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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스-14화 (14/517)

00014  4일째, 여자거인2.  =========================================================================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70cm 길이의 적당한 나무 조각을 세 개를 모으고 발톱을 이용해 번개 모양으로 잘라내고 뿔 송곳으로 열심히 찍으면서 모양을 잡고 교복 마이의 안감을 뜯어서 끈으로 만들기를 2시간.

마침내 적당한 손잡이가 완성됐다.

손잡이 부품 세 개를 한데 합쳤을 때 겉모양은 세모꼴의 콘센트에 손잡이 부분은 내가 양손으로 쥘 수 있을 정도의 두께로 잘라 휘두를 때 손잡이가 부러져나가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발톱 창의 끄트머리와 모양이 일치하는 세모꼴의 콘센트 모양의 홈에 조심스레 두더지 발톱의 면이 되는 부분을 끼웠는데 모서리의 날카로운 부분에는 틈을 만들어서 혹시나 모서리에 나무들이 잘리고 갉혀서 부서지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발톱의 면에 나무의 면을 붙여서 단단히 고정되게 한 다음 교복 안감을 뜯어내서 만든 끈으로 칭칭 감아 묶었는데 주둥이가 되는 부분이 점점 좁아지게 만들어놨었더니 발톱을 끼워 넣는 순간 딱 달라붙으면서 아귀가 맞아떨어지니 묘한 쾌감까지 생겼다.

묶었을 때 발톱의 모서리가 나무 틈 사이로 튀어나와 끈을 잘라먹지 않도록 나무를 두껍게 만들어놨는데 역시 계산대로 나무와 나무의 틈 사이에 모서리가 위치하면서 끈으로 나무를 감아도 모서리 부분에 끈이 닿지 않았다.

이 작업을 하는데 감지 능력의 분석이 굉장히 도움이 됐다.

한번 본건 비교 측정할 물건이 없어서 정확한 수치로 표현은 못 하겠지만, 이리저리 갖다 댈 필요 없이 머릿속에서 그 길이가 계산됐거든!

거기다 눈의 착시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한 게 눈앞에 홀로그램마냥 그 모습이 실물 사이즈로 떠올랐기에 거기에 나뭇조각을 대고 잘라내기만 하면 됐으니까 생각보다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었다. 거기다 작업도면 같은 것도 옆에 둥둥 떠다녀서 보기 편했고 말이지.

이렇게까지 분석 능력이 도움을 주는데 제대로 못 만들면 그게 바보 쪼다지.

마치 게임용 인터페이스 같달까. 어쩌면 나의 게임 뇌가 감지 능력에도 영향을 준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르는 거나 지레짐작하는 게 많지만 뭐 확실한 게 없으니 내 직감이 감지 능력에 대해 이러이러한 거 같다! 하면 그걸 정답인 셈 쳐야지 어쩌겠어.

그 방법이 틀린 것도 아닌 게 능력과 기술을 쓰는 건 능력자 본인의 뇌에서 내려지는 판단이 전부거든. 정확한 작동원리를 알아서 순서에 맞춰 쓰는 게 아니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게 트리거가 되서 뇌에서 보정한 다음 기술이 나가는 형식이니까.

생존학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그 뇌의 보정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기초 실전 능력 사용 같은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능력자 직감에 따라 이 능력의 이런 부분은 이러이러할 거 같다!'라고 말하면 그게 바로 자신의 능력과 기술에 대한 개념으로 대부분 정답이라는 게 능력과 기술을 연구 조사해본 여러 석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의견이야.

즉 능력자 자신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지. 생존학에서도 능력과 기술을 얻게 되면 최대한 그 능력과 기술에 대한 개념을 빨리 잡으라고 하는 게 그런 이유니까. 그러니까 짐작으로라도 파악해놓는 게 좀 더 이미지 각인에 좋지 않겠어?

어쨌든 감지 능력이 없었다면 하루종일 달라붙어 있어도 이런 손잡이를 만드는 건 무리였지 않을까? 만들다가 부셔 먹고 모서리 부분을 염두에 안 둬서 귀중한 천으로 만든 끈도 잘라먹었을 거고 최소 네 번은 더 만들었어야 했겠지.

내 공작 능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 걸 생각해보면 능력 보정이 굉장한 셈이잖아, 하하하.

