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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99화 (198/232)

199화

【 혈귀 】

“재우 씨가 반을 갈라줘. 나머지는 내가 맡을게.”

“알겠습니다.”

한세정의 의견에 곽재우는 옅게 끄덕이며 굽혔던 무릎을 폈다.

그는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제삼자가 이미 치열한 전장에 난입해 적아를 구분 짓지 않고 눈길을 잡아끌려면 화려해야 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력 변형술 : 거신의 철퇴]

부우웅―

쾅!!

3~4m에 달하는 초대형 철퇴의 붕격이 지면을 후려친다.

오로지 ‘화려함’에 초점을 맞춘 타격이었으나.

―――콰과과과과광!

정확하게 양측의 중앙을 부순 일격의 파괴력은 모두를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무렴.

「금강불괴(金剛不壞)」라는 체질을 거머쥔 이였다.

일반인들을 포함해 웬만한 능력자들도 감히 쳐다보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모른체하고 싶어도 모른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뭐, 뭐야…….”

“기습인가?!”

“대장! 대장!”

이 ‘집중’이라는 단어가 늘상 긍정적인 쪽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애당초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쓰며 도망치는 남자를 죽이려 하던 자들이었다.

변수가 한둘쯤 추가된다 한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칼날을 들이밀 각오가 돼 있는 작자들이란 소리였다.

“일단 죽여!”

“예!”

“조져어어!”

거북이마냥 머리를 웅크렸던 것도 잠시.

대번에 이빨을 드러내며 곽재우를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웅!!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 등등등…….

응축되고 형상화되어 비처럼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마력 덩어리. 유성우(流星雨)가 재림하듯 빗발치는 공세에 곽재우는 곧장 방패로 지반을 내리찍으며 응수했다.

예상했던 흐름이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철혈의 술 : 1단계]

[대인방벽]

쿵!

쿠구구구구구궁―

한순간에 솟구쳐오르는 적벽.

핏물을 삼킨 시뻘건 파도는 하늘을 뒤덮으며 전방을 집어삼켰다.

쉬우우욱!

콰아앙!

콰과과과과광!!

전력을 다한 집중포화가 매섭게 대항했으나, 떠들썩한 굉음은 죄다 허울뿐인 요란함.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다.

푸쉬이이이익…….

바람결에 날아가는 먼지구름 너머로 노출된 방벽은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다들, 좀 멈춰보시겠어요?”

곽재우의 뒤편에 서서 소란이 일단락되기를 기다렸던 한세정은 그제야 전면으로 한 걸음 걸어 나오며 추격자들과 도주자를 번갈아 보며 현 위치에 고정할 것을 주문했다.

거절이나 반문은 받지 않았다.

“그게 뭔 개 같은―”

[마력 변형술 : 휘어지는 칼날]

촤아아아악―

서걱!

누군가의 외침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뻗어낸 참격이 기다란 궤적을 그리며 근처 건물 한 채를 송두리째 갈라 버린 까닭이었다.

일명 무력시위.

곽재우가 한 차례, 여기에 한세정이 보인 신위가 합쳐지니.

“―말씀…이신지, 음.”

“대, 대장……?”

“닥쳐, 이 새끼야……!”

“그쪽도 내려와 주시겠어요?”

일대가 잠잠해진다.

침묵.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오빠! 됐어요.”

“고생했어. 둘 다.”

“고생은요.”

“아닙니다.”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 쉬고 있어.”

나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한 한세정과 곽재우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괴마 옆에 시립한 남자에게 먼저 다가갔다.

“…….”

꿀꺽―

긴장이라도 했는지.

침을 삼키며 굳은 낯빛으로 서 있는 그에게 나는 무어라 질문해야 할까 고민하다 거두절미하고 두 가지만 물었다.

“소속이 어딥니까.”

“예?”

“당신의 소속과 쫓기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시죠.”

“어, 어…….”

거창한 통성명 따윈 필요 없는 사이.

그저 궁금증을 해결하고 나면 될 따름이었다.

단지.

그 끝에는.

“이, 이럴 때가 아닙니다! 저놈들은 ‘혈귀’입니다! 피에 미친 새끼들이 고구려를 노리고 있단 말입니다!!”

