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 OPEN 】
본디 「결계(結界)」라 함은.
일정 구역을 외력으로부터 차단, 격리하여 무언가 일함에 있어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간접을 차단하는 벽을 말한다.
이것이 추후 ‘기술화’되고 ‘고유 능력화’되면서.
마력 혹은 신력(神力)이나 마기(魔氣) 등 제3의 기운과 맞물려 종래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상대의 감각을 뒤틀어, 설령 육감의 영역에 발을 디딘 초인일지라도 결계가 설정된 공간을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막아버리는 형식으로 변모했다.
간혹.
단절과 분리의 특징을 이용해 반대로 결계 안의 대상을 내부에서 외부로 빠져나지 못하게 하는 역전 형태도 개발되었으나.
기본 골자는 전자에 속한다.
허면 이 신묘한 장벽은 어떻게 감지해낼 수 있을까.
특수한 장비, 특별한 능력 등 이제껏 다양한 방법이 고안되었지만… 개중 모두에게 추천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공기의 흐름’을 캐치하는 것.
〈차원 : 테라〉.
즉.
지구의 생물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곧 ‘산소’인 탓이었다.
따라서.
고립의 목적을 자살에 두지 않고서야 내외의 대기는 반드시 이어지기 마련이고, 그 기류를 찾아내려 노력한다면 결계의 유무는…….(중략)
- ‘결계란 무엇인가’ 中 일부 발췌
* * *
던전에 입장했음을 인지한 직후.
허공이 슬그머니 꿀렁이며 짤막한 홀로그램 화면이 펼쳐졌다.
[〈던전〉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칭호 : 점령하는 자’가 발동합니다.]
[현재 〈던전 : 수호자의 성지〉에 존재하는 적의 숫자가 표시됩니다.]
[??? : 1]
[??? : 692]
[총합 : 693]
그런데.
평상시에 자주 보던 형태와 많이 다르다.
‘물음표?’
원래였다면 등급이 표기되어야 할 칸이 전부 물음표로 채워져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강 해석이 됐다.
아마도 첫 단락이 파트로누스라는 저 황금 거인일 테고, 두 번째 단락은 파트로누스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충령 부대 및 인간들을 지칭하는 거겠지.
이리 확신한 근거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본래 ‘칭호 : 점령하는 자’가… 외계 생명체를 포함하며 던전 내의 ‘적’이 몇인지 카운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칭호 : 점령하는 자》
- 일시적일지언정 무려 〈던전〉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적을 처치하고 ‘거점’마저 점령한 자에게 부여되는 칭호. 앞으로 〈던전〉 입장 시 내부 한정 적의 수와 등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시
내가 저들을 한세정들과 같은 ‘아군’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화면에서도 삭제 처리되리라.
‘확률은 극히 낮겠지만.’
입 안에 머금은 혼잣말을 대강 뱉어낸 나는 「692」란 숫자를 되뇌며 우선은 엄폐물 뒤에 숨은 채로 어찌해야 할지를 빠르게 고민해나갔다.
수호자(守護者)라는 이명을 가진 괴물답게 방어력이 어마무시한 듯.
파트로누스는 쏟아지는 집중포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건재함을 보였으나,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사고가 터지기 전에 진퇴를 판단해 움직여야 했다.
어물쩍거리다 저쪽에서 우리가 침입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우리의 행보가 결정될지도 몰랐으니.
“흐음…….”
뭐가 좋을까.
일전에 〈축제의 땅 : 심층부〉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곳도 ‘기여도 시스템’이 존재하는 독특한 던전이다.
고로.
소위 막타로 불리는 마지막 타격자는 물론 관여 정도에 따라 혜택이 주어지는 형식이니, 꼭 단독 처치를 노리지 않더라도 된다.
다만 걸리는 게 있으니.
‘업적 : 유일한 참수자’를 이룩할 경우 추가로 뭔가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설명 창에서 몇 번이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는 부분을 언급한 걸로 보아 엄청난 보상이 지급될 게 분명했으니까.
어쩌면.
