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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231화 (230/232)

231화

두렵고 무섭지만.

괴물들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던 사람들을 방관할 수 없다는 마음에 나섰던 첫 구원 활동.

[‘고유 능력 : 구원자’를 습득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정보’가 기록되는 중입니다.]

그때 내 귓가를 파고든 목소리에 나는 깨달았다.

내 존재 의의를.

내 삶의 의미를.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때부터 사람을 구하기 위해 힘썼고, 나는 구출된 자들이 건넨 감사와 인사와 선망의 눈길에 점차 중독되어갔다.

한 명, 두 명.

어느샌가 내 뜻에 동조하며 뒤따르는 이들이 늘어났고.

그 수가 일백에 달할 즈음 우리는 ‘성십자가 클랜’이라는 울타리 아래 하나가 되어 뭉쳤다.

그러다.

‘기적의 조각’이란 것을 마주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조차 받지 않는, 소유자가 원한다면 어떤 것이든 이뤄준다는 초월적인 물건과.

“아아……!”

이건 신(神)이 내린 성물이었고, 계시였다.

한국.

그나마도 일부 지역에만 국한되어있던 네게 날개를 달아줄 터이니, 훨훨 날아올라 전 세계로 뻗어 나가보라는.

나는 그 사명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신(神)께서도 나의 확답이 즐거우셨는지.

[축하합니다!]

[「기적의 조각」이 설계한 ‘운명의 고리’가 실현되었습니다.]

[당신에게 ‘특수 퀘스트 : 선택’이 부여됩니다.]

몇 날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성물의 조각을 찾아주셨다.

더군다나.

[188]

“악마, 인가?!”

놈은 188명이나 되는 인간을 살해한 학살자이자 인두겁을 뒤집어쓴 괴물.

삽시간에 긴장감이 팍 올라왔다.

성물도 성물이지만.

무자비한 살겁을 저지르고도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고귀한 생명을 물건 취급하며 본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한 저 악마를 살려두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변모할 터였다.

어릴 적.

제 부인과 아들을 본인의 소유물마냥 다루고 학대하다 기어코 한 여인의 생을 복구 불능으로 망가뜨리고도 모자라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수많은 이들에게 죄업을 쌓았던 그 남자처럼.

그러므로…….

‘내가, 막아야 한다!!’

반드시.

저 거악(巨惡)을 이곳에서 처단해야 했다.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 짐작됐으나.

신(神)과 함께하는 나라면 틀림없이…….

후우우우우욱!

콰아앙!!

콰직――――!

“커헉!”

꿰뚫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나는 신(神)의 손이자 검이거늘.

충돌의 끝에서 사망 직전까지 내몰렸을 뿐 아니라

“뭐, 뭐…….”

“닥치고 마셔.”

“크읍, 읍.”

꿀꺽―

꿀꺽―

[‘하급 체력 회복 물약’을 복용합니다.]

적의 배려로 죽음의 칼날을 떨쳐 내는 비루한 처치로 전락했다.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이 없었더라면 한밤의 악몽이라 여겼을지도 모를 구차한 꼴이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리됐는데, 대체 신(神)께서는 무얼 하고 계시는지.

당신의 답을 듣고자 한다고 7일 밤낮을 부르짖었다.

그 처절한 절규가 하늘에 닿았을까?

[신은 네 부름에 응답해줄 수 없어.]

지속되는 침묵에 답답해하던 내게 별안간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한 명의 신이 선발을 마쳤거든. ‘선대의 연’이라는 꽤 강력한 명분도 있었고. 아, 넌 인간이라 모르겠구나? 간략히 설명해주자면… 우리 같은 대차원의 격을 지닌 존재는 간섭력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런 연유로 한 행성에는 한 명의 생명체만이 신과 연결될 수 있지. 그리고 그 대상은 안타깝지만 네가 아닌 다른 녀석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재밌게도 널 고꾸라뜨린 녀석의 동료였지.]

어린아이에게 옛날 옛적의 동화를 읽어주듯.

담담하되 웃음기 어린 음성이.

신언(神言)의 한 종류인가 싶어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나는, 제삼자가 간택되었다는 이야기에 대차게 화를 냈다.

당신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헛소리는 그만하라고, 결단코 그럴 리 없다고.

나는.

신(神)이 직접 고른 구원자라고.

[증거라도 보여줄까?]