“혈귀……?”

전혀 예견치 못했던 굉장히 충격적인 소식이 담겨있었다.

「혈귀」.

배용철이 넘겨준, 서울을 주 활동 무대로 삼는 조직 중에서도 특히 조심해야 하는 사이코패스들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니까.

“예!! 그 개자식들이 어떻게 연결벽을 넘어왔는진 모르겠지만!! 제 동료들이 죽었고! 고구려가 위험합니다!! 어서 가서 알려야 합니다!!”

봇물이 터진 듯.

남자는 빨갛게 충혈된 동공으로 분노와 슬픔이 어우러진 울분을 토해내며 괴마에 올라타고자 안장을 움켜쥐었다.

허락만 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구려까지 질주할 기세.

그러면서 웬 서류를 거칠게 펼쳐 보였다.

촤악!

《대 고구려 제 7 타격대 : No_13 》

- 이름 / 나이 / 성별 : 김창진 / 24 / 남자

- 고유 능력 : 중력 증폭

- 무장 : 장검

- 본 신분증의 소지자는 대 고구려의 타격대 소속으로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치안권 행사 및 무력 사용을 허가받는다.

- 보증인 : 대 고구려 제 7 타격대 대장 서훈 인

- 대 고구려 성주 최위관 인

나도 잘 아는 ‘신분증’이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타격 대원증」이라고 해야겠지.

뭐.

명칭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우리가 혈귀라고? 쌉소리를 해도 정도가 있지! 이 정신병자 같은 자식아! 구라를 쳐도 적당히 쳐야지! 감히 이 대 고구려의 영토 내에서 분탕질을 하고도 모자라 애꿎은 사람을 개썅 쓰레기로 만들어?!”

반박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당신이 누군진 몰라도! 우리가 혈귀라는 건 거짓부렁이요! 우린 대 고구려의 제 7 타격대 소속 대원들이오! 나는 대장 서훈이라고 하고!”

“……?”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김창진이란 자가 증거랍시고 내세운 증명서를 보며 우리의 신뢰를 가져가던 와중에 터져 나온 반대편의 항변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신분증명서? 그거야 기본 중의 기본이지!!”

펄럭!

타이밍에 맞춰 안쪽 주머니를 뒤져 새하얀 문서를 내세우는 반론자.

《대 고구려 제 7 타격대 : 대장 》

- 이름 / 나이 / 성별 : 서훈 / 34 / 남자

- 고유 능력 : 파쇄격

- 무장 : 장검

- 본 신분증의 소지자는 대 고구려의 타격대 소속으로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치안권과 무력 사용을 허가받으며, 「대장」된 직위로써 필요에 따른 긴급 예산 반출 및 소속원들의 처분에 대한 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 대 고구려 성주 최위관 인

좌안의 시력을 활용해 살펴본 내용은 진짜 같았다.

직인도 잘 새겨져 있었고

애초에 우린 한낱 이방인에 불과한 사람들.

위조를 감별할 능력이 없었다.

허면.

대체 누구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인가.

점점 복잡해지는 사안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던 그때.

“큭.”

김창진이 입매를 비틀며 서훈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더니.

“멍청한 자식들.”

허리춤을 뒤져 자그마한 물체를 꺼내 든다.

스릉―

서슬 퍼런 단검이었다.

저걸로 뭘 하려는 건가.

발각당했다 싶어 자살이라도 꿈꾸는 것인가?

“잘 봐라. 이 살인마 새끼들아!”

의문을 표하던 직후.

일갈을 날린 김창진이 서슴없이 제 손바닥을 그었다.

후후후후훅―

서걱!

“큽!”

피가 튄다.

매끄럽게 갈라진 상처 바깥으로 울컥 삐져나오는 선혈에 고통스러운지.

짧게 신음을 내쉰 김창진은 이를 악물더니 이내 칼을 내팽개치곤 본인의 신분증명서를 척 들어 올린 후.

지체 않고 수결을 찍었다.

처억―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나 의심될 만큼 괴상한 행동의 연속.

일견 이해하기 힘들었던 행위의 의미를 알게 된 건 채 3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의 ‘타격 대원증’이.

