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퀸급 템페스타의 심장을 짓이기며 채집한 4등급 근원석을 입안에 밀어 넣는다.
우득―
[‘4등급 근원석 : 템페스타’를 복용했습니다.]
[근력과 내구가 15 상승합니다.]
[기술 ‘흐름 타기’를 습득합니다.]
“됐다.”
강철 검의 이미지를 가져온 듯한 종(種)이었기 때문인지.
조류 주제에 근력과 내구를 향상해주는 특이한 근원석을 완전히 소화하고 나자,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가라앉는단 느낌이 든 찰나.
[축하합니다!]
[‘신체 능력 : 근력’이 「400」을 돌파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4차 한계 돌파―근력’을 습득합니다.]
[기술 ‘건곤일척’을 습득합니다.]
[근력이 11 상승합니다.]
마침내 네 번째 벽을 깨부쉈다는 알람이 눈앞에 나타났다.
“건곤일척이라.”
내 눈길은 자연스레 기술로 옮겨갔다.
과연.
4차 기술은 무엇일지.
‘천강’도 꽤 만족스럽게 애용하고 있는 터라, 아니 실상 한계 돌파로 배우는 기술들은 대체적으로 마음에 들었기에 기대가 안 되려야 안될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기술 : 건곤일척》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근력’이 「4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발동 시 ‘전력(全力)’ 상태가 활성화되며, 순간적으로 당신의 근력이 300% 증가합니다. 증가한 근력은 다음 공격 1회에 영향을 끼치나, 무리하게 힘을 쓴 대가로 사흘간 ‘근력’이 최대치의 10%로 하락합니다. 재사용하기 위해서는 하락한 ‘근력’이 정상적으로 돌아와야 하며, 기술 ‘천강’과의 동시 사용이 제한됩니다.
“천강의 진화 판이군.”
새롭게 익힌 ‘건곤일척’은 ‘천강’을 훨씬 극단적으로 바꿔놓은 형태였다.
3배의 증폭률을 가진 반면 10%까지 하락하는 부분이라던가.
“다음 공격 1회?”
그래도 1분은 유지되었던 ‘천강’과 달리 ‘건곤일척’은 오로지 한 방에 집중된 단타성이라던가.
앞으로 활용함에 있어 적잖은 주의를 요구할 듯싶었다.
“오빠―――!”
“끼에에에에엑!!”
잠시 상념을 정리하는 동안.
반대편을 소탕한 신지유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함인지 나이트급 템페스타 한 마리를 산채로 끌고 왔다.
양 날개를 얼리고 발은 바위로 속박.
상단은 풍압으로 내리눌러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는 옴짝달싹조차 하지 못하게 해둬 목만 비틀면 되는 아주 깔끔한 상태였다.
“나이트급 중에서는 제일 커다란 녀석으로 붙잡아왔어요.”
“고생했어.”
“아니에요. 제가 주위 망보고 있을 테니, 얼른 이식하세요.”
“그래. 부탁할게.”
“네!”
나는 신지유가 가져온 템페스타의 머리를 비틀어 죽음을 선사한 뒤.
근처 건물로 들어가 눈알에 손을 가져다 댔다.
[프레데터의 상위 진화론]
우우우우우웅―
[‘기술 : 프레데터의 상위 진화론’을 발동합니다.]
[진화에 사용될 제물이 존재합니다.]
[당신이 이룩할 진화 과정을 선택해 주십시오.]
“흡수 이식.”
[「흡수 이식」을 선택하셨습니다. ]
[흡수할 신체 부위를 선택해 주십시오.]
“눈.”
[대상 「템페스타 : 2등급」의 ‘안구’를 선택하셨습니다.]
[진화를 시작합니다.]
[‘신체 최적화’가 자동 진행됩니다.]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십시오.]
우드드득―
나지막한 읊조림을 발판 삼아 기존의 안구와 괴물의 안구가 세포 단위로 으깨졌다가 하나로 뒤엉켜 다시금 창조되는 진화의 과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번쩍!
