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9 3일째, 거대 두더지와 각성 =========================================================================
쏴아아찌릉쪼롱쿠웅첩첩푸르륵푸스스휘이이잉쿵
크악!!
갑자기 수많은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면서 고막이 찢어질 거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동시에 반경 60m 이내의 모든 움직임이 뇌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목이 꽉 죄이면서 비명이 튀어나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진흙을 뒹구는 거대 두더지의 움직임.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의 모습.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개수와 모양들. 수많은 곤충이 땅 위를 기고 있고 하늘에는 몇몇 새들이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궤적을 보인다. 땅속에도 많은 곤충이 활동하고 있었고 물고기가 없다고 생각한 강에도 강바닥을 기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이 머릿속에 "보여"졌다.
스으으으으으읍
코로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쉰다.
죽은 게 아니라 기절했던 거였나?
쿵덕거리며 뛰는 심장을 느끼면서 조심스레 눈을 떴더니 사방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인지 범위가 20m까지 줄어들었다. 눈을 감자 인지 범위가 60m까지 다시 늘어났다.
뭐지 이건?
범위 안의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움직임이 내 머릿속에 영상처럼 재생되기 시작했지만, 머리가 아프다거나 괴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능력! 능력이다!
조심스럽게 코로 숨을 내쉬면서 얼마나 기절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강기슭에서 버티고 있는 거대 두더지에게 나도 모르게 정신을 집중해본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마치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두더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렇게 해보니 능력을 쓰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좀 더 두더지의 내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뇌와 양미간 사이에 힘이 집중되는 게 느껴진다.
그러자 마치 투시가 되듯이 거대 두더지의 몸 내부가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아니 느껴진다? 표현하자면 느껴진다 쪽이 알맞지만 보여진다도 틀리지 않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몸의 내부는 심각한 상태였다.
둔기에 얻어맞았는지 왼쪽 뒷발은 뼈가 조각조각 나 있었고 허리의 척추, 오른쪽 갈비뼈 두 대와 두개골에 금이 가 있었고 오른쪽 앞발의 발톱도 절반은 부러져 있었다. 멀쩡하게 남아있는 발톱은 길이가 3m 정도 되는데 앞발의 발톱은 굉장히 날카롭다고 분석되는 거 같다.
…….
길이나 특정 사물의 정보가 저절로 머릿속에 입력되는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 쓰고 있는 능력도 저절로 60m라는 걸 알 수 있었지? 거기다 감지라는 단어와 분석, 투시라는 단어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계속 정신을 집중해 거대 두더지의 몸을 계속 감지와 분석, 투시해본다.
한참 재생 중인지 피와… 피? 피는 아닌 거 같은데 아무튼 뭔가 영양소가 금이 가고 부러진 뼈에 달라붙어 재생 중인 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위상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날 중심으로 반경 60m 안에 마치 물처럼 공기와 섞여 존재하는 "무언가"가 위상력이라는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이게 바로 위상력이라는걸 금방 눈치챈 후 내 몸속에도 위상력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잠깐 내 몸을 본다고 생각했더니 순식간에 분석해버리네.
그런데 정작 두더지의 몸 안에는 위상력이라곤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두더지는 이형종이 아니었어! 그냥 평범한 동물이었다니……. 어떻게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었던 거지?
게다가 거대 두더지의 몸 안을 흐르고 있는 피가 아닌 정체 모를 액체는 대체 뭘까.
위상력은 말 그대로 기적의 에너지. 이걸 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나게 되는데 그건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위상력을 능력자들처럼 몸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기 시작한 동물을 이형종이라고 부르는데 이형종이 된 동물은 일단 몸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고 생체 능력 또한 마치 신체 강화 능력자처럼 상상을 초월하게 변한다. 무엇보다 한눈에 베이스가 되는 동물들과는 다른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거나 아예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일단 위상력을 흡수해 체내에 저장하기 시작한 능력자나 이형종은 일반적인 자가 치유 속도가 적게는 수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늘어나게 된다. 거기다 위상력은 체내에 돌고 돌며 육체에 해가 되는 존재에 대해 강한 저항을 보여주기 때문에 위상력이 체내에 존재하면 질병과 독, 그리고 인공적인 합성물에 대한 영향이 크게 줄어든다.
