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딸깍―
[현재까지 파괴한 깃발 수 : (1/44)]
숫자가 바뀌었다.
기껏해야 ‘1’이 채워졌을 뿐이지만, 누구 한 명 다치지 않고 무사히 되돌아왔다는 데 의의를 둔 나는 우선적으로 한세정들이 전부 곁에 있는지를 체크한 뒤.
괜찮은 휴식처를 골라 앉으며 막 끝난 싸움에 대해 서로의 감상평을 나눴다.
“다른 것보다 퀸급이 너무 많더라구요. 차원석이랬던가 하는 그 돌을 지키는 데만 다섯 마리까지 더해서 아홉 마리는 넘게 본 거 같아요.”
“정확히 열한 마리였습니다. 나중에 두 마리가 더 추가됐습니다.”
“정말?”
“확실치는 않지만… 차원석을 부수는 게 늦었더라면 제 요새로도 버티지 못했을 듯합니다.”
전체적인 대화는 한세정과 곽재우의 주도하에, 나머지가 이따금 첨언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한세정들이 내놓는 의견을 경청하며 머릿속으로 차후 투쟁에 대한 전략을 구상해나갔다.
직접 경험해보고 나니.
퀸급이 무더기로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쉽게 클리어된 감이 있기는 하나, 그것에 매몰되었다가는 큰코다칠 게 뻔했기에 좀 더 탄탄한 구성으로 위험도를 낮춰야 할 듯싶었다.
해서.
고심을 거듭하던 나는.
“이렇게 하자.”
차근차근하게 고려해본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아니 더 높은 난이도의 싸움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 우리는 속전속결로 차원석만 노린다.”
“그럼 괴물들은요?”
“미끼를 놓았으면 해.”
“미끼… 라면.”
“이번처럼, 입장하자마자 대강의 상성을 살펴보고 상극 우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재우와 함께 유인조가 된다. 아마 지유와 재우가 제일 많이 나가게 될 거야. 재우의 방어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지유는 공중으로 몸을 피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전 상관없어요.”
“그래. 두 사람에 플러스 알파로 유인조가 괴물들의 끌고 나가면 2차 유인조가 나선다.”
내가 세운 계책의 핵심은 ‘시선 돌리기’.
철저하게.
「차원석 파괴」라는 대원칙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전략이었다.
“2차 유인조는 1차 유인조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 중 세정이를 제외한 전원이다.”
“네? 저를 제외한… 이요?”
“그래. 세정이 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줘야 해.”
“혹시.”
“맞아. 네가 칼날이야.”
“아!”
리스트에서 빠진 한세정에게는 전쟁의 온점.
화룡점정(畫龍點睛)의 비수 역을 주었다. 몇 번을 되짚어봐도 그녀 외에 이를 담당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꼽으라면 원거리 폭격이 되는 신지유인데.
둘의 위치가 바뀌면 이펙트가 포인트인 유인조의 효력이 부쩍 감소하는지라, 개인적으로는 이 라인업이 최상의 구성이라고 사료되었다.
“상황에 따라 바뀔 확률도 있으니, 다들 본인 할 일이 끝났다고 너무 긴장 풀지는 말고.”
“네!”
“네!”
“네!”
“네!”
“네!”
“좋아, 그럼 남은 마흔 세 개도 잘해보자”
* * *
[「원정단 : 아윤(변경 가능)」의 ‘차원석 : 라무스’ 격파가 확인되었습니다.]
[「원정대장」 및 「원정대원(30인 추첨 한정)」에게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무작위 선택된 사본(寫本)급 이하 기술 중 한 가지의 단계가 1 상승합니다.]
[선택된 기술 : 멀리 보기 / 1 ▶ 2]
[보상으로 ‘라무스의 씨앗’을 습득합니다.]
《라무스의 씨앗》
- 등급 : 유일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대상 「라무스」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씨앗이다. 차원 간의 통로를 잇는 균열을 여는데 필수적인 재료로 ‘근원석’처럼 복용할 수도, ‘교환권’처럼 무기 혹은 방어구 등으로 변환할 수도 있는 특별한 아이템입니다. 단, 결정은 되돌릴 수 없으니 신중하게 판단하길 바랍니다.
