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 관문 】
계속해서 수소문했던 부위.
나의 시력을 강화시켜줄 특효약이라 기대되는 조류의 눈알.
“결국 구했네.”
목조 주택이 설립된 농자재 백화점을 기준으로 황씨 노인과 유신이의 집 인근을 보름 여간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감감무소식이었던 퍼즐을 이렇게 확보하게 될 줄이야 반쯤은 포기한 심정이었거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최근에 포타우스의 근육을 흡수한지라 본격적으로 이식에 들어가려면 며칠은 기다려야겠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미리 사온 게 있기 때문.
달그락―
달그락―
“…아, 형님. 여깄습니다.”
곽재우가 짐가방에서 꺼낸 장난감 큐브 형태의 상자.
중앙에 영롱한 빛깔의 버튼이 박혀있는.
《절단용 신체 보관함》
- 등급 : 비범
- 분류 : 장신구/기타
- 설명 : 많은 전쟁터에서 숱하게 발생하는 절단된 신체 조직을 청결하게 보관하려 제작된 상자다. 각종 마법 주문이 걸려있어 최대 열흘간 병원균의 감염 방지 및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
- 옵션 : 사본(寫本) 등급 지속형 기술 ‘보존’ 발동 / 사본(寫本) 등급 지속형 기술 ‘공간 확장’ 발동 / 사본(寫本) 등급 마법 ‘개폐 주문(음성 인식)’으로 여닫기 가능
* 지속형 기술―보존 : 보관함에 든 신체 조직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
* 지속형 기술―공간 확장 : 외형과 상관없이 ‘가로 1m X 세로 1m’ 저장 공간 생성
“의미가 생겼네.”
“축하드립니다.”
“뭘, 축하까지야.”
이것.
원정을 나올 때 거주지 주변이나 지하실 근방보다 훨씬 먼, 아예 타 지역으로 건너가는 긴 여정이니.
한 번쯤은 원하는 걸 수집할 기회가 오리라 믿었기에 상점을 뒤졌다.
키메라 제작 능력을 가진 황 노인처럼 사체를 썩지 않게 유지할 방법을 준비하고자. 부가 옵션으로 ‘지속형 기술’이 2개나 붙어있기는 해도 등급이 등급이라 구매하는데 딱히 어려움은 없었다.
3등급으로 열 개였던가?
고작 비범급 아이템이, 더군다나 스탯 증가 등이 붙어있지도 않은 주제에 3등급으로 열 개라고 하면 비싼 것 같기도 한데…….
어쩌겠나.
억지를 부리든 강매를 하든 독점상 앞에서는 무릎을 굽힐 수밖에 없지.
“개방.”
찰칵―
지이이이이잉―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연동되어 열리는 박스.
중앙에 틈이 벌어지다 이내 얼음을 곱게 편 듯한 반투명 스크린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정면에 펼쳐졌다.
“이 위에 올려두면 되는 건가.”
스윽―
툭―
얕게 전개된 데다가 살포시 올려놓자.
[‘절단용 신체 보관함’에 「신체 조각 : 안구」가 입고되었습니다.]
짤막한 메시지를 신호로 촤르륵하고 자동으로 접히는 함.
무척 간단한 마무리였다.
동일한 방식으로 두 번째 눈알도 고입한 나는 흡족한 심정으로 짐가방을 여는 곽재우에게 2개의 상자를 넘겨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 폭풍이 휘몰아치던 사나흘 전의 기상이 거짓말인 양 평온한 날씨.
“가볼까?”
“네!”
한결 따스해진 햇볕을 느끼며 출발의 나팔을 불었다.
* * *
대교(大橋)를 가로질러 가는 길.
아무도 걷지 않았는지 새하얀 도화지에 생긴 족적이 새로운 변수를 만들까 염려하는 마음에 ‘얼음꽃’과 ‘흔들바람’으로 적당히 흔적을 지우며 나아가기를 10분여.
채 30분도 되지 않아 우린 건수라는 남자가 말했던 ‘지옥’의 의미를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키에에에에엑!!”
“쉬이이익!”
“그어어어어어얽!”
“도와요!”
“제가 갈게요!”
마치 다리가 일종의 분기점이라도 됐던 듯, 한강 이북으로 진입하자 헤아리지 못할 수의 괴물들이 달려든 탓이었다.
