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4일째, 여자거인2. =========================================================================
불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는 사이에 열기 때문에 몸에 바른 진흙이 다 말라버렸다. 또다시 진흙밭에서 몸을 굴려야 한다니…… 왠지 한숨이 나오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못하랴.
설령 살아남기 위해 똥통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해도!!
……가능한 그런 일은 없는 상황이 되도록 해야지.
어쨌든 이제 숙달된 몸놀림으로 진흙밭에서 또다시 거하게 구른 다음……
아차!! 포효가 들린 곳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수영하면 진흙이 다 씻겨나가잖아!
이런 젠장!!
이래서 멍청하면 안 돼.
난 한숨을 쉬면서 허리춤에 뿔을 끼워 넣고 뒤쪽에는 뾰족 나무 지팡이를 매단 다음 개헤엄으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유속이 빠르지 않아 다행이지.
대충 10m 정도 떠내려가면서 강을 건넌 나는 수영 도중에 대부분 씻겨나가 버린 진흙을 바르기 위해 다시 진흙밭을 만들고 그 위를 뒹굴어 온몸에 진흙을 빠르게 바르고는 포효가 들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왼손에는 나무 지팡이. 오른손에는 뿔 송곳.
빈약하지만 무장이 되니까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하는 거지만 감지 능력의 맵핑 기능은 참 편리하단 말야. 절벽을 따라 걸으면서 머릿속에 새겨지는 지도를 보면 절벽은 겉보기엔 직선이지만 계속 걷다 보면 조금씩 휘어지고 절벽의 높이도 높아졌다 낮아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다 내가 가고자 하는 부분이 대충 범위로 표시되는 걸 보면, 내비게이션?
이거 참 첨단기능일세그려.
어쨌든 자동 지도 제작 능력이 없었다면 절대로 몰랐겠지. 어쩌면 절벽을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면 점점 낮아져서 다시 절벽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라.
주변을 경계하는 건 감지 능력으로 충분하니 적당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포효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한 시간을 이동했더니 진행방향 쪽으로 80m 앞, 감지 범위의 끄트머리에 나무가 온갖 모양으로 부러지고 뽑히고 땅이 뒤집어진게 포착되었다.
거기다 포효의 진원에서 가까이 있었는지 주변 나무와 풀과 땅속의 벌레들까지 깡그리 다 죽어있었다.
이게 고위 이형종이 싸운 흔적인가…….
“꿀꺽.”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속담이 있는데 왠지 지금 내 이야기인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렵기는 하지만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위험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장담할 수 없는 예감에 기대어 사지에 기어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로 복잡한 마음이지만 다리는 쉬지 않고 전투의 흔적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전투의 흔적으로 다가갈수록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감정의 동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위상력?”
사방으로 가득 퍼져있는 위상력 때문이었다.
“엄청난데…….”
눈치를 못 챘는데 사방이 위상력으로 가득하다.
위상력도 자연 위상력이랑 이형종의 체내에서 뿜어져 나온 위상력 두 종류로 볼 수 있다. 위상 석도 이형종의 체내에서 나온 거고 말이지.
이형종은 죽을 때 몸에 품은 위상력을 사방으로 퍼트린다고 했지.
체내에서 뿜어져 나온 위상력은……뭐랄까. 조금 따뜻하면서도 포근하다고 해야 하나? 자연 위상력은 따져보면 물이랑 비슷한 느낌이고.
가득 퍼져있는 위상력은 따뜻한 몸속이 그리웠는지 천천히 내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흡수하는 게 아니다. 저절로 끌어당기듯이 위상력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거였다.
그런 걸 보면 여자 거인은 이 근처에서 확실히 죽은 거 같다.
내가 처음 감지 능력을 얻고 대기에 퍼져있는 위상력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이 세계는 공기 반 위상력 반으로 섞여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공기는 3이고 위상력은 7인 거 같다. 아마도 여자 거인이 죽어있을 곳으로 다가가면 점점 위상력의 농도가 진해지겠지.
마치 무거운 물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그와 동시에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설마!!
아냐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난…… 나는!!
예쁜 여자면 다 좋은 거였나?! 이형종이든 뭐든 인간형으로 예쁜 여자라고 인식만 하면 다 좋은 거였던 건가?!
충격이다…….
여자 거인에게 그럴 의향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살해당할 뻔한 인간이 생각할 게 아니잖아. 죽은 게 안타깝다니…….
아니 그 예쁜 몸을 더 못 본다는 건 확실히 아쉽지만.
아냐! 그게 아니라!!
그러면서도 2일 전에 봤던 여자 거인의 알몸이 생각나는 건 남자의 본능인 건가…….
