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이야기 2 =========================================================================
세계는 2종류가 있다.
음… 2종류가 아니라 1종류와 많은 + α가 있다.
1종류는 지금 살고있는 현실.
+ α는 위상 세계.
위상 세계는 이형 능력자와 이형 능력자가 되기 위해 생존력을 시험받는 사람의 숫자를 합친 만큼 존재한다.
이형종(異形種)이 살고있는 세계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의 변화된 시간 축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유명하고 박식한 학자들은 다차원이니 평행세계라느니 이런저런 말(논문?)이 많지만 난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잘 이해가 안 가더라.
그냥 단순하게 위상 세계라고 부르면 얼마나 좋아? 근데 다차원이라느니 평행세계라느니 페러렐 월드라느니… 어휴. 다 똑같은 말 아닌가?
위상 세계와 이형종에 관한 일은 여러 방면의 석학들과 과학자들이 모여서 수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연구한 덕분에 위상 세계가 나타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형종이 생겨나고 이형 능력자가 되는 이유는 꽤 오래전에 밝혀진 상태다.
아무튼, 이 위상 세계라 불리는 게 본격적으로 매스컴을 타면서 등장한 건 약 200년 전이었지.
처음 말들이 나돌기 시작한 건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온갖 색과 크기의 물방울처럼 생긴 게 둥둥 떠다니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을 때였어.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타나는 물방울. 이 현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특정 직업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말이 왔다느니 말세의 현상이라느니 온갖 개소리들이 난무했지만, 인생 포기한 사람들의 발광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아마 눈에 띄는 문명 붕괴 현상이 없어서 그랬을 거야. 아니면 있었는데 기사화되지 않았거나. 그 뭐냐. 일본의 한 도시에 굉장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폭삭 주저앉을 때에 다들 줄 서고 질서 정연한 모습만을 보여주다가 뒤에서는 폭동에 살인에 강도 강간 방화 같은 무자비한 범죄들이 저질러졌다고 했잖아?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감춰졌을지도 모르지.
하여튼 많은 사람이 사라지고 오만 사이비 종교들이 난리 법석을 떨어댔지만… 사람이 사라졌다고 주위에 큰 사고가 터진 것도 아니고, 공상과학소설처럼 사람 대신 괴물(이형종)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막 학살했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거든.
사람은 의외로 자신의 눈앞에서 직접 일어난 일이 아니면 절절하게 느끼질 못하나 봐.
뭐 멀쩡한 가족, 친구, 연인이 사라진 사람들 입장에서야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을 테니 사라진 소중한 사람들을 찾아내라고 경찰서에 찾아가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테고 가족과 연락을 자주 안 하던 자취생이었는데 소문 없이 사라져서 실종 신고를 했다거나.
사람들은 여러 가지 행동을 취했을 거야. 그게 폭동 같은 난리로 이어지지 않았던 거 뿐이겠지.
그 상태로 계속 사람들이 사라지기만 했다면 정말 큰일로 번졌겠지만, 사라진 사람마다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긴 해도 대체로 15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물방울이 점점 색이 진해지고 커지고 합쳐지다가 사라졌던 사람이 그 물방울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거든.
하지만 돌아온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그 수가 극도로 적었었어. 물방울의 크기가 차츰 줄어들고 색이 연해지다가 그대로 사라져버렸으니까.
문제는 후자의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는 거야. 생환 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생존에 실패해서 죽었을 거라는 건 쉽게 추측을 했겠지.
이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고 해.
그 대상은 남녀를 상관 않고 12살부터 35살인 사람들이라고 몇십 년 후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에서 발표를 했어. 그전에는 워낙 말이 많았거든. 10살이 사라졌다느니 40살 넘은 사람들이 사라졌다느니…… 그 사람들은 나중에는 다 범죄에 희생된 사람들이라고 판명 났지만 말이야.
어쨌든 혼란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무시무시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뒤였어.
물방울 사태가 일어나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매스컴을 통한 폭로가 있자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지. 어느 날 미국의 유명 뉴스 프로그램에서 물방울 사태 경험자와의 독점 인터뷰가 흘려보냈거든.
근데 물방울 사태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참… 직관적인 이름을 붙이는 건 이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건가?
아무튼 이형 능력자의 출현으로 인해 다른 의미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지.
그 인터뷰 전문은 지금도 인터넷이나 도서관에 가면 책으로 쉽게 접할 수 있어.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Q 갑자기 왜 사라졌었는가.
