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키메라의 기억법-209화 (208/232)

209화

“그러니까 말이죠. 제가 수업이 끝나고 나면 점심 즈음부터 백의 부대에 들러 부상자분들을 치료하는데, 팔을 다치셨던 분께서 그러셨어요…….”

“그게.”

“이 아저씨가 던전에서 대단한 걸 발견했단다, 어떤 마크인데, 자세히는 말해줄 수 없지만, 조만간 대단한 포상을 받게 되면 뭐라도 사줄 테니 공부 열심히 하거라… 라고. ”

“아아…….”

과거를 되짚어가는 유신이의 설명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일절 예상하지 못한 수확.

물론.

아직 수색대원이 언급한 ‘마크’가 「황금 마크」일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거야 가서 검증해보면 될 터.

애당초.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자체가 ‘종말 이전의 왕’이라는 실마리가 정말 ‘대통령’이라는 직책과 관련이 있을까를 확인해보고자 함이었다.

우리로서는 그저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였다.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럼 아까 나간 사람들도 그거 때문일까요?”

한세정이 묘하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사람들?

아.

“충령 부대라고 했던가.”

“네. 제일 강한 부대라는데, 그런 사람들이 쉽게 움직이진 않을 거 같아서요.”

“일리 있는 소리야.”

“그죠?”

“지유야.”

나는 매우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는 한세정에게 주억거리며 신지유를 돌아봤다.

어색한 친척 집에 놀러 온 조카들마냥.

재회에 방해되지 않게 방 가장자리에 앉아 신지운하고만 두런두런 담소 중이던 소녀는 갑작스러운 부름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신지유를 찾은 연유는.

“흔들바람이나 땅지기로 추적할 수 있겠어?”

충령 부대의 이동 경로를 쫓기 위해서였다.

“음… 시간이 꽤 오래 지나서 한 번 해봐야 알 것 같아요.”

“가서 시도해보자.”

“네, 오빠.”

되도 좋고, 안 되도 크게 상관은 없다.

빠져나간 방향을 보았으니 그 위주로 뒤지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단지.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좋아. 그럼 가봐야겠다.”

“바로 가시게요?”

“너도 쉬어야지. 새로 얻은 것들에 대해서도 적응 연습 좀 해야 할 거고.”

신지유와의 대담을 마치고 예정대로 뒷정리하고 방에서 나왔다.

유신이는 약간의 아쉬움을 보였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했다.

“201호, 202호, 203호로 가시면 됩니다.”

“예.”

용케 살아남은 호텔을 개조한 듯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여관방에 짐을 푼 우린 쌓였던 피로를 해소할 겸 명분을 쌓을 겸 하루를 푹 쉬었다.

저녁을 먹고서.

인적이 뜸해지는 밤에 흔들바람과 산지기, 두 소환수를 대동하고 길거리를 떠돌며 충령 부대의 발자취를 조사해보았으나.

“음… 모르겠다네요.”

“그래?”

“네, 죄송해요.”

반나절 가량이 흘러서인가, 괜한 주의를 끌지 않고자 소극적으로 임해서인가 딱히 쓸만한 단서는 포착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행에 기대선 안 될 듯했다.

“이럴 수도 있을 거라고 예견했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

“네.”

터덜터덜 숙소로 귀환하는 길.

듬성듬성 설치된 가로등 아래로 기다란 그림자가 만들어지던 찰나.

나는 문득 떠오른 상념에.

“지유야.”

“네?”

신지유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

“여기서 살고 싶지는 않아?”

신지유와 신지운.

둘 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녀석들이지만, 막말로 진짜 어른인 건 아니었다.

세상이 멀쩡했더라면 한창 어리광 부리며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나이대였다.

그러므로.

이 남매를 전쟁터에 끌고 가 괴물들과 피범벅이 되도록 싸우게 할 게 아니라, 유신이처럼 되도록 안전한 지역에서 또래 친구들과 뛰놀게 놓아주는 게 어떨까 싶었다.

