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1화 (1/517)

00001  시작, 1일째.  =========================================================================

입 안이 바짝 마른다는 표현이 있다. 여러 상황에서 쓰이는 표현이지만 지금 내 정신적인 상황을 표현하는데 딱 맞을 것 같다.

고작 몇 분이지만 전력으로 달리고 있으니 심장은 뛰다 못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폐는 제 기능을 하고 있는건지 숨을 제대로 쉴수 없어 눈앞이 노래졌다가 빛이 번쩍거리다가 까매졌다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아마도 평소의 나였다면 “으아아…. 뒈지겠다.”라고 중얼거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겠지만, 몸을 쓰는 운동에는 취미도 관심도 없어 또래 아이들 중에서도 떨어지는 체력을 가진 나였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이유를 들자면 날 잡아드시겠다고 쫒아오는 저 개새끼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취리리리리리히히히

긴 주둥이에서 기이한 소리를 울리며 날 쫒아오는 저 개새끼는 잠깐이라도 달리는 속도를 늦추면 아까부터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소름을 피로 바꿔 날 죽음으로 이끌 테니까.

다행인건 숲이지만 나무가 별로 우거지지 않고 고르다곤 못하겠지만 흙바닥은 적당히 평탄한데다 달리기에 지장을 줄 장애물도 거의 없다는 거다.

“씨바아아아아아아알!!”

크아아아아앍!!

이런 상황에 처한 분노에 내지른 외침이 개새끼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덩달아 짖으며 나와의 추격전을 이어간다.

지금 나를 잡아서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으로 만들려는 저 개새끼는 중학교 이형생물(異形生物) 교과서에 실려 있는 긴 주둥이 마른 늑대long mouth skinny wolf(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학명이다. 아마도 새 이름을 짓기가 귀찮아서 생김새에서 이름을 따온 거 같다.)로 어깨높이는 50cm정도에 주둥이끝에서 뒷다리까지 길이는 1m정도이며 꼬리는 40cm가량 된다.

생김새는 깡마른 늑대지만 주둥이만은 평범한 늑대보다 1.5배가량 더 길다.

뭐 주둥이만 좀 길고 깡마른 작은 늑대라고 보면 된다.

이형종(異形種) 리스트에 최하위권에 랭크되는 개새끼는 저 주둥이만 빼면 정말… 이형종 맞아? 할 정도로 체력도 지구력도 순간 가속마저도 형편없는 놈이라 평범한 성인 남성이라면 팔뚝 굵기의 나뭇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 하에 두들겨패서 잡아죽일 수 있을정도로 약한 놈이라고 써져있었다. 물론 그러는 과정에 본인도 상처가 좀 생기겠지만?

깡말라서 그런지 달리는 속도는 일반 성인 남성이라면 전력질주로 떼어내고 도망갈 수 있는 정도에 지구력도 깡말라서 그런지 일반 성인 남성보다 낮은 편이라고 하고 일반 성인 남성이라면 얼마든지 도망가거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피할 수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 일반 성인 남성보다 못한 내가 문제다.

그때 수업시간에 저 개새끼에 대해 설명해주던 선생님은 “이 정도라면 나도 때려잡겠는데?” 라는 망발을 내뱉었는데(그 선생님은 키 160cm, 몸무게 120kg의 돼지체형이었다.) 그걸 진실이라고 믿었던 내가 정말 한심스럽다. 덕분에 지금이라면 그 선생님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줄 용의가 가득 차다 못해 넘치고 있다!

저런걸 때려잡을 수 있다고? 조금만 움직이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헉헉거리는 그 몸으로?! 막상 마주치니 온몸이 벌벌 떨리면서 맞상대 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데 그 뚱뚱한 몸으로 저 개새끼를 맨손으로 때려잡겠다고?!

생각해봐라. 소형견도 아니고 중 대형견 사이즈인데, 저놈이 대가리를 들면 머리통이 내 가슴높이까지 올라온다. 뛰어오르기라도 하면 저 놈 주둥이는 가볍게 내 머리를 아그작 하고 씹어먹을 거란 말이다!

태어나서 살생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가볍게 죽이네마네 논할 거리가 못된다고!!

아무튼 정신없이 다리를 움직이며 빠르게 다가오는 나무를 이리저리 피하고 간혹 보이는 수풀을 헤치고 뛰어넘기를 몇 분……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주변에 보이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저 개새끼를 떨쳐내겠지만 지금도 저 놈이 내뱉는 숨결이 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듯 한 느낌에 돌아보기는 커녕 달리기만도 벅차다.