허나

신원미상의 음성은 이리 나올 줄 알았다는 양.

지이이이이이!

눈앞에 커다란 화면을 띄우며 응답했다.

그 안에는.

[우우우우웅―!!

“아윤 혀어어어어엉!!”

번쩍!

“…신지운?”]

“……!”

소용돌이치는 신묘한 기운 가운데 한 소년과 괴물이 있었다.

정말이었다.

내가 아닌 제삼자가 ‘나의 힘’을 빼앗아 갔다는 게.

거짓일 거라 자위했는데.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허면.

난 더 이상 구원자의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건가?

이대로 나는 버려지는 건가?

충격적인 현실에 허탈한 심정이 차오르던 그 순간.

[다만, 아직 끝났다고 할 순 없지. 비록 빛을 잃을지언정 기회마저 사라진 건 아니니까.]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인류의 구원? 하면 될 거 아닌가.]

“그게 무슨…….”

[대가만 지불해. 그런다면 저 녀석에게 복수할 힘도, 네가 바라는 인류의 구원도 이루게 해줄 테니.]

심히 나지막한 속삭임이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새겨졌다.

너무도 매력적인 자극제였기 때문이었다.

[원하지 않나? 원한다면 말해라. 나와 계약하겠다고. 인류의 구원, 내가 도와주겠다.]

인류의 구원, 인류의 구원, 인류의 구원!

여태껏 나를 지탱해주던 절대적인 숙명을 미끼 삼은 유혹임을 알면서도 영혼이 반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축하합니다!]

[〈전직 퀘스트 : 빛을 저버린 구원자〉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정보’가 기록되는 중입니다.]

[당신의 희생과 순결한 보상으로 ‘마기(魔氣)’를 습득합니다.]

[‘제3의 영역 : 마기(魔氣)’를 개방했습니다.]

[‘오리지널 기술 : 악마와의 거래’를 습득합니다.]

백색의 대검이 검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후회는 되지 않았다.

아니.

오늘날이 되고 나니 그날의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덕분에.

“찾았, 다.”

이리 재회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아가.

[오리지널 기술 : 악마와의 거래]

[남은 수명 : 약 49년 3개월]

“최대치를 바친다.”

[수명 ‘10년’을 사용합니다.]

[10분간 모든 신체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과거의 치욕을 되갚아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후우욱――――

콰아앙!

쿠구구구구궁!!

후회할 이유가 없었다.

* * *

“최대치를 바친다.”

무어라 읊조리는 성십자가 클랜의 마스터.

그 한마디가 내뱉어진 이후.

후우욱――――

콰아앙!

쿠구구구구궁!!

“……!”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출력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신(神) 한국 정부의 국왕 이회건만큼이나 악연이 깊은 대상과 조우하게 된 것까지는 좋게 봐줄만 하다만.

타이밍이 별로였다.

다른 때였다면 몰라도.

‘기적의 조각’을 완성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한세정이 제 몸을 던진 와중이었다.

1분 1초가 급한 지금.

애먼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날 대신해서 곽재우나 조이령들을 내보내자니 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파가 굉장히 살벌했다.

적어도 나와 비슷한 수준.

그 말인즉슨.

일행 전원이 합심해야 부딪칠만하다는 것인데, 막상 그리했다가는 되려 신(新) 한국 정부의 왕실군과의 전투가 어려워질 판국이니.

“젠장…….”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히려.

사면초가의 형국에 빠진 듯한 형세에 머리가 아팠다.

그러던 차였다.

일촉즉발의 무거운 공기 사이로.

“…윤님!!”

“…아윤님!! 계십니까!”

“……?”

느닷없이 날 찾는 외침이 들려온 건.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아윤님! 계십니까!!”

“아윤님! 계신다면 신호탄을 쏘아 올려주십시오!!”

“저희는 아윤님을 돕고자 합니다!!”

“아윤님!!”

못해도 일이백 명은 될법한 이들이 목청을 높이며 거점 근처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방향은 성십자가 클랜의 뒤쪽.

내용으로 보아 지원군이진 않은 것 같은데, 뭐든 간에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나조차도 당혹스럽던 차에.

“저 황수현입니다!! 여기 계신 걸 알고 있습니다! 아윤님!!”

상당히 익숙한 이름이 울려 퍼졌다.

“황…수현?”

지난날.

불곰파에게 붙잡혀 노예 생활을 했던 남자.