놓아준다기보단 도와줘야 한다고 해야 맞으려나.

여하간.

시체와 죽음이 난무하는…….

“안 그래도… 지운이에게 물어봤었어요.”

“그래?”

“네. 유신이 방에서 창밖을 보는데, 축구 하러 가는지 몇몇 애들이 축구공을 들고 가는 게 보였어요. 지운이도 축구를 참 좋아했어요. 학교 다닐 때 점심시간만 되면 친구들이랑 운동장으로 나가고, 월드컵 보러 가면 안 되냐고 떼쓰다 혼나고…….”

“…….”

“지운이도 옛날 생각이 나는지 애들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더라고요. 해서 물어봤어요. 오빠나 언니들에겐 죄송하지만… 지운이 네가 원하면 여기서 살자. 예전같이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이랑 축구도 하면서.”

담담한 척.

그러나 언뜻 슬픔이 묻어나오는 독백에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가만히 들어주었다.

누구보다.

신지유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랬는데, 지운이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지운이가?”

“네. 유신이가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은 자기가 싫다고. 오빠와 언니들께 받은 것은 꼭 갚아주고 나서 친구든 축구든 하고 싶다고.”

음.

신지유로부터 전해 들은 신지운의 진심.

저벅―

저벅―

저벅―

우린 말없이 걸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8일 20시간 25분 10초]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8일 20시간 25분 9초]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8일 20시간 25분 8초]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은 오전.

가방을 챙긴 우린 숙박비를 계산하고 제2 외성 성문으로 발을 내디뎠다.

쓸데없는 의심을 피하고자 일부러 북적거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군중 틈에 섞여 나아가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 이건 환령 부대 부대장님의 직인…….”

노야의 도장이 찍혀있는 터라 검문을 담당하는 외성 수비대원이 우릴 알아보는 헤프닝이 일기도 했지만.

“손자의 소식을 전해드리겠다고 약속해서 말입니다.”

“아하. 오가느라 바쁘시겠습니다.”

“워낙 잘 챙겨주셨던 분이시라.”

“그렇군요. 자, 되셨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시죠.”

“예. 감사합니다.”

미리 마련해두었던 꽃무늬 편지 봉투를 슬쩍 보여주며 그럴싸한 명분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이는 제3 외성도 마찬가지.

무려 왕실군 소속 환령 부대의 부대장께 복귀하는 중이라는 엄포에 감히 토를 다는 수비대원은 없었다.

종말 이전이나 종말 이후나.

계급에 따른 상하 관계는 강력했다.

문제가 있다면.

“어? ‘도로’는 이쪽입니다만?”

우리가 불안전한 루트를 타려고 하자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이 나타났다는 것인데.

어차피 다시 만날 리 없었기에 대충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모호한 말로 답하곤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렇게 도망치듯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을만한 지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저기부터 둘러보자.”

“넵! 지유야! 지운아!”

“흔들바람, 주변에 인간이 있는지 알려줘. 산지기는 족적을 봐주고.”

“광역 탐색.”

우우우우웅!

본격적으로 충령 부대 추격을 개시했다.

하늘과 지하.

마력적 레이더와 초인적인 감각.

구석구석.

머리카락 한 올마저 놓치지 않으려 온갖 방식을 총동원해 훑어보는 일대.

“안 보여? 흐으음…….”

“제 레이더에도 괴물들만 걸리네요.”

수색은 쉽지 않았다.

내가 착용 중인 장신구 아이템 ‘눈을 속이는 자’와 같이 추적 방지용 조치를 해놓은 것인지.

샅샅이 훑어보고 있는데도 자그마한 조각 하나 구하기가 어려웠다.

막막한 실정.

허나 어쩌랴.

이럴수록 ‘가능성’은 더욱 커지는바.

“이번엔 남쪽으로 가보자.”

“네엡!”

나는 한세정들을 독려하며 계속해서 일대를 탐사해나갔다.

