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쾅―
강하게 지르밟은 노면.
체내에서 발산된 마력은 단 1초 만에 주변 일대로 쫙 퍼져 나가며 지반을 뒤튼다.
콰앙!
콰과과과광!!
나는 사정없이 뭉개지는 땅의 격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거듭 기운을 토해냈다.
[발톡의 투기]
후욱―
후화하하하학!!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낸 원초적인 기세와 붕괴되는 대지의 권역은 절묘하게 맞물리며,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마냥 옴짝달싹 못하는 상대를 자연스레 토사의 격류 내부로 밀어 넣는다.
보통의 적이었다면 단박에 끝장이 났을 연계기.
문자 그대로.
‘보통의 적’이었다면.
우우우우우웅!!
“흐읍!”
마녀 위성령.
저 여자는 내 투기(鬪氣)의 위압감을 힘들지 않게 파훼하며 솟구치는 거석을 발판 삼아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의 치악력을 가볍게 회피했다.
‘발록의 투기’도 어느덧 4단계.
마스터를 코앞에 두고 있는 터라 어지간한 저항은 처참히 찢어버리고 공포심을 쑤셔 넣었을 터인데.
“위험해, 위험해. 위험하다고!”
위험하다는 표현과 다르게 멀쩡한 모습으로 피해낸 위성령의 식칼들이 십(十)자로 교차하며 전방을 갈랐다.
슈우욱―
일직선상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베어버리며 쇄도하는 두 개의 초승달.
막는 게 좋은가, 피하는 게 좋은가.
‘막고, 멈춰있는 나를 노려 접근하는 위성령을 역으로 친다.’
0.001초 만에 계산을 마친 나는 살짝 틀었던 허리의 원심력에 기대 오른손을 쭉 뻗었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형태 변화 : 마력 권갑화]
우우우웅!!
콰앙!
콰과과과광!!
짙게 이글거리는 검푸른 색의 권격과 그에 대비되는 새빨간 검격의 격돌에, 일순간 공간이 진동하며 비산하는 마력 파편으로 말미암아 참혹하게 갈려 나갔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가 서로의 눈을 가린 찰나.
촤아아악――
“……!”
갑작스레 난입한 칼날 하나가 후방을 점하며 장포에 가려진 척추를 찔러 들어왔다.
또 있다.
푸화학――
‘하반신!’
발목을 잘라 활동력을 봉쇄하고 싶은 모양인지.
지층을 훑으며 근접해온 비수가 하체를 길게 그어간다.
그 외에도.
슈우욱―
투웅!
파바바바박!
우측 대각선, 정수리, 좌측 옆구리 등등등.
열댓 명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듯 사방에서 온갖 공격이 내 육신을 노렸다.
흡사.
방어로 유인하고 카운터펀치를 꽂으려던 내 마음을 엿보고는… 고작 그따위 저급한 수에 당할 것 같으냐고 비웃는 듯 가해지는 파상공세였다.
‘쯧.’
계획을 간파당했다는 사실에 혀를 찬 나는 곧바로 대응책을 준비했다.
[자연 차력 : 대지]
우우우우우웅!!
4대 원소 중 제일 무겁고 단단한 땅의 힘을 빌려 와, 그 특징을 기반으로 사방에 장벽을 구축한다.
[칼리야스의 마력 방패]
쿠우웅!
쿠구구구궁!
가미된 차력의 영향인지 평소와 달리 묵직한 소음을 동반하며 방벽이 생성된 직후.
아슬아슬하게 늦은 수십 차례의 타격이 전신을 휩쓸었다.
서거걱!
콰직―
콰아앙!
베고, 찌르고, 터져 나가는 연격으로 순식간에 박살 나는 저지선.
한 꺼풀 옷을 벗긴 선홍빛 파도는 진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장포 안쪽에 감춰진 살갗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하핫!”
난데없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세가 제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여긴 걸까.
저게 다…….
[순간 회귀 : 스랄레오의 골갑]
[머메른의 갑주]
촤르르르르륵――
최종 방어선에 도달했다는 걸 알지 못하기에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리라.