아무튼, 겉을 보면 120cm 길이 삼각뿔 모양의 발톱에 밑면에서 40cm까지 모서리를 제외한 세 곳의 면을 나무가 감싸고 중간중간 군청색 끈이 꽉 감겨서 발톱이 움직이는 걸 막고 있었다.

만들고 보니 손잡이도 30cm 정도라 총 길이가 1.5m가 되었다. 이렇게 보니 꼭 차징용 랜스같다. 끝으로 갈수록 아래로 휘어지고 길이도 짧지만.

조심조심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찌르기를 해보는데 70cm 나무토막 세 개에 120cm 길이의 발톱 하나를 묶어 만든 무기치고는 꽤 가벼워서 휘두르는 데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팔을 겨드랑이에 붙이고 한 손으로 손잡이를 바짝 끌어 잡고 남는 손잡이 부분을 팔과 몸 사이에 끼우니 고정도 잘되는 게 동물이나 이형종이 있으면 이 상태로 달려가서 냅다 찌르기를 해도 괜찮을 거 같았다.

고정도 잘 되어서 힘을 줘서 휘둘러도 발톱이 따로 흔들거리거나 움직이는 것도 없는 게 아주 잘 만들어진 거 같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얇은 나무줄기를 꼬아서 끈을 만들어서 좀 더 보강하는 게 좋겠지. 손잡이도 껍질을 벗겨낸 나무의 속살이라 감촉이 좋지 않다. 다행히 뿔 강아지 가죽을 확보해뒀으니 그거라도 무두질해서 손잡이에 감으면 될 거 같다.

사실 무두질할 필요도 없이 마이의 왼팔을 뜯어내서 손잡이 부분에 칭칭 감으면 될 일이지만, 교복은 갑옷이나 마찬가지라서 가능하면 크게 손상이 가는 행위는 하고 싶지가 않거든.

점심때 고기를 구워 먹고 여자 거인과 두더지가 죽어있는 장소에 도착해서 발톱 창을 만드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5시간.

해가 걸린 위치를 보니 두 시간 정도 지나면 완전히 해가 질 거 같다.

되돌아가는데 넉넉잡고 한 시간 반이라고 하면 이제 절벽에 있는 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니 그냥 여기서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여자 거인과 두더지의 싸움의 여파로 적어도 오늘 밤은 안전할거 같은데.

게다가 민감한 동물이라면 죽어버린 나무 숲으로는 올 거 같지도 않고, 문제라면 혹시나 모를 다른 이형종일 텐데 뿔 강아지 정도라면 발톱 창이랑 뿔 송곳으로 잡을 수 있을 거 같다.

손잡이를 만들면서도 여자 거인과 두더지의 사체를 감지하면서 느낀 거지만 나도 언제까지나 벌벌 떨면서 도망 다닐 수는 없다는 걸 느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렇게나 위상력이 충만한 곳에서 위상력을 온종일 흡수하는 이득에 비하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는 건 괜찮을 거야.

비록 당장은 쌓은 위상력을 쓸 일은 없지만.......

공격 기술이 없다는 게 새삼 아쉬워졌지만, 감지와 분석, 투시만 해도 어디야!

난 허리 뒤에 매고 있던 나무 지팡이는 대충 던져버리고 왼쪽 허리춤에 뿔 송곳을 끼우고 왼손에 든 발톱 창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제대로 된 무기도 있으니 개새끼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지?”

위상력을 지닌 여자 거인의 피부를 무참하게 가르고 베어버린 거대 두더지의 발톱이라면, 최하위 이형종을 상대로 적어도 무기가 없어 저항조차 못 해보고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살짝 또 다른 고위 이형종과 괴물이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지만 하나하나 이렇게 두려움에 떨다간 될 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붕붕 저어 애써 떨쳐냈다.

오늘 밤도 소가죽 벨트 조금과 나뭇잎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고 주변에 있던 나무 중 가장 큰 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감지 능력으로 보니 나무 둥치 지름이 4m에 높이가 19m나 돼서 제일 위쪽에 숨으면 어지간해서는 들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무에 오르기 전 나뭇잎을 감지해봤는데 아직은 낮에 먹었을 때랑 성분이 바뀐 건 보이지 않아서 안심했다.