그런데 저 두더지는 이형종도 아닌 주제에 일반 두더지보다 100배 가까이 커지고 그에 걸맞은 힘과 재생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아마도 피와 함께 흐르는 저 무엇인가 때문인 거 같은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또 하나 늘어났군.
이해가 안 하는 건 안 가는 거고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저 두더지니까 감지 능력으로……
그래, 감지 능력이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분석과 투시도 능력이라고 해야지. 감지 능력으로 두더지의 몸을 더듬으며 혹시나 싶어 덩치에 비해 사람보다 작은 뇌에 정신을 집중해봤는데 두더지의 생각이 희미하지만 느껴진다.
아파하지만 뭔가 아쉬워하는 게… 뭔가와 싸웠나 보다. 혹시 여자 거인이 아닐까? 아쉬워하는 걸 보면 결착은 내지 못한 거 같다. 그 이상은 내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건지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뇌를 감지한다고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마저 엿볼 수 있다니.
그래, 맞아. 여자 거인이 경계하던 건 저 거대 두더지가 맞을 거야. 이형종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공기의 떨림과 자신의 채취를 막으면 저 두더지는 자신을 알아볼 방법이 없었던 거지.
눈은 퇴화했는지 흔적만 남아있고 코의 냄새와 수염으로 공기의 떨림을 감지하는 걸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걸로 보이는데 여자 거인은 그 점을 노리고 진흙으로 자신의 채취를 막고 멀리서 기습적으로 덤벼들려고 한 거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진행되자 머릿속에 한가지 영상이 재생된다.
첫 타는 여자 거인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내리면서 허리에 일격을 먹이는 걸로 시작하려 했다. 허리가 중요하다는 건 동물이라면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상태라 여자 거인의 낙하에서 생겨난 공기의 떨림이 수염에 감지되며 습격을 눈치를 챘고 거대 두더지는 온몸을 비틀며 피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피하지 못해 왼쪽 뒷발을 곤봉에 가격당하면서 뼈가 조각조각 나버리는 거대 두더지. 만약 피하지 못했다면 척추가 왼발 꼴이 났을 테고 그 상황에서 싸움은 끝이 났겠지만, 가장 무서운 습격의 첫 타를 피한 두더지는 오른발과 앞발로 몸을 회전시키며 여자 거인을 마주한다.
영상은 계속 이어졌지만, 갑자기 영상이 끊겼는데 머릿속에서 감지와 분석 능력이 발휘되더니 몇 가지 내용이 떠오른다.
역시 치명타는 줄 수 없었나 보다. 그 뒤로는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싸움을 이어 나갔을 테고, 이렇게 생각을 했더니 다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여자 거인도 분발했는지 머리통에 타격을 주지만… 목이 없어 슬픈 두더지는 대신 두개골이 무진장 두꺼워서 비록 금이 가고 뇌에 충격을 받았지만, 일격을 버티고 반격을 가한다. 그리고 여자 거인의 손목을 가르는 거대 두더지의 오른쪽 발톱.
두더지의 몸통 여기저기에 묻은 피가 그걸 증명했다.
여자 거인은 자신의 손이 잘림과 동시에 곤봉을 거대 두더지의 등허리에 내려찍었지만, 자세가 비틀리며 힘이 부족해 척추에 금을 가게 하는 걸로 끝나버렸다. 직 후 왼발로 거대 두더지의 가슴을 차면서 물러난다.
힘이 조금만 더 들어가서 허리를 부러트렸다면 여자 거인의 승리였겠지.
하지만 바로 달려들어 거대 두더지의 머리를 노리는 척 한 여자 거인인의 속임수에 거대 두더지는 속아버려서 오른쪽 앞발로 막으면서 공격하려고 한다.
자신의 페인트 모션에 속아 넘어 간 두더지의 행동에 곤봉의 방향이 바뀌며 거대 두더지의 오른 발톱을 곤봉으로 휘둘러치며 발톱 세대를 부러트려 버리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거대 두더지의 머리통에 무거운 곤봉을 내려쳐 일격을 먹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왼손이 사라져 약간 어긋난 균형이 힘의 집중을 방해해 머리통을 박살내는데 실패해버렸다.
