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5화 (15/517)

00015  5일째, 절벽 위로.  =========================================================================

으으으으으으으으음.

…….

이거 안 좋은데…….

대충 내 기준의 시간으로 지금은 오전 6시다. 어젯밤 시답잖은 생각을 마무리하고 감지능력을 믿으며 선잠이라도 들기를 바랬던 게 10시간 전이었다.

하지만 전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물론 위상 세계에서 속 편하게 푹 잘 수 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선잠이라도 들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감지 능력 때문에 눈을 감고 있으면 계~속, 계~~~속 반경 80m를 스캔하고 분석하고 투시를 해서 뇌가 쉬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활동을 하는 거였다!!

그렇다고 눈뜨고 자는 기술 같은 것도 없고. 아니, 눈을 뜨더라도 감지 능력은 계속 발동되니 못 자는 건 마찬가지고 오히려 눈이 아프겠지.

아아……. 완벽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엄청난 허점이 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신기하게 몸 상태는 최적이다. 게임을 하느라 속칭 날밤을 자주 샜었던 나는 알고 있다. 잠을 안 자고 하룻밤을 보내면 일단 눈이 충혈되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입에서 쉰내가 난다는 걸!

근데 지금은 날밤? 그게 뭐임? 하는 것처럼 몸 상태는 8시간을 잔 것처럼 아주 상쾌하고 개운하다는 거다.

10시간 동안 감지능력을 돌렸으니 머리가 혹사 돼서 피곤하기는커녕 10시간 전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뭐냐 이게.

뇌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독성 물질을 분비하고 그게 피로감을 유발한다고 하던데 ? 위상력이 저절로 정화를 해버린 건가?

다만 18년을 매일같이…… 는 아니고 18년 중 17년 정도는 밤마다 잠을 잤었는데 본의 아니게 뜬 눈, 아니 감은 눈으로 날밤을 보냈더니 정신적으로 지친 느낌이다.

새벽 3시쯤. 누운 지 7시간이 지났을 때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서 위상력의 움직임이나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위상력을 잡아당기는 생각(놀이)도 하고 여자 거인의 샤워씬을 천천히 머릿속에서 재생해본다거나 현실에서 연재 중이던 만화나 영화나 소설들의 속편을 예상해보거나 여자 거인과의 피튀기는 사투를 하는 상상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지. 혹시나 그러다가 잠들어버리진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품고서.

네, 결과는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졌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적의 힘을 사용해 여자 거인을 내 키만 하게 줄여서 위상력의 힘으로 제압한 다음 흐뭇 응응한 행위까지 하는 이른바 망상모드까지 진행되어버렸는데 나도 모르게 집중해버렸는지 그 응응한 망상은 감지 능력의 조력에 힘입어 영상이 되는 쾌거를 이루면서 내 기억 한쪽의 보관함에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혹시 압도적인 기억력과 암기력으로 허상의 존재를 영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험해봤지만 불가!

기억은 하지만 영상으로까지 구현은 안 되고, 말 그대로 기억하는 것뿐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까먹을 거 같다.

이거 참, 완벽하지는 않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오전 6시(추정)였다~ 이 말이지.

이제 슬슬 해가 떠오르려는지 주변이 어렴풋이 밝아져 오는 거 보니 한숨이 터져 나온다.

아나 진짜…….

이쯤 되니까 오히려 잠을 자야겠다는 강박증이 생길 거 같은데.

그냥 포기하고 생각하는 것도 포기하고 온몸에 힘을 뺀 채 전신으로 흡수되고 있는 위상력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뜰 때까진 그냥 이렇게 시간 보내야지.

그렇게 위상력은 275까지 늘어났다.

끊임없는 상상과 망상과 강박증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위상력은 천천히 내 몸속으로 모여들고 있었다는 거지.

천천히 내 몸속을 돌고 있는 위상력의 움직임을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심장에서 시작해서 목을 통해 좌뇌로 올라와서 반 바퀴 돌아 우뇌를 통해 목으로 내려와서는 다시 심장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왼팔로 이동하다 팔꿈치에서 차선을 변경하고 손가락 끝까지 가서는 U턴을 하면서 되돌아 나오다가 또다시 팔꿈치에서 차선을 바꾸고는 심장으로 들어오더라.