A 나도 모르겠다.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에 주저앉아있었다.
Q 공간이동이라니. 꿈이라도 꾼 건 아닌가?
A 절대 꿈은 아니다. 괴물이 있고 그 괴물에게 크게 다치고 죽을 뻔했는데 꿈일 수는 없다.
Q 괴물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정밀검사를 통해 당신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거짓말이 아닌가?
A 그럼 내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15일 후에 나타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그리고 상처가 없는 건 그곳에서 살아남는 동안 특별한 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Q 특수한 능력이라니, 그게 무엇인가?
A (남자가 커터 칼을 들더니 왼쪽 팔뚝에 대고 주욱 긋는다. 그렇게 생긴 상처에 오른손을 올리자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며 급속도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이것이 내가 평원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 준 특별한 능력이다.
이 인터뷰가 나간 직후의 반응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뉘었지.
첫 번째는 물방울 사태 경험자를 정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말이 좋아서 조사지 잡아다가 해부하겠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두 번째는 국가에서 물방울 사태 경험자를 모으기 시작한 거야. 본능적으로 그 특별한 능력이라는 게 여러 방면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일 거라는 걸 눈치챈 거지.
이형 능력 중에서는 회복 능력뿐만 아니라 속성을 이용한 공격.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도 있고 몸을 속성화 시키는 능력이나 신체가 일반 이형 능력자보다 월등히 강화되거나 변신 능력도 있고… 하여튼 여러 종류가 있어. 그러니 그런 능력자들을 모으면 초능력 부대를 만들 수도 있고 세계의 패권을 다툴 때 훨씬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거겠지.
신기력. 즉 인류에게 있어 변화의 첫걸음이 된 날을 기준으로 216년이 지난 지금은 물방울에 휩쓸려 위상 세계로 강제로 넘어가는 사람. 즉 시험자들은 1,000명당 1명꼴이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물방울 현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10년 동안은 거의 100명당 1명꼴로 나타났다고 해.
주기도 제멋대로고 대상도 무작위처럼 보이는 데다가 어떤 해에는 4천만 명이 사라지고 어떤 해에는 7천만 명이 사라지고 어떤 해에는 1억 명이 사라지고…….
뭐 갑작스레 수많은 사람이 사라지니 인구 감소는 둘째치고 사라진 사람 중 돌아오지 못한 이들 중에는 고급 인력들도 많아서 세계 여러 나라가 여러 가지 의미로 위태위태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라가 무너진 곳은 없었지. 누군가 사라지면 잽싸게 그 자릴 차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나 봐.
숫자가 너무 커서 실감이 잘 안 나지? 거기다 지금에 비하면 생존확률도 무지하게 낮아서 10명이 사라지면 그중 1~2명만 돌아올 정도였어.
그때의 세계 인구는 약 70억 명, 10년 동안 세계 인구가 50억까지 줄어들었으니 20억이라는 생명이 위상 세계에서 사라졌다는 말이지. 어떤 나라처럼 출생 신고를 안 해서 집계가 안 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지 않을까?
초창기에 살아남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종합해서 매스컴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경고했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원리로 사람이 사라지고 나타나는지도 몰랐을 때라 원인을 밝혀내는 데만 신경을 쓰는 바람에 초기대처가 늦었다는 지적이 많아.
어쨌든 물방울 사태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 시작하고 물방울 사태 첫해에만 사라진 사람이 미국 내에서 100만 명 가까이 되니까 그제서야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꼈는지 백악관이 매스컴을 통해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한 거야.
그것도 지금처럼 커리큘럼, 교육과정으로 체계적으로 짜여져있는것도 아니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간단 안내책자? 같은 거였지만 모르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래도 미국의 저력은 어디 가는 게 아닌지 그 짧은 시간에 나름 보기 쉽고 효율적인 내용이 가득했는데 중요한 부분만 표시하자면.
1. 눈을 감았다. 떴더니 모르는 장소에 서 있다면 다른 차원으로 간 것이다.
2. 최대한 그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오래 살아남으면 원래 세계로 자연히 돌아올 수 있다.
3. 다른 차원에는 괴물도 존재한다. 가능한 맞상대는 피하고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라.
4. 다른 차원으로 갈 때는 입고 있던 옷과 신발만 가지고 이동된다.
5. 그곳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동식물은 식용할 수 있어서 먹어도 탈이 없다.
이 정도야.
이 내용은 지금 이세계 생존학의 기초가 되고 있을 만큼 가장 중요한 포인트만 콕콕 찝어놓은거니 얼마나 미국의 위기대처능력이 뛰어난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지.