두더지는 왼발을 다친 덕분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머리통에도 일격을 허용했고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의 충격 받았지만 죽지않고 황급히 물러나며 다시 경계하기 시작한다.
여자 거인도 왼손을 잃어버려 서로 노려보는 상황에 괴물 같은 재생력으로 이미 회복을 시작한 거대 두더지에 비해 잘려나간 왼쪽 손목을 지혈도 하지못한채 피를 줄줄 흘리는 여자 거인.
미약한 뇌진탕을 회복하고 다시 조심스레 공격을 날카로운 양 발톱과 이빨로 공격을 시작하는 거대 두더지에 비해 여자 거인은 방어 위주로 나가다가 출혈을 못 이긴 여자 거인이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한다.
영상은 거기에서 끝났다.
거대 두더지가 아쉬워 하는 점으로 봤을 땐 그 상태로 계속 싸웠다면 자신이 이겼을 거라 생각한 거 같다.
거대 이형종이라면 당연히 뛰어난 신체 재생능력이 있다. 특히 신체 강화 타입의 외눈 거인이라면 뛰어난 재생력은 당연하겠지.
그 아름다운 몸에 난 상처가 내가 본 영상과 똑같을지 궁금하지만 바로 궁금증을 지웠다.
서서히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깨어나는 정신이라는 느낌에 흠칫했는데 방금전이 아마도 각성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었나 보다. 마치 약에 취한 느낌이었는데.
어쨌든 여자 거인의 상처를 볼 방법 따윈 없겠지?
난 이제 감지 능력을 얻어서 명실상부한 이형 능력자가 됐다. 만약 여자 거인과 마주친다면 도망가는 건 포기해야 할 거다. 지금의 난 열심히 위상력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으니까 여자 거인의 감지 범위 안에 들어간다면 100% 들킬 것이다.
생각해보면 첫날 여자 거인을 만났을 때 들키지 않았던 건 아마도 각성을 하기 전이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다시금 두더지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해본다.
저 두더지는 평범한 동물. 즉 위상력 감지 능력 따윈 없다.
진흙으로 내 채취를 지우고 나무와 수풀로 내 모습마저 가려주고 있다. 이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숨 쉬면서 가만히만 있는다면 저 두더지는 절대 날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증거로 아픈 왼발을 기다란 혀로… 으웩, 무슨 혀가 10m나 늘어나냐. 혀로 진흙을 퍼 올려 왼발에 덕지덕지 바르는 데만 신경을 쏟고 있었으니까.
근데 이 감지능력은 정말 굉장한 거 같다. 조금 집중하면 두더지의 근육을 뚫고 내부 장기까지 볼 수 있고(머릿속에서 그 모양이 리얼하게 재생된다!) 범위를 넓게 집중하면 두더지가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영화관에 앉아 3D 영화를 보는 것처럼 리얼하게 보였다.
그렇게 두더지가 움직이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보니 근육의 움직임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근육이 팽창하면 오른발을 움직이고 저렇게 근육이 줄어들면 왼쪽 앞발을 꼼지락거린다.
한동안 정신없이 정보를 머릿속에 담고 있으려니 두더지는 볼일이 끝났는지 이내 몸을 돌려 숲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까지 알아낸 건 어쩐지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지와 분석과 투시라니! 응용하면 위상 세계에 처음 온 날 만났던 개새끼 정도는 뾰족 나무 지팡이와 함께라면 수월하게 때려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어째서 생존학에서는 특별한 능력을 얻기 전까지 절대 이형종과 붙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고양 감에 짜릿한 희열을 느끼며 숲 속으로 사라진 두더지를 좀 더 탐색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 감지 범위는 강 건너 숲의 초입까지라 더는 감지할 수 없었다.
다시 정신을 돌려 주변 60m를 샅샅이 뒤지면서 나에게 위협이 될만한 존재가 있는지 살펴봤지만 주먹만 한 새를 제외한 동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형종도 없다.
이제 안전하다.
“푸후.”
눈을 뜨니 감지 범위가 줄어드는 느낌에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시력은 중요하다. 눈을 감았을때의 감지 범위는 반경 20m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시야는 그 범위를 훌쩍 넘으니까.
