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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232화 (231/232)

232화

섬광이 번뜩인다.

핵폭발이 일어나면 그 이펙트가 이러할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빛줄기가 지역 일부를 완전히 집어삼키며 모두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 여파에 한세정을 쫓아가던 괴물들도 뒤를 돌아봤다.

아마.

놈들은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이 행성의 지배권이 저기 있는데, 저것만 취하면 지배자로서 우뚝 설 수 있는데.

정작 지구를 대표하는 인간들은 서로 합심해도 될까 말까 한 전쟁을 두고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며 처참한 동족상잔을 벌이고 있으니.

경쟁자가 줄어 기쁘면서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 하리라.

물론.

이 사단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주위의 감정이 어떠하든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한 가지.

사력(死力)을 다한 일격에 적이 쓰러졌는가?

오로지 그 질문에 집중했고.

“…아.”

치솟는 먼지구름을 보며 직감했다.

적이.

온 힘을 다한 권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버텨냈다는 점을.

어떻게?

반사적으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권능’에 각종 반동성 버프, 심지어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 일격 태세’가 내포한 부작용을 받아내며 몸을 던졌다.

그런데…….

‘아니, 그럴만하다.’

의심에 가깝게 의아해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전쟁의 끝자락까지 도달한 자들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수백, 수천 명이 뭉친 군집체였으니 결코 불가능한 장면이라 할 수는 없었다.

고로.

텁―

질문은 멈추고 품속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기적의 조각’을 꺼내 쥐며 주문을 외웠다.

[작은 이적 - 사슬을 끊는 자]

우우우우우웅!!

[체내에 자리한 모든 해로운 것들이 소멸합니다.]

[중경상 이하의 상처가 재생합니다.]

[3분간 ‘저항력’이 30% 향상됩니다.]

* * *

나는 광개토태왕이 되고 싶었다.

온 대륙을 누비며 찬란한 승자의 역사를 쌓았던 그분의 영광이 재현되길 원했다.

때마침.

고착화되었던 세상이 종말이란 항거불능의 재난으로 뭉그러지며 계기도 주어졌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노력했다.

자칫 군벌로 변해버릴 뻔했던 군권을 휘하에 뒀고, 입심이 괜찮은 정치인들을 포섭해 흔들리던 국민들의 구심점으로 우뚝 섰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고유 능력 : 각인’이었다.

겉으로는 신체 능력과 기술 위력을 향상해주는 놀라운 버프로만 알려졌으나, 실상은 상대의 영혼을 나에게 복속시켜 부지불식간에 주종 관계로 설정해버리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힘.

그게 나를 이 자리로 올려다 주었고.

현재의 기세를 끊임없이 이어갈 수만 있다면 진실로 태왕의 유지를 계승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때문에 오늘이 중요했다.

‘차원의 깃발 : 테라’를 가져야 했으니까.

보다 정확하게는.

다른 이가 취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지배권을 가진다.’라는 게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으나, 내 행보에 족쇄로 작용하리란 건 확실할 테니.

여차하면 아예 없애버릴 각오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자신감도 있었다.

무려.

[축하합니다.]

[기본 신체 능력 ‘근력’, ‘체력’, ‘내구’, ‘순발력’이 모두 「5차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보상으로 ‘환골탈태 : 5차’가 주어집니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마침내 「초월자」의 영역에 다다른 당신에게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 ‘정보’를 근거로 합당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권능 : 통솔자’를 습득합니다.]

권능이란 무기를 거머쥐고 있었기에.

휘하에 둔 부하들의 영혼을 시전자의 의지대로 움직여 공격과 방어에 사용한다는 무지막지한 권능.

그 대가로 혼을 빼앗긴 자들은 목숨을 잃게 되지만.

사람들은 아낌없이 제 목을 내어놓았다.

이게 다.

‘고유 능력 : 각인’의 효능이었다.

해서 이 점을 바탕으로 싸워나간다면 충분히 최종 결전에서도 승전을 기록하리라 확신했다.

저.

괴물보다 더한 괴물이 등장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

갖은 비용을 들여 키워낸 왕실군의 벽을 찢고 들어와 직격당했다가는 살점 한 조각조차 남기지 못할 것 같은 초대형 마옥(魔玉)을 생성해낸 또 다른 조각의 소유자.

우주에서 날아든 소행성을 그대로 가져온 듯.

대기를 뒤흔들며 낙하하는 남자를 보며 나는 자각했다.

