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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228화 (227/232)

228화

이 우주의 법칙이라는 녀석은 숫자 ‘6’을 굉장히 좋아한다.

당장 「기적의 조각」만 하더라도 여섯 개를 모아야 원형으로 되돌아가거니와.

그 밖에도 〈이면 세계 : 깃발의 무덤〉 내에서 전투를 치르다 보면 얻게 되는 전리품 ‘종족의 씨앗’이나 씨앗을 업그레이드하면 습득가능한 ‘근원의 열매’마저도 각기 여섯 개씩을 구해 조합하는 것으로 상위 버전의 아이템이 완성되는 형식이지 않던가.

또…….

그래.

최근에 자주 접했던 간섭력의 해제 당시에도.

[지금부터 666초에 걸쳐 〈차원 : 테라〉로 향하는 모든 「침략의 문」에 적용되어 있던 일부 조건이 삭제 혹은 조정됩니다.]

‘프레데터의 진화론’을 통해 이종(異種)의 육체를 이식하고 나서도 6을 찾아볼 수 있다.

[온전한 진화를 위해 지금부터 ‘666초’ 내에 「기억 포식」을 성공해내야 합니다.]

대체 어디서 비롯된 6의 고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저기! 노대바람! 저기로!!”

이번에도 그 기이한 특징이 우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신지유가 지정한 장소를…….

여섯 개의 깃발이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평범하게 걸어서 도착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페루에 있다는 나스카 지상화마냥 정교한 육각형의 틀 안에 널찍한 공간이 구성된 상태였다.

보통은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는데 말이다.

하여.

우리처럼 날아서 갈 수 있다면, 눈썰미가 뛰어난 이는 꼭 ‘감춰진 길의 지도’가 없더라도 어찌어찌 발견하지 않을까 싶었다.

확률은 매우 매우 낮겠지만.

대략 ‘292,201,338분의 1’이라는 파워볼에 당첨되어 4,000만 달러, 혹은 그 이상으로 누적된 금액을 타가는 사람도 있으니 어떤 일이든 가능성 제로는 없다.

여하간.

“다들 손 꽉 잡아요!”

고오오오오오오!!

느닷없이 울려 퍼진 신지유의 외침에 서둘러 서로를 붙잡으며 바람을 찢고 낙하하길 잠시.

어마어마한 풍속에 벗겨질 듯 말 듯 하며 휘날리던 장포를 움켜쥐었던 나는.

화아아아아악―――!!

‘……!’

어느 시점에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꼭.

잔잔하던 온천의 수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축하합니다!]

[〈이면 세계 : 왕좌의 제단〉으로 향하는 통로에 닿았습니다.]

[자격 ‘원정대원’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원정단 구성원 : 원정대장 1인 - 원정대원 5인]

“아아!”

그 감각은 곧 현실이 되었고.

번쩍!

[〈이면 세계 : 왕좌의 제단〉에 입장합니다.]

[누군가 〈이면 세계 : 왕좌의 제단〉을 찾아냈습니다.]

[〈이면 세계 : 왕좌의 제단〉으로 향하는 ‘또 다른 빛의 기둥’이 생성됩니다.]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원정단」이 ‘또 다른 빛의 기둥’을 이용할 시, 이동 인원 제약 조건(동행 가능한 원정대원 최대 66명)이 발생합니다.]

코앞에서 섬광탄이 터진 양 일시에 천지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똑―

똑―

무언가가 내 얼굴을 건드린다.

차가운 냉기를 흩뿌리며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 소량의 물방울이 시곗바늘처럼 규칙적으로 볼을 두드리며 잠들어있던 날 깨워주었다.

“으음……!”

덕분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린 나는 내가 어디에 누워있는지를 자각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위를 돌아봤다.

하나, 한세정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곁에 있는가.

둘, 근처에 우리의 목숨을 위협할 적은 없는가.

셋, 이곳의 지형은 어떠한가.

시급한 우선순위별로 빠르게 체크해 나갔다.

그 결과.

“으음…….”

“음…”

한세정들은 전원 무사했으며, 우리가 누워있던 곳이 여기저기에 박힌 발광석을 제외하고는 빛이 거의 없는 어두컴컴한 동굴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맞다.