감지 범위는 원통형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하는 원구 형이었다. 그리고 감지가 만능은 아닌지 색상이 부족하다. 마치 어두운 밤 같은, 아니 흑백의 모노크롬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눈으로 느끼는 총천연색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
그리고 내 몸을 감지했을 때 옷 같은 건 전혀 걸리지 않고 몸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감지되는 걸 보면 일반적인 사물은 나의 감지에서 벗어나거나 막을 방법이 없을 거 같다. 눈이 없으니 감각적으로 예민할 두더지가 내가 온몸을 투시하고 감지하는데 전혀 몰랐을 정도니까.
하지만 위상력을 가진 존재는 어떻게 될까?
어쨌든.
흐흐흐흐흐.
음흉한 웃음과 함께 망상력이 풀 가동되며 몸의 중심으로 피가 몰리면서 갑자기 살아남아서 현실로 반드시 돌아가야겠다는 굳은 결심과 용기가 마구마구 솟아난다!!
기다려라, 여자… 아니 현실이여!!
으헤헤.
첫 능력이니까 어떻게 활용하는지. 위상력의 소비량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 감지 능력을 열심히 활용하면서 눈을 감고 절벽을 따라 걸은 지 3시간째. 감지 능력을 쓴 채로 이동하면서 알게 된 건데 아무래도 평범하게 감지 능력이라고 이름을 붙일게. 아닌거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가 이동했던 거리와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지금까지 흐른 시간도 체크가 되고 무엇보다 이동했던 장소가 내 감지 범위만큼 3D 입체 영상으로 머릿속에 지도가 만들어졌던 거다. 무척이나 다기능적이었다.
아무튼 3시간 동안 절벽을 따라 11,852m를 걸었다. 12km가 조금 못되지만 이 정도는 일반적인 성인의 이동 속도와 똑같았다. 하지만 난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그렇게 빨리 못 걸었을 텐데……. 아마 각성을 하며 체내에 위상력이 생기고 신체 능력이 조금 더 올랐나 보다.
중2 때 본 생존학에서는 평범한 사람은 1시간에 4km 정도 걷는다고 적혀있길래 망상 산책으로 다져진 나는 1시간에 어느 정도나 이동할 수 있을까 궁금해져서 경보계를 사서 써봤었다. 그게 2년 전이었고 당시에는 1시간에 2.5km를 겨우 걷는 수준이었지.
……걷는 데는 조금 자신 있었는데. 기계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내 자신감이 과했던 거다. 실망해서 집구석 어딘가에 집어 던져놨던 경보계는 다음 달에 누나가 잘 쓰고 있는 걸 발견했다.
생각외의 기능에 흡족해하면서, 특히 맵핑 기능에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어질 정도였다.
자고로 게임에서는 자동 완성기능이 달린 맵은 기본이 아닌가! 지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무진장 갈린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능력은 그야말로 획기적이다!
……잠깐 생각해보니, 현실에서도 꽤 유용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환호할 정도는… 아닌가? 딱히 쓸 방도가 생각나는 것도 아니고. 이형 종들에게서 몸을 지켜야 하는 상황인 지금에서는 그냥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능력 같다…….
뭐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다음 위상 세계에 진입할 때는 무진장 도움이 되겠지! 미로 같은 곳도 있다고 하고 현실에서도 괜히 내비게이션이 있는 게 아니니까!
내 능력을 보니 어쩐지 이형종 들도 당연하게도 위상력을 감지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이형종의 감지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무진장 궁금해졌다!
이계 생물학에서 이형종 들은 그저 눈에 띄면 미친 듯이 달려든다고 표시 되어있었지 위상력의 감지 범위가 어느 정도라서 일정 거리 밖에서 달려든다!'라고는 쓰여 있지 않았거든. 만약 범위만 알면 내 감지 능력으로 이쪽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자고로 싸움은 선빵필승이라는 이야기도 있잖아?
거기다 감지 능력을 얻고 났더니 든 생각이지만 석학과 과학자들도 이형종은 위상력을 감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더해서 감지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시험해봤을 거 같기도 하고.
평범한 내가 능력을 얻고 이런 생각을 했으니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벌써 생각을 해봤겠지. 근데 그런 건 기밀인지 뭔지 이세계 생존학이나 이계 생물학에는 그런 내용이 하나도 안나와있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감지 범위를 넣는다면 생존율이 꽤나 올라갈 거 같다는 생각이 든 거다.