으아……. 내가 이런 변태였다니!!
충격과 공포다.
아, 근데 감지 능력으로 봤다면 동영상처럼 언제라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아니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난 여자라면 다 좋은가보다.
여자 거인은 덩치가 좀 크고 위상력을 쓰는 이형종이긴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봤던 여체 중에서 아름다움으로는 단연 최고였다고! 그래, 이쁜 여자 싫어할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물론……. 직접 실물을 본 건 여자 거인이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사진이라거나 영상으로 섭렵한 지식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아니 그런 걸 자랑해서 어디다 쓰려고?!
아, 처음 본 실물은 영상과는 달랐었지만. 무진장 달랐지만. 왠지 살내음이 맡아졌던 거 같기도 하다.
……감지 능력이 생기고 나서 왠지 망상력이 더 강해진 기분이 들지만 진짜로 기분 탓일 거야.
내가 변태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었지만 충격은 충격이고 확인할 건 확인해야지. 여자 거인의 시체라던가 거대 두더지의 사체라던가.
이젠 두렵다는 마음보단 내 성적 기호는 대체 어떻게 된 건가, 그쪽이 더 걱정스럽다.
한숨을 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50m를 이동했더니 반 공터가 된 숲의 한쪽에 뭔가 내 몸통만 한 뭉툭한 게 감지에 걸려들었다.
이건…… 팔?
감지 능력으로 조금 더 더듬어봤더니 팔목 부근에서 한번 잘리고 어깨 아래에서 한 번 더 잘린 사람의 팔이었다.
“…….”
눈을 떠서 감지에 걸린 방향을 바라보니 피로 흠뻑 젖은 바닥과 그 위에 팔이 피에 젖어 널부러져 있었고 그 뒤쪽으로 한참 뒤에 있는 나무의 꼭대기에 사람의 왼손이 걸려 있었다.
원근감 무시가 장난이 아닌데.
밀려오기 시작한 피 냄새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고서 다시 눈을 감고 감지 범위를 넓힌 다음 팔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피 냄새와 더불어 더욱 진해진 위상력의 농도에 어쩐지 숨이 막힌다.
“크기는 진짜 크네.”
팔에 도착해서 손을 뻗어 만져봤지만 별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다. 감촉은 역시나 생각했던 것처럼 보드랍고 맨들맨들했다.
신발에 피가 묻는 게 약간 신경이 쓰였지만 뭐 어떠랴 싶어서 신경 끄고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투의 여파는 수백 미터에 걸쳐있었는데 천천히 움직이면서 감지를 돌려보니 마치 호리병을 여러 개 이어붙인 것처럼 동그란 공터가 군데군데 생겨있었다.
호리병이라기보단 크게 꺾인 5단 눈사람 같은 모양이네.
근데 공터마다 꼭 중심에서 폭발이 일어난 거 같은 모양으로 나무가 뿌리째 뽑혀나가 있거나 공터의 바깥 부분으로 밀려나서 넘어져 있거나 완전히 박살 난 모양인데, 여자 거인의 기술인가? 포효의 영향이라면 3개의 공터가 만들어졌어야 했을 텐데 5개나 있잖아.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하면서 전투의 흔적을 구경하고 위상력도 흡수하고 감지 능력을 써서 주변에 뭔가 다가오는 건 없나 살펴보고 있었는데.
아…….
저 멀리에 한 덩어리로 포개져 있는 거대 두더지와 여자 거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살아있나? 했지만 생명체 특유의 생기 같은 게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죽은듯 하다.
둘 다 워낙 커서 그런지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마치 20m 앞에서 보는 기분이다. 덕분에 그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보는 방향으로는 여자 거인의 엉덩이가 보이는 쪽이라 자세한 건 두 시체를 내 감지 범위 안에 넣어야 알 수 있을 거 같다.
두더지는 뒤집어진채로 누워있었고 여자 거인은 두더지의 배 위에 엎드린 모양으로 축 늘어져 있었는데 역시나 왼팔이 없다.
여자 거인의 음부와 항문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면서 사타구니를 타고 흐르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걸 보면 내부 장기도 엉망이 된 거 같다. 그 외에도 허리를 중심으로 오른쪽 옆구리까지 갈라져서 그 사이로 창자가 흘러나와 있는 모습이나 심장이 있을법한 위치에 등을 뚫고 나와 있는 거대 두더지의 왼쪽 앞발톱을 보면 심장이 부서진 게 결정적인 사망 요인인 거 같다.