“죽―”
카앙!
카가가가가각!
“…어?”
매섭게 파고들던 칼날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곧추선다.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당혹스러운 음성.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위성령을 내려보며 짤막하게 주문을 외웠다.
서로 간의 간격이 체 1m도 안 되는 이때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 기예를.
[이나고르트의 뇌광격]
스으윽―
번쩍――!
콰아앙!
“켁, 케헥…….”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채로 답답한 고통을 게워내는 위성령.
최후의 순간.
식칼을 교차로 치켜세워 방패 삼았으나, 체내로 침입한 뇌력은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는지 안면이 한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좋네.”
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위성령을 보며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반격기의 성능이 추후에도 종종 애용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예상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본디 「카운터」란 한 끗의 실수로 살도 주고 뼈도 내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불안한 수단이지만.
내 경우엔 ‘도검불침’과 ‘위력 감소’, ‘호신강기’에 ‘스랄레오의 골갑’과 ‘머메른의 갑주’ 등으로 웬만한 공격력이 아니고서는 흠집도 내지 못하니, 사용하는데 딱히 무서울 게 없었다.
더군다나.
‘이나고르트의 뇌광격’을 반격기로 아껴둬야 하는 이유는, 애초에 그리 설계된 기술이기 까닭이기도 했다.
《기술 : 이나고르트의 뇌광격》
- 등급 : 원본(寫本)
- 단계 : 1/5
- 설명 : 행성 ‘마누비아(Manubia)’의 지배종 「이나고르트」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다. 다음 타격에 ‘속성 : 전류’를 부여하여 강력한 위력을 선사하고, 흩어지는 잔류로 인근 5m에 스플래쉬 대미지를 입힌다. 타격 성공 시 10% 확률로 ‘상태 이상 : 마비’가 적용되며, 1% 확률로 시선 시 발산되는 섬광에 의해 일시적인(최소 3초 ~ 최대 10초) ‘상태 이상 : 시력 봉쇄’가 발동한다. ‘상태 이상 : 시력 봉쇄’의 경우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발동 확률이 상승한다.
실제 섬광탄이 그러하듯.
양측의 간극에 따라 플러스되는 디버프 발생 확률.
그 덕택에.
‘발록의 투기’도 아무렇지 않게 튕겨내던 위성령의 저항력도.
“내 칼! 내 칼……!!”
이번만큼은 제 주인을 보호하지 못했으니까.
[가속]
[풀루스의 돌진]
[그림자 걸음]
툭―
파아앙!
나는 위성령의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동공을 바라보며 일보를 내디뎠다.
최소 3초에서 최대 10초.
평균값이 없는.
개개인마다 적용 시간이 달라지는 탓에 언제 치유될지 모르니, 복구되기 전에 명줄을 끊어버리고자 한달음에 다가가.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형태 변화]
고오오오오오오!!!
지금껏 꼭꼭 숨겨두었던 최강의 기술을 작정하고 털어냈다.
[일격 태세]
후우우우욱―――!
거대해진 주먹 끝에 응축된 마력이 대기를 분쇄하며 위성령의 몸뚱어리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그렇게.
종전 혹은 완료라는 글자와 대면하기 직전이었다.
사아아아악―
극한으로 집약된 마력의 밀도로 인해 급격하게 느려진 듯한 흐름 속에서 느닷없이 ‘희멀건 형체’가 보였다.
‘…음?’
뭐지?
무의식적으로 의문 섞인 물음표를 띄우는 내 앞으로.
사아아아아악!
사아아악!
재차 허연 물체가.
더 정확하게는 수백 개의 물체‘들’이 직선, 대각선, 국선할 거 없이 전방위적으로 뻗어 나가며 반투명한 색상의 막을 형성해갔다.
족히 3m 크기의…
‘고, 치……?’
작품명 「백색 고치」였다.
무려.
슈우우우우우욱―
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오리지널 기술인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의 돌파를 막아서는 어처구니없는 방어벽이었다.