적어도 어떤 놈들이 나오고 얼만큼 위상력을 감지한다고 하면 생존율이 굉장히 올라갈 거라는 생각은 나만 하는 걸려나?
생존율이 오른 다는 건 고위 인사들도 환영할 사항일 텐데, 그런 정보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는 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고위 인사들도 자기 자신이나 자식들이 언제 위상 세계에 휩쓸릴지 모르는데 비록 휩쓸릴 확률이 1,000명 중의 1명이라 해도 자신이 그 1명이 될 확률이 있는 한 생존확률이 올라갈 항목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이세계 생존학과 이계 생물학 책에 기록하게 만들었겠지.
내가 여기서 생환한다면 여러 가지로 이세계 생존학과 이계 생물학에 기록될 내용이 있을 거 같다.
근데 정말로 고위 인사와 자녀들을 위한 교육과정이나 서적이 따로 있는 거 아냐? 그냥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인데 한번 의심이 가기 시작하니 여러 가지 면에서 정말로 의심스러워졌다.
만약 그게 진실이었다면… 개새끼들이지. 자기네들끼리만 생존확률이 오를만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잖아? 일반인들 중에 이형 능력자가 나올 확률이 낮아지게끔 책의 정보를 조작한 셈이 되는데 정말이라면 개새끼라는 칭호도 부족할거같은데?
아무튼 3시간 동안 걸으면서 알아낸 거지만 감지 능력에 위상력은 전혀라고할만큼쓰이지 않는다.
감지 능력으로 파악해 본 지금 내 체내의 위상력을 수치로 표현해서 100이라고 하자.
감지 능력은 게임 용어로 패시브라고 할 수 있을려나? 눈을 뜨든 감든 계속 감지가 되니까. 그럼 시간이 흐르면 위상력이 자연히 소비가 되어야 할 텐데, 그래서 1시간 동안 걸으며 체크해보니 1이 줄어드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10분이 지나니까 다시 100이 되어버렸다. 즉 소비량보다 회복량이 더 크다는 말이지.
1시간 동안 눈을 감고 감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10분에 10초 정도는 눈을 떴다가 감았으니까 거의 1시간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고 해도 될 거다.
눈을 뜨고 감은 상태에 따라 감지 능력이 변하지 않지만, 범위는 1/3로 줄어드니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감고 있을 때가 소비량이 더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비량은 똑같더라.
아무튼, 한가지 예를 들자면 신체 강화 능력자들의 능력도 패시브라고 한다. 그러니까 힘을 쓰는데 위상력은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몸으로 흡수한 위상력이 신체를 돌면서 강화하는 거기 때문에 상처를 입어서 재생력을 올리거나 공용 스킬을 익혀서 쓰지 않는 이상 위상력의 감소는 없다던가?
근데 감지 능력이라니… 꽤 희귀한 타입이다. 그런 희귀한 타입에 이런 패시브 능력이라니. 난 운이 좋은 건가? 게다가 일반적인 계통에서도 벗어나는 거 같은데.
왠지 대박을 잡았다는 생각에 히죽 히죽거리면서 비슷한 능력이 어떤 게 있었나 생존학을 떠올렸다.
바로 생각나는 건 기감이라거나 분석이 있는데 기감은 그저 위상력을 체외로 돌려 일정 범위에 들어온 물체들을 감지하는 능력 이랬고 그 범위도 처음에는 대충 10m 정도라고 써져있었다.
분석 능력은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분석하는 능력이랬는데 눈에만 들어온다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분석할 수 있지만 시야 밖에 있는 것들은 분석할 수 없고 분석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려서 그동안 계속 분석 대상을 시야에 담아두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거기다 둘 다 직접 위상력을 사용해야 발동되는 능력이랬는데?
특히 기감과 분석은 소비 위상력이 꽤 커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내 감지 능력은 범위는 기감의 6배에 즉시 시전에 실시간 분석 급의 분석 능력이지만 소비 위상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거기다 상시 발동이라니…. 기감과 분석의 좋은 점만 합치고 신기능을 추가해서 업그레이드 한 거 같다.
“으흐흥 흐흐흥 흥흥.”