“헥, 헉, 흐헉. 컿컥, 헥, 흐헥.”

취리리히헥 히리리히헤헥 헥 헥

심장이 터질거 같고 침도 삼킬 수 없어 게거품이 되어 입가를 타고 줄줄 흐른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눈에 들어가서 따끔거리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지금 이곳에서 내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참았다.

근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릴 들어보면 저 개새끼도 나만큼이나 체력적으로 한계인거 같다.

참… 저놈이나 나나 형편없는 저질 체력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자 미친놈처럼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저 개새끼도 나만큼이나 저질 체력이라 는걸 알게 되자 약간 용기가 나면서 허파에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이 나오려고 할 뿐이지만 그래도 패닉에 안빠진 게 어디냐.

하지만 이렇게 계속 달리기만 할 수는 없을 거 같다. 이대로 가다간 제풀에 다리가 꼬여 넘어질 거다. 아니면 수풀이나 굴곡진 지형에 걸려 넘어지거나. 슬슬 다리가 뇌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가 같거든.

이 숲도 얼마나 넓고 깊은지 모르니 이렇게 달리기 편한 지형이 계속 나오라는 법도 없잖아? 거기다 이형종도 날 잡아드시기 위해 뒤쫒아 오는 저 개새끼 하나 뿐일 리도 없고 말이지.

별로… 침착하진 않지만 저 개새끼의 흐트러진 호흡을 듣고 있자니 어쨌든 조금이지만 여유가 생기며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다. 그러니 이때 어떻게든 상황을 호전시킬 무언가를 생각해내야 한다.

학교 수업시간에 몰래 보던 영웅 능력자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야기의 초반에 괴물과 마주치면 용기를 내서 맨손으로 괴물과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가 다수였고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되면 용감하게 괴물과 맞서 싸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개새끼와 마주치는 순간 그건 말 그대로 생각으로만 끝났다.

무기라곤 맨주먹에 양 발 뿐인 나보단 저 개새끼가 무력적인 면에서 더 뛰어나니까. 저 개새끼는 주둥이에 날카로운 이빨도 있고 발톱도 있는데 반해 난 무기는 전혀 없다고! 싸우려면 적어도 그럴싸한 나무 몽둥이 하나쯤은 있어야할 거 아냐?! 맨손으로 저런거랑 붙는다니 페널티가 너무 심하다고!!

그러니까 100번 싸우면 100번 다 질 자신이 있다

아무튼 그 영웅이라는 놈들은 체력이나 체격이나 근력이라도 있었으니 괴물이랑 맞짱 뜰 자신이 있었겠지,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에 아침저녁으로 등하교 걷기 운동 밖에 안한 내 신체 능력으로는 영웅들 같은 행동은 무리다.

하지만 긴 시간의 등하교와 재미없는 학교 수업으로 인해 잡생각과 망상으로 다져지고 단련된 나의 두뇌회전은 내 또래 놈들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이런 긴 잡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거겠지.

완전히 체력이 방전되기 전에 뭔가 무기로 쓸 만한 몽둥이가 떨어져있지 않을까 달리면서 주변을 조금씩 살펴보고 있지만 절망적이다. 보이는 거라곤 낙엽더미라던가 가느다란 내 팔뚝 굵기정도에도 못미치는 잔나무가지들 뿐이고 하다못해 집어 던질만한 주먹만 한 짱돌조차 없다!!

씨발…… 나 진짜 여기서 죽는 건가? 정말? 진짜로?

“안돼!! 헥, 꿀꺽. 난, 18년 동안!! 여자친구!! 한번!! 못사겨봤단말야!! 커헉, 하고, 쿨럭, 하고 싶, 은게, 하고 싶은게 얼마나, 많은데에에에!!”

크하아아아앍!! 아긁 클럭 크헥 켁케헥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왠지 다른 의미로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거 같지만, 그래도 자학덕분인지 자학 때문에 생긴 분노때문인지 기력이 조금 회복되며 점점 심하게 헐떡이고 사레가 들려 쿨럭 대는 개새끼를 두고 달리기에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래, 여자랑 손 한번 못잡아봤는데….!! 이런 위상 세계에서 뒈질 수는 없어!!

크르럭?! 취리히히헥, 리리리히히헥

아, 경악한 개새끼는 저런 반응을 보이는구나.

방금 전만 해도 헥헥 거리면서 곧 나자빠질거 같던 두 발로 달리던 먹이가 갑자기 속도를 내면서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하니까 놀랐겠지!!