그 외에도 전신이 난도질당한 모습이라 그냥 보면 강간살인마한테 당해서 죽은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여자 거인의 시체나 두더지나 둘 다 피투성이지만 대부분의 피는 여자 거인의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거인의 무기는 타격계열이니까 두더지는 전신의 뼈가 부러져있다거나 그럴 거 같다. 그러니 얼핏 보이는 두더지는 온몸의 뼈가 다 부러지고 내부 장기가 터져있지 않을까.
근데 위상력을 막으려면 위상력으로 맞상대해야 하는데 저 두더지는 그냥 큰 동물이잖아. 가까이서 포효를 세 번 받은 걸로 내장이 터지기보단 곤죽이 됐을 거 같은데. 뿔 강아지처럼 말이야.
거대 두더지는 정확히 어떻게 죽은건지 사인이 궁금해졌다.
농도가 더욱 짙어진 위상력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지만, 가슴을 부여잡고 진정시키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두 시체를 감지 범위에 집어넣자마자 여자 거인의 심장 부근에 거대한 위상력이 덩어리져있는 게 느껴진다.
혹시 저게 위상석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꼭 두더지의 앞발이 그 위상석을 빼내려 하는 자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대 두더지는 머리가 있던 자리에는 여자 거인의 곤봉이 내려 찍힌 모양으로 박혀있는 걸 보면 머리통이 부서져서 죽은 거 같다. 그리고 오른쪽 앞발은 그냥 고깃덩어리가 되어있었다. 그 외에도 척추에 금이 가 있던 자리는 완전히 바스러져 있었고 오른쪽 뒷발 역시 잘 다진 고깃덩어리가 되어있었다.
역시나 멀쩡한 뼈가 별로 없군.
어쩜……. 때린 곳을 또 때리는 여자 거인의 악독한 성격이 눈에 보이는듯하다!!
그리고 배를 두드려 맞은건지 내장도 찢기다 못해 터져있는 걸 보니 그냥 둘이 서로 삶을 포기하고 어떻게든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발악한 거 같다. 그러고 보면 포효는 그다지 영향을 못 준 건가?
근데 두더지의 앞발 가락은 5개인데 여자 거인의 가슴에 틀어박힌 발톱은 4개뿐이다.
하나는 부러져나간 거 같은데 끄트머리에서 부러진 곳까지의 길이를 보면 2m 정도 될 거 같은데?
“돌아가기 전에 부러진 발톱을 찾아봐야지.”
슬쩍 나무지팡이를 내려다 보고면서 중얼거리고는 여자 거인의 신체를 마저 감지했다.
머리부터 감지했는데 왼쪽 이마에서부터 눈을 통과해 오른쪽 입술까지 크게 잘려있고 그 큰 눈이 터져서 수정체가 얼굴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꽤 고통이 심했을 텐데도 얼굴이 일그러져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그저……. 두더지의 죽음을 확인한 평온한 얼굴로 죽어있었다.
마치 원수에게 복수하고 죽음을 확인해서 후회는 없다는 표정?
감지 능력으로 얻는 정보를 내가 나름대로 분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라 내 지식과 감정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매우매우 나의 주관적인 시선이 섞인 셈이다.
다시 여자 거인의 몸 속을 속을 투시해보니 엉망 진창이었다. 베이고 뜯어진 창자들은 물론이고 폐와 위, 심장도 난도질 당해있었고 아랫배에도 발톱이 한번 찌르고 나갔는지 질과 자궁에 찍힌 자국이 보였다.
저러니 음부에서 막 피가 흘러나오지.
“어휴…….”
그런데 외 눈 거인도 가족 단위로 생활 한다던가? 가족이나 자식이 있었다면 이렇게 목숨을 잃었을 것 같진 않을 거 같은데…….
그런데 소음순과 질의 상태로 보면 섹스는 거의 하지 않은 거 같…….
에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난!!
이형종의 섹스 라이프를 생각해서 뭐하자고!
아무튼, 내 독특한 망상 벽으로 아버지의 의술 서적을 뒤지면서 쓸데없는 잡학을 익히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다. 사실이 맞는가 싶지만 내 추측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다.
어쩌면 가족들이 전부 저 두더지한테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때려죽인 게 이해는 간다.
그 외에 여기저기 투시하고 감지를 해봤지만 부서진 심장 조각에 위상석이 있는 걸 빼면 특이사항은 안 보인다.
그저 여기저기 찔리고 베인 상처들과 왼쪽 유방이 절반 정도 잘려나가 있는 거?
그나저나 저 위상석은 어떻게 빼낼지 고민이 된다.
몸을 가르고 손을 집어넣어서 직접 빼내야 하나? 다행히 몸이 경사져있진 않고 거대 두더지의 배 위에 엎드린 자세라 등에서 파고들어 가면 안 될 것도 없을 거 같은데, 사람이랑 똑같이 생긴 몸이라서 꺼림칙하다.