빨리 자리를 잡고 쉬면서 위상력을 쌓을 생각을 하니 혼자 놀거나 산책하면서 망상을 하는 생활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내가 살아있다는걸,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에 오른 나무는 크고 가지가 무성한 데다 나뭇잎들도 많아서 누군가 아래에서 올려다봐도 날 발견하기가 힘들 거 같다. 하지만 난 감지 능력이 있으니 눈을 감고 있으면 반경 80m는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무를 타고 15m를 올라왔더니 쉬기에 좋은 장소가 너무 많다!

열심히 감지 능력을 돌리며 조사해본 결과 밖에서 안쪽을 봐도,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봐도 무성한 나뭇가지와 잎사귀 덕분에 쉽게 발견도 안 되고 편히 누워 쉴 수도 있는 장소가 적어도 세 곳은 된다!

어쩌면 여기서 오래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세 곳의 세이프티 포인트 중 가까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긴 나뭇가지가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혀있는 데다 나뭇잎도 잔뜩 나 있는 게 마치 그물침대 같은 곳이었다.

난 잠버릇도 별로 나쁘지 않으니 그냥 누워도 되겠지?

베이스가 되는 나뭇가지는 거의 내 몸통의 절반만 해서 나뭇가지들이 꺾여서 추락할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감지 능력이 알려왔다.

왕 편리해, 감지 능력!

발톱 창은 머리맡에 안 떨어지게 잘 고정해두고 머릿속의 상상처럼 자리를 잡고 누웠더니 생각 이상으로 편안하다.

난 손을 위로 뻗어 나뭇잎도 한 장을 떼어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몸속으로 흡수되는 위상력을 느꼈다.

2시간 전에 파악했던 내 위상력 총량이 115였는데 2시간이 흐른 지금은 135까지 올랐다.

아마 더 진해진 위상력 농도 때문이겠지. 여긴 여자 거인의 시체에서 72m 정도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공기와 위상력의 비율이 1:9인 거 같다.

숨을 쉬어도 위상력이 코와 입안으로 마구마구 밀려들어 올 정도니까.

눈을 감고 여자 거인의 몸을 구석구석 감지해봤다.

예쁜 여자는 인류의 보물이라고 어느 바람둥이가 말했었지. 몸에 흉측한 상처가 많고 사람보다 5배 넘게 크지만, 여자 거인의 표정과 자세가 맞물려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듯한 기분이 든다.

왜 예술이냐고? 미술 선생님이 그러던데? 보고 흥분하면 외설이고 흥분하지 않으면 예술이라고.

다시 나뭇잎을 따서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내 첫 번째 능력은 감지 능력. 가장 처음 든 생각이 감지 능력이어서 감지 능력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 기능과 다른 능력자의 감지 능력을 비교해 본다면 감지라는 단어가 볼품 없을 만큼 화려하다.

일단 범위가 무진장 넓다.

날 중심으로 반경 80m인데 이건 눈을 감고 시야를 닫은 채 완전히 감지에 집중할 때의 거리고 눈을 뜬다면 최대 거리는 반경 27m가 된다. 대충 반 올려서 27m지 80m의 1/3 거리라서 실제 거리는 26.66666666666666…… 이 되겠지.

메인이 되는 감지. 감지할 수 있는 건 움직이는 거든 안 움직이는 거든 전부 다 감지가 된다.

대체 무슨 원리로 3자의 시선으로 현실을 보는 거처럼 사물을 비롯해 움직이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걸까?

평소에는 신경을 적당히 쓰는데, 왠지 제대로 집중하다간 머리에 부하가 걸릴 거 같아서……. 아무튼 제대로 정신을 집중해서 감지하기 시작하면 움직이는 오브젝트는 만 단위까지 인식이 되는 거 같다.

앗, 머리가 살짝 욱신거린다.

그런데 신경을 끄면 어째서인지 바람 때문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들이 평범하게 움직이는 거나 풀이 하늘거리는 부분은 자동으로 필터링한 단말이지.

그런데도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움직임은 바로바로 인식되는 걸 보면 고성능 위치추적장치를 돌리는 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신경을 끄게 되면 평소에 감지되는 오브젝트의 숫자는 천 단위로 줄어든다.

두 번째로 서브가 되는 분석 능력. 근데 이것도 서브라기보다는……. 아니 메인에 가까운 서브랄까, 본처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첩이랄까.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다.