어떠냐!! 이게 바로 인간님의 저력이시다!!

“그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저~ 멀리 내 키만 한 덤불들이 나무들 사이사이 자라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 덤불을 뚫고 들어가자마자 뒤돌아서면서 저 개새끼의 모가지를 잡고 늘어지는 거야!! 저렇게 커다랗고 촘촘한 덤불이니 뚫고 지나가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저 개새끼 입장에서는 잘 안보이겠지!

저 개새끼나 나나 지친 건 똑같으니 옆구리에 저 개새끼의 가느다란 모가지를 끼우고 조이기로 들어간다면 적어도 물려서 죽을 걱정은 안해도 될꺼야! 체력도 비슷하고 개새끼의 다리도 내 팔 다리랑 두께가 비슷한 게 체격 차이도 별로 없어!

그러니 선빵만 때리면 승산이 있을 거야!!

모 아니면 도! 선빵필승! 내 18년 인생 최대의 도박이다!!

최대한 마음을 다잡으면서 어떻게든 뒤돌아 설 틈을 얻기 위해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 다리에 힘을 주고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크으응… 헭 헥 크렉 케헥

좋았어!! 점점 거리가 벌어진다!!

……그런데 개새끼가 왠지 쫒아오길 포기한 듯한 기분이 드는데? 뭐지? 약간의 여유로 뒤를 힐끔 돌아봤더니 어쩐지 저 개새끼가 체념한 듯한 표정? 저거 표정 맞지? 눈썹 끄트머리가 힘없이 늘어지고 주둥이에 힘이 빠져 살이 늘어지는 게 보였다.

개새끼와 나의 거리는 대략 20m, 23m, 27m 점점 벌어지고, 속도를…… 줄이네?

하지만 덤불은 이미 지근거리에 다가왔고 이대로 달려서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계획대로 덤불을 지나친 뒤 뒤돌아서서 인간 vs 개새끼 레슬링 매치로 들어갈 준비를 할지 고민했지만, 저 개새끼가 포기했다면 역시 이대로 계속 달려 나가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게 낫겠지?

괜히 기다렸다가 여자랑도 못해본 첫 레슬링을 저 개새끼랑 하는 위험과 패널티를 자초할 필요는 없잖아?

좋아 계속 달린다!!

“으럅!!”

이윽고 덤불이 눈앞까지 다가왔고 난 두 팔을 교차시켜 얼굴을 보호하며 다리에 힘을 줘 점프해서 덤불을 뚫고 지나쳤다.

그리고 느껴지는 부유감.

“……어?”

내장이 붕 떠오르며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과 함께 불알이 쪼그라드는 느낌.

“어…… 어어?”

그리고 저어기 왼쪽에 보이는 폭포와 그 아래에 위치한 용소, 높이는 25층 아파트 정도 되는가 같은데 용소가 생각보다 크게 보인다. 거기서 이어지는 강은 절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부분을 따라 흐르다가 급격하게 꺽어지며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져있는 숲 속으로 사라져있었다.

왼쪽을 봐도 숲, 오른쪽을 봐도 숲, 앞을 봐도 숲, 뒤는 절벽, 아래는강.  숲, 숲, 숲, 강.

“히이익?!”

팔과 다리를 버둥거리며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추락하려는 날 보며 입맛을 다시는 개새끼가 보였다. 아, 저 개새끼는 여기가 절벽인줄 알고 속도를 줄 인거였구나.

“으아아아아아아아앙!!”

부질없는 허우적거림과 공포에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래쪽이 강이라서 맨땅에 떨어져 온 몸이 터져 죽지는 않을 거 같은데… 으흑.

두고 보자, 씨발. 내가 반드시, 꼭 살아남아서 저 개새끼한테 복수하고 말테다.

눈물과 침을 흩날리며, 신기력新記曆 216년 3월 대한민국의 평범한 18살 고등학생 정서하. 위상 세계에서 끈 없는 번지 점프를 시도하다.

============================ 작품 후기 ============================

잘부탁드립니다.

2월 15일 수정.

제 이야기는 초반에 너무 설명이 집중되어있어서 보기도, 읽기도 불편하실거라 생각합니다 ㅠㅠ

프롤로그가 끝나는 중반 20화를 지점으로 분위기가 조금 변하고 50화 정도가 되면 다른 등장인물들도 많아져서 그때 다시 분위기가 변합니다.

하지만 전개 속도는 그냥 극악이라고 생각해주세요 ㅠㅠ

부족한 제 이야기를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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