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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91화 (190/232)

191화

“킹덤은 홍주석이라는 남자가 이끕니다. 나이는 30대 초중반. 전직은 불분명하나 무기로 두 손 장검을 쓰는 데다 칼 솜씨가 매우 뛰어난 걸로 봐선 그쪽 계열 직업군이지 않았을까 상정 중입니다.”

“용병이나 검도장 사범쯤 되는건가.”

“아마 후자로 보입니다. 홍주석 말고도 주변인들이 전부 칼을 쓰는걸로 봐선… 감도장 대사범과 일반 사범 외 학원생의 집합체가 아닐까.”

“흐음.”

“물론 단체로 기술을 배웠을 수도 있으니, 그냥 칼을 잘 쓴다 쯤으로만 알아 두시면 될 겁니다.”

자신을 배용철이라 알린 남자는 먼저 ‘킹덤’이라는 조직에 대하여 가진 자료를 풀었다.

수장의 특징을 포함해 대략적인 규모라든가, 주요 활동지라든가.

자세하다고 하긴 부족한 수준이었으나, 신(新)한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서울 지역에 무지한 우리에겐 적잖게 중요한 데이터였다.

아는 게 힘.

지식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우리도 직접 본 적이 한 번밖에 없어서 말씀드릴 부분은 이게 답니다. 듣기로는 ‘태릉’이라고 해서 군인과 운동선수들이 모인 길드도 있다곤 하는데, 저희도 마주친 적은 없어서 알려 드릴 만한 내용이…….”

“태릉이라.”

“태권도나 복싱같이 무술을 배웠던 작자들이라 싸움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네요. 그 외에 연쇄살인마를 중심으로 모인 ‘혈귀’라는 길드도 있는데, 문자 그대로 피에 미친 사이코패스들이니까 조심하세요. 범죄사 새끼들 주제에 실력은 어찌나 대단한지.”

“기억해두지.”

“예. 그리고 또…”

배용철은 도합 네댓 개가량의 그룹을 가르쳐 주고는 마지막으로 반가운 명칭을 거론했다.

“참, 성십자가 클랜은 아십니까?”

정부와 더불어.

결코 잊지 못할 놈들.

‘성십자가 클랜’에 관하여.

“…뭐, 대충은.”

“응? 성십자가 클랜을 아는 걸 보면 그쪽도 도움을 받았었나 봅니다. 남 돕는 데 목숨까지 거는 사람들이니.”

배용철은 우리가 성십자가 클랜의 이름을 알고 있음에도 별로 놀랍지 않은 듯.

무덤덤한 어조로 어깨를 으쓱이고는 제 할 말은 이제 끝났으니 가 보겠다며 쿨하게 몸을 돌렸다. 나는 얼른 달려가려는 그를 붙잡고 품에서 포션 몇 병을 꺼내 선물했다.

투명한 액체가 일렁이는 ‘중급 회복 물약’에 ‘하급 상태 이상 물약’들이었다.

“예? 이거 혹시…….”

“정보값이야. 몇 개 안 되지만 가져가.”

“아… 넵! 감사합니다.”

식량은 우리도 빠듯한 실정이라 대신해서 갈음한 것인데.

배용철은 내가 뭘 챙겨 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동그랗게 뜬 눈을 껌뻑거리다 꾸벅 읍을 했다.

웬 횡재냐는 기색이 역력한 태도.

그 모습에 피식 웃는 나는 특별히 갈 곳이 없거든 ‘성풍 아파트 단지’로 가 보라는 조언을 덧붙였고, 이에 일행과 상의해 보겠다는 답변을 남긴 배용철은 곧 눈발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 * *

“조금 뜬금없는 만남이긴 했어도 의외로 얻은 게 있네요.”

“그러게.”

배용철과 헤어진 이후.

불길 주위로 둘러앉아 소소하게 식사를 마친 나는 한세정의 말에 동조하며 곽재우가 넘겨준 ‘배용철의 자료’를 확실하게 외워 두기 위해 거듭 읽어 내려갔다.

세세하기보단 대체로 두루뭉술한 편이라 암기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단지.

“…흐음.”

“왜, 그러세요?”

