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축하합니다!]
[이식된 「이나고르트의 안구」에 남아 있던 기억 속에서 ‘특별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기술 : 이나고르트의 뇌광격」을 습득합니다.]
검증도 끝냈고, 흡족한 성과도 얻었겠다.
기분 좋게 여느 때처럼 남은 단계마저 종료하고서 재차 이식을 진행하려던 나는
“아…….”
이내 정면에 출력된 메시지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대관절 왜?
이유는…….
[앞으로 7일간 「기억」 포식이 제한됩니다.]
[앞으로 50일간 종족 「이나고르트」를 상대로 ‘기억 포식’이 제한됩니다.]
이것이었다…….
내가 보관 중이던 ‘이나고르트의 안구’는 나이트급의 신체 조직.
그 까닭은 명확하다.
커맨더 등급은 「동화」라는 부작용이 수반되고, 반대로 최하 등급인 솔져의 사체를 가져다 박자니 상승 폭이 낮은 터라.
적절한 절충안을 찾아 늘상 그러했듯이 2등급으로 구비한 것인데.
“50일…을 간과했다.”
가장 중요하다고 봐도 무방한 부분을 놓쳐버렸다.
2개를 별도의 탐 없이 한꺼번에 박아 넣으려면 솔져급으로 가져와야 했다는 사실을.
당혹스럽다.
솔직히 말하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실수라고 하기엔 매우 큰 ‘실책’이기 때문이었다.
“…….”
요즘 들어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일전에 ‘칭호 : 점령하는 자’를 망각했던 것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최근 계속해서 발생하는 삐걱거림에 자책하던 찰나.
욱씬―
욱씬―
“크읍……!”
느닷없이 관자놀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잘 벼린 예리한 칼날로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두통이 전신으로 번지며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나의 뇌 어딘가에 좌시해선 안 될 상처가 생겼다는 것을 말이다.
기껏해야 2번의 표본으로 뒤틀림이 생겼다 이야기하기엔 너무 극단적인 판단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우드드득!
“크아아악!”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의 통각이 방증이었으니까.
이건 신호였다.
「프레데터」가 되며 발을 딛게 된 육감(六感)의 영역이 보내는 무언의 경고.
이를 인지한 직후.
―――――쿵!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화면이 까맣게 물들었다.
* * *
―――사락
――사락
귓가를 간질이는 잡음이 들린다.
침대나 책상 따위에 옷자락이 쓸리면서 난 소음 같았는데.
첨벙!
가만히 듣고 있자 다음엔 물보라가 일더니.
―――착!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가 이마 언저리에 차가운 감촉이 얹어졌다.
닿는 즉시 알았다.
물수건이 올려졌다는 걸.
그와 동시에
정신이 확 돌았고.
“…한, 세정?”
스르륵 열린 시선 속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는 한세정의 외형이 보였다.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고 있던 그녀는.
“오빠? 오빠 괜찮으세요?!”
내 나직한 음성에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급히 몸을 돌리며 여러 미사여구보다 먼저 ‘괜찮냐’는 질문을 던졌다.
일반적으로.
괜찮으냐는 문구는 상대가 아프거나, 아팠거나, 아플 거라 추측될 때 하는 물음.
즉.
한세정이 보기에 내가 비정상적이라는 뜻이었다.
“사흘……! 사흘이나 누워계셨어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무려.
3일을 내리 잠잤을 만―.
“잠시만, 사흘…이라고?”
한세정의 울먹이는 성토에 서둘러 확인한 타이머.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11일 17시간 41분 23초]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11일 17시간 41분 22초]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11일 17시간 41분 21초]
째깍째깍 줄어드는 시계가 진정 11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
이 당황스러운 흐름에 일시적으로 입이 굳어버린 나는 얼어붙은 머리를 겨우 비틀어 옆을 쳐다봤다.
부탁이었다.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려달라는.
다행히도 한세정은 그 속내를 이해하고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그, 그게… 오빠가 아침을 드실까 여쭤봤는데, 대답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주무시나 하고 단정 짓고 되돌아가려는 차에 쿵 하는 소리가.”
“아.”
짧은 문장이었지만.
듣고 나니 당시의 장면이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출력된 메시지로 실수이자 실책을 자각하던 것이나, 그걸 발판 삼아 변수를 감지하며 기절했던 최후 등.
한 편의 드라마마냥 이어지는 영상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어, 어디 또 아프세요? 의사를 불러올까요?!”
그 태도에 허둥대는 한세정.
“아냐. 걱정 안 해도 돼.”
“정말, 요?”
“응. 다른 애들은?”
“아마… 이 시간이면 운동하고 있을 거에요. 번갈아가면서 봐주기로 해서. 불러올까요?”
며칠 동안 꼬박 혼절한 탓에 단순한 궁금증에도 격하게 대응하는 여인의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더이상 아프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나는 서서히 진정되어가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혹시 조금만 혼자 있어도 될까.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게 좀 있어서. 끝나면 다 설명해줄게.”
당분간 홀로 사색할 여유를 구했다.
깨어나지 않는 나를 돕겠다고 노력하던 사람에게 다짜고짜 축객령이라니.
무척이나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네. 대신 머리가 아프다거나 속이 메스껍다거나 하시면 바로 불러주세요. 옆방에 있을게요.”
“고마워.”
“고마운 건 됐으니 꼭! 꼭 말씀하셔야 해요, 약속이에요.”
“그래, 약속할게.”
“흐읍, 후… 알겠어요. 쉬세요.”
한세정은 일말의 주저함 없이 자리를 벗어나 주었다.
그 고마운 선의 덕분에 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하게 되짚어가며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다만.