[축하합니다!]
[「템페스타 : 2등급」의 ‘안구’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대상 「템페스타 : 2등급」이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인간성」 15%를 소모합니다.]
곧 통증이 소멸하며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허공을 수놓았다.
나는 다른 것보다 시력부터 체크했다.
“음… 비슷한가?”
템페스타의 우안은, 사람에 비해 약 3배쯤 뛰어난 이나고르트의 좌안과 거의 동등한 성능을 자랑했다.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듯하기는 한데.
그거야 평범했던 시절에도 겪었던 간극이라, 지내다 보면 점차 익숙해지리라.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기억 포식’에 돌입했다.
[축하합니다!]
[이식된 「템페스타의 안구」에 남아 있던 기억 속에서 ‘특별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기술 : 템페스타의 풍류 즐기기」를 습득합니다.]
[기술 ‘흐름 타기’가 기술 ‘템페스타의 풍류 즐기기’에 통합됩니다.]
[앞으로 7일간 「기억」 포식이 제한됩니다.]
[앞으로 50일간 종족 「템페스타」를 상대로 ‘기억 포식’이 제한됩니다.]
《기술 : 템페스타의 풍류 즐기기》
- 등급 : 원본(原本)
- 단계 : 1/5
- 설명 : 행성 ‘튀폰(typhon)’의 지배종 「템페스타」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다. 어떤 거센 바람이 불어닥쳐도 안정적인 비행을 보여주는 그들은 사실 바람을 가르지 않는다. 그저 바람에 몸을 실을 뿐이다. 당신도 그 흐름에 몸을 기댈 수 있다면 어떤 거친 태풍이 몰아쳐도 도리어 당신의 ‘속도’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 ‘환경’과 바람의 세기에 따라 최소 6%에서 최대 11%의 이동 속도 보너스를 얻으며, 역풍을 맞아도 이동 속도가 마이너스 되지 않는다.
“흠.”
템페스타에게서 가져온 기술은 시전자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시 발동형, 이른바 패시브였다.
이렇게 되면 단계 올리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뇌에 구멍이 뚫린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잊어버린다고 해도 상관없었으니까.
기껍게 주억거린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아, 끝나셨어요?”
수거한 근원석을 주머니에 넣으며 나오니 드라이어드와 장난을 치며 놀고 있던 신지유가 목제 의자를 땅에 묻으며 내게 다가왔다.
우린 근방을 돌며 전흔을 깨끗하게 지우고서 임시 거점으로 복귀했다.
옥상을 통해 돌아와 보니.
한세정들은 한창 훈련 중인 듯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해서.
나는 신지유에게도 자유 시간을 주고 홀로 옥상에 남아 지상을 굽어보며 템페스타의 우안에 적응하는데 몰두했다.
[순간 회귀 : 템페스타의 우안]
[순간 회귀 : 이나고르트의 좌안]
우우우우우웅!
“음… 서로 이게 다르네.”
여러 방면에서 시험해본 결과.
템페스타는 바람의 결을 읽는데 능하고, 이나고르트의 좌안은 전류의 순환을 읽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둘 다 크게 유용한 특징들은 아니었기에 이쪽으로 ‘순간 회귀’를 쓸 일은 많이 없을 것으로 사료됐다.
똑똑―
“오빠! 저 세정이에요! 저녁 드세요!”
“아, 금방 갈게.”
“네!”
검증을 마칠 때쯤 타이밍 좋게 날 부르는 한세정.
경계 차 인근을 싹 둘러보고 아래로 내려가니 모닥불에 불판을 놓고 스랄레로 고기를 굽는 중이었다.
내부를 진동시키는 잘 익은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 * *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7일 7시간 59분 59초]
배를 든든히 채운 늦은 밤.
자정이 되어가는 시각에 우린 짐을 챙겨 하늘길에 발을 디뎠다.
