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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226화 (225/232)

226화

【 마지막 길 】

하루가 지났다.

서쪽으로 기울었던 태양이 창공에 걸린 달을 밀어내며 재차 지상을 밝히는 동안.

쿵―

쿠구구궁!

“저쪽으로 조금만 더 갈 수 있겠어?”

“당연하죠!”

[웨이브]

우우웅!

촤좌좌좌좌좍!!

우리의 행동거지는 여전했다.

신지유와 산지기의 힘으로 깊고 넓은 해자 틀을 파고, 내가 물을 부어 넣는다.

킹급은 고사하고 퀸급만 해도 거대한 몸집을 앞세워 수십 미터쯤은 단박에 뛰어넘는 터라.

“저쪽도.”

“넵! 산지기!”

쿠궁!

설사 초대형 거인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건널 수 없게끔 보수와 증축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수천 단위의 머릿수로 밀어붙여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불상사도 막아야 했고.

아무튼.

완공되었다 싶으면 한세정이 배턴을 넘겨받았다.

[용독술]

[하독편 - 칠초화혼분]

[하독편 - 절명독]

[하독편 - 산공멸액]

*칠초화혼분(七草火魂粉) : 일곱 가지 진귀한 독초를 섞어 완성한, 영혼을 불태우는 고통을 선사하는 가루

*절명독(絶命毒) : 단 1밀리리터만으로도 수천 마리의 짐승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

*산공멸액(散功滅液) : 신체 내부로 침투해 마력 흐름을 방해하는 독. 심할 경우 영구적인 마력 손실이 생긴다.

촤르르르르륵!!

상점에서 구매해 손수 제조한 갖가지 독을 수중에 끊임없이 투입해 물 자체를 치명적인 살수(殺水)로 바꿔 놓아, 빠지기라도 하면 적어도 멀쩡히 살아 돌아오지는 못하도록 자본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해자 ▶ 바위로 위장 중인 골렘 ▶ 5레벨 안전지대 ▶ 열매로 위장 중인 무칼라고 ▶ 나와 한세정들]

현재 우리의 거점은 이렇게 이중삼중의 코팅이 마련됐고.

사실상 금역.

이른바 천혜의 요새로 변모했다.

“이만하면 적어도 커맨더까지는 무난하게 커트해내겠어.”

점차 화려해지는 방어 수단들을 보며 이러한 감상평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만큼.

날이 저물고 맞이한 이튿날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사, 또 공사, 또또 공사…….

신체 능력이 바닥을 전전하고 있는 한 어떻게든 숨죽이며 ‘복원의 사흘’을 버텨갔다.

부디 우리가 정상화될 때까지만 조용하기를 바라며.

물론.

콰아아앙――――!

“꾸이이이이이익!!”

“꾸이이익!!”

“꾸이이이이익!”

“…젠장.”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 *

“그워어어어어어어!!”

후우우우욱!

콰직!

흑기사가 휘두르는 8~9m가량 될법한 골렘용 장창이 마치 어부가 쏘아낸 작살처럼 대기를 가르며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던 무언가의 피륙을 찢고 틀어박힌다.

“꾸이이이익!!”

가슴팍을 제대로 찍혀 돼지 멱 따는 괴성을 질러대는 괴물.

우리에겐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스랄레오였다.

태산이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가볍게 뚫어내고 길을 개척하는 불도저들.

허나 수영은 영 젬병인지.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가 벌려진 주둥아리로 흡입한 독수와 무지막지한 무게를 지지대 삼아 창살을 찔러 대는 흑기사들의 끈질긴 공세에 붉은 선혈을 토해내며 죽음을 맞이했다.

역시.

“가려두길 잘했네.”

“그죠?”

해자의 살상력을 끌어올리고자 위쪽에 얇은 석판을 씌워둔 게 주효했다.

이는 전적으로 곽재우의 의견이었는데.

인간의 살냄새만 맡아도 광분하는 대부분의 침략군들은 어지간하면 낚여 굴러떨어지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그건 그렇고……. 다행히 킹급은 없나.”

퀸급 십여 마리를 필두로 족히 2천에서 3천을 달하는 스랄레오 떼를 찬찬히 살피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차, 2차, 3차로 연계되는 방패가 아무리 견고할지언정.