그리고 오른쪽 팔로 가서는 왼팔에 갔을 때랑 똑같이 움직이고 그건 양쪽 다리도 마찬가지. 무릎부위에서 차선변경을 하는 점이 팔이랑 다르네. 전체적으로 보면 뫼비우스의 띠가 심장에서 출발해서 머리 하나, 팔 두 개. 발 두 개 해서 5개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양인데?

조금 더 신경을 집중하니까 몸속을 돌고 있는 위상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좁쌀 같은 양이 기타 신체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몸속을 도는 위상력이 272.3이라면 피부를 비롯해 근육과 나머지 신체 내부를 도는 위상력은 2.7로 전체 위상력의 1%만 돌고 있는 거지.

으음……. 신체 강화 자들은 한 50% 정도는 피부로 돌려나? 아니 몸 전체라고 했으니 나처럼 특정 부위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냥 전신이 위상력의 소용돌이 일 거 같다.

위상력이 돌고 돈 부분이 진화된다는 생각을 해보면… 얘들을 억지로라도 땡겨서 아직 한 번도 써보진 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보물 1호를 통과하게 하고 싶어지는데. 그럼 어른들이 말하는 지속성과 거대한 실물을 가진 그야말로 최고의…….!

흠흠!

생각을 안 한다고 했지만, 잡생각과 망상은 나의 본질과도 마찬가지라서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2시간 반 동안 위상력과 씨름을 했지만.

-쟤 뭐하니?-

-글쎄?-

-우릴 움직이려고? 바~보아냐?-

이런 반응만 돌아오는 거 같다.

도도한 위상력같으니…….

그러는 와중에도 몸 안으로 들어오는 위상력은 차곡차곡 쌓여서 2시간 반이 흐르자 위상력의 총합이 300으로 숫자가 딱 맞아떨어지게 됐다.

00으로 끝나는 숫자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위상력의 늘어나서 좋아진 게 아니라 그냥 숫자가 맞아 떨어져서…….

흠흠, 이제 해가 완전히 떠올랐고 주변도 계속 밝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태양은 절벽 쪽에 숨어있어서 꽤나 그늘이 져 있었다. 아마도 3시간은 더 흘러야 햇빛이 내리쬐지 않을까.

난 왼손을 들어 아침으로 나뭇잎을 따먹고 오른손으로는 뿔 송곳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뜨고 여자 거인과 두더지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두더지 사체는 평범한 동물 사체니까 썩기 시작하지 않을까……. 내 기준에서는 30시간 넘게 지났지만 여자 거인의 시체도, 거대 두더지의 시체도 사후경직 같은 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고.

그러고 보면 사후경직은 보통 죽고 나서 6시간 정도 지나면 특정 부위부터 굳어지기 시작해서 12시간이 지나면 사지 대부분이 굳게 되고 30~40시간이 지났을 때부터 풀린다고 책에 써져있었다.

부패는 12시간쯤부터 안구나 콧속 같은 곳부터 썩기 시작한다고 했는데 두더지 사체도 멀쩡하고 여자 거인의 시체도 멀쩡하다.

특히 여자 거인의 경우에는 피가 아직도 응고되지 않고 음부와 항문을 통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고 죽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시반도 안 나타나고 있거든.

이런 지식은 전부 아빠의 책장에 꽂혀있는 의학서적에서 배운 거다.

어제 여자 거인의 팔뚝을 만져봤을 때도 경직은커녕 온기만 없을 뿐이지 살아있는 사람을 만지는 거랑 똑같은 촉감이었고 뿔 강아지도 사후경직 같은 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걸 보면 아무래도 위상 세계는 위상력이 존재하기 때문인지 뭔지 시체가 변화하는 과정 같은 게 현실이랑은 좀 다른가보다. 아무튼  빨리 여자 거인의 등을 가르고 들어가서 위상석을 꺼내와야겠다.

능력자 팬클럽 같은 데서 얻은 정보로는 거대 이형종의 체내에 있는 위상석을 꺼내는 건 바람이나 염동 능력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하던데……. 뭐 나 혼자 뿐이니 내가 다해야지 별수 있나.

들어갔다 나오면 피를 잔뜩 뒤집어쓰겠네, 어휴.

아무리 많이 먹어도 끙아로 나오는 게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배라도 부르자는 심정에 나뭇잎을 서른 장 정도 먹고 소가죽 벨트도 식사 1회분(손가락 한마디 분량)을 뜯어먹은 다음 허리춤에 뿔 송곳을 차고 발톱 창을 챙겨 들고 나무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5일 동안 절벽 아래에서 위협적인 이형종을 만난 거라곤 여자 거인과 뿔 강아지, 이형종은 아니지만, 거대 두더지 셋 뿐이다 보니 조금씩 긴장감이 풀리는 거 같다.

