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한 움큼 흩어졌다가 스르륵하고 복원되는 세계.
서서히 발견되는 낯익은 풍경들이 하나둘 합쳐져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나서야 인지했다.
내가.
우리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난 직후.
[축하합니다.]
[최초로 「킹급 개체」 사냥에 성공하셨습니다.]
[경이로운 업적을 이룩한 당신에게 정해진 법칙에 의거하여 합당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눈앞이 출렁거리는 글자의 파도로 채워졌다.
붉으빛, 푸른빛, 황금빛…….
온갖 색상으로 조합된 문구들을 보고 있자니, ‘휘황찬란(輝煌燦爛)’이란 단어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리가 세운 공적이 대단하다는 뜻일…….
“세, 세정아! 괜찮아?!”
“……!”
홀로 상념에 잠기려던 차에 들린 조이령의 외침.
괜찮으냐는 한 마디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일촉즉발의 위기에 내몰렸던 한세정의 아찔했던 광경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에 서둘러 돌아보자.
“으음… 그럭저럭? 헤헤…….”
그녀는 조이령의 무릎에 누워 겸연쩍은 낯빛으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신지운의 최후 비기라 할법한 신력(神力)을 이용해 긴급구조를 벌인 덕분에 옷 여기저기가 헤지긴 했지만, 딱히 다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매우 매우 다행이었다.
“하아…….”
이를 확인하고서 가슴 한쪽에 남아 있던 일말의 불안감마저 말끔하게 털어내며 숨을 크게 내쉰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욱―
털썩!
한가하게 딴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특수 상태 : 전력」이 비활성화됩니다.]
[기술 ‘건곤일척’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기술 ‘신속’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기술 ‘앱솔루트 배리어’가 공격을 방어해냅니다.]
[권능의 대가가 찾아옵니다.]
[사흘간 모든 신체 능력치가 최대치의 10%로 하락합니다.]
‘기적의 조각 : 작은 이적 - 사슬을 끊는 자’로 겨우 떨쳐냈던 제약들이 재차 내 영혼을 움켜쥐고 있었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극심한 피로감.
“으음…….”
자연스레 눈꺼풀이 감겼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익숙한 방 안의 구조가 나를 반겼다.
* * *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20분 30초]
반나절이었던 게 왕창 줄어 기껏해야 150분가량으로 줄어든 시각.
1분 1초를 아껴 깃발 파괴에 힘쓰려던 우리는 본래의 계획을 깔끔하게 포기한 채로 거점 식당에 모였다.
나도 나지만.
한세정들도 ‘건곤일척’이나 ‘신속’의 여파로 당장 나이트급 개체와의 전투도 승리가 불확실한 사정이라 아예 〈이면 세계 : 깃발의 무덤〉에서 거점으로 복귀했다.
이리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는 점은 잘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으니 휴식만이 답이었다.
“오빠, 여기요.”
“고마워.”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차려진 밥상.
스랄레오 고기를 비롯해 기존에 즐겨 먹던 렌티아 열매 등 오랜만에 상점에서 돈을 들여 구매해온 각종 음식 재료들을 잔뜩 더해 진수성찬으로 식사를 마친 자리.
든든한 포만감을 느끼며 나는 한세정들과 드디어 보상안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최초(最初).
아무도 거머쥐지 못한 위업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다들 호기심으로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뭐가 있을까.’
적잖은 기대감을 품고 허공을 수놓아진 문단을 위에서부터 한세정들에게도 들리게 차근차근히 읽어내려갔다.
그 첫 번째 내용은 칭호.
[축하합니다.]
[최초로 「킹급 개체」 사냥에 성공하셨습니다.]
[경이로운 업적을 이룩한 당신에게 정해진 법칙에 의거하여 합당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칭호 : 왕의 목을 벤 자’를 습득합니다.]
“칭호, 왕의 목을 벤 자는…….”