“그냥. 앞으로도 오늘 같은 일이 또 생길까 봐.”

“아…….”

한세정과 나눈 짤막한 담소처럼, 가슴 한쪽에 비수가 박힌 것마냥 여전히 찜찜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갑갑…하다고나 할까?

쉽사리 가지지 않는 감정에 인상이 찡그려지던 그때.

스윽―

“너무 괘념치 마세요.”

“…….”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렌티아 차를 내민 한세정이 내 옆에 궁둥이를 붙이더니.

따듯한 온기가 퍼져 나오는 찻잔을 말아 쥐며 내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문밖으로 시선을 옮기곤 혼잣말인 양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는 괴물의 원수를 이룩했을 거고, 시일이 늦든 빠르든 발생할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니 탓하려면 애초에 이렇게 망가져 버린 세상을 탓해야겠죠.”

마치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째서 그런 고민을 하게 됐는지 아는지.

네 잘못은 없으니 답답해하지 말라고.

옅은 미소를 띠며 담백하게 얘기하는 말의 핵심은 위로였다.

딱히.

위로를 받아야 할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묘하게도 한세정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출렁이던 감정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내심 바랐던 건가?

“…모르겠다.”

“네?”

“아냐. 아무튼, 고맙다.”

“뭘요. 헤헤.”

나는 한결 홀가분해진 심정으로 헤실거리는 한세정을 뒤로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슬슬.

멈췄던 여정을 재개할 시간이었다.

* * *

휘이이이이이잉!

휘이이잉―

오후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꺾이기는 무슨, 외려 한층 격렬해진 눈바람을 뚫고 휴식처로 쓰던 상가를 벗어나 북상하는 길.

강원도 철원에서나 볼 법한 설경을 헤치며 가기를 몇 시간여.

“어?”

“……?”

한참 나아가던 중에 앞쪽에서 꽤나 시끄러운 고함이 들렸다. 선두에 있던 신지운의 들뜬 외침이었다.

뭔가 싶어 보폭을 넓혀 한달음에 가까이 가자.

“형! 저기 봐요!”

신지운이 신난 낯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방방 뛰는 중이었다.

저 멀리.

희끄무레한 형상을 손가락질하며.

중학생 어린아이답지 않게 굳은살이 잔뜩 박인 그곳에는, 세상이 망가졌는데도 한결같이 웅장한 건축물.

“…다, 리?”

대교(大橋)가 우두커니 서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드디어 ‘한강’에 도착했다는 방증이자 신(新)한국 정부의 턱밑에 도달했다는 의미일지니.

“여기만 건너면…….”

꽈아아아악―

지난날에 받았던 칼질을 되갚아 줄 기회가 찾아왔음에 반사적으로 주먹이 쥐어졌다.

정도윤과 최홍진이 그려 준 지도에 따르면 한양까지는 끽해 봐야 2~30여 킬로미터. 여차하면 날아서 갈 수도 있는 우리에겐 그야말로 지척이었다.

그러므로.

“지유야.”

“네, 오빠.”

“흔들바람으로 모두 가능하겠어?”

“그야 당연하죠!”

일말의 재고 없이 바로 비행해서 갈 요량이었다.

굳이.

빠른 길을 놔두고 느린 길을 걸어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랬는데.

아무래도 그 방법은 좀 어려울 거 같았다.

“흔들바람! 우리를 띄워 줘.”

휘우우우웅!!

신지유의 마력이야 차고 넘쳤지만.

[축하합니다!]

[〈던전 : 천둥 벼락의 폭풍〉에 입장하셨습니다.]

[해당 공간에서 활동하는 동안 〈던전 전용 퀘스트 : 낙뢰 방어〉가 진행됩니다.]

“……?!”

우리의 앞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나타난 까닭이었다.

《던전 : 천둥 벼락의 폭풍》

- 이곳은 행성 ‘마누비아(Manubia)’의 지배종 「이나고르트」의 영역입니다. 창공을 누비며 천둥과 벼락을 불러일으킨다는 뇌조(雷鳥)들은 인근의 전류를 끌어당겨 제 무기로 삼습니다. 그 때문에 몇몇 지성체들은 「이나고르트」를 신의 사도 혹은 신이 내리는 징벌이라 여기며 두려워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들의 권역에 발을 들였다면 이것 하나는 명심하십시오. 절대 하늘을 날지 말기를. 뇌조(雷鳥)들의 무서운 점은 천공에 펼쳐진 ‘보이지 않는 전류의 그물’이니까.