발톱 창의 손잡이를 만들 때 한 행동은 이 분석 능력이 하나하나 자세나 깎을 각도, 모양, 파낼 때 써야 할 힘의 양 등을 알려준 덕분이었지. 이런 굉장한 서포트 기능을 보면 감지능력으로 모습을 정밀 스캔해서 머릿속에 떠올리면 분석능력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상에 대해 행동해야 할 움직임을 분석해서 보여준단 말이지.

떠오른 이미지와 재료의 분석을 통해 어떤 재료를 구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깎아 내야 할지, 어떤 모양으로 제작해야 할지를 전부 보여줬으니까 말이지.

특정 부분에 감지 능력을 집중하면 집중하는 대상에 대해 분석을 시작하는데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을 타고 들어오게 된다. 이것도 딱히 신경 안 쓰면 생각도 안 나는데 조금이라도 의식을 떠올리면 수많은 정보가 마치 컴퓨터로 검색하듯이 줄줄이 떠오르는 거지.

하지만 관련 지식이 없다시피 하니까 뭐 정보가 떠올라도 모르는 게 태반이다. 게다가 내 지식을 기반으로 하니까 내가 모르거나 무지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석 능력도 "그건 나도 몰라~." 하는 기분이다.

거기다 정신을 집중해서 분석으로 받아들이는 정보가 100%라면 신경 안 쓰고 저절로 흘러들어오는 분석의 정보는 40%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까지로 서는 아쉬운 점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게다가 더욱 놀라운 건 방금 눈치챈 건데 감지 능력을 얻기 전의 여자 거인 알몸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는데 감지 능력을 얻은 후에 여자 거인의 신체를 감지하고 분석했더니 예전의 여자 거인의 샤워 장면이 감지 능력의 영향을 받아 뇌 내 보정이 돼서 머릿속에 선명한 동영상이 되어 저장됐다는 사실이다!!

방금 눈을 감고 머릿속에 그 모습을 떠올렸더니 360도 전방위에서 감상할 수 있지만 그건 모델뿐이고 배경은 마치 파노라마 사진으로 보여서 좀 어색하다. 하지만 저 장소에 가서 감지 능력을 사용하면 완벽한 가상현실 동영상이 만들어질 거 같다!

언제라도 남의 시선에 상관없이 볼 수 있는 19금 영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다니. 왠지 내 능력이 두려워진다……! 흐흐흐흐.

하지만 이런 게 가능한 건 아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고, 마지막으로 봤을 때로부터 그 기간이 길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 마지막으로 감지 능력으로 대상 체를 완벽하게 감지, 분석해야 하고.

시험 삼아 체육 시간 여자애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떠올려봤는데 이건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보정작업이 안되더라.

조금 아쉽군.

혹시, 나 머리 엄청 좋아진 거 아냐? 기억용량이나 순간 암기가 무시무시하게 높아졌잖아.

내가 아무리 성적이 나쁜 대신 잡학에 뛰어나다지만 그건 기억력이나 암기력이랑은 별로 상관없는 부분일 테니까, 감지 능력을 얻으면서 기억과 암기 부분만 무진장 발달해버린 거 같다.

으히히. 그럼 현실에 돌아가서 시험을 볼 때면 암기계열 과목의 점수는 만점 따는 건 식은죽먹기겠는 걸! 대충 교과서랑 관련 서적 한번 쓱 훑어서 감지하고 분석해버리면 머릿속에 저장되어버릴 테니까! 게다가 감지 능력으로 절대 들키지 않는 컨닝도 가능할 테고!

으음, 그래도 지혜가 낮아서 응용 폭이 좁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어째……. 이런 좋은 능력을 가지고서는 하고 싶은 게 도촬이랑 컨닝페이퍼라니, 왠지 내 머리의 한계를 보는 거 같아서 슬프다.

세 번째는 투시 능력. 투시 능력도 감지 능력으로 봐야 하는 건 아닌가? 조금 애매하지만, 이런 식으로 분류해놓으면 정말로 이미지로 각인되어서 따로 능력이 될지도 모르니까.

감지를 쓰면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걸 감지하게 되고 분석이 되는데 이 분석 능력을 따로 정신을 집중해서 쓰면 해당 물체에 대한 모든 정보(이해는 둘째치고)가 머릿속에 들어오게 된다. 거기다 옷으로 감추려 해도 소용없고 피부는 물론 신체 내부의 장기에서 세포까지 보여지니 이게 투시 능력이 아니면 뭐라고 할까.