“기적의 조각을 줄지도 모르지.”
그저 추측에 불과하나 가망 없는 망상이라 단정 짓긴 어렵다.
만일.
정말 만에 하나라도 전리품이 ‘기적의 조각’이었는데 그걸 놓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끼어들어야겠어.”
결국.
고심 끝에 나는 난입을 선택했다.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혹시’라는 일말의 여지로 인해 도저히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이 결단으로 설사 충령 부대와 부딪힐지언정 가야만 한다. 설사 전 세계가 내게 창칼을 겨눈다 한들 좋았다.
누나에게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갈 수만 있다면.
“파트로누스의 목을 베야겠어.”
나는 확고하게 정한 심정을 한세정들에게 전했다.
늘 그러했듯이.
“쫓기게 될 거야. 여차하면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가능하면 빠졌으면 해.”
이들에게는 자제할 것을 당부하며.
개인의 욕심에 타인을 끌려들어서는 안 된다.
선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오빠 혼자 보내요.”
“그러게.”
“형님이 가신다면 전 지옥이라도 따라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희도…….”
“저희도 당연히!”
“…가야죠.”
그러거나 말거나.
응답자들의 답변은 이전과 똑같았지만 말이다.
* * *
“그워어어어어어어어――――!!”
콰아앙앙!
콰과광!!
두 손을 맞잡은 채 지상을 찍어누르는 거인의 공격에 처참히 부서지는 지반.
그와 동시에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황금빛 파도가 사방을 집어삼킨다.
“끄아아아아악!!”
“커허헉!”
“마, 막아야……!”
대미지가 상당한지 도처에서 들끓는 비명.
하지만.
“피해! 5열 진입! 6열 부상자 이송! 7열 대기!”
“진이이이입!”
“백의 부대 3열 4열 교체!”
“7열 대기이이이!!”
피해와 죽음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듯.
지휘관의 명령은 여전히 돌진으로 가득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우린 이 자리에 사람들의 정체가 충령 부대 외에도 부상자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백의 부대’, 버퍼와 디버퍼들이 모인 ‘천지 부대’, 저격수들로 이루어진 ‘주몽 부대’가 함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율은 대략 전체를 10으로 두었을 때 5:3:1:1?
정보의 은폐를 위하여 균형이 맞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의 전략은 단순해.”
나는 700대 1의 투쟁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동자에 담으며 한세정들에게 계획을 얘기했다.
실상 계획이라 하기도 뭐했다.
오로지 일격.
어설픈 참전은 안 하느니만 못하리니.
이러다 정부 측에 발각되어 상황이 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타이밍을 재고 또 재서 파트로누스의 생명이 경각에 달하는 시점에 뛰어든다.
“투입 인원은 나와 이령이, 지유, 지운이. 이렇게 넷.”
“저랑 재우 씨는요?”
“둘은 우리가 파트로누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경계 및 공격 시도 후 정부 측의 이목이 우리에게 쏠렸을 때 저지선을 구축한다. 독이 가미된 장벽이라면 저쪽도 함부로 날뛰지는 못할 테니, 그 틈에 이곳을 빠져나간다.”
“아아, 넵!”
“알겠습니다.”
전술명 일격필살(一擊必殺)을 숙지한 일행들이 조심스럽게 각자의 포지션에 어울리는 위치로 이동하더니, 이내 숨소리조차 쉬이 흘리지 않으며 파트로누스의 상태를 읽어내는데 몰두했다.
육체에 새겨진 상처의 개수, 다리가 휘청거리거나 호흡이 거칠어지진 않았는지. 뿜어내는 마력 파장은 한결같은가.
눈에 잡히는 것부터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까지 모든 사항을 초 단위로 재검증하며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신호가 떨어지는 즉시 창칼을 뽑아들 수 있게끔.
그러던 차였다.
우우우우우우우웅―――!!
“……?!”
우측 멀리에서 거대한 기운의 파동이 느껴졌다.
서둘러 돌아보니.
끼이이이익!!