└던전 입장 시 ‘던전 전용 퀘스트’가 자동 진행됩니다.

└던전 전용 퀘스트 : 지휘관

《던전 전용 퀘스트 : 뇌운 방어》

- 이 퀘스트는 오로지 ‘던전 : 천둥 벼락의 폭풍’에서만 진행 가능하며, 뇌조(雷鳥)들이 퍼붓는 벼락으로부터 개시됩니다. 방식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이나고르트」 종(種) 이 떨어뜨리는 벼락을 방어할 것.

한때 신의 징벌로 여겨졌던 낙뢰를 파훼하며 당신이 능력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실패할 경우 대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할 테지만 말입니다.

└현재 방어한 「이나고르트」 의 벼락 수 : (0/~)

└나이트 등급 「이나고르트」 의 벼락 방어 시 ‘x3’만큼 추가 적용

└커맨더 등급 「이나고르트」 의 벼락 방어 시 ‘x5’만큼 추가 적용

└퀸 등급 「이나고르트」 의 벼락 방어 시 ‘x10’만큼 추가 적용

특이하게도 땅이 아닌 하늘에서만 입장이 되는 던전.

이런 장소는 처음이었다.

수륙 전체에 걸친 ‘파도 속의 고치’나 독지였던 크루톤의 소굴도 접해 보았기에 더 놀랄 만한 구석은 없을 줄 알았건만.

“…별게 다 있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러면 날아가기가 힘들 듯합니다, 형님.”

다들 나와 비슷한 심리인지.

계획이 어그러진 탓에 떨떠름한 얼굴로 난색을 보이던 직후였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순간.

파지지직!

파지직!

고심하던 우리 머리 위로 수십 줄기의 황금빛 벼락이 떨어진 건.

콰아앙!

콰과과과광!!

삽시간에 허연 눈보라를 찢어발기며 낙하한 전류는 소나기처럼 대지를 짓밟았다.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폭음.

안구가 멀어버릴 만큼 강렬한 섬광을 발해낸 뇌우는 가공할 파괴력을 선사하며 지상을 유린했고, 닿는 모든 것을 먼지 한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나 일행 중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곽재우!”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

우우우우웅!

“철혈의 술!”

[철혈의 술 : 2단계]

[대군 방벽]

쿠구구구구궁―!

내 빠른 조치와 연속으로 펼쳐진 곽재우의 적벽이 상공을 뒤덮으며 번개의 비를 빈틈없이 막아 낸 덕분이었다.

한세정들의 능력이라면 설사 한두 방쯤 맞는다고 해도 위험하진 않았을 테지만.

쓸데없는 확률에 목을 걸 이유는 없는 바.

“후, 저게 그 뇌조인가.”

마력을 풀어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를 추가로 설치해 방어 라인을 공고하게 구축한 나는 일행의 안전을 체크한 뒤 위쪽을 올려다보며 이나고르트로 추정되는 괴조들을 올려다봤다.

필시.

‘보이지 않는 전류의 그물’이라는 시스템으로 인해 우리가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존재감을 느끼고 공격해 온 듯한데.

계속해서 늘어나는 숫자보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놈들의 체구였다.

“작다?”

일반적인 외계 생명체와 달리.

가장 큰 개체가 3m 남짓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혹 거리가 멀어 오인한 걸지도 몰라 안력을 강화해 검증해봤으나.

[감각 증폭 : 시력]

파아아아앙!

착각은 없었다.

확인해본 결과 틀림없이 3m 이하의 체구가 다반사.

약간만 둘러봐도 10m짜리 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출현하는 판국에 고작 삼분지 일도 안되는 크기라니… 실상 괴물보단 짐승이란 표현이 훨씬 어울리는 특이종이었다 .

“뭐.”

“끼에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엑!!”

꽈르르르르릉!

“부피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

우우우우웅!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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