감지 능력도 만능이 아니라서 언제 어디서 이형종이 달려들지도 모르는데 조금 더 긴장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아아. 정말 간절하게 알고 싶은 게, 이형종의 위상력 감지 여부랑 시야로 감지하는지 아니면 사이에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내 감지 능력처럼 일정 범위를 감지하는지 진짜 정말로 무진장 알고 싶다.

덤으로 등급별 이형종의 감지 거리도.

이 세 개만 알고 있어도 모든 상황에서 내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테고 남은 시간을 굉장히 편안하고 알차게 보낼 수 있을 텐데……. 만만한 비교 대상이 없다 보니 알 수도 없고 그걸 알기 위해 위험한 행동을 하고 싶지도 않단 말야.

두더지의 체고는 4m. 여자 거인은 등에서 배까지 1.6m 유방의 끝까지 재면 50cm 정도는 더 추가해야 하지만……. 음, 왠지 딴청을 피우고싶어졌다. 아무튼  높진 않으니 기어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겠다.

여자 거인의 시체와 두더지의 사체 옆에 도착했더니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어쩐지 달콤한? 달달한?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더불어 짐승 특유의 텁텁한 냄새도 나고 여자 특유의 달달한냄새가……. 아, 달달한 냄새는 여자 거인이 내는 향기였나? 이형종인데도 달콤한 향기라니… 그것도 죽은 지 2일이 다 되어가는 시체인데, 여러 가지로 대단하다.

잠시 후에 여자 거인의 등을 파내고 심장에 손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찝찝해졌지만 위상석을 버릴 수는 없으니까. 고위 이형종의 위상석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유용성을 생각하면 내가 꼭 가져야 할 물건이다.

얼핏 어른들의 이야기와 인터넷 찌라시를 봤는데 고위 이형종의 위상석은 개당 수십억씩 한다든가?

……수십억!!

눈 돌아가는 금액이다. 절대 놓고 갈 순 없다!

허리춤에 발톱 창을 끼우고 거대 두더지의 사체를 타고 오르려다가 발톱이 내 등과 머리를 가르는 건 아닐까 조금 불안해졌다.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벨트를 풀어서 손잡이에 묶고 어깨에 멘 다음 오른손에 뿔 송곳을 쥐고 찍으면서 거대 두더지의 몸통을 타고 오를……려고 했는데.

혹시나 싶어 반대쪽, 거대 두더지의 오른쪽 앞발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 봤다.

“……그래도 타고 오르기 전에 발견은 했잖아? 괜찮아, 괜찮아. 점점 발전하고 있어.”

난 점점 지능이 발달하고 있다고 애써 자위하며 다시 벨트를 매고 뿔 송곳은 허리춤에 끼운 다음 왼손에 발톱 창을 들고 축 늘어진 거대 두더지의 오른쪽 앞발을 타고 몸통으로 걸어 올라갔다.

왼쪽 앞발은 발톱으로 여자 거인의 가슴을 관통한 채 고정되어있었으니까 올라가려면 거대 두더지의 몸통을 타고 등반을 해야 하니까.

오른쪽 앞발을 타고 거대 두더지의 가슴으로 올라왔더니 두더지의 배에 얼굴을 대고 죽어있는 여자 거인의 머리가 보였다.

두더지 자식. 죽으면서 이런 미녀를 가슴에 품고 죽다니. 남자로서 나름 행복한 죽음이었구나.

종은 다르지만.

몸길이는 비슷하지만, 자세가 좀… 여자 거인이 두더지를 덮치는 모양이라 여자 거인의 얼굴은 거대 두더지의 배 부분에 위치하고 있었고 동체의 폭도 두더지가 조금 더 넓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직접 눈으로 살펴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밟고 있는 두더지의 배가 단단하기도 해서 움직이는데도 불편하지 않았고.

나는 눈앞에 보이는 유방의 절단면에서 애써 눈을 피하며 매끈한 피부의 여자 거인의 등으로는 어떻게 올라가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더지는 털이 많아서 오른손으로는 뿔 송곳으로 찍거나 아니면 털을 잡아서 타고 오를 생각이었는데…….

여자 거인도 털이 있지, 참. 머리카락이라는 긴 털이.