근데 여자 거인의 몸을 가르려면 날카로운 게 필요할 텐데… 순간 눈에 들어오는 거대 두더지의 발톱. 부러진 발톱이라면 여자 거인의 몸을 가를 수 있지 않을까?
좋아.
대충 알아낼 건 다 알아냈으니 이제 부러진 두더지의 발톱을 찾아봐야겠다. 어디서 부러졌을지 감이 잡히지 않으니 감지 능력으로 공터 다섯 곳을 전부 다 둘러보면 나오겠지.
그러는 와중에도 주변의 위상력은 끊임없이 내 몸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내 몸 안에 자리를 잡는 위상력이 있는가 하면 내 몸을 한 바퀴 돌고는 밖으로 빠져나가는 위상력도 있었다.
비율로 보면 3:7 정도인 거 같다.
덕분에 위상력이 4시간 동안 115까지 늘어났다. 위상력의 농도가 진한 곳으로 왔을 때가 2시간 전이었으니 고작 2시간 만에 15나 늘어난 셈이다. 그러니 여기서 위상력이 완전히 퍼져서 평범한 농도로 돌아갈 때까지 버틴다면 위상력이 상당히 올라갈 거 같다.
16분을 투자해서 찾아본 결과 서 있던 공터에서 떨어져 나간 발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자 거인과 거대 두더지가 죽어있는 끄트머리에서 반대편에 떨어져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치열하게 싸웠나 보다.
두 조각으로 동강 나 있었는데 긴 쪽은 길이가 1.2m가량이었고 짧은 쪽이 60cm 정도였다.
긴 쪽이 발톱의 끝 부분이었는데 두께는 일반적인 사람의 손톱 모양이 아니라 속이 찬 삼각뿔 모양에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휘어지며 뾰족해지는 형태였다.
그런데 모서리마다 예기가 장난이 아니다! 섣불리 만졌다간 내가 베여서 상처를 입을 판이다!
폭이 제일 넓은 부분은 전체 길이가 30cm 정도나 되어서 도무지 한 손에 잡을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베여서 손가락이 다 날라가버리겠지.
주변에 나무를 자르고 교복 안감을 잘라서 평평한 면에 덧대 볼까?
아냐 너무 두꺼워져서 손으로 잡을 수도 없을 거야.
하지만……. 작은 뿔이 있으니까 이걸로 나무를 깎고 파내서 손잡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끝 부분에서 갈수록 폭이 좁아지니 나뭇조각을 3개 구해서 각 면에 맞게 3번 꺾어지는 번개 모양으로 잘라낸 다음 끄트머리 부분에 홈을 내고 옷감을 길게 잘라서 꽁꽁 묶으면 휘두르거나 찌르기용으로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자 분석 능력이 내가 생각한 모형의 완성도를 머릿속에 띄워 주며 발톱과 장착 된 모습까지 보여줬다.
오오!? 이런 능력도 있었나. 좋아, 모양은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
흠, 그럼 이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한번 볼까?
난 주변에 굴러다니는 부서진 나무 조각을 들어서 모서리에 내려쳤다. 그러자 별다른 저항감도 없이 나뭇조각은 모서리에 닿은 부분이 석둑 하면서 잘려나가는 게 아닌가!
“우워. 장난이 아니네?”
문득 손에 쥐고 있는 뿔 송곳의 내구성과 거대 두더지 발톱의 날카로움 중 어느 게 더 뛰어날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차피 나중에 다듬을 생각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확인도 해볼 겸 뿔 송곳을 두더지 발톱의 모서리에 비스듬하게 갖다 대고 살짝 힘을 주어봤는데 뿔 송곳이 조금씩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더지 발톱도 울퉁불퉁하게 변하는 걸 보면 뿔 송곳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와 시발. 그때 덤볐다면 큰일 날뻔했네.”
처음 뿔 강아지를 봤을 때 생김새에 방심하고 얕본 채 덤볐더라면 내가 오히려 뿔에 꼬치 꿰듯이 찔리는 상황이 머릿속에 자연히 그려졌다.
여자 거인의 포효에 쇼크를 먹고 발버둥 칠 때의 움직임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었는데 감지 능력으로 계산해보니 실제 움직임은 그보다 조금 더 느리게 움직일 거로 예상되었다.
그러니 만약 똑같은 놈과 만난다면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기를 뜯어 먹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몸의 뼈보다는 두개골과 뿔이 훨씬 단단했으니까. 머리의 뿔만 조심하면서 나무 지팡이로 멀리서 두들기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을 거 같다.
나중을 대비해서 참고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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