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격전 중에 발생한 환자들 사이에서도 특히 시급한 치료를 요구하는 중경상 이상의 환자 케어를 위해 ‘던전 : 수호자의 성지’ 내부 끄트머리에 세워진 천막.
“응급! 응급입니다! 오른팔이…….”
“상처 회복은 끝났습니다. 저쪽으로 가셔서 나머지…….”
“거즈 가져와! 거즈!”
백의 부대 소속 의무병들이 숨 가쁘게 병상을 오가며 끊임없이 실려 오는 병사들을 치유하는 와중.
스르르릉―
착!
스르르릉―
착!
버릇처럼 엄지손가락으로 칼날을 꺼냈다가 다시 넣으며 발검(拔劍)과 납검(納劍)을 반복하던 김한수는.
“김 대장, 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사 가운을 걸친 백의 부대 대장 최유걸의 확언에 검집을 내려놓고 깔끔하게 재생된 환부를 잠시 어루만졌다.
약 30여 분 전.
파트로누스의 호신갑을 깨부수고자 접근했다가 반격당하며 속된 말로 아작 났던 어깨.
살갗이 찢어지고 근육이 파열되는 등.
현대였다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을 부상이었거늘.
훅―
훅―
“완벽히 복구됐군요.”
“제가 누굽니까. 최유걸입니다. 최유걸. 서울대병원 에이스 최유걸! 죽지만 않으면 다 살려놓습니다. 하하하하!”
자존감이 극도로 높은 것만 빼면 능력은 확실한 최유걸이 호언장담했듯이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딱히 후유증도 없다.
당장 격렬한 활동을 해도 무방한 완전 복원.
철컥!
“바로 가십니까?”
“가야지요.”
“그래도 조금 쉬시는 게…….”
몇 번 팔을 돌려보며 만족스럽게 주억거린 김한수는 최유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칼자루를 쥐며 몸을 일으켰다.
권력의 중추에 선 대다수의 시야는 대체로 하늘에 고정되어있다.
권좌가 주는 재미, 권세가 주는 즐거움에 매몰되며 점점 더 높은 곳으로 기울기 때문이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기억 못 한다는 격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허나.
결과적으로 성공하는 권력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위보단 아래에 시선을 둔다.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탑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진리를 뼈에 새긴 이들이었으니까.
김한수가 그랬다.
“가보겠습니다.”
병사가 살아야 장군이 살고, 장군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그에게는 이 단순한 이치를 결코 잊지 않았다.
“음… 뭐, 알겠습니다.”
최유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든 말든.
벗어두었던 장비를 재착용한 김한수는 애병을 허리춤에 차고서 미련없이…….
콰아아앙―――!
“그어어어어어!!”
“……?!”
막 한 발자국을 떼던 차에 울려 퍼진 갑작스러운 폭음과 파트로누스의 고통에 물든 하울링.
더불어.
“…장! 대장님! ”
허겁지겁 달려오는 충령 부대의 부대장 이지형.
양일간 치러진 끊임없는 투쟁으로 피곤함에 절어있는 얼굴이었으나, 두 눈만은 밝게 빛나고 있는 그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김한수를 불렀다.
이유는 한 가지.
“갑옷이 파괴됐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파트로누스의 호신갑을 깨트렸다는 소식을, 지금부터는 당신의 무대가 준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전날 하루 종일에 더하여 금일까지.
고작 괴물 한 마리를 사냥하고자 수백 명의 인원이 도합 20시간을 넘게 투자하고 나서야 이뤄낸 성과에 김한수의 동공에 불이 켜졌다.
언뜻.
먼저 간 부하들의 면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가자.”
“예!”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 김한수는 이지형을 대동하고서 걸음을 크게 내디뎠다.
500m, 400m, 300m…….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물러나라!”
“어서 물러나!!”
“꾸물대가 휘말리지 말고 빨리빨리 빠지라고!!”