내가 처음 본 길이랑 지금 여자 거인의 머리카락 길이는 조금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길어서 타고 오르기에는 불편하진 않을 거 같다.

애초에 높지도 않고 말이지.

내 키만 한 여자 거인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을 잡고 올라가려고 했지만, 힘을 주는 순간 뚜 두둑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머리카락이 뽑히는 바람에 기겁해버렸다!

뭔가 굉장히 나쁜 짓을 한 기분이야!!

진저리를 치며 서둘러 손을 털어버리고는 작전을 바꿔서 역시 뿔 송곳니로 피부를 찍어서 그걸 잡고 올라가야 할 거 같다.

자리를 옮겨 여자 거인의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다가 뿔 송곳니를 손에 쥐었는데, 순간 눈에 들어온 두더지의 발톱 네 개가 굉장히 신경 쓰인다. 자칫 잘못해서 매끄러운 피부에 미끄러졌다간 몸이 네 조각 다섯 조각으로 쪼개질 거 같달까.

그러면서도 여자 거인의 목덜미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감촉이 보드랍고 탱글탱글한 게 몸이 크면 모공이라 거나 잔털들 때문에 징그러울 거 같았는데 굉장히 깨끗하고 보들보들한 게 만지는 느낌이 좋아서 어쩐지 중독될 거 같은 느낌이다…….

헉!

순간 타락할뻔했다!

어떻게 타락하려 했는지는 비밀.

하는 수 없이 여자 거인의 시체가 좀 훼손되더라도, 이형종이니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여자 거인의 왼쪽 옆구리로 돌아가 힘껏 오른쪽으로 밀기 시작했다.

힘을 줘서 미니까 말랑말랑한 피부에 손이 착착 감기는 느낌이 꽤…….

스르륵 거리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발톱이 몸 안을 가르는지 쯔즈즈즈즈즈하는 뭔가 섬뜩한 소리가 들려온다.

혹시나 빠져나가는 거대 두더지의 발톱에 내가 다치는 일이 없게 눈을 감고 발톱이 빠지는 방향을 감지하면서 여자 거인의 몸을 밀기를 몇 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 거인이 두더지의 사체 위에서 미끄러지며 모로 떨어져 내렸다.

이내 왼팔이 없어서 떨어지는 충격에 오른팔이 등 뒤로 흘러내리더니 등을 땅에 대고 상체는 위로 향하고 골반이 비틀려 허리가 세로로 세워진 자세가…….

크흡. 묘하게 에로틱한 자세가 돼버렸다! 게다가 죽어서도 중력을 거스르는 유방이라니!!

피투성이에 잘린 단면이 드러나는 왼쪽 유방과 떨어지면서 발톱 네 개가 가슴을 갈라버리는 바람에 내부가 드러나고 허리도 반쯤 잘려서 내장이 흘러나오는 데다 왼팔이 잘려서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바람에 고어가 되어버렸지만!

다행인 건 얼굴이 모로 눕혀져서 잘 안 보인다는 거였다.

위상 세계에 오기 전에 이런 사진을 봤다면 우엑우엑거리면서 토하고 난리였겠지만 지난 5일 동안 정신이 단련됐는지 안타깝다는 생각만 들 뿐 역겹다거나 혐오스럽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편견과 사심이 담겨있지 않다고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여자 거인의 위치는 거대 두더지의 오른편에 딱 붙어있어서 땅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여자 거인을 타고 올라가진 않아도 되겠다. 이대로 여자 거인의 가슴팍에 뛰어내리면 될 테니까.

위상석의 위치는 떨어져 내리는 충격에 심장에서 벗어나 가슴에서 약간 아래, 명치 부근의 등 쪽으로 이동해버렸다.

……꼼짝없이 여자 거인의 몸을 가르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다.

……안 좋군.

으아. 설마 나, 네크로필리아. 시체 애호증에도 한발 걸친 건 아니겠지?

여자 거인의 몸을 가르고 시체 안으로 들어가야 할 판인데 찝찝한 느낌과 뭔가를 약간은 기대하고 있는 날 눈치채고는 몸을 떨었다.

아……. 진짜 그 정도 되면 인간말종인데!

내 미래가 진심으로 진짜 진짜 걱정된다!

여기서 탈출하면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 좀 받아봐야 할 거 같다. 아빠 친구가 정신과 과장인가? 그랬으니까 기록에 남지 않게 비밀리에 받을 수 있을 거야. 아빠 성격이라면 날 정신병원에 처박아버릴 확률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친자식에 외동아들인데 설마 그렇게까진 안 하겠지.