킹급이 밀고 들어오면 여지없이 무너져버릴 게 분명한지라 속으로 ‘제발’이란 단어를 수십, 수백 번 기원했다.

그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몇 번을 체크해도 킹급 스랄레오는 보이지 않았다.

거주지에서 〈던전 : 골갑의 초원〉까지의 거리가 겨우 5분 남짓이라 놈이 지구에 강림했다면 우리 쪽으로 찾아올 확률이 매우 매우 높아 상당히 불안했는데, 천운이 따라준 것 같았다.

아니면.

“깃발의 무덤으로 향했을 수도 있겠어.”

외계 생명체들의 입장에선 인간들을 짓뭉개는 것보다 통로가 폐쇄되지 않게 수호하는 것도 더욱 중요할 테니까.

그래야 지속적으로 침략을 이어갈 수 있거니와.

애초에.

「침략군」의 궁극적인 목표도 종극에는 ‘차원의 깃발 : 테라’였다. 이 세상을 본인들의 지배하에 두려는 게 그들의 최종 과제이지 않던가. 그러니 전송되는 즉시 빛의 기둥을 타고 이면 세계로 이동했을 공산이 컸다.

그 말인 즉슨.

웬만하면 현실에서는 언제 킹급을 마주할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100%라고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그러던 차였다.

“아아!!”

“……?”

옆쪽에서.

웬 비명 소리가 들린 건.

갑작스러운 고성에 놀라 돌아보니, 십이지신(十二支神) 중 집채만 한 대궁(大弓)에 화살을 걸어 날리는 녀석 옆에서 초목의 정령 드라이어드와 다섯 소환수를 부리며 전투에 임하고 있던 신지유가 굉장히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지?

난데없는 장면에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

번쩍!

번쩍!

번쩍!

강렬한 섬광이 연신 번뜩였다.

정확히 다섯 번.

근원지는 청염을 포함한 다섯 소환수였다. 나는 그 광경을 목격하자마자 직감했다. 특이하게도……. 그래, 특이하다기보단 제 처치를 고려해 최적의 체질이라 할 수 있는 ‘단련신’을 택했던 신지유의 아이디어가 제 가치를 증명해냈다는 걸.

[‘한계 돌파 의뢰서 : 체화’를 사용합니다.]

[기술 ‘청염’을…….]

[기술 ‘흔들바람’을…….]

[기술 ‘얼음꽃’을…….]

[해당 기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확인했습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진화의 빛(Evolutionary light)」이었다.

* * *

기술이 원본(原本) 단계에 이르면 ‘특성 개방의 돌’로 해당 기술과 관련된 특성을 얻을 수 있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부족한 ‘특성’을 채우고.

실력이 따라주면 퀸급 개체들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드랍되는 전리품인 ‘금색 교환권’을 통해 원료를 구한다.

당연하게도 전자보다 후자의 방법으로 획득한 ‘특성’의 효과가 월등히 좋다.

우주의 법칙.

다시 말해.

시스템이 난이도의 차이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었다.

신지유도 이를 알기에 오로지 ‘금색 교환권’으로 확보한 것들로만 합성을 시도했고, 그 결과물들이 하나둘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르르르르륵!!

화르르륵!

“염귀.”

흡사 램프의 요정 알라딘을 연상케 하는 불꽃 도깨비 염귀(炎鬼).

사아아아아아――

쩌저저저적!

“얼음 여왕.”

단지 호흡만으로 주변 공기를 얼려버리는 여사제의 외형을 한 얼음 여왕.

휘우우우우웅!

후우우욱!

“노대바람.”

광풍을 동반하며 지상에 내려앉은 템페스타급 체구의 사익조(四翼鳥) 노대바람.

쿠웅!

쿠구구구구궁!!

“스톤 골렘.”

이름을 빼다 박은 듯.

거기에 스랄레오 특유의 백골갑이 더해졌는지 화려한 중갑을 걸친 암석의 기사 스톤 골렘.

마지막으로.

파직!

파지지지직!

파지직!

“뇌운.”

까만 먹구름에 푸른 번개가 쉬지 않고 번쩍거리는 형상의 뇌운까지.

