을 눈으로 스캔할 거 같았거든!
근데 이 아가씨는 옷은 못 입는 건가? 그러나 일부러 그런 말을 꺼내서 좋은 구경거리를 포기할 수는 없지! 말했다가 괜히 영체가 바껴서 옷이 되면 안구 정화를 더이상 못할 테니까!
난 이동하면서 잠시 눈을 감아서 감지 능력을 돌리고 다시 눈을 떠서 전방과 좌우를 살펴보며 걸었다.
그런 내 모습에 프랑은 처음에는 의아한 모습이었지만 내가 주변을 경계한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저거, 장하다는 표정 맞지? 만약 몸이 만져졌으면 내 머리를 쓰담쓰담했을거 같은 표정이다.
누나가 가끔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으흠, 왠지 멋쩍어져서 시선을 돌렸는데 아마 다시 보면 약간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감지 능력이 통했으면 아닌 척, 안보는 척 꼼꼼히 투시하고 감지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걸~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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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25 몇군데 문단을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