이럴 거였으면…….
그냥 이나고르트들과 전쟁을 각오하고서라도 날아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수준.
실지로 그랬다간 신지유라는 전력을 버리는 짓이나 매한가져였기에 활용 불가한 전략이겠지만.
여하간.
“이령아, 괜챃겠어?”
“거뜬하지!”
“왼쪽은 내가 갈게.”
“넵!”
나를 포함해 한세정들은 한시도 쉴 틈 없이 싸움을 치러야 했다.
단지.
개인적으로 이 상황이 그닥 나쁘게만 와 닿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눈앞의 현실이 절망스럽게 비칠 터이나.
[풀루스의 돌진]
탁―
파아아아아앙!
돌진.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
슈우!
촤아아아아악!!!
베고.
[포타우스의 연속 폭격]
꽈아아악―
쾅!
때리고.
“샌드백이 따로 없네.”
어마어마하게 밀려오는 괴물들이 이른바 생체 샌드백 역할을 해주며 내 기술 숙련에 막대한 영양분이 돼줬으니까.
매우 잘 된 일이었다.
안 그래도 거점을 떠나오면서 수련의 질이 확 떨어져 걱정이었는데, 우려했던 거 싹 털어내고 모자란 부분을 확실하게 채울 것 같았다.
뭐니 뭐니 해도.
“실전만큼 좋은 게 없지.”
“그어어어어어어!!!!”
[발록의 투기]
화아아악!
“―!!! 그어억, 그억……!”
[마력 변형술 : 창날]
[아쿠스의 연속 찌르기]
후우우욱―
촤좌좌좌좌좌좍!!
연달아 찔러 넣는 왼손의 손톱 오른손의 창날.
쏘아낸 살기(殺氣)로 바들바들 떨고만 있는 놈들의 몸뚱어리를 사정없이 꿰뚫으며 좌측을 정리하는 사이.
“하아!”
슈우우욱―
쩌저저저저적!!
콰아앙!
우측으로 뛰었던 조이령의 장창도 불을 뿜었다.
주력기인 ‘발광하는 이무기’에 이나고르트를 학살하며 획득한 ‘벼락 치기’를 덧입혔는지.
일격, 일격이 가해질 때마다 귀를 때리는 뇌성과 울려 퍼졌다.
《기술 : 벼락 치기》
- 등급 : 사본(寫本)
- 단계 : 1/3
- 설명 : 행성 ‘마누비아(Manubia)’의 지배종 「이나고르트」만이 개화 가능한 것을 배껴 인간이 익힐 수 있도록 열화(劣化) 시킨 기술이다. 다음 타격에 ‘속성 : 전격’을 부여하여 위력을 높인다. 단, 온전하지 않은 탓에 매 사용 시 반동이 찾아온다.
버프이면서도 리바운드가 오는 독특한 형식.
다만 우리쯤 되면 별 시답지도 않은 조건이라 펑펑 써대는 중인데, 속성 저항력이 없는 대상에게는 퍽 유용했다.
전격이라는 게 워낙 특이한 속성이기도 했거니와.
전류의 특성상 주위로 퍼져 나가려는 성질 때문에 스플래쉬 대미지가 붙어 다수를 상대할 때 탁월했다.
특히나.
“청염! 녹여!”
“웨이브.”
화르르르르륵!
우우웅!
쏴아아아아아아―
푸른 불꽃과 검푸른 물결이 합쳐져 전장을 휩쓰는 이 시점에는, 있고 없고의 간극이 눈에 띌 정도.
“엄전류!”
“하아!”
“하앗!”
“흡!”
파직―
콰아아아아앙!
콰과과광―
다량의 낙뢰가 누비고 간 공간.
번쩍이던 빛줄기가 잠잠해질 무렵, 사그라든 우렛소리와 함께 고요하다 못해 침묵으로 변해버린 인근이 시야에 잡혔다.
까맣게 탄 사체 무더기.
혈액 한 방울마저 말라버린 끔찍한 몰골을 잠시 바라보며 혹여 죽지 않은 녀석이 있다 체크한 우린.
“…없어요. 한 마리도 안 잡혀요.”
“오케이. 근원석 수거하고 바로 가자.”
“넵!”