지축이 뒤틀리는 폭발이 일고.
퍼어억!
퍼억!
그 사이에서 치솟은 후폭풍을 이겨내지 못한 나와 위성령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쪽으로 튕겨 날아가 지면에 처박혔다.
“크흡!”
나는 등골을 타고 찌르르하게 퍼지는 통증에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참으며 서둘러 갖가지 회복기를 가동했다.
[회귀]
[부분 복원]
[급속 회복]
우우우우우웅!
[‘회귀’가 발동됩니다.]
[지정된 상처 부위가 없습니다.]
[가장 심각하게 소실된 신체를 기준으로 회귀가 진행됩니다.]
[‘부분 복원’이 발동됩니다.]
[3분간 재생력이 극대화되며, 수지 절단 이하의 상처가 완벽하게 복원됩니다.]
[‘급속 회복’이 발동됩니다.]
[소모된 체력의 10%를 회복합니다.]
연달아 출력되는 메시지들에 맞춰 욱신거리던 육체가 안정화되어간다.
으득―
으드득―
충격파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해 움직일 때마다 약간씩 뼈마디가 삐걱거렸으나, 못 이겨낼 수준은 아니었기에 뭉친 근육을 풀어주며 우뚝 일이 섰다.
그즈음.
“하아, 하… 으으…….”
반대편에서도 꿈틀거림이 포착됐다.
위성령.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붙였다고 여겼던 그녀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강제로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대미지가 아예 없진 않았는지 입술 끄트머리로 핏물이 흐르는 핏물.
그걸 식칼 쥔 손으로 대충 훑어 닦아내고는 내게로 눈길을 고정하는데.
“저쪽도 재생인가…….”
신체 곳곳에 새겨졌던 상흔이 서서히 아물어가는 게 눈에 띄었다.
‘회귀’라던가 ‘부분 복원’은 스탯이 일정 선에 도달하기만 하면 체득되는 제한적 공공재.
고로 한세정보다 윗줄이라면 마땅히 보유하고 있을 터.
즉.
진짜 결전은 이제부터였다.
“…후.”
나는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거칠어졌던 호흡을 다스리며 위성령의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제법 좋은 아이템인 듯.
비루하게 생긴 주제에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식칼.
그리고.
사아아아악!
사아아악!
위성령의 주위를 노니는 회백색의 물결.
“꼭… 귀신같이 생겼군.”
나는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야 허공에 떠다니는 것들의 외형이 공포영화에 등장할 법한 유령과 닮았음을 인지했다.
더하여.
망령들의 손아귀에 칼이나 창 따위의 병장기가 들려있다는 것도.
“아까의 다중 공격도 저것들로 한 거였나.”
필시.
그런 듯했다.
환영이나 분신류의 공격법일 공산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직감 상 전자 쪽에 손이 기울었다.
“공방이 모두 가능한 소환술이라. 게다가 집중 시에는 오리지널 기술의 파괴력으로도 뚫지 못하는…….”
가히 마녀라 불릴만한, 곱씹을수록 무척이나 껄끄러운 능력이다. 그 때문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다시금 전투 태세를 갖춰갔다.
저 성가진 소환체들이 걸리적거리는 해도, 내겐 아직 꺼내지 않은 패들이 가득했다.
가령.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라던가. 다량의 특수 등급 기술이라던가.
스윽―
허리춤에 매어둔 두 종(種)의 ‘심장’이라던가.
위성력 역시 나를 당황시킬 기상천외한 카드들을 소지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감히 단언했다. 그녀가 어떤 변수를 들이밀든 간에 결국에는 내 발아래에 짓누르리고.
그 확신에 찬 자신감을 드러내던 무렵.
“…멈춰라!!!!”
“……?”
“…응?”
저 멀리서 익숙한 듯 낯선 함성이 나와 위성령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최위관?”
신(新) 한국의 동부를 관리하는 대고구려의 성주 ‘최위관’의 일갈이었다.
그가 제 성채를 내버려 두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