“뭐가… 대체 뭐가…….”
5분이고 10분이고 고심한다 한들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애당초.
사건의 시발점이 어디인지를 몰랐기에.
머메른.
최초로 3등급 개체의 육신을 받아들이던 그날이 발단이었나? 혹은 「상위 프레데터」로 등위가 상향되며 발발한 반동?
오만가지 상념으로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진다.
딱 그때였다.
불현듯.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던 격언이 떠오른 건.
“설마…….”
확실치는 않았다.
허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저 한 줄의 글귀가 작금의 사태를 정의하는 ‘가장 완벽한 표현’으로 다가왔다.
내가 세운 이론은 이러했다.
본디 인간이건 기계건 저장 공간은 용량이 정해져 있기 마련.
고로 효율적으로 써도 모자랄 판이거늘.
28년간 축적된 인간 아윤의 경험에 「프레데터」로서 잡아먹은 괴물들의 지식이 마구잡이로 쌓이고 쌓이며 남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한계에 도달한다.
때문에 안 그래도 세심하게 다뤄야 할 창고였는데.
바보같이 이나고르트나 여타 종(種)의 신규 데이터를 억지로 찍어 넣으니, 결국 과부하에 걸린 두뇌가 최신 명령을 수행하고자 자체적으로 기존 데이터를 일부 삭제해버린 게 아니냐는 것.
그저 짐작이었지만.
나는 내 추론이 맞으리라 확신했다.
“인간성 말고도, 주의할 게 더 있었군…….”
기억의 삭제라니.
아예 예견할 수 없었던, 참된 의미의 ‘히든 룰’이 존재했음에 골이 다 지끈거린다.
성장하겠답시고 무작정 타종의 사념을 거둬들였다가 자칫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린다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망자나 다름없어질 터.
어디까지나 최악의 결과를 상정한 가정이었지만.
1%라도 확률은 확률이었다.
더군다나.
만약에라도 ‘인간 : 아윤’을 넘어 내 영혼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누나와의 추억에 금이 가기라도 한다면…
“인간성을 상실하고 괴물이 되는 것만 못하게 되겠지.”
따라서.
앞으로는 두 번, 세 번 고민해보고 손을 대야 한다. 발전이라는 허울에 속아 죽음보다 더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으니.
나아가.
“일기, 일기를 써야겠어.”
나는 한 가지를 다짐했다.
만에 하나라도 생길 재앙을 대비해 기록하기로.
과거의 인과와 현재의 행보.
겪었고, 겪어갈 인생의 전체를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적어 남겨두자고.
그편이.
누나와 재회했을 때도 이야깃거리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 * *
[기술 ‘벼락 치기’가 기술 ‘이나고르트의 뇌광격’에 통합됩니다.]
[기술 ‘이나고르트의 뇌광격’이 한층 자연스러워집니다.]
《기술 : 이나고르트의 뇌광격》
- 등급 : 원본(原本)
- 단계 : 1/5
- 설명 : 행성 ‘마누비아(Manubia)’의 지배종 「이나고르트」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다. 다음 타격에 ‘속성 : 전격’을 덧입혀 위력을 극도로 높이며, 강렬한 빛을 동반하는 전류가 5% 확률로 상대를 ‘상태이상 : 마비’ 또는 ‘상태이상 : 실명’에 빠트린다. 단, 두 상태 이상은 중복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일단 정리를 마치고 난 뒤.
나는 우선 원본(原本) 급으로 진화된 기술 ‘이나고르트의 뇌광격’의 주요 정보를 숙지하는 데에 몰두했다.
비싼 값을 치르고 배운 기예였다.
토씨 한 자라도 빠트릴까 되새김질을 거듭한 뒤.
쿵―
쿵―
“…세정아.”
침대 옆 벽을 두드려 한세정을 호출했다.
내가 부르기만을 고대했는지.
똑똑―
“오빠! 저 세정이인데,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채 30초도 되지 않아 달려오는 그녀에게 모두를 데려와 줄 수 있느냐 묻자.
삑!
“네!”
우렁차게 대답하며 허리춤에서 꺼낸 ‘고주파 신호기’를 꾹 누르는 한세정.
그러길 3분여.
객실 지근거리에서 수련 중이었는지 쿵쾅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문이 활짝 열리며 곽재우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형님! 접니다!”
“오빠!”
곽재우, 조이령, 신지유와 신지운.
“자네! 괜찮은가?!”
거기에 황 노야도 있었다.
총 5인.
한세정을 더해 6인의 남녀노소가 오로지 내게 이목을 집중한 상황. 나는 여섯 쌍의 눈동자를 일일이 마주하며 담담한 어투로 자초지종을 서술해나갔다.
이에 따른 의견은 전반적으로 유사했다.
“치매, 뭐 그런 건가요……?”
“기억을 잃는다니…….”
경악.
이게 전부였다.
웬만한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버린 요소였으니 당연한 이치.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그 덕에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후회는 없습니다. 어르신께서도, 그리고 너희도 과도하게 염려하지 마.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고, 대비하면 되니까.”
평온하되 힘을 주어 선언했다.
한 점의 미련도 없으니 슬픈 눈망울은 집어치우고 여태껏 해왔던 대로 하라고. 우리는 이전처럼 앞만 보고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게 내 마지막 공표이자 대화의 마침표일지니.
더는 이 일로 왈가왈부하는 이는 없었다.
단지.
“저도 쓰려고요.”
“저도요.”
“제가 글씨체가 좋습니다.”
“재우 오빠가 저보다 잘 쓰시는 거 같은데요?”
“형 어서 글씨 배웠어요?”
우리의 여정에 여섯 개의 일기장이 가미됐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