그러다 보니 투시에 관한 여러 가지 수많은 내용이 머릿속에 마구마구 떠오르지만, 간단히 말하면.

내가 내 몸속의 장기를 아무런 영향 없이 살펴보는 거나 저기 여자 거인의 몸 내부를 살펴보는 거나 거대 두더지의 내부를 살펴보는 거나, 지금 누워있는 나무의 내부를 살펴보는 건 투시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아니지만, 머릿속에 객체로 저장되고 영상처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투시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현실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여자아이들의 옷을 뚫고 알몸을 투시해볼 생각이다. 흐흐흐.

아 물론 아무나 막 투시하는 건 아니고 예쁜 애들만 해야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운영하는 국내 최대이자 최고의 사학재단이거든. 그러다 보니 굉장히 유명해서 전국에서 수많은 인재가 몰려드는 데다 특히 여자애들은 전부 평균 외모 이상이라 우리나라에서 예쁜 애들만 모아놓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남자 놈들은 관심 밖이고.

네 번째로 이것도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감지 능력과 투시 능력이 합쳐지고 거기에 기억력도 좋아져서 만들어진 게 자동 지도 작성 기능.

줄여서 맵핑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건 움직이면서 감지 범위에 들어오는 각종 사물을 기억하고 땅속을 투시하고 해서 감지 범위에 들어온 모든 걸 머릿속에 기억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걸 떠올리면 지금까지 지나왔던 길들이 모두 머릿속에 가상현실처럼 머릿속에서 볼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지도로 떠오른 지역에 특정 위치를 생각하면 그곳을 분석했던 내용이 떠오르는 식이고.

비교 대상을 꼽으라면 인터넷의 대형 검색 포털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지도랑 비슷하겠다. 자동차로 주변 풍경을 찍어서 이어붙인 다음에 특정 포인트를 지정하면 그 부분의 사진만 보여주고, 방향을 지정하면 기록되어있는 방향으로 쓱쓱 움직이면서 풍경을 보여주는 거.

거기에 아무래도 게임을 좋아해서 그런지 눈을 감고 있으면 감지와 분석, 투시로 알게 된 것들을 알려주는 방식이나 능력의 모습이 게임 인터페이스처럼 변해가는 거 같아.

기억을 검색하면 창이 하나 뜨면서 관련된 내용이 주르륵 올라오고 분석을 하게 되면 메인이 되는 창이 뜨면서 그에 관련된 영상들이 잔뜩 동영상 재생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영상이 주르륵 흘러가는 거지. 영상에 살짝 눈길을 주면 마치 가상현실처럼 해당 영상을 크게 늘려서 보는 기분이고.

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는 그런 걸 인식도 못 할 만큼 다이렉트로 정보가 뇌를 관통하는 거 같아. 지금처럼 여유가 있을 땐 이것저것 게임처럼 구축이 되어가는 거 같고.

그렇게 눈을 뜨고 있으면 눈앞에 홀로그램 같은 게 떠오르는데 마치 홀로그램으로 화면을 표시하는 컴퓨터가 있다면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긴가민가하지만, 예감도 생긴 거 같은데 확신을 못 하겠어. 어떤 소설책에서는 초월적인 직감력이라고 거의 예지 수준의 직감력을 보여주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은 그냥 판타지 소설이었잖아. 믿을게 못되지.

아무튼, 거대 두더지를 만나기 직전에 뒷골이 콕콕 쑤셨었는데 그게 예감인건지 모르겠다. 그땐 능력을 각성하지도 못했었는데.

사실 여기에 온 것도 왠지 꼭 와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온거였는데, 와보니 정답이었다는 거지. 이 정도 경험만 가지고 예감이라고 하니 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해.

그러니 이 능력은 보류.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나뭇잎을 따먹었더니 슬슬 배가 차면서 허기와 갈증이 사라졌다. 그리고 벨트를 풀어서 한입 물……려고 했지만, 점심으로 고기를 구워 먹었으니 오늘은 먹을 필요 없겠지.

원래 2m 길이의 벨트지만 그래도 비상식량이니까 아낄 수 있으면 아껴놓는 게 좋지 않겠어?