뛰어가는 두 사람의 옆으로 충령 부대원들을 비롯한 왕실군 병사들이 빠르게 뒤쪽으로 비켜서며 활약할 길을 만들어준다.
뻥 뚫린 대로.
김한수는 거침없이 땅을 박차고 도약하며 ‘체질 : 검강지체’를 받아들이며 비약적으로 상승한 검술의 극한을 선보이고자 체내의 마력을 검신으로 밀어 넣었다.
그에 발맞춰.
“대장!”
“부탁한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손바닥을 모아 발판을 띄워 주는 이지형.
탁!
꾸우우우우욱―――!
“으으으으으읏차!”
콰앙!
마치 잡아당겼던 고무줄을 놓아 돌멩이를 발사하는 새총을 따라 하듯 팔에 실렸던 무게를 거칠게 밀어내 김한수의 육신을 날려 보낸다.
100m, 75m, 50m……!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간격.
꽈아아아아악!!
“후읍!”
강한 기합을 내지르며 비틀어져 있던 허리의 원심력에 활용해 외우는 주문.
[오리지널 기술 : 본국검 극의]
[용오름]
그 고결한 기예가 펼쳐지…려는 시점에.
휘우우우웅――――――!
“……!”
지상에서 불어닥친 강풍이 김한수를 반대 방향으로 밀쳐냈다.
느닷없는 변수에 당혹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버텨보려 애썼으나, 날개 없는 인간은 공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었다.
“이, 이런!”
악다구니를 쓴다 한들.
휘우우우욱!
휘우욱!
세차게 이는 풍압에 이지형이 보태주었던 추진력이 꺾였고, 끈 떨어진 연마냥 추락하는 신세로 전락해야 했다.
신(神)도 무심하시지.
하필이면 왜.
괴물의 목을 벨 절호의 기회 앞에서 나의 희망을 꺾어버리는 건가.
“제, 엔…장!”
낙하하는 김한수의 입매를 타고 분노를 머금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대지로 곤두박질치던 찰나였다.
사삿―
사사사삿―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자신과는 달리 역풍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며 창공으로 솟아오르는 세 가닥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은.
펄럭이는 장포를 두른 남자와 철갑으로 뒤덮인 여인, 경장 차림으로 보이되 모난 구석 없는 소년이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셋은…….
하강하는 김한수를 그대로 비껴가며 검푸른 광휘로 휘감긴 주먹과, 서슬 퍼런 예기(銳氣)가 흘러넘치는 창칼을 뻗어냈다. 그 윗자락에는 초고온의 열기를 뿜어내는 화살도 함께였다.
보자마자 단박에 눈치챘다.
저들의 공세가 절대 평범치 않다는 걸.
‘…아아!!’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오리지널 기술’을 발현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그 감상평은.
슈우우우우우우우욱!!
현실이 되었다.
콰아아아아앙――――――――!!
이 현장에서 김한수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제발!’
[-베기]
철컥―
슈화하하하학!!
희망을 끌어안은 채로 참격을 휘둘러 보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 * *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최고의 패를 꺼낼 최선의 타이밍이 도래하기를.
그 시기를 어떻게 아는가.
투입한 근원석을 통해 해당 종(種)의 정보를 알아내는 ‘정보 교환기’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현재는 그게 불가능했기에 순전히 육감에 의존했고.
이후.
파트로누스의 갑주가 산산조각이 나 비산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나는 직감했다.
고대하던 순간이 당도했음을.
반응은 빨랐다.
“…지금!”
감지와 지시가 일시에 내려졌고.
“네!”
“아자!”
“천공의 문.”
이에 호응한 조이령과 신지유, 신지운이 보유한 최강의 한방을 가감 없이 발산하며 황금 거인 파트로누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첫 순서는 신지유였다.
[오리지널 기술 : 천공의 문]
[「대상 : 청염」이 선택되었습니다.]