- 옵션 : 복용 시 ‘체력’과 ‘내구’, ‘속성’ 20 상승 / 주문 ‘아이템 교환’ 발동 시 본인이 원하는 장비로 변형 / 다른 씨앗과 합성 가능
- 특이사항 1 : 복용 시 옵션은 「5차 내성」 이상에는 효과가 반영되지 않습니다.
- 특이사항 2 : 장비의 등급은 ‘특별’로 고정됩니다.
- 특이사항 3 : 총 여섯 개의 ‘씨앗’으로 아이템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보상이 엄청나네.”
정리를 마친 이후.
다음 깃발을 찾아 나아가려는 우리 앞에 굉장히 눈부신 전리품들이 주르륵 떨어졌다.
올 스탯 5 증가 특전부터 ‘라무스의 씨앗’이란 소모품 등.
하나하나가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것들, 그래서인지 특이사항이 세 가지나 달려있다.
심지어.
“기적의 조각 메커니즘을 따온 건가. 아니면 기적의 조각이 여기서 착안한 건가.”
전후 사정은 알지 못하나.
여섯 개를 모아 융합하는 조합 시스템까지 존재했다.
그야말로 최상의 아이템.
단지.
랜덤으로 선정된 서른 명만이 가질 수 있다는 특수한 제한성이 있고, 또 인원 미달이라면 그 부분은 소멸해버리는 방식이라는 게 약간 아쉽다만.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억거리며 ‘라무스의 씨앗’을 입에 가져갔다.
“바로 드시게요?”
“일단은, 4차 한계 돌파 먼저 달성하려고.”
조합 시스템을 이용해 더욱 대단한 걸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으나, 체력이나 내구 등.
네 번째 환골탈태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 터라.
당장은 그쪽에 힘을 쏟을 작정이었다.
으적―――!
[‘라무스의 씨앗’을 복용했습니다.]
[체력, 내구, 속성이 20 상승합니다.]
우우우우우웅!!
식도를 타고 넘어간 뜨거운 열기가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온몸에 활력을 이끌어낸다.
단숨에 도합 60.
여기에 앞서 오른 110(올 스탯 +5)을 합쳐 170이라는 어마어마한 향상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럼 저도.”
“나도 먹을까?”
“이미 세트 아이템을 구성해둬서 저 역시 복용하는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속성이다!”
“완전 누나 거네.”
한세정들도 다들 먹는 걸 택했다.
장비적으로 크게 부족함이 없다 보니 굳이 변환보다는 능력치화하는 게 낫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뭐.
결단은 자기 몫이었기에 나는 별다른 터치 대신 잠깐의 휴식을 선언하고 각자 달라진 점에 관한 적응 시간을 가졌다.
바위가 지천에 깔려 있는 돌산.
“위이이이익!!”
“위이이익!”
후우우우욱!
콰아앙!!
콰과과광!
필드의 색채를 여실히 증명하듯.
여기저기서 거석을 뒤집어쓴 집채만 한 몸집의 공벌레들이 산비탈을 굴러와 우리의 목숨을 노렸다.
기술이 가미된 돌격이었기에.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놈들의 형상은 마치 화염의 꼬리를 달고 낙하하는 운석을 쏙 빼닮아있었다.
특히.
“위이이이이이익!!”
콰앙!
쿠구구구구궁!!
지진을 연상케 하는 진동을 대동하며 진격해오는 퀸급 월뤄들의 공세는 .
“…안 되겠다! 피해!”
“네!”
탱커인 곽재우조차도 회피를 희망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의 오리지널 기술인 ‘철혈의 요새’로도 막기 어려운 공격력이었다.
더군다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명언답게 돌진 상태에서는 맹렬한 회전력에 의해 웬만한 반격은 힘도 못 쓰고 모조리 튕겨 나왔다.
절로 공방 일체란 단어를 중얼거리게 만드는 타입이었다.
참.
마음에 드는 종족이었다.