―――우우우우우우웅!!!

머금은 핏물에 반응하듯 진동하더니.

이윽고.

스스스슥―

중심에서부터 숨겨져 있던 「삼족오」의 형상이 출현했기 때문이었다. 김창진은 그 검은 빛깔의 신조를 만천하에 공개하며 고함을 질렀다.

“왕래에 초점이 맞춰진 평범한 신분증과 달리!! 성의 뿌리가 되고 기둥이 되는 주요 직군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신분증에 특수 처리를 해놓는다! 너희같이 멍청한 놈들이 탈취한 신분증으로 농간을 부리거든, 이처럼 혈액을 묻혀서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말이야!”

쉴 새 없이 내뱉는 진실은 애매하게 진행되던 상황을 단박에 뒤집어버렸고.

“네놈이 서 대장님이라고? 되지도 않는 지랄 말고 각인을 발동시켜봐라! 네놈이 진짜 서 대장님이라면 이처럼 삼족오 문양이 나타나겠지!”

의기양양하게 호통치는 김창진의 결정타에 스스로를 서훈이라 칭하던 이의 안면이 급속도로 썩어들어가는 걸 보며.

“끝났군.”

나는 한세정들에게 손짓했다.

한 방에 정리돼버린 결과.

더 두고 볼 것도 없었다.

“포박해. 어르신께 도움이 될지 모르니 살려놓되, 반항하면 죽여.”

“지유야! 막아!”

“네!”

결단은 빨랐고.

“청염! 얼음꽃! 양옆을 막아! 산지기는 후미!”

화르르르륵!

쩌저저적!

쿠구구구구구구궁!

그와 동시에 신지유의 소환수들이 날뛰었다.

불과 얼음, 바위로 이루어진 장벽이 혈귀 무리의 삼방을 틀어막으며 도주로를 차단하자.

[고유 능력 : 천강홍의장군]

촤르르르르륵!

진홍색 갑주를 휘감으며 유일하게 빈 앞쪽 공간으로 파고 들어가 애병 ‘삼각 성패’의 모서리를 내지르는 곽재우.

“제기랄! 다 조져!!”

“으아아아아아!!”

“죽어어어!!”

[태산압정]

후우우우우우욱―

콰아아아아앙!!!

실체가 탄로 나자 발악하듯 창칼을 꼬나쥐고 달려들던 놈들과의 충돌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 * *

[광역 탐색]

지이이이이잉―

전투가 종료되자 혹여라도 달아난 놈이 있나, 찬찬히 레이더를 돌리는 신지운.

“…음, 안 잡히네요.”

완벽한 체크를 위해 전후좌우로 500미터씩을 이동하며 샅샅이 훑어보고 나서야 전부 붙잡았음을 선언하자.

나는 드라이어드가 만들어낸 목재 수갑과 족쇄를 찬 혈귀의 잔당을 일으켜 세워 김창진과 고구려로 귀환했다.

10일.

다행히 시간적으로 촉박한 실정은 아니니. 황 노야의 실적이나 인지도에 공헌이 될까 하여 이놈들을 넘겨주고 갈 요량이었다.

김창진에게 맡겼다가는 공로를 빼앗길 수도 있거니와, 설사 인정을 받더라도 덜 조명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반드시 알려드려야 할 ‘급보’도 있었기에 더더욱 몸소 가야 했다.

“저, 정지!!! 거기! 멈춰!”

“뭐야, 저건!”

의도야 어쨌건 간에 고구려의 제3 외성 수비대는 난리가 났다.

뜬금없이 수십 명이 포승줄에 구속해 끌려온 데다가.

“혀, 혈귀라고?”

“내가 아는 그 혈귀라고?!”

결박된 자들의 정체가 무려 「혈귀」였으니 소동은 당연한 수준이었다.

“자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나는 얼떨떨한 눈빛으로 우두커니 선 수비대원들에게 노야를 불러 달라 청했고, 통신기를 통해 급히 달려온 어르신께 뭣보다 이 정보부터 전해 드렸다.

“앞으로 2시간, 빠르면 1시간 안에 침공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피에 굶주린 약탈자들의 공습경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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