튀어나온 거석을 밟고 선 20대 중반의 여성이 포니테일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긴 장궁의 시위를 꾹 당기는 게 보였다.
궁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한눈에 봐도 그 자세가 굉장히 정갈했다. 신지유도 동의하는 듯 작게나마 감탄사를 내뱉었다.
단지.
‘…나뭇가지?’
특이한 점은 궁현(弓弦)에 걸린 화살에는 촉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나고르트의 좌안.
심지어.
[감각 증폭 : 시력]
파아아앗!
강화된 시력으로 보아도 뾰족함이라고는 없었다.
‘특수 아이템이라도 되는 건가?’
점차 극대화되는 의문에 의아해지던 그때.
“후.”
짧게 기합을 토해낸 여인이 팽팽하던 활시위를 놓았다.
투웅――
위력적인 소음을 동반하며 출렁이는 백색 현.
헌데
기이하게도 나뭇가지로 추정했던 물체는 손에 남아 있었다. 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애초에 쏠 생각이 없던 걸까.
보통 사람이었다면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으나.
“아.”
나는 보았다.
후욱―――!
창공을 가르며 뻗어 나가는 별을.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며 솟구친 직선의 유성이 정확하게 파트로누스의 심장을 물어뜯는 모습을.
이른바.
「편전(片箭)」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워어어어어어어어!!”
쪼개진다.
상체를 중심으로 파트로누스의 전신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쩌저적!
갑옷이었다.
거인의 육체를 보호해주던 황금색 호신갑이 요란하게 울부짖으며 서서히 박살 나는 중이었다.
[고유 능력 : 주몽의 핏줄]
[오리지널 기술 : 태양을 꿰뚫는 화살]
우우우우우우우웅!!
파아앙―――!
본인이 가진 최고이자 최선의 한 수를 털어 넣어 쏘아 보낸 화살.
슈우우욱!
콰아앙!
콰과과광!
“그워어어어어어어!!”
쩌저저저적!
쩌쩌적!
“드디어 깨졌네.”
그 전력을 다한 사격을 마친 전 양궁 국가대표이자 현 신(新) 한국 왕실군 휘하 ‘주몽 부대’의 대장 이연화는 괴로워하는 거인을 응시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어제 아침 던전에 당도하여 파트로누스라는 괴물과 결전을 개시하길 어언 이틀 차, 그간 발현한 오리지널 기술만 횟수로 다섯 번. 마력통이 바닥을 드러낼 만큼 시위를 당겨댔단 의미였다.
그뿐인가?
신(新) 한국 제일검이란 재미난 별명을 가지신 충령 부대의 김한수 대장도 네 번인가 검을 뽑으셨다.
사상자들을 살리고자 백의 부대의 대장께서도 지팡이를 세 번이나 휘두르셨지.
다시 말해.
이 전투에만 오리지널 기술이 무려 열두 차례나 쓰였단 뜻이다. 이만하면 퀸급 개체 네댓 마리도 너끈히 사냥할 수준이었다.
“그만한 노력을 하고서도 겨우 갑옷 파괴라니… 어이가 없네.”
참.
이연화는 파트로누스라는 거인의 방어 능력에 혀를 내두르며 활을 내려놓았다.
우리를 애먹게 했던 최악의 요인인 갑주가 소멸하고 있으니, 이제 김한수 대장의 시간이다. 사전에 ‘유일한 참수자’의 업적은 그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아깝지만, 그래도 김한수 대장이라면…….
타다닷―――!
“음?”
잠깐 잡념에 빠져있던 이연화의 귓가로 후방 어디에선가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심히 미세했으나, 3차 한계를 돌파한 ‘감각’ 스탯은 이를 완벽하게 감지해냈고, 그녀는 이 묘한 노이즈를 쫓아 시선을 옮겼다.
별 의도는 없었다.
그저 모두가 합심하는 이 시각에 누가 뒤에서 놀고 있나 궁금했을 따름이었다.
예컨대 순수한 호기심.
그리고 그곳엔.
“…빛?”
강렬한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