“흔들바람!”
휘이이이이익―――!
“위이이익!!”
“위이익!!”
“위이이이이익!”
적당히 흔들어주고 하늘로 날아오르면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강아지마냥 허망한 꼴이 되어버렸고.
[단거리 공간 이동]
슈우우우욱―
서걱!
콰아아아아앙!!
“됐다아!”
그 타이밍에 슬쩍 파고들어가 칼을 휘두르면 끝이 나는 단조로운 유형이었으니까.
[축하합니다.]
[「원정대원」 이 ‘차원석 : 월뤄’를 파괴했습니다.]
[〈차원 : 테라〉와 연결된 행성 ‘풀소(Pulso)’의 통로가 특수한 경구를 거치지 않는 한 영구히 차단됩니다.]
[〈이면 던전 : 거석의 발 구름〉에서 퇴장합니다.]
[남은 시간 : 5초]
[남은 시간 : 4초]
[남은 시간 : 3초]
[남은 시간 : 2초]
[남은 시간 : 1초]
[남은 시간 : 0초]
[퇴장합니다.]
번쩍――――――!
이리 따낸 승리는 다시금 성장으로 적립됐고.
[‘라무스의 씨앗’을 복용했습니다.]
[내구, 순발력, 균형이 20 상승합니다.]
[축하합니다!]
[‘신체 능력 : 내구’가 「400」을 돌파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4차 한계 돌파―내구’를 습득합니다.]
[기술 ‘엡솔루트 배리어’를 습득합니다.]
[내구가 10 상승합니다.]
《기술 : 앱솔루트 배리어》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내구’가 「4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발동 시 다음 공격을 방어해내는 마력 갑옷이 형상화됩니다. 원본(原本) 등급 이하의 기술(또는 ‘고유 능력’)은 완벽히 파훼하며 체화(體化) 등급 기술(또는 ‘고유 능력’)의 위력은 30% 절감됩니다.
근력에 이은 내구.
[축하합니다.]
[「원정대원」 이 ‘차원석 : 벨로키타스’를 파괴했습니다.]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축하합니다!]
[‘신체 능력 : 순발력’이 「400」을 돌파했습니다.]
뒤이어 치러진 연전에선 순발력까지.
차근차근하고 착실하게 깃발을 부수며 발전해갔다.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마흔 네 개의 타겟을 격파할 수 있겠더니 싶게끔.
허나.
세상이란 게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순탄하던 일정에.
[경고!]
[〈이면 세계 : 깃발의 무덤〉에 존재하는 ‘깃발’ 중 44개가 파괴었습니다.]
[정해진 법칙에 의거하여 ‘이벤트 : ?’의 발발 시점이 하루 앞당겨집니다.]
“경…고?”
제동을 거는 변수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면 세계는 개인에게만 허락되는 ‘인스턴스 던전’과 다르다.
동시 입장.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생존자들을 불러 모으는 특별한 지역이었기에 우리처럼 빠르게 진입한 원정대가 다수일 수밖에 없었고, 그 여파로 빛의 기둥이 개방된 며칠 만에 다량의 성과가 누적되며 트리거를 발동시킨 탓이었다.
그리고 이는.
[〈차원 : 테라〉내에 존재하는 ‘간섭력’의 제한이 일부 해제됩니다.]
[각 등급별 「침략군」의 능력치가 최대 50%에서 최소 15%(자세히 보기▼) 증가합니다.]
[각 등급별 「침략군」의 기술 시전 속도 및 위력이 최대 25%에서 최소 9%(자세히 보기▼) 증가합니다.]
괴물들의 능력적 진보로 귀결되었거니와.
[왕의 그림자가 선명해집니다.]
나와 한세정들을…….
나아가 모든 생존자들에게 두려움과 불안함을 조성하는 결과를 발생케했다.
이러니 주춤거리는 게 당연했다.
다른 뭣도 아닌 ‘왕’이다.
왕(王).
바야흐로 「킹급」 개체의 강림을 의미하는 문장과의 대면이었으니, 멈칫거리지 않으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