아직 위상 세계에서 탈출하지도 못했고 절반도 보내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현실로 돌아갔을 때를 걱정하게 되다니.

그만큼 내 정신세계가 변태경고를 울리고 있다는 걸로 받아들여야겠다.

난 조심스레 위치를 잡고 여자 거인의 유방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감지 능력으로 확인한 결과 배쪽에 뛰어내렸다간 여자 거인의 아랫구멍이란 구멍은 전부 다 피를 뿜어내고 양쪽 옆구리에 벌어진 틈으로 내장이 사방팔방 튀어나갈거라는걸 알게 됐거든.

거기다 푹신해 보이는 유방이라면 떨어져 내릴 때의 충격 같은 건 없을 테고.

거대 두더지의 배 위에서 여자 거인의 유방 사이에는 2m 높이 차이가 있으니까!

흡!

하고 작게 기합성을 내며 봉긋하게 솟아오른 유방으로 전면 낙하를 시도했다. 다리부터 뛰어내리면 탄력에 이상한 곳으로 튀어나가버릴테니까.

다행히 여자 거인의 유방 크기는 내 전신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 풍유豊乳했다.

그리고 전신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느낌과 가슴으로 느껴지는 커다란 유두의 감촉……!

안돼! 안돼!! 진짜 타락해버려어어어!!!

진짜 안 되겠다! 머릿속에 구제 못할 최악의 변태 경고가 최대치로 울리고 있어!! 상상을 줄이고 최대한 빨리 위상석을 챙긴 다음에 몸을 씻고 진흙을 바르고 어젯밤을 보낸 나무 위로 올라가야겠어!!

난 서둘러 아쉬운 느낌을 뒤로하고는 발톱 창을 거꾸로 들어 가슴 중앙에서부터 배꼽까지 살을 가르고 그 안으로 다리부터 몸을 집어넣었다. 바로 아래에 수십억이 있어!

이미 감지능력으로 뼈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거침없이 몸을 집어넣었는데 순간 온몸에 느껴지는 내장의 감촉에 진저리가 쳐졌다. 거기다 이상하게 피에서 달콤한 향기가 난다! 잠시 내 몸속에 흐르는 피와 여자 거인의 피를 비교 분석해봤는데 여자 거인의 피는 사람의 피랑은 성분이 절반가량이 달랐다.

근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마셔도 되는 건가? 새삼 여자 거인은 인간이 아니라 이형종이라는 걸 느꼈는데 방금 든 생각으로 유추해볼 때 난 무의식적으로 여자 거인을 이형종이 아닌 덩치 큰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나 보다.

한숨을 한번 쉬었다가 콧속으로 밀려들어 오는 달콤한 피 냄새 때문에 기겁하고는 코를 쥐었다가 손에 피가 묻어있었다는 거에 두 번 놀라고 손에 묻었던 피가 코에도 묻은 걸 감지하고 세 번 놀랬다!

“흐히히힉?!”

놀라면서 차려자세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덕분에 내장이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내 몸을 감싸는 느낌에 또다시 진저리를 치고 머리가 거인의 피부를 밀어내는 바람에 피부 아래 근육조직에 고여있던 피가 절단면을 타고 내 몸으로 주르륵 흘러내려 또다시 화들짝 놀라면서 기함을 질러버렸다.

“으아!!”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잽싸게 무릎을 굽혀 위상 석을 손에 쥔 다음 여자 거인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는데 미끄덩거려서 위로 나갈 수가 없다!!!

으으으!!

언제 눈을 뜨고 있었지?! 혼란스럽지만 필사적으로 감지를 돌려보니 여자 거인의 오른쪽 허리에 세로로 긴 상처가 나 있는 걸 보고 그쪽을 향해 내장을 밀어내면서 움직였다.

내장이 꿀렁꿀렁 하는 느낌이 최악이다!! 아니 그런 느낌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내가 최악이야!!

조금 더 있다간 정말 인간의 소중한 무엇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아!!

난 황급히 여자 거인의 오른쪽 허리에 나 있는 구멍으로 빠져나와서는 몸에 메달려있는, ……십이지장? 크아!!

두 손과 발을 과장되게 흔들면서 내 몸에 묶여있는 내장을 털어내고 오른손에는 주먹만 한 위상 석을 쥐고 왼손에는 발톱 창을 들고 미친 듯이 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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