그러고 보면 위상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는 큰 걸 본 적이 없네. 작은 건 틈틈이 배출해줬는데…….

으음 조금 비위상하지만, 대장과 직장을 투시해볼까? 자다가 위급한 상황에 볼일이 보고 싶어지는 거만큼 위험한 일도 없을 테니까.

천천히 식도를 시작해 위를 지나 십이지장을 거쳐 소장과 대장을 쭉 살펴봤지만 아까 굴속에서 투시했을 때랑 크게 차이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점심때 고기를 거의 내 몸통의 1/3이나 먹었는데 다 어디 간 거지? 미처 소화되지 않은 잔해물이 남아있어야 할 텐데…….

음……. 지금 소장과 대장에 있는 찌꺼기는(우웩.) 칼로리 보급을 위해 씹어먹은 벨트의 잔해물들이고, 그럼 이곳 위상 세계에서 먹었던 것들은 전부 위에서 완벽하게 분해가 되는 건가?

시험 삼아 한동안 위를 계속 투시하고 있었더니 씹어먹었던 나뭇잎들이 조금씩 분해되어 흡수되다가 대부분이 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남은 건 극소량의 나뭇잎의 흔적과 수분들뿐.

이 수분도 곧 몸에 흡수되어 사라질 거 같은데 그럼 위에 고여있는 물은 아까 강을 건널 때 조금 마셨던 물인가?

나뭇잎의 수분이랑 강을 흐르는 물은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

에이, 내 능력을 뒤돌아보고 어떤 계통의 능력인지 파악해서 이후에 얻을 기술과 능력을 짐작해보려고 했는데 자꾸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네.

난 머릴 붕붕 젓고는 쓸데없는 생각은 털어버리고(내 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능력에 관해 생각을 이어갔다.

일단 내 능력은 특수 능력에 포함될 거야. 현실로 돌아가면 Rare, 레어 클래스가 될 거다.

그럼 대표적인 게 초능력. ESP일 텐데 내 능력이 ESP에 속하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우뚱한단 말이야.

그렇다고 신체 강화, 속성화, 회복 셋 중 어디에도 포함이 안 되고.

아, 억지를 부린다면 뇌가 강화됐으니 신체 강화라고 볼 수도 있겠네.

하지만 곧 머릴 저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그건 아니라고 부정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거든.

그럼 역시 지금까지 밝혀진 계통과는 전혀 다른 능력이라는 건데, 여기까지 생각해봤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걸 보면 역시나 일반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계통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또 막힌단 말야. 내 능력은 대체 뭔가, 어떤 건가! 하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역시 이거다! 하고 마음에 확 와 닿는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으로 3시간을 보냈더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왔지만, 주변에 동물이나 이형종의 접근 같은 건 없었다.

시간 체크 기능도 있어서 좋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만을 보여주는 상태라 그냥 스톱워치 기능인 거 같다. 임시로 해의 위치를 보고 대강의 시간을 짐작한 덕분에 맞진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도 알 수 있고.

내가 정신을 잃거나 하면 동시에 감지 능력도 멈추면서 모든 게 멈추는 거 같으니까 시간을 확실히 알려면 그래도 시계 정도는 들고 다녀야지.

아, 해시계를 만들고 보는 법도 배워뒀으면 지금 상황에서 요긴하게 썼을 텐데 아쉬운걸. 대강만 알고 있으니 크게 도움은 안 되네.

어쨌든 3시간 동안 흡수해서 확장된 위상력은 135에서 30이 늘어나 175가 되었다.

하루 만에, 아니 반나절 만에 75나 늘어나다니……. 배율로 보면 오늘 하루 만에 1.75배가 늘어난 셈이다. 만약 이대로 내일 아침까지 꾸준히 위상력이 확장된다면 지금을 대략 오후 8시로 잡았을 때 12시간이 지난 오전 8시가 되면 위상력은 295가 되겠지.

위상력 수치에 대해서는 생존학에서도, 생물학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금 위상력이 오르는 수치는 적어도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건 나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쁜 건 아니니 오히려 행운이겠지.

세 번이나 죽을뻔하고 얻은 능력에 빠른 위상력의 확장이라니,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건지 불행 끝 행복 시작인 건지 감이 안 잡히네.

남은 11일 동안 적어도 위상력을 사용한 공격 수단을 하나라도 익혔으면 좋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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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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