30분, 1시간, 2시간…….

어느덧 동쪽에서 솟구쳤던 태양이 중천에 걸려 우리를 주시하던 그때.

“…어?”

뒤따라오던 신지유가 불현듯 걸음을 멈추며 당혹성을 토해냈다.

그 느닷없는 행동에.

“음? 누나 왜 그래?”

호위를 겸하며 붙어 있던 신지운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신지유는 뭔가 홀린 양 .

별반 대답 없이 막다른 골목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뭘 하는 걸까.

갑작스러운 이상 행위에 다들 걷다 말고 뒤를 바라보던 순간.

충돌 직전이던 신지유가.

스르르륵―――!

“……!”

그대로 벽을 관통하며 사라져버렸다.

뭐지?

내가 뭘 본거지?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장면에 눈을 껌뻑이는 사이.

스르르륵!

다시금 돌벽을 비집고 나온 신지유가 이렇게 외쳤다.

“여기에요!!”

라고.

우리의 목표가.

“여기였어요!”

저기 있다고.

마치.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달려가던 유명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뚜벅―

뚜벅―

뚜벅―

스르르륵―――!

부서지고 깨져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석벽으로 발을 내밀자

돌멩이가 떨어진 수면 위로 파동이 생기는 것처럼 시야가 일렁거리더니, 한순간에 화면이 바뀐다.

파괴되고 피폐해졌을지언정 현대의 유산이 고사란히 남아있던 시가지에서.

“…아.”

콰아앙앙――――!

쾅――――!!

“3열 교대! 4열! 앞으로!! 5열 대기!”

“교대에에에에!!”

“앞으로로로로!!”

“대기이잇!!”

“빨리빨리 움직여!!!”

“대열 흩트리지 마라!!”

폭음과 굉음.

수백의 인원이 발해내는 함성과 괴성이 어지럽게 뒤엉킨 전장이자.

[축하합니다!]

[〈던전 : 수호자의 성지〉에 입장하셨습니다.]

[해당 공간에서 활동하는 동안 〈던전 전용 퀘스트 : 수호와 돌파〉가 진행됩니다.]

《던전 : 수호자의 성지》

- 이곳은 ‘특수 조건 : ?’에 의해 생성된 특별한 장소입니다. 여타의 던전과 달리 우주의 법칙에 의해 소환된 수호종 「파트로누스」만이 존재합니다. 수호종 「파트로누스」의 존재 이유는 오직 ‘문’을 지키는 것. 그대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수호종 「파트로누스」와 싸워 승리해 보십시오. 그 즉시 〈차원 : 테라〉에서는 최초이자 최후가 될 영광스러운 업적을 쌓게 될 터이니. 전 우주를 떠도는 고고한 별, 그것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던전 입장 시 ‘던전 전용 퀘스트’가 자동 진행됩니다.

└던전 전용 퀘스트 : 수호와 돌파

《던전 전용 퀘스트 : 수호와 돌파》

- 이 퀘스트는 오로지 ‘던전 : 수호자의 성지’에서만 진행 가능합니다. 구전을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하는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와 모든 것을 뚫은 창. 당신은 지금부터 그 이야기 속의 창이 되어 방패 역할을 수행하는 수호종 「파트로누스」와 생사(生死)의 결전을 치르게 됩니다.

일대일, 일대다, 함정과 변칙.

뚫어낼 수만 있다면 무엇을 이용하든 좋습니다. 그저 바라건대, 부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적의 목을 베어 보십시오.

└처치된 「파트로누스」 수 : (0/1)

└현재 기여도 : 0%

└기여도에 따라 보상의 질이 달라집니다.

└‘업적 : 유일한 참수자’ 달성 시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워어어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아앙!!

온몸으로 황금빛 광위를 뿜어내는 거인이 포효하는 땅.

이곳이 바로.

「황금 마크」가 살아 숨 쉬는 숨겨진 세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