눈이 오려는지 구름이 잔뜩 끼어 달빛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이 야심한 시간, 어두컴컴한 세상을 가르며 나아가는 목적지는 빛의 기둥.
「깃발의 무덤」으로 향하는 문이 설치된 장소였다.
굳이 이 야밤에 움직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신(新) 한국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하여.
이회건이라면 모를까.
그 외의 인물과는 쓸데없이 부딪치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늦은 밤을 골라 이동하기로 말을 맞췄다.
“숫자가 늘었네요?”
“그러게.”
쭉 날아가다 보니.
조이령의 말대로 어느새 네다섯 개의 빛의 기둥이 천치를 잇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말인즉슨.
한 곳으로만 입장하는 ‘단독 입장형’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한꺼번에 입장할 수 있는 ‘동시 입장형’ 구조라는 의미였다.
우리는 개중 가장 인접한 기둥으로 경로를 정했다.
최초의 기둥이 세워진 곳.
〈던전 : 수호자의 성지〉였다.
“어? 결계가 없어졌네요?”
그저께까지만 해도 결계가 둘러싸인 탓에 평범한 이들에겐 폐허로 비치던 그곳은 선두에 있던 신지유의 말처럼 풍경이 온전하게 드러나 있었다.
파트로누스도 사냥당했거니와.
빛의 기둥이 우뚝 솟아 있는 만큼 이제는 숨길 까닭도, 숨길 방법도 없었기에 아예 개방시켜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지운아, 어때?”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일단은 레이더엔 아무것도 안 잡히네요.”
“그래?”
“다시 한번만 살펴볼게요! 지유 누나! 나 좀 저쪽으로 데려가 줘!”
“잠시만, 흔들바람!”
신속한 비행으로 20여 분 만에 근처에 다다른 우린 몇 번이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분쟁 소지가 될 만한 것들을 점검한 후.
안전이 확보되고 나서야 천천히 지면으로 하강했다.
탁―
다행스럽게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매우 조용한 일대.
혹시나.
신(新) 한국 정부 측에서 여길 꽉 틀어막고 있으면 어쩌나 우려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걱정은 접어도 될 고요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 감각 망을 쫙 전개하며 앞장서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서서히 가까워질수록 점점 확대되는 빛의 기둥에선 눈동자가 멀 정도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중이었다.
마치.
고정된 벼락과 대면하고 있는 듯하달까.
고오오오오오――――
그 강렬한 광휘의 중심에서 주둥이를 쩍 벌린 채로 우릴 기다리는 균열을 볼 수 있었다.
저 안에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퀸급 이상…….
흔히 ‘킹급’으로 추정했던 괴물들의 왕이 저기 있을까? 아니면, 「깃발의 무덤」이란 이명답게 온갖 깃발들로 가득할까?
어서 들어오라는 양.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물결치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도를 보며 적잖은 긴장감이 슬금슬금 올라와 온몸을 옭아맨다.
“스읍, 후…….”
나는 길게 호흡을 내쉬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서 오른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착―
내 왼팔을 붙잡는 한세정.
말리려는 의도라기보단, 나름의 결속이었다.
혹여라도.
균열 안으로 진입했을 때 뿔뿔이 흩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서로 손을 맞잡는 것이다.
강제로 떼어놓는다면 별수 없겠지만.
하여간.
여섯 명이 모두 한 덩어리로 딱 뭉치자.
나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시선을 맞댄 후에 전부 준비됐다는 무언의 대화를 나누곤 균열로 팔을 쑥 집어넣었다.
그러자.
푸우우우욱!
[〈이면 세계 : 깃발의 무덤〉으로 향하는 통로에 닿았습니다.]
[자격 ‘원정대장’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원정단 구성원 : 원정대장 1인 - 원정대원 5인]
[지금 입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연거푸 출력되는 메시지.
그리고는.
[〈이면 세계 : 깃발의 무덤〉으로 입장합니다.]
짤막한 마지막 한 마디를 끝으로.
우우우우우우우웅!!
파앗―
시야가 한순간에 헝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