한 가지가 비었다.

바로 안전도.

[경고!]

[〈이면 세계 : 왕좌의 제단〉에 입장했습니다.]

[〈이면 세계 : 왕좌의 제단〉내에서 살아가는 제단지기의 종족 「아라토르」들이 침입자의 존재를 인지했습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무척이나 친절한 경고성 멘트를 확인함과 동시에.

사사사사사사사――――!!

사사사사사삿―――――!

“캬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캬아아악!“”

족히 수천 마리는 될법한 벌레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크기는 대강 30cm에서 큰놈은 1m 정도.

풍뎅이 같기도 하고 바퀴벌레 같기도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혐오감을 느끼게 해주는 괴충들이, 어둠에도 굴하지 않고 벽을 기거나 작은 천쪼가리만한 날개를 쉴새없이 파닥이며 우리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기적의 조각 : 휴대용 안전지대 설치]

후욱!

기이이이이이잉!

[‘휴대용 안전지대’를 발동합니다.]

[1%, 2%, 3%··· 99%, 100%]

[설치 완료!]

[수식어를 선택해 주십시오.]

“화염!”

[‘기본 수식어 - 화염’이 적용됩니다.]

[당신을 기준으로 폭 00m의 ‘화염의 안전지대(Lv. 2)’가 생성됩니다.]

[「화염의 장벽」이 구축됩니다.]

[‘아군 지정’ 주문을 사용해 격리된 아군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화르르르륵!!

한세정들이 이제 막 깨어나는 실정이라 명령을 내리기보단 신속하게 방벽부터 설치했다.

갑작스러운 섬광으로 시력에 먼저 타격을 입히고, 더하여 동굴 내부의 습하고 낮은 온도에 맞춰져 있을 체질을 깨며 약점을 공략할만한 ‘화염의 안전지대’가 뜨겁게 불타오르자 예측했던 대로 아라토르라는 놈들에게 움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러나.

안심은 금물이다.

고작 2레벨짜리 안전지대로는 저 대규모 공습을 막지 못할 터.

“재우야!! 곽재우!”

“으음, 형님……?”

나는 적군이 머뭇거리는 틈에 바통을 이어받아 줄 곽재우를 일차적으로 일으켜 세웠다.

다급한 목소리에 얼떨떨한 기색으로 눈을 뜬 그는 베테랑 생존자다운 면모를 보이며 금세 위기에 놓였음을 알아차리고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오리지널 기술 : 철혈의 요새]

후우우우욱!

쿠웅!

쿠구구구구구궁!!

일말의 망설임 없이 펼쳐진 마력의 철벽이 부서지고 깨져 나가던 안전지대를 대신해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한세정과 조이령 등.

나머지 일행들도 늦지 않게 의식을 되찾으며 황급히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여기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은 간결했고 계산은 금방 나왔다.

“직진.”

“그런 거… 같아요.”

우리가 있는 위치 한쪽이 꽉 막힌 구조였다.

그 말인즉슨.

아라토르들이 몰려온 저 개방된 경로로 가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따라주면 될 일이었다.

“내가 앞장선다. 교체 수신호는 오른손 거수. 차례는 이령이, 지운이, 지유 순으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재우는 중앙에서 수비를, 세정이는 중간에서 서포트하면서 혹여 놓치는 게 있진 않은지 살펴봐 줘.”

“네!”

“내가 두 번째……. 오케이입니다!”

“알겠습니다.”

“네. 오빠!”

“세 번째, 세 번째. 아자 아자!!”

“좋아. 그럼 간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오리지널 기술 : 광풍의 비행]

후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앙!!

얼마나 달렸을까.

휘우우우욱!

서걱!

서거걱!

“캬아아아악!”

“캬아악.”

오리지널 기술 ‘광풍의 비행’의 부가 효과인 바람 칼날을 이용해 사방을 쓸어 넘기며 질주하길 한참.

적어도 2~30km는 넘게 왔으리라 추정되던 차에 저 멀리서 뭔가 밝게 반짝거리는 물체가 눈에 잡혔다.