[기술 등급 및 단계 : 원본(原本)―3/5]
[‘등급’과 ‘단계’에 비례하여 〈대차원 : 환계〉에서 「대상 : 청염」이 추가 소환됩니다.]
나지막하게 속삭인 소녀의 손 위로 소환되는 활과 화살.
총합 서른 개체의 청염이 모여 탄생한 궁시(弓矢)를 쥔 신지유는 전설 속 여전사 아마조네스를 연상케 하는 형상으로 서서
끼이이이이이이익!
투우웅―――!
잡아당겼던 시위를 가볍게 놓았다.
흡사.
방금 전 활을 쏘던 여인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물론 그 여파는 확연하게 달랐다.
끽해야 몇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었던 편전과 다르게.
“뭐, 뭐야 저건……!”
“불화살?”
“미친! 저만한 불화살이 있을 리가!”
족히 3m에 이르는 화전(火箭)은, 관심이란 관심은 죄다 끌며 직선의 불길을 그려냈으니까.
“후….”
신지유는 그 커다란 이적을 구현시킨 대가로 소모된 마력에 깊은 탈력감을 느끼며 전방을 주시했다.
정해진 공격 임무를 수행했으니.
자연스레 역할을 바꿔 한세정, 곽재우와 같이 방어 라인 구축에 힘쓰고자 함이었는데.
“…지유야 저기!!”
그런 신지유를 급히 부른 한세정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길고 고운 손가락 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선.
“대장!”
“부탁한다!”
안면을 익혀둔 충령 부대의 대장 김한수가 부하를 밟고 점프하고 있었다.
“……!”
신지유의 표정에 급박함이 서렸다.
우우우우웅!!
김한수의 칼에 응축된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저대로 놔두었다간 아윤이 노리는 업적 달성에 문제 될 수도 있을 만큼.
저지해야 했다.
“흔들바람!”
순식간에 끄집어낸 마력이 폭풍을 빚어낸다.
그 격풍에 겨우 20m 남짓 남겨두었던 김한수의 몸뚱어리가 뒤집히는 게 보였다.
됐다.
“나이스!”
“하아.”
한세정과 신지유는 한시름 놓았다는 기색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한수는 자세가 망가졌음에도 기어이 칼을 뽑아 들고 있었으나. 무너진 상태로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터.
더군다나.
아윤, 조이령, 신지운 삼인방이었다.
[오리지널 기술 :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오리지널 기술 : 절대 일도양단]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일격 태세]
저 셋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욱―
콰아아아아앙―――!!
* * *
쿠구구구구궁―
쿠웅!
쓰러진다.
장장 10m 크기의 체구를 자랑하는 거인이 굳건함을 잊고 고꾸라졌다.
세상을 애워싸버린 먼지 구름으로 인해 형체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으나, 햇빛에 반사되어 살짝 살짝씩 비춰지는 실루엣을 보건데.
양팔이 없고, 한쪽 다리도 온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쿠우웅!
지면과 충돌한 상체에 무조건 붙어있어야 할 머리가 없었다.
“죽였, 다…….”
누군가 중얼거린 대로.
영원토록 건재할 것만 같았던 수호자 파트로누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자그마한 꿈틀거림조차 보이지 않는 괴물의 시신.
이에.
충령 부대를 필두로 신(新) 한국 정부군 병사들의 눈길이 절로 김한수에게 모여들었다. 본 결전의 화룡점정을 수놓기로 기약했던 사람이니 당연한 수순.
그러한 이유로 수백 쌍의 한데 쏠렸으나.
“…….”
스윽―
정작 그 주인공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세워진 적벽(赤壁)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일단의 무리를.
김한수는 남녀가 썩인 신원 미상의 여섯 명을 지켜보며 이리 말했다.
아니.
이리 외쳤다.
“…아.”
“예?”
“…어서 쫓으라고!!!! 당자아아아앙!!”
절대로.
저들을 놓치지 말라고.
그 처절한 엄포가 일대를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