마냥 부하들에게 맡겼다가는, 이 공간에 모인 모두가 사멸되리란 것을.

[권능 : 통솔자]

[영혼의 장벽]

판단은 빨랐고, 입놀림은 더욱 빨랐다.

객장 신분으로 달고 다니던 성십자가 클랜도 웬 광신도들에 의해 막혀버린 마당이니 병력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비기를 끄집어낼 수밖에.

닥치는 대로 혼령을 잡아당겨 전면에 방벽을 세웠다.

도대체 몇 명이 죽어 나가는지.

여기저기서 픽픽 쓰러지는 인원이 마구잡이로 늘어났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짐했다.

콰아아아앙――――!!

고막이 터져나갈 만큼 강력했던 이 폭발이 잠잠해지고 자욱하게 솟구쳤던 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꼭.

복수해주리라고.

피를 토하는 절규로 각오를 다지며 정면을 주시했다.

이만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응당 그에 비례하는 반발력을 떠안아야 한다.

즉.

이제.

스윽―

“……?”

반격의 시간이라 중얼거리던 직후.

가라앉은 폭풍의 중심에 서 있던 조각의 소유자가 뭔가를 손에 쥐는 게 보였다.

뭐지?

품었던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나도 무척 잘 아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기적의 조각!”

그래.

「기적의 조각」이었다.

헌데.

뭔가 약간 달랐다.

내가 가진 조각은 검지와 중지를 합친 사이즈에 불과했지만, 저자의 것은 거진 주먹만 했다.

‘2단계’보다 서너 배는 큰 크기라니?

불현듯.

싸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았고.

쿵!

콰과과과과과광!!

불안한 예감을 떨쳐 내기도 전에 대지가 춤을 추었다.

* * *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

콰과과광!!

지반이 뒤틀린다.

이전과 달리.

마(魔) 속성이 가미되며 더 이상 ‘발을 땅에 대고 있어야 한다.’라는 제약이 사라진 지진이 적아 구분 없이 일대를 뒤엎는다.

한순간에 지형을 바꿔버린 광역기로 인해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 선율을 연주곡 삼아 흘려들으며 발을 뻗었다.

[오리지널 기술 : 광풍의 비행]

극도의 빠름을 추구하는 쾌(快) 속성이 결합한 도약.

여기에.

[신속]

[「특수 상태 : 전력」이 활성화됩니다.]

[3초간 ‘이동속도’가 300% 향상됩니다.]

[남은 시간 : 3초]

타닷―

파아아아앙!!

한 번의 가속을 더 한다.

전광석화(電光石火).

제아무리 뛰어난 감각이 있다한들 쫓기 어려운 쾌속함을 앞세워 나아간다.

한 걸음, 두 걸음.

채 세 걸음을 내딛던 그때.

“……으아아아아아아!!”

콰앙!

후우우우욱!

누군가 날 저지하고자 칼날을 휘둘렀다.

그새.

황수현 일행을 가르며 넘어온 성십자가 클랜의 마스터였다.

놈은 날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집요한 광기를 선보이며 악착같이 칼날을 뻗었다.

멈춰야 하나?

아까도 느꼈지만.

무시하기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서슬 퍼런 검기에 이를 악물며 고민했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

답을 내렸다.

더는 ‘작은 이적 - 사슬을 끊는 자’도 쓰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여기서 제동이 걸린다면, 나와 우리가 그린 판 자체가 어그러질 터이니.

[순간 회귀 : 스랄레오의 골갑]

[칼리야스의 마력 방패]

[오리지널 기술 : 끝없이 진보하는 갑옷]

[앱솔루트 배리어]

우우우우우웅!

촤르르르르르르르륵!!

내가 가진 최고의 방패와.

[순간 회귀 : 발록의 왼팔]

[오리지널 기술 : 분쇄하는 학살자의 검]

스으으읍!

촤아아아아악――――!!

쏘아 보낸 참격을 믿으며 계속해서 전진했고, 드디어 닿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시체 위에 홀로 서서 반투명한 무언가를 끌어모으고 있는 신(新) 한국의 국왕 이화건을.

그는 면전까지 다다른 나를 보며 악다구니를 쓰듯 손을 뻗었다.

“나는! 패업을 이룰 자다!!”

악에 받쳐 내지르는 고함에 맞춰 꿈틀거리는 새 하얀 물결.

‘권능!’

나는 본능적으로 이화건이 발한 기술의 정체가 ‘파멸자’와 같은 권능임을 눈치챘다.