각 속성의 특성이 잘 녹아있으면서도 위압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천재지변급 환수들이 친구이자 주인의 부름을 듣고 이 땅에 현신한다.

신지유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해 화려한 등장 신과 달리 무소불위의 위력을 선보이는 일은 없었지만.

눈은 참 즐거운 이펙트가 일대를 뒤덮었다.

그러한 신지유의 발전이 신호탄이 되었을까?

시간이 흘러.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흘 차가 되던 무렵.

“아!”

“어?”

다른 이들에게서도 낭보가 터져 나왔다.

제약(製藥)을 비롯해 하독(下毒)과 해독(解毒) 등 독과 관련된 다양한 방면의 연결점이 되어주는 한세정의 ‘용독술’이.

순간적인 대쉬로 적과의 간격을 좁히거나 위기를 회피하는 등 어느 곳에서나 유용하게 적용되는 조이령의 ‘돌진’이.

상처를 치료하고 증세를 약화하는 등 생존자들에게는 절대 없어선 안 될 회복기인 곽재우의 ‘치유’가.

칼날의 예기(銳氣)를 강화해 평범한 식칼로도 단단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퀸급 스랄레오의 골갑마저 베어 넘기게끔 도와주는 신지운의 ‘인첸트 - 샤프니스’가.

그리고.

탁!

탁!

탁!

“아아…….”

*기술

- 머메른의 갑주 [원본(原本) / Master ]

-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 [원본(原本) / Master ]

- 풀루스의 돌진 [원본(原本) / Master ]

내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세 가지 기술들이 연달아 마스터 레벨이 도발한 것이다.

슬슬 입질이 오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대어가 낚인 셈.

아니.

어디까지나 극한의 훈련을 바탕으로 얻어낸 노력의 성과였다.

[‘한계 돌파 의뢰서 : 체화’를 사용합니다.]

[기술 ‘머메른의 갑주’를 선택했습니다.]

[해당 기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한계 돌파 : 머메른의 갑주》

- 설명 : 행성 ‘구르케스(Gurkes)’의 지배종 「머메른」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을 베껴 피나는 노력 끝에 원류와 비견될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그대. 이제는 ‘남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가다듬을 시간입니다.

당신이 지닌 ‘특성’을 가미해 원류를 뛰어넘을 본인의 길을 제시해 보십시오.

- 과제 : 1. 특성 결합 / ?

- 현재 결합 가능한 특성 : 불굴, 센서티브, 석화, 탈피, 위압…….(펼치기 ▼)

‘머메른의 갑주’를 기점으로.

[기술 ‘머메른의 갑주’와 특성 ‘탈피’가 결합합니다.]

[기술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와 특성 ‘섬멸’이 결합합니다.]

[기술 ‘풀루스의 돌진’과 특성 ‘바람 타기’가 결합합니다.]

빠르게 조합되어가는 기술들.

채택된 재료들은 각기 구렁이 콜루베르의 ‘특성 : 탈피’, 쌍수 괴인 포타우스의 ‘특성 : 섬멸’, 괴조 템페스타의 ‘특성 : 바람 타기’였다.

*탈피 : 찢기거나 벗겨진 가죽(피부)이 재생될 때마다 이전보다 더욱 질겨진다.

*섬멸 : 20단위로 생명체를 사망에 이르게 할 때마다 다음 공격의 위력이 1% 증가, 최대 3 중첩 가능

*바람 타기 : 이동 중 순풍을 맞을 시 바람의 세기에 따라 최대 9%까지 이동 속도 상승

미리미리 잘 어울릴만한 것들로 싹 다 매칭해두었기에 주저함은 없었고.

그 종착지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은 그대에게 「오리지널 기술 : 끝없이 진보하는 갑옷」을 부여합니다.]

[스스로의 길을 찾은 그대에게 「오리지널 기술 : 분쇄하는 학살자의 검」을 부여합니다.]

[스스로의 길을 찾은 그대에게 「오리지널 기술 : 광풍의 비행」을 부여합니다.]

나와 한세정들은 능히 저마다 신검명도(神劍名刀)에 비견될 새로운 무기들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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