그가.

“아윤님 계십니까!!”

수백의 군세를 이끌고 괴인의 장벽을 가르며 나에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 * *

30분 전.

“교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헌데, 그분께서도 정말 저기 계시겠죠?”

“당연히. 절망의 파도 이벤트 내내 1위를 놓치지 않으셨던 분이다. 그분의 실력이라면 무조건 저기 계실 거다.”

“알겠습니다. 저도 그냥 해본 말입니다. 참! 그래도 가시기 전에 사기도 끌어 올릴 겸 한 말씀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음…….”

한적한 공터 중앙에 비치된 단상에 오른 건장한 체격의 남자 황수현은, 앞에 모인 500여 명의 군중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오직 ‘아윤’님의 은혜 덕이다. 악마들에게 붙잡혀 평생을 노예로 살아갈 뻔했던 나와 동료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구해주셨지. 난 그 은총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었고, 너희를 살리게 되었지. 틀린가?”

“맞습니다!”

“그래. 그래서 이젠 갚으려 한다. 설령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상관없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보답이다! 알겠나?!”

“예!!”

“좋아. 가자! 그분께!”

“우와아아아아아아!!”

딸깍!

[‘피플 파인더’가 가동되었습니다.]

[지정한 대상이 1km 내에 존재할 시, 미니맵에 활성화됩니다.]

* * *

“…….”

설마.

스쳐 지나가는 인연처럼 헤어졌던 황수현과 재회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더욱이.

4~500여 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날 거라고는.

다만.

그가 왜 이곳까지 왔는가.

이에 대한 정답은 확실하게 알 듯했다.

보은(報恩).

내가 황 노인과 유신이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황수현 역시 내게 받은 구명지은을 갚고자 함이라는 것을!

그러하다면.

[투르바의 포효]

후우우욱!

“…황수현!! 저 녀석을 막아!! 지유야 신호탄!”

화아아아아악――――!!

거절할 까닭이 없었다.

“네, 네! 염귀!”

화르르륵!!

불같이 내지른 고함에 신지유가 염귀를 움직였고, 성십자가 클랜의 마스터가 불길에 휩싸이자마자 황수현이 득달같이 창칼을 빼 들었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경황이 없을 법도 하건만.

“아! 아윤님!! 알겠습니다! 전원! 저 불길을 향해 공격하라!!”

불곰파의 수색대로서.

살기 위해 매일매일 눈치를 봐야 했던 경험 덕택인지 황수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비켜라!”

놈이 3m에 달하는 대검을 휘둘렀으나.

팔다리가 잘려도, 설사 코앞에서 아군이 목을 베여도 멈추는 이가 없었다.

돌진, 돌진, 돌진!

맹목적이고도 광신적인 돌격이었다.

그 덕에 미약하게나마 벌어진 틈.

“우리도 가자!”

“예, 예! 형님!”

“오빠! 제가 먼저 갈게요!”

“누나 같이 가요!!”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마침내 전력으로 질주했다.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어.

[건곤일척]

[신속]

[앱솔루트 배리어]

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웅!!

가진 것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로 승부를 걸었다.

“마, 막아! 막으라고!!”

“충령 부대는 전위로…….”

“주몽 부대! 준비된 사수부터…….”

“환령 부대…….”

목숨을 도외시하며 진격하는 일보.

[오리지널 기술 :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오리지널 기술 : 일도양단]

후우우욱!

콰아아앙―――――!!

조이령과 신지운이 1차로 길을 열었고.

“뇌운!!”

[오리지널 기술 : 천공의 문]

[오리지널 기술 : 뇌운]

후우우욱―

촤좌좌좌좌좌좍!!

콰과과과광!!

신지유의 뇌우가 땅을 다진다.

“뚜, 뚫리지 마라!!”

“밀리면 안 된다!!”

“흐아아아아!!”

[오리지널 기술 : 철혈의 요새]

쿵!

쿠구구구구구궁!!

“형님! 가십쇼!!”

어렵사리 개방된 통로를 곽재우가 강제로 고정한다.

나는.

하나둘 겹쳐지고 중첩되는 발판을 디딤돌 삼아 땅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후우우욱―

콰앙!

거칠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목표물이 보인다.

[권능 : 파멸자]

“흐아아아아아아아!!”

슈우우욱!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형태 변화]

주먹을 내질렀다.

[일격 태세]

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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