누가 설명해준 것도 아니건만.

보는 즉시 알아볼 수 있었다.

더불어.

이대로 맞부딪쳤다가는 애써 끌어모은 최후의 불씨가 꺼져버린단 사실도.

하지만 괘념치 않고 오른손을 내질렀다.

비수는.

[대재앙 : 벼락의 창]

후우우우욱!

화아악――――――!

하나 더 남아 있었으니까.

잠시 후.

강렬한 빛줄기가 공간을 갈랐다.

* * *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옴을 알리는 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렇게 가벼이 밀려와 머물던 향기가 사라지고 난 찰나.

“아, 아아…….”

툭―

투둑―

나지막한 읊조림 아래로 검게 타버린 조형물이 서서히 부서져 내린다.

방금까지 인간이었던 것.

새로운 왕국의 주인을 자처하던 이회건의 육체가 겨우 봄바람도 이겨내지 못하고 흩어진다.

가슴에 품은 한이 많은 듯 원통한 탄식을 내뱉으며.

“…….”

나는 재가 되어 버린 시신을 잠시 응시하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새까만 잿더미 사이로.

유일하게 형상을 보존한 보석이 고고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특수 퀘스트 : 선택〉을 완료했습니다.]

[당신에겐 세 개의 갈림길이 주어졌고, 당신은 그중 가장 어려운 길을 택해 성공하셨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당신에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현재 ‘기적의 조각 : 5단계’를 보유 중입니다.]

[‘기적의 조각 : 5단계’가 ‘기적의 조각 : 6단계’로 진화합니다.]

나와 한세정들의 소원을 이루어줄 마지막 조각이었다.

[축하합니다!]

[인류 최초로 「온전한 기적」을 손에 넣었습니다.]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이…….]

[당신의 업적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

허공을 가득 메우는 문장의 파도.

그 밑으로 황금빛 광휘가 반짝거리며 한데 뭉치기 시작한다.

마치.

주사위를 연상케 하는 정육면체의 모양으로.

저 우주의 은하를 닮은 양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보물.

《온전한 기적》

- 등급 : 신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이름 그대로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묘한 ‘마석(魔石)’이다.

- 옵션 : 주문 ‘기적’ 발동 가능

신물(神物)의 완성품이었다.

“아아…….”

이걸 얻고자 그동안 흘린 땀이 얼마였던가.

지난날 겪었던 모든 과정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다만.

회상은 길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끈질김의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선 성십자가 클랜의 마스터가 여전히 날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참 한결같은 놈이랄까.

부디.

[주문 : 기적]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전 우주의 법칙을 뛰어넘는 「기적」이 발현되려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바라는 소망을 말씀해주십시오.]

“우리를 기억이 남아있는 채로 종말이 일어나지 않을 4년 전의 과거로 보내줘. ”

[“우리(대상 : 아윤,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신지유, 신지운)를 기억이 남아있는 채로 종말이 일어나지 않을 4년 전의 과거로 보내줘”가 맞습니까?]

[예/아니오]

“응.”

다음 생… 다음 생이라고 하기는 뭐한가.

아무튼.

앞으로는 평생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악연이었다.

[「기적」이 이뤄집니다.]

후우우우욱!

번쩍――!

* * *

짹짹짹―

귓가에 아른거리는 새들의 재잘거림.

따스한 햇볕이 살랑거리며 코끝을 스친다.

매우 평안한…….

“……?!”

아!

기분 좋은 온기에 취해 누워있던 나는, 별안간 너무나도 평화롭다는 이질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버릇처럼 돌아보는 주변.

당장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피와 죽음이 난무하던 전쟁터였기에, 황급히 자세를 고쳐 잡는데.

시산혈해(屍山血海)로 얼룩져있던 공간은 어디 가고.

낯선 방 안의 풍경이 날 맞이했다.

“어……. 여긴.”

잘 정돈된 책상과 침대.

20대 초반의 남자가 쓸법한 물건들이 그득한…….

내 방!

내 방이었다.

이를 깨닫자마자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차원의 깃발’을 둘러싼 위기, ‘기적의 조각’을 노리던 계획 등등등…….

한순간에 몰아치는 기억의 격류를 거친 나는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이 방문을 열어젖히며 뛰쳐나갔다.

우당탕거리는 소음 너머로.

“일어났어?”

아리따운 여인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그녀였다.

나의 일부이자 전체.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나의 하나뿐인 누나가.

“별일이네.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여느 때와 같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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