신지운의 ‘광역 탐색’으로 철저하게 검증하고서 노획물을 챙겨 다시금 직진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괴물들로 길어야 30분, 짧으면 10분 간격으로 멈추기를 반복했으나.
다행히 저녁 즈음에는 공연히 힘 빼지 않고도 편하게 이동하게 되었다.
“어? 없나 본데요……?”
“정말?”
“네! 더… 가봐도 없어요!”
공중의 장애물이 사라진 덕분. 이나고르트의 영역도 무한하지는 않은 법이니 마땅한 수순이었다.
해서.
“흔들바람!”
우우우우우웅―
후우우욱!
우린 지체 않고 바로 몸을 띄웠다.
편하게 가려다 또 다른 종류의 비행형 괴물을 마주칠 수도 있겠지만, 던전이나 퀸급 개체와의 대면만 아니라면 나름대로 괜찮았다.
재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그렇게.
“11시 방향.”
“11시 방향!”
안전과 여유를 동시에 취하며 전진하던 도중이었다.
“…음?”
선두에 서서 지도와 전방을 번갈아 보던 곽재우에게서 물음표가 튀어나온 건.
그는 뭔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이마에 손날을 붙이며 햇빛을 차단하고 어딘가를 노려봤다.
뭐지?
의아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기 무섭게 곽재우가 황급히 나를 불렀다.
“형님! 이쪽으로!”
“……?”
점점 더 의문이 깊어지던 나와 한세정들이 서둘러 그의 곁으로 접근하자 팔을 쭉 뻗어 멀리 한 곳을 가리키는 곽재우.
스윽―
곧게 내민 우람한 팔뚝이 지목한 장소로 이목이 쏠린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두우우우우우웅―!
붉게 저물어가는 노을빛을 머금으며 고고하게 서 있는 거대한 건축물.
신(新) 한국 정부의 동부를 담당하는 지구이자 세 발 달린 검은 까마귀가 새겨진 깃발이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는 성채.
「고구려」의 자태를.
* * *
“이야…….”
“진짜 미쳤네.”
“그러게 말입니다.”
“전 솔직히 재우 형이랑 하도 훈련을 많이 해서 요새든 성이든 봐도 담담할 줄 알았어요.”
“나도.”
종말 이전 현대사에서는 문화유산 또는 교과서 등의 문헌으로나 접하던 요새의 출현은 우릴 진심으로 놀라게 했다.
성 문화가 활발했던 중세 이전의 시절로 회귀한다고 한들 과연 저것보다 웅장할 수 있을까 싶은 모양새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광경이었으니까.
그로 인해 잠시 근처 건물 옥상에 착지한 우린 한층 자세하게 ‘고구려’의 형세를 살펴봤다.
[감각 강화 : 시력]
화아아아악!
급격하게 확대되는 안력에 기대 관찰한 결과, ‘고구려’의 축공 방식은 다중 원형 성벽의 구조를 띠고 있었다.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외성 1 → 거주지 → 외성 2 → 거주지 2 → 외성 3 → 거주지 3 → 본성]
대충 이런 식.
딱 정도윤과 최홍진에게 듣던 대로였는데.
“그새 한 줄이 추가됐나 봐요.”
한세정의 말처럼 두 겹으로 알고 있던 것과 달리 현재는 세 겹으로 늘어난 실정이었다.
나는 그 견고한 철옹성을 가만히 응시하며 침음성을 흘렸다. 「황금 마크」든, 신(新) 한국 정부의 수장 이회건이든 만나려거든 저 관문을 거쳐야 허가에,
가급적이면 선회하거나 공중으로 패스해버리고프다만…….
“벽이 연결돼있다고 했던가.”
“네. 두 번째 외성 양쪽에 나 있는 저 긴 벽이 연결벽이라고 했어요. 공중으로도 레이더 부대가 대기 중이라고 했고.”
“무시한다면 가능은 할 겁니다. 감지계 능력자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상공 수백 미터까지 훑어보진 못할 거고.”
“흐음.”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적은 ‘선회 루트’로 방향을 잡는 게 제일 낫겠지.
‘그래.’
깊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서 한세정들에게로 고개를 돌리던 그때였다.
“우린……?”
180도로 꺾여가던 시선 끄트머리에…….
복슬복슬한 털 아래로 푸르고 붉은 하체가 유난히 도드라진 동물이 보인 것은.
“…백구?”
「백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