어쩐지 생각할수록 대박을 잡은 기분이라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감지하는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런 대박 능력을 얻고도 멍때리다가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장담하는데 이 감지 능력은 생존특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서 현실로 돌아갈 확률을 대폭 올려주는 능력!
기분이 막 좋아진다! 전투 능력이 아니라는 게 아쉽긴 하지만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고위 이형종 들이 튀어나오고 그 이형종이랑 맞짱뜨는 거대 동물이 있는 상황인데 오히려 생존 능력 쪽이 좋을지도!
절벽 높이는 감지범위보다 조금 낮은가 52m 정도. 위치에 따라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벽에 딱 붙으면 위쪽의 정보도 약간이지만 들어온다. 저 위로 다시 올라갈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걸으면서, 주변을 감지도 하면서 생각한 거지만 이쪽에 동물이 없는 이유는 아까전의 거대 두더지 때문인 거 같다.
그놈은 이형종도 아니니 음식이 필요했을 테고 그놈의 코와 수염이 있다면 동물을 사냥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
이형종은 여자 거인에게 사냥당하고 동물은 거대 두더지한테 사냥당하고…….
아무래도 여길 벗어나기 전까지는 나뭇잎이 내 주식이 될 거 같다. 음식을 구하기 위해 함부로 돌아다니다간 거대 두더지와 여자 거인을 만나 황천으로 여행을 떠나버리게 될 테니까! 물론…… 동물이 있다고 해도 내가 그것들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오히려 사나운 육식 동물마저 나오면 그게 더 위험한거아냐?!
좋은 일이 하나 생겨서 기분이 좋아지면 이어서 안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라서 기분이 나빠지니 감정의 기복이 오르락내리락 바쁘구만.
그리고 계속 나뭇잎을 따서 먹으면서 내 몸 내부도 신경 써서 감지해봤지만, 뱃속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거나 나쁜 요소가 체내에 쌓이지는 않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함부로 뭘 집어먹거나 우유를 먹었다간 배에서 대격변이 일어나거든!
아무튼, 사방 지천에 널린 나무들과 그 나무에서 나는 나뭇잎은 말 그대로 섬유질+수분 보충에 최적화된 나뭇잎이라는 거지.
어쩜 이렇게 편리한 식물이 다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편리한 능력이 다 있을까!
실제로 처음 나 자신의 내장을 감지해봤을 땐 그 움직임이라던가 생김새가 그로데스크하고 나뭇잎이 위에서 소화되고 있는 모습이나 대장을 지나쳐서 직장에 쌓이고 있는 똥(…) 같은걸 보고 비위가 상해서 먹었던 나뭇잎들을 토할뻔했었다.
그런데 감지하기 전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거든? 그런 걸 보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 정보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사람의 뇌라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가 보더라. 내 정신건강에 위협을 주는 정보는 일단 수집은 하지만 자각은 하지 않는….
그러니까 심층 의식과 표층 의식같이 나뉜다고 할까. 일부러 생각하고 인식하기 전에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그런 차이 같다.
그 뭐냐, 평범한 모닥불을 보면 사람들은 따뜻하다거나 뜨겁겠다고 생각하지 그 이상은 생각은 잘 안 하잖아? 뭐 특이한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하지만 깊게 생각하면 모닥불을 피우기 위한 행동에서부터 모닥불을 이루는 나무의 종류나 모닥불을 크게 피우기 위한 방법이나 손을 넣으면 큰일 난다거나 많은 정보를 떠올릴 거 아냐?
그런 거지.
그래서 지나치면서 시험 삼아 분석해봤던 새나 나무의 내부, 땅속에 있는 곤충들을 떠올려보니 과연 내 정신건강을 위협할만한 항목이 있었다, 이거지. 똥이 가득 찬 항문이라던가 뭔가 구불구불 알 수 없는 내장이 가득 찬 곤충의 뱃속이라던가……. 우웩.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내 감지 범위의 끄트머리에 사족 동물이 들어왔다!
게다가 이형종인 거 같아!! 조그만 체내에 열심히 돌고 있는 건 지금 내가 온몸으로 모으고 있는 위상력과 똑같은 거잖아!
급작스레 올라가는 긴장감에 지팡이로 삼고 있던 뾰족 나무 지팡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느닷없이 실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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