그것의 정체는.

“…철문?!”

영롱한 느낌의 녹색으로 휘감긴 커다란 대문이었다.

굳게 닫혀있는 것으로 보건데.

아무래도 뚫고 지나가라는 의미 같았다.

이에.

“지운아!”

나는 두말하지 않고 물러나며 신지운을 불렀다.

파괴하고자 한다면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 일격 태세’를 써서라도 박살 내버리겠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했다.

이곳이 동굴이라는 걸.

괜히 위력에만 집중했다가 불똥이 튀어 천장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신지유의 스톤 골렘이 있으니 어찌어찌 버텨볼 수도 있겠다만, 굳이 내 목을 걸로 실험해보고 싶진 않았다.

[오리지널 기술 : 오러 블레이드]

우우우우우웅!!

“흐읍!”

신지운의 칼끝에서 광채가 흩날린다.

자세히 보면 검신을 뒤덮은 마력이 흡사 전기톱처럼 초고속으로 회전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극한의 회전력으로 대상을 영혼까지 잘라버리는 것.

그게.

“하아아!!”

후우우욱!

촤아아아아악――――!!

신검술 ‘오러 블레이드’의 정수였다.

단지 문제라면.

“후……. 이 정도면, 음?”

전력을 다한 일검이었음에도 문짝이 갈라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기다란 선이 그어지기는 했으나.

그게 전부.

아무리 봐도 멀쩡했다.

“지, 진짜 그대로라고?!”

상정치 못한 의외의 광경에 신지운이 당황하는 동안.

사사사사사사사――――!!

사사사사사삿――――!

“캬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캬아아악!”

힘들게 벌려놓았던 간격이 좁혀졌는지.

침입자를 놓쳤다는 사실에 분노한 아라토르들의 괴성이 벽과 충돌하며 순식간에 고막을 강타했다.

어서 돌파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포위당할 지경.

“지운아, 교체.”

해서 내가 나서보려 하는데.

“한 번만 다시 해볼게요!”

칼을 움켜쥔 신지운이 자신을 믿어달라며 재차 마력을 토해냈다.

뭘 하려는가.

[오리지널 기술 : 오러 블레이드]

[오리지널 기술 : 일도양단]

“흐으읍, 하아아아아!!”

후욱욱!

“아.”

단순한 패로는 같은 결론에 도달할 따름이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쏘아낸 황금색 월광(月光)의 참격.

그걸 목도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신지유뿐 아니라.

신지운 또한 ‘오리지널 기술 x 오리지널 기술’ 콤보를 갖고 있음을.

정말이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짐작했지만, 누나나 동생이나 말도 안 되는 사기적인 능력자들이었다.

촤아아아아악――――!!

찬란한 광휘를 선보이며 문을 향해 쇄도한 검격이 미세할지언정 선명하게 새겨져 있던 앞전의 흠집을 연달아 파고든 직후.

쩍―

쩌적―

쩌저저적!

―――콰아아앙!

수호종 파트로누스만큼이나 견고하게 다가왔던 대문이 굉음을 동반하며 기어이 절반으로 갈라져 속살을 드러냈다.

“산지기! 길을 만들어줘!”

쿵!

쿠구구구궁!

이에 신지유가 곧장 계단을 쌓아 올리자 나는 한세정들을 보내며 후방으로 겁화(劫火)를 쏟아냈다.

[재앙]

[속성 : 화염]

슈우우욱!

화르르르르르륵!

화르르륵!

혹여라도 아라투르이 뒤따라올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를 마치고 밑에서부터 차츰차츰 분해되어가는 계단을 밟으며 한세정들에게 합류했을 때.

“……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100m를 가볍게 넘기는 넓은 공동의 중앙에 높게 세워진 제단 중심에 박혀, 자체적으로 뿜어져나오는 빛을 통해 공간을 가득 채운 암흑을 밀어내며 고고하게 서 있는 신물(神物)을.

태양을 연상케 하듯 새빨간 깃대와 살살 너풀거리는 백색의 천 중앙에 그려진 청록색의 구체가 너무나도 인상적인…….

“찾았, 다.”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차원의 깃발 : 테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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