하지만 욕심 많은 인간들이 자기네들 돈줄이 되어줄 정보를 지네들끼리만 독차지하지 않고 빠르게 알린 게 이상하지? 근데 어쩔 수가 없는 게 그 물방울 사태가 계속 이어지고 자기네들 가족까지 사라지는 데다 자기 자신도 다른 차원으로 날라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을꺼야.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대한 정보가 필요했을 상황이니 정보통제를 해서 돈을 벌 궁리보단 일단 살아남을 요긴한 정보의 확보가 더 중요했을 테니까.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하면서 동시에 홈페이지에서 가이드라인을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압권은 생방송으로 연설 중인 미국 대통령의 옆에 있던 보조인이 빛에 휩싸이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빛처럼 다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실황으로 중계된 거야.
그 방송을 목격한 사람들은 물론 다른 나라 고위층 인사들도 그제서야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하면서 서둘러 미국에서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기들도 살을 덧붙여서 자국 내에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지. 40살이 넘어서 해당 사항이 없는데도 무작위로 사람들이 막 사라져나가니 자기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거지.
그리고 역시나 가장 먼저 물방울 사태에 관해 발표한 미국이 또 한 번 앞장서서 지금의 물방울 사태는 이대로 뒀다간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커다란 위기임을 강조하면서 국제기구를 만들자는 발의를 했던 거지.
그러자 몇몇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니 지구에 국가라는 기틀이 마련되어있는 나라라는 곳은 죄다 몰려들었는데 그렇게 생긴 국제기구가 IWO. Iternational Waterdrop Organization이야.
그러면서 좀 머리 좋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국가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한곳에 다 모아서 물방울 사태에 관해 연구를 시작했어.
뭐 그 이후에 꼴 보기 싫은 어른들의 사정으로 아귀다툼이 일어났다가 정리되는 일이 몇 번 있었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고.
그러면서도 가장 뛰어난 석학과 과학자들은 자국에서 연구시키고 좀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만 보냈다고 하더라. 그래도 계속 생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모아서 자기네들 상식에 맞춰서 끼워 맞추고 요리조리 조사해보니 대충 물방울 사태 당사자들이 어디로 가는지 하나둘씩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듯 정보가 풀리기 시작한 거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사람이 이세계로 떨어졌는데 생환한 사람 중에서는 한 명도 다른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해.
현실에서의 물방울도 없어졌으니 돌아올 방법도 사라진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건지, 어떻게 되는 건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는 상황이야.
그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경험담과 조언으로 내용이 채워진 본격적인 생존 책자가 각 국가의 교육과정에 이형 생물학, 이세계 생존학등의 이름으로 배포되고 의무교육 기간 내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 거지. 물론 일반 책자로도 판매를 개시해서 성인이라 해도 구해서 볼 수 있었고.
이세계 생존학에서는 실습을 통해 나무로 불을 지피는 법, 식수를 조달하는 법, 훈제를 통한 보존식 확보 방법, 무기 제작 방법 등 이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 방법들을 가르치고 이형 생물학은 이세계에서 등장하는 괴물들의 모습, 습성 등을 기록한 책으로 경험자의 이야기를 첨부해서 괴물을 상대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과목이야.
이세계 생존학은 지금도 갖가지 지형이나 환경 등이 꾸준히 추가되고 있고 이형 생물학 역시 현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괴물들을 포함해 계속 신규 항목이 추가되면서 생존율을 조금씩 올리는 중이야.
이런저런 재해 소설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소설을 보면 사람들의 아귀다툼에 지리멸렬하다가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이런 내용도 종종 보이는데 역시 현실은 상상이랑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지.
자기들도 먹고살려면 일단 다른 사람들도 살아남아야 하니 막상 목숨줄이 눈앞에서 끊어질랑말랑하면 어떻게든 고치고 수선해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겠어?
이런 교육을 펼치고 꾸준히 일반인들에게 생존법과 전투법 등을 가르치고 학습시켜서 만약을 대비하고 그런 사람들이 위상 세계에서 이형 능력자로 각성하고 현실로 귀환하게 된다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테니까.
이형 능력으로 능력자끼리 치고박고 싸우고 능력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도 생기지만 뭐 만사가 좋게 좋게만 흘러갈 리는 없으니까, 병이 있으면 약이 있는 법이잖아?
다이너마이트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좋게 쓰면 약이고 나쁘게 쓰면 독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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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