《칭호 : 왕의 목을 벤 자》
- 처음으로 「킹급 개체」를 사냥한 위대한 사냥꾼에게 부여되는 칭호. 전사들에게 있어 승전의 경험은 곧 자신감이 되고, 자신감은 또 다른 승리의 발판이 되리니. 왕(王)의 목을 베어본 경험을 갖게 된 당신은 오늘을 기점으로 앞으로도 동일한 결전에서 승전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대상 : 킹급 개체’와 전투 시 모든 신체 능력치가 9% 향상되며 기술 위력 및 시전 속도가 11% 상승합니다.
“스탯 9퍼센트에 기술도 11퍼센트나요?”
“와우…….”
가장 최근에 얻었던 ‘거인을 베는 자’와 비견되는 엄청난 옵션이었다.
안 그래도.
킹급 무칼라고를 상대하며 ‘거인을 베는 자’의 버프가 꽤 큰 어시스트를 해주었다고 여겼는데, 향후 저것까지 합쳐진다면 이번보단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으리라 싶었다.
“다음은.”
칭호에 이은 두 번째는.
[보상으로 ‘왕의 수급 : 무칼라고’를 습득합니다.]
무칼라고의 그림이 박힌 손바닥 크기의 녹색 보석으로, 상당히 특이한 ‘재료 아이템’이었다.
《왕의 수급 : 무칼라고》
- 등급 : 유일+++
- 분류 : 재료
- 설명 : 행성 ‘에밀스(Emils)’의 지배종「무칼라고」내에서도 최고이자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여 ‘왕(王)의 권좌’에 오른 존재의 수급입니다.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일정 수준 이하의 생명체들에게 막대한 위압감을 선사하는 이 명예의 징표는 총 세 가지 방식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 옵션 : 장비 아이템과 합성 시 해당 아이템에 「킹급 무칼라고의 혼」 부여 / 설치된 「안전지대」에 결합하여 강화 / 일정 공간에 ‘늪지대의 안전지대(Lv. 3)’ 설치
평상시에 쉽게 마주하기 힘든 ‘안전지대용’이기 때문이었다.
무장을 업그레이드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긴 하다만, 역시나 눈이 가는 부분은 뒤쪽이었다.
“안전지대 강화?”
“꼭 업그레이드가 아니어도 원하는 곳에 설치도 되네요.”
“무기나 방어구 같은데도 합성된다고 하시는데, 어디다 쓰실 예정입니까?”
흥미로운 기색으로 ‘왕의 수급’을 관찰하는 한세정들.
나는 곽재우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다가 가볍게 대답했다.
“거점에다 쓰는 게 좋겠어.”
이미 집이 있는 입장이라 3번 옵션은 볼 필요도 없고.
남은 건 1번 혹은 2번인데.
곰곰히 고심해보니.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5분 16초]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5분 15초]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5분 14초]
킹급 개체들의 현실 강림이 코앞으로 다가온 현시점에선 ‘안전지대’의 성능을 상향시키는 것 말고 더 좋은 선택지는 없는 듯했다.
결심을 굳혔고.
“안전지대 강화.”
단박에 주문을 외웠다.
파직!
나지막한 읊조림에 반응하며 터져 나오는 강렬한 빛.
[‘왕의 수급 : 무칼라고’와 ‘초목의 안전지대’가 결합합니다.]
짤막한 메시지가 뜨고 지길 몇 초 만에 솟구친 광휘가 거주지 전체를 휘감았다.
그 눈부신 번쩍거림이 사그라들었을 즈음.
“열, 매?”
“열매네……?”
우린 천장, 벽, 바닥에 계단이나 창문 등 목조 건물 사방을 빼곡하게 에워싼 수백 개의 열매를 목도할 수 있었다.
[안전지대 곳곳에 「무칼라고의 위장 열매」가 생성되었습니다.]
[허락되지 않은 적의 침입 시, 잠들어있던 「무칼라고」들이 열매의 버리고 깨어나 적을 섬멸합니다.]
[해당 「무칼라고」는 최소 ‘나이트 등급’에서 최대 ‘커맨더 등급’이며 항시 999개체로 유지됩니다.]
[전투 중에 사망한 「무칼라고」는 각기 10분의 재생 시간을 거쳐 복원됩니다.]
[「무칼라고」 종에게 ‘속성 : 초목’이 추가됩니다.]
무려.
천여 마리나 되는 집 지키는 생체 병기의 출현이었다.
“호…….”
확실히.
흑기사들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더군다나.
[‘초목의 안전지대’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 ‘초목의 안전지대 / Level : 1’ ▶ ‘초목의 안전지대 / Level : 5’ ]
[‘초목의 안전지대’의 모든 효과가 500% 증가합니다.]
우우우우우웅!!
기본적인 회복력 및 내구력도 5배나 증가하였으니, 이로써 방어 문제는 더 이상 우려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유일급 아이템을 바른 보람이 있는 결과물이었다.
“이제 마지막인데.”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정리된 뒤.
우리는 다시 차분하게 전리품을 구경했다.
아니.
차분해지려고 시도했으나, 단 10초도 가지 못해 분위기는 재차 요동쳤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보상품인 ‘올 스탯 +15’라는 글귀 밑으로…….
[《이면 세계 전용 단체 퀘스트 : 최종 결전》의 ‘2번 목표 : 왕의 죽음’이 달성되었습니다.]
[《이면 세계 전용 단체 퀘스트 : 최종 결전》의 ‘1번 목표 : 깃발 파괴’가 강제 달성됩니다.]
[「원정대장」에게 ‘감춰진 길의 지도’가 지급됩니다.]
[현재 ‘원정대’가 해체된 상태입니다.]
[《이면 세계 전용 단체 퀘스트 : 최종 결전》의 ‘2번 목표 : 왕의 죽음’달성 당시 「원정대장」의 자격을 갖고 있던 ‘대상 : 조이령’에게 ‘감춰진 길의 지도’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이러한 문장이 나를 포함한 일행 전원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출력됐기 때문이었다.
가히 충격적이라고 해도 될 이 공지에.
“…으음.”
나는 나대로.
“오빠…이, 이거 저만 보이는 거 아니죠?”
“세정아, 너도 보여? 퀘스트 달성했다는 거…?”
“저도 보입니다.”
한세정들도 저마다 경악을 금치 못하겠단 말투로 중얼거린다.
설마.
킹급 무칼라고의 처치가 이런 식으로 연결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
고로 다들 얼떨떨해하는 가운데.
“...이령아.”
나는 조이령을 불렀다.
그에 맞춰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모두의 이목.
구태여 주절주절 떠들지 않아도 되는 호출에, 조이령이 주섬주섬 품속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 손에 쥐었다.
고풍스러운 문양과 그림.
약간은 낡은 모양새로 하여금 오히려 한결 가치 있게 비춰지는 오래된 양피지.
“이게…”
《감춰진 길의 지도》
- 등급 : ?
- 분류 : ?
- 설명 : 오로지 〈이면 세계 : 깃발의 무덤〉에서만 활성화되는 낡은 지도입니다. 본 지도의 소유자는 수천, 수만 개를 넘어 어쩌면 수억 개에 달할지도 모를 무수히 많은 깃발 사이에 숨겨진 「길」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어디로 이끄는지 가보지 않고는 알지 못하나 하나 분명한 점은 위기와 시련을 겪은 자에겐 합당한 보상이 뒤따르는 것은 우주의 진리입니다.
- 옵션 : 〈이면 세계 : 깃발의 무덤〉 입장 시 주문 ‘길을 보는 눈’ 자동 발동
우리를 〈차원의 깃발 : 테라〉가 은닉된 장소로 이끌어줄 길잡이이자.
《특수 퀘스트 : 깃발을 쟁취하다》
- 본디 ‘깃발’이란 누군가의 「영역」을 가장 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완벽한 도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발아래에 두는 영광스러운 증명에도 깃발을 사용하기로 약속했습니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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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단계 보상 : 기적의 조각
나의 「기적의 조